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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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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초기화
독상리석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화순군역사관광

독상리석등

독상리 석등은 고려 시대 시중을 지낸 문헌공 오대승이 하늘에 제사하기 위해 제작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리 오대승이 관도 남쪽에 석등 48개를 만들어 밤마다 불을 켜 놓고 하늘에 절하였더니, 그 내외의 자손들이 모두 출세하고 계속하여 상부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상리 석등은 높이 40㎝, 길이 164㎝, 너비 105㎝의 암반에 구멍을 파서 만든 것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비각의 홍살문 안에 있다. 구멍은 약간 손질을 가한 자연 암반 위에 지름 5~14㎝, 깊이 2.5~8㎝ 정도 되는 크기로 48개(실제로는 54개)이며, 이 구멍에 기름을 붓고 심지에 불을 켰던 것으로 보인다. 구멍 수인 48개 즉, 48등은 불교에서 말하는 48원을 의미한 것이다. 48원은 불교의 아미타불의 최고의 이상인 극락정토이다. 즉, 생로병사가 없는 안락한 정토(부처가 사는 세계)라는 뜻이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독상리 석등은 고려 시대 민간신앙이 불교와 합치되어 나타난 현상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동복면
독무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수성구역사관광

독무재

독무재는 벼슬도 마다하고 향리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하시찬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과 유림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하시찬은 1750년 지금의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서 태어나 당대의 석학이던 김경호, 송성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지금의 독무재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독무암루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고, 팔례절요 2권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원래 동구 효목동 경북주유소 부근 경부선 철로 변에 있었으나 대구시 3차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1968년 4월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이건 시 독무재 서남쪽에 별도의 담장을 두고 사당인 경덕사와 팔례절요와 열암문집 판각이 보관된 장판각을 새로 지었다. 주변으로 동촌파크광장놀이공원과 국리대구기상과학관, 아양아트센터, 망우단공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 하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
독용산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독용산성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인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있다. 산성의 둘레는 7.7㎞(높이 2.5m, 폭 1.5m)에 이르며 산성 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 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이다.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500년전 성산가야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원년(1675년) 관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여,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있었으며,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발굴된 군기고에서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성주군에서는 1997년부터 성곽을 복원할 계획을 세워 훼손된 성곽의 일부와 아치만이 남아 있던 동문을 보수하여 원형으로 복원하였으며 성내에 관아터와 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독용산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이원정이 1677년에 편찬한 경산지를 통해 나타난다. 그 책에 따르면 합천과 거창의 군사가 배치되었고 성안에는 3개의 계곡, 객사, 군기고 등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정중휘가 개축할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강산면 사더래길 144
도장사(해남)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도장사(해남)

수백 년이 된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한 도장사(道場寺)는 해남 황산면 내산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km 거리에 있는 보타산(寶陀山) 중턱에 있는 절이다. 고려 명종(1170년)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고도 있으나, 여러 기록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절이 자리한 곳은 지금은 영산강 하구언 간척지 공사로 바다가 막혀 버렸지만 본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대웅전은 기둥이나 서까래의 크기로 보아 규모가 컸던 절임을 알 수 있으며, 절의 스님에 의하면 1938년 무렵 무너져 내린 것을 대웅전 기둥의 목재를 그대로 이용하여 작은 규모로 줄여서 지었다고 한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황산면 내산길 143
도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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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도천서원

도천서원은 문익점(1329∼1398)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나라에서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익점 선생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다 문신으로 우리나라에 목화를 처음 들여온 것으로 유명하다. 서원은 조선 세조 7년(1461)에 세웠으며, 조선 정조 11년(1787)에 ‘도천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았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75년에 사당인 삼우사를 짓고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서원 내의 신안사재는 조선 명종 6년(1551)에 지은 것이며, 현재 건물은 조선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서원의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공간인 강당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앞쪽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삼우사가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되어있다. 또한 출입구인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으며, 제사 때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신안사재가 있다. 신안사재는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지붕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의 양쪽 끝 한 칸씩 넓은 마루를 두었다.

