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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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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조령 관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문경시역사관광

문경 조령 관문

문경 조령 관문은 영남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자 군사적 요새지이다. 이곳은 고려 초부터 조령이라 불리면서 중요한 교통로로 자리 잡았다. 조선 선조 2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 오는 카토오 키요마시의 군사와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장군은 조령에서 왜군을 막지 못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왜병을 맞서 싸우다가 패하고 말았다. 그 뒤 조정에서는 이 실책을 크게 후회해 조령에 대대적으로 관문을 설치할 것을 꾸준히 논의하다가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개의 관문을 완성했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동문 혹은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한다. 조동문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후 신충원이 이곳에 성을 쌓은 후부터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다. 숙종 34년(1708)에 조령산성을 쌓을 때 매바위 북쪽에 있던 옛 성을 고쳐 쌓고, 중성을 삼아 관문을 조곡관이라 했다. 현재의 시설은 페허가 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제1관문 주흘관부터 제3관문 조령관까지 문경새재길이 조성되어 있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바로 문경 제1관문인 주흘관이다. 수천 평의 푸른 잔디밭을 배경으로 은은한 곡선미의 기와지붕과 성문이 발길을 잡는다. 주흘관에서 3㎞를 지나면 좌우의 계곡이 좁아지면서 아름다운 경치 속에 제2관문인 조곡관을 만난다. 조곡관은 천험의 요새임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 기암절벽이 조곡관을 굽어보며 우람하게 서 있다. 조곡약수터를 지나 2.3㎞를 지나면 고려말 공민왕시대의 유적지 동화원을 볼 수 있고, 다시 2.2㎞를 더 가게 되면 제3관문인 조령관이 나온다. 조령관 좌측 길가에는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길을 재촉하던 영남의 선비와 길손들의 갈증을 식혀주던 역사 속의 명약수인 새재약수터가 있으며, 이곳은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문경새재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는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로 되어 있어 그 옛날의 선비처럼 문경새재의 길을 걸어볼 수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묵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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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역사관광

묵정서원

청주 묵정서원은 조선 후기의 서원으로 1695년(숙종 21) 지방 유림의 공의로 신식(申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에 ‘쌍천서원’으로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철폐되었다가 1942년 유림과 후손이 협력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고 명칭을 ‘묵정서원’으로 개칭하였으며, 신덕린, 신포시, 신장, 신용, 신집을 추가 배향하였다. 묵정사로도 불린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와 5칸의 재실, 중앙의 신문과 양쪽 협문으로 된 정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신덕린을 주벽으로 하여 6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은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3월 16일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신식이 명신들의 찬시를 모은 찬졸재 시집 4책 등이 있다. 바로 옆으로는 조선 전기 문신인 신숙주의 영정을 모신 묵정영당(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길 71-29)이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무진암(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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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무진암(부여)

무진암의 소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리 만수리 125번지이다. 무진암은 비구니 스님의 정갈함이 묻어나는 작은 비구니 암자로, 아름다운 사찰이다. 무진암으로 오는 도중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소나무가 마치 산개와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어 눈길을 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인 무진암은 남쪽을 향해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 있으며, 야트막한 만수산의 줄기를 따라 비교적 평평하고 너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깨끗한 만수산의 자연을 닮아 사역 전체가 맑으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최근에 불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제법 규모가 큰 대웅전이나 삼성각과 함께 여러 채의 요사를 갖추고 있다. 무진암 인근의 사찰 무량사는 부여에서 가장 큰 절로 외산 만수산 기슭, 소나무가 울창하고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절은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 하며, 고려 때 크게 융성했고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조선 인조(1636~1646) 때에 재건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181-17
무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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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역사관광

무주향교

무주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지금 위치 북쪽에 처음 지었다.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심해지자 숙종 18년(1692)에 향로산 서쪽으로 옮겼으나 지대가 습하여 순조 34년(1834) 이후 지금 있는 자리로 다시 옮겼다. 현재의 향교 건물들은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한 것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향교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전통혼례복체험, 가훈쓰기, 투호, 제기차기, 윷놀이 등의 전통놀이 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단천로 135
무주 지전마을 옛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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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역사관광

