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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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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낙화암

낙화암은 부여군 부소산 북쪽 백마강(금강) 변에 서 있는 바위 절벽이다. 백제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지는 모습이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아 낙화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절벽에는 조선 후기 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쓴 낙화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부소산성을 통해 직접 올라가 정자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올려다보는 것도 좋다. 낙화암 아래에는 고란사와 고란사 선착장이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부소산성, 고란사 외에 부여 관북리유적,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 구아리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여향교,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낙산사 의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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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낙산사 의상대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바닷가 절벽 위에 자리한 정자다. 의상대의 ‘대’란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집을 말한다.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와 해안 절경이 빼어나 양양 8경에 이름을 올렸고, 낙산사에서 반드시 들려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소개한 관동팔경(강원도 영동의 여덟 군데 명승지) 중 하나로, 동해안 일출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이라는 이름으로 명승에 지정되어 있다. 낙산사 의상대는 의상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25년에 지은 정자다. 의상대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낙산사를 창건한 고승으로, 절 곳곳에 그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지을 때 지금 의상대가 있는 자리에서 산세를 살피고 좌선 수행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의 의상대는 1995년에 육각정으로 복원된 모습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낙봉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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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역사관광

낙봉서원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낙봉서원은 1646년(인조 24) 유림의 뜻으로 세워진 조선 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으로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였다. 1787년(정조 11)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931년에 지방 유림의 발의로 복원된 이래 제향을 지내오다가, 1977년 묘우를 다시 세우고 김숙자, 김취성, 박운, 김취문, 고응척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경내에는 사우인 상덕묘, 강당인 집의당, 동재인 세심재, 서재인 정교당, 그리고 신문과 양정문 등이 있다. 이 중 집의당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1칸짜리 방이 1개씩 있는 구조의 공간으로 서원의 여러 행사 장소로도 이용된다. 예전에 유생들이 거처하며 학문을 닦던 거경재와 명성재는 지금은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며 매년 3월 두 번째 정일에 향사를 지낸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1길 84-7
나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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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나산서원

경주시 양남면 나산리 큰 마을에 있는 나산서원은 조선 전기의 문신 백촌 김문기를 배향하는 곳으로 일명 나산사라고도 한다. 김문기 선생과 나산리 입향조 김제학 선생의 후손들이 매년 향례를 올리는 이 서원은 경주 최남단에 위치하며 해안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설립된 서원이다. 나산리 입구 마을회관에서 서원까지 걷다 보면 안동 장씨 양반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나산서원은 대지 800평에 묘우 1동 3칸, 강당 1동 4칸, 동재 1동 3칸, 서재 1동 3칸, 전사청 1동 3칸, 외삼문 1동, 내삼문 2동, 관리사 등을 갖춘 전형적인 조선시대 서원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1780년(정조 4)에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36년에 중건하였다. 매년 3월 중해일에 향사를 치른다. 김문기는 1399년(정종 1)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녕, 자는 여공이다.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정언,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456년(세조 2) 성삼문, 박팽년 등이 주동한 단종 복위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1778년(정조 2)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1791년 단종의 무덤인 장릉의 충신단에 배향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산1길 27
낙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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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역사관광

낙동서원

낙동서원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곡역사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단양우씨의 현조인 우현보(禹玄寶)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우배선(禹拜善)을 향사하기 위해 덕동서원이라는 명칭으로 1708년(숙종 34년)에 건립되었다.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건물도 없어졌으나 1965년 단양우씨 판서공파 17대손인 우종식, 우종묵 형제가 사비로 다시 건립하여 낙동서원으로 명칭을 변경한 후 향내 유림에 헌납하였다. 현재는 우현보와 우배선 외에 우탁(禹倬), 신현(申賢), 우길생(禹吉生)을 함께 모시고 있다. 그중 우탁은 본래 예안의 역동서원에서 향사하였으나 역동서원이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자 낙동서원에서 다시 모신 것이다. 서원은 사당인 계현사와 강당인 정교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3칸의 강당에는 ‘낙동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동쪽 재실은 처인헌, 서쪽 재실은 지경재라 당호를 붙이고 편액을 걸었다. 전면으로 돌출된 부분은 2칸의 누마루이고 나머지 2칸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재실을 배치한 조선시대 일반 서원의 강학 공간 배치와 달리 낙동서원은 ‘ㄱ’ 자형의 건물 안에 강당과 두 개의 재실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매년 음력 3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로7길 32
낙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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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낙덕정

