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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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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1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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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각사(영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영천시역사관광

묘각사(영천)

묘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기록은 없다. 용왕과 관련한 사찰이라 이곳에서 용왕제(龍王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자주 지냈다고 한다. 절의 부근은 예로부터 불교 신앙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절의 뒷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현산이며, 기룡산 아래에는 용화·삼매·정각 등 불국 정토를 나타내는 마을 이름들이 많다. 창건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에게 법을 듣기 위하여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절이 들어선 산 이름을 기룡산(騎龍山)이라 했다고 한다. 의상이 법성게(法性偈)를 설하자 용왕이 문득 깨닫고 승천하였는데, 이때 용왕이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뿌려 주어 당시 극심했던 가뭄을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했다. 이에 의상이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며, 1644년(인조 22) 설선당(說禪堂)을 지어 중창하였다. 1657년에 요사를 중창하였는데 지금은 설법전이다. 1760년(영조 36)에 삼성(三性)이 중창하였고, 1889년에 법당을 중수하였다. 1994년에 진광(眞光)이 산신각을 지었다. 1999년 아미타삼성전을 복원하였다.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화길 499
명봉사(예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명봉사(예천)

명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두운이 소백산 자락에 창건하였다. 1662년(현종 3) 화재로 전소된 뒤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1668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신익 등이 중창의 뜻을 세우고 10여 년 동안 시주를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6·25전쟁 때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55년 주지 만준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에는 1735년(영조 11)에 세워진 문종대왕태실비(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와 941년(태조 241)에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보물)가 있다. 사찰 뒤 산에는 문종대왕 태실과 세도세자(장조) 태실이 복원되어 있다.

⌖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명봉사길 62
매림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고령군역사관광

매림서원

매림서원은 1707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선시대 의학자인 곽수강과 학자 오선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으나, 그 뒤 1981년에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매림서원은 크게 사당, 강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구에 풍방루를 비롯하여 서원 내에 비각과 육각형의 정자가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입구를 들어서면 서당이 있고 서당의 양쪽에 동재·서재가, 뒤쪽에 사당이 위치한다. 사당인 숭경사는 강당의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만불사(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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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역사관광

만불사(영천)

영천 만불사는 승려 학성이 기존과는 다른 현대 불교의 서원을 이루고자 1987년 서울, 부산, 대구에 포교원을 설립하며 시작되어, 1995년 완공한 만불산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에 앞서 만불보전 건립, 부처님 진신사리 이운, 노천 아미타입불 봉안 등 많은 불사를 진행 하면서 현대 불교의 전파와 함께 문화·의료·복지에 큰 힘을 쏟았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로는 아미타불을 비롯하여 국내 최대 법당 전불인 삼존불,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 진신사리 5과와 보리수나무가 있다. 이 밖에도 영천 아미타대불, 부도, 황동와불 열반상, 황동만불 대범종, 인등대탑, 만불보전, 관음전, 대웅전, 법성게 법륜, 수정유리광 여래불, 복주머니, 유자영가 등이 있다.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내서로 139-14
동해사(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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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동해사(상주)

동해사는 1398년(태조 7) 무학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1638년(인조 16) 희선이 중건, 1838년(현종 4) 용담 스님이 세 번째 창건하고 1879년(고종 16) 화영 스님에 의해 지금의 위치 상주시 동쪽 갑장산과 이어진 식산 중턱으로 이전되었다. 바다도 접하지 않으면서 이름이 동해사인 이 사찰은 태조의 왕사인 무학 대사가 상주의 지형이 떠나가는 배의 형국이라 이 절이 돛대 역할을 하여 멀리 동해로 항행 발전하라는 염원에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동해사라 지었다 한다. 안개가 자욱한 날은 정말 동해에 뜬 배가 짐을 가득 싣고 항구를 향해 돌아오는 것 같이 보인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특별한 문화재나 사적이 있는 곳도 아니고 큰스님이 거처하신 곳도 아닌 곳이지만 고려시대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크게 발전하였다. 이 지역에는 동해사와 더불어 당대의 명승인 나옹화상이 연악산에 갑장사를 세워 동해사와 같은 법통을 잇고 있다.

