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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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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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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남고서원

일재 이항·건재 김천일을 비롯하여 김점·김복억·김승적·소산복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이항(1499∼1576)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다. 김천일(1537∼1593)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른 장수이다. 이 서원은 선조 10년(1577)에 이항과 김천일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고 숙종 11년(1685) 임금으로부터 ‘남고’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광무 3년(1899)에 다시 지었는데 이때 김점·김복억·김승적이 추가로 배향되었으며, 1913년에는 새로 소산복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서원 경내에는 사우와 강수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사우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은 중앙에 이항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그 좌우에 나머지 인물들의 위패가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강당인 강수재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가운데 2칸은 대청이고, 좌우에 방을 배치하였다. (출처: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1길 392
남고사(전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역사관광

남고사(전주)

남고사는 고덕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남고산성을 따라 전주의 남쪽을 지키고 있는 사찰로, 절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전주 시가지가 한눈에 보여 아름다운 전망을 만나볼 수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사천왕문 등이 있다. 남고사 안쪽에는 삼성각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삼성각은 한국 고유의 토속신앙과 불교가 합쳐져 생긴 형태로, 산신, 칠성, 독성을 봉안하는 불교의 건축물이다. 또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고,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앞 건물 자리는 남고사지의 옛 절터로, 1985년 8월,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단풍 가득한 가을의 남고사는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여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53-88
낙양사(김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낙양사(김제)

낙양사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여산송씨 집성촌인 불로마을에 있는 송정기, 송정구, 송정모 삼형제를 모신 사당이다. 죽계 송정기는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지조가 단결하여 1797년(정조 21) 정려를 받았다. 벽계 송정구는 송정기의 가운데 동생으로 형을 엄부와 같이 섬기며 효로 집안을 다스리고 예로 가르치니 향인이 흠모하여 송정기와 함께 육송사에 배향하다가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송정모는 송정기의 막내 동생으로 나서부터 성품이 순화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송시열이 덕원으로 귀양 가자 항소한 뒤로는 두문분출하고 과정에 나아갈 뜻을 끊음에 향리 사람들이 감복하여 사림들이 사당에 배향하였다. 1675년(숙종 1) 금구현 동도면 상학리(현재의 금구면 금구리)에 학천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금구현 수류면 거야(현재의 금구면 삼봉리 거야마을)에 있는 육송사로 옮겨 모셨다. 그런데 1869년(고종 6) 육송사가 철폐됨에 따라 1910년(순조 4)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낙양사라 하여 송정기 삼형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4길 87-3
낙덕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낙덕정

명종 즉위년(1545)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학자인 하서 김인후가 관직을 그만두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던 곳이다. 김인후는 낙덕암 주위의 산세를 유난히 좋아했던 것으로 전하며, 자연을 즐기는 한편 후세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쳤다. 고종 4년(1900)에는 훗날 이곳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올 것이라는 김노수의 예언을 따라 낙덕암 위에 정자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북픙면 상송리
군산 발산리 석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역사관광

군산 발산리 석등

발산리 석등은 고려초기 작품이며 높이는 2.5m 로 기둥돌의 용무늬 조각이 특징이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에서 일제강점기 때 시마타니가 반출하였다. 현재 위치는 발산초등학교 건물 뒤편의 정원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발산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1900년대 일본인 농장주 시미타니의 집과 농장이 있던 곳으로 그 당시 일본인 농장주가 수집했던 문화유적이 다량 보존되어 있었다. 하대석에는 8장의 연화복련(연꽃잎 2장이 겹쳐진 모습)이 새겨져 있고 간주석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용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처럼 기둥돌에 용이 새겨진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작품이다. 또한 지대석은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 가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역사관광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 가옥)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군산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지은 주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식 주택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 군산에 거주하였던 일본 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45년 해방 후 적산 가옥으로 구 호남 제분으로 넘어가 한국 제분의 소유로 되어 있고, 2005년 6월 18일 국가 등록 문화유산 제183호로 지정된 이후 군산시에서 관리하면서 관람객을 위해 개방하고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한국 영화가 이 주택에서 촬영될 정도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군산 원도심의 남서쪽 가장자리인 신흥동의 주택가 안쪽에 남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대규모 목조 주택 2층 건물로 벽체는 심벽에 목재 비늘판벽과 회벽으로 마감하였고, 지붕은 박공지붕과 합각지붕에 기와를 얹어 마감하였다. 자연석을 깐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이 놓이고 그 위에 가느다란 사각기둥이 세워져 지붕 가구가 짜인 방식이다. 현관 부분의 지붕은 박공지붕과 모임지붕 형식인데, 처마 밑에 함석판을 덮은 차양이 덧달아져 있다. 2층 부분의 지붕은 합각지붕 형식으로 처리되었으며, 전면에 부섭지붕이 달려 있다. ‘ㄱ’ 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두 건물 사이에는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으며, 정원 내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본채 뒤쪽으로 뒷마당에는 또 다른 부속채와 우물, 화장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구영1길 17
귀정사(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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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귀정사(남원)