명종 즉위년(1545)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학자인 하서 김인후가 관직을 그만두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던 곳이다. 김인후는 낙덕암 주위의 산세를 유난히 좋아했던 것으로 전하며, 자연을 즐기는 한편 후세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쳤다. 고종 4년(1900)에는 훗날 이곳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올 것이라는 김노수의 예언을 따라 낙덕암 위에 정자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북픙면 상송리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과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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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과 석조여래입상

대한 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과거 운흥사와 관련된 문수암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에 1987년 다정스님이 문성암을 창건하였다. 2층 건물의 구조로 1층은 종무소로 사용하며 2층은 참회전이라 하여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외 백호선원, 지장전, 문수선원 등의 건물이 있으며 지어진지 오래되지 않았고 다른 사찰과는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아 정갈하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문성암이라는 이름대로 글을 매우 잘 하는 사람이 출현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사찰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문수는 문수대성(文殊大成)이며 여기에서 문성(文成)을 따서 암자의 이름을 지었고, 문수가 지혜를 의미하기 때문에 선원 터로 적합하다고 여겼다고 하며, 문수보살이 화현한 터라고도 한다. 문성암을 세운 다정스님은 죽림사와 운흥사를 오가며 수행할 때 문성암 앞의 커다란 소나무를 보고 사찰이 있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또 운흥사 초가에서 기거할 때 스님이 문성암 쪽에서 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꿈을 꾸고 절을 짓고자 결심하였다. 처음 터를 닦을 때 같이 일을 하던 보살이 꿈을 꾸었는데 불이 나서 그 불길이 하늘을 태웠다고 하는 길몽을 꾸었다고도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봉황면
나대용생가및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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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나대용생가및묘소

오륜마을 깊숙이 나대용 장군의 생가가 초가로 복원되었는데 그 초가에서 대대로 후손들이 살다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새로 단장했다. 나대용 장군은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 막하에서 거북선 건조에 전력을 기울인 실질적인 공로자로 평가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인 이순신 장군을 훈련원주부의 신분으로 찾아가 그 제작을 협의하니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았고,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북선 3척을 처음으로 진수했다 한다. 충무공과 함께 사천승첩을 비롯하여 당포전, 당항포전, 견내량전, 안골포전, 노량대첩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쾌속정인 해추선을 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충무전서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뒷받침해 주고 있다. 묘소는 생가가 있는 마을에서 약 3㎞ 떨어진 무평면 대도리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모퉁이만 돌아가면 나대용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소충사가 있다. 매년 4월21일 소충사 에서는 나대용장군 추모제가 열린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문평면 오륜길 28-5
나주 영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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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나주 영모정

나주 영모정은 중종 15년, 귀래정 임붕이 건립한 정자로 이 지방 출신의 명문장가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글을 배우고 시작(詩作)을 즐기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초기에는 붐의 호를 따 ‘귀래정’이라 불렀으나 명종 10년, 임붕의 두 아들 임복과 임진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재건하면서 ‘영모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82년과 1991년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한 무고 주 5량 가이다. 세부양식은 두벌대의 다듬돌 바른 층 쌓기의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최근에 다시 그 위에 원형 장대석 주춧돌을 세웠다. 그 위에는 아랫부분을 잘라버린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보와 장혀, 도리를 결구하였다. 굵은 보를 걸치고 동자주를 세워 마룻보를 걸치고 판대공과 파련 대공을 섞어 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설치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시면 회진길 14-22
낙동강 경천대(경천대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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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낙동강 경천대(경천대 전망대)

깎아지른 절벽과 노송으로 이루어진 절경이 빼어난 곳으로 하늘이 스스로 내렸다고 해서 일명 자천대로 불린다. 그러나 채득기 선생이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이란 글을 새긴 뒤 경천대로 바꿔 불렀다. 조선초 이 지역 출신의 선비인 우담 채득기 선생이 지은 정자인 무우정이 절벽 위에 위치한다. 경천대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도 이용되었으며 조선시대 장군 정기룡이 하늘에서 내려온 용마를 얻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정기룡이 바위를 파서 말먹이통으로 쓰던 유물이 남아 있다. 상주에서는 선비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하여 김상헌과 이식, 이만려 등의 문객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옥주봉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멀리 주흘산(1,106m)과 학가산, 낙동강과 백화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경천대 내에는 전망대, 인공폭포, 경천대 어린이랜드, 야영장이 있으며 노송숲을 거쳐 전망대에 이르면 시원한 낙동강 물길과 주변 경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까지 오르는 울창한 솔숲은 걷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절벽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대단히 멋진 곳으로 휘어진 소나무 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과 강변 기암괴석을 볼 수 있다. 전망대로 오르는 등산로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어 산림욕장으로 알맞다. 인근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전사벌왕릉과 전고령가야왕릉, 충의사 등 문화재가 많다. 그리고 2001년 가을에는 경천대 남쪽 강가에 MBC 드라마 의 저잣거리 세트장이 들어서서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52
군산 발산리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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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역사관광

