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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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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역사관광

노동서원

노동서원(魯東書院)은 우리나라 사학의 원조인 최충(崔冲)의 영정과 위패, 그리고 그의 아들인 최유선(崔惟善)을 봉안하고 있다. 최충의 12대 손인 최변이 이곳에 낙향하여 자손들이 번창하자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당을 지었다가 후에 노동서원이라 개칭되었다. 서원에 봉안된 두 영정은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노동서원은 유교적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한 행사의 장으로도 쓰이며 특히 인근 초·중·고 학생들의 유적순례지로서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본 서원은 원래 홍천군 북방면 노일리에 있던 것을 수호(守護)의 어려움으로 인 하여 1932년 5월에 이곳으로 옮겼으며 6·25 동란에 소실된 동재와 서재 일부를 개축하고 수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또한 정례행사인 제향을 유림행사로서 받들며 연 1회 봉제사를 올린다.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서면 팔봉산로 1198-2
노강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의정부시역사관광

노강서원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의 폐위가 부당하다고 간언 하다 죽음을 당한 정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1695년(숙종 21)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하였다.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1697년(숙종 23)에 숙종이 ‘노강’이라고 이름을 지어 새긴 현판을 내렸다. 이후 1754년(영조 30)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 이후에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1677년(숙종 3)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 민 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 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694년(숙종 20)에 모든 죄를 사면받고 그의 충절과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영의정의 벼슬과 문열(文烈)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노량진 노강서원은 6·25 전란으로 소실되어 1969년에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출처 : 의정부시 문화관광)

경기도 의정부시 동일로122번길 153
노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영주시역사관광

노계서원

노계서원은 조선 후기 풍기 지역 사림들이 진중길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노계사에서 유래한다. 노계서원 경내에는 상현사·강당·행정·전사청 등이 남아 있다. 사당인 상현사는 진중길과 한산두의 위패를 모셔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학 공간인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반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중앙에 마루를 깔고,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사청의 북쪽 방은 앞쪽은 창고로 활용되고,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다. 행정은 진중길이 옛 봉황대[鳳凰臺] 자리에 은행나무를 심고 세운 정자이다. 후에 후손들이 중건·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노좌로29번길 28
노근리평화공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영동군역사관광

노근리평화공원

충청북도 영동군에 위치한 노근리 평화공원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발생했던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으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방문자센터, 평화기념관, 위령탑, 조각공원, 사건현장, 전망대, 평화기원마, 야외전시장, 교육관 등의 시설이 있다. 평화기념관은 공원의 주제성을 부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상설전시실 및 영상실 등을 포함하며 위령탑과 연계하여 노근리 평화공원의 랜드마크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노근리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기려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위로하고, 영동군의 상징성을 부각하며, 공공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도록 기념비적인 형태와 현대적인 조형미를 결합하여 위패봉안시설을 갖춘 위령탑을 설치하였다. 조각공원에서는 사건의 본질적인 정신과 한민족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노근리 주민들의 당시 모습과 아픔을 다양한 조각상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쌍굴다리는 노근리 사건이 발생한 현장으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평화교를 건너 평화기원마당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이용객의 휴식 및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추모 및 추념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난 뒤 사색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규모 이벤트 행사 시 이용할 수 있으며, 평상시에는 피크닉 장소로 이용되는 다목적 공간이다. 야외전시장에는 노근리 사건 당시 공중 폭격을 했던 비행기와 동일 기종인 F-86F 전투기와 군용 트럭, 지프가 전시되어 있다. 교육관은 청소년들의 교육장소 및 국제 학술행사 시 보조 공간으로서 약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구) 노송초등학교 부지에 건립되었다. 각종 세미나 개최 시 숙박 장소로서의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목화실길 7
노동환가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노동환가옥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후천마을에 있는 노동환 가옥은 조선시대의 향반 가옥 중 하나이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집은 제비가 알을 품는 형상의 명당 지에 위치하나 집을 바라보고 있는 앞산이 뱀의 머리혈인 사두혈이기에 이 집안에 부자나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사두의 기운을 누르고자 산머리에 강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노동환 가옥은 20여평의 부지 위에 건립되었고, 상량문에 [숭정기원후 경인삼월초육일인시견주 경인삼월십육일유시상량(崇禎紀元後庚寅三月初六日寅時堅柱庚寅三月十六日酉時上樑)]이 적혀있어 효종(1650)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자형의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어 단출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로 낮게 쌓은 기단부 위에 사각형의 자연석을 다듬어 주춧돌로 놓고, 그 위에 네모나게 깎은 나무기둥을 세우고 홑처마에 팔작기와지붕을 얹었다. 이곳은 1986년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노동환 님께서 직접 생활하고 있는 가옥 이므로 내부 개방하지 않으며, 관람할 때에도 주의해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후천1길 19-20
너리굴 문화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너리굴 문화마을

