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취향으로 찾기

오늘 갈 곳을 찾아보세요

지역과 관심 분야를 선택해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보세요.

역사관광

발견한 장소

691건

조건 초기화
노성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노성향교

노성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된 향교이다. 그 후 1967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삼문, 대성전이 등이 현존하며, 대성전에는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봄 ·가을에 석전제를 거행한다. 노성향교는 앞에는 네모난 형태의 조그마한 연못이 있으며 외삼문 앞의 배롱나무꽃이 아름답다. 바로 옆에는 한옥 체험이 가능한 조선 후기의 전통 한옥인 명재고택이 있고 마을 안에는 사찰 궐리사가 있으며 인근에는 노성산성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4
내원사(서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성북구역사관광

내원사(서울)

내원사는 삼각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정릉 골짜기를 지나 1㎞ 정도 오르면 멀리 목멱산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터전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내원사의 존재를 밝혀주는 것은 현재로서는 김정호가 제작한 「수선전도(首善全圖)」와 1859년(철종 10) 만들어져 사찰에 전하는「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라는 목판이 유일하다. 수선전도에는 현재 내원사가 자리한 곳과 같은 위치에 내원암이 표시되어 있고, 「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목판에는 삼각산내원암(三角山內院庵)이라는 기록이 있어 19세기 전반만 해도 법등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을 알려준다. 그러던 내원사가 언제 어떠한 이유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오늘도 무상함 속에 범종루 아래 길게 이어진 이끼 낀 석축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나고, 바위틈에서 솟는 감로수는 사찰의 흥망성쇠를 잊은 듯 말없이 흐르고 있다. 출처 : 내원사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국문로 262-151 내원사
남해 금산 봉수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금산 봉수대

봉수(俸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俸]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고려 중기(12,3세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이후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 중에서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한 번 올리지만 [一炬 또는 一煙],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 번,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번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곳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毅宗, 1147~1170 재위)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烽燧路) 가운데서 동래(東萊)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 봉수로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이다. 이곳에서 점화된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四川), 진주(晉州)등을 거쳐 서울에 전달되었다. * 금산봉수대는 해발 681m인 금산에 자리 잡고 있고 둘레는 26m의 네모난 형태이며, 높이는 4.5m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91
남원사(익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남원사(익산)

우리나라 사찰은 대체로 산속에 위치해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남원사는 보기 드문 평지 사찰이다. 벼 이삭이 익어가는 8월이 어느 날. 장마 뒤끝에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시샘하듯 들녘을 가득 메운 벼들은 빗물에 씻긴 채 물기를 머금고 초록빛이 더욱 짙어져 간다. 시원하게 뚫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울창한 나무와 숲을 가로질러 난 고불고불한 산길을 지나 노인분들께 물어물어 남원사를 찾아간다. 그러다 더 이상 물어볼 사람이 없어 두리번거릴 때 파란 들판 한가운데 그림같이 서 있는 사찰이 나타난다. 바로 남원사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남원사는 논두렁 사이에 파랗게 익어가는 벼 이삭 사이로 서 있는 아담한 사찰이다. 그곳에서는 장맛비를 맞아 환하게 피어 올라온 분홍빛 연꽃이 우선 맞이해 준다. 일주문을 거쳐 경내로 들어서면 유난히 아름다운 화단이 또 지친 나그네를 맞아준다. 낮은 꽃밭에는 정겨운 우리 꽃들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아마도 이곳에 도착하게 되면 계절 따라 철철이 피는 또 다른 꽃을 만나게 되고, 그 꽃을 보면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미륵전을 들어가면 이곳 소박한 시골의 사찰을 닮은 순박한 모습의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서촌1길 34-3
남원 실상사 석장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 실상사 석장승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한다. 남원 실상사 석장승은 실상사를 지키는 돌장승으로, 원래는 냇가에 모두 4개가 있었다. 그러나 1936년 홍수 때 1개가 쓸려 내려가 현재는 3개만 남았다. 남아있는 3개의 장승은 각각 ‘대장군’, ‘옹호금사축귀장군’, ‘상원주장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세 장승 모두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이며,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시기인 1725년(조선 영조 1)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주변에는 실상사 외에 지리산산내들펜션 야영장, 지리산국립공원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남원 흥부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 흥부마을