군산 발산리 석등

발산리 석등은 고려초기 작품이며 높이는 2.5m 로 기둥돌의 용무늬 조각이 특징이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에서 일제강점기 때 시마타니가 반출하였다. 현재 위치는 발산초등학교 건물 뒤편의 정원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발산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1900년대 일본인 농장주 시미타니의 집과 농장이 있던 곳으로 그 당시 일본인 농장주가 수집했던 문화유적이 다량 보존되어 있었다. 하대석에는 8장의 연화복련(연꽃잎 2장이 겹쳐진 모습)이 새겨져 있고 간주석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용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처럼 기둥돌에 용이 새겨진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작품이다. 또한 지대석은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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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역사관광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 가옥)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군산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지은 주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식 주택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 군산에 거주하였던 일본 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45년 해방 후 적산 가옥으로 구 호남 제분으로 넘어가 한국 제분의 소유로 되어 있고, 2005년 6월 18일 국가 등록 문화유산 제183호로 지정된 이후 군산시에서 관리하면서 관람객을 위해 개방하고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한국 영화가 이 주택에서 촬영될 정도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군산 원도심의 남서쪽 가장자리인 신흥동의 주택가 안쪽에 남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대규모 목조 주택 2층 건물로 벽체는 심벽에 목재 비늘판벽과 회벽으로 마감하였고, 지붕은 박공지붕과 합각지붕에 기와를 얹어 마감하였다. 자연석을 깐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이 놓이고 그 위에 가느다란 사각기둥이 세워져 지붕 가구가 짜인 방식이다. 현관 부분의 지붕은 박공지붕과 모임지붕 형식인데, 처마 밑에 함석판을 덮은 차양이 덧달아져 있다. 2층 부분의 지붕은 합각지붕 형식으로 처리되었으며, 전면에 부섭지붕이 달려 있다. ‘ㄱ’ 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두 건물 사이에는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으며, 정원 내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본채 뒤쪽으로 뒷마당에는 또 다른 부속채와 우물, 화장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구영1길 17
군위 남천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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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군위 남천고택

남천고택은 군위군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부림 홍씨의 집성촌인 한밤마을(부계면 대율리)에 있으며, 상매택 또는 쌍백당으로 불리어졌다. 부림홍씨는 입향조인 고려 문하사인(門下舍人) 홍로선생이 군위군에 정착하면서 이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었고, 남천고택은 홍노의 10 세손 홍우태의 살림집으로, 이후 맏손자들이 대대로 물려받으며 2명의 과거급제와 1명의 진사를 배출한 집이다. 마을 산세에 따라 북서쪽을 바라보며 ㄷ자형 안채 앞에 ㅡ자형 사랑채가 약간 비켜 위치하고, 안채 뒤 담장 안에는 사당이 있다. 해방 후에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었고, 대문채 위치가 바뀌는 등 변화가 있었다. 여러 차례 고쳐지었으며, 상량문에 따르면 사랑채는 헌종 2년(1836)에 지어진 것이다. 원래 이 가옥은 '홍(鬨)'자형의 독특한 배치를 이루고 있었으나, 해방 후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었고, 대무채가 옮겨지면서 향이 바뀌었다. 안채는 '冂'자형으로 각 방의 배치에서 실용성을 보여준다. 건넛방과 고방 사이에는 헛간을 두어 아궁이를 설치하였고, 상부에는 다락을 만들어 대청에서 사다리로 오르게 하였으며, 다락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여 난간을 두었다. 안채 이외에도 'ㅡ'자형의 사랑채와 사당이 있으며, 그 주위는 자연석 돌담으로 경계를 짓는 등 다른 거주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한밤5길 19
군위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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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군위향교