⌖ 경상북도 상주시 서곡3길 173
동악사(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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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동악사(예천)

동암(東庵)이라고 기록된 동악사는 냉정산(冷井山)남쪽산기슭에 위치하고 지세가 학을 닮았다고 하여 동학사라 불리었다는 전설이 있다.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지금은 기와조각이 나오고 있어 옛날부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현재 건물로 전면에는 요사가, 뒤에는 보광전이 있는데, 이는 신도들의 성금으로 1934년 3월 28일에 지은 것이며, 퇴락(頹落)이 심해져 이 건물 우측에 정면 3간, 측면 2간의 목조와가팔작(木造瓦家八作)지붕을 신도들의 기금에 의해 1983년에 준공했다. 다시 보광전이란 현판을 걸고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옮겨서 주존으로 봉안되고 있다.

⌖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충효로 448
동락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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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역사관광

동락서원

동락서원은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낙동강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장현광은 인조 때 의정부 우참찬을 역임한 문관으로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아 전장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동락서원이란 동방의 이락이라는 뜻으로 이락이 주자학의 상징인 것처럼, 동락서원이 조선 성리학의 근원이자 상징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선생이 서거하자 1655년 장현광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이 학문을 가르쳤던 부지암정사에 묘우를 지어 서원 체제를 갖추고 위판을 봉안해 부지암서원이라 개칭했다. 이후 1676년에 나라에서 동락서원의 현판을 받고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32년 묘우를 복원하고 1971년 서원 건물 전체를 다시 세워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경덕묘, 강당인 중정당, 동재 윤회재, 서재 근집재, 외삼문인 준도문이 있다. 이중 중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을 두었는데 마루를 회합장소로 썼다고 한다. 준도문 바로 앞에 400여 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는데 장현광 선생이 직접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독용산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독용산성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인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있다. 산성의 둘레는 7.7㎞(높이 2.5m, 폭 1.5m)에 이르며 산성 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 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이다.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500년전 성산가야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원년(1675년) 관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여,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있었으며,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발굴된 군기고에서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성주군에서는 1997년부터 성곽을 복원할 계획을 세워 훼손된 성곽의 일부와 아치만이 남아 있던 동문을 보수하여 원형으로 복원하였으며 성내에 관아터와 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독용산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이원정이 1677년에 편찬한 경산지를 통해 나타난다. 그 책에 따르면 합천과 거창의 군사가 배치되었고 성안에는 3개의 계곡, 객사, 군기고 등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정중휘가 개축할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강산면 사더래길 144
도정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도정서원

도정서원은 1640년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1526~1605)과 그의 셋째 아들 정윤목(1571~1629)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 ‘향현사’로부터 비롯되었다. 1697년(숙종 23)에 지역 사림과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강당채를 건립하여 도정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분이 훼철되었으나, 1997년 동재, 서재, 전사청, 누각을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서원 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지붕의 건물로 전면에 난간을 둘러 누각 형식으로 지었다. 서원 앞에 있는 읍호정은 1601(선조 34)년에 건립한 정자로 가파른 경사면을 깎아 내성천 바로 앞에 세워져 있다. 현재 이곳은 약포선생 종중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강변로 417
도안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도안서원

조선시대 학자 김우태와 김시태를 배향하기 위해 1783년(정조 7년) 공성면 도곡리에 도안서당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인근 산현리로 옮겨 세우며 도안사로 바꾸었고, 1870년(고종 7년)에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00여 년간 복원되지 못하다가 후손 김규호 씨의 의해 1999년에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이듬해인 2000년에 청도 김 씨 집성촌인 화동면 판곡리 원통산 아래에 자리를 잡아 강당과 묘우를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묘우와 강당은 일자형으로 좌묘우학 형태이며, 강당 앞에는 서원중건비가 있다.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37
도덕암(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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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역사관광

도덕암(칠곡)

도덕암은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에 있는 조계종 사찰이다. 435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다. 968년에 혜거국사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여 칠성암이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후 1632년 나한전을 건립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54년에 몽계당 선의대사가 도덕암이라 개칭하였다. 경내에는 극락전, 대웅전, 산신각, 종각, 요사채, 염화실 등이 있다. 또한 소장 중인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칠곡도덕암몽계당선의대사진영’과 조선 후기의 나한상(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인 나한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고려 광종이 혜거국사를 왕사로 모셔가기 위해 도덕암에 3일 동안 머무르며 마신 약수로 인해 속병이 모두 나았다는 일화를 간직한 ‘어정수’가 경내에 전해오고 있다.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 260
도남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도남서원

