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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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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원(창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역사관광

도봉서원(창원)

도봉서원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명윤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13년(숙종 39)에 사당을 짓고 1775년(영조 51) 도봉사를 건립하였으며 1844년(헌종 10) 도봉서원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고 1887년(고종 24)에 다시 별묘와 재실을 중건하여 1974년에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별묘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장도(쌍검) 등 동산공 김명윤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도봉서원 내에는 충현사·신문·강당·동재·외문 등이 있고 충현사에는 김명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으며 강당은 여러 행사와 화합에 사용된다. 향사는 매년 3월 13일 한 차례만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길16번길 5-11
도산서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도산서당

도산서원의 초창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7세기 경 진사 오도환이 자신의 자제와 인근 아이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예조참판을 역임한 오도환의 사위 정택신이 물려받아 집과 함께 관리하였으나 1862년에 만수 김영철이 매수하였다. 김영철이 옛 서당을 헐고 새 건물을 짓기를 원하자 김영철의 장손인 회천 김재종이 작은아버지 김순묵의 조언을 받아 1907년에 새롭게 강당을 건립하였고, 김영철의 호를 따 ‘만수당’이라 편액 하였다. 도산리에 자리 잡고 있어 도산서당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일명 섬뜸서당이라 불렸으며, 일찍부터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도산서당의 동쪽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회천정사가 배치되어 있고, 뒤쪽에는 연지를 파고 후원을 꾸몄으며, 연지 옆에는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다.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지만, 건물 왼쪽 쪽마루에 훼손이 있고, 기단부가 밀려나고 있다. 만수당의 편액은 전라감사 김성근의 필체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1길 4
도덕암(칠곡)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칠곡군역사관광

도덕암(칠곡)

도덕암은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에 있는 조계종 사찰이다. 435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다. 968년에 혜거국사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여 칠성암이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후 1632년 나한전을 건립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54년에 몽계당 선의대사가 도덕암이라 개칭하였다. 경내에는 극락전, 대웅전, 산신각, 종각, 요사채, 염화실 등이 있다. 또한 소장 중인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칠곡도덕암몽계당선의대사진영’과 조선 후기의 나한상(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인 나한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고려 광종이 혜거국사를 왕사로 모셔가기 위해 도덕암에 3일 동안 머무르며 마신 약수로 인해 속병이 모두 나았다는 일화를 간직한 ‘어정수’가 경내에 전해오고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 260
도래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도래마을

도래전통한옥마을은 풍산홍씨 집성촌으로 남평 땅은 풍산홍씨 땅을 밟지 않고는 못 지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자 마을이라고 한다. 홍씨 집성촌은 15세기 경에 형성된 500년이 넘는 마을로 가족단위의 관광객을 위한 체류형 전통문화 체험마을이다. 마을 입구의 ‘도래마을’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시작으로 마을의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 3채와 더불어 마을 연못과 정자, 골목길의 담장들을 가볍게 둘러볼만하다. 주차장 바로 옆의 조선시대 학당으로 이용되었다는 영호정과 남도에서도 매우 큰 규모의 양벽정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도래마을의 또 다른 대표 가옥인 서기당 홍기창 가옥, 홍기헌 가옥이 위치해 있다. 마을이 전반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고 도래마을 옛집, 계은정, 괘고정, 모남정 등 유서깊은 한옥과 정자가 남아있어 양반 동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서기당은 한옥 스테이로 운영하다 보니 투숙객이 아니면 안마당 풍경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이곳에서 1㎞옆에 나주산림자원연구소가 위치해 있어 같이 방문하는 것도 좋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도면 동력길 16
도동서원(고창)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도동서원(고창)

도동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에 위치해 있다. 도동서원은 도동사라고도 불리며, 고창군의 향토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동서원은 1928년에 지역의 유림들이 나라에 충성을 하고 절의를 도모하고자 방호정사 안쪽에 지은 사당이다. 방호정사는 한말의 수남 고석진(1856~1924)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도동서원(도동사)에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순절한 의병 대장 면암 최익현(1833~1906)과 수남 고석진(1856~1924), 송천 고예진, 송제 고용진 등이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최익현을 따라 항일 의병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919년에 한국의 독립 청원서를 파리 강화 회의에 보냈으며, 이로 말미암아 일제의 탄압을 받은 분들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1길 64
도림사(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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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광산구역사관광