향교는 국가에서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기르는 지방 교육 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시나 문장을 짓는 법과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가르쳤고 중국과 조선의 성현에게 제사를 올렸다.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졌으며, 봄가을에 공자에게 석전대제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피운다. 군위 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동부리 마정산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선조 40년(1607) 선방산 남쪽으로 자리를 옮겨 지었다. 그리고 숙종 27년(1701)에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오늘에 이른다. 건물의 배치는 제일 높은 곳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을 두고 그 앞으로 공부하는 건물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학생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서로 마주한다. 명륜당과 마주 보는 앞쪽에 누각인 광풍루와 출입문이 동남향으로 자리한다. 광풍루는 1926년에 세웠고, 서재는 한국전쟁 이후에 다시 지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규모에 ㅅ자형 지붕을 가진 건물이다. 실내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 2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조선 시대 때 향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교관이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았다. (출처 : 군위군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동서2길 17-28
꽃절(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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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역사관광

꽃절(화암사)

음성군 원남면의 사향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꽃절은 고려 시대부터 내려왔다고 전해지며, 여러 고증 문헌자료와 지도 등에 기록되어 있다. 1937년에 김승원이 꽃절을 청진암으로 변경하여 창건하였고, 1981년 신도회에서 청진암을 화암사로 바꾸었다. 2000년도에 화암사는 다시 원래대로 꽃절이 되었다. 이곳에는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강당을 겸하는 관음전이 있다. 사찰에 전해지던 불상 7점 가운데 3점은 흙으로 제작한 것으로, 음성읍 한벌리 수복암으로 옮겨졌는데 1점은 부서지고 다른 2점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불상 가운데 하나인 약사여래 불상이 보관되어 있고, 법당에는 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덕로 330
금곡동 율리 바위그늘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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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역사관광

금곡동 율리 바위그늘유적

금곡동 율리 바위그늘유적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 평야와 마주 보고 있는 금정산 서쪽 능선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유적 뒤편에는 높이 6m 내외의 암벽이 병풍처럼 길게 둘러싸고 있는데, 유적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특별한 훼손 없이 당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72년 12월부터 1973년 1월 사이에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바위그늘 내부에 조성된 3개의 야외노지(野外爐址)와 바위그늘 바깥의 적석유구(積石遺構) 1기를 확인하였다. 바위그늘 아래쪽으로는 즐문토기 등이 포함된 패총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발굴조사로 인해 지금은 바위그늘유적만 남아 있다. 바위그늘 내부와 패총에서는 신석기시대 후기~말기 단계의 즐문토기류와 함께 마제석부(磨製石斧), 지석, 석착(石鑿), 마제석촉(磨製石鏃) 등이 출토되었는데, 출토 유물로 볼 때 신석기 후기부터 청동기시대까지 거주 공간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바위그늘주거와 패총이 복합된 유적으로 규모, 입지,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굴 등 어패류를 획득하기 위한 임시 거주지로 추정되지만, 유적 입지의 특수성이나 자안패형(子安貝形) 토제품, 타원형 토제품 등 일상용품과는 다른 성격의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의례공간(儀禮空間)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금곡동 율리 바위그늘유적은 신석기시대 말기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의 문화양상과 당시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부산은 강과 해안을 끼고 있어 패총유적이 많은 편이지만, 이처럼 산지의 바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적은 전국적으로도 율리 바위그늘유적이 유일하다. (출처 : 국가유산청)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김완장군묘소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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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영암군역사관광

김완장군묘소 및 신도비

조선 중기 명장 양무공 김완(1577∼1635) 장군의 묘소이다. 광해군 7년(1615)에 과거급제하여 고산진절제사 등을 거쳐 황해도 병마절도사에 올랐고, 여러 공이 인정되어 죽은 후 병조판서로 벼슬이 높여졌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 장군 아래에서 용맹을 떨쳤고, 인조 12년(1624)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묘는 원래 해남면 동북선산에 있던 것을 숙종 44년(171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묘역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세운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박세채가 글을 짓고 조명교가 글씨를 쓴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금정산성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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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역사관광

금정산성 동문

금정산성 네 개 문루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전망이 뛰어난 동문은 금정산 주능선의 해발 415m의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민들이 가장 근접하기 쉬운 편이라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부설비의 기록에 의하면 1807년 늦가을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한 달 만에 동문이 완성되었다고 전해진다. 동문은 홍예식문[虹霓式門]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단층 문루이다. 금정산성 동문의 창건 유래를 보면, 동래부사 정현덕이 동문과 서문의 재건에 힘쓰고 있을 때의 이야기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래부사는 두 성문을 아주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인 두 석공을 찾아 스승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하였다. 동문을 맡은 스승은 야욕과 욕심이 많아 웅대하게만 짓고자 하였으나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이 앞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짓게 되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 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 공사를 하였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금정사(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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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금정사(김포)

