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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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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암(부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무진암(부여)

무진암의 소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리 만수리 125번지이다. 무진암은 비구니 스님의 정갈함이 묻어나는 작은 비구니 암자로, 아름다운 사찰이다. 무진암으로 오는 도중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소나무가 마치 산개와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어 눈길을 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인 무진암은 남쪽을 향해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 있으며, 야트막한 만수산의 줄기를 따라 비교적 평평하고 너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깨끗한 만수산의 자연을 닮아 사역 전체가 맑으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최근에 불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제법 규모가 큰 대웅전이나 삼성각과 함께 여러 채의 요사를 갖추고 있다. 무진암 인근의 사찰 무량사는 부여에서 가장 큰 절로 외산 만수산 기슭, 소나무가 울창하고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절은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 하며, 고려 때 크게 융성했고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조선 인조(1636~1646) 때에 재건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181-17
무상사(계룡)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계룡시역사관광

무상사(계룡)

무상사는 계룡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아담한 사찰이다. 외국인 스님들이 머무르며 한국불교를 수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3개월 간의 집중 선 수행 안거를 실시한다. 여름에 열리는 수행을 하안거 겨울에 열리는 수행을 동안거라고 하며 그 외 해제 기간에는 다양한 사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이 되기 위한 교육, 주말 안거, 특별행사,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일반인을 위한 법회, 젠 카페, 경전반도 주최하고 있으며 모든 프로그램은 영어와 한국어로 운영된다. 주변에 향적산 치유의 숲이 있으며 산림욕을 즐기고 나서 사찰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 충청남도 계룡시 엄사면 향적산길 129
무량사(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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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무량사(부여)

충남 부여군 외산면에 자리한 천년고찰 ‘무량사’는 만수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신라 문무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국내 제일의 아미타 기도 도량으로 사천왕문을 지나면 정면에 보물로 지정된 무량사 극락전이 보인다. 사천왕문은 무량사의 멋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위치로, 층 구분이 없는 2층 극락전과 오 층 석탑(보물), 석등(보물)이 일렬로 늘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극락전 소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도 위용을 자랑한다. 무량사는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입적한 곳이다. 경내에 그의 부도와 초상화가 있다. 행정구역 상 부여군에 속하지만 보령 시내에서 더 가깝다.

⌖ 충청남도 부여군 무량로 203
목천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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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목천향교

목천향교는 조선 전기에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운 교육기관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이후에 다시 세운 후 여러 차례 걸쳐 수리하였으며, 목천현지에 참봉 한혁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제사 지내는 공간인 3칸의 대성전과 각각 3칸의 동무·서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5칸의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각각 3칸인 동재·서재, 2칸 내삼문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교촌6길 5
모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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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청양군역사관광

모덕사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모덕사 현판의 글자는 고종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 라는 구절에서 모(慕)자와 덕(德)자를 취한 것이다. 최익현 선생은 이항노의 제자로 문학과 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1855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사헌부 장령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고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조약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 끝내 순국하였다. 후에 그를 추모하는 사림들이 태인, 포천, 곡성 등 여러 지역에 그의 사당을 세웠다. 이곳 모덕사는 선생이 살았던 고택과 장서각,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함께 들어서 있다.

⌖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
명종대왕태실및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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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역사관광

명종대왕태실및비

태봉골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명종대왕태실및비는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태를 봉안한 곳이다. 명종대왕태실 앞에는 기념비 3기가 있다. 명종대왕태실과 오른쪽에 위치한 비는 1538년(중종 33)에 건립되었고, 왼쪽에 있는 비는 1546년(명종 1), 가운데에 있는 비는 1711년(숙종 31)에 세웠다. 오른쪽의 비는 태실을 만들면서 함께 세운 것이고, 왼쪽의 비는 왕자의 태실비로 용을 새긴 머릿돌을 올렸고, 가운데의 비는 주상의 비로 거북받침 위에 비몸을 올리고 용이 새겨진 머릿돌 얹었다.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면천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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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역사관광