⌖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문익점로 34-32
도정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도정서원

도정서원은 1640년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1526~1605)과 그의 셋째 아들 정윤목(1571~1629)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 ‘향현사’로부터 비롯되었다. 1697년(숙종 23)에 지역 사림과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강당채를 건립하여 도정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분이 훼철되었으나, 1997년 동재, 서재, 전사청, 누각을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서원 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지붕의 건물로 전면에 난간을 둘러 누각 형식으로 지었다. 서원 앞에 있는 읍호정은 1601(선조 34)년에 건립한 정자로 가파른 경사면을 깎아 내성천 바로 앞에 세워져 있다. 현재 이곳은 약포선생 종중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강변로 417
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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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역사관광

독립문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독립문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세운 기념물이다. 갑오개혁은 내정개혁과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던 개혁운동이다. 그러나 외국세력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하였고 나라의 자주독립 또한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었다. 화강석을 쌓아 만든 이 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의 앞뒤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그 양옆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바로 인근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있어 독립문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을 되새겨 보는 역사 여행을 할 수 있다.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도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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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도연서원

고성군의 도연서원은 허기, 허천수, 허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조선 숙종 13년(1687)에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1920년에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강당, 사당인 추원사, 돈화실, 명성실, 내삼문, 외삼문인 일원문이 있다. 강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강당 뒤쪽 높은 곳에 있는 추원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돈화실과 명성실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정문인 일원문은 앞면 3칸 솟을대문으로 가운데 1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그 윗부분에 난간을 설치한 누대를 둔 것이 특이하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도전4길 152-41
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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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역사관광

도암서원

도암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송천리 서변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도암사라고도 불린다. 도암서원은 순조 15년(1815)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경광(李絅光)·이성구(李聖求)·유심춘(柳尋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3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와 4칸의 강당이 있으며, 사우에는 이경광·이성구·유심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강당의 중앙에는 마루가 있고 양쪽에는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3월 5일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장수군 문화관광)

⌖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서변길 49-27
도솔암(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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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도솔암(고창)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신라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산의 한 굴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바위가 쪼개지며 그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출현하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중애사, 선운사, 도솔사 등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미륵삼존의 출현이나 도솔이라는 이름 등은 도솔암을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창건된 사찰임을 추측하게 한다. 특히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는 데서도 도솔암과 미륵신앙의 깊은 연관성을 말해준다. 현재 도솔암의 전각은 대웅전, 나한전, 도솔천내원궁,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도솔길 294 도솔암
도솔암(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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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북구역사관광

도솔암(울산)

도솔암은 울산 무룡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지리산 대화엄사의 말사이다. 아주 옛날 무룡산 정상에 있는 연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고 이곳에서 용들이 비를 뿌리며 춤을 추고 놀았다고 하여 무룡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김복선, 김수화 자매가 출가하여 아일다와 성련이라는 법명으로 활동하면서 민가를 매입하여 절로 바꾸면서 도솔암을 창건하였다. 사찰에는 대웅전, 무량수각, 삼성각 등의 전각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조선 말기까지 스님들 사이에 비밀리에 전해지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삼층석탑이 있다. 도솔암은 울산 북부지역의 포교도량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 울산광역시 북구 화동15길 77 (화봉동)
도솔암(해남)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도솔암(해남)

도솔암은 달마산 12암자중 유일하게 복원된 암자로, 가장 정상부인 도솔봉에 위치해 있다. 석축을 쌓아 올려 평평하게 만든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견고한 요새와도 같으며, 주변 풍광이 워낙 수려해 일출과 일몰, 서남해의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고, 마치 구름 속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달마산의 새로운 선경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통일신라 말 당대의 고승 화엄조사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의 기도 도량이라고 알려져 있다.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께서도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도솔암에서 수행정진하셨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암자이다. 그 후에도 여러 스님들께서도 기도 정진하였던 도솔암은 정유재란당시 불에 타 흔적만 남이 있던 곳을 2002년 6월 8일 오대산 월정사에 계셨던 현 주지 법조스님이 32일 만에 단청까지 복원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암릉으로 둘러싸인 도솔암은 4월에는 진달래, 5월에는 철쭉, 6월에는 원추리,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멋있어 많은 관광객이나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이다. 그리고 풍광이 뛰어나 각종 드라마 및 CF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송지면 마봉송종길 355-300
도안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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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도안서원

