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괴산 우주특별시:별별탐사대
충북 괴산 우주특별시:별별탐사대 전시는 '우주 생태'라는 상상 속 환경을 바탕으로 과일과 식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는 체험형 전시이다. 보고, 만지고, 움직이며 이어지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아이들은 질문하고 상상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보호자는 아이의 탐험에 함께하는 안내자가 되어 질문을 나누고 전시를 더욱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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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 우주특별시:별별탐사대 전시는 '우주 생태'라는 상상 속 환경을 바탕으로 과일과 식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는 체험형 전시이다. 보고, 만지고, 움직이며 이어지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아이들은 질문하고 상상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보호자는 아이의 탐험에 함께하는 안내자가 되어 질문을 나누고 전시를 더욱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다.
괴산읍에서 수안보로 가는 19번 국도를 따라 4㎞쯤 가면 속리산에서 발원해 남한강의 상류와 합쳐지는 달천 양측 기슭에 있는 9개의 명승지이다. 고산은 넓은 들판 가운데 솟은 산으로 달천이 태극 모양으로 감싸며 흐르고 있다. 고산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멀리는 속리산에서 발원한 푸른 물이 정자 밑을 돌아 흐르고 남으로는 작은 봉우리들이 마치 말을 탄 수천의 군사가 진을 친 듯하다. 조선 선조 때 충청도 관찰사로 온 유근이 이곳에 만송정과 고산정사를 지은 뒤, 광해군 때 혼탁한 정치를 피해 이곳에 은거할 무렵 고산 9경을 정하였다고 한다. 제1경은 만송정, 제2경은 황니판, 제3경은 관어대, 제4경은 은병암, 제5경은 제월대, 제6경은 창벽, 제7경은 영객령, 제8경은 영화담, 제9경은 고산정사이다. 제1경 고산정은 조선 선조 때의 명현 서경 유근이 충청 관찰사로 있을 때인 1596년에 창건하였으며 만송정이라 하였다. 광해군 때 어지러운 정치를 피해 고향에 돌아와 이곳에 머물면서 고산정이라 개칭하였다. 선조 때 명나라 학자 주지번이 썼다는 ‘은병’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1978년 10월 27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제3경 관어대는 영화담 위에 있으며 바위 절벽 아래서 내려다보면 한가롭게 놀고 있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속을 떠난 신선처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제4경 은병암은 제월대에서 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푸른 강물이 S자로 크게 굽이치는 절벽과 절벽에 연이은 큰 바위들이 강물에 반쯤 드리워져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바위를 은병암이라 한다. 제5경 제월대는 고산정이 있는 부분의 절벽 부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강줄기 양편에 흩어진 일련의 경승지를 통칭한다. 제8경 영화담은 고산정 아래로 속리산으로부터 흐르는 푸른 물이 여울 소리를 내며 유유히 흘러와 정자 밑에서 머물러 못을 이루는 곳이다. 푸른 연못처럼 평온하고 많은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봄에 진달래꽃이 피면 꽃 그림자가 물에 비쳐서 산 그림을 펼쳐 놓은 것처럼 아름다우며 봄부터 가을까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9경 고산정사는 고산정에 걸려 있는 고산정이란 글을 말하며 숙종 때 편찬된 『괴산군읍지』에 의하면 1695년(숙종 21)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충민사, 속리산국립공원, 쌍곡계곡, 괴강유원지, 각연사, 괴산호, 선유동구곡, 화양구곡, 미선나무자생지, 조령산자연휴양림, 공림사, 갈론계곡, 수옥정관광지 등 문화유적지와 관광지가 많다.