도남서원은 1606년(선조 39)에 창건하여 1676년(숙종 2)에 사액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동·서재를 세운 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다. 1871년(고종 8)에 철거하였으나 1992년 향토 유림에서 강당 등 일부를 재건립하여 복원하였고 2002년부터 유교 문화 관광개발 사업으로 정허루, 장판각, 전사청, 영귀문, 고직사, 일관당, 입덕문 등을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을 갗추었다. 도남이란 북송의 정자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 때 ‘우리의 도(道)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 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의 유학 전통은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세워진 서원이다. 수백년 간 이어오면서 정봉주, 김광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 이준 등 아홉 선생을 모시고 있으며 향사는 매년 음력 2월 8월에 행한다. 향사가 있을 때 외에는 닫혀 있어 경천섬 관광안내소에 문의하거나 영귀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2길 91 (도남동)
도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봉화군역사관광

도계서원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서원인 도계서원은 1610년(광해군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던 충절 이수형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이후 이유, 이보흠, 이여빈 등 충절의 본보기가 되었던 인물들을 추가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경내에는 묘우인 견일사, 강당인 공극루, 동재, 주소 등이 있었으나,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으며, 강당인 10칸의 공극루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도계서원 옆에는 존재하는 공북헌은 도촌 이수형(1435~1527)이 조선 단종 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뺴앗자 관직을 관두고 고향에 칩거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툇마루를 벽으로 길게 막아 문을 열면 오직 북쪽만을 내다볼 수 있도록 지어졌으며, 이는 단종의 능이 있는 영월에 북쪽 방향이기 때문으로 단종에 대한 충정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사제길 12
덕천서원(성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덕천서원(성주)

덕천서원은 1794년 김관석, 김천택, 김주, 김즙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서원으로 의성 김씨 집성촌인 윤동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의성 김씨 4인에 대한 배향 및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으나 이후 복원을 시작해 2019년에 완성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신문 ,중정당, 양진헌, 험효료, 전사청, 고사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덕양서원(의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의성군역사관광

덕양서원(의성)

덕양서원은 1625년(인조 3) 백촌 김문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김문기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형조참판·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1456년(세조 2) 사육신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8년 지방의 유학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경내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상충사, 경의당 등이 있다. 상충사에는 김문기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경의당은 유학을 공부하는 강당이다.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로 유림들이 모임을 갖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제관이 출입하는 신문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 숙소로 사용되는 동재·서재와 관리인이 생활하는 주소 등이 있다. 서원에서는 해마다 봄에 향사(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매길 101
덕암서원(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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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덕암서원(성주)

이 서원은 경산이씨(京山李氏)의 3현(賢) 삼익재(三益齋) 이천배(李天培)·백천(白川) 이천봉(李天封)·학가재(學稼齋) 이주(李)를 존모(尊慕)하여 현종 13년(1672)에 사림에서 덕암사(德巖祠)를 건립한 것에서 연유한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고종 13년(1876) 덕암서당(德巖書堂)으로 중건하였다. 지금의 서원 명칭은 1998년 정부와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묘우(廟宇), 내삼문, 동·서재 등을 건립하여 이듬해에 개칭한 것이다. 서원에 제향 된 이천배와 이천봉은 형제 사이로 함께 한강(寒岡) 정구(鄭逑)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천봉은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성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이주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백인당을 세워 후진교육에 힘쓰는 한편 동규(洞規)·향약(鄕約)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서원의 배치구성은 토석담을 두른 장방형 곽 전면에 서원을 출입하는 대문에 해당하는 솟을삼문인 건명문(建明門)이 있고, 북쪽에 강당과 그 앞으로 동·서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서당 뒤편에는 별도의 곽 내에 내삼문과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규모에 중앙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2통 칸 온돌방, 우측에 온돌방 1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로 되어 있다. 동·서재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규모에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며, 사당(祠堂)은 정면 3칸·측면 1칸 반의 규모로 되어 있다. (출처: 성주군 문화관광)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유월3길 29-72
덕산서원(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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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역사관광

