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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관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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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관아문

남포관아문은 조선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이다. 이전에는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현사(縣司)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서루와 내삼문, 외동헌이 남아있다. 남포현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 건물로 아래는 출입구, 위는 누마루를 설치하고, 팔작지붕이다. 조선왕조의 중앙 집권을 상징하기 위해 당시 전국에 똑같이 만들어진 관아문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진서루(鎭西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진서루는 외삼문으로 옛 남포현의 출입문이다.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2층 문루인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아래층은 삼문을 달았고, 2층은 누마루를 깐 후 4면에 난간을 세웠다. 동헌의 출입문인 내삼문은 정면 7칸 측면 1칸인데, 중앙은 솟을대문 1칸이 있어 출입구 역할을 하였고, 건물의 정면에는 옥산아문(玉山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남포현의 업무를 보던 외동헌은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앞면 중앙에 2칸의 대청이 있고 좌우는 온돌방으로 꾸몄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9
남포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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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읍성

남포읍성은 고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던 곳으로,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이다. 원래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고 서해상 교통을 관할하기 위해 쌓았다. 축성 직후인 1390년(공양왕 2)에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바깥쪽 벽은 돌을 이용하여 직각으로 쌓았고, 성벽의 안쪽은 흙으로 쌓아 올렸다. 동, 서, 남 세 곳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4m의 높이로 성 바깥에 또 하나의 성벽인 옹성을 둘렀다. 성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튀어나오게 하였으며, 그 양쪽 성벽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시설을 해두었다. 성 안에는 3채의 관아건물인 진남루와 옥산아문, 현청 보존되어 있으며, 동서에 80㎝ 높이로 배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1973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남포향교, 보령종합운동장, 옥마산, 남포면 소재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남이장군묘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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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역사관광

남이장군묘 (화성)

남이장군 묘는 화성시 비봉면에서 2.5km 떨어진 한양 조씨의 선산 내에 있으며 남이장군과 부인이 함께 있는 쌍분묘로 1973년 7월 10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이(1441∼1468)는 본관은 의령으로, 태종의 외손이며 좌의정 권람의 사위이다. 1457년(세조 3) 1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의 난(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여진의 건주위를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러 이름을 날렸고,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1468년에 28세때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를 꾀한다하여 죄명을 쓰고 능지처참형을 당하였다. 역적으로 몰린 남이장군의 후손들이 시신이 훼손되는 일이 없게 남이섬과 전국 각지에 남이장군 이름의 가묘를 만들었고, 고증을 거쳐 이 곳이 남이장군의 실제 묘소로 확인되어 이곳에서 후손들이 제사를 지낸다. 현재 묘역에는 장군과 부인이 합장되어 있고 봉분은 2기이며, 봉분 아랫부분은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씩 있다. 조선 초기의 예술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석인상은 경기 지역 능묘 문화의 특성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이로
남원몽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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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몽심재