귀정사는 백제 무녕왕 15년(515년)에 현오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는 만행사(萬行寺)라 불렸다. 이후에 백제의 왕이 절에 참배를 와서 고승(高僧)의 설법에 탄복하여 3일간 절에 머무르며 국정을 살피고 돌아갔다 하여 귀정사(歸政寺)라 고쳐 불렀다. 왕은 “죽고 살기를 스님과 더불어 같이 한다”는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1221년 대방(남원의 옛 이름)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귀정사에 제2의 백련결사를 개설했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대은스님이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 세조 14년(1468년)에 낙은스님이 각각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실됐다. 현종 5년(1664년)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 모습대로 고쳐졌고, 순조 4년(1804년)에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와중에 옛 건물이 모두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명월당, 시왕전, 향로전, 영당의 전각이 있었으며, 부속 암자로는 남암, 상암, 대은암, 낙은암 등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귀정사에 살던 스님들이 모두 흩어지자 만공스님이 큰 법당에 모셔졌던 삼존불상을 충청도 수덕사 대웅전으로 옮겼고, 지금도 그곳에 모셔져 있다. 1968년 유정동 스님이 보광전, 승당,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2006년부터는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면서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보광전 개축, 만행당, 관음전, 산신각, 종각 등을 새로 건립하였고, 인드라망 수련원, 만행산 귀농학교, 숲살림원,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 등이 운영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2길 246
금산교회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금산교회

1908년 전주선 교부의 데이트(Lews Boyd Tate) 선교사가 지은 한옥교회이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의 사기(事記)에 의하면, 처음의 교회는 1905년에 5칸으로 지었으나,190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금산교회 옆으로 1988년에 새로 지은 교회본당과 사택이 들어서 있다. 건물은 남북방향으로 5칸이며, 여기에서 동쪽으로 2칸을 덧붙여 뒤집힌ㄱ자 형태를 이룬다.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으로 남자석, 동쪽으로 여자석을 분리하여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 초기 교회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구분이라는 큰 문제를 ㄱ자형 건물을 지어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보게 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서양식교회의 특징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이 교회는 초기 교회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로, 각 구조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로 지정·보존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07
권희문가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역사관광

권희문가옥

산서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고택으로 현 수유주의 10대 조가 광해군의 사화를 피해 일가와 함께 오산리에 정착하면서 건립하였다.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1866년, 사랑채는 영조 49년(1733)에 지었다. 사랑채는 1875년 중수하였는데 안채를 세운 후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 1973년 문간채를 짓기 전에는 사랑채 화단 앞의 서문이 대문이었으나, 좁아서 마차가 드나들기에 어렵고 대문 방향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따로 문간채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옛 가옥의 중심은 사랑채인데 이 가옥은 안채가 중심이다. 전라도 지방 가옥의 일반적 특징인 일자형 구조가 아닌 ㄱ자형 구조에, 안채 전면 기둥은 둥근기둥인데 사랑채는 네모기둥인 것도 가옥의 중심이 안채임을 나타낸다. 안채와 사랑채 외에 서쪽채·아래채·문간채·바깥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안채, 사랑채, 서쪽채 등은 거의 원형 그대로이나 나머지 건물은 많이 변형되었다. 문간채는 블록을 쌓아 창고로 만들고 바깥채는 외양간, 창고, 목욕탕 등으로 사용된다. 아래채에는 돼지우리와 외양간 등 축사를 두고 사랑채 한쪽에는 여물청을 두었다. 권희문 가옥은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개조되었지만 안채와 사랑채는 거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메길 9
금구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금구향교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금구향교는 1390년에 창건되어 1404년에 중창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5년에 중건하였다가 167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그 뒤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소장 전적 등이 대부분 유실되며 쇠락하였으나, 1954년에 지역 유림이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지방 청소년들의 교육기관으로 활용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만화루는 2층 누각 형식의 건물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대성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규모이며 맞배지붕이다. 주변에는 남강정사, 선암저수지, 대율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3길 12
김기서강학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김기서강학당