도림사(광주)

도림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도림마을 입구에 있으며 노사 기정진(1798~1879), 난와 오계수(1843~1915), 후석 오준선(1851~1931)을 모신 사우이다. 기정진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병인소를 올려 외적을 방비하는 대책을 건의하였고, 위정척사사상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오계수는 기정진의 제자로 을미사변 후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가마마을 뒤쪽 산에 있는 영사재에서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오준선도 기정진의 제자로, 한일병합 이후 용진산에 들어가 용진정사를 세우고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34년 나주오씨 문중과 오계수, 오준선의 후학들이 오계수, 오준선과 기정진을 기리기 위하여 도림사를 세웠다. 도림마을은 오계수와 오준선이 태어난 곳이며, 나주오씨 문중의 집성촌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도림하길 33
도계역 급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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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역사관광

도계역 급수탑

삼척시 도계역 급수탑은 도계역 내에 있는 옛 증기기관차 급수시설이다. 1940년 설치된 급수탑으로 원주역 급수탑과 함께 당시의 전형적인 급수탑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물탱크 용량은 26t, 바닥 면적은 16㎡, 하부 둘레는 14.2m이다. 높이는 8m로 다른 급수탑에 비해 낮은 편인데 이는 철로 면보다 4m 높은 곳에 설치하여 적정 수압을 얻어낼 수 있도록 높이를 조절한 것으로 지형을 고려하여 급수탑의 높이를 조절한 독특한 사례이다. 도계역 급수탑은 물탱크를 받치고 있는 하부와 물탱크 시설인 상부로 나뉜다. 하부는 급배수를 하기 위한 기계실로 바닥은 원형이고 기계실 내부 천정은 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하부의 기계실 출입구는 아치형 문틀로 이루어져 있다. 상부는 물탱크 시설로 돔 형식으로 4개의 반원형 도머 창문을 설치하여 환기구로 이용하고 있다. 2003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등록되었다. (출처 : 삼척문화관광 홈페이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전두남1길 33-20
도남서원(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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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역사관광

도남서원(창원)

창원시 동급 화양리에 위치한 도남서원은 김귀의 유덕을 기리는 김해김씨 문중서원이다. 현대에 세워진 문중서원으로서 향사나 강학보다 후손의 돈목을 더 큰 목적으로 삼으면서 그 구심점을 선조에게서 찾았다. 도남서원은 문중의 주장에 따르면 사우의 창건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래전에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사원 복원은 1976년 강당과 함께 건립·복원되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서원의 강학 기능이 중단된 현대에 건립된 것으로 전통적인 서원 건물의 배치와 구조는 따르지 않았다. 정문인 불사문은 1칸 규모의 솟을대문 형식이며, 일반 가옥의 대문과 같다. 강당은 정면 4칸에 유리문을 덧댄 현대식 건물이다. 사당의 정문인 유정문 역시 일반 가옥 출입문과 유사하다. 구봉사는 정면 3칸으로 이루어졌다. 제사는 후손들에 의해 받들어지며, 향사일은 3월 7일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동읍로401번길 68
도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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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도곡서원

도곡서원은 1701년(숙종 27) 함양 지역 유림이 함양 출신 선현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조승숙, 정복주, 노숙동, 노우명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였다. 그 뒤 노사예와 정수민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된 뒤, 2001년에 다시 복원하였을 때는 조선 후기 학자 정덕하를 추가 배향하였다. 도곡서원의 강당인 수성당(정면 4칸의 팔작지붕), 사우인 경덕사, 양재에 해당하는 존양재와 진수재가 갖추어져 있다. 도곡서원은 구천서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함양의 유력 문중의 인물들을 배향함으로써 문중 간의 연합을 도모한 서원이라는 특징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병곡지곡로 859
도곡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도곡재

도곡재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달성군 하빈면에 위치하였다. 조선 정조 2년(1778)에 대사성인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세운 건물이나, 정조 24년(1800) 경에 도곡 박종우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면서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이며, 후대에 퇴칸을 달고 대청을 넓혀 누(樓)처럼 꾸몄다. 도곡재는 태백산지역 살림집의 일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박한 건물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2
도남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도남서원