금정사는 신라 진흥왕(540~576)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고상사’라고만 전하여 왔으나 달리 전해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왕은 자신의 아버지 원종으로 추증하고 어머니 역시 인헌왕후로 추증하여 그들의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고 장릉이라고 하였다. 인근에 있던 고상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장릉을 보호하는 사찰로 재건하면서 ‘봉릉사’라 칭하게 되었다. 1930년에 당시 주지 영송화상이 사찰을 중수하였고, 1938년 주시 성화대사가 다시 한번 크게 중수하였다. 6·25전쟁 이후 사찰을 정녕스님과 고근스님이 대웅전과 범종각을 새로 지었다. 또한 능을 지킨다는 봉릉사에서 절의 뒷산인 금정산과 법당 앞에서 좋은 물맛이 솟아나므로 ‘하늘우물’이라는 의미의 ‘금정사’로 개명하여 김포지역 포교와 수행도량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금정사는 경기도 전통사찰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기도 김포시 승가로 125 (풍무동)
금용암(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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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역사관광

금용암(부산)

금용암은 쇠미산의 작은 암자로, 입구의 송림길과 함께 불국 수미산 산속에 홀로 묻힌 듯 자연과 동화되어 있는 사찰이다. 금용(金蓉)이란 금색 연꽃이란 뜻으로, 불교사상에서 연꽃과 금강석 또는 금과 함께 대표적인 불교사상의 상징을 따서 사찰명을 지었다. 조선 후기 철종 때 이인덕행이라는 보살이 1919년 10월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대봉이라는 법명을 받아 쇠미산 기슭에 기와집으로 인법당 3칸을 짓고 금용암이라 불렀다. 금용암이라는 이름은 쇠미산의 별칭인 금용산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금당인 염화전과 삼성각, 요사인 원통료·향적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2년 지은 염화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며, 안에는 석가여래 좌상을 중심으로 약사여래 좌상과 관음보살 좌상이 배치되어 있고, 뒤편에는 1993년 조성한 후불탱을 비롯하여 지장탱·신중탱이 있다. 삼성각 안에는 삼신할머니 탱화가 있는데, 불상이 아니라 여인 세 명을 그린 것이다. 이곳 삼신할머니는 오래전부터 득남을 기원하는 이들에게 영험이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절 담벽 아래 비탈길에 대봉의 상반신이 선각된 사적비가 있다.

부산광역시 연제구 성지곡로 111
금수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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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역사관광

금수사(부산)

금수사는 구봉산 아래 자리한 아담한 사찰이다. 금수사 계단 앞으로는 산복도로가 잘 나있으며,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좋은 도심 속 사찰로 알려져 있다. 금수사는 한국불교원효종의 총본산으로도 유명하다. 2003년 입적한 원효종 종정 법홍스님이 주석한 이곳에는 원효대사의 유지와 종풍을 받들고자 하는 수많은 사부대중의 귀의처로서 자리매김하였으니 산중이 아닌 일반 백성들 속에 중생들을 깨우쳐 주고자 했던 원효대사의 화쟁 무애사상이 빛나는 사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불교가 낳은 불멸의 성사 원효대사의 유지를 받들고, 호국일념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사명대사의 족적이 남아 있는 곳, 구계산 금수사는 이러한 역사적 터전 위에 지금 불법홍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또한 금수사 경내에 호국영각을 짓고 기미년 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과 안중근, 김좌진, 안창호, 윤봉길 등 애국독립지사 22인의 위패를 모셔 매년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으니 호국도량으로서의 그 위상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533-1
금선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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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역사관광

금선사(서울)

금선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솔 내음이 가득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청와대와 경복궁이 위치한 인왕산이 바로 보이는 종로구 구기동에 소재하고 있다. 이북5도청을 지나서 북한산국립공원 비봉코스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첫 번째 관문인 삼각산 금선사의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도량의 전각은, 법회를 보는 반야전을 지나면 2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중앙에 있으며, 소나무를 지나서 108계단을 오르면 금선사의 주불이 모셔진 대적광전이 사찰의 가장 중심부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우측으로는 삼성각이 있고, 북한산의 일급수가 모였다가 흘러내리는 홍예교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길 137
금곡사(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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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금곡사(강진)