무주 지전마을 옛 담장

지전이라는 이름은 이 곳이 예전부터 지초(芝草)가 많이 나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지며 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을 옆을 흐르는 남대천가의 오래된 여러 구의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가장 오래된 것은 약 320년 정도로 이러한 나무들이 제방 아래에 있다는 것은 남대천이 마을로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방을 쌓은 뒤에 현재의 위치에 식재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마을 뒤로 소백산 줄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마을 뒷산에서 발원하여 마을의 좌측을 지나는 남대천은 여름철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할 만큼 우수한 경관을 뽐내고 있다. 마을은 크게 4개의 군락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마을의 공간구조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개량 기와집 형태의 가옥이 주종을 이루는 전형적인 농가 주택의 면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담장은 본래 기능인 주택의 경계역할을 하는 담장과 외벽의 기능을 하는 담장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마을의 대부분의 담장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담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석담은 흙과 자연석을 혼용하여 평쌓기를 한 것으로 이어진 담장은 시각적 연속성을 주고 있으며 담의 지붕은 한식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로 처리되었다. 전체적으로 전통 가옥, 남대천, 노거수와 더불어 마을 전체에 식재되어 있는 감나무는 한 폭의 풍경화를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이들과 어우러진 담장 또한 산골 마을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아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길산리 48-1
무원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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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역사관광

무원서원

무원서원은 문효공 경재 하연과 정경부인 성주 이씨의 부부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서원이다. 서원은 1630년(인조 8)에 영천 유림에 의해 창건되었으나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대략 70년쯤 전에 복원하였다. 전면에 강당이 있고 뒤편에 사당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민도리 양식으로 팔작지붕 홑처마 건물이다. 가운데 2칸에 마루를 두고 양 옆에 방을 둔 일반적인 평면 형식이다. 강당과 사당은 별도의 담장을 형성하여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강당의 영역 앞에 동재와 서재를 별도의 영역을 따로 구성하여 배치하고 있다. 동·서재 앞에 외삼문이 있다. 동재와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우진각 지붕이다. 홑처마에 민도리 양식을 하고 있다. 무원서원은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사당인 숙청각과 강당, 동재, 서재, 문간채 등 5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재의 경우 관리자가 거주하기 위하여 편의상 입식 구조로 변경하였다. 무원서원은 사당과 강당 및 동·서재, 내외삼문 등 서원의 격식을 갖춘 서원이나 강당만을 따로 공간 구성한 수법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효령로 152-26
무열사(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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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무열사(나주)

조선 정조 21년(1797)에 무열공 배현경, 금헌 배정지, 정절공 배극렴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 무열사다. 배현경은 고려 태조 때 무신으로 경주 사람이다. 궁예 때부터 활약했던 인물이며,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했고, 이에 일등공신에 올랐다. 태조를 도와 후삼국 통일에 많은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려진다. 그의 시호가 무열이다. 배정지는 고려시대의 무신으로 10세에 금위에 들어가 도지가 되었다. 그는 원나라에 들어가 원제로부터 용사라는 칭찬을 받고 백금을 하사 받기도 하였다. 배극렴은 고려말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고려 우왕 2년(1376)에는 진주에 침략한 왜구를 크게 격파하였으며 1378년 욕지도에서 왜구를 대파하였다. 무열사는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가 헐렸으나 뒷날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시면 무숙로 637-31
무주 적상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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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역사관광

무주 적상산성

무주 적상산성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고려 후기 축조된 방어 성곽이다. 무주 적상산성은 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지대에 축성되어 한때 방치되기도 하였으나, 고려 시대에는 국란이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의 피난처가 되었다. 조선 광해군 2년(1610년) 이곳에 조선시대 다섯 개의 사고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이에 실록전, 사각,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호국사를 세웠고 임진왜란 이후 진을 두어 적상산성을 수축하고 운영했다. 순종 3년(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사고가 폐지되고 그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방치되었으나, 현재는 성벽은 거의 무너져 안국사 아래의 숲 속 등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무안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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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향교

무안향교는 1394년 무안읍성의 남쪽에 있는 공수산(현재의 남산)에 세웠으나,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서 성종 1년(1470)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임진왜란(1592) 때 파손된 것을 숙종 15년(1689)에 고쳤으며, 그 뒤 정조 13년(1789), 순조 20년(1820), 고종 29년(1892), 광무 6년(1902) 등 여러 차례 고쳐지었다. 무안향교에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에 점차적으로 지어진 것이며,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과 중국 4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인되어 있고, 봄과 가을에 석전제를 지내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무안읍 향교길 20
무안식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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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식영정