면천향교

면천향교는 다른 지역의 향교들과 달리 최초 창건 위치를 이동하지 않은 몇 개 안 되는 향교이다. 현재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군에서 동쪽으로 2리 떨어져 있다는 기록과도 일치하고 있다.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태조 1년(1392)에 세웠다고 전한다. 창건 이후의 면천향교 변화를 알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은 1716년(숙종 42년) 학교등록의 기사로, 면천향교의 대성전 서벽과 신문을 수리한 사실이 적혀있다. 1980년대 이후의 향교 보수로는 1983년 대성전 보수, 1985년 명륜당 보수, 1986년 동서재 보수가 이루어졌다. 향교 건물의 배치는 앞쪽에 배우는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서재가 있고, 뒤쪽에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과 동무, 서무가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 좌우에 있는 동무와 서무는 규모와 형식이 같은 건물인데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외의 건물로 내삼문과 외삼문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동문2길 36-7
두마신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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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계룡시역사관광

두마신원재

두마신원재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계 김장생(金長生) 선생의 9번째 아들인 김비의 재실이다. 재실은 굴도리계통 정면 4간 측면 1.5칸의 홀처마 팔작지붕이다. 전면에 신원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신원재(愼遠齋)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그의 형제인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과 그 형제들이 1632년 함께 건물을 짓고 이곳에서 그의 조부 및 부친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의 저서 등을 정리 집필하였던 곳이고, 신독재 사후 그의 막내 동생 김비가 황강행장(黃岡行狀) 및 실기(實記), 사계, 신독재 전서 등을 정리 집필하였던 유서 깊은 곳으로써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으나 한옥재실로서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2길 43
동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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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동혈사

동혈사는 충남 공주시내 북쪽 의당면의 천태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이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며,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동서남북의 혈(穴)에 위치하여 서혈사, 남혈사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 풍수사상이 널리 유행하면서 세워졌을 법한 그런 사찰이다. 지금 그러한 흔적은 현재의 사찰 아래쪽 동혈사터(銅穴寺址)에 남아 있다. 더욱이 단청을 하지 않은 대웅전의 모습은 사찰을 더욱 고풍스럽게 한다. 동혈사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보기 위해 맞은편 산꼭대기에 오르면 옛 군용 헬기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천태산 주위의 풍광뿐 아니라 동혈사의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한편, 경내 3층 석탑은 공주시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었다. 동혈사는 국도 43호선과 지방도 604호선 혹은 국도 23호선에서 의당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정안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공주알밤농원, 중흥저수지 등이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동혈사길 77
동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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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동절사

남면 동절사는 1962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에 있는 사우로 임진왜란 때 수원성에서 왜병과 싸우다 순절하여 병조판서에 증직된 이지시, 이지례 형제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은 야산 중턱에 북쪽을 향하여 지어졌다. 입구는 사괴석(벽이나 돌담을 쌓는 데 쓰는 육면체의 돌) 담장으로 둘러 있고 덤벙주춧돌 (둥글넓적한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놓은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만든 솟을삼문형의 외삼문이 있다.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된 사우가 나타나는데, 측면 2칸 중 전면 1칸에는 툇마루를, 후면 1칸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2인의 위패를 안치하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으나 현재 매우 심하게 변형되었다. 주변 관광 명소는 세양사, 홍산객사, 아홉 살이 관광, 보부상, 홍산동헌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
동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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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동곡서원

고려 공민왕 때 회양(淮陽) 부사(府使)를 지낸 조신(趙愼)을 추모·제향 하기 위하여 조선 철종 때 지방 유림의 공론으로 창건하여 위패(位牌)를 모신 서원이다. 조신은 이방원의 어릴 적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박팽년·유성원 등의 학자를 길러냈다. 동곡서원은 조선 철종(재위 1849∼1863) 때 지역 유림들이 지었으나,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30년에 복원하였다. 건물 배치는 ‘ㅁ’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바깥채는 전학당이라 하고 안채는 화수루라고 부른다. 주변 관광 명소는 낭산사, 간곡서원, 칠원서원, 대조사(부여), 부여 가림성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
도강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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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도강영당