금곡사는 신라 말 밀봉대사가 창건하여 성문사라 칭하다가 이 주위에 금광이 있다 하여 후에 금곡사라 개칭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다. 이후 폐사와 중창을 반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찰 옆 개울가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금광이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금곡사에는 백제 계통의 고려 양식인 보물 제829호 삼층석탑이 있는데 1985년 복원작업을 하던 중 석가세존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이 탑은 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으로 그 형식 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 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는 약간의 백제 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초반기로 추정된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의 양이 일정한 약수터에서 풀로 만든 대롱으로 물을 빨아먹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왜구를 격파한 이 고장 출신 김억추장군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금곡사로 가는 군동면 호계리에서 작천면 군자리에 이르는 19㎞ 구간은 연분홍빛 벚꽃터널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금곡사 벚꽃 길은 1992년부터 2년에 걸쳐 강진군 공무원들이 휴일을 반납해가며 직접 만든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금강암(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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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금강암(보령)

금강암(金剛庵)은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에 있는 높이 411.8m 양각산(羊角山)의 동편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사찰 이름이 ‘옥계사(玉溪寺)’로 나와 있으며, 1799년(정조 23)에 간행된 '범우고(梵宇攷)'와 1930년대에 이병연(李秉延)이 찬술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옥계사’라는 이름을 기록한 뒤에 지금은 '금강암'이라 칭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조선 후기에 암행어사(暗行御史)로 활약한 박문수(朴文秀)의 할아버지 박선(朴銑)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 설도 전해진다. 비문(碑文)에 의하면 금강암을 창건한 영암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제자이며, 영암이 금강암을 창건한 이유는 태종의 후비였던 궁주 권 씨(宮主 權氏)의 소원을 빌기 위해 원당(願堂)으로 창건한 것이다. 궁주 권 씨의 아버지인 영가군(永嘉君) 권홍(權弘)과 궁주 권 씨의 딸인 옹주 이 씨(翁主 李氏)가 후원하였다.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보령호로 1139-102
극락암(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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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역사관광

극락암(강원)

극락암은 간성 대대리 검문소에서 진부령 방향으로 약 2키로 정도가면 우측에 이정표가 있다. 이 이정표에서 마을 안길을 통하여 산모퉁이 숲길을 지나면 어머니 품속을 연상케하는 아담하고 정겨운 사찰이 고즈넉이 노송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 극락암은 건봉사에서 서북쪽으로 2키로 지점에 있었으며,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였다. 945년 묘적동에 창건하였으며 1878년 산불로 인해 건봉사와 함께 소실되었으나 다음 해에 증건하였다. 일제때까지 산신각 1칸을 포함하여 총49칸으로 건봉사와 산내암자 5개중 가장 큰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5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함께 생활하던 수행처이자 봉명학교에 다니는 멀리서 유학온 여학생들의 기숙사로도 사용했다. 예전 그곳은 현재 민통선 내라서 출입이 불가능하고 건봉사 대웅전뒤 서북쪽 능선넘어 1키로미터 지점에 터만 남아있다. 예전엔 건봉사에서 암자까지 우마차가 다닐 정도 길이나 있었다. 해방 후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정상적인 종교 활동이 불가능하자 극락암 비구니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극락암에 살았던 비구니 법선스님이 1956년 간성면 광산3리에 극락암을 신축하였다가 1962년 현재의 간성읍 교동리 280번지 함박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의 극락암이 되었다. (출처 : 고성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교동2길 26 대한불교조계종극락암
귀정사(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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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귀정사(남원)

귀정사는 백제 무녕왕 15년(515년)에 현오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는 만행사(萬行寺)라 불렸다. 이후에 백제의 왕이 절에 참배를 와서 고승(高僧)의 설법에 탄복하여 3일간 절에 머무르며 국정을 살피고 돌아갔다 하여 귀정사(歸政寺)라 고쳐 불렀다. 왕은 “죽고 살기를 스님과 더불어 같이 한다”는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1221년 대방(남원의 옛 이름)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귀정사에 제2의 백련결사를 개설했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대은스님이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 세조 14년(1468년)에 낙은스님이 각각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실됐다. 현종 5년(1664년)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 모습대로 고쳐졌고, 순조 4년(1804년)에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와중에 옛 건물이 모두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명월당, 시왕전, 향로전, 영당의 전각이 있었으며, 부속 암자로는 남암, 상암, 대은암, 낙은암 등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귀정사에 살던 스님들이 모두 흩어지자 만공스님이 큰 법당에 모셔졌던 삼존불상을 충청도 수덕사 대웅전으로 옮겼고, 지금도 그곳에 모셔져 있다. 1968년 유정동 스님이 보광전, 승당,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2006년부터는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면서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보광전 개축, 만행당, 관음전, 산신각, 종각 등을 새로 건립하였고, 인드라망 수련원, 만행산 귀농학교, 숲살림원,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 등이 운영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2길 246
극락암(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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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역사관광

