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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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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혈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동혈사

동혈사는 충남 공주시내 북쪽 의당면의 천태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이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며,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동서남북의 혈(穴)에 위치하여 서혈사, 남혈사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 풍수사상이 널리 유행하면서 세워졌을 법한 그런 사찰이다. 지금 그러한 흔적은 현재의 사찰 아래쪽 동혈사터(銅穴寺址)에 남아 있다. 더욱이 단청을 하지 않은 대웅전의 모습은 사찰을 더욱 고풍스럽게 한다. 동혈사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보기 위해 맞은편 산꼭대기에 오르면 옛 군용 헬기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천태산 주위의 풍광뿐 아니라 동혈사의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한편, 경내 3층 석탑은 공주시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었다. 동혈사는 국도 43호선과 지방도 604호선 혹은 국도 23호선에서 의당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정안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공주알밤농원, 중흥저수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동혈사길 77
동화사(충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역사관광

동화사(충북)

동화사는 작두산의 북쪽과 국사봉의 남쪽 기슭 사이로 흐르는 하천가의 절골에 있으며 남수원절로도 알려져 있다. 창건 연대를 알려주는 사료는 없으나 사지의 주변에서 통일신라 이후 조선조에 이르는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전하는 얘기로는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이곳을 지나가는데 말굽이 떨어지지 않아 주위를 보니 석불이 있었다고 하며 이에 왜장이 칼로 석불의 목을 쳐서 사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석불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고 전해진다. 동화사는 300여 년 전에 현재의 대웅전을 건립하여 불사를 잇고 있다고 하며 동화산리의 산 이름과 지명에 따라 동화사가 된 듯하다. 이곳은 정면 3칸, 측면 2칸, 대웅전과 근래에 신축한 요사가 있는데, 대웅전은 1992년 신축된 것이다. 이곳의 대웅전에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상은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의 부러진 목을 복원하면서 잘못하여 머리가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높이 148cm이고 광배는 없다. 한편, 불상이 올려진 연화 대좌는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는 가장 큰 것이다. 상대석의 일부가 파손되기는 했으나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한편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높이가 133cm에 불과하나, 고려 초의 석탑으로 절의 역사를 추정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3층 옥개석과 기단부 갑석만 남아 있다. 기단 갑석은 1장의 석재로 되어 있고, 각층의 옥개석은 낙수면이 완만하다. 작두산과 하천의 물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랑하며 고즈넉한 사찰의 모습이 아름답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척산화당로 444
동화사(대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구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동화사(대구)

동화사는 유서 깊은 신라 고찰로 팔공산 폭포골, 빈대골, 수숫골이 좌우로 몰려든 동학동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다. 493년(소지왕 15) 극단이 창건하여 유가사라 하였다. 그 뒤 832년(흥덕왕 7) 왕사 심지가 중창하였는데, 그때가 겨울철임에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 영조 때 중창 시에 세워진 건물로서 대웅전을 비롯하여 연경전,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칠성각, 산신각, 응향각, 원음각, 천안문 등이 있다. 또한 부속암자로는 금당암, 비로암, 내원암, 부도암, 양진암, 염불암 등이 있다. 또한 동화사는 팔공산국립공원의 다양한 탐방로가 시작되는 관문이다. 염불암을 지나 염불봉이나 동봉으로 향하는 코스, 빈대골 계곡을 따라 능선을 오르는 코스, 템플스테이 입구에서 폭포골을 따라 도마재(신령재)나 바른재로 향하는 코스까지, 사찰 곳곳에서 자연으로 향하는 탐방로가 열려 있다. 사계절 내내 산과 계꼭의 풍경을 따라 걷기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 (도학동)
동해사(상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동해사(상주)

동해사는 1398년(태조 7) 무학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1638년(인조 16) 희선이 중건, 1838년(현종 4) 용담 스님이 세 번째 창건하고 1879년(고종 16) 화영 스님에 의해 지금의 위치 상주시 동쪽 갑장산과 이어진 식산 중턱으로 이전되었다. 바다도 접하지 않으면서 이름이 동해사인 이 사찰은 태조의 왕사인 무학 대사가 상주의 지형이 떠나가는 배의 형국이라 이 절이 돛대 역할을 하여 멀리 동해로 항행 발전하라는 염원에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동해사라 지었다 한다. 안개가 자욱한 날은 정말 동해에 뜬 배가 짐을 가득 싣고 항구를 향해 돌아오는 것 같이 보인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특별한 문화재나 사적이 있는 곳도 아니고 큰스님이 거처하신 곳도 아닌 곳이지만 고려시대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크게 발전하였다. 이 지역에는 동해사와 더불어 당대의 명승인 나옹화상이 연악산에 갑장사를 세워 동해사와 같은 법통을 잇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서곡3길 173
동해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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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역사관광