남원 몽심재는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고택으로, 이전에 거주하던 박인기의 7대 조인 죽산 박 씨 박동식(1753~1830)이 세웠다고 한다. 조선 후기 전북 지방 상류 가정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를 잘 보전하고 있다. 산을 등지고 있는 집 앞으로는 낮은 구릉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채의 건물이 산자락의 급한 경사면을 따라 앞뒤로 자리하고 있어 높이를 달리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보이며, 그 뒤편의 바깥채와 중간문을 각기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세웠다. 안채에도 아래의 공간을 외양간으로 사용할 만큼 높은 받침부를 두었다. 평면 배치상 특이점은 안채 서측에 마루와 방을 두어 주부의 생활이 편리하도록 배려하고 대청 동측에 도장을 설치하고 건넌방을 아래쪽에 두어서 채광이 잘되도록 하였다. 또 사랑채에는 방을 일곱 개나 두어 대청보다는 실제 주거 공간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등 매우 치밀하고 깊은 배려 끝에 이 집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매우 호화롭게 지어졌는데 전면에 세워진 기둥이 모두 팔각기둥을 사용하고 있어 매우 희귀한 예이며 주초도 이러한 기둥에 걸맞도록 정성껏 다듬어진 것을 사용하였다. 아랫사람들이 거주하는 문간채 동쪽에 대청 한 칸을 둔 것은 다른 상류 가옥에서는 볼 수 없는 예로서 하층민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물들이 높이 솟아 있음에도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멋과 그윽한 정취를 자아내어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2길 19
남원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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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읍성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지역에 소경(지방도시)을 설치하였고, 691년에 쌓은 네모난 형태의 평지 읍성이다. 1597년에는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을 크게 다시 쌓고 수리하여 담을 높였다. 그해 8월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이때 싸우다 죽은 군인과 주민들의 무덤이 만인의총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많이 허물어져 약간의 성터 모습만 남아있다. 돌축대의 길이는 2.4㎞가 넘고, 높이 약 4m에 이르며 성 안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성 내에는 남북과 동서로 직선대로가 교차하고, 그 사이에도 너비가 좁은 직선도로가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의 도로구성을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 도시가 들어서며 성곽은 대부분 헐려나갔으나, 시내 중심부의 도로는 지금도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 있어, 과거 성내의 가로 구성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 읍성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크고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네모 반듯한 구성과 성내의 가로가 직선으로 구성된 점이 흥미롭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동충동
남양주 구 팔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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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역사관광

남양주 구 팔당역

팔당역은 1939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플랫폼에 노선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일자형의 장방형 역사로서 희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건축외형은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내부공간은 전면부를 대합실, 후반부를 사무실과 숙직실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내부공간은 다소 변형되었으나 주요 구조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당시의 철도역사건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로 163
남산사(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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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남산사(정읍)

정읍 신태인간 지방도로변에서 더 들어간 곳에 있는 낮은 산인 남산에 남산사가 있다. 남산에는 예부터 반야선터라 하여 알려져 있는 선의 도량으로 병자호란 이전에는 승려가 100여 명이나 기거한 큰절이었다고 한다. 이 절은 옛날에는 한적사(閑寂寺)라 했다. 지금도 절터였던 주추돌과 기와장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폐허가 된 사적지로 남아있던 사지에 1910년경 이장녀 보살이 작은 암자를 짓고 남산사(南山寺)라 이름하여 창건한 후 신도우, 정진성, 김금담 등 역대 주지가 있었고 1991년에는 현주지인 학승, 도선스님이 정진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정신로 183-64
남부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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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역사관광

남부산교회

2022년도에 개봉한 영화 에서 베이비박스가 있는 교회 장면을 촬영한 장소로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곳으로 충분히 인상적인 모습의 장소이다. 극 중 이름은 ‘부산가족교회’였다. 언덕이 많은 부산의 지형을 잘 보여주며 40년이 넘는 역사가 쌓인 외관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길 아래로 걸어 내려오면 극 중에서 등장한 벽화와 정겨운 동네의 풍경 그리고 같은 영화 촬영 장소인 전포삼거리의 버스정류장과 공중전화 부스가 보인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진남로 300 남부산교회
남산서원(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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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남산서원(김제)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소재에 위치한 남산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로 활약한 유지화(柳志和)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다. 그 후 순조 때 남궁제(南宮濟)를 배향했다. 1870년(고종 7)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 사우인 경의사, 산문인 경의문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경의사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성덕면 만경로 600-92
남선창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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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남선창고터