남원시 아영면 성리 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이곳은 전해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 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 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풂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 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지금은 길 양쪽으로 감자 농사가 한창인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준 발복 집터이다.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짓재 고갯마루에 높다랗게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의 산자락과 이웃 논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금 모퉁이’는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금을 주워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편, ‘흰죽배미’란 장소는 흥부가 부농이 된 후 은인들에게 보답으로 주었다는 논으로 전해진다. 흥부 아내가 이웃들이 흰죽을 먹고 살아나서 ‘흰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디막거리’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로 추정된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있지만 개울가에는 억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형제간의 우애, 부(富)와 빈(貧), 성공한 이후에도 어려웠을 시절 함께 했던 이웃을 잊지 않은 겸손과 나눔의 정신을 되돌아봄직하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아영면 흥부로 275
남원 신계리 마애여래좌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 신계리 마애여래좌상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은 풍악산 동쪽 중턱에 우뚝 솟은 바위의 남면에 새겨진 불상으로 자연 암석의 한 면을 다듬어 거기에 부처의 앉은 모습을 돋을새김 한 마애불이다. 고려 초 도선스님이 하룻밤 만에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줄에 꿴 구슬로 둥글게 감싸 몸 둘레에 서린 빛을 표현한 것은 희귀한 예이다. 왼쪽 어깨에 걸친 옷은 단순한 선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이목구비를 비교적 생동감 있게 조각하였다. 넓은 어깨, 불룩한 가슴, 통통한 팔, 다리에도 입체감이 실려 있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코와 양 귓불 일부분이 부서져 없어졌으나,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배경을 알 수 없다.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은 상호의 표정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으나 경직된 분위기와 법의 주름에 보이는 선각 기법 등을 통하여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남궁찬묘석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남궁찬묘석상

남궁찬묘석상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남궁찬묘 앞에 자리하고 있는 2기의 석상이다. 석상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오른쪽 석상의 높이는 260㎝, 왼쪽 석상은 250㎝이다. 각진 큰 머리에 구슬 모양 장식을 붙인 모자를 쓰고 있으며 툭 튀어나온 눈과 두툼한 코와 내밀고 있는 턱이 특징이다. 옷은 도포를 걸친 모습으로 선을 가늘게 조각하였으며 양손은 소맷자락 속에 넣고 있다. 석상의 제작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석상이 남궁찬의 묘석으로 있기 때문에 남궁찬의 묘를 조성할 때 같이 제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석상의 얼굴 등이 이국적인 점에 주목하여 중국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 전기 묘소에 조성된 석상은 현존하는 것이 거의 없다. 남궁찬묘석상은 안면이나 의습 등이 잘 드러나 있어 조선 전기 조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성당면 목사동길 48
남계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역사관광

남계정

남계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 김진이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운 누각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건물은 선조 13년(1580)에 신축해 두 차례 중건되었다. 정자는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마루와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목조 건물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공포는 주심포 양식이다. 구성은 대청마루와 방으로 나뉘어 마루에는 ㄱ자형으로 정면과 측면에 걸쳐 퇴를 두었다. 지면에서 약간 올려 깐 마루에는 전면으로 일반 가옥처럼 출입문을 내고 측면에 한 쌍의 두 짝 여닫이 덧문을 달았다. 귀포의 장식이 화려하며 용마루도 높아, 작지만 품위를 느낄 수 있다. 남계정 안에는 의병장 고경명, 조헌, 부제학 심음시 등 당시의 유림이 남계의 학문과 덕망을 찬양한 현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남계정의 밑에 있는 절벽 아래 바위에는 한문으로 남계정이란 암각서가 새겨져 있다. 남계정은 산 끝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 누각에 오르면 두현리와 멀리 모악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시원한 조망을 안겨준다. 주변으로 구이저수지와 전북도립미술관, 모악산관광단지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원두현길 12-12
나주 순교성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나주 순교성지