식영정은 한호 임연 선생이 1630년에 무안에 터를 잡은 이후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그의 호인 한호처럼 한가로움을 좋아한다는 취지로 그림자가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식영정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영산강과 그 주변의 경관이 어우러져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으며, 임연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인 노촌 임상덕이 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 임씨의 대를 이은 교류 공간이었다. 무안 이거와 경관, 정자 건립 등에 관해서는 1643년에 임연이 지은 복거록에 잘 나타나 있고 교류한 문인도 많다. 정자의 입지나 주변의 경관도 뛰어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무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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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역사관광

무암사

제천 성내리 마을에서 동쪽으로 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왼쪽에 까치성산이, 오른쪽에 동산이 길게 능선을 드리우고 있는데 그 깊은 품 안에 무암사가 있다. 신라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조선 초기 이전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현재 법당인 극락전은 영조 16년(1740)에 중수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곳의 목조여래좌상은 극락전을 건립할 때 함께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무암사에는 목조여래좌상 이외에도 청동보살머리, 전패 등의 유물이 전한다. 절에서 서남쪽 위치에 바위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늙은 스님을 닮았다 하여 노장암이라 불리며 이 바위는 안개가 끼었을 때만 나타났다고 하여 이 절의 이름을 바위와 안개에서 따 무암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 객실, 수호실 등이 있으며, 극락전에는 목조아미타불좌상과 후불탱화, 지장탱화가 보존되어 있다. 부도 4기와 불기류, 촉대와 위패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4기의 부도 중 수월당 부도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1959년에 발견되었다. 특히 우부도는 창건 당시 목재와 기와 등을 운반하던 소가 죽자 사리를 모아 세운 사리탑으로 이 주변을 소부도골이라 한다. 대웅전 전면의 기둥은 수령 1,200년을 넘는 싸리나무의 기둥이라 하여 보존 가치가 높다. 절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불기는 100년 이상 된 유기제품이며, 촉대와 위패는 정교한 솜씨로 조각하여 만든 특색 있는 유품이다. 사찰의 유물들로 보아 상당한 역사를 지녔을 것으로 생각되나 사적기가 없어 자세한 것을 알 수 없다.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청풍호로39길 285
무안발산마을미륵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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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발산마을미륵당산

무안 지방에서는 대개 당산나무, 선돌, 당집 등을 대상으로 당산제를 지내는데, 발산 마을에서는 장승의 모습을 하는 당산석 2구를 제사의 주체로 삼고 있다. 이 2구의 석인상은 당산 할아버지와 할머니, 미륵, 당산, 당산 미륵 등으로 불리는데, 150m 거리를 두고 서 있다. 당산 할아버지는 턱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두툼한 긴 수염이 나 있고, 머리에는 벙거지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풍화 작용이 심하고 거친 입자의 돌 때문에 세부적인 조각 수법은 알아볼 수가 없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어 불상과 비슷한 면이 보인다. 신체는 더욱 간결한 선으로만 옷 주름을 표현해 사실성이 떨어진다. 당산 할머니가 초기의 입석 형태를 띠고 있지만, 당산 할아버지는 조각을 지닌 상징물의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발산마을의 당산석은 입면을 형상화한 신앙 물이란 점과 형태상 성기 바위를 모사하고 있다. 이는 당산석이 상징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데, 일반적인 당산석의 경우 마을 제사에서 주신의 기능을 갖는 신체는 원래 상태의 암석과 당산나무, 당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해제면 광산리
무안 유교리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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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 유교리 고택