조선시대 학자 김우태와 김시태를 배향하기 위해 1783년(정조 7년) 공성면 도곡리에 도안서당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인근 산현리로 옮겨 세우며 도안사로 바꾸었고, 1870년(고종 7년)에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00여 년간 복원되지 못하다가 후손 김규호 씨의 의해 1999년에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이듬해인 2000년에 청도 김 씨 집성촌인 화동면 판곡리 원통산 아래에 자리를 잡아 강당과 묘우를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묘우와 강당은 일자형으로 좌묘우학 형태이며, 강당 앞에는 서원중건비가 있다.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37
도성암(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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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도성암(창녕)

도성암은 화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의 고승 지월선사가 현덕왕 2년(810)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그 후의 연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어 터만 남아 있다가, 화왕산 자하골의 한 암자가 풍수지리가 나쁜 곳에 자리한 탓에 산 아래 주민들에게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여 이를 막기 위해 재건립되었다 한다. 종각을 겸하고 있는 보제루 누각 아래의 계단을 지나면 경내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오른쪽에 칠성각으로 쓰였던 요사채, 그 옆 축대 위에 삼성각이 있다. 도성암은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어 창녕의 주산이자 절경으로 잘 알려진 화왕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어 현묘한 자성을 찾는 염불기도 영험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웅전에 있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자하곡길 147
도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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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역사관광

도성사

경기도 포천시 운악산 줄기에 자리 잡고 있는 도성사는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 도량이다. 영가의 극락왕생도와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납골당을 운영하는 불교 사찰로 기존 불교 종단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납골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사찰의 운영과 살림은 재단법인 도천불교문화재단이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다. 용문 관광단지와 연계하여 트레킹을 함께 할 수 있는 관광 명소이다.

⌖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동로 548-47
도산서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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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서구역사관광

도산서원(대전)

도산서원(대전)은 조선 후기 인물 만회 권득기와 그의 아들 탄옹 권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득기는 예조좌랑을 지낸 뒤 도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권시도 학문이 뛰어나 여러 버슬을 지낸 후 낙향하여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이 서원은 1693년(숙종 19)에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 1711년(숙종 37)에 나라에서 내린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당 3칸, 묘문 3칸, 강당 4칸, 서재 3칸, 남재 4칸, 전사청 3칸 등 모두 23칸 규모를 가진 서원이었다고 하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그 뒤 1921년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으며, 1968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안동 권씨 문중에서 복원하였다. 그리하여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안내원이 상주하며 관광객을 맞고 있으며 전통 민화를 체험하는 도산의 화공, 유생교육을 체험하는 유생의 하루, 예술 공연을 진행하는 도산 와유회, 도산서원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는 도슨트 심화교육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다.

⌖ 대전광역시 서구 남선로 8
도선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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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역사관광

도선사(서울)

우이동 서쪽에서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를 향하여 계곡을 따라 약 1㎞쯤 올라가면 일주석에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 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고 쓰여진 산문(山門)을 맞게 된다. 사적기에 의하면 도선사는 862년(경문왕 2)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도선국사는 이곳의 산세가 1,000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고 예견하고 절을 창건한 뒤 큰 암석을 주장자로 갈라 마애관음보살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후기까지의 중건·중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북한산성을 쌓을 때는 승병들이 이 절에서 방번(보초 임무)을 서기도 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863년(철종 14) 김좌근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을 신축하였고, 1887년(고종 24)에는 임준이 오층탑을 건립하였으며, 탑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호국참회원, 명부전, 삼성각, 적묵당, 천왕문, 범종각, 종무소,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의 내부 벽에는 달마(達磨)와 혜능(慧能), 청담(靑潭)의 영정이 그려져 있으며, 후불탱화, 팔상도(八相圖), 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 등이 있다. 현재 도선사에는 마애불입상(제34호), 목조 아미타불 및 대세지보살상(제191호), 석조독성상(제192호), 청동종 및 일괄유물(제259호) 등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을 비롯해 19세 말 조성된 지장시왕도, 괘불도, 묘법연화경, 대방광불화엄경소 등의 성보문화재가 다수 있다.