부여동헌 옆에 있는 홍가신·허목·채제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이 건물은 원래 조선말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던 것을 1971년 신축하여 이들을 모신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영당은 앞면 1칸을 개방하여 참배 공간을 마련하고 뒤쪽은 통 칸으로 3인의 영정을 모셨다. 홍가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 22년 문과에 급제하여 강화부사, 형조참판, 강화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선조 37년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 이듬해 영원군에 봉해졌다. 후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허목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고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그림, 글씨, 문장에도 능하였으며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채제공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35년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영조의 세자 폐위 문제를 죽음을 무릅쓰고 막았는데 이에 따라 영조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병조, 예조, 호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 좌의정으로 행정의 최고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수원성 건설에도 참여하였으며 경종 내 실록, 영종 실록, 국조보감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동강영당 주변으로 부여동헌을 비롯하여 부여관북리유적, 부여객사, 사비도성가상체험관이 있어 연계 방문하기 좋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덕산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예산군역사관광

덕산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덕산향교는 처음 건립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인조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대성전은 숙종 8년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987년에 다시 한번 보수했다. 건물 배치는 외삼문 없이 앞쪽에 바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덕산향교 앞의 평지에는 공자상이 세워져 있으며 여름에는 향교 주변으로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 그 풍경이 아름답다. 덕산향교는 가을 선진 지역을 답사하고 전임 강사를 초빙 교양 강좌를 개최하는 등 지역 사회 유림 활동에 힘쓰고 있다.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향교길 88-34
대천한내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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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대천한내돌다리

대천한내돌다리는 보령 시내 대천천 하류에 있었던 돌다리이자, 과거의 남포와 대천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살에 쓸려 떠내려가거나 하천 제방공사를 하면서 파손되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1978년 수습하여 옮겨 두었다가, 1992년에 대천천 강변에 옮겨 일부 복원하면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근처에 있는 왕대산의 돌을 깎아내어 뗏목으로 운반해 온 것으로 보인다. 다리의 몸체를 받치는 기둥은 거칠게 손질한 2∼3개의 돌을 쌓아 이루게 하여, 모두 6개의 기둥이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위로 넓적한 판돌을 걸쳐서 다리를 완성하였는데, 원래는 12칸 돌다리라 하나 적어도 22칸은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보령시에서는 해마다 향토문화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12칸 돌다리밟기제가 열린다. 인근 관광지로는 보령중앙시장, 한내시장, 보령문화의전당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동대동
대조사(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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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대조사(부여)

대조사(부여)는 부여군 남부에 솟은 성흥산(260.1m) 남쪽 자락에 위치한 사찰이다. 인근의 가림성과 마찬가지로 6세기 초에 세워져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데, 높은 돌담을 쌓아 마치 산성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한 노승이 이 바위 밑에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한 마리의 큰 새가 바위 위에 앉는 것을 보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있었다 하여 이 절을 대조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큰 바위에 세워진 높이 10m가량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유행한 거대한 석조 미륵보살의 하나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과 함께 동일한 지방 양식을 보여주는 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조사 원통보전 앞에 서 있는 석탑 역시 고려시대에 만들었다가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복원하여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목조보살좌상 또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성흥산, 부여 가림성 외에 임천향교, 임천시장, 복금저수지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197번길 112
당진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당진시역사관광

당진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당진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이나 태종 7년(1407)에 지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교육 공간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삼문, 제기고 등이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 충청남도 당진시 교동2길 33-18
당진면천읍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당진시역사관광