남해안 지역의 부농 주택으로 나상열 가옥으로 불리기도 하는 무안 유교리 고택은 1912년 당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방의 천석꾼이었던 나종만에 의해 건립되었다. 양옥의 건축기법으로 건립되었고, 20세기 들어와서야 남도 지방에서 채택한 구조법을 사용하였다. 중층으로 되어있는 대문채는 여느 집보다 천정이 훨씬 높은데, 대문이 크고 높은 것은 당시 그 집안의 재력과 세력을 과시함도 있는듯하다. 대문간에 들어서면 자연석으로 포장된 경사로가 나타나며, 그 끝부분에는 행랑채가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행랑채에 난 중간문을 통과하면 좌측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으며, 그 중앙 아래쪽으로는 곡간채가 큰 규모로 건축되어 있다. 안채는 지형의 경사를 이용해 2단으로 석축을 한 후에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안채와 곡간채, 그리고 행랑채, 대문간 등 4채 만이 남아 있으나, 그 이전에는 당시 주택 건축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동재와 서재가 안채 뒤 후원에 독립적으로 건축되어 있었으며 사당과 사랑채 등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삼향읍 유교리
무상사(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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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계룡시역사관광

무상사(계룡)

무상사는 계룡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아담한 사찰이다. 외국인 스님들이 머무르며 한국불교를 수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3개월 간의 집중 선 수행 안거를 실시한다. 여름에 열리는 수행을 하안거 겨울에 열리는 수행을 동안거라고 하며 그 외 해제 기간에는 다양한 사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이 되기 위한 교육, 주말 안거, 특별행사,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일반인을 위한 법회, 젠 카페, 경전반도 주최하고 있으며 모든 프로그램은 영어와 한국어로 운영된다. 주변에 향적산 치유의 숲이 있으며 산림욕을 즐기고 나서 사찰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충청남도 계룡시 엄사면 향적산길 129
무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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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역사관광

무산사

칠서면 무릉리에 있는 무산사는 조선시대의 유명한 유학자인 주세붕(1495~1544) 선생의 영정과 유품을 모신 곳이다. 선생은 중종 38년(1543)에 백운동 서원을 세워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숙종 24년(1698)에 선생의 후손이 세웠다. 고종(1863~1907)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유림들이 다시 세웠으나 6·25전쟁으로 불탔다. 현재의 무산서당은 그 후에 세운 것이다. 무산사 내에 있는 무산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의 1층 건물이며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 2칸의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각각 2칸과 1칸의 방을 꾸며 전형적인 서당의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광풍각에는 주세붕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장판각에는 , , 책판 352매가 보관되어 있으며 1976년 4월 15일 유형문화재 제143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무릉길 75
무령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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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영광군역사관광

무령서원

무령서원은 영조 24년(1748년) 본향유림의 발론으로 고려조의 명신 문안공 김심언 등 영광김씨 선조 8위를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숭의문, 무령서원, 태충문, 기천사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영광읍 동부면 기천에 사우를 창건하고 ‘기천사’라 하여 제향해 오다가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1898년 유허비를 세우고, 광무 7년(1903년) 단을 만들어 봉향하다가 순종 후 1933년 사림의 재론으로 현 소재지에 이건하여 ‘무령서원’이라 개액하였다. 그 후 다시 본서원은 정부당국의 보조로 광복 후 1975년 개수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훼철된 뒤 세운 유허비의 비문이 당대 학자 송사 기우만의 문집에서 확인되며, 중수 시의 상량문이 전해지고 있는 등 기천사와 무령서원의 역사성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향촌사회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영광읍 와룡로2길 16
무량사(부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무량사(부여)

충남 부여군 외산면에 자리한 천년고찰 ‘무량사’는 만수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신라 문무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국내 제일의 아미타 기도 도량으로 사천왕문을 지나면 정면에 보물로 지정된 무량사 극락전이 보인다. 사천왕문은 무량사의 멋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위치로, 층 구분이 없는 2층 극락전과 오 층 석탑(보물), 석등(보물)이 일렬로 늘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극락전 소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도 위용을 자랑한다. 무량사는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입적한 곳이다. 경내에 그의 부도와 초상화가 있다. 행정구역 상 부여군에 속하지만 보령 시내에서 더 가깝다.