덕산서원(영주)

덕산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서원으로, 최효원과 최장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 1894년(고종 31)에 금릉과 선산 지역 유림들의 공론으로 최효원(1742∼1795)과 최장간(1763∼1812) 2인을 향사하기 위해 덕산서원을 세우기로 결의하였지만 창건하던 중에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 이를 피해 현재 위치로 이건 하였다. 1972년 영주와 봉화 유림들의 동의를 얻어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 건립하였고, 1977년에 중건하였다. 매년 음력 3월 15일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최효원은 숙종 때 가선대부호조참판(嘉善大夫戶曹參判)에, 최장간은 영조 때 가선대부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戶曹參判 同知中樞府事)에 추증된 인물이다.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산길46번길 13-5
덕림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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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역사관광

덕림서원

덕림서원은 1740년(영조 16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오방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오방우(1313~1393)는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고려 충목왕 때 예부시에 급제하고 공민왕 때 오도안렴사를 지낸 해주오씨 장기 입향조이다. 덕림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으며, 그 뒤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 현존하는 건물은 사당인 정헌묘, 강당, 동재, 서재가 있다. 사당에는 오방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사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신문은 향사 때 제관의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길13번길 47
대적사(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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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역사관광

대적사(청도)

대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876년 보조 선사가 토굴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보양 선사가 중창했다고 하며,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89년 서월성해 승려가 크게 중수하여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이는 극락전은 불교도의 이상향인 극락정토를 표현하고 있는 법당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정면에 극락전을 중심으로 향각과 동측당, 서측으로는 지장전이 위치하고 극락전 뒤편 서측으로 산령각이 석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대적사의 극락전은 1985년 1월 8일에 보물 제836호로 지정되었다.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13
대운암(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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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역사관광

대운암(청도)

청도팔경의 하나인 용각산 지맥인 오례산 산정에 위치한 대운암은 1868년(고종 5년)에 부암선사가 범굴에서 수도하다 현몽에 의해 창건하였다. 1900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신범해화상이 중창하고, 경산시 자인면 반룡사에서 관세음보살불상 1구를 옮겨와서 봉안하였다. 이 관음불상은 1994년 12월부터 실시한 불상 개금 때 목조불상으로 판명되고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순치 11년 경산 자인 반룡사에서 조성되었다는 묵서가 있어 1654년(효종 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 법연화경 목판서와 해설 본이 있어 불경에 관한 연구와 한글연구에 귀중한 문화재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정무한은 청도천의 맑은 물이 발아래다 흰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고, 산악연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산수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가경이다.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청매로 117-320
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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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역사관광

대전사

신라 문무왕(文武王)12년(672)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사찰인 청송 대전사(大典寺)는 주왕의 설화에서 주왕의 아들인 대전도군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본래 매우 큰 절이었으나 여러 차례의 화재로 상당부분 소실되었다. 지금은 보광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명부전, 응진전, 산령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가람의 여러 곳에 도출되어 있는 주초석들이 옛 사찰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대전사의 부속암자로는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다. 조선 현종13년1672 임진왜란 때 불탄 보광전을 중창하였으며, 1995년 이후 명부전과 산령각, 탐진당 등을 이전 및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 청송여행)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공원길 226
대승사(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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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경시역사관광

대승사(문경)

대승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1644년(인조 22)과 1722년(경종 2)에 의현, 종수 등이 중수하였고, 1831년(순종 31) 구담이 중창하였다. 1922년 큰 화재로 불타 의운, 덕산이 복원시켰는데, 1956년 또다시 큰 화재가 발생하여 명부전과 극락전만 남고 소실되어, 1960년 남인 대휴 등에 의해 삼창 되었다. 사불산 산마루에 있는 사면 석불상은 삼국유사불산조에 따르면 587년(신라 진평왕 9) 커다란 비단 보자기가 공덕봉 중턱에 떨어졌는데,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4불암이 싸여 있었다고 한다. 왕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와서 예배하고 절을 짓게 하고 대승사라고 사액하였고, 망명비구에게 사면석불의 공양을 올리게 하였는데, 망명비구가 죽고 난 뒤 무덤에서 한 쌍의 연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이름을 사불산 또는 역덕산으로 불렀다. 대승사는 국보 대승사목각탱부(아미타여래설법상) 및 아미타불사에서 나온 금자화엄경(7권), 불사리 1과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 윤필암, 묘적암, 상정암, 관음암, 문수암 등이 있으며, 금강반야경오가해설의(1415)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대승사는 해발 600미터 고지의 대자연 속에서 스님들과 일상을 같이 체험하며, 차담, 예불, 윤필암, 묘적암, 사면석불 포행과 쉼이 있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참여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프로그램이다.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승사길 283
대비사(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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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역사관광