당진면천읍성

면천읍성은 당진시 면천읍 소재지에 남아있는 평지 읍성으로 당진, 서산, 태안 등과 더불어 옛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바닷길이 있었던 곳이다. 이처럼 중국과의 통상에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방상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해서 백제시대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취급되었다. 지금의 읍성이 세워진 것은 1439년(세종 21년)으로 조선 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성벽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았는데,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고 쌓았다. 현 성벽의 둘레는 1,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는 치성과 옹성의 길이를 합한 전체 길이는 1,564m 정도로 추정된다. 이 성은 조선시대 성을 쌓은 규정이 가장 잘 반영된 우수한 유적으로 동, 서, 남, 북의 사대문까지 갖춘 성이었다. 성 내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군자정, 레트로거리 등이 있고, 매년 봄에는 면천 진달래민속축제가 열린다. 면천읍성은 지방도 70호선, 609호선, 619호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당진영덕고속도로 면천IC가 가깝다. 주변에는 골정저수지, 면천향교, 고려개국공신복지겸장군유적지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논산 연산역 급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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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논산 연산역 급수탑

논산 연산역 급수탑은 1911년 호남선의 개통과 함께 증기기관차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같은 해 12월 30일에 설치되어 1970년대까지 약 60여 년간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급수탑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다. 열차의 발전과 함께 기능을 상실한 채 남아있던 이 급수탑은 근대 산업시설물로의 역사성과 희소한 조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체 높이는 16.2m, 지면부의 바깥지름은 5.28m이며, 최상단부 철제 물탱크의 바깥지름이 4.1m인 총 용량 30t 규모의 원기둥형 급수탑이다. 급수탑 재료를 석재를 사용한 것이 큰 특징이다. 몸체는 화강석을 쌓았으며, 외곽 테두리를 정교하게 다듬고, 나머지 부분을 거칠게 다듬은 모양을 하고 있다. 급수탑 출입구 부분은 아치로 마감하고 이맛돌(Key Stone)의 모양이 매우 정교하며, 그 앞의 우물도 화강석 쌓기로 잘 다듬어져 있다. 급수탑 옆에 위치하고 있는 우물은 폭이 2.8m, 깊이 6m의 크기로 급수탑의 급수용으로 축조하였다. 상단부의 급수탱크에는 외부에 철제사다리를 설치하여 최상단 강판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선비로275번길 31-2
노성궐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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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노성궐리사

노성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궐리사라는 이름은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한 것이다. 숙종 13년(1687) 우암 송시열이 궐리사를 세우려고 했으나 2년 뒤 세상을 떠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숙종 42년(1716) 권상하, 김만준, 이건명 등의 제자가 현 위치에서 서쪽방향으로 있는 노성산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다음 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정조 15년(1791)에는 송조 5현을 봉안하였고 순조 5년(1805)에 관찰사 박윤수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지금 있는 영당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곳 외에도 강릉, 제천, 화성에도 궐리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과 화성에만 남아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길 35
남포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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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23)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며,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향교 건물의 배치는 대성전과 명륜당, 서재를 갖춘 전학후묘의 배치 방식을 따르고 있다. 보통 향교에는 기숙사로 사용하는 서재와 동재가 있는데 남포향교에는 동재는 없고 서재만 있으며, 이마저도 향교를 관리하는 고직사를 겸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남포향교 정면에 서면 옥서리 저수지와 남포 들녘,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성주산 옥마봉이 우뚝 서 있다. 인근의 관광 명소는 옥마산, 남포읍성, 남포 관아 문, 보령시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33
남포향교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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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향교 대성전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23)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며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남포향교의 전체적인 배치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외삼문, 내삼문, 동재, 서재 등이다. 주변 관광 명소는 남포읍성, 옥마산, 남포 관아문, 보령시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33
남포관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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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관아문

남포관아문은 조선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이다. 이전에는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현사(縣司)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서루와 내삼문, 외동헌이 남아있다. 남포현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 건물로 아래는 출입구, 위는 누마루를 설치하고, 팔작지붕이다. 조선왕조의 중앙 집권을 상징하기 위해 당시 전국에 똑같이 만들어진 관아문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진서루(鎭西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진서루는 외삼문으로 옛 남포현의 출입문이다.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2층 문루인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아래층은 삼문을 달았고, 2층은 누마루를 깐 후 4면에 난간을 세웠다. 동헌의 출입문인 내삼문은 정면 7칸 측면 1칸인데, 중앙은 솟을대문 1칸이 있어 출입구 역할을 하였고, 건물의 정면에는 옥산아문(玉山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남포현의 업무를 보던 외동헌은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앞면 중앙에 2칸의 대청이 있고 좌우는 온돌방으로 꾸몄다.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9
남포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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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읍성