충청남도 부여군 무량로 203
묘심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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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묘심사(부산)

묘심사는 1888년 지금의 서구 토성동에서 대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임제종 포교당으로 기능했다. 일본인이 사찰을 운영하다가 해방 후에 기독교인에게 팔리기도 했는데, 당시 몇몇 신도가 성보들을 현재의 사찰 자리로 옮겼고 1960년대 무렵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 그리고 범종과 종각 등을 가지고 와서 묘심사로 다시 창건했다. 묘심사는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변에 위치하는 도심 속 사찰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삼성각, 종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식 팔작지붕이다. 대웅전에는 금동 석가여래 좌상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좌우 협시하고 있다. 또 1946년 제작한 지장시왕도와 신중도가 있다. 대웅전 옆으로 유리 보호각을 둘러 씌운 지장보살 입상이 동자를 안고 서 있다. 그 뒤편 계단 위로 삼성각이 자리한다. 삼성각 내에 칠성도, 산신도와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30㎝의 돌좌상이 있다. 지장보살 입상 옆으로 ‘ㄱ자’의 현대식 요사채가 있다.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671
묘장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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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영광군역사관광

묘장영당

영광 묘장영당은 1616(광해군 8)년에 조선조 개국공신인 이천우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이천우는 전라도의 왜구토벌에 공을 세웠고 그 후손이 담양에서 영광으로 이거 하면서 향내 유림들과 함께 영당을 건립한 것이다. 조선후기 훼철 이후 강당은 서당으로 기능했으며, 1928년에 발의하여 1934년에 신실을 중건하였다. 건물 배치에 있어 중심축을 설정해 짜임새 있는 건축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물의 구조도 무리 없이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건 이후의 보존관리 및 상태도 양호하며, 관련 자료도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묘량면 동삼로1길 21
묘각사(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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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역사관광

묘각사(영천)

묘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기록은 없다. 용왕과 관련한 사찰이라 이곳에서 용왕제(龍王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자주 지냈다고 한다. 절의 부근은 예로부터 불교 신앙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절의 뒷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현산이며, 기룡산 아래에는 용화·삼매·정각 등 불국 정토를 나타내는 마을 이름들이 많다. 창건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에게 법을 듣기 위하여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절이 들어선 산 이름을 기룡산(騎龍山)이라 했다고 한다. 의상이 법성게(法性偈)를 설하자 용왕이 문득 깨닫고 승천하였는데, 이때 용왕이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뿌려 주어 당시 극심했던 가뭄을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했다. 이에 의상이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며, 1644년(인조 22) 설선당(說禪堂)을 지어 중창하였다. 1657년에 요사를 중창하였는데 지금은 설법전이다. 1760년(영조 36)에 삼성(三性)이 중창하였고, 1889년에 법당을 중수하였다. 1994년에 진광(眞光)이 산신각을 지었다. 1999년 아미타삼성전을 복원하였다.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화길 499
몽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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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역사관광

몽고정

고려 말 충렬왕 7년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동행성을 두었으나 일본 정벌이 2차에 걸쳐 실패로 돌아간 그해 10월, 환주산(현, 자산동 무학초등학교 뒤쪽 마산시립박물관 일대)에 둔진을 설치하였다. 몽고정은 이곳의 둔진군이 용수를 쓰기 위해 만들었던 우물로 추정되고 있다. [몽고정 맷돌]이라고 불리는 지름 1.4m가량의 원방형의 돌이 몽고정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차륜이라는 설도 있으나, 맷돌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물 곁의 석비에 몽고정이라 써서 세워둔 것은 1932년 마산 고적 보존회(일본인 고적 단체)가 멸시적 감정에서 명명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고려정이라 불렸을 것이다. 몽고정은 지금은 나무 덮개가 덮여 있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인근 주민들이 사용하는 공동 생활용수이자, 물맛이 좋아 간장 공장에서도 사용되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목천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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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목천향교