도남서원은 1606년(선조 39)에 창건하여 1676년(숙종 2)에 사액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동·서재를 세운 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다. 1871년(고종 8)에 철거하였으나 1992년 향토 유림에서 강당 등 일부를 재건립하여 복원하였고 2002년부터 유교 문화 관광개발 사업으로 정허루, 장판각, 전사청, 영귀문, 고직사, 일관당, 입덕문 등을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을 갗추었다. 도남이란 북송의 정자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 때 ‘우리의 도(道)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 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의 유학 전통은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세워진 서원이다. 수백년 간 이어오면서 정봉주, 김광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 이준 등 아홉 선생을 모시고 있으며 향사는 매년 음력 2월 8월에 행한다. 향사가 있을 때 외에는 닫혀 있어 경천섬 관광안내소에 문의하거나 영귀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2길 91 (도남동)
도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봉화군역사관광

도계서원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서원인 도계서원은 1610년(광해군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던 충절 이수형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이후 이유, 이보흠, 이여빈 등 충절의 본보기가 되었던 인물들을 추가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경내에는 묘우인 견일사, 강당인 공극루, 동재, 주소 등이 있었으나,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으며, 강당인 10칸의 공극루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도계서원 옆에는 존재하는 공북헌은 도촌 이수형(1435~1527)이 조선 단종 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뺴앗자 관직을 관두고 고향에 칩거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툇마루를 벽으로 길게 막아 문을 열면 오직 북쪽만을 내다볼 수 있도록 지어졌으며, 이는 단종의 능이 있는 영월에 북쪽 방향이기 때문으로 단종에 대한 충정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사제길 12
덕천서원(성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덕천서원(성주)

덕천서원은 1794년 김관석, 김천택, 김주, 김즙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서원으로 의성 김씨 집성촌인 윤동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의성 김씨 4인에 대한 배향 및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으나 이후 복원을 시작해 2019년에 완성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신문 ,중정당, 양진헌, 험효료, 전사청, 고사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도강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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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도강영당

부여동헌 옆에 있는 홍가신·허목·채제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이 건물은 원래 조선말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던 것을 1971년 신축하여 이들을 모신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영당은 앞면 1칸을 개방하여 참배 공간을 마련하고 뒤쪽은 통 칸으로 3인의 영정을 모셨다. 홍가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 22년 문과에 급제하여 강화부사, 형조참판, 강화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선조 37년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 이듬해 영원군에 봉해졌다. 후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허목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고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그림, 글씨, 문장에도 능하였으며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채제공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35년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영조의 세자 폐위 문제를 죽음을 무릅쓰고 막았는데 이에 따라 영조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병조, 예조, 호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 좌의정으로 행정의 최고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수원성 건설에도 참여하였으며 경종 내 실록, 영종 실록, 국조보감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동강영당 주변으로 부여동헌을 비롯하여 부여관북리유적, 부여객사, 사비도성가상체험관이 있어 연계 방문하기 좋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덕천서원(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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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역사관광

덕천서원(청주)

1672년 (현종 13년)에 병조참의(戶曹參議)를 지낸 몽암(夢菴) 유희령(柳希齡, 1480~1552), 숙옹(塾翁) 유흥룡(柳興龍, 1577~1656), 묵재(黙齋) 우신언(禹愼言, 1482~1547), 유항(柳巷) 정응창(鄭應昌, 1547~1622)의 위폐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진주유씨(晉州柳氏) 집안의 사당이다. 1699년(숙종 25년)부터 향사하다가 1868년(고종 5년)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되었다. 지금의 사당은 1971년에 중건하고 1987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을 좌우에 쪽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덕천서원(德川書院)’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마당 앞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자연석과 흙으로 담장을 쌓았으며 오른쪽에는 덕천사비(德川祠碑)와 왼쪽에는 거북 대좌 위에 덕천서원묘정비(德川書院廟庭碑)라고 쓰여 있는 비신(碑身)이 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청주시 문화관광)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노동리
도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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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도계서원