나주 순교성지는 기해박해(1839) 때 나주에서 순교한 이춘화(1807~1839베드로)와 병인박해(1866~1871)때인 1872년에 순교한 강영원(바오로,1822~1872), 유치성(안드레아, 1825~1872), 유문보(바오로, 1822~1871)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순교자 기념 경당이 자리한 곳이다. 경당 입구에는 60톤의 거석과 관 모양의 제대가 있고 경당 내부는 사방이 막혀있고 위쪽만 뚫려 있다. 성당 내에는 초대 나주 본당 신부인 하롤드(헨리, 1909~1976) 대주교가 초대 주임 시절에 쓰던 타자기를 비롯해 기도서, 십자가, 성합, 제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교육, 의료 등 자선을 통해 복음화에 앞장 선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이었던 한옥 기와집이 복원되어 당시 수녀들의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근에 그들이 순교한 장소인 무학당 순교터 (현 나주초등학교 정원 내)가 있고 무학당 주춧돌로 추정되는 10여 개의 돌이 130여 년 동안 현장에 보전되어 오다가 2001년 나주 성당으로 옮겨 그 위에 무학당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건립되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박정길 3 (산정동)
나바위 성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나바위 성당

나바위 성당은 조선 헌종 11년(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장약슬, 요셉) 신부가 중심으로 1906년 건물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나바위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1916~1917년까지 흙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였다. 한국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다.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 볼거리로는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들 수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두 번째 볼거리로는 망금정을 들 수 있다. 망금정이란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서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하고 있는 데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벽면에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나주 금성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나주 금성관

이 건물은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매월 1일과 15일에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초창은 성종 6~10년(1475~1479) 사이에 나주목사로 재직한 이 유인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 팔각지붕의 320.66m²(97평) 건물로 전국의 객사 건물 중 그 규모가 가장 웅장하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 건물로 사용해 오면서 원형이 파괴되어 1976년에서 1977년 사이 완전해체 복원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금성관길 8
금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하동군역사관광

금정사

금정사는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 하동분원의 사찰이다. 1948년에 정우경이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15번지에 설립하였으며, 당시에는 금강사(金剛寺)라고 하였다. 6·25 전쟁을 겪고 난 뒤에 정우경이 이 사찰을 떠나자 여러 승려들이 주석하였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주지 없이 20년을 지냈다. 1970년에 김문수가 주지로 부임하여 현재 위치인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35번지로 이전하면서 금강사(金剛寺)를 금정사(金政寺)로 개칭하였다. 그때에 대웅전, 종각, 요사채를 건축하였다. 1999년 혜철(慧哲)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금정사(金政寺)를 금정사(金頂寺)로 개칭하고, 삼성각, 충혼전, 안심요 3층, 진신사리석탑과 화장실 등의 건물을 신축하였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 법회를 열고 있다. 1954년 금정사의 발원으로 6·25 전쟁 때 조국 수호를 위하여 전사한 하동군 출신의 군인 및 청년 기동 대원 334명의 얼을 추모하고 이들의 값진 희생을 민족 유산으로 보존하고자 영령탑을 건립했는데, 그 호국 영령들을 기리는 사업도 하고 있다. 관련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하동 금정사 산신탱(河東金頂寺山神幀)」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하동 금정사 칠성탱(河東金頂寺七星幀)」, 국가보훈처 현충 시설인 금정사 영령탑이 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금정길 113-1
군지촌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곡성군역사관광

군지촌정사

인근의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서 힘껏 가르치거라 하는 중종의 하명을 받아 심광형은 일종의 영재학교를 세운다. 동악산을 등지고 섬진강과 마주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인 군촌마을에 함허정과 군지촌정사(제호정 고택)를 세웠다. 1535년에 지어진 군지촌정사는 조선 후기의 건물로 사랑채의 이름으로, 지금 남아 있는 사랑채와 고택 제월당은 180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서, 군지촌정사의 원형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당시에는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과 기숙사를 갖춘 건물들이 있었을 것이고 각지에서 찾아오는 선비들이 머물 수 있는 사랑채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군지촌정사가 세워진 후 세연정이라는 정자가 들어서고, 세월이 흘러 현재는 함허정이라 불린다. 함허정은 이 지역 유림들과 풍류와 독서, 사색, 학문을 교류하던 공간으로 군촌마을 섬진강가에 지은 정자이다. 군지촌정사와 함허정 앞으로 섬진강의 물줄기와 제월습지를 조망할 수 있다. 군지촌정사(제호정 고택)에서 차량으로 7분, 4㎞ 거리에 국립곡성치유의 숲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입면 청계동로 908-4
기천서원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여주시역사관광