비학봉마을은 쌍곡구곡과 갈은구곡이 병풍처럼 서 있는 군자산과 비학산을 휘감고 있는 산막이옛길에 있으며, 학동리, 외사리, 사오랑리, 갈론리 마을을 지칭한다. 마을에서는 숙박과 함께 계절별 농촌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숙박시설은 산막이옛길숲체험관과 갈론산촌체험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도시 생활에서 스트레스와 피로로 지친 사람들을 위해 깨끗한 자연경관과 다양한 계절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봄에는 봄나물 채취와 봄나물을 활용한 떡 만들기와 감자 심기를 여름에는 감자 수확, 다슬기 잡기, 여름철에는 캠프 화이어와 9곡 계곡 트레킹 프로그램이 있다. 가을에는 고추 따기와 배추 모종 정식을 겨울에는 1박 2일 김장 담그기와 율원저수지 얼음구멍낚시 등을 할 수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과 충주시를 흐르는 하천으로 길이 123.00km, 유역면적 1614.37㎢이다. 달래강·감천(甘川)이라고도 한다. 충주시에서 남한강 상류에 합류한다. 청주시 부근 산성리와 보은군 속리산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보은군의 북쪽을 지나 괴산군 동쪽을 흐르고, 동쪽 산지에서 발원하는 동진천·음성천 등과 합류, 충주시 가금면을 지나 남한강에 흘러든다. 충청북도선 철도가 충주시 용두동에서 달천을 가로지른다.

청정 자연의 고장 괴산의 생태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체험형 전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괴산생태뮤지엄은 괴산의 생태 자원을 주제로 한 상설전시와 계절별 기획전시를 무료로 운영하는 체험형 전시관이다. 상설전시에서는 괴산의 자연 생태계를 미디어아트와 체험 요소로 구성해 관람객이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2026년 12월 6일까지 운영되는 특별 기획전 충북 괴산 우주특별시 별별탐사대는 빛과 색으로 우주 생태를 표현한 감각 체험 공간 별별아트, 신나는 놀이 활동으로 우주 환경을 이해하는 별별놀이, 나만의 행성 만들기 등 창작 체험을 즐기는 별별생각의 세 공간으로 구성되며 모든 체험은 무제한 시간으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무더운 여름철 실내 나들이 장소로도 알맞으며, 인근 괴산읍 시가지·산막이옛길과 연계해 방문하기 좋다.

백마권역마을은 백마산과 백마저수지의 정기가 서린 마을. ‘물’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숙박, 물놀이, 생태체험, 먹거리체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단체 체험행사 외에도 매년 1월 정기적으로 『백마권역 겨울놀이축제』를 개최하여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백마권역은 도시민의 건전한 여가생활 창출과 지역사회의 활력증진을 위하여 활동을 하는 곳이다. 청정지역 괴산의 싱그러운 정취와 백마산과 백마저수자의 힘찬 기운, 백마권역의 생동감 있는 체험현장을 만나볼 수 있다.
멍딩이마을은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위치한 마을이다. 벚나무, 살구나무 꽃길 및 쉼터조성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값싸고 품질 좋은 안전한 먹거리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마을 내에는 옛날 생활필수품이었던 짚신, 삼태미, 둥구미, 매판, 멍석, 가마니 등 짚풀공예품들을 전시한 짚풀공예전시장이 있다. 인근에 소암저수지는 조용하고 한적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겨울이 되면 얼음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괴산에 위치한 괴강토종어류체험관은 디지털 실감형 기술을 융합한 물 없는 아쿠아리움으로 2024년 7월 23일 개관하였다. 제1관인 민물고기체험관은 괴강을 미디어 갤러리 형식으로 연출한 토종어류 이해의 장이다. 또한, 괴강 서식 어종을 그래픽 패널, 어안렌즈, 디지털을 이용한 체험공간으로 구성한 토종어류 탐구의 장과 민물고기 도안을 채색 후, 스캔하여 벽면에 동영상으로 나타내는 체험이 가능한 토종어류 학습의장이 위치해 있다. 물속 토종어류를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아이맥스형 고화질 영상관도 있다. 제2관인 어린이놀이터는 물고기 도서관과 토종어류퀴즈 코너, 낚시체험존 등 어린이 놀이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역사와 전통의 가치를 오늘에 전하고 군민의 일상에 문화로 함께하는 괴산의 문화 중심인 괴산문화원은 향토문화제(鄕土文化際) 주관, 향토전통문화의 발굴·정리·보존, 문화자료의 조사·보존, 문예진흥 일반활동 및 국제문화교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괴산의 향토문화의식을 고취시키고 향토축제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 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문화원은 주민에게 문화접촉의 기회를 넓혀 주고 고유의 문화를 개발·보존하는 지역문화 복지센터로서의 역할을 갖게 되었다. 정월대보름 군민 민속 한마당, 군민을 위한 무료 영화 상영, 괴산고추축제 연합전시, 괴산문화역사탐방 등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으며 생활문화센터에서는 서예, 하모니카, 라인댄스, 한국화 등 20여 개의 동호회를 위탁 운영하며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괴산 도명산 오토캠핑장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자리 잡고 있다. 캠핑장은 고즈넉한 농촌에 터를 잡고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친화적이며, 10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운영되는 캠핑장으로 머무르는 동안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다. 캠핑장은 방갈로와 펜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넓은 공간으로 가족과 함께 방문하기 좋은 캠핑장이다.