이희맹·김제민·최안·김지수를 비롯하여 김제안·김흔·김섬·김습 등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이희맹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김종직의 제자로 성균관 재학시절부터 문장과 인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성종 23년(1492)에 장원 급제하여 등용되었으며 이후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다. 김제민(1527∼1599)은 이항의 제자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이 서원은 현종 14년(1673)에 이희맹, 김제민과 더불어 조선 중기 의병장 최안과 조선 중기 문신 김지수를 모시기 위해 세웠다. 그 뒤 숙종 23년(1697)에 김제안을, 헌종 6년(1840)에 김흔을 더하여 모셨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62년에 고쳐 지었는데, 이때 김섬과 김습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현재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사우, 강당인 서당, 동재와 서재, 신문, 고사,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서는 해마다 9월에 제사를 지낸다. (출처: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도계1길 34-13
덕진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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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역사관광

덕진산성

파주시 군내면에 위치한 덕진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덕진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성은 최고봉인 해발 85m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 능선을 따라 돌며 표주박 형태로 구축되어 있다. 외성에는 두 개의 문지가 완연하게 남아 있고, 성 위에 담을 낮게 쌓았던 부분이 두 군데 있다. 비교적 낮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임진강의 북쪽 해안이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넓은 땅이 내려다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내성은 성벽의 견고성을 높이기 위해 보축과 함께 계단식 석축공사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외성은 토축성으로 성벽은 거친 흙다짐을 하면서 흙을 쌓아 성을 축조하였고, 그 외부에 목책 같은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성과 달리 외성은 광해군 때 전쟁위기가 고조되면서 매우 급하게 조성되었기 때문에 성벽이 치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덕진산성은 인근의 임진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호로고루나 당포성, 은대리성 등과 함께 임진강 북안에 설치된 중요한 삼국시대 성곽이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아 외성을 확장·수축하여 사용했던 특수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어 학술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큰 성이다.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13
덕주사 약사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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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역사관광

덕주사 약사여래입상

제천시 한수면 월악산 자락의 고찰인 덕주사에 있는 불상이다. 원래 정금사 절터라고 전해오던 곳에 있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인해 1983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덕주사는 법주사의 말사이며 신라 말기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절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며 특히 가을 단풍 명소로 알려진 곳이고 넓은 마당이 있어 탁 트인 곳이다. 덕주사 약사여래입상은 부분적으로 닳아있지만 형태는 양호한 상태이다. 특히 오랫동안 땅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몸통의 밑부분이 약간 파손되었는데 옷 주름 등 다른 곳의 상태는 좋은 편이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낮고 작은 머리 묶음이 있으며 얼굴은 길쭉하지만 풍만하다. 양쪽 눈은 가늘고 긴 듯 하나 닳아서 구분하기 어렵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으며 옷은 왼쪽 어깨에만 형식적으로 걸쳐진 모습이다. 손 모양을 보아 약사여래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몸에 비해 머리가 커서 신체 비례가 맞지 않고, 돌 표면의 옷 주름을 간단하게 조각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제천 지역에서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주변에 덕주산성, 미륵사지, 송계계곡 등이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미륵송계로2길 87
덕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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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역사관광

덕연서원

신재 주세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주세붕(1495∼1554)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주로 홍문관과 성균관 등 학문기관의 관직을 지냈으며, 지방관으로 있을 때에는 교학진흥을 통한 교화에 힘썼다. 덕연서원은 선조 24년(1591)에 ‘동림서원’으로 세웠으나, 현종 원년(1660)에 칠원현 남고에 ‘남고서원’으로 새로 세웠다. 숙종 2년(1676)에는 ‘덕연’이란 이름을 나라로부터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1964년에 다시 세웠다. 서원 안에 있는 건물로는 강당, 존덕사, 덕연별사가 있다. 교육 공간인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존덕사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주세붕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존덕사 오른쪽에 위치한 덕연별사에는 삼칠선현(三漆先賢)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서원에서는 해마다 3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예용3길 12-2
덕음암(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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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덕음암(남원)