기천서원지

기천서원은 조선전기의 문신 김안국(1478-154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서원으로, 문화재자료 제75호로 지정된 여주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사립학교이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본래 1580년(선조 13) 김안국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마암에 마암서원으로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608년(선조 41) 현재 위치로 이전해 복원하였다. 이후 조선 중종대부터 효종대까지 이름난 현인인 이언적·홍인우·이원익·정엽·이식·홍명구·홍명하까지 총 8명을 함께 배향하였다. 1625년(인조 3)에 기천서원으로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1937년 유림들이 사당으로 고쳐 모현사라 불렀고, 1979년 사당을 새로 지어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다시 기천서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강당 없이 사당, 동재, 서재, 삼문 등이 있고 서원 옆에 모현사가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분향하는 제사의 기능만이 남아있으며, 현재 상시 개방되고 있지 않다. 인근에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 영녕릉(세종대왕•효종대왕릉), 황포돛배, 파사성, 이포캠핑장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만하다.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뒷머리길 11
김남주 생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김남주 생가

김남주는 한국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나간 ‘전사(戰士)시인’이며,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문단을 일깨운 ‘민족시인’이다. 또한 청춘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선 혁명 시인이었다. 1945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봉학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삼화초등학교, 해남중을 거쳐 광주일고에 입학하였으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대, 자퇴하였고 이후 검정고시로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대학 재학중 ‘3선개헌반대투쟁’에 참여하는 등 반독재 학생운동에 투신한 그는 1972년과 이듬해에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과 ‘고발’을 제작. 배포하여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1974년 ‘창작과비평’에 ‘진혼가’등으로 문단에 나온 이후 작가 황석영 등과 함께 ‘민중문화 연구소’ 등을 결성하기도 했다.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투쟁 지하조직 ‘남민전’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동지들과 함께 체포. 구속되었으며,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 등지에서 복역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도합 10년 세월을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그가 남긴 470 여 편의 시 가운데 300 여 편이 옥중에서 쓴 시이며, 그의 옥중시는 80년대 한국시의 한 절정을 이루었다. 1988년 1월 가석방 되어 출소한 그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민예총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단재상. 윤상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작고 이후에 민족예술상이 수여되었다. 옥중투쟁에서 얻은 지병(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1994년 2월 13일 불과 마흔아홉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했다. 시집으로는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 ‘사상의 거처’, ‘이 좋은 세상에’,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봉학길 98
금강사(강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금강사(강진)

금강사는 이순신 장군을 추향하고, 강진 출신 증병조판서 김억추 장군을 배향한 사우다. 사우 뒤편으로는 송림이 우거져 있는 등 비교적 경관이 양호하다. 1800년(정조 24년) 도내 유림들의 발의로 강진현 금강촌에 금강사를 창건하고 임진왜란 때 공이 많은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현무공 김억추(1548∼1618) 장군을 향사하였다. 이 사우에 이순신 장군을 주정으로 모시고 김억추를 배정한 것은 김억추가 임진왜란 때 전라우수영사가 되어 이순신을 도와 명량대첩을 성공하는 등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당과 강당 그리고 재명당, 동재, 내삼문, 외삼문 등으로 구성된 금강사는 사당과 강당이 약 45m의 거리를 두고 동서 쪽에 별도로 위치하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며, 이밖에 도유실, 고직사, 내삼문 등의 건물이 있다. 그리고 내삼문 앞 마당에는 좌측 충무공 이순신과 우측 현무공 김억추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이순신 동상 앞에는 사적비가 있고 그 옆 원사 건립에 관한 내력비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효자길 38-24
귀래정(순창)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귀래정(순창)

귀래정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에 있는 정자이다. 귀래정이란 이름은 신말주의 호를 딴 것이다. 현재 정자에는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문 등이 편액에 새겨져 있다. 귀래정은 1457년(세조 2년)에 신말주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의 건물은 1974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주변 관광지로 강천산군립공원,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 설씨부인신경준선생유지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김정회고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김정회고가