⌖ 서울특별시 강북구 도선사길 278 (우이동)
도마령(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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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역사관광

도마령(전망대)

도마령은 영동군 황간에서 전북 무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영동 최고봉 민주지산(해발 1,241m) 자락에 있는 해발 800m의 높은 고갯길로 칼을 든 장수가 말을 타고 이곳을 넘었다고 해서 도마령이라 이름 지었고, 답마령이라는 옛 이름도 전해진다. 도마령에 가면 고갯마루 위에 정자 상용정이 있다. 2002년과 2003년 태풍으로 영동군 곳곳이 재해를 입었는데 이때 복구 사업을 하면서 상용정을 세웠다. 상용정은 한국 전통 목조 구조로 시공하여 그 웅장함을 더하였다. 목재는 우리나라 소나무를 사용하였으며 화강암 암장 초석에는 우리나라 대표적 국악기인 대금을 형상화하였는데 국악의 고장 영동의 명소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전통 양식의 멋스러운 이 팔각정의 풍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하고 고개를 오르내리는 도마령 길은 구절양장 춤을 추며 상촌으로 용화로 뻗어 가는데 그 풍경이 조화롭다. 또한 구불구불 굽이진 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 최근 명성을 얻고 있다. 영화 의 촬영지로 시골 풍경과 정겨운 인심이 가득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곳이다. 비포장도로를 포장해서 2차선 도로가 되었고 구불거리는 도로 주변으로 민주지산의 수려한 풍광이 펼쳐져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민주지산의 숲길에서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도림사(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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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도림사(대구)

도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로서 대구지역의 포교를 목적으로 세워진 대표적인 사찰이다. 이 사찰은 대구의 팔공산 동남쪽 감투봉 아래 위치하고 있으며, 편에는 갓바위 약사여래부처님과 동화사, 파계사 등이 줄지어 서있는 팔공산맥을 마주하고 있다. 1997년 2월 3일 대구시 동구 진인동 팔공산 감투봉 아래 선종가람 서광사로 대한불교조계종에 등록하였으며, 2004년 12월 15일 창건주인 도림 법전스님의 호를 사명으로 개칭하여 도림사로 불리게 되었다. 도림사에서는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의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 대구광역시 동구 인산로 242 (진인동)
도봉서원(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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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역사관광

도봉서원(창원)

도봉서원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명윤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13년(숙종 39)에 사당을 짓고 1775년(영조 51) 도봉사를 건립하였으며 1844년(헌종 10) 도봉서원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고 1887년(고종 24)에 다시 별묘와 재실을 중건하여 1974년에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별묘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장도(쌍검) 등 동산공 김명윤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도봉서원 내에는 충현사·신문·강당·동재·외문 등이 있고 충현사에는 김명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으며 강당은 여러 행사와 화합에 사용된다. 향사는 매년 3월 13일 한 차례만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길16번길 5-11
도산서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도산서당

도산서원의 초창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7세기 경 진사 오도환이 자신의 자제와 인근 아이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예조참판을 역임한 오도환의 사위 정택신이 물려받아 집과 함께 관리하였으나 1862년에 만수 김영철이 매수하였다. 김영철이 옛 서당을 헐고 새 건물을 짓기를 원하자 김영철의 장손인 회천 김재종이 작은아버지 김순묵의 조언을 받아 1907년에 새롭게 강당을 건립하였고, 김영철의 호를 따 ‘만수당’이라 편액 하였다. 도산리에 자리 잡고 있어 도산서당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일명 섬뜸서당이라 불렸으며, 일찍부터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도산서당의 동쪽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회천정사가 배치되어 있고, 뒤쪽에는 연지를 파고 후원을 꾸몄으며, 연지 옆에는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다.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지만, 건물 왼쪽 쪽마루에 훼손이 있고, 기단부가 밀려나고 있다. 만수당의 편액은 전라감사 김성근의 필체이다.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1길 4
도덕암(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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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역사관광

도덕암(칠곡)