동해향교

1980년 명주군의 묵호리와 삼척군의 북평리를 병합하면서 동해시가 발족되고 이에 따라 두 지방에 각기 편입되어 있던 유림들이 1990년에 동해 유림을 결성하게 되었다. 동해향교는 사도 창달과 지방 문화발전을 위한 구심점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과 동해 유림의 독자적인 진로를 모색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동해향교는 전국 234개 향교 중 1994년에 가장 마지막으로 창건된 신생 향교로서, 전학후묘에 39위를 봉안한 대성전과 명륜당, 만리장성 같은 담장에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오죽을 무성하게 가꿔 교궁의 구조와 규모가 전통적임과 동시에 현대적 이도록 배합되어 있다. 기관단체와 열정 있는 유림들이 향교 설립에 뜻을 모아 1993년 9월 11일 동해향교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창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1994년 2월 28일 성균관장의 동해향교 설립 승인과 1995년 6월 29일 성균관장의 개교 인가를 받아 5년 공사 끝에 1999년 7월 9일 동해향교를 창건하였다. 2006년 인의예지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동해유교대학을 설립하여 유학, 의례, 경전, 시책, 건강 등 연간 20~40주의 질 높은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문화관광체육부에서 2006~2007년 전국 시범향교로 지정받는 최초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승지로 84-3
동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울산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동축사

동축사는 울산지역의 고찰로서 신라의 불국토사상이 반영된 성지이다. 신라 진흥왕과 인도 아육왕의 정신적 만남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아육왕이 배에 실어 보낸 석가삼존불의 모형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라는 연기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동축이라는 이름에서도 이곳이 범상치 않은 불국토임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불국토의 고향인 인도가 서쪽의 나라이기에 서축이라 하였듯이 이와 대비되는 이름으로써 동축이라 칭하였던 당시 신라 불국토사상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신라에 석가모니 과거불 시절부터 7개의 절터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불연국토라는 사상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인도 아육왕을 이상으로 삼아 그의 족적을 쫒으려는 진흥왕시대 신라 불교문화의 부흥과도 연결된다. 일찍이 동축사가 자리한 이곳은 울산 동면8경 중 축암효종, 섬암상풍이라 하여 시인묵객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다. 특히 동축사 정상의 관일대는 섬암이라 하여 동축사의 종소리와 함께 해뜨는 동해바다를 조망할 수 곳으로 유명하다.

울산광역시 동구 옥류로 93 (동부동)
동편제탯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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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동편제탯자리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가왕 송흥록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여류 명창 박초월의 소리의 고향이다. 예로부터 운봉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하나인 옥보고가 거문고를 크게 발전시킨 곳(운상원)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순조 때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태어난 송흥록 선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판소리에 응용, 판소리의 표현 영역을 확대시키는 등 다양한 음악 기교를 사용함으로써 극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특히, ‘춘향가’의 옥중가 중 귀곡성(귀신 울음소리)은 그가 창작한 독창적인 판소리 창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송흥록 선생으로부터 출발된 동편제는 형의 고수로 지내다가 뒤에 형에 버금가는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은 아우 송광록과 손자 송만갑이 대를 이어온 이후 계층과 지역을 초월한 광범위한 애호를 받는 예술로 부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무덤에서는 ‘내 소리를 받아 가라’는 귀곡성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부터 비전마을에 국악 성지가 조성되며 송흥록 선생 생가와 박초월 명창 고택이 복원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 7
동죽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동죽서원

정암 조광조를 중심으로 덕촌 최희정을 기리고 있는 서원으로 1960년 지방 유림이 지었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 사림파의 중심이 되었으며 급진적인 개혁을 실행하였다. 이를 반대하는 훈구세력의 모함으로 유배되어 기묘사화(1519) 때 희생되었다. 최희정은 조광조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 중종 11년(15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때 함경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조광조가 추천하여 적을 크게 물리쳤다. 중종은 그 공로로 현재 서원이 있는 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학전길 32-57
동절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동절사