조선 개국공신 김사형의 후손으로 학자이며 예술가인 보정 김정회(1903∼1970)의 생가로 김정회의 고조 때부터 살던 곳이다. 고가가 위치한 도산마을은 안동김씨와 청도김씨의 세거지로서, 다른 곳에 비해 고가가 많이 남아 있는데, 김정회고가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가이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랑채, 사당, 곳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 6칸·옆면 3칸의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후대에 양쪽에 각각 1칸씩 덧붙였다. 안마당보다 높이 자리 잡고 있는 안채의 양식은 다른 집에 비하여 특이하다. 안채의 앞쪽에 위치한 사랑채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안채와 사랑채에 비해 훨씬 뒤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행랑채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이다. 안채의 양쪽으로 곳간채가 1동씩 있으며, 뒤로는 사당이 있다. 조선 후기에 지은 전형적인 상류계층의 가옥으로 현재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외부관람은 가능하며 내부관람 여부는 사전에 방문 가능 여부를 문의해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1길 16
금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금왕사

경남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에 위치한 금왕사는 기암절벽 가까이 이런 사찰을 지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또한, 일 년 내내 끊일 줄 모르고 나온다는 천년의 약수도 있다. 천년의 약수 위로 오르면 돌로 만들어진 동자승이 누워 있고, 금왕사 미륵전에서 참배가 가능하다.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보리암로 65-23
김시민장군 충민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김시민장군 충민사

김시민장군 충민사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충무공 김시민과 문숙공 김제갑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이다. 김시민(1554~1592)의 자는 면오, 본관은 안동으로 선조 11년(1578)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진주판관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진주목사로 사천, 고성, 진해에서 적을 격파하고 영남우도병마절도사에 올랐다. 그 후 진주성 싸움에서 3,800여 명의 군사와 백성으로 2만여 명의 일본군을 물리쳤다. 전투 후 숨어 있던 적군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김시민은 선조 37년(1604) 선무공신 2등에 추록되고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제갑은 자는 순초, 호는 의재, 본관은 안동으로 명종 8년(1553)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14년(1581) 충청도관찰사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원주로 쳐들어오자,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영원산성에 들어가 항쟁하였으나 성이 함락됐고 그의 부인 이 씨, 아들 김시백과 함께 순절하였다. 김시민은 진주 충렬사에 제향 되었으나 고종 3년(1866) 훼철되어 김제갑의 충열사에 합사 하였는데 1976년 묘소를 이곳으로 옮기고 충민사를 세웠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6
김해 봉황동 유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김해 봉황동 유적

봉황동 유적은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조개무덤으로, 1907년 우리나라 최초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던 회현리 패총과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를 합쳐 2001년 2월 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회현리 패총에서는 김해식 토기와 각종 철기, 골각기 등과 함께 중국의 화천이라는 동전이 출토되어 당시의 교역 상황을 나타내 주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불에 탄 쌀이 출토되어 쌀농사의 기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봉황대는 조선시대 김해 부사를 지낸 정현석이 언덕의 모양이 봉황의 날개를 편 모습과 같다 하여 대를 쌓고 봉황대라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 구릉 위에는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전설에 관련된 여의각, 황세바위 등이 남아있으며, 봉황대 서쪽에는 가야시대 토성과 대규모 창고형 건물터가 발견되었고, 가야시대 고상가옥, 주거지 등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봉황동 유적지의 주요 시설물에는 금관가야 기마무사상, 고상가옥(창고), 가야의 배, 망루, 황세바위, 여의각, 가야주거군, 패총 전시관 등 유적지가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63번길 50
귀신사(김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귀신사(김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귀신사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0가 중창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구순사로 불렸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부분적인 중수와 대대적인 중창을 거쳐 1934년에는 대적광전 등을 중수한 뒤 다시 귀신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귀신사는 원래 금산사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큰 절로 고려 말에는 쳐들어온 왜구들 300여 명이 주둔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쇠퇴하여 작고 소담한 사찰로 남았다. 귀신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대적광전과 삼층석탑과 부도, 석수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의 미를 나타내는 빼어난 작품이다. 부도는 청도원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는데 전성기에는 이 부도가 있는 곳까지가 절의 경내였음을 알 수 있다. 귀신산 석수는 독특한 양식으로 앉아 있는 석수의 등 위 중간에 남근 같은 석주가 당당하게 꽂혀 있다. 불교사상과 남근숭배사상이 어우러진 특이한 형태의 석조물로, 터를 누르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과, 백제왕실이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
금강사(강릉)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역사관광