대비사(청도)

대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신라 시대 6세기경에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 중 하나로 세워진 소작갑사(小鵲岬寺)가 전신이다. 대비사는 대비갑사(大悲岬寺)로도 불리는데, 고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이름을 대비사(大悲寺)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당시 신라 왕비가 수양 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대비사는 566년(신라 진흥왕 27)에 신승이 세우고 600년(진평왕 22)에 원광국사가 보수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박곡리 마을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비사 대웅전은 1985년 1월 8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16세기 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의 구성도 꼼꼼하고 튼튼하며, 이를 이루는 세부 부재들의 형태를 보아 조선 초기의 건축 수법을 볼 수 있다.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590
대둔사(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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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역사관광

대둔사(구미)

구미 대둔사는 건축기법와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석가여래좌상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그리고 3동의 요사가 있고,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대웅전과 대웅전 내부에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신라 눌지왕 30년(446)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에 몽고족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것을 충렬왕 때 재건하였고, 그 후로 최근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안쪽은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섬세하게 만들어 놓았으며 세부 재료를 받치는 부분을 색다른 수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옥관로 691-78
대곡사(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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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역사관광

대곡사(의성)

대곡사는 비봉산(579m) 동쪽 자락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이다.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왕사인 지공선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대국사(大國寺)라 하였는데, 이는 지공이 중국 원(元)과 고려 두 나라를 다니면서 불법을 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 대곡사 탑 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을 볼 때 그 이전에 이미 창건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더군다나 고려 말의 이규보가 대곡사를 탐방하고 지은 시문 제목에 ‘대곡사’라 되어 있어 13세기 초중반에 이미 절이 있었고, 이름이 대곡사였음을 알 수 있다. 비봉산 일대에 본원을 비롯한 아홉 개의 암자를 지어 불교를 융성하게 하였으며, 또한 호국불교 정신으로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대찰이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범종루가 있다. 대웅전 앞에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다층석탑도 볼 수 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세종(1418~1450) 때 교종(敎宗)에 속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05년(선조 38) 탄우(坦祐)가 중창하면서 대웅전과 범종루·요사 등을 새로 지었다.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
단구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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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단구서원

단구서원은 문희공 이세기 선생을 주벽으로 하고, 문효공 이천 선생, 송와공 이종윤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원래 송와공을 제향 하는 모현서당이 철종 13년(1862)에 건립되었는데,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어 1983년에 단구서원을 창건하였다. 이세기는 고려 충렬왕 때 명신으로 문장에 능하였으며, 밀직부사, 예문관대제학, 동지춘추관사, 검교정승 등을 역임하였다. 이천은 이세기의 장자이며, 고려 충렬왕 25년(1299)에 국자시 장원하였고, 충혜왕 4년(1343)에 첨의평리상의 동지공거를 겸하였다. 충목왕 즉위에 원나라 사신으로 다녀와서 판밀직사사 겸 서연관이 되고, 곧 정당문학에 올랐다. 충목왕 원년(1345)에 첨의참리, 문하시랑, 동평장사,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뒤 월성군에 봉해졌다. 이종윤은 이세기의 6세손이다. 세종 13년(1431) 경주 월남리에서 출생하였고,ㅡ 세조 13년(1467)에 문과급제하여 영창전참봉이 되었다. 내자시주부, 예조좌랑, 정랑으로 승진하였다. 성종 13년(1482)에 사간원헌납, 사헌부장령, 제용감 첨정, 봉상시 부정 등을 역임하고 시강원보덕이 되었다. 성종 20년 사헌부장령 집의를 지냈으며, 성종 21년(1490)에 제주목사로 교육을 장려하고 풍속을 순화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과만에 제주민의 유임상소로 연임중 제주관아에서 연산 원년(1495)에 65세러 별세하였다.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단구서원길 8-3
농암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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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역사관광