남면 동절사는 1962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에 있는 사우로 임진왜란 때 수원성에서 왜병과 싸우다 순절하여 병조판서에 증직된 이지시, 이지례 형제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은 야산 중턱에 북쪽을 향하여 지어졌다. 입구는 사괴석(벽이나 돌담을 쌓는 데 쓰는 육면체의 돌) 담장으로 둘러 있고 덤벙주춧돌 (둥글넓적한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놓은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만든 솟을삼문형의 외삼문이 있다.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된 사우가 나타나는데, 측면 2칸 중 전면 1칸에는 툇마루를, 후면 1칸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2인의 위패를 안치하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으나 현재 매우 심하게 변형되었다. 주변 관광 명소는 세양사, 홍산객사, 아홉 살이 관광, 보부상, 홍산동헌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
동악사(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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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동악사(예천)

동암(東庵)이라고 기록된 동악사는 냉정산(冷井山)남쪽산기슭에 위치하고 지세가 학을 닮았다고 하여 동학사라 불리었다는 전설이 있다.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지금은 기와조각이 나오고 있어 옛날부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현재 건물로 전면에는 요사가, 뒤에는 보광전이 있는데, 이는 신도들의 성금으로 1934년 3월 28일에 지은 것이며, 퇴락(頹落)이 심해져 이 건물 우측에 정면 3간, 측면 2간의 목조와가팔작(木造瓦家八作)지붕을 신도들의 기금에 의해 1983년에 준공했다. 다시 보광전이란 현판을 걸고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옮겨서 주존으로 봉안되고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충효로 448
동명동성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역사관광

동명동성당

강원도 속초시 동명동에 있는 춘천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이다. 속초 터미널 인근에 위치하였다. 동명동 성당의 전신인 속초성당은 한국전쟁 중에 지어진 유일한 성당이다. 미사 때마다 옥수수가루나 우유, 의약품 등을 나눠주었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많은 피난민이 성당에 와 신도가 되었다. 동명동 성당은 해맞이 장소로도 유명하다. 성당 앞마당에서 아름다운 속초 앞바다와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과 주변 환경이 어우러져 관광하기 좋은 곳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영랑로7길 10-5
동북공심돈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역사관광

동북공심돈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창룡문 인근에 있는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했다. 1796년(정조 20) 높이 5.42m, 둘레 38m 규모로 완성됐으며 한국전쟁 과정에서 완파된 뒤 1975년 복원됐다. 화성에는 이외에도 서북공심돈·남공심돈이 있다. 동북공심돈은 군사적 요충지인 것은 물론 수원화성 건축물 중 유일하게 원형형태로 희소성이 높다. 커다란 둥근 원의 모습으로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돼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최상층에 올라서면 화성 전체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동명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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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동명서원

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1628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인벽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충현사를 설립해 위패를 모시고 동명서원이라 하였다. 양렬공 조인벽은 태조 이성계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불사이군(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의 의리를 지키며 양양에서 은거하며 유생들을 교육했던 사람이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전란으로 전소되어 1787년 경상북도 봉화로 옮겨서 복원하였다. 그 후로도 철폐와 복원을 반복하다 1974년부터 서원 복원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어 복원을 추진, 1982년에 완공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충현사, 6칸의 재실, 신문, 동·서 협문 등이 있으며 사우인 충현사에는 조인벽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재실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춘향제를 올리고 있으며 서원 입구에서는 붉은색의 홍살 문과 함께 양렬공 조인벽의 신도비를 볼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서원길 44-9
동도사(용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역사관광

동도사(용인)

동도사는 한국대중불교 불이종(不二宗) 소속의 사찰로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에 위치해 있다. 주변은 남쪽의 신선봉(308m), 동남쪽의 봉황산(256m), 동북쪽의 묘봉(228.6m) 등 높고 낮은 산이 감싸고 있다. 북쪽은 이동저수지에 바로 면하고 있다. 산이 저수지와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절이 위치한 곳은 용인의 산속 깊고 높은 곳으로 앞의 이동저수지를 비롯하여 주변의 산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시야가 탁 트여 시원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동도사는 1963년에 옛 어비리사지가 이동저수지 조성으로 수몰될 때 車壯業 居士가 절터에 있던 석탑과 석불, 석등 등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와 창건하였다. 어비리사지가 이동저수지의 조성을 수몰되기에 이르자 차장업 거사는 석탑과 석불, 석등 등이 수몰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원력을 발휘하여 옛 절터의 유물을 모두 이곳 동도사로 옮겨온다. 그리하여 동도사는 새로이 창건된 사찰이지만 신라 때 사찰의 법등을 새로이 잇게 된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어진로 842
동락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구미시역사관광