금강사(강릉)

금강사는 소금강 무릉계곡에 정각 스님이 1964년 창건한 절로서 기암괴석이 아름답고, 시냇물이 맑은 주변의 경관으로 인해 이 일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절이다. 특히 금강사의 맞은편에는 천여 명의 군사가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는 전설이 깃든 식당암이 있고, 봉우리 3개가 기이하게 솟아있는 삼선봉을 만나볼 수 있어 소금강 탐방로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머무는 곳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소금강 주차장에서 금강사, 구룡폭포, 만물상, 노인봉, 진고개에 이르는 등산코스가 유명하며, 사찰 주변에는 월정사, 상원사, 연곡해수욕장, 주문진 해수욕장, 경포도립공원 등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 소금강길 670
권율장군묘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양주시역사관광

권율장군묘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만취당 권율(1537~1599) 장군의 묘소이다. 선조 15년(1582)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55세 때에는 의주목사로 부임하여 북방 여진족을 방어하였다. 묘역에는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부인 창녕조씨와 후부인 죽산박씨가 안장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동자석 1쌍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이 있다. 권율 장군 묘 뒤쪽 언덕에는 형 권순과 아버지인 권철의 묘가 차례로 모셔져 있다. 묘역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 비문이 마모되어 1861년(철종 12)에 장군의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으로 장군의 일대기와 함께 자손들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묘 아래에 있는 재실은 묘를 관리하고 제사 준비를 하는 곳으로 개방되어 있지 않다. 송추IC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소요된다. 인근에 장흥관광지(청암민속박물관, 가나아트센터, 두리랜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장흥자생수목원 등), 송추유원지, 일영유원지, 북한산국립공원,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 필룩스조명박물관, 회암사지 등이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23
구암사(진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진도군역사관광

구암사(진도)

구암사는 고려시대에 번창하여 여귀산 자락에 여러 암자가 있었는데, 이는 중방골이나 불당골 등 불교와 관련 있는 여러 암자로부터 유래된 산의 명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찰에 있는 오층석탑은 백제 후기나 고려 초기에 지어진 탑으로 보고 있으며, 해체 보수 때 사리를 넣었던 흠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대웅전의 실내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선조의 얼이 담긴 문화 유적지가 폐허인 채 내버려져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뜻있는 주민들이 구암사 복원불사 후원회를 조직하여 1988년에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1991년 복원불사를 착수하여 현재에도 불사에 계속 임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임회면 상만길 58
구암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구암정

구암정은 순창 구미마을과 내월교 사이 섬진강 및 국도 21호선, 섬진강자전거길가에 세워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돈암 혹은 배암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서 있다. 이 바위는 인근 남원 출신의 조선 전기 학자 구암 양배(?~1500)가 그의 동생 양돈과 함께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양배는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그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양대 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조정을 등지고 동생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와 자연 속에 묻혀 세상을 잊고 살았다. 그 후 1901년에 양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 정자를 세운 것이 바로 지금의 구암정이다. 1990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인근에 위치한 구미마을은 남원 양씨의 집성촌으로 남원 양씨 종가 등이 있다. 그 외에는 주변에 용궐산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구미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역사관광