조산저수지 가는 길의 축령산 자락이 이어진 마을에 위치한 조선 전기 강학당으로, 김기서 강학당은 광산김씨 사당인 노산사 안에 있다. 김기서는 광산인으로, 자는 시견, 호는 돈목재이다. 성균관 직강으로 통정대부까지 오른 매산 김석원의 조카로, 효성이 지극하여 1508년 중종으로부터 광릉 참봉에 제수되고 장려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조광조 문하에 들어가 매형 양팽손 등과 강론하다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조광조와 신진사림들이 대거 숙청당하자 상평리에 은거하면서 두문불출하였다. 조광조의 학문에 심취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고자 김기서 강학당을 세웠다. 원래 이 자리에는 전불사의 불당이 있었다. 1548년(명종 3)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이고, 내부는 베갯마루 대청의 중당 2칸, 좌협실 2칸, 우협실 1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의 소박한 공청건물이다. 광산김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사동길 40-160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역사관광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시마타니금고는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의 대표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1920년대에 지은 금고용 건물이다. 시마타니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발산리 석등과 오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품을 불법 수집하였던 인물이다. 이 건물은 시마티니가 수집한 골동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건물은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입구에는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은 쇠창살과 철판으로 이중 장금 장치가 되어 있다. 현재 발산초교 자리에 농장을 만들었던 시마타니 야소야는 일본의 야마구찌현 구카군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에 온 자인데 그는 1903년 12월 당시 돈 7만원으로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장을 만들기 시작하여 1909년이 되자 임피 외에도 2개 면에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한 농장주가 된다.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시마타니 독은 해방 후 자신의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미군정청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다른 일본인이 떠난 후에도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그는 군산의 마지막 일본인 농장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결국 그도 미군정청의 강제적 권유로 손가방 2개만을 지닌 채 부산항에서 마지박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 건물은 반지하인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어진 3층까지 하나의 구조물인 일체형으로 만들고 내부의 각층은 나무마루로 구분된 건물이다.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문을 달아놓아 2중의 방범장치가 되어 있다. 출입문은 USA마크가 선명한 문을 달아 놓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에서 수입한 수입품임을 알 수 있다. 금고의 반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류가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 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53-5
국립임실호국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국립임실호국원

국립임실호국원은 임실 읍내에서 순창, 강진 방면으로 약 12㎞ 지점, 백련리에 있다. 국립임실호국원은 6.25 전쟁 시 조국 수호를 위해 신명을 바치셨던 참전용사와 자유우방을 돕기 위해 월남에 참전했던 월남참전용사 그리고 국가유공자들의 고귀한 업적과 공적을 기리며 이분들의 위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립임실호국원은 현충탑, 현충문, 충렬관, 현충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충탑/현충문은 유가족과 참배객을 위한 시설로서 호국영령들의 위훈을 영구히 추앙하고자 중앙에 높이 26m의 탑이 세워져 있고 좌우 측에 호국영령의 승천을 기원하는 비천상과 자유와 평화를 기리는 군상 부조가 있다. 현충관은 호국영령들의 안장식을 거행하는 행사장으로 1층은 168석의 합동안장식 행사장과 임시 봉안실이 마련되어 있고, 2층은 호국안보전시관으로 우리 민족의 전쟁 역사를 한눈으로 볼 수 있으며, 호국용사들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충렬관은 2001년 1월 1일 이전에 사망하신 호국영령들을 안치하는 곳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 총 3만 기를 안치할 수 있으며, 1층에는 안치전 가정의례를 지낼 수 있는 16개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어 삼우제나 참배 시 이용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강진면 호국로 420
구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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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역사관광

구산서원

전라북도 진안군에 위치한 구산서원은 1828년(순조 28)에 송보산(宋寶山)을 배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가 16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1949년에 다시 설단(設壇)되어 봉사하다가 1967년에 이르러 중건되었고 1967년에 진안유림의 발의로 김문기(金文起)와 송림(宋琳)이 추향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산서원은 진안 서남쪽 섬진강과 세동천이 만나 크게 만곡을 이루는 강변 옆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후진양성을 담당하던 구산서원과 손현배향을 하던 구산사가 함께 자리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마령면 임진로 2361-82
관응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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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관응사(김제)