너리굴 문화마을은 비봉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캠핑장과 펜션 및 다양한 문화공간까지 갖춘 산속의 마을이다. 너리굴아란 말은 넓은 골이라는 뜻의 안성 고유어이다. 너리굴 문화마을은 자연과 예술이 한데 어울려 있는 마을로, 강당 및 회의실과 펜션 숙소, 카라반, 운동장, 수영장, 카페, 아트숍 등이 갖추어져 있다. 마을 내 여러 예술작품들이 있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용하여 건축하여 비봉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사계절에 맞춰 옷을 갈아입듯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너리굴 아트숍은 너리굴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문화 예술 프로그램의 결과물들이 한데 모여있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공간이다. 원하는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으며 도자기, 액세서리, 생활소품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 이경자 선생의 금속공예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체험할 수 있는 문화 예술 프로그램으로는 팔찌부터 지갑, 가방까지 가죽으로 나만의 생활소품을 만들 수 있는 가죽 공방, 물레를 이용해 나만의 그릇을 만들 수 있는 도자 공방, 과학교실 등이 있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너리굴길 100
남희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담양군역사관광

남희정

남희정은 부사 황종림이 지은 정자로 북은 관어대, 남은 남희정이라 하였다. 두 정자를 지은 목적은 양로와 교육이었으며, 두 정자를 이 지역 노인들에게 사용하게 하여 노인들을 돌보고 젊은이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강학과 향약의 시행처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향약의 시행처로 정자가 사용됨은 매우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자의 구조를 살펴보면 사방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자의 내부에는 기, 명공기, 계헌 등이 걸려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내부의 가구 구조는 모임지붕처럼 중앙을 향하여 서까래와 추녀가 모이고 이 부분에 연등천장을 설치하였다. 바닥의 구성은 바닥 전체를 누마루로 깐 무실형 정자이다. 대지의 위치가 높으므로 누마루가 높지 않다. 또 3면을 평난간으로 돌린 단출한 정자이나 서까래와 부연을 둔 겹처마로 단청은 호화롭다. 차량 이동 15분 거리에 금성산성이 있고 차량으로 약 25분 거리에 소쇄원이, 차량 이동 5분 거리에 담양관방제림 관광지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담양읍 남촌길 91-1
내원암(울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울산광역시 울주군역사관광

내원암(울산)

내원암은 울산 12경 가운데 하나인 대운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시대의 고찰 가운데 하나이다. 석남사, 문수사, 신흥사와 함께 울산 지역의 4대 고찰 가운데 하나로, 신라시대 고봉 선사가 창건하였다는 대원사의 암자로 현재 대원사는 내원암 입구에 터로 남아있다. 주변은 울산 12경 가운데 하나로 계곡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하여 울산과 주변 지역 시민들이 즐겨 찾고 있는 곳이다. 내원암의 자랑인 팽나무 고목은 500여 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터줏대감인데, 모습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하여 보는 이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근래 들어서는 종교 간에 얽힌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자 매년 울산지역 성직자들이 함께 참가하는 산사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어 지역사회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내원암은 울산지역의 대표적인 기도처이면서, 종교를 초월하여 지역의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문화공간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대운상대길 382
내원사(대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전광역시 서구역사관광

내원사(대전)

내원사는 대전 서구 도솔산 동쪽 사면에 자리한 사찰이다. 도솔산은 대전 시내에 솟아 있는 비교적 낮은 산으로, 많은 시민들이 가벼운 산책이나 등산을 위해 자주 찾는 장소이다. 내원사는 이처럼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산속에 위치해 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내원사’라는 이름의 사찰은 전국 여러 곳에 있으나, 도솔산 내원사는 험준한 산사에서 느끼기 어려운 포근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찰 경내에는 대웅전과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 자연 풍광과 조화를 이루어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방문객들을 위한 약수터도 마련되어 있어 잠시 머물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내원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도솔암’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다가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28년, 연덕화 보살이 절을 다시 지었고, 1965년에는 법전 스님이 중건하였다. 1997년에 조성된 대웅전을 중심으로, 대적광전과 요사채가 함께 구성되어 있으며, 절 입구에는 1996년에 조성된 범종 형태의 부도 1기가 세워져 있다. 도심 가까이에서 불교문화와 자연의 평온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장소로, 내원사는 누구에게나 조용한 위로와 휴식을 선사한다.