덕음사(德蔭寺)는 남원시 덕음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전망이 좋아 남원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덕음사가 자리한 곳에 조선시대에 조성한 석불 좌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옛 절터인 것은 분명 하나, 이를 확인할만한 문헌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이 아쉽다. 지금의 덕음사는 1929년에 응수 스님과 노영준(魯英俊)의 협력으로 창건되었다. 일부 자료에는 노영준을 스님으로 적고 있기도 하는데, 현재 덕음사에서 전하기로는 노영준은 신도이고 당시에는 응수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다고 한다. 1941년 무렵에는 덕음포교당으로 있었다. 그 뒤 1960년부터 혜봉 김완진(金完鎭) 스님이 오랫동안 주석 하면서 미륵전, 삼성각, 종각, 염불당, 원주당, 산신각, 요사 등을 건립 중창하여 규모를 일신하였다. 현재는 선옥 스님이 주지로 주석하고 있다. 1949년에는 미륵전과 산신각을 새로 지었으며, 1960년대 후반 범종각을 새로 짓고, 1986년에 삼성각(칠성각)과 염불당을 늘려지었다. 또한 창건 당시의 초가 요사를 뜯어내고 원주당을 지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소리길 122-24 (어현동)
덕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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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덕양전

덕양전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자리 잡고 있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시대 사당으로 전구형왕릉의 재실이다. 금관가야 제10대 왕 양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향례와 삭망향례를 드리고 있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양왕은 금관가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 수정궁으로 옮겨와 5년 뒤 죽었다. 그 후 향례를 계속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는데 1798년 심릉후 능하에 능침을 짓고 다시 향례를 올렸다. 1898년 승선전이 사액 됨과 동시에 덕양전으로 개칭하였다. 1930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고 1991년 중건하였다.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로 995
덕양서원(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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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곡성군역사관광

덕양서원(곡성)

평산신씨 시조이며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 ~927) 장군의 유적이다. 신숭겸은 왕건을 도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워 개국 일등공신이 되었다. 덕양사는 선조 22년(1589)에 창건하여 신숭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불타고 선조 36년(1603)에 신실이 중수되었으며 현종 6년(1665) 이전의 서원 규모로 모두 중건되었다. 이후 1695년에 덕양이라는 사액을 받아 선현배양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폐되었다가 1934년 지방유림의 공의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강당, 동재인 연서재와 신실인 덕양사, 서재인 신덕재, 전사청, 그리고 외삼문, 내삼문 등이 있다. 유적 및 유물로는 덕양서원 건사사적비와 강당과 연서재의 내부현판 19개가 있으며 출생지인 용산재와 함께 도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곡성 버스터미널 기준 차량으로 7분, 4㎞ 거리의 덕양서원길 끝에 위치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오곡면 덕양서원길 42
덕원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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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역사관광

덕원서원

덕원서원은 세조(재위 1455~1468) 때 이시애의 난을 맞아 당시 선봉장으로 활약하다가 장렬히 전사한 강열공 차운력, 문절공 차원부, 문목공 차포온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덕원서원은 숙종 18년(1692) 세웠는데, 처음에는 호남 승평에 세워 오천서원이라 했다. 그 뒤 지방 유림이 순조 6년(1806)에 청덕면 성태리로 옮겨지어 덕원서원이라 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자진 철폐하였고, 고종 39년(1902) 지방 유림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원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으며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청덕면 성태길 81
덕양서원(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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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역사관광

덕양서원(의성)

덕양서원은 1625년(인조 3) 백촌 김문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김문기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형조참판·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1456년(세조 2) 사육신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8년 지방의 유학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경내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상충사, 경의당 등이 있다. 상충사에는 김문기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경의당은 유학을 공부하는 강당이다.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로 유림들이 모임을 갖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제관이 출입하는 신문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 숙소로 사용되는 동재·서재와 관리인이 생활하는 주소 등이 있다. 서원에서는 해마다 봄에 향사(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매길 101
덕암서원(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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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덕암서원(성주)