관응사는 김제에서 전주로 가는 길에 있는 금천호수 인근의 대한불교 관음종 소속 사찰이다. 속칭 각시골이라 불리는 관응사 절터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첩첩산중으로 한 각시가 들어가 이를 기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 보니 현재의 절터에서 사라져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이곳의 관음보살에게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하며 이 관응사 터를 각시골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이러한 전설이 전해져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다. 1936년 조그만 암자로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미상이다. 1985년경 진성 정공진이 주지로 부임해 대웅전과 요사, 삼성각, 미륵불을 봉안하고 사찰의 면모를 일신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선비로 1354-42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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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동학농민혁명은 한국근대사에서 전국에 걸쳐 사회개혁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낸 역사적인 사건이다. 고창 무장기포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운동이기도 한 동학혁명의 시발점으로 의미가 매우 큰 유적지이다. 고창군에서 대산면으로 가는 국도 22호선 왼쪽 구수마을 일대에 위치하여 있다. 참고로, 무장은 지명이며 기포지는 동학농민혁명 포고문을 선포한 집결지를 의미한다. 동학농민혁명의 참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곳에는 동학농민혁명의 훈련장으로 사용된 터와 [갑오동학농민군 고창주 의장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갑오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 총대장, 김개남 총관령과 손화중 총관령 세 지도자와 동학농민혁명 당시 고창군으로 통합되기 이전인 고창현, 무장현, 홍덕현을 의미하는 늘 푸른 소나무 세 그루를 상징적으로 식재해 놓았다. 기존 기포지에 설치되어 있었던 동학농민혁명 기념탑과 조형물들은 고창동학농민혁명 성지화사업 진행으로 (구)신황초등학교에 옮겨 놓았으므로 함께 연계해서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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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계산서원

공의로 김지대(1190~1266)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현재의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두곡리에 남계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사당의 명칭을 충효사라 하고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하다가, 고종 51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위패는 뒷산에 묻고 단을 세워 향사하다가, 1907년에는 후손들이 강당인 쌍수당을 중건하기도 하였다. 그 뒤 전라북도 무장향교 관내 유생들이 발의하여 1982년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고, 명칭을 계산서원이라 하였다. 서원 내에는 사당인 상충사 3칸, 강당인 경의당 4칸, 감모재 5칸, 내삼문, 정문인 쌍수문, 고직사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상하면 상라길 117
고부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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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고부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부향교는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0년(1597)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 직사, 내삼문, 외삼문, 홍살문 등이며, 전해오는 유물로는 제기, 제복, 서적들이 있다. 대성전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보다 위쪽에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교동4길 18
고창 분청사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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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 분청사기요지

전북 고창군 수동리에 있는 분청사기 가마터로, 구릉 위 작은 저수지의 경사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가마벽 부분·도자기 만들던 도구·분청사기 조각들이 널려있다. 그릇은 대접·접시·잔·항아리·큰 사발 조각이 주류를 이루며, 유약의 색은 회청색을 띠고 그릇을 빚던 흙에는 이물질이 많이 섞여 있다. 문양은 연꽃무늬, 물고기 무늬, 모란무늬들이 대범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일부 그릇에 ‘내섬(內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전라도지방의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널리 발견되는 것으로 관청용 분청사기도 제작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
고창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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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창향교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월곡리에 있던 학당사을 옮겨온 것으로, 조선 중종 7년(1512)에 다시 지었다. 대성전은 선조 38년(1605)에 수리하였고, 1974년에 기와를 보수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고창향교는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필요한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향교길 27-3
고창 무장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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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 무장객사