동락서원

동락서원은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낙동강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장현광은 인조 때 의정부 우참찬을 역임한 문관으로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아 전장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동락서원이란 동방의 이락이라는 뜻으로 이락이 주자학의 상징인 것처럼, 동락서원이 조선 성리학의 근원이자 상징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선생이 서거하자 1655년 장현광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이 학문을 가르쳤던 부지암정사에 묘우를 지어 서원 체제를 갖추고 위판을 봉안해 부지암서원이라 개칭했다. 이후 1676년에 나라에서 동락서원의 현판을 받고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32년 묘우를 복원하고 1971년 서원 건물 전체를 다시 세워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경덕묘, 강당인 중정당, 동재 윤회재, 서재 근집재, 외삼문인 준도문이 있다. 이중 중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을 두었는데 마루를 회합장소로 썼다고 한다. 준도문 바로 앞에 400여 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는데 장현광 선생이 직접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동곡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동곡서원

고려 공민왕 때 회양(淮陽) 부사(府使)를 지낸 조신(趙愼)을 추모·제향 하기 위하여 조선 철종 때 지방 유림의 공론으로 창건하여 위패(位牌)를 모신 서원이다. 조신은 이방원의 어릴 적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박팽년·유성원 등의 학자를 길러냈다. 동곡서원은 조선 철종(재위 1849∼1863) 때 지역 유림들이 지었으나,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30년에 복원하였다. 건물 배치는 ‘ㅁ’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바깥채는 전학당이라 하고 안채는 화수루라고 부른다. 주변 관광 명소는 낭산사, 간곡서원, 칠원서원, 대조사(부여), 부여 가림성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
동래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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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역사관광

동래향교

조선은 1392년(태조 1) 나라에서 교육진흥책을 위해 지방에 향교를 설립함에 따라 동래에도 동래향교가 설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불타버렸다. 임진왜란 이후 1605년(선조 38) 동래부사 홍준이 재건한 이후 1704년(숙종 30)에 동래부 동쪽 관노산 아래로 옮겨졌다가 1813년(순조 13)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동래부가 되었을 때 동래향교에는 종 6품의 교수 1명과 학생 70명이 있으며, 향교의 유지와 관리를 위해 학전 7 결도 지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래향교의 건물구조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반화루, 동재, 서재로 구성된 강학공간과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 서무와 내·외삼문, 사주문으로 구성된 제향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
독상리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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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화순군역사관광

독상리석등

독상리 석등은 고려 시대 시중을 지낸 문헌공 오대승이 하늘에 제사하기 위해 제작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리 오대승이 관도 남쪽에 석등 48개를 만들어 밤마다 불을 켜 놓고 하늘에 절하였더니, 그 내외의 자손들이 모두 출세하고 계속하여 상부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상리 석등은 높이 40㎝, 길이 164㎝, 너비 105㎝의 암반에 구멍을 파서 만든 것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비각의 홍살문 안에 있다. 구멍은 약간 손질을 가한 자연 암반 위에 지름 5~14㎝, 깊이 2.5~8㎝ 정도 되는 크기로 48개(실제로는 54개)이며, 이 구멍에 기름을 붓고 심지에 불을 켰던 것으로 보인다. 구멍 수인 48개 즉, 48등은 불교에서 말하는 48원을 의미한 것이다. 48원은 불교의 아미타불의 최고의 이상인 극락정토이다. 즉, 생로병사가 없는 안락한 정토(부처가 사는 세계)라는 뜻이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독상리 석등은 고려 시대 민간신앙이 불교와 합치되어 나타난 현상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동복면
독무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수성구역사관광