대전광역시 서구 배재로197번길 200
남해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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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향교

남해향교는 1450년 하신(河紳)이 남해현령으로 재임할 때 봉강산 포교당터에 건립하여 개교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후 1669년(현종 10)에 사당인 대성전을 고쳐 세웠다. 그 후 고종 29년(1892)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점차 그 밖의 건물들도 모두 옮겨 세웠다. 완만한 경사지에 출입구인 외삼문,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비교적 낮은 터에 있고, 그 뒤로 조금 높은 터에 내삼문과 성현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이나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
남해 임진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임진성

남면 상가리 남쪽에 위치한 임진성은 이름 그대로 임진왜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민, 관, 군이 힘을 합쳐 쌓았다는 이유로 민보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임진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길게 늘어선 돌덩이들이 차곡차곡 높게 쌓아져 있으며, 토성으로 된 외성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형태는 테뫼식으로 사암, 화강암, 안산암 등 활석으로 장방형 쌓기로 구축하고 틈새는 잔돌을 끼워 마감하였는데, 옥포 인접 구릉에 타원형 성곽으로 성곽 내 토루를 만들어 통로를 만들었다. 옛날에는 성루, 감시사, 망대, 탑대, 서당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시설물은 없고, 성곽과 동문터, 서문터, 우물터만 남아있다. 현존하는 성벽의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는 최근보수 공사를 거쳤고, 2014년에는 성 내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연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상가리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들어오면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 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 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 전의 그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 채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남해대로 3829
남해 충렬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충렬사

벚꽃터널 길을 지나 노량마을로 들어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 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 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충렬사는 장군이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한 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다. 남해 충렬사는 규모가 작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와 사우 그리고 충무공비와 충민공비, 내삼문, 외삼문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청해루와 장군의 가묘가 잘 정리되어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로183번길 27
내산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영광군역사관광

내산서원

조선 중기 문신인 강항(1567∼1618)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강항은 공조좌랑과 형조좌랑에 있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일본에 있으면서 그 나라의 역사, 지리 등을 알아내어 고국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일본에는 성리학을 전하였다. 선조 33년(1600) 귀국한 후 벼슬을 사양하고 독서와 후진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이 서원은 인조 13년(1635)에 나라에서 ‘용계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고 숙종 28년(1702)에 고쳐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고쳐 지었는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쪽에 교육 공간을 마련하였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마련한 전학 후묘의 배치이다. 교육 공간인 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뒤에 있는 내삼문을 지나면 강항의 위패를 모신 작은 규모의 사당이 있다. 왼쪽 산기슭에는 강항의 묘소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불갑면 강항로 101
내장사(정읍)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내장사(정읍)

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내장사는 636년(백제 무왕 37)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하여 영은사(靈隱寺)라 하였으며, 이때의 가람규모는 50여 동이었다고 한다. 1098년(숙종 3) 행안(幸安)선사가 전각과 당우를 새로 건립하고 중창하였고 1557년(명종 12) 희묵(希默)대사가 영은사의 자리에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하고 산 안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숨어있다 하여 절 이름을 내장사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내장산 용굴암과 은봉암과 은봉암, 비래암에 이안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사 주지였던 승병장 희묵대사와 승군들이 함께 수호하는데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년(인조 17년) 부용대사가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改金)하였으며, 1779년(정조 3) 영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하였다. 1923년 학명(鶴鳴)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1951년 1월 12일 불탄 뒤 중건을 보지 못하다가, 1957년 야은스님이 요사인 해운당을 건립하였고, 1958년 다천스님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1960~1962년과 1974∼1977년에 중건하였고, 1992년 요사인 향적원(香積院)과 종각을 건립하였으며, 1997년 해운당을 중건하였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 삼성각, 천왕문, 범종각, 정혜루, 일주문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남한산성행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광주시역사관광