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무장객사는 조선시대 무장현에 내려온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다. 조선 선조 14년(1581)에 건립되었다. 본관에 걸린 궐자를 새긴 나무 패는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과 지방관리들은 여기에 경의를 표했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면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축하의식을 행하였다. 본관은 돌을 쌓고 그 위에 세운 것으로 계단에 새긴 호랑이, 구름 등의 조각이 운치가 있다. 좌우 건물의 지붕이 본관보다 낮은 점은 격을 낮추기 위해서이다. 이 객사의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초석 석재 하부는 네모지게 상부는 반구형으로 다듬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 것 외에 별다른 특징은 없다. 건물 정면의 정원이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객사 건물은 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일부 형질을 변경했던 것을 1990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무장객사 뒤편에는 무장수령이 관아를 통치하던 관청의 건물인 동헌이 위치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읍성길 45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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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무장읍성은 1417년 무장진의 병마사에 마을을 다스리는 기능을 주어 무장진 병마사 김노가 쌓은 길이 약 1.2㎞의 평지성이다. 읍성의 남문인 진무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동문터도 잘 남아 있다. 성 주위를 둘러싼 물길인 해자는 폭 4m, 길이 574m 정도로 그 흔적만 남아있다. 성 안의 건물로는 객사, 동헌이 있다. 에 의하면 읍성의 둘레는 1,470척(약441m), 높이 7척(약 2m)이며 해자의 둘레는 2,127척(약 638m)이고 문은 2개가 있으며 성의 규모를 넓혀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흙으로만 축조된 토성으로 알려져 왔던 이 성이 공사 때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드러났었는데 성곽일부가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된 것임이 밝혀졌다. 1915년에 발견된 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0,000여명을 동원하여 그해 2월부터 5월까지 만 4개월 동안에 축조했다고 전한다. 한편 1894년 일어났던 동학 농민혁명은 이곳 무장읍성에서 맨 처음 봉기하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무장읍성은 조선시대 옛 읍성의 모습을 연구하고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읍성길 45
무주한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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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역사관광

무주한풍루

호남 최고의 누각이라고 부르는 한풍루(寒風樓)는 전주의 한벽당(寒碧堂),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삼한(三寒)의 하나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1592) 때 왜군에 의해 불에 탔던 것을 선조 32년 (1599)에 한풍루를 사랑한 형인 임제가 꿈속에 나타나 한풍루 복원을 원해서 동생 현감 임환이 다시 지었고, 1783년 현감 임중원이 중수하였다. 전주의 한벽당, 남원의 광한루와 함께 호남의 3 한의 하나로서 호남 제1의 누각이다. 이 건물은 2층 누각으로 하층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상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누각에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한풍루 주변은 근린공원과 체육시설로 조성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한풍루로 326-5
무장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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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무장향교

무장향교는 1420년(세종 2) 지금의 자리인 무장면 교흥리에 창건되었다. 1600년(선조 33)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의 내외 3문을 지금의 자리에 중건하였고, 1840년(헌종 6) 명륜당이 불에 타 1842년(헌종 8) 봄에 중건하였으며, 1852년(철종 3) 동재가 불에 타 이듬해 재건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홍살문 등이다. 무장향교는 무장을 대표하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이자 선현을 제향하는 공간으로, 현재 무장 지역의 효자, 효부 등에 대한 포상을 행하고 있다. 특히 명륜학원을 운영하여 무장면 전통문화와 예절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며, 현대인들이 잊어버리기 쉬운 옛 성현의 가르침과 숭고한 향교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교흥교촌길 9
두동교회 구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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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두동교회 구본당

두동교회 구본당은 1929년에 건립한 두동교회의 초기 본당이다. 두동교회는 1923년에 마을 부호 박재신의 사랑채에 예배소가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29년에 교인들이 현재의 자리에 ㄱ자형 한옥식 교회를 지었다. 익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로 1964년 현 예배당이 건립될 때까지 본당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두동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ㄱ자형 교회는 전국에 걸쳐 세워졌으나 지금은 전북 김제 금산교회와 두동교회 구 본당만 남아 있다. 이것은 전통 유교 문화를 교회 건축에 반영한 사례로 우리나라 개신교의 전파 과정과 초기 교회 건축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건물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성당면 두동길 17-1
동고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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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역사관광

동고산성

동고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산성으로 조선 순조 때 건너편 산성을 ‘남고산성’이라 부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둘레는 1,712m이며, 동서방향으로 314m, 남북방향으로 256m에 이르는 비교적 대규모의 산성이다. 성벽은 포곡식 산성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예로부터 후백제를 세운 견훤왕이 도읍으로 삼았던 완산주의 궁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0년 발굴조사에서 전면 22칸, 측면 3칸으로 총 66칸 넓이의 건물 터가 조사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발굴 조사된 단일 건물로 가장 큰 규모로, 이곳이 견훤왕의 궁성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대원사 용각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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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역사관광