괴강국민여가캠핑장은 충북 괴산군 괴산읍에 자리하고 있다. 괴산군청을 기점으로 약 4㎞ 거리에 있으며, 차량을 이용해 임꺽정로, 문무로, 괴강로를 차례로 달리면 도착한다. 소요시간은 10분 남짓이다. 이곳은 도로와 인접해 접근이 편하다. 캠핑장에는 잔디로 이뤄진 일반 야영장 52면과 개인카라반 사이트 5면을 배치했다. 사이트 크기는 가로 7m 세로 8m이다. 화로대, 전기,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개인 트레일러와 카라반도 입장 가능하다. 캠핑장 주변에 대규모 청소년 수련시설이 위치하고 있어, 주변환경이 쾌적하며, 황토역사박물관 등의 관광지도 있어 연계관광이 용이하다. 또한 근처에 쏘가리와 동자개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한 매운탕 전문점도 있다.
괴산 정인지 묘소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학역재(學易齋) 정인지(1396∼1478)의 묘소이다. 태종 14년(14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 , 등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또한,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로 집현전 직제학, 부제학 등을 지내면서 성삼문, 신숙주, 최항과 함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단종∼성종 연간에는 학덕을 갖춘 정치가로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저서로는 있다. 묘 앞에는 묘비 1기가 서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갓이 없는 높이 250cm, 90cm의 크기이다. 비문은 강희맹이 지었다고 전한다. 묘비 앞으로는 상석과 장명등이 서있고, 좌우로 문관석과 망주석이 서 있다. 묘소 아래에 서거정이 지은 신도비가 있었는데 유실되어 1958년 서거정이 지은 비문을 윤보선이 쓰고 성락서가 제전을 써서 다시 세웠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인 소재(蘇齋) 노수신이 유배되었을 때 거처하던 곳이다. 노수신(1515-1590)은 중종 38년(1543) 문과에 급제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같이 독서당에 뽑혀 함께 학문을 연구하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로 관직에서 파면되어, 순천·괴산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선조 즉위 후 복직되어 후에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 건물은 노수신이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순천, 진도 등지로 유배되었다가 괴산으로 옮겨져 명종 20년(1565)부터 2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괴산 연하동(煙霞洞)에 있던 적소인데 괴산수력발전소 댐을 만들면서 물에 잠기자 1957년 현 위치에 이건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에 우물마루를 깐 대청 1칸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 각 1칸이 있으며 전면에 툇마루를 둔 간소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후에 건물명을 수월정(水月亭)이라고 하여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고택으로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이 잘 남아있는 곳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사당채 등이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ㄷ’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중간에 낮은 담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안채 앞에는 ‘一’ 자 형태로 곳간채가 길게 세워져 있다. 3칸 크기의 대문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어 바닥을 다진 후 건물을 세워 튼튼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안채는 작은 문을 거쳐 들어갈 수 있도록 담이 둘러져 있고 옆에서 보면 맞배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쪽에 위치해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또 광채는 일자형으로 곡식은 물론 각종 농기구를 보관하던 장소로 이용이 되었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가 주위로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마당은 깨끗하게 포장을 하여 방문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또 마당 한편에 뜰마루를 설치하여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잘 가꾼 잔디밭과 화초는 고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이 고택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다.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충청감사로 재직 시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우암 송시열의 종손들이 6대에 걸쳐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우암 송시열의 묘가 고택 바로 위에 있기도 하다. 현재는 충북 양로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화양계곡과 선유계곡, 공림사 등이 있다.