도덕암은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에 있는 조계종 사찰이다. 435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다. 968년에 혜거국사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여 칠성암이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후 1632년 나한전을 건립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54년에 몽계당 선의대사가 도덕암이라 개칭하였다. 경내에는 극락전, 대웅전, 산신각, 종각, 요사채, 염화실 등이 있다. 또한 소장 중인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칠곡도덕암몽계당선의대사진영’과 조선 후기의 나한상(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인 나한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고려 광종이 혜거국사를 왕사로 모셔가기 위해 도덕암에 3일 동안 머무르며 마신 약수로 인해 속병이 모두 나았다는 일화를 간직한 ‘어정수’가 경내에 전해오고 있다.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 260
도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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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도래마을

도래전통한옥마을은 풍산홍씨 집성촌으로 남평 땅은 풍산홍씨 땅을 밟지 않고는 못 지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자 마을이라고 한다. 홍씨 집성촌은 15세기 경에 형성된 500년이 넘는 마을로 가족단위의 관광객을 위한 체류형 전통문화 체험마을이다. 마을 입구의 ‘도래마을’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시작으로 마을의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 3채와 더불어 마을 연못과 정자, 골목길의 담장들을 가볍게 둘러볼만하다. 주차장 바로 옆의 조선시대 학당으로 이용되었다는 영호정과 남도에서도 매우 큰 규모의 양벽정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도래마을의 또 다른 대표 가옥인 서기당 홍기창 가옥, 홍기헌 가옥이 위치해 있다. 마을이 전반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고 도래마을 옛집, 계은정, 괘고정, 모남정 등 유서깊은 한옥과 정자가 남아있어 양반 동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서기당은 한옥 스테이로 운영하다 보니 투숙객이 아니면 안마당 풍경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이곳에서 1㎞옆에 나주산림자원연구소가 위치해 있어 같이 방문하는 것도 좋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도면 동력길 16
도동서원(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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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도동서원(고창)

도동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에 위치해 있다. 도동서원은 도동사라고도 불리며, 고창군의 향토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동서원은 1928년에 지역의 유림들이 나라에 충성을 하고 절의를 도모하고자 방호정사 안쪽에 지은 사당이다. 방호정사는 한말의 수남 고석진(1856~1924)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도동서원(도동사)에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순절한 의병 대장 면암 최익현(1833~1906)과 수남 고석진(1856~1924), 송천 고예진, 송제 고용진 등이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최익현을 따라 항일 의병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919년에 한국의 독립 청원서를 파리 강화 회의에 보냈으며, 이로 말미암아 일제의 탄압을 받은 분들이다.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1길 64
도림사(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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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광산구역사관광

도림사(광주)

도림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도림마을 입구에 있으며 노사 기정진(1798~1879), 난와 오계수(1843~1915), 후석 오준선(1851~1931)을 모신 사우이다. 기정진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병인소를 올려 외적을 방비하는 대책을 건의하였고, 위정척사사상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오계수는 기정진의 제자로 을미사변 후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가마마을 뒤쪽 산에 있는 영사재에서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오준선도 기정진의 제자로, 한일병합 이후 용진산에 들어가 용진정사를 세우고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34년 나주오씨 문중과 오계수, 오준선의 후학들이 오계수, 오준선과 기정진을 기리기 위하여 도림사를 세웠다. 도림마을은 오계수와 오준선이 태어난 곳이며, 나주오씨 문중의 집성촌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도림하길 33
도계역 급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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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역사관광

도계역 급수탑

삼척시 도계역 급수탑은 도계역 내에 있는 옛 증기기관차 급수시설이다. 1940년 설치된 급수탑으로 원주역 급수탑과 함께 당시의 전형적인 급수탑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물탱크 용량은 26t, 바닥 면적은 16㎡, 하부 둘레는 14.2m이다. 높이는 8m로 다른 급수탑에 비해 낮은 편인데 이는 철로 면보다 4m 높은 곳에 설치하여 적정 수압을 얻어낼 수 있도록 높이를 조절한 것으로 지형을 고려하여 급수탑의 높이를 조절한 독특한 사례이다. 도계역 급수탑은 물탱크를 받치고 있는 하부와 물탱크 시설인 상부로 나뉜다. 하부는 급배수를 하기 위한 기계실로 바닥은 원형이고 기계실 내부 천정은 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하부의 기계실 출입구는 아치형 문틀로 이루어져 있다. 상부는 물탱크 시설로 돔 형식으로 4개의 반원형 도머 창문을 설치하여 환기구로 이용하고 있다. 2003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등록되었다. (출처 : 삼척문화관광 홈페이지)