독무재

독무재는 벼슬도 마다하고 향리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하시찬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과 유림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하시찬은 1750년 지금의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서 태어나 당대의 석학이던 김경호, 송성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지금의 독무재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독무암루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고, 팔례절요 2권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원래 동구 효목동 경북주유소 부근 경부선 철로 변에 있었으나 대구시 3차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1968년 4월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이건 시 독무재 서남쪽에 별도의 담장을 두고 사당인 경덕사와 팔례절요와 열암문집 판각이 보관된 장판각을 새로 지었다. 주변으로 동촌파크광장놀이공원과 국리대구기상과학관, 아양아트센터, 망우단공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 하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
독용산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독용산성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인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있다. 산성의 둘레는 7.7㎞(높이 2.5m, 폭 1.5m)에 이르며 산성 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 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이다.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500년전 성산가야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원년(1675년) 관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여,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있었으며,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발굴된 군기고에서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성주군에서는 1997년부터 성곽을 복원할 계획을 세워 훼손된 성곽의 일부와 아치만이 남아 있던 동문을 보수하여 원형으로 복원하였으며 성내에 관아터와 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독용산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이원정이 1677년에 편찬한 경산지를 통해 나타난다. 그 책에 따르면 합천과 거창의 군사가 배치되었고 성안에는 3개의 계곡, 객사, 군기고 등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정중휘가 개축할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강산면 사더래길 144
도장사(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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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도장사(해남)

수백 년이 된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한 도장사(道場寺)는 해남 황산면 내산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km 거리에 있는 보타산(寶陀山) 중턱에 있는 절이다. 고려 명종(1170년)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고도 있으나, 여러 기록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절이 자리한 곳은 지금은 영산강 하구언 간척지 공사로 바다가 막혀 버렸지만 본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대웅전은 기둥이나 서까래의 크기로 보아 규모가 컸던 절임을 알 수 있으며, 절의 스님에 의하면 1938년 무렵 무너져 내린 것을 대웅전 기둥의 목재를 그대로 이용하여 작은 규모로 줄여서 지었다고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황산면 내산길 143
도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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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도천서원

도천서원은 문익점(1329∼1398)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나라에서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익점 선생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다 문신으로 우리나라에 목화를 처음 들여온 것으로 유명하다. 서원은 조선 세조 7년(1461)에 세웠으며, 조선 정조 11년(1787)에 ‘도천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았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75년에 사당인 삼우사를 짓고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서원 내의 신안사재는 조선 명종 6년(1551)에 지은 것이며, 현재 건물은 조선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서원의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공간인 강당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앞쪽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삼우사가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되어있다. 또한 출입구인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으며, 제사 때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신안사재가 있다. 신안사재는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지붕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의 양쪽 끝 한 칸씩 넓은 마루를 두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문익점로 34-32
도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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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도정서원

도정서원은 1640년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1526~1605)과 그의 셋째 아들 정윤목(1571~1629)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 ‘향현사’로부터 비롯되었다. 1697년(숙종 23)에 지역 사림과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강당채를 건립하여 도정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분이 훼철되었으나, 1997년 동재, 서재, 전사청, 누각을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서원 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지붕의 건물로 전면에 난간을 둘러 누각 형식으로 지었다. 서원 앞에 있는 읍호정은 1601(선조 34)년에 건립한 정자로 가파른 경사면을 깎아 내성천 바로 앞에 세워져 있다. 현재 이곳은 약포선생 종중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강변로 417
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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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역사관광

독립문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독립문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세운 기념물이다. 갑오개혁은 내정개혁과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던 개혁운동이다. 그러나 외국세력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하였고 나라의 자주독립 또한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었다. 화강석을 쌓아 만든 이 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의 앞뒤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그 양옆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바로 인근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있어 독립문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을 되새겨 보는 역사 여행을 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도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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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도연서원

고성군의 도연서원은 허기, 허천수, 허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조선 숙종 13년(1687)에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1920년에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강당, 사당인 추원사, 돈화실, 명성실, 내삼문, 외삼문인 일원문이 있다. 강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강당 뒤쪽 높은 곳에 있는 추원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돈화실과 명성실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정문인 일원문은 앞면 3칸 솟을대문으로 가운데 1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그 윗부분에 난간을 설치한 누대를 둔 것이 특이하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도전4길 152-41
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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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역사관광