대원사 용각부도

대원사 용각부도는 완주 모악산(795m) 동쪽 자락에 위치한 사찰 대원사 경내에 보존된 부도 중 하나이다. 부도는 불교에서 승려의 사리를 안치한 탑이다. 대원사에는 총 10기의 부도가 있는데 그 중 북동쪽에 4기, 계곡에 6기가 있다. 용각부도는 그 중 북동쪽에 위치한 4기의 부도 중 하나로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이 부도는 종 모양의 부도로 자연석을 다듬어 만들었으며, 구름 문양, 용 문양, 연화 문양을 새겼다. 1976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부도가 있는 곳에서는 대원사가 있는 골짜기가 내려다보여 운치를 더한다. 주변에는 대원사, 모악산 외에 전북도립미술관, 구이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243
대복사(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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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대복사(남원)

남원의 서쪽 교룡산 자락에 자리한 대복사는 신라시대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한다. 도선국사는 남원의 지세가 재물을 가득 실은 배(船)의 형국이고, 교룡산이 배를 덮치는 험한 파도로 보았다. 이에 주산인 백공산의 약한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선원사(禪院寺)를 창건하고, 객산인 교룡산의 강한 기운을 누르기 위해 대복사의 전신인 대곡암(大谷庵)을 창건한 것이다. 따라서 풍수적으로 볼 때 대복사는 파도를 막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조선 후기에는 절이 매우 퇴락하였던 것을, 뱀으로 화할 업보를 면하게 된 ‘대복(大福)’이라는 한 중생이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사찰을 중수함으로써 그의 이름을 따서 대복사로 사찰명을 바꾸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매우 번창하여, 남원지역 불교학생회와 청년회가 이곳 대복사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 까닭에 두고두고 사찰의 자랑으로 삼을 만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급변하면서 사찰도 퇴락하였다가, 2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예전 대복사의 불교활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학생회를 다시 구성하고, 일반인을 상대로 한 다도강좌주말수련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획들이 실현되는 앞날에 대복사는 다시 한 번 남원 땅에 큰 법음을 울릴 수 있을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복사길 61 (왕정동)
남원사(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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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남원사(익산)

우리나라 사찰은 대체로 산속에 위치해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남원사는 보기 드문 평지 사찰이다. 벼 이삭이 익어가는 8월이 어느 날. 장마 뒤끝에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시샘하듯 들녘을 가득 메운 벼들은 빗물에 씻긴 채 물기를 머금고 초록빛이 더욱 짙어져 간다. 시원하게 뚫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울창한 나무와 숲을 가로질러 난 고불고불한 산길을 지나 노인분들께 물어물어 남원사를 찾아간다. 그러다 더 이상 물어볼 사람이 없어 두리번거릴 때 파란 들판 한가운데 그림같이 서 있는 사찰이 나타난다. 바로 남원사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남원사는 논두렁 사이에 파랗게 익어가는 벼 이삭 사이로 서 있는 아담한 사찰이다. 그곳에서는 장맛비를 맞아 환하게 피어 올라온 분홍빛 연꽃이 우선 맞이해 준다. 일주문을 거쳐 경내로 들어서면 유난히 아름다운 화단이 또 지친 나그네를 맞아준다. 낮은 꽃밭에는 정겨운 우리 꽃들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아마도 이곳에 도착하게 되면 계절 따라 철철이 피는 또 다른 꽃을 만나게 되고, 그 꽃을 보면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미륵전을 들어가면 이곳 소박한 시골의 사찰을 닮은 순박한 모습의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서촌1길 34-3
남원 실상사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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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 실상사 석장승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한다. 남원 실상사 석장승은 실상사를 지키는 돌장승으로, 원래는 냇가에 모두 4개가 있었다. 그러나 1936년 홍수 때 1개가 쓸려 내려가 현재는 3개만 남았다. 남아있는 3개의 장승은 각각 ‘대장군’, ‘옹호금사축귀장군’, ‘상원주장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세 장승 모두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이며,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시기인 1725년(조선 영조 1)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주변에는 실상사 외에 지리산산내들펜션 야영장, 지리산국립공원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남원 흥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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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 흥부마을