남포읍성은 고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던 곳으로,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이다. 원래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고 서해상 교통을 관할하기 위해 쌓았다. 축성 직후인 1390년(공양왕 2)에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바깥쪽 벽은 돌을 이용하여 직각으로 쌓았고, 성벽의 안쪽은 흙으로 쌓아 올렸다. 동, 서, 남 세 곳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4m의 높이로 성 바깥에 또 하나의 성벽인 옹성을 둘렀다. 성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튀어나오게 하였으며, 그 양쪽 성벽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시설을 해두었다. 성 안에는 3채의 관아건물인 진남루와 옥산아문, 현청 보존되어 있으며, 동서에 80㎝ 높이로 배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1973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남포향교, 보령종합운동장, 옥마산, 남포면 소재지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금산 대원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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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금산 대원정사

금산 대원정사는 금산 시내 중심가와 가까운 도심 속 사찰이다. 원래 하신리 온양 이씨 어필각 인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처음 위치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다가 198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내부에 우물마루를 깔고 중앙의 뒤에 불단을 조성한 후, 신안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해지는 비로사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건물 구조는 길게 다듬은 돌로 된 기단 위에 높이 93㎝의 초석을 놓고 짧은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이 주춧돌의 모양이나 재질로 보아 창건 당시의 것이 아니고 옮겨지을 때 기둥의 부패 방지를 위하여 교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은 독특한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1995년에는 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비범3길 17
낙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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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낙화암

낙화암은 부여군 부소산 북쪽 백마강(금강) 변에 서 있는 바위 절벽이다. 백제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지는 모습이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아 낙화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절벽에는 조선 후기 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쓴 낙화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부소산성을 통해 직접 올라가 정자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올려다보는 것도 좋다. 낙화암 아래에는 고란사와 고란사 선착장이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부소산성, 고란사 외에 부여 관북리유적,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 구아리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여향교,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금강암(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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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금강암(보령)

금강암(金剛庵)은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에 있는 높이 411.8m 양각산(羊角山)의 동편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사찰 이름이 ‘옥계사(玉溪寺)’로 나와 있으며, 1799년(정조 23)에 간행된 '범우고(梵宇攷)'와 1930년대에 이병연(李秉延)이 찬술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옥계사’라는 이름을 기록한 뒤에 지금은 '금강암'이라 칭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조선 후기에 암행어사(暗行御史)로 활약한 박문수(朴文秀)의 할아버지 박선(朴銑)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 설도 전해진다. 비문(碑文)에 의하면 금강암을 창건한 영암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제자이며, 영암이 금강암을 창건한 이유는 태종의 후비였던 궁주 권 씨(宮主 權氏)의 소원을 빌기 위해 원당(願堂)으로 창건한 것이다. 궁주 권 씨의 아버지인 영가군(永嘉君) 권홍(權弘)과 궁주 권 씨의 딸인 옹주 이 씨(翁主 李氏)가 후원하였다.

⌖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보령호로 1139-102
금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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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금곡서원

만치당 김수남(1576∼1636)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수남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조정을 따라 강화도로 피난하였으나 그곳에 적군이 침입하자 순절하였다. 이 서원은 숙종 13년(1687) 가야곡면 조정리에 송시열, 송준길이 세웠는데 숙종 16년(1690)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정조 5년(1781)에는 매죽헌 성삼문과 송재 조계명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그 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철거되자 제단을 마련해 모시다가 1977년 사우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우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왕릉로 170-35
김좌진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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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김좌진장군묘