이 서원은 경산이씨(京山李氏)의 3현(賢) 삼익재(三益齋) 이천배(李天培)·백천(白川) 이천봉(李天封)·학가재(學稼齋) 이주(李)를 존모(尊慕)하여 현종 13년(1672)에 사림에서 덕암사(德巖祠)를 건립한 것에서 연유한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고종 13년(1876) 덕암서당(德巖書堂)으로 중건하였다. 지금의 서원 명칭은 1998년 정부와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묘우(廟宇), 내삼문, 동·서재 등을 건립하여 이듬해에 개칭한 것이다. 서원에 제향 된 이천배와 이천봉은 형제 사이로 함께 한강(寒岡) 정구(鄭逑)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천봉은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성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이주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백인당을 세워 후진교육에 힘쓰는 한편 동규(洞規)·향약(鄕約)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서원의 배치구성은 토석담을 두른 장방형 곽 전면에 서원을 출입하는 대문에 해당하는 솟을삼문인 건명문(建明門)이 있고, 북쪽에 강당과 그 앞으로 동·서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서당 뒤편에는 별도의 곽 내에 내삼문과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규모에 중앙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2통 칸 온돌방, 우측에 온돌방 1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로 되어 있다. 동·서재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규모에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며, 사당(祠堂)은 정면 3칸·측면 1칸 반의 규모로 되어 있다. (출처: 성주군 문화관광)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유월3길 29-72
덕암서원(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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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덕암서원(임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임실군 지사면에 있는 덕암서원은 1863년에 건립되었으며, 포은 정몽주를 주벽으로 최양을 배향하다가 1821년(순조 21) 정지년을 추배 하였으며, 1829년(순조 29)에 이르러 박종수를 다시 추배 하였다. 그 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65년 복설 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강당·정문·중문·고사 등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원산3길 1-22
덕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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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역사관광

덕산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덕산향교는 처음 건립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인조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대성전은 숙종 8년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987년에 다시 한번 보수했다. 건물 배치는 외삼문 없이 앞쪽에 바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덕산향교 앞의 평지에는 공자상이 세워져 있으며 여름에는 향교 주변으로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 그 풍경이 아름답다. 덕산향교는 가을 선진 지역을 답사하고 전임 강사를 초빙 교양 강좌를 개최하는 등 지역 사회 유림 활동에 힘쓰고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향교길 88-34
덕수궁 대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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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덕수궁 대한문

대한문(大漢門)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대한’은 “한양이 창대해진다”라는 뜻이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었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동문인 대안문(大安門) 주변이 환구단을 비롯하여 새로운 도심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정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름은 1906년(광무 10) 문을 수리하면서 바꾸게 되었다. 원래 대한문은 약 33m 앞에 있었으나 1970년대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한문을 지나서 있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하여 복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덕산사(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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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덕산사(산청)

덕산사는 657년 무염(無染) 국사가 창건하였다. 본래 덕산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나 1609년에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고 수백 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었는데 1959년 원경스님이 절을 다시 세우며 내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2020년 10월 내원사 대웅전의 위치 고증을 위한 시굴 조사에서 덕산사라는 사찰명이 새겨진 기와 파편이 발견되어 내원사가 덕산사 터에 지어진 것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2021년 3월 원래 이름인 덕산사로 사찰 명칭이 변경되었다. 덕산사는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쳐지는 위치에 자리하여 사찰 어디에서나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사찰이 물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흐린 날에는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신비감을 더해준다.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하내원로 256
덕산서원(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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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덕산서원(고성)

덕산서원은 고성 IC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원으로 1979년 이학도 선생이 선조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부지 3만 3,000㎡에 조성하였다. 덕산서원에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서원 건물과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덕산정, 팔각정, 관리사 등이 있다. 봄철 벚꽃 놀이를 비롯하여 사철 아름다운 경관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덕산서원 인근에는 고성마동호습지, 당항포만, 예진벌레잡이식물원 등 많은 관광지가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두호2길 76-13
덕산서원(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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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역사관광

덕산서원(영주)

덕산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서원으로, 최효원과 최장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 1894년(고종 31)에 금릉과 선산 지역 유림들의 공론으로 최효원(1742∼1795)과 최장간(1763∼1812) 2인을 향사하기 위해 덕산서원을 세우기로 결의하였지만 창건하던 중에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 이를 피해 현재 위치로 이건 하였다. 1972년 영주와 봉화 유림들의 동의를 얻어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 건립하였고, 1977년에 중건하였다. 매년 음력 3월 15일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최효원은 숙종 때 가선대부호조참판(嘉善大夫戶曹參判)에, 최장간은 영조 때 가선대부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戶曹參判 同知中樞府事)에 추증된 인물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산길46번길 13-5
덕산서원(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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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역사관광

덕산서원(대구)