남한산성행궁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 행궁은 1909년까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다. 199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2002년에 상궐에 해당하는 내행전을 준공하고 2004년 행궁 좌전을 준공하였다. (출처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935-1
남포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23)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며,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향교 건물의 배치는 대성전과 명륜당, 서재를 갖춘 전학후묘의 배치 방식을 따르고 있다. 보통 향교에는 기숙사로 사용하는 서재와 동재가 있는데 남포향교에는 동재는 없고 서재만 있으며, 이마저도 향교를 관리하는 고직사를 겸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남포향교 정면에 서면 옥서리 저수지와 남포 들녘,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성주산 옥마봉이 우뚝 서 있다. 인근의 관광 명소는 옥마산, 남포읍성, 남포 관아 문, 보령시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33
남포향교 대성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향교 대성전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23)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며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남포향교의 전체적인 배치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외삼문, 내삼문, 동재, 서재 등이다. 주변 관광 명소는 남포읍성, 옥마산, 남포 관아문, 보령시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33
남천교 청연루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역사관광

남천교 청연루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과 서학동을 잇는 남천교, 그리고 남천교 위에 세워진 팔작지붕을 한 청연루가 ‘전주 남천교 명품화사업’을 통하여 한옥마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천교(길이 82.5m, 폭 25m)는 이 자리에 있던 옛 홍예교의 이미지를 살려 아치형 교량 구조를 하고 있다. 다리 위에 세워진 청연루는 전주 8경 중 하나인 한벽청연인 한벽당과 대칭적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청연루에 올라 앉아 동쪽을 바라보면 멀리 기린봉 자락에 자리 잡은 동고사가 아스라이 보인다. 남천교 위에 기와로 지붕을 얹고 목재로 기둥을 세워 청연루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천년고도다운 격조가 있고 고풍이 완연하다. 완산팔경 가운데 하나가 ‘한벽청연’이다. ‘한벽’과 ‘청연’을 대구로 사용해서 다리 위쪽으로 한벽루가 있으니, 그 아래쪽에다가 청연루를 지은 것이다. 다리 위에 이런 정자가 있으니 여름엔 아주 시원할 듯하다. 무지개 모양의 교각과 한옥 모양의 다리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천경로 40
남포관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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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관아문

남포관아문은 조선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이다. 이전에는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현사(縣司)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서루와 내삼문, 외동헌이 남아있다. 남포현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 건물로 아래는 출입구, 위는 누마루를 설치하고, 팔작지붕이다. 조선왕조의 중앙 집권을 상징하기 위해 당시 전국에 똑같이 만들어진 관아문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진서루(鎭西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진서루는 외삼문으로 옛 남포현의 출입문이다.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2층 문루인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아래층은 삼문을 달았고, 2층은 누마루를 깐 후 4면에 난간을 세웠다. 동헌의 출입문인 내삼문은 정면 7칸 측면 1칸인데, 중앙은 솟을대문 1칸이 있어 출입구 역할을 하였고, 건물의 정면에는 옥산아문(玉山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남포현의 업무를 보던 외동헌은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앞면 중앙에 2칸의 대청이 있고 좌우는 온돌방으로 꾸몄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9
남포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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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읍성

남포읍성은 고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던 곳으로,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이다. 원래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고 서해상 교통을 관할하기 위해 쌓았다. 축성 직후인 1390년(공양왕 2)에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바깥쪽 벽은 돌을 이용하여 직각으로 쌓았고, 성벽의 안쪽은 흙으로 쌓아 올렸다. 동, 서, 남 세 곳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4m의 높이로 성 바깥에 또 하나의 성벽인 옹성을 둘렀다. 성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튀어나오게 하였으며, 그 양쪽 성벽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시설을 해두었다. 성 안에는 3채의 관아건물인 진남루와 옥산아문, 현청 보존되어 있으며, 동서에 80㎝ 높이로 배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1973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남포향교, 보령종합운동장, 옥마산, 남포면 소재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남이장군묘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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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역사관광

남이장군묘 (화성)