도암서원

도암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송천리 서변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도암사라고도 불린다. 도암서원은 순조 15년(1815)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경광(李絅光)·이성구(李聖求)·유심춘(柳尋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3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와 4칸의 강당이 있으며, 사우에는 이경광·이성구·유심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강당의 중앙에는 마루가 있고 양쪽에는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3월 5일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장수군 문화관광)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서변길 49-27
도솔암(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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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도솔암(고창)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신라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산의 한 굴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바위가 쪼개지며 그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출현하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중애사, 선운사, 도솔사 등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미륵삼존의 출현이나 도솔이라는 이름 등은 도솔암을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창건된 사찰임을 추측하게 한다. 특히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는 데서도 도솔암과 미륵신앙의 깊은 연관성을 말해준다. 현재 도솔암의 전각은 대웅전, 나한전, 도솔천내원궁,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도솔길 294 도솔암
도솔암(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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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북구역사관광

도솔암(울산)

도솔암은 울산 무룡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지리산 대화엄사의 말사이다. 아주 옛날 무룡산 정상에 있는 연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고 이곳에서 용들이 비를 뿌리며 춤을 추고 놀았다고 하여 무룡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김복선, 김수화 자매가 출가하여 아일다와 성련이라는 법명으로 활동하면서 민가를 매입하여 절로 바꾸면서 도솔암을 창건하였다. 사찰에는 대웅전, 무량수각, 삼성각 등의 전각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조선 말기까지 스님들 사이에 비밀리에 전해지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삼층석탑이 있다. 도솔암은 울산 북부지역의 포교도량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북구 화동15길 77 (화봉동)
도솔암(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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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도솔암(해남)

도솔암은 달마산 12암자중 유일하게 복원된 암자로, 가장 정상부인 도솔봉에 위치해 있다. 석축을 쌓아 올려 평평하게 만든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견고한 요새와도 같으며, 주변 풍광이 워낙 수려해 일출과 일몰, 서남해의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고, 마치 구름 속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달마산의 새로운 선경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통일신라 말 당대의 고승 화엄조사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의 기도 도량이라고 알려져 있다.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께서도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도솔암에서 수행정진하셨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암자이다. 그 후에도 여러 스님들께서도 기도 정진하였던 도솔암은 정유재란당시 불에 타 흔적만 남이 있던 곳을 2002년 6월 8일 오대산 월정사에 계셨던 현 주지 법조스님이 32일 만에 단청까지 복원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암릉으로 둘러싸인 도솔암은 4월에는 진달래, 5월에는 철쭉, 6월에는 원추리,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멋있어 많은 관광객이나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이다. 그리고 풍광이 뛰어나 각종 드라마 및 CF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송지면 마봉송종길 355-300
도안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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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도안서원

조선시대 학자 김우태와 김시태를 배향하기 위해 1783년(정조 7년) 공성면 도곡리에 도안서당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인근 산현리로 옮겨 세우며 도안사로 바꾸었고, 1870년(고종 7년)에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00여 년간 복원되지 못하다가 후손 김규호 씨의 의해 1999년에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이듬해인 2000년에 청도 김 씨 집성촌인 화동면 판곡리 원통산 아래에 자리를 잡아 강당과 묘우를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묘우와 강당은 일자형으로 좌묘우학 형태이며, 강당 앞에는 서원중건비가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37
도성암(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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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도성암(창녕)

도성암은 화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의 고승 지월선사가 현덕왕 2년(810)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그 후의 연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어 터만 남아 있다가, 화왕산 자하골의 한 암자가 풍수지리가 나쁜 곳에 자리한 탓에 산 아래 주민들에게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여 이를 막기 위해 재건립되었다 한다. 종각을 겸하고 있는 보제루 누각 아래의 계단을 지나면 경내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오른쪽에 칠성각으로 쓰였던 요사채, 그 옆 축대 위에 삼성각이 있다. 도성암은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어 창녕의 주산이자 절경으로 잘 알려진 화왕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어 현묘한 자성을 찾는 염불기도 영험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웅전에 있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자하곡길 147
도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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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역사관광

도성사

경기도 포천시 운악산 줄기에 자리 잡고 있는 도성사는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 도량이다. 영가의 극락왕생도와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납골당을 운영하는 불교 사찰로 기존 불교 종단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납골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사찰의 운영과 살림은 재단법인 도천불교문화재단이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다. 용문 관광단지와 연계하여 트레킹을 함께 할 수 있는 관광 명소이다.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동로 548-47
도산서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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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서구역사관광

도산서원(대전)