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본래 노천의 석단(石壇)에 모시어 불공을 드리고 있었던 것을 현재 법당을 지어 그 안에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다. 이 불상은 금박(金箔)을 칠하였으나 원형은 잘 남아있다. 머리에는 낮은 육계(肉?)가 있고 미간의 백호(白毫)와 이목구비가 정연하다. 상호(相好)는 살이 쪘으나 목에 돌린 삼도가 양 귀와 잘 어울리어 준엄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서 복부 앞으로 약간 올렸는데 손바닥에 어떤 물체가 놓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병을 올린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으로 보인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등뒤로 넘겨졌고, 왼쪽 가슴에서 내려진 옷의 주름은 무릎을 덮었는데 양쪽 발바닥이 그 위로 노출되어 있다. 각부의 수법이 둔중하며 금박이 두터워 더욱 둔한 감을 준다. 결가부좌한 좌고는 117cm이다.
이 정문은 장담의 정려로 영조 5년(1729) 청안면 청룡리에 세운 것을 조천리로 이건한 것이다. 장담은 호는 수풍정, 본관은 인동으로 통례 장인계의 후손이다. 영조 4년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벼슬이 없는 처사로서 의병을 일으켜 난을 진압하다 순절하니 그의 동생 장환이 나머지 군사로 적을 토벌하여 복수하였다. 후에 이 사실이 주문되어 충신으로 정려 되고 분무원종훈 1등 공에 록선 되었으며, 정조조에 표충을 명하고 좌승지에 증직 되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며, 현판을 달고 보호책을 둘렀다.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불신만 남아 있는 것을 불두를 찾고, 왼쪽 팔목의 보수를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신체에 비해서 큰 얼굴은 앞으로 숙여져 있으며 옷은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다. 손은 오른손 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끝이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꼽 앞에 놓은 모습이다.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얹어 놓은 앉은 자세는 그 예가 드문 편이다. 평판적이고 굴곡이 없는 네모진 상체, 목에 있는 3개의 주름, 둔감한 옷주름선 등에서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조선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보광산 폐사지에 있던 것을 아래쪽에 새로 지은 보광사 대웅전에 봉안하여 1935년부터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거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별다른 조각이 없다.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았던 둥근 받침돌이 2단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 윗면 가운데에 높이 솟아오른 부분을 두어 여기에 깃대를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기둥 안쪽면에는 아래위로 홈을 두어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조각솜씨가 세련되거나 정교하지 못하나 간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3.7m, 폭 4.1m, 두께 2.4m의 바위의 한쪽 면에 새긴 높이 3.5m의 마애불이다. 낮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이 좌상은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독특한 수인을 보이고 있다. 굴곡이 없는 사각형적인 신체, 몇 가닥의 간략한 옷주름선, 도식적인 꽃잎의 형태에서 기술의 한계가 엿보이지만 안정감 있는 단아한 체구, 소발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 삼도가 뚜렷한 목, 당당한 어깨와 무릎 등에서 앞 시대의 특징이 엿보이는 수준작으로 평가된다. 얼굴 부분은 대체로 양각이라기보다는 선각에 가까우며, 가슴에 군의대 매듭이 보인다. 이 좌상은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초기 이 지방에서 유행한 좌상양식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좌상을 새긴 바위의 아래쪽 일부가 깨어진 것 외에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괴산 백운사 승탑군은 모두 5기의 석조승탑을 모아놓은 것이다. 5기의 승탑 중 1955년에 건립한 백운사 2차 중창주인 송운제 스님의 승탑을 제외한 4기의 승탑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이 승탑들은 조선시대 석종형승탑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중 4기는 방형 혹은 가옥형의 특이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주목된다. 옥개석에는 기와골 등이 생략되는 등 후기적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합각마루의 용두장식과 상륜부의 보주 등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모두 화강암재로 이루어진 승탑들은 옛 절터에서 1943년경 현재의 위치인 사찰입구로 이전한 것이다. 백운사는 사역에서 출토되는 명문기와로 볼 때 고려시대 대흥사였으며 조선 영조 연간(1725-1776)에 폐사된 후 1930년대 초 하장우 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994년 이후 금당, 관음전, 요사채 등 상당한 규모의 불사가 진행 중이다.