남이장군 묘는 화성시 비봉면에서 2.5km 떨어진 한양 조씨의 선산 내에 있으며 남이장군과 부인이 함께 있는 쌍분묘로 1973년 7월 10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이(1441∼1468)는 본관은 의령으로, 태종의 외손이며 좌의정 권람의 사위이다. 1457년(세조 3) 1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의 난(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여진의 건주위를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러 이름을 날렸고,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1468년에 28세때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를 꾀한다하여 죄명을 쓰고 능지처참형을 당하였다. 역적으로 몰린 남이장군의 후손들이 시신이 훼손되는 일이 없게 남이섬과 전국 각지에 남이장군 이름의 가묘를 만들었고, 고증을 거쳐 이 곳이 남이장군의 실제 묘소로 확인되어 이곳에서 후손들이 제사를 지낸다. 현재 묘역에는 장군과 부인이 합장되어 있고 봉분은 2기이며, 봉분 아랫부분은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씩 있다. 조선 초기의 예술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석인상은 경기 지역 능묘 문화의 특성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이로
남원몽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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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몽심재

남원 몽심재는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고택으로, 이전에 거주하던 박인기의 7대 조인 죽산 박 씨 박동식(1753~1830)이 세웠다고 한다. 조선 후기 전북 지방 상류 가정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를 잘 보전하고 있다. 산을 등지고 있는 집 앞으로는 낮은 구릉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채의 건물이 산자락의 급한 경사면을 따라 앞뒤로 자리하고 있어 높이를 달리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보이며, 그 뒤편의 바깥채와 중간문을 각기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세웠다. 안채에도 아래의 공간을 외양간으로 사용할 만큼 높은 받침부를 두었다. 평면 배치상 특이점은 안채 서측에 마루와 방을 두어 주부의 생활이 편리하도록 배려하고 대청 동측에 도장을 설치하고 건넌방을 아래쪽에 두어서 채광이 잘되도록 하였다. 또 사랑채에는 방을 일곱 개나 두어 대청보다는 실제 주거 공간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등 매우 치밀하고 깊은 배려 끝에 이 집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매우 호화롭게 지어졌는데 전면에 세워진 기둥이 모두 팔각기둥을 사용하고 있어 매우 희귀한 예이며 주초도 이러한 기둥에 걸맞도록 정성껏 다듬어진 것을 사용하였다. 아랫사람들이 거주하는 문간채 동쪽에 대청 한 칸을 둔 것은 다른 상류 가옥에서는 볼 수 없는 예로서 하층민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물들이 높이 솟아 있음에도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멋과 그윽한 정취를 자아내어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2길 19
남원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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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읍성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지역에 소경(지방도시)을 설치하였고, 691년에 쌓은 네모난 형태의 평지 읍성이다. 1597년에는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을 크게 다시 쌓고 수리하여 담을 높였다. 그해 8월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이때 싸우다 죽은 군인과 주민들의 무덤이 만인의총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많이 허물어져 약간의 성터 모습만 남아있다. 돌축대의 길이는 2.4㎞가 넘고, 높이 약 4m에 이르며 성 안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성 내에는 남북과 동서로 직선대로가 교차하고, 그 사이에도 너비가 좁은 직선도로가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의 도로구성을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 도시가 들어서며 성곽은 대부분 헐려나갔으나, 시내 중심부의 도로는 지금도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 있어, 과거 성내의 가로 구성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 읍성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크고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네모 반듯한 구성과 성내의 가로가 직선으로 구성된 점이 흥미롭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동충동
남양주 구 팔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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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역사관광

남양주 구 팔당역

팔당역은 1939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플랫폼에 노선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일자형의 장방형 역사로서 희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건축외형은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내부공간은 전면부를 대합실, 후반부를 사무실과 숙직실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내부공간은 다소 변형되었으나 주요 구조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당시의 철도역사건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로 163
남산사(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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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남산사(정읍)

정읍 신태인간 지방도로변에서 더 들어간 곳에 있는 낮은 산인 남산에 남산사가 있다. 남산에는 예부터 반야선터라 하여 알려져 있는 선의 도량으로 병자호란 이전에는 승려가 100여 명이나 기거한 큰절이었다고 한다. 이 절은 옛날에는 한적사(閑寂寺)라 했다. 지금도 절터였던 주추돌과 기와장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폐허가 된 사적지로 남아있던 사지에 1910년경 이장녀 보살이 작은 암자를 짓고 남산사(南山寺)라 이름하여 창건한 후 신도우, 정진성, 김금담 등 역대 주지가 있었고 1991년에는 현주지인 학승, 도선스님이 정진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정신로 183-64
남부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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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역사관광