구미정

강원도 정선 봉산리에 있는 구미정은 조선 숙종 때 공조 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선생이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에 내려와 은거 생활 중 지은 정자이다.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의 넓은 암석 위에 세워진 정자로, 이 정자를 중심으로 주위에 아홉 가지 뛰어난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었다. 구미정은 조선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명승지로, 현재는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자 주변으로는 소나무 숲과 야영장이 있어 여름에 피서지로도 인기가 많다. 구미정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관은 다음과 같다. 1) 어량 : 개울에서 물고기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비상할 때 물 위에 통발을 놓아 잡는 물막이인데, 물고기 잡는 장면을 의미한다. 2) 전주 : 주위의 밭두렁이 그림보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전원경치를 의미한다. 3) 반서 : 주위에 있는 바위들이 섬같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암석의 경치를 의미한다 4) 층대 : 주위 곳곳에 층층 쌓아 올린 듯한 절벽의 아름다움으로 절벽의 경치를 의미한다. 5) 석지 : 정자 뒤편에 위치한 연못이 바위가 뚫려 생긴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연못의 경치를 의미한다. 6) 평암 : 바위 한 개의 넓이가 100평 이상 되고 평평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넓은 바위의 경치를 의미한다. 7) 등담 : 정자에 등불을 밝혀 연못에 비치는 경치로 밤의 경치를 의미한다. 8) 취벽 : 정자 앞 석벽 사이에 있는 쉼터의 경치로 산벽의 경치를 의미한다. 9) 열수 : 구미정 주변 암벽에 줄지어 있는 듯이 뚫려 있는 바위구멍의 아름다움으로 바위구멍의 경치를 의미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관곡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관곡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매봉 밑자락에 있는 관곡서원은 1820년(순조 20)에 지방 유림들이 최윤덕, 이형남, 이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58년 후손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가 있다.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관곡서원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서원 관계 자료가 희귀한 편이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관곡서원 인근에 덕재산(487.1m)의 옥녀봉, 매봉이 있어 서원을 둘러본 후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 좋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관기1길 32-7
괴산 김항묵 고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김항묵 고택

괴산 김항묵 고택은 1900년 전후에 지어졌다고(안채는 19세기 초) 추정되는 건물로 공간구성의 아름다움, 외벽 장식의 화려함, 건축 당시의 모든 구조물의 보존 등 전통적 상류주택의 정수를 보여준다. 괴산군 칠성면에 있어서 칠성고택으로도 불린다. 안채는 30여 평 규모의 ㄷ자형 평면으로 남도식 배치 방법을 띠고 있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부엌(찬방 포함)을 두었으며 오른쪽에 건넌방을 놓았다. 안방과 건넌방 앞에 툇마루를 만들었는데 건넌방 앞까지 설치해 통로로 이용한 점이 특이하며, 한쪽 옆면 전체를 부엌으로 크게 만든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바깥채의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좌우로 ㄱ자 건물에 마구간, 곡간 등 행랑채를 두어 외곽을 구성하였으며, 그 안에 외정을 두어 공간을 만들고 내장을 쌓아 안채와 사랑채를 구조하였다. 사랑채에는 ㅗ자 모양으로 안채 쪽에 부엌, 사랑방, 꺾어져서 대청, 작은사랑을 두었는데, 큰 사랑 동쪽에 누마루를 덧달아서 사랑정원을 감상하게 되어있다. 사랑마당은 바깥마당보다 한단 높으며 일각대문으로 연결하여 외부와 차단된 별당형식이다. 사랑채의 합각에 전돌로 새긴 완자무늬를 비롯하여, 광채 벽의 수복무늬와 팔각겹곡두무늬, 담장의 화문담 문양 등이 아름다워 눈여겨볼 만하다. 사랑채 정원에는 원래 초당과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 나머지 건물들은 20세기 초에 지은 것들로 바깥 행랑채는 11칸 크기에 광, 방, 헛간 등이 배치되어 있다. 광채는 6칸으로 양 끝에 온돌을 설치하였다. 집을 지은 기법이 옛 법식을 잘 따르고 있으며 크고 작은 공간구성의 배열 또한 짜임새 있게 갖추고 있는 양반집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칠성로4길 20
괴산군수 관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군수 관사

괴산군수 관사는 이 지역 유지인 최부자가 1950년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에도 관사로 사용되고 있다.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근대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관사들은 대부분 일식이나 근대식 건축물이지만, 괴산군수 관사는 전통 한옥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있는 대문간채, ‘-’자형의 사랑채, ‘ㄱ’자형의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 평면의 실 구성 및 배치는 변화하는 생활 방식에 따라 많은 부분이 변경되거나 증축, 개축되었지만, 외관은 예전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양반가의 민가 형태 잘 간직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읍내로13길 12
고림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역사관광