괴산동헌은 조선초기에 창건되어 그 뒤에 여러 번 중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시대 이후 관청건물로 쓰이면서 고쳐져 그 원형을 잃었다. 최근까지도 괴산엽연초생산조합의 관사로 쓰였으나 1996년 보수할 때 동헌건물로 복원되었다. 현재 괴산읍 서부리에 있는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된 8 칸집이며, 구조는 5량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의 건물지반이 주위의 지면보다 50cm 내외의 깊이로 낮아져 있는데 건물신축 당시보다 주위의 지면이 상당 부분 상승했음을 알 수 있으며, 내아 등 다른 건축물은 모두 남아있지 않다.
군자산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있는 산으로 옛날에는 군대산이라 불렸으며, 산자락의 덕바위, 정자소, 서당말과 송시열 선생 유적 등이 있다. 군자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쌍곡계곡이다. 10㎞의 계곡 곳곳에는 많은 물과 바위, 소나무가 어우러진 선경을 이루어 여름철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고, 충북의 유명계곡을 대상으로 수질검사를 실시한 결과, 쌍곡계곡의 물이 최고의 물로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군자산은 쌍곡 제2곡인 소금강에서 다리를 건너면 솔밭 맞은편에 닦아 놓은 비포장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등산로를 따라 15분만 가면 화석바위 꼭대기의 하늘벽 전망대에 닿는데, 여기만 와도 쌍곡 도로가 저 아래로 보이며 높은 산에 오른 기분이다. 산길은 온통 노송이 가득하다. 소금강의 상단부를 지나며 오른쪽으로 내려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깎아 세운 절벽이다. 울퉁불퉁한 길을 올라가면 5m 정도의 세미클라이밍 지대에 올라서며, 다시 한번 훤히 트인 전망대에서 쌍곡계곡을 조망할 수 있다. 8부 능선의 비탈길을 올라 능선길을 밟기 시작하여 20분 정도 가면 정상으로 가는 길목의 작은 봉우리에 닿는데 여기서는 군자산의 정상이 높이 올려다보이며, 사방이 잘 보여 자연 전망대라고 부른다. 이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허리를 돌아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데 자연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30분 정도 계속 오르막이다. 정상은 10여 m의 공터가 마련되어 있다. 정상에서 보면 동으로 쌍곡계곡의 하얀 속살이 실타래처럼 늘어져 있고 가까이 보개산, 칠보산으로부터 희양산, 백호산, 악휘봉으로 이어지는 험준한 산맥의 흐름이 고고하기만 하다. 남으로는 작은 군자산 너머로 대야산 그 너머로 속리산의 연봉들이 공룡의 등처럼 울퉁불퉁하다. 하산은 두 길이 있으며 북쪽으로 난 바위봉을 넘어 헬기장을 지나 30여분 내려가면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원효굴이 나오는데 바위굴로, 굴 안에서는 물이 샘솟는 바 깨끗지 못한 사람이 오면 물이 흐려지거나 벌레가 생겨 못 먹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목장 길 능선을 따라 40분 정도 내려오면 학동마을에 닿게 된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하산로는 남쪽의 능선을 타고 30분 정도 가면 확 트인 바위 봉우리에서 남쪽의 가리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다시 30분 정도 내려가면 사은리로 넘어가는 도마재에 닿고 여기서 왼쪽 내리막길을 택하면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50분 정도면 도마골의 큰길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칠 수 있다.