⌖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전두남1길 33-20
도남서원(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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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역사관광

도남서원(창원)

창원시 동급 화양리에 위치한 도남서원은 김귀의 유덕을 기리는 김해김씨 문중서원이다. 현대에 세워진 문중서원으로서 향사나 강학보다 후손의 돈목을 더 큰 목적으로 삼으면서 그 구심점을 선조에게서 찾았다. 도남서원은 문중의 주장에 따르면 사우의 창건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래전에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사원 복원은 1976년 강당과 함께 건립·복원되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서원의 강학 기능이 중단된 현대에 건립된 것으로 전통적인 서원 건물의 배치와 구조는 따르지 않았다. 정문인 불사문은 1칸 규모의 솟을대문 형식이며, 일반 가옥의 대문과 같다. 강당은 정면 4칸에 유리문을 덧댄 현대식 건물이다. 사당의 정문인 유정문 역시 일반 가옥 출입문과 유사하다. 구봉사는 정면 3칸으로 이루어졌다. 제사는 후손들에 의해 받들어지며, 향사일은 3월 7일이다.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동읍로401번길 68
도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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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도곡서원

도곡서원은 1701년(숙종 27) 함양 지역 유림이 함양 출신 선현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조승숙, 정복주, 노숙동, 노우명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였다. 그 뒤 노사예와 정수민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된 뒤, 2001년에 다시 복원하였을 때는 조선 후기 학자 정덕하를 추가 배향하였다. 도곡서원의 강당인 수성당(정면 4칸의 팔작지붕), 사우인 경덕사, 양재에 해당하는 존양재와 진수재가 갖추어져 있다. 도곡서원은 구천서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함양의 유력 문중의 인물들을 배향함으로써 문중 간의 연합을 도모한 서원이라는 특징이 있다.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병곡지곡로 859
도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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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도곡재

도곡재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달성군 하빈면에 위치하였다. 조선 정조 2년(1778)에 대사성인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세운 건물이나, 정조 24년(1800) 경에 도곡 박종우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면서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이며, 후대에 퇴칸을 달고 대청을 넓혀 누(樓)처럼 꾸몄다. 도곡재는 태백산지역 살림집의 일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박한 건물이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2
도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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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도남서원

도남서원은 1606년(선조 39)에 창건하여 1676년(숙종 2)에 사액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동·서재를 세운 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다. 1871년(고종 8)에 철거하였으나 1992년 향토 유림에서 강당 등 일부를 재건립하여 복원하였고 2002년부터 유교 문화 관광개발 사업으로 정허루, 장판각, 전사청, 영귀문, 고직사, 일관당, 입덕문 등을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을 갗추었다. 도남이란 북송의 정자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 때 ‘우리의 도(道)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 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의 유학 전통은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세워진 서원이다. 수백년 간 이어오면서 정봉주, 김광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 이준 등 아홉 선생을 모시고 있으며 향사는 매년 음력 2월 8월에 행한다. 향사가 있을 때 외에는 닫혀 있어 경천섬 관광안내소에 문의하거나 영귀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2길 91 (도남동)
도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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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봉화군역사관광

도계서원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서원인 도계서원은 1610년(광해군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던 충절 이수형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이후 이유, 이보흠, 이여빈 등 충절의 본보기가 되었던 인물들을 추가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경내에는 묘우인 견일사, 강당인 공극루, 동재, 주소 등이 있었으나,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으며, 강당인 10칸의 공극루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도계서원 옆에는 존재하는 공북헌은 도촌 이수형(1435~1527)이 조선 단종 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뺴앗자 관직을 관두고 고향에 칩거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툇마루를 벽으로 길게 막아 문을 열면 오직 북쪽만을 내다볼 수 있도록 지어졌으며, 이는 단종의 능이 있는 영월에 북쪽 방향이기 때문으로 단종에 대한 충정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사제길 12
덕천서원(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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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덕천서원(성주)

