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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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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향교

남해향교는 1450년 하신(河紳)이 남해현령으로 재임할 때 봉강산 포교당터에 건립하여 개교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후 1669년(현종 10)에 사당인 대성전을 고쳐 세웠다. 그 후 고종 29년(1892)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점차 그 밖의 건물들도 모두 옮겨 세웠다. 완만한 경사지에 출입구인 외삼문,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비교적 낮은 터에 있고, 그 뒤로 조금 높은 터에 내삼문과 성현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이나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
남해 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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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임진성

남면 상가리 남쪽에 위치한 임진성은 이름 그대로 임진왜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민, 관, 군이 힘을 합쳐 쌓았다는 이유로 민보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임진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길게 늘어선 돌덩이들이 차곡차곡 높게 쌓아져 있으며, 토성으로 된 외성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형태는 테뫼식으로 사암, 화강암, 안산암 등 활석으로 장방형 쌓기로 구축하고 틈새는 잔돌을 끼워 마감하였는데, 옥포 인접 구릉에 타원형 성곽으로 성곽 내 토루를 만들어 통로를 만들었다. 옛날에는 성루, 감시사, 망대, 탑대, 서당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시설물은 없고, 성곽과 동문터, 서문터, 우물터만 남아있다. 현존하는 성벽의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는 최근보수 공사를 거쳤고, 2014년에는 성 내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연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상가리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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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들어오면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 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 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 전의 그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 채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남해대로 3829
남해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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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충렬사

벚꽃터널 길을 지나 노량마을로 들어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 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 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충렬사는 장군이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한 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다. 남해 충렬사는 규모가 작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와 사우 그리고 충무공비와 충민공비, 내삼문, 외삼문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청해루와 장군의 가묘가 잘 정리되어 있다.

⌖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로183번길 27
무민사(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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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무민사(남해)

‘지조 지킨 충신, 최영 장군 기리는 사당’ 무민사는 최영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남해대교를 지나서도 40분 정도 달려 남해군의 끝자락 미조면, 무민사는 아름다운 미조 항이 내려다보이는 왼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최영 장군은 고려의 유명한 충신인 최유청의 5대손으로 충숙왕 4년(1317)에 출생하였다. 1358년에 양광 전라도 왜구체복사가 되어 서해안과 남해안에 침입하는 왜구들을 격파하는데 큰 전과를 올린 명장이다. 1380년에는 해수도통사가 되어 삼남지방을 순찰, 왜구의 침입을 막기도 했다. 1388년에는 지금의 총리인 문하시중이 되었다. 최영 장군은 문화시중이 되어 자신과 고려왕조의 운명을 결정한 요동정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는 왕과 비밀리에 의논하여 원나라를 도와 요동을 정벌하기로 결정했다. 최영 팔도도통사, 이성계 우군도통사, 조민수 좌군도통사. 이렇게 구성된 요동 정벌군 3만으로 원정을 떠났다. 고려 말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 왕조를 건설할 야심에 차있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역사적인 회군을 하여 왕을 폐위시켰다. 최영 장군도 이성계의 손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최영 장군은 고려 우왕 때 남해군 평산포 수군 진영(만호가 주둔하던 곳. 지금의 해군기지)을 순시한 뒤 미조항에 들러 수군들을 격려한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미조진항을 지키던 첨사(종 3품)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 나이가 많은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최영 장군의 영정과 칼이 바닷가에 있으니 찾아서 잘 모셔 놓으라”고 했다. 첨사는 꿈에서 깨어나 수문 장인 봉 장군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찾아볼 것을 지시했다. 봉 장군은 급히 바닷가에 나가 나무로 만든 궤짝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최영 장군의 영정과 칼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첨사는 이것을 짚으로 싸서 모셔 놓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자 영정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현재의 무민사 자리에 영정이 내려앉았다. 첨사는 이곳에 조그마한 사당을 지었다. 그리고 이름을 ‘무민사’라 했다. 끝까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장군을 기리기 위해 봄, 가을 두 번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남해대로 14-11
남해 금산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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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봉수대

봉수(俸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俸]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고려 중기(12,3세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이후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 중에서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한 번 올리지만 [一炬 또는 一煙],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 번,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번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곳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毅宗, 1147~1170 재위)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烽燧路) 가운데서 동래(東萊)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 봉수로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이다. 이곳에서 점화된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四川), 진주(晉州)등을 거쳐 서울에 전달되었다. * 금산봉수대는 해발 681m인 금산에 자리 잡고 있고 둘레는 26m의 네모난 형태이며, 높이는 4.5m이다.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91
금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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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왕사

경남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에 위치한 금왕사는 기암절벽 가까이 이런 사찰을 지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또한, 일 년 내내 끊일 줄 모르고 나온다는 천년의 약수도 있다. 천년의 약수 위로 오르면 돌로 만들어진 동자승이 누워 있고, 금왕사 미륵전에서 참배가 가능하다.

⌖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보리암로 6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