계담서원은 순흥 안 씨 선조들을 제향 하는 곳으로 괴산군 감물면 계담마을 중심에 위치해 있다. 1824년(순조 24)에 조선 중기의 문신 안명세 선생을 모시는 계담사로 마을 뒷산에 창건했다. 그 후 1865년(고종 2)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1년에 순흥 안 씨 양도공파 종회 안동준 회장과 안병태 선생 등이 인근 지역의 유림과 전교에게 계담사 자리에 고려의 문신 문정공 안축을 주벽으로 조선 세종조 명신 안문숙공과 중종조 안한림공, 선조조 안사촌공, 선조조 안세마공의 5위 사당을 준공하고 앞 층계에 내삼문을 세우고 그 안에 묘우로 세덕사를 건립하여 계담서원을 복원하여 지금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계담서원은 강서당(학습실)과 학구당(도서관)이 갖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계담서원 내 홍살문을 지나면 좌측에 도서관으로 이용하는 학구당이 있다. 2만 5천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이 언제나 대여 및 열람할 수 있다. 강의실로 쓰이는 강서당에서는 교양과 전통예절, 역사문화, 서예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수강생과 졸업생을 배출해 낸 교육의 장이다.
율지리 미선나무 자생지는 야산 중턱의 구릉에 형성되었으며, 1967년에 발견되었다. 미선나무는 1919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처음 발견되어 1924년 일본인 石戶谷勉이 Arnold식물원에 소개함으로써 학계에 처음 알려져 Abeliophyilum distichum이라는 학명(學名)을 얻고 천연기념물 14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원산지인 진천에서 멸종되었는데, 1955년 괴산군 장연면 송덕리, 1965년 장연면 추점리, 1967년 칠성면 율지리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어 1970년까지 3곳의 자생지에서 천연기념물로 보호되어 왔으며, 199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영동군 영동읍 매천리의 자생지와 1992년 부안군에서 보고된 자생지 1곳 등 모두 5곳의 자생지가 알려져 있다. 흰색 또는 도홍색으로 피는 꽃은 아름답고 화려한 장미나 다알리아 등과는 또 다른 초연하고 온화한 한국인과 같은 은근한 매력을 지닌 소박하고 청초한 달빛과 같은 꽃이다.

공림사는 낙영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신라 경문왕때에 자정선사가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다. 자정선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던 중 그 법력과 덕화가 세간에 두루 알려지자 왕이 선사를 국사에 봉하고 입궐을 청하였으나, 세상을 떠나온 사람이 다시 세간으로 나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고 한다. 왕이 선사의 덕화에 감동받아 왕명으로 사원을 창건하고 공림사의 사명을 지어 액자를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기에는 법주사보다 더 흥하였지만, 이후 임진왜란으로 대웅전만 남고 소실되었던 것을 인조 때 중창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공비들이 절에 출몰한다는 이유로 토벌군에 의해 전소되어 폐사되었다. 공림사에는 부도, 사적비, 석조, 일주문 등의 유물이 있으며, 중건 시 세운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감인선원 등 건물이 있다. 공림사 사적비는 1688년에 세운 것으로, 경내의 요사채 동쪽 언덕 아래에 있다. 앞면에는 공림사의 유래와 연력을 비롯해서 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었는데, 시주자, 승려, 주지, 각수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적비는 비문이 완전하여 조선 중기의 사회상과 지역의 동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절 앞에 조성된 느티나무 숲과 절을 품고 있는 웅장하고 흰 바위산인 낙영산은 천년고찰 공림사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괴산호는 괴산군 청천면과 칠성면 일대에 자리한 호수로, 붕어와 잉어는 물론 누치, 쏘가리 등 다양한 민물고기가 서식해 마치 민물고기 전시장을 보는 듯한 풍경을 이룬다. 덕분에 낚시터로서도 명성이 높다. 중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접근성이 좋아져, 증평 IC에서 빠져나와 증평읍을 지나 괴산 방향으로 이동하면 쉽게 도착할 수 있다. 