덕천서원은 1794년 김관석, 김천택, 김주, 김즙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서원으로 의성 김씨 집성촌인 윤동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의성 김씨 4인에 대한 배향 및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으나 이후 복원을 시작해 2019년에 완성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신문 ,중정당, 양진헌, 험효료, 전사청, 고사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도강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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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도강영당

부여동헌 옆에 있는 홍가신·허목·채제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이 건물은 원래 조선말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던 것을 1971년 신축하여 이들을 모신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영당은 앞면 1칸을 개방하여 참배 공간을 마련하고 뒤쪽은 통 칸으로 3인의 영정을 모셨다. 홍가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 22년 문과에 급제하여 강화부사, 형조참판, 강화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선조 37년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 이듬해 영원군에 봉해졌다. 후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허목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고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그림, 글씨, 문장에도 능하였으며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채제공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35년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영조의 세자 폐위 문제를 죽음을 무릅쓰고 막았는데 이에 따라 영조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병조, 예조, 호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 좌의정으로 행정의 최고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수원성 건설에도 참여하였으며 경종 내 실록, 영종 실록, 국조보감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동강영당 주변으로 부여동헌을 비롯하여 부여관북리유적, 부여객사, 사비도성가상체험관이 있어 연계 방문하기 좋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덕천서원(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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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역사관광

덕천서원(청주)

1672년 (현종 13년)에 병조참의(戶曹參議)를 지낸 몽암(夢菴) 유희령(柳希齡, 1480~1552), 숙옹(塾翁) 유흥룡(柳興龍, 1577~1656), 묵재(黙齋) 우신언(禹愼言, 1482~1547), 유항(柳巷) 정응창(鄭應昌, 1547~1622)의 위폐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진주유씨(晉州柳氏) 집안의 사당이다. 1699년(숙종 25년)부터 향사하다가 1868년(고종 5년)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되었다. 지금의 사당은 1971년에 중건하고 1987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을 좌우에 쪽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덕천서원(德川書院)’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마당 앞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자연석과 흙으로 담장을 쌓았으며 오른쪽에는 덕천사비(德川祠碑)와 왼쪽에는 거북 대좌 위에 덕천서원묘정비(德川書院廟庭碑)라고 쓰여 있는 비신(碑身)이 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청주시 문화관광)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노동리
도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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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도계서원

이희맹·김제민·최안·김지수를 비롯하여 김제안·김흔·김섬·김습 등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이희맹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김종직의 제자로 성균관 재학시절부터 문장과 인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성종 23년(1492)에 장원 급제하여 등용되었으며 이후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다. 김제민(1527∼1599)은 이항의 제자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이 서원은 현종 14년(1673)에 이희맹, 김제민과 더불어 조선 중기 의병장 최안과 조선 중기 문신 김지수를 모시기 위해 세웠다. 그 뒤 숙종 23년(1697)에 김제안을, 헌종 6년(1840)에 김흔을 더하여 모셨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62년에 고쳐 지었는데, 이때 김섬과 김습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현재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사우, 강당인 서당, 동재와 서재, 신문, 고사,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서는 해마다 9월에 제사를 지낸다. (출처: 국가유산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도계1길 34-13
덕진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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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역사관광

덕진산성

파주시 군내면에 위치한 덕진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덕진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성은 최고봉인 해발 85m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 능선을 따라 돌며 표주박 형태로 구축되어 있다. 외성에는 두 개의 문지가 완연하게 남아 있고, 성 위에 담을 낮게 쌓았던 부분이 두 군데 있다. 비교적 낮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임진강의 북쪽 해안이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넓은 땅이 내려다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내성은 성벽의 견고성을 높이기 위해 보축과 함께 계단식 석축공사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외성은 토축성으로 성벽은 거친 흙다짐을 하면서 흙을 쌓아 성을 축조하였고, 그 외부에 목책 같은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성과 달리 외성은 광해군 때 전쟁위기가 고조되면서 매우 급하게 조성되었기 때문에 성벽이 치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덕진산성은 인근의 임진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호로고루나 당포성, 은대리성 등과 함께 임진강 북안에 설치된 중요한 삼국시대 성곽이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아 외성을 확장·수축하여 사용했던 특수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어 학술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큰 성이다.

⌖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