고림사

고림사는 진안군 부귀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림사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원효 스님이 부귀산에서 수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원효 스님은 삼국통일의 대업이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원리대로 원만히 성취되기를 소망하여 부안의 변산, 진안의 부귀산 등 주로 편안할 안[安]자가 들어 있는 곳을 찾아 수도했는데, 그 자리가 곧 고림사 근처에 있는 좌선대라고 한다. 그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잘 전하지 않는데, 다만 고려 때는 절을 상림사 혹은 운림사로 불렀다고 한다. 고림사라는 이름은 절 주위에 수백 년 된 거목들이 가득 들어 차 있어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 1928년에 절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다가 1925년에 진안의 관공서 건물을 해체하면서 그 해체된 나무를 신도들이 짊어지고 메어 날라 법당을 지었다고 한다. 완전히 소실된 것을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지붕 1동으로 중건하였는데 관음전에 모셔져 있는 관음상은 화재 속에서 구해낸 유일한 유물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진안읍 상역로 174-96
고창오거리당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오거리당산

고창읍에 조성된 오거리 당산은 동·서·남·북·중앙의 5방위에 당산을 조성한 것으로 자연 입석과 조형 입석으로 세웠다. 고창 오거리 당산은 1803년 3월에 고창현 중심지 세 곳에 동시에 조성되었다. 처음에는 오거리가 아니라 삼거리 당산이었다. 삼거리는 상, 중, 하 세 곳을 가리킨 말인데 세 곳에 화표석주의 당산을 세운 것이다. 현재는 기존의 삼거리 당산과 천북동과 교촌리의 자연 마을 당산을 포함하여 오거리 당산이라 한다. 상거리, 중거리, 하거리 당산은 조형 입석으로 당산을 삼았으며, 천북동과 교촌리 당산 은 자연 입석을 당산으로 삼았다. 조형 입석 가운데 하거리 당산은 진서화표의 명문이 있고, 중앙 당산은 미륵 당산으로 불교적 요소가 강하다. 반면에 자연 입석을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의 당산 입석으로 삼은 것은 민간 신앙적 요소가 강하여 불교 신앙과 민간 신앙이 합쳐진 오거리 당산인 것이다. 오거리 당산은 화표를 당산 입석으로 삼은 유일한 당산이다. 정월 대보름날 줄다리기를 한 후 당산에 줄을 감아 놓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경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경현서원

경현서원은 나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선 유학을 대변하는 많은 인물을 배향한 곳으로 나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이곳은 16~17세기 나주지역의 을미옥사의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1583년(선조 16) 지방 유림이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금성산 아래에 사당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고 1589년(선조 22)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4위를 함께 배향하여 오현서원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목장흠과 지방 유림들이 합력하여 중건하였으며, 이듬해인 1609년(광해군 1)에 김선 등의 상소로 [경현]이라고 사액되었다. 1693년(숙종 19)에는 기대승과 김성일을 추가 배향하여 모두 7위를 모시게 되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77년 유림이 이곳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 동·서 협문, 4칸의 강당, 외삼문, 4칸의 고사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
고송정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역사관광

고송정지

고송정지는 조선시대 순조 27년(1827)에 김처일이 그의 9대조인 김충주를 애도하여 지은 고송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자리이다. 김충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했다가 죽임을 당하자 밤중에 도성을 도망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화정동에 숨어 살면서 평생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베옷에 평민들이 쓰던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단종에 대한 충성이 약해질 때마다 단종의 묘가 있는 영월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였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비명에 숨진 것을 애통하게 여겨 흘린 눈물에 소나무가 말라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풀을 엮어 집을 짓고 숯을 구워 파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며 자신을 숯 굽는 노인 ‘탄옹’이라 했다 하여 고송정터를 탄옹고터라고도 한다. 정자는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왼쪽에는 ‘탄옹고지’라고 새긴 바위가 있으며, 고송정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그가 단종을 그리며 울던 망월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주변에는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고성군 하일면에 있는 학동마을은, 1670년경 전주최씨 가문에서 학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꿈속에서 보고, 날이 밝아 그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지형을 보고, 명당이라 여겨 입촌한 후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 전해진다. 마을 뒤편은 수태산 줄기가 있으며, 마을 앞에는 좌이산이 솟아 있는 소위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이며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흐르고 있어 전통 마을의 배산임수형 입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가옥은 상당 부분 새마을운동 당시 슬레이트 기와로 개량되었으나 문화재자료 ‘육영재’, ‘최씨고가’ 등 일부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 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학동마을의 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 두께 2~5㎝)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 후 쌓은 것으로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 있으며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담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석축을 쌓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수백 년을 거슬러 고성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황톳빛 돌담길을 따라 걷노라면 아련한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동돌담길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