이 서원은 조선조 초기 문신으로 대쪽 같은 절개를 지켰던 남은(南隱) 서섭(徐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첨모재(瞻慕齋)를 1993년 서원으로 복설(復設) 한 것이다. 서섭은 달성서 씨 판서공파 파조(派祖)로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한 후 단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인데 세조의 왕위 찬탈로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남애(南涯)라는 호를 남은(南隱)으로 고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은둔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도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어 잘 모르다가 80여 년 전 그가 살았던 낡은 집을 헐다가 천장 속에서 발견된 함에서 그의 행장과 유고를 발견하여 그의 충절이 널리 알려졌다. 이에 1926년 후손들이 묘소가 있는 황금동 근처에 첨모재를 세우고 1954년 중수할 때 신도비를 세웠다. 서원의 정당은 4칸으로 강당은 충정당(忠正堂)이다. 동재는 3칸으로 구인재(求仁齋)이고 서재 또한 3칸으로 존성재(存誠齋)이다. 사당은 경의사(景義祠)로 강당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강당의 서쪽 벽 위에 이수락(李壽洛)의 덕산서원기(德山書院記)가 편액 되어 있고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대문인 외삼문은 숭절문(崇節門)이고 내삼문은 유현문(維賢門)이다. 정당의 동편에 남은 서선생신도비(南隱 徐先生神道碑)와 비각(碑閣)이 있고 강당의 남쪽에 덕산서원 사적비가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46길 5-3
덕봉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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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덕봉서원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기사사화(己巳士禍)에 연루되어 유배 도중 세상을 떠난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21년(1695)에 건립된 서원이다. 숙종 23년에 임금이 ‘덕봉’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 때에도 헐리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오두인은 1648년(인조26)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관직을 두루 맡았다.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 폐위 후 이세화(李世華), 박태보(朴泰輔)와 함께 이를 반대하다가, 의주로 유배 가는 도중 파주에서 사망하였다. 1694년(숙종20)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덕봉서원은 마을입구 언덕 남동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사진 대지의 아래쪽 턱에는 강당인 정의당과 동재, 서재가 있으며 위쪽 터에는 사당인 덕봉사우가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강당이 앞에 있고 사당이 뒤쪽에 있는 배치 형식)를 갖추었다. 사당과 강당은 부재의 사용으로 미루어 19세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동재, 서재는 1940년대에 훼손 되었다가 새로 복원된 것이다. 덕봉서원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건물도 훌륭하고 공간도 매우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서원로 529-8
대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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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역사관광

대촌마을

대촌마을은 섬진강과 가깝고 역사가 오래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금석 병용 시기인 청동기시대에 형성된 마을로 임진왜란 이후 대촌마을로 명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산 둘레길 원부춘-가탄 구간에 있으며 하동 최 참판 댁과 가깝다. 최근 대촌마을에선 빈 창고를 개조해 ‘대촌 광장’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열고 주민과 여행객의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어르신들이 만든 소품과 하동을 나타내는 배지 등 기념품도 판매한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대촌길 10
덕림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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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역사관광

덕림서원

덕림서원은 1740년(영조 16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오방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오방우(1313~1393)는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고려 충목왕 때 예부시에 급제하고 공민왕 때 오도안렴사를 지낸 해주오씨 장기 입향조이다. 덕림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으며, 그 뒤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 현존하는 건물은 사당인 정헌묘, 강당, 동재, 서재가 있다. 사당에는 오방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사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신문은 향사 때 제관의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길13번길 47
대포서원(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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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대포서원(김포)

대포서원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야산에 위치하였으며, 조선 전기의 대학자이자 문신인 눌재 양성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양성지는 공조판서, 대사헌을 거쳐 홍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당애 최고의 문장가이자 사상가로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섬기며 경륜 있는 정치가로 활약하였다. 조선 시대 책 동문선,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통감 등의 편찬에 기여했으며, 지리와 지도 전문가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홍문관과 규장각의 설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양성지는 1482년에 68세를 일기로 통진현 대포곡에 묻혔다. 1973년 양촌면 대포리에 있는 양성지의 묘소 밑에 사우를 창건하였으며, 그곳 지명을 따서 대포서원이라 했다. 서원은 강학 공간인 동재와 서재, 제향 공간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전학 후묘의 구조이다. 매년 4월 25일 이곳에서는 양성지를 기리는 대제가 치러진다.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황금로23번길 3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