남원시 아영면 성리 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이곳은 전해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 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 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풂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 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지금은 길 양쪽으로 감자 농사가 한창인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준 발복 집터이다.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짓재 고갯마루에 높다랗게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의 산자락과 이웃 논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금 모퉁이’는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금을 주워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편, ‘흰죽배미’란 장소는 흥부가 부농이 된 후 은인들에게 보답으로 주었다는 논으로 전해진다. 흥부 아내가 이웃들이 흰죽을 먹고 살아나서 ‘흰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디막거리’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로 추정된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있지만 개울가에는 억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형제간의 우애, 부(富)와 빈(貧), 성공한 이후에도 어려웠을 시절 함께 했던 이웃을 잊지 않은 겸손과 나눔의 정신을 되돌아봄직하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아영면 흥부로 275
남원 신계리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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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 신계리 마애여래좌상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은 풍악산 동쪽 중턱에 우뚝 솟은 바위의 남면에 새겨진 불상으로 자연 암석의 한 면을 다듬어 거기에 부처의 앉은 모습을 돋을새김 한 마애불이다. 고려 초 도선스님이 하룻밤 만에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줄에 꿴 구슬로 둥글게 감싸 몸 둘레에 서린 빛을 표현한 것은 희귀한 예이다. 왼쪽 어깨에 걸친 옷은 단순한 선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이목구비를 비교적 생동감 있게 조각하였다. 넓은 어깨, 불룩한 가슴, 통통한 팔, 다리에도 입체감이 실려 있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코와 양 귓불 일부분이 부서져 없어졌으나,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배경을 알 수 없다.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은 상호의 표정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으나 경직된 분위기와 법의 주름에 보이는 선각 기법 등을 통하여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남궁찬묘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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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찬묘석상

남궁찬묘석상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남궁찬묘 앞에 자리하고 있는 2기의 석상이다. 석상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오른쪽 석상의 높이는 260㎝, 왼쪽 석상은 250㎝이다. 각진 큰 머리에 구슬 모양 장식을 붙인 모자를 쓰고 있으며 툭 튀어나온 눈과 두툼한 코와 내밀고 있는 턱이 특징이다. 옷은 도포를 걸친 모습으로 선을 가늘게 조각하였으며 양손은 소맷자락 속에 넣고 있다. 석상의 제작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석상이 남궁찬의 묘석으로 있기 때문에 남궁찬의 묘를 조성할 때 같이 제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석상의 얼굴 등이 이국적인 점에 주목하여 중국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 전기 묘소에 조성된 석상은 현존하는 것이 거의 없다. 남궁찬묘석상은 안면이나 의습 등이 잘 드러나 있어 조선 전기 조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성당면 목사동길 48
남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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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정

남계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 김진이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운 누각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건물은 선조 13년(1580)에 신축해 두 차례 중건되었다. 정자는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마루와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목조 건물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공포는 주심포 양식이다. 구성은 대청마루와 방으로 나뉘어 마루에는 ㄱ자형으로 정면과 측면에 걸쳐 퇴를 두었다. 지면에서 약간 올려 깐 마루에는 전면으로 일반 가옥처럼 출입문을 내고 측면에 한 쌍의 두 짝 여닫이 덧문을 달았다. 귀포의 장식이 화려하며 용마루도 높아, 작지만 품위를 느낄 수 있다. 남계정 안에는 의병장 고경명, 조헌, 부제학 심음시 등 당시의 유림이 남계의 학문과 덕망을 찬양한 현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남계정의 밑에 있는 절벽 아래 바위에는 한문으로 남계정이란 암각서가 새겨져 있다. 남계정은 산 끝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 누각에 오르면 두현리와 멀리 모악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시원한 조망을 안겨준다. 주변으로 구이저수지와 전북도립미술관, 모악산관광단지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원두현길 12-12
나바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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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역사관광

나바위 성당

나바위 성당은 조선 헌종 11년(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장약슬, 요셉) 신부가 중심으로 1906년 건물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나바위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1916~1917년까지 흙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였다. 한국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다.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 볼거리로는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들 수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두 번째 볼거리로는 망금정을 들 수 있다. 망금정이란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서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하고 있는 데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벽면에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귀래정(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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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귀래정(순창)

귀래정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에 있는 정자이다. 귀래정이란 이름은 신말주의 호를 딴 것이다. 현재 정자에는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문 등이 편액에 새겨져 있다. 귀래정은 1457년(세조 2년)에 신말주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의 건물은 1974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주변 관광지로 강천산군립공원,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 설씨부인신경준선생유지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