주변에는 속리산국립공원, 쌍곡계곡, 선유동계곡, 화양계곡 등이 자리하여 피서철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올갱이국은 괴산의 유명한 음식 중 하나로 괴산읍 중앙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는 올갱이국을 파는 가게 몇 군데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주차장식당은 올갱이 해장국으로 알려진 맛집이다. 이외에도 기사식당, 올갱이 서울식당,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나왔던 맛식당이 있다. 올갱이는 표준말로 다슬기라고 한다. 그런데 다슬기보다 올갱이라고 해야 그 맛과 향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올갱이국은 된장이 맛이 좌우하는데 올갱이국을 파는 괴산의 식당에서 집집마다 된장을 담그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통 3년 이상 된 된장을 쓰고 8년 묵은 된장도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부재료가 아욱이다. 특히 아욱은 가을에 그 맛이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에 올갱이국 또한 가을에 먹어야 가장 맛이 좋다.

개차반캠핑장은 충북 괴산면에 위치한 캠핑장이다. 반려견 전용 캠핑장으로 소형견과 대형견 모두 함께 어울어져 뛰어놀기 좋은 곳이다.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이 가능하며 자가텐트 공간 및 사이즈가 다른 글램핑 텐트 5동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각 시설에는 울타리와 지붕, 방풍창이 설치 되어있어 좀 더 프라이빗하고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강변오토캠핑장은 충북 괴산군 괴산읍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속리산 부근에서 발원해 남한강에 합류하는 달천을 배경으로 조성됐다. 덕분에 여름철이면 물놀이를 겸한 캠핑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의 사이트는 강변사이트, 일반사이트, 소형사이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형사이트는 혼자 캠핑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애견 동반이 가능한 사이트가 있어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매점, 샤워실,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갈론계곡은 아홉 곳의 명소가 있다고 해서 ‘갈론구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갈론계곡이란 이름은 이 계곡 입구 마을에 갈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은거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골이 깊기로 소문난 괴산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라 할 만큼 깊숙이 들어가 있는 계곡이어서 아직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호젓한 계곡이다. 제1곡 갈은동문, 제2곡 갈천정, 제3곡 강선대, 제4곡 옥류벽, 제5곡 금병, 제6곡구암(거북바위), 제7곡인 고송유수재, 제8곡 칠학동천, 제9곡 선국암으로 9곡을 형성하고 있다.
개심사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나무로 된 여래좌상과 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칠성면 두천리의 도덕암에 있던 것을 암자가 폐사되면서 옮겨온 것이다. 괴산읍 서부리에 살던 김경림이 1935년경 현재의 개심사를 신축하면서 옮겨왔다고 전한다. 2구의 각부 조각과 단아한 양식수법은 조선후기의 불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높이 85cm의 목조여래좌상은 한 나무로 조성한 좌상인데 나발의 머리와 상호가 정제되어 원만하며 백호를 갖추고 있다. 양 눈썹과 눈, 입과 입술 등이 정돈되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통견인 법의는 조선시대 특유의 양식으로 손목에서 두껍게 표현되었다. 무릎의 의문도 두툼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들고 왼손을 내려 설법인을 결하고 있다. 관음보살상은 72cm이고 역시 한 나무로 조성한 것인데 머리에는 금속제의 화사한 보관을 쓰고 있다. 상호는 원만하며 이마에 백호가 있고 양미안과 구순 등이 정제되어 목에 돌려진 삼도와 어우러진다. 통견과 법의는 두툼하면서도 유려하여 조선시대 작품으로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근에 홍범식 고택과 괴산향교, 애한정 등 가볼 만한 곳이 있다.