목천향교는 조선 전기에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운 교육기관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이후에 다시 세운 후 여러 차례 걸쳐 수리하였으며, 목천현지에 참봉 한혁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제사 지내는 공간인 3칸의 대성전과 각각 3칸의 동무·서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5칸의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각각 3칸인 동재·서재, 2칸 내삼문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교촌6길 5
묘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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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묘골마을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 박 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은, 세조 2년인 1456년 사육신들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멸문의 화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박팽년이 혈통을 보전하게 된 이유는 당시,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이 씨 부인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뱃속에 든 아이까지도 아들일 경우 죽이라고 명하였고, 이 씨 부인은 친정인 묘골에 내려와 살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들이었다. 혈손을 보전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데리고 있던 노비가 딸을 낳자 서로 바꾸어 그 이름을 박 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으로 ‘박비’라고 짓고. 아들을 노비로 둔갑시켜 혈통을 보전한 것이다. 박비가 장성한 후인 조선 성종 때, 아버지와 동서지간이던 이극균이 경상 감사로 내려와 자수를 권유하자 임금을 찾아가 박팽년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였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름도 박일산으로 고쳐 주었다. 이리하여 은둔의 세월은 막을 내리고 묘골이 충절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한옥들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에는 묘골 박 씨들의 전통을 자랑하는 육신사와 달성 태고정, 도곡재, 달성 삼가헌 등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39-4
목멱산 봉수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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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목멱산 봉수대 터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 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 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평상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경계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을 올리도록 하였다. 남산 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도달하게 되는 중앙 봉수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5개소가 있었다 하는데, 현재 봉수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 자리를 확인할 수는 없는데, 「청구도」등의 관련자료를 종합하여 1개소를 복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목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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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목계서원

목계서원은 조선 숙종 때 사림이 김담(金湛)과 이조(李晁)를 두능서원(杜陵書院)에서 봉 향하다가 서원이 훼철되자 1778년(정조 2)에 유림들이 목계서원을 지어 다시 봉향 하였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된 것을 1883년(고종 20)에 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3년에 완전히 복원되었다. 이 서원을 ‘목계정사(牧溪精舍)’로도 부르는 것은 훼철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현재 편액은 목계정사(牧溪精舍)이고 건물 한 채인 재실만 있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석대로525번길 40-13
모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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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역사관광

모충사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공원 안에 있는 모충사는 1977년 1월 11일 내외도민 17만 명이 성금을 모아서 세운 사당으로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열사들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모충사라 이름 지었다. 모충사에는 높은 탑이 3개가 세워져 있다. 모충사 입구 정면에 있는 의병항쟁기념탑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순국지사조봉호기념비, 오른쪽에는 김만덕할망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이 탑들을 돌아볼 수 있는 숲길이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다. 마을 주민과 관광객이 제주의 역사를 돌아보며 쉬어갈 수 있는 산책코스로 추천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모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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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모은암

모은암의 전설은 지리산 하동 화개의 칠불암 전설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곳이다. 김해시 상동면과 생림면의 경계에 위치한 무척산은 수로왕과 가락국 불교 이야기, 기묘한 바위, 산정호수인 천지(天池)가 있어 더욱 신비스러운 산이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동면의 기암절벽 아래에 백운암이 있으며 반대쪽인 서면에 모은암이 자리하고 있다. 무척산은 김해에서 밀량 삼량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데, 생림면 생철리 산불감시초소 옆 간이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석굴암을 거쳐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30분 남짓 오르면 도로가 끝나는 지점 바로 위 모은암이 나온다. 가야 불교를 일으킨 가야국은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세운 고대국가이다. 김수로왕은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온 허황옥과 결혼, 열 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 일곱왕자가 성불, 지리산의 칠불사를 창건하게 됐다. 지리산의 칠불사가 왕족의 해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김해 무척산의 모은암은 왕가의 번성을 상징하는 자연 남근석이 암자 바로 옆에 우뚝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모은암 경내 동굴에도 남근을 상징하는 닝가가 모셔져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마사로 36-228
모덕사(벽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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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모덕사(벽제서원)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421년(세종 3)에는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가 벽골제를 없애고 그것을 토지로 돌려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박초에 의해 무산되었다. 벽골제 사적비문 역시 박초가 지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강당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입석동
모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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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청양군역사관광

모덕사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모덕사 현판의 글자는 고종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 라는 구절에서 모(慕)자와 덕(德)자를 취한 것이다. 최익현 선생은 이항노의 제자로 문학과 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1855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사헌부 장령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고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조약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 끝내 순국하였다. 후에 그를 추모하는 사림들이 태인, 포천, 곡성 등 여러 지역에 그의 사당을 세웠다. 이곳 모덕사는 선생이 살았던 고택과 장서각,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함께 들어서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
명주사부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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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명주사부도군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명주사에 마련된 이 부도밭에는 모두 12기의 부도가 자리하고 있으며, 4개의 비석도 함께 남아있다. 12기의 부도 중에서 7기는 3단을 이루는 기단 위로 탑몸돌 및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사각의 바닥돌과 둥근 탑몸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나머지 5기는 받침돌 위로 종 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큼지막한 머리장식을 두었다. 4기의 비는 낮은 사각 받침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갖춘 구조이다. 원래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모두 모아 보존하고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길 93-229
명종대왕태실및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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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역사관광