남부산교회

2022년도에 개봉한 영화 에서 베이비박스가 있는 교회 장면을 촬영한 장소로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곳으로 충분히 인상적인 모습의 장소이다. 극 중 이름은 ‘부산가족교회’였다. 언덕이 많은 부산의 지형을 잘 보여주며 40년이 넘는 역사가 쌓인 외관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길 아래로 걸어 내려오면 극 중에서 등장한 벽화와 정겨운 동네의 풍경 그리고 같은 영화 촬영 장소인 전포삼거리의 버스정류장과 공중전화 부스가 보인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진남로 300 남부산교회
남산서원(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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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남산서원(김제)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소재에 위치한 남산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로 활약한 유지화(柳志和)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다. 그 후 순조 때 남궁제(南宮濟)를 배향했다. 1870년(고종 7)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 사우인 경의사, 산문인 경의문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경의사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성덕면 만경로 600-92
남선창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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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남선창고터

남선창고터는 1900년 함경도에서 배로 물건을 싣고 와서 보관하던 최초의 물류 창고로, 초기에는 북선창고라 불리었으며 경부선을 통해 서울까지 물류를 운반하기 전에 보관하는 곳이었다. 이후 경원선이 생기면서 윗지방에 북선창고가 만들어지자 이름을 남선창고로 변경하였다. 부산 최초의 근대적 물류창고인 남선창고는 1900년 초량객주 정치국이 초량동에 세웠다. 냉동고가 없던 시절에 바닥에 수로를 만들어 물기를 제거하고 서늘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옆 옛 백제병원과는 달리 2009년에 철거되어 지금은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만 남아있다. 해방 전까지는 주로 명태창고로 활용되어 일명 명태고방으로도 불렸다. 이후 부산산업경제 변화의 흐름을 타고 화공약품, 합판, 신발,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의 짐, 가전제품 등을 위탁 보관하는 일반창고의 역할을 해 왔다.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13번길 53
남악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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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남악서원

남악서원은 신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략상의 요충지를 찾아다니다가, 이곳 금산 아래서 진을 치고 휴식하던 중 비몽간에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의 위업을 가르침 받아 높은 공을 세웠다고 전한다. 1922년 지방 유림이 중건하고, 경주 서악서원의 이름을 본떠 남악서원이라고 하였다. 사당에는 김유신 장군과 최치원 선생, 설총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사당과 서원, 솟을대문이 남북 축상에 놓여 있고, 서원 좌우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재가 각각 마주 보고 있는 □자형의 좌우대칭 배치를 나타내고 있다.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오량구조 팔작지붕이다. 특이한 점은 대청이 없고, 툇마루가 확장되어 대청의 기능을 하고 있고, 사당은 서원 바로 뒤에 높게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 구조 팔작지붕이며, 전퇴칸이 없는 평면형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길 102
남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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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역사관광

남성재

남성재는 고려시대의 문신 영일 정 씨의 시조 형양공 정습명(?~1151)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로 1722년 후손들이 묘소에 묘단을 짓고 제사를 지냈으며, 1742년 현 위치에 묘단과 석상을 신축하였다. 이후 1751년에 묘단 위에 비를 세웠으며, 이듬해 1752년에 비로소 재실을 건립하였다. 창건한 재실이 오래가지 못하고 퇴락하여, 경사가 완만하고 지대가 높은 곳에 1784년에 재건하기 시작하여 1785년에 19칸 규모로 완성하였다. 그러나 규모에 비해 재목이 약하여 기둥이 기울고 도리가 처지며 서까래가 부러지는 등 많이 훼손되어 1801년에 옛 관청의 객사에 개축하기 시작하여 정당 3칸, 재실 4칸, 부곡채를 합하여 총 14칸으로 1808년에 완성하였다. 이것이 현존하는 남성재의 모체이다. 1858년부터 수년에 걸쳐 중수한 바 있으며, 현재는 대문채, 동재, 서재, 재실 등이 남아 있으며 매년 4월 영일 정씨 대종회에서 시조 형양공 단향제를 지낸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남성안길 18-16
남산골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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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남산골한옥마을