농암종택

농암종택은 농암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며, 직계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다. 최초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영천 이씨 이헌으로, 농암 이현보 선생의 고조부이다. 종택은 2,0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당,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로 구성된 본채와 긍구당, 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긍구당은 1370년 전후 이헌이 지은 건물이며, 명농당은 1501년 이현보 선생 나이 44세 때 귀거래의 의지를 표방하고 지은 집이다.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33
노봉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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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노봉서원

노봉서원은 조선 단종(재위 1452∼1468) 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다 순절한 죽림 권산해(∼1456)의 절의를 본받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산해는 조선 전기의 의인이다. 세조 원년(1455)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두 임금 섬기기를 거부하며 낙향했다. 그 뒤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 노봉서원은 정조 18년(1794)에 세웠으나, 고종 3년(1866)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고, 이후 1921년 지방 유림들의 지원으로 다시 세웠다. 건물은 내신마을의 옛 신당초등학교 옆 노사봉 아래에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5동의 건물로 1곽을 이루고 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교육을 위한 강당인 몽양재가 있고, 뒤쪽으로 전사청이 있다. 그 오른쪽에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인 숭의사가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막돌쌓기한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도록 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앞면만 둥근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읍 내신2길 301
노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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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역사관광

노계서원

노계서원은 조선 후기 풍기 지역 사림들이 진중길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노계사에서 유래한다. 노계서원 경내에는 상현사·강당·행정·전사청 등이 남아 있다. 사당인 상현사는 진중길과 한산두의 위패를 모셔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학 공간인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반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중앙에 마루를 깔고,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사청의 북쪽 방은 앞쪽은 창고로 활용되고,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다. 행정은 진중길이 옛 봉황대[鳳凰臺] 자리에 은행나무를 심고 세운 정자이다. 후에 후손들이 중건·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노좌로29번길 28
남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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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역사관광

남성재

남성재는 고려시대의 문신 영일 정 씨의 시조 형양공 정습명(?~1151)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로 1722년 후손들이 묘소에 묘단을 짓고 제사를 지냈으며, 1742년 현 위치에 묘단과 석상을 신축하였다. 이후 1751년에 묘단 위에 비를 세웠으며, 이듬해 1752년에 비로소 재실을 건립하였다. 창건한 재실이 오래가지 못하고 퇴락하여, 경사가 완만하고 지대가 높은 곳에 1784년에 재건하기 시작하여 1785년에 19칸 규모로 완성하였다. 그러나 규모에 비해 재목이 약하여 기둥이 기울고 도리가 처지며 서까래가 부러지는 등 많이 훼손되어 1801년에 옛 관청의 객사에 개축하기 시작하여 정당 3칸, 재실 4칸, 부곡채를 합하여 총 14칸으로 1808년에 완성하였다. 이것이 현존하는 남성재의 모체이다. 1858년부터 수년에 걸쳐 중수한 바 있으며, 현재는 대문채, 동재, 서재, 재실 등이 남아 있으며 매년 4월 영일 정씨 대종회에서 시조 형양공 단향제를 지낸다.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남성안길 18-16
남미질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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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북구역사관광

남미질부성

남미질부성은 포항시 흥애읍 남성리, 중성리, 망천리 일대에 있는 신라시대 성곽이다. 흥애읍 남쪽 평지에 돌출된 구릉지를 이용하여 축조한 토성이다. 흙으로 쌓은 성벽의 둘레는 약 2km이다. 성 안에는 남성리 못산마을이 있고, 이 마을 서쪽 구릉지에는 성주의 무덤인 듯한 고분이 9기 정도 있다. 못과 우물도 한 개씩 남아있다. 삼국사기에 504년 9월에 주민들을 동원하여 파리성, 미실성, 진덕성 등 12개의 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실성이 지금의 남미질부성에 해당된다. 동국여지승람 22권 흥해군 고적조에 따르면 고려 태조 13년 북미질부성의 성주 훤달과 남미질부성의 성주가 함께 항복하여 왔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고려 초기에는 이 성이 흥해군 일대를 다스리는 중심 성곽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축성 당시의 이름을 알 수 없어 후대에 행정구역이나 산 이름을 따서 임의로 이름이 붙는 대부분의 성곽과는 다르게 남미질부성은 축성 당시의 이름이나 연대가 확실하고 포항 지역에 남아 있는 성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경주 선덕여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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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선덕여왕릉