극락암(양산)

양산 극락암은 통도사의 여러 말사 중 하나이다. 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 떨어진 산속 암자이다. 고려 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영조 때 철홍대사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선사가 중건, 중수하였다. 풍수지리상으로 입지를 보면 연꽃이 물 위로 올라온 모양인 연화도수형의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한강 이남의 제일가는 호국 선원이며 하안거와 동안거 도중에 일주일간 한숨도 자지 않고 깨어있는 용맹 정신이 끝나면 쉬지 않고 그 길로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것이 이곳의 전통이다. 극락암 안에 있는 극락영지와 홍교는 통도사 8경 중의 한 곳으로 경봉 스님이 71세에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극락으로 가는 다리의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계절 다 좋지만 봄에 피는 벚꽃이 유난히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김택준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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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김택준가옥

김택준가옥은 야산을 뒤로하고 있는 이 집은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집을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약 200년 정도 되었다고 하며, 현재 경주 김 씨의 후손이 살고 있다. 전체적으로 H자 모양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겹집으로, 안채와 사랑채·부속건물로 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고, 부속채는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안채는 6개의 방이 겹쳐서 배치되었고, 그 오른쪽으로 샛방을 만들어 사랑채와 연결하고 있다. 사랑채 2칸은 외부에 툇마루를 놓아 연결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안채의 왼쪽에는 부엌이 있고, 그 앞쪽으로 곳간과 외양간을 덧붙였다. 부엌과 덧붙어 있는 방은 사당으로,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마당의 왼쪽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우물이 남아있고, 뒤쪽에는 야산을 파고 돌로 벽을 만든 약 0.5평 정도의 냉장굴이 있다. 마당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남녀가 따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출처 : 국가유산청)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창리길 4
김환기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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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신안군역사관광

김환기고택

한국의 대표적 서양화가로 우리나라 전통미를 현대화시키는데 주력한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 화백이 태어난 곳으로 현재 안채와 화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환기는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제1세대 화가로 한국의 고전적 소재를 추상적 조형언어로 양식화하여 한국미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인물로, 이 곳은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 작품활동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라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와 함께 20세기 초반 전통가옥이 근대로 들어서면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실용적으로 변용되어 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안좌면 김환기길 38-1
김성래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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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김성래 가옥

김해 김씨 17대 손이 살고 있는 가옥으로 현 소유자의 14대 조부가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본래 초가였던 것을 60년전 기와로 바꿨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어 있는데 안채는 양양지방에 남아있는 북방계통의 집이다. 왼쪽으로 넓은 부엌을 배치하고 오른쪽으로 가운데를 갈라 나눈 뒤, 다시 구획하여 6개의 작은 방을 만들었다. 부엌 앞으로 내밀어 지은 외양간은 창고로 개조하였다. 사랑채는 나중에 늘려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안채와 달리 큰 방 셋을 마련하고 밖으로 툇마루를 두어 방과 방이 서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대문은 전형적인 솟을대문으로 대문의 왼쪽에 마구간과 광이 있다. 출입로 오른쪽에 연꽃이 있는 방지가 있어 사랑채 앞쪽 지붕선과 함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북분안길 106-9
김정묘역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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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역사관광