김좌진장군묘는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묘소이다.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김좌진은 개화사상이 투철하여 15세 때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밭을 나누어 주었다. 1905년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문맹퇴치에 앞장섰으며, 1913년에는 군자금을 모금하다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17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단에 가입한 이후 북로군정서의 사령관이 되어 독립군을 훈련시켰으며, 이를 기반으로 청산리에서 일본과 전투를 벌여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승리를 이루었다. 조국광복을 위해 노력했던 장군은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했다. 암살 직후 만주땅에 묻혔다가 아내 오숙근 여사가 1940년에 유해를 비밀리에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안장하였다. 그 후 1957년 부인이 타계하자 아들 김두한이 현 위치에 합장하였다. 현재 묘역에는 뒤편으로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봉분은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장명등이, 옆에는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말 석상 한 쌍이 세워져 있다. 1989년에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청소역 외에 오서산, 정암사, 광천토굴새우젓시장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김공 휘 유경 효자문·김공 휘 홍익 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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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역사관광

김공 휘 유경 효자문·김공 휘 홍익 충신문

김공 휘 유경 효자문은 김공 휘 유경(1669~1748)이 10세 때 친상을 당하여 예법대로 옷을 입지 못한 것을 애통해 한 나머지 71세에 추복을 하고 조석으로 곡하며 여묘 3년간 슬픔을 다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정문이다. 영조가 듣고 가상한 마음이라 하며 식물까지 내리고는 경은 사양치 말라하였다고 한다. 김공 휘 유경은 충신문 김묵재의 종증손이며 자는 덕유, 호는 용곡이다. 김공 휘 홍익 충신문은 김공 휘 홍익(1581~1636)이 병자호란 때 연산 현감으로 재직 중 근왕병을 이끌고 수원 험천땅에서 중과부적의 적병과 일척단검으로 항전하다가 서기 1636년 12월 27일 56세로 순국한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정문이다. 또한 논산군 부적면 충곡리 소재 충곡서원에 사육신과 함께 위패가 봉안되어 춘추로 제향을 받들고 있다.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금산 천내리 용화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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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금산 천내리 용화리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지석묘’라고도 한다. 이 고인돌이 있는 자리는 일용골 마을 뒷산으로, 남북으로 길게 낮은 구릉성(丘陵性)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용화리에서 흘러 내려오던 금강의 물줄기가 이 구릉을 ‘S’자 형태로 휘어 돌아 충청북도 영동 쪽으로 빠져나가면서 금산읍에서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모두 12기가 확인된다. 덮개 돌은 사각형(四角形) 또는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200cm 안팎의 크기로, 주변에서 돌칼, 돌화살촉, 붉은색을 띤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 중 14기가 금산에 있는데 그중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12기가 제원면 천내리 470-5번지에, 고인돌 2기가 용화리 502-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금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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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금산향교

금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지금의 금산군 금산읍 하옥리 백학동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조선 숙종 10년(1684)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짓고, 수차례 중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을 두고 대성전 앞마당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선철을,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배향된 인물의 배향 순서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교육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명륜당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그밖에 외삼문, 내삼문 등이 남아있다. 금산향교는 이와 같이 전통양식의 공간 배치를 충실히 하고 있다.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비단로 298
금산 천내리 용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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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금산 천내리 용호석

용과 호랑이 모습을 각각 2기(基)의 돌에 새긴 것이다. 천내리의 서쪽을 흐르는 천내강변 제원대교(濟原大橋)에서 북쪽 100m 지점에 용석(龍石)이, 그로부터 다시 북쪽으로 500m 지점에 호석(虎石)이 위치하고 있다. 용석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된 여러 개의 돌기와 그 사이에 꿈틀거리는 용의 몸체가 조각되어 있고,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입 양편에는 아가미와 수염이 표현되어 있다. 호석은 호랑이가 앞발을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인데 두툼하게 튀어나온 곡선과 동그라미를 조각하여 호랑이의 털 무늬를 만들었다. 호석의 몸체는 서쪽을 향하였으나 머리는 북쪽을 향하였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고려말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 안동(安東)으로 내려온 공민왕이 자신의 능묘(陵墓)의 위치를 정하고 필요한 석물(石物)로 준비하게 하였으나, 개경(開京)으로 돌아간 후 그대로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출처 : 금산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국립 망향의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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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역사관광