경주 낭산의 정상에 있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재위 632∼647)은 646년경에 조성되었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원형 봉토분이며, 자연석을 이용해 봉분 아래에 2단 보호석을 쌓은 것 외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딸로 태어나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 의식에 의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재위 16년간 첨성대와 분황사, 특히 신라 최대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으며,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와 명장 김유신과 함께 신라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에 의하면 선덕여왕이 죽을 날을 예언하며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도리천은 불교 설화의 수미산 밑을 이야기하는데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 신하들이 묻자, 낭산 기슭이라 대답하였고, 이 기슭에서 장사를 지냈다. 이후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다. 사천왕이란 도리천의 호불신으로 선덕여왕의 무덤은 결국 도리천에 있는 셈이 되어 비로소 신하들이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경수 선덕여왕릉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변에 신문왕릉, 효공왕릉, 신무왕릉, 효소왕릉 등이 있다.

⌖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남강서원(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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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역사관광

남강서원(청도)

남강서원은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 있는 서원이다. 1864년 조선시대 학자인 박한주와 박수춘을 배향하기 위해 사림의 건의로 창건되었다. 1868년 훼철되었으나 밀양 박씨 국담 공파 사우당 문중의 기부금으로 2000년에 건립하였다. 문중에서 매년 3월과 8월 향사를 지내며 관리하고 있다. 전면에 세운 산형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 기와집인 강당이 있고, 양 측면에는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였다. 강당 뒤의 경사진 대지 위에는 사당인 양현사가 있다.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1길 62
낙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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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낙암서원

상주시 중동면에 있는 낙암서원은 1745년(영조 2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담수, 김정룡, 김정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그 뒤 묘우 자리에 단소를 만들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강당과 1칸의 장판각이 있으며, 동재·서재와 전사청 등은 그 터만 남아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장판각은 문집의 판각을 보관하는 곳인데, 현재 판각은 없고 판각된 문집만 몇 권 남아 있으며 매년 한 차례의 향사를 지낸다.

⌖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대바위길 183-13
낙봉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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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역사관광

낙봉서원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낙봉서원은 1646년(인조 24) 유림의 뜻으로 세워진 조선 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으로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였다. 1787년(정조 11)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931년에 지방 유림의 발의로 복원된 이래 제향을 지내오다가, 1977년 묘우를 다시 세우고 김숙자, 김취성, 박운, 김취문, 고응척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경내에는 사우인 상덕묘, 강당인 집의당, 동재인 세심재, 서재인 정교당, 그리고 신문과 양정문 등이 있다. 이 중 집의당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1칸짜리 방이 1개씩 있는 구조의 공간으로 서원의 여러 행사 장소로도 이용된다. 예전에 유생들이 거처하며 학문을 닦던 거경재와 명성재는 지금은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며 매년 3월 두 번째 정일에 향사를 지낸다.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1길 84-7
나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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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나산서원

경주시 양남면 나산리 큰 마을에 있는 나산서원은 조선 전기의 문신 백촌 김문기를 배향하는 곳으로 일명 나산사라고도 한다. 김문기 선생과 나산리 입향조 김제학 선생의 후손들이 매년 향례를 올리는 이 서원은 경주 최남단에 위치하며 해안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설립된 서원이다. 나산리 입구 마을회관에서 서원까지 걷다 보면 안동 장씨 양반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나산서원은 대지 800평에 묘우 1동 3칸, 강당 1동 4칸, 동재 1동 3칸, 서재 1동 3칸, 전사청 1동 3칸, 외삼문 1동, 내삼문 2동, 관리사 등을 갖춘 전형적인 조선시대 서원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1780년(정조 4)에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36년에 중건하였다. 매년 3월 중해일에 향사를 치른다. 김문기는 1399년(정종 1)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녕, 자는 여공이다.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정언,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456년(세조 2) 성삼문, 박팽년 등이 주동한 단종 복위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1778년(정조 2)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1791년 단종의 무덤인 장릉의 충신단에 배향되었다.

⌖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산1길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