김정묘역 문인석

김정묘역 문인석은 고려시대의 문신인 김정 선생의 묘역에 있는 1쌍의 문인석이다. 김정 선생은 고려 공민왕 때 양광도 찰방사와 전라도 찰방사, 대호군을 역임하였으며, 고려 후기 신돈의 개혁정치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공민왕 20년(1371) 신돈이 축출되자 유배되었고 그 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광주목지에 중대광 광성군에 봉하여졌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 문인석은 총 2기로 동일한 수법을 사용하여 조각하였고, 재질은 화강암이다. 문인석이 높이 121cm, 오른쪽 문인석은 높이 123.5cm로 두 기의 크기가 서로 다르며, 다른 문인석들에 비해 규모가 작다. 머리에는 장식이 없는 낮은 관모를 쓰고, 눈, 코, 입은 얇은 선으로 표현하였으며, 두 손에는 신하들이 임금을 뵐 때 손에 쥐던 홀을 들고 있다. 묘역에는 문인석 이외에도 망주석 1쌍과 선생의 묘비가 마련되어 있는데, 문인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최근에 세운 것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칠전동 619-2
김청풍부원군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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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역사관광

김청풍부원군묘역

영의정 김육의 아들이며,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의 장인이자 현종의 아내 명성왕후의 아버지인 충익공 김우명의 묘역이다. 충익공 김우명은 인조 20년(1642) 진사시에 합격하여 강릉 참봉, 세마, 영돈녕부사, 오위도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우명이 사망하자 조정에서 부원군의 대접을 하기 위하여 강원특별자치도 춘성군 신동면 증리에 묘소를 하사하였다 한다. 시신을 배에 싣고 한강을 거슬러 가던 중 현재의 묘소 앞의 강에 이르렀을 때 배가 움직이지 않고 돌풍에 명정(다홍 바탕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 관직, 성씨를 기록한 깃발)이 산으로 날아갔다. 명정이 날아간 곳으로 가보니 그곳이 명당이어서 하사한 땅을 취소하고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묘역에는 외손이 되는 숙종의 친필 묘비가 있고,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호조판서를 역임한 이민서가 짓고 윤심이 글씨를 썼고, 전서는 서포 김만중의 솜씨이다. 그 옆으로 망주석, 문인석 한 쌍식과 석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강원특별자치도 내에 있는 왕릉 이외의 묘지에는 담장이 없는데, 이 묘소는 유일하게 둥근돌(월석)이 박힌 묘담장이 둘러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 경춘로 667-9
금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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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역사관광

금강정

1428년 김복항이 금강정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영월제영’에 의하면 이자삼이 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움을 보고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자 안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금강정’ 현판이 걸려 있다. 금강정 아래로 푸른 동강이 흐르고 있는 이곳에서 영화 ‘라디오 스타’를 촬영했다. 금강정 주위엔 비운의 왕 단종과 관련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다. 익공계 양식으로 바닥은 마루를 깔았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모로 단청으로 얹혀있다. 금강정을 계족산과 태화산이 둘러싸 영월 8경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1684년 우암 송시열은 금강정 주위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금강정기’를 썼다. (출처 : 영월군청 문화관광)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
김종길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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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역사관광

김종길 가옥

평지에 ㄱ자형 안채를 배치하고 一자형 사랑채가 있어 전체 평면은 ㄷ자형을 이루고 있는 집이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과 부엌을 두고 왼쪽에는 웃방·안방·부엌·사랑방을 두었는데 사랑방은 원래 부엌의 광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웃방과 안방 밖으로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건넌방 앞에서 시작된 ㄱ자형 툇마루는 안방 앞까지 연결되어 있다. 행랑채는 나중에 새로 지은 것인데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헛간, 오른쪽은 넓은 방과 부엌을 두고 있다. 이 집은 조선 순조 27년에 세웠으며 전체 구성 형식은 영서지방 민가 형식을 따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주천면 고가옥길 27
꺼먹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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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역사관광

꺼먹다리

2004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된 다리로 화천군 간동면에 있다.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1945년에 건설한 다리이다.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해 ‘꺼먹다리’ 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천수력발전소와 함께 당시의 산업을 엿볼 수 있는 시설물이며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근대 가구식 구조 교량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꺼먹다리는 난간도 없이 일부 침목이 훼손돼 수십 년간 방치되다 최근 2007년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재정비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한국전 당시 중동부전선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교량이었기 때문에 전투도 치열했던 곳 이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소양강과 화천을 모노레일을 이용해 수송물자를 이동하기도 했다.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685
김화군민 망향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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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역사관광

김화군민 망향탑

김화군민 망향탑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에 있는 미수복 지구 김화 군민의 실향민 망향탑이다. 1980년 6월 1일에 건립되었다. 김화군은 광복 직전 9만 5,0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광업이 번창하던 지역이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전쟁 이후 원래 면적의 3분의 2 가량이 북한과 비무장지대(DMZ)에 속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김화군의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철원군 김화읍에 속하여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