1998년 조성된 남산골한옥마을은 남산 북측 옛 수도방위사령부 부지 총 79,934m²(24,180평)에 한옥 5동, 전통공예관, 천우각, 전통정원, 서울남산국악당, 새천년타임캡슐 광장으로 구성되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를 만나볼 수 있으며, 남산 자락을 따라 전통조경 양식으로 조성된 계곡과 정자, 각종 화초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전통정원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고 400년 후 서울정도 천년을 기대하며 1994년 당대의 기억을 매설한 서울천년타입캡슐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옛 가옥을 복원해 놓은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골한옥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연못 청학지와 그 곁으로 천우각이 있다. 천우각 광장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서울 곳곳에 있던 한옥이 이전·복원되어 옛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볼 수 있게 한 예스러운 공간이 나타난다. 모두 다섯 채의 한옥으로서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관훈동 민 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 씨 가옥이 있다. 이 중 건물 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은 옥인동 윤 씨 가옥만 새 자재를 사용해 복원했고 나머지 건물은 종래의 집 부재를 그대로 이전했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즐기는 다양한 체험거리 남산골한옥마을에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한옥 다섯 채를 활용하여 한옥실내 공간을 체험하면서 동시에 한국 전통문화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한복 입기, 한지 접기, 한글 쓰기, 전통차 마시기를 체험할 수 있고, 전통예절학교와 한방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는 전통혼례가 실제로 치러지고 전통혼례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도 천우각 맞은편 원두막에서는 짚공예 시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천우각 무대에서는 태권도 시범공연과 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피금정 마당에서는 제기차기, 윷놀이, 비석치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남산골한옥마을 곳곳을 동행하며 설명해주는 전통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해 있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필동2가)
남원 만인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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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 만인의총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 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하여 적의 우근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분투 끝에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 4년)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몇 번의 이전을 거쳐 정부의 지원과 전 도민의 정성 어린 헌수로 현재의 충렬사에 5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만인의총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이곳은 문화관광해설사와 관람하며 호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고,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만인로 3 (향교동)
남양주 광릉(세조·정희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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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역사관광

남양주 광릉(세조·정희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광릉은 조선 7대 세조(재위 1455~1468)와 정희왕후 윤씨(1418~1483)의 능이다.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으로 조선왕릉 중 최초로 조성된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세조,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1468년(예종 즉위)에 세조가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본래 이 자리는 동래 정씨 정창손의 선대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광릉이 조성되면서 동래 정씨 묘역은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사대석(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에 따라 능 내부의 방을 석실 대신 회격(灰隔)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왕릉 공사에 드는 비용과 인원을 감소시켰다. 이 방법은 광릉 이후에 조성된 왕릉에 모두 적용되었다. 또, 병풍석이 생략되면서 병풍석에 새기는 십이지신상을 난간석에 새겼다. 이후 1483년(성종 14) 정희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광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이때 능의 이름을 동광릉(東光陵)으로 정하려고 하였으나 광릉과 같은 능역에 있다 하여 광릉으로 합쳤고, 정자각은 두 능 사이로 옮겨지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조선시대에는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었고, 입구에는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하마비(下馬碑)가 남아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
금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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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역사관광

금란정

동해시 삼화동에 위치한 ‘금란정’은 무릉계곡 매표소 출발점을 지나자마자 우측에서 보이는 정자이다. 둥근 화강석 초석 위에 목조 원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로,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양식의 건축물이다. 주변 산새와 함께 무릉계곡에서 흐르는 소리와 함께 정자에 여유 있게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도심에서 벗어난 자연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삼화동
남문안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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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역사관광

남문안당산

당산은 신이 있다고 믿는 민간신앙의 대상물이다. 남문 안 당산은 조선시대 읍성의 남문터로 알려진 취원문루, 일명 건선루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199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다. 성을 지키는 수호신적인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이 당산은 2개의 화강암을 다듬어 하나의 기둥처럼 아래위로 세웠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위에 놓인 돌기둥 중간에는 4마리의 거북이가 조각되어 있으며, 아래에 놓인 돌기둥 한 면에는 기둥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24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과 주민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당산제를 지냈으며, 마을 주민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줄다리기도 행하여졌다. 또한 줄다리기 때 사용된 줄은 당산석에 감는 의식인 ‘옷 입히기’ 의식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남문안길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