도산서원(대전)은 조선 후기 인물 만회 권득기와 그의 아들 탄옹 권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득기는 예조좌랑을 지낸 뒤 도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권시도 학문이 뛰어나 여러 버슬을 지낸 후 낙향하여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이 서원은 1693년(숙종 19)에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 1711년(숙종 37)에 나라에서 내린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당 3칸, 묘문 3칸, 강당 4칸, 서재 3칸, 남재 4칸, 전사청 3칸 등 모두 23칸 규모를 가진 서원이었다고 하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그 뒤 1921년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으며, 1968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안동 권씨 문중에서 복원하였다. 그리하여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안내원이 상주하며 관광객을 맞고 있으며 전통 민화를 체험하는 도산의 화공, 유생교육을 체험하는 유생의 하루, 예술 공연을 진행하는 도산 와유회, 도산서원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는 도슨트 심화교육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다.

대전광역시 서구 남선로 8
도선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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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역사관광

도선사(서울)

우이동 서쪽에서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를 향하여 계곡을 따라 약 1㎞쯤 올라가면 일주석에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 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고 쓰여진 산문(山門)을 맞게 된다. 사적기에 의하면 도선사는 862년(경문왕 2)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도선국사는 이곳의 산세가 1,000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고 예견하고 절을 창건한 뒤 큰 암석을 주장자로 갈라 마애관음보살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후기까지의 중건·중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북한산성을 쌓을 때는 승병들이 이 절에서 방번(보초 임무)을 서기도 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863년(철종 14) 김좌근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을 신축하였고, 1887년(고종 24)에는 임준이 오층탑을 건립하였으며, 탑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호국참회원, 명부전, 삼성각, 적묵당, 천왕문, 범종각, 종무소,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의 내부 벽에는 달마(達磨)와 혜능(慧能), 청담(靑潭)의 영정이 그려져 있으며, 후불탱화, 팔상도(八相圖), 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 등이 있다. 현재 도선사에는 마애불입상(제34호), 목조 아미타불 및 대세지보살상(제191호), 석조독성상(제192호), 청동종 및 일괄유물(제259호) 등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을 비롯해 19세 말 조성된 지장시왕도, 괘불도, 묘법연화경, 대방광불화엄경소 등의 성보문화재가 다수 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도선사길 278 (우이동)
도마령(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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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역사관광

도마령(전망대)

도마령은 영동군 황간에서 전북 무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영동 최고봉 민주지산(해발 1,241m) 자락에 있는 해발 800m의 높은 고갯길로 칼을 든 장수가 말을 타고 이곳을 넘었다고 해서 도마령이라 이름 지었고, 답마령이라는 옛 이름도 전해진다. 도마령에 가면 고갯마루 위에 정자 상용정이 있다. 2002년과 2003년 태풍으로 영동군 곳곳이 재해를 입었는데 이때 복구 사업을 하면서 상용정을 세웠다. 상용정은 한국 전통 목조 구조로 시공하여 그 웅장함을 더하였다. 목재는 우리나라 소나무를 사용하였으며 화강암 암장 초석에는 우리나라 대표적 국악기인 대금을 형상화하였는데 국악의 고장 영동의 명소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전통 양식의 멋스러운 이 팔각정의 풍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하고 고개를 오르내리는 도마령 길은 구절양장 춤을 추며 상촌으로 용화로 뻗어 가는데 그 풍경이 조화롭다. 또한 구불구불 굽이진 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 최근 명성을 얻고 있다. 영화 의 촬영지로 시골 풍경과 정겨운 인심이 가득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곳이다. 비포장도로를 포장해서 2차선 도로가 되었고 구불거리는 도로 주변으로 민주지산의 수려한 풍광이 펼쳐져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민주지산의 숲길에서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도림사(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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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도림사(대구)

도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로서 대구지역의 포교를 목적으로 세워진 대표적인 사찰이다. 이 사찰은 대구의 팔공산 동남쪽 감투봉 아래 위치하고 있으며, 편에는 갓바위 약사여래부처님과 동화사, 파계사 등이 줄지어 서있는 팔공산맥을 마주하고 있다. 1997년 2월 3일 대구시 동구 진인동 팔공산 감투봉 아래 선종가람 서광사로 대한불교조계종에 등록하였으며, 2004년 12월 15일 창건주인 도림 법전스님의 호를 사명으로 개칭하여 도림사로 불리게 되었다. 도림사에서는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의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인산로 242 (진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