개심사는 괴산읍 동부리에 있는 자그마한 전통사찰로 연혁에 대해서는 현재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보학스님이 1935년에 쓴 를 통해 연혁을 짐작할 뿐이다. 현판 기록에는 여신도인 김경림이 절에 10여 칸의 큰 법당을 시주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사찰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창건에 관한 이야기, 즉 괴산읍 칠성면 두천리에 있던 도덕암이 폐사됨에 따라 현재 개심사터에 전각을 짓고 도덕암에 있던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불상 2구를 옮겼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이는 1935년의 기록으로 김경림보살이 법당을 시주할 때 개심사에 도덕암 불상 2구가 안치되었으며, 개심사가 새롭게 중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98년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을 요사채를 헐고 그 터에 새로 지은 극락보전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이래 극락보전, 요사채 등의 중창과 축대 및 주차장 설치 등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라 법흥왕 때에 유일대사가 현재의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 근처에 터를 잡고 절을 지으려 했다. 재목 다듬는 공사를 하는데, 까마귀 떼가 날아들어 쉬지 않고 대팻밥과 나무 부스러기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유일대사는 이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까마귀들을 따라가 보았다. 현재의 각연사 터 연못에 대팻밥이 떨어져 있어 들여다보니 연못 안에 돌부처님 한 분이 계시고, 그 부처님 몸에선 광채가 퍼져 나왔다. 부처님을 뵙고 유일대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 연못 속의 돌부처님을 보고 깨침을 얻었다 하여 깨달을 각(覺), 연못 연(淵) 자를 써 각연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절 주변은 우뚝 솟은 산들이 마치 연꽃이 피어있는 듯 둘러싸여 있다. 각연사에는 비로자나불좌상, 통일대사탑비, 비로전, 대웅전, 통일대사부도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묘정비는 서원 앞에 세워 서원의 건립취지와 그 서원에 모시는 인물을 찬양하는 내용을 기록해 놓은 비석이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중국 명나라의 임금인 신종과 의종의 제사를 지내는 만동묘 사당에 자리 잡고 있다. 만동묘는 우암 송시열의 가르침에 따라 그의 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나라 의종이 죽은 지 60년이 지난 숙종 30년(1704)에 지은 것이다. 경술국치 이후 1917년 일제가 만동묘의 제사를 금지하고 이를 반대하는 유림을 구속하였으나 유림에서는 춘추계를 조직하여 몰래 제사를 지냈는데 일제는 1937년에 이들을 체포하고 위패와 제구를 불사르고 묘정비를 징으로 쪼아 훼손하더니 1942년 건물을 불사르고 묘정비를 땅에 묻어버렸다. 1942년 이후 매몰되어 있던 것을 광복 후 찾아 다시 세웠다. 묘정비는 연꽃무늬를 새긴 바닥돌 위에 네모난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비신과 옥개석을 얹은 일반형 석비이다. 영조 23년(1747)에 세웠으며, 이재가 글을 짓고, 유척기가 글씨를 썼다. 비문은 일본인들이 고의로 글자 획들을 쪼아 놓아 알아보기가 힘들다. 1999년 우암 송시열 관련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후 2002년부터 2005년 사이 만동묘, 성공문, 묘정비각, 외삼문, 증반청, 존사청을 복원하였다.

괴산한우타운은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갈읍리에 있는 정육식당이다. 현대적인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모임에 적합하다. 대표 메뉴는 한우 전문가가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 손질한 각종 구이용 한우다. 이 밖에 한우 육회비빔밥, 육회 비빔냉면, 한우갈비탕, 한우불고기, 한우 육사시미 등도 맛볼 수 있다.

충북 괴산의 괴강올갱이전문점은 올갱이가 푸짐하게 들어간 올갱이국이 일품인 음식점이다. 해장국에 들어간 다슬기의 양이 푸짐하며 된장으로 간과 감칠맛을 낸 국물이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올갱이 및 붕어, 잉어 진액도 주문하면 직접 달여 판매한다. 매장 내부는 넓고 쾌적하며 좌석 수가 많아 단체 식사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