국립 망향의 동산

국립 망향의 동산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국을 떠나 망국의 서러움과 갖은 고난 속에서 고향을 그리며 숨진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안식을 위해 세워진 곳이다. 해외동포 이외에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사할린동포 등 일제강점기에 국외로 강제동원된 분들의 안식처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국권 상실의 아픔과 교훈을 일깨워 주는 역사적 장소로서 기능을 다하고 있다. 주요 시설물로 위령탑, 유족대기실, 홍보관, 분수대, 일본군위안부피해자추모비 등이 있다.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망향로 372-8
구절암(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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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군역사관광

구절암(홍성)

굽이굽이 산 길 따라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대숲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사찰, 구절암을 찾는 길은 산이 높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구불구불 꺾이는 산길을 지나 산사를 찾는 마음이 바쁘지만, 이정표도 없고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발견할 수 없다.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 산사를 이렇게 찾기 힘든 것처럼 구도의 길 또한 그만큼 멀고 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구절암 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지나가는 사람 한 명도 만날 수 없는 인적 드문 시골길. 봄바람이 살랑살랑 귓불을 간질이고 작은 바람에도 대밭의 댓잎들이 서로 비비면서 내는 소리가 싱그럽다. 봄을 준비하고자 두엄용으로 뿌려놓은 쇠똥 냄새가 시골 내음으로 다가오고, 멀리서 밭을 돌보는 농부의 손길이 무척 바쁘다. 그다지 멀지 않은 절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험난한데, 어느 정도 가면 이제 가파른 경사길이 나오지만 절은 아직도 멀었다. 낮은 하늘 아래에 위치한 사찰이지만 아득하고 멀기만 한다. 이렇게 찻길이 꼬불거리고 가팔라 힘이 들고 절을 찾아가야 하는 마음은 바쁘며, 또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산사에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구절암이 멀리서 보이게 되면 좌우에는 크고 작은 돌을 손 닿은 대로 올려 마치 탑처럼 쌓아놓은 것과 만나게 된다. 이제 굽이굽이 복잡하고 험난한 길을 지나 드디어 구도의 길을 찾아가듯 힘들었던 구절암에 도착하게 된다.

⌖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거북로218번길 163
구 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 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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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구 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 관사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는 논산시 강경읍 강경상업고등학교 내에 위치한 문화재로 1931년 건축된 지상 1층의 벽돌 건물이다. 일본 목조 형식을 벽돌로 바꿔서 높은 박공지붕이 이음지붕형태로 늘어진 것이 특징이다. 입구는 석재마감의 포치를 사용하고 있으며, 외형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근대 주택사적 가치가 있다. 내부 공간은 좁고 미로 같은 복도에 많은 방을 배치하여 일본식 배치 구성을 따르고 있다.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가 있는 강경상업고등학교는 국도 23호선, 지방도 68호선, 지방도 799호선 등에서 계백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 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 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철도 강경역과 강경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강경근대거리, 강경젓갈시장, 강경포구, 죽림서원, 팔괘정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 220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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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충남 논산시 강경 읍내에 위치해 있다. 초기 선교 과정에서의 토착화 현상에 의해 기독교 건축의 형태는 한옥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신부 및 목사가 대부분 서양인이었기에 한옥의 불편함을 느꼈고, 서양식 건물을 동경하는 일부 신도들로 인해 점차 서양식 예배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초기 한옥 교회가 대부분 소멸되거나, 개축 또는 신축되어 원형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옥 형태로 남아있는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희소적 가치가 높다. 특히 내부 구조는 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에 나타난 한옥 교회의 건축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는 흔히 칸막고교회라고 하여 제단을 중심으로 천을 설치하여 남녀를 구분하기 위한 초기 교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내부의 벽돌 위의 회반죽 마감과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한 연등천장은 단순한 목조건축의 구조적인 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목재의 치목수법과 가구기법은 전통적 기법에서 근대화에 따른 기술적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강경성결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국도 23호선, 지방도 68호선, 799호선에서 옥녀봉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철도 강경역과 강경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강경젓갈시장, 강경역사관, 강경근대거리, 강경포구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219번길 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