명종대왕태실및비

태봉골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명종대왕태실및비는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태를 봉안한 곳이다. 명종대왕태실 앞에는 기념비 3기가 있다. 명종대왕태실과 오른쪽에 위치한 비는 1538년(중종 33)에 건립되었고, 왼쪽에 있는 비는 1546년(명종 1), 가운데에 있는 비는 1711년(숙종 31)에 세웠다. 오른쪽의 비는 태실을 만들면서 함께 세운 것이고, 왼쪽의 비는 왕자의 태실비로 용을 새긴 머릿돌을 올렸고, 가운데의 비는 주상의 비로 거북받침 위에 비몸을 올리고 용이 새겨진 머릿돌 얹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명주사(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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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명주사(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만월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고려 목종 12년(1009), 혜명대사와 대주대사가 오대산 동쪽에 있는 만월산에 터를 잡고 창건한 절이다. 두 대사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명주사’라 이름 지었다. 창건 당시에 비로자나불을 모셨다는 점에서 화엄종 계통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화재로 인해 절의 당우를 여러 번 중건하였고, 1910년대에는 건물이 총 15동에 이르는 대가람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방치되었고 오늘의 모습은 1979년에 중수한 것이다. 지금의 명주사는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가 남아 있는 아담한 규모의 절이다. 문화재로는 양양명주사동종(강원도 유형문화유산)과 양양명주사부도군(강원도 문화유산자료)이 있다. 높이 83㎝의 동종은 조선 숙종 30년(1704)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범종의 모습을 띤다. 절 입구의 부도군은 사찰의 기나긴 역사를 보여준다. 부도밭에는 12기의 부도와 함께 4기의 비석이 남아 있는데,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한데 모아 보존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길 93-229
명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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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역사관광

명월대

명월대는 조선 말기 지방 유학자들과 시인들이 어울려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1981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대는 마을을 끼고 있는 천변 중앙의 자연암벽 위에 8각형의 석축을 3단으로 쌓고 그 위에 원형의 반석을 만들었으며, 최근에 와서 콘크리트 처리를 하였다. 그 옆에는 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앞면에 '명월대'라고 음각되어 있다. 또 명월대 주변에 1910년 경에 만들어진 돌다리가 있는데, 이는 제주도에서는 흔치 않은 석교이다. 명월대가 있는 천변은 상류에서 하류에 이르기까지 수백 그루의 팽나무 60여 본과 푸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자연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간간이 흐르는 물소리가 정결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명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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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관악구역사관광

명락사

서울 관악구 청룡동에 있는 명락사는 관악산 줄기의 끝자락 도심 상업지역에 있다. 40여 년 넘게 서울 서남권의 포교 활동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포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찰이다. 청년회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토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정기 법회를 갖는다. 2호선 봉천역과 서울대입구역 중간지점에 있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청룡1길 11
명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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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명곡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명곡서원은 해주 최 씨 문중을 중심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당초 장흥에 있었으나 1984년 군동 신기마을로 옮겨왔다. 성재 최충, 송탄 최유선, 동산 최자, 강호 최만리, 호은 최우 등 5위의 성현이 모셔져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며 신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명곡사란 액자가 걸려있다. 부속건물로 내삼문, 문간채, 고직사 등이 있다. 신기마을은 주변에 해주 최 씨 후손들이 학습하던 강당이 보존되어 있고 해주 최씨의 세거 마을이다. 인근에 동양 최대 아미타불 불상을 볼 수는 남미륵사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신기길 63
명봉사(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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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명봉사(예천)

명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두운이 소백산 자락에 창건하였다. 1662년(현종 3) 화재로 전소된 뒤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1668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신익 등이 중창의 뜻을 세우고 10여 년 동안 시주를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6·25전쟁 때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55년 주지 만준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에는 1735년(영조 11)에 세워진 문종대왕태실비(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와 941년(태조 241)에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보물)가 있다. 사찰 뒤 산에는 문종대왕 태실과 세도세자(장조) 태실이 복원되어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명봉사길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