남선창고터는 1900년 함경도에서 배로 물건을 싣고 와서 보관하던 최초의 물류 창고로, 초기에는 북선창고라 불리었으며 경부선을 통해 서울까지 물류를 운반하기 전에 보관하는 곳이었다. 이후 경원선이 생기면서 윗지방에 북선창고가 만들어지자 이름을 남선창고로 변경하였다. 부산 최초의 근대적 물류창고인 남선창고는 1900년 초량객주 정치국이 초량동에 세웠다. 냉동고가 없던 시절에 바닥에 수로를 만들어 물기를 제거하고 서늘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옆 옛 백제병원과는 달리 2009년에 철거되어 지금은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만 남아있다. 해방 전까지는 주로 명태창고로 활용되어 일명 명태고방으로도 불렸다. 이후 부산산업경제 변화의 흐름을 타고 화공약품, 합판, 신발,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의 짐, 가전제품 등을 위탁 보관하는 일반창고의 역할을 해 왔다.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13번길 53
남악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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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남악서원

남악서원은 신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략상의 요충지를 찾아다니다가, 이곳 금산 아래서 진을 치고 휴식하던 중 비몽간에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의 위업을 가르침 받아 높은 공을 세웠다고 전한다. 1922년 지방 유림이 중건하고, 경주 서악서원의 이름을 본떠 남악서원이라고 하였다. 사당에는 김유신 장군과 최치원 선생, 설총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사당과 서원, 솟을대문이 남북 축상에 놓여 있고, 서원 좌우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재가 각각 마주 보고 있는 □자형의 좌우대칭 배치를 나타내고 있다.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오량구조 팔작지붕이다. 특이한 점은 대청이 없고, 툇마루가 확장되어 대청의 기능을 하고 있고, 사당은 서원 바로 뒤에 높게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 구조 팔작지붕이며, 전퇴칸이 없는 평면형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길 102
남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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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역사관광

남성재

남성재는 고려시대의 문신 영일 정 씨의 시조 형양공 정습명(?~1151)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로 1722년 후손들이 묘소에 묘단을 짓고 제사를 지냈으며, 1742년 현 위치에 묘단과 석상을 신축하였다. 이후 1751년에 묘단 위에 비를 세웠으며, 이듬해 1752년에 비로소 재실을 건립하였다. 창건한 재실이 오래가지 못하고 퇴락하여, 경사가 완만하고 지대가 높은 곳에 1784년에 재건하기 시작하여 1785년에 19칸 규모로 완성하였다. 그러나 규모에 비해 재목이 약하여 기둥이 기울고 도리가 처지며 서까래가 부러지는 등 많이 훼손되어 1801년에 옛 관청의 객사에 개축하기 시작하여 정당 3칸, 재실 4칸, 부곡채를 합하여 총 14칸으로 1808년에 완성하였다. 이것이 현존하는 남성재의 모체이다. 1858년부터 수년에 걸쳐 중수한 바 있으며, 현재는 대문채, 동재, 서재, 재실 등이 남아 있으며 매년 4월 영일 정씨 대종회에서 시조 형양공 단향제를 지낸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남성안길 18-16
남산골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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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남산골한옥마을

1998년 조성된 남산골한옥마을은 남산 북측 옛 수도방위사령부 부지 총 79,934m²(24,180평)에 한옥 5동, 전통공예관, 천우각, 전통정원, 서울남산국악당, 새천년타임캡슐 광장으로 구성되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를 만나볼 수 있으며, 남산 자락을 따라 전통조경 양식으로 조성된 계곡과 정자, 각종 화초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전통정원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고 400년 후 서울정도 천년을 기대하며 1994년 당대의 기억을 매설한 서울천년타입캡슐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옛 가옥을 복원해 놓은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골한옥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연못 청학지와 그 곁으로 천우각이 있다. 천우각 광장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서울 곳곳에 있던 한옥이 이전·복원되어 옛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볼 수 있게 한 예스러운 공간이 나타난다. 모두 다섯 채의 한옥으로서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관훈동 민 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 씨 가옥이 있다. 이 중 건물 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은 옥인동 윤 씨 가옥만 새 자재를 사용해 복원했고 나머지 건물은 종래의 집 부재를 그대로 이전했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즐기는 다양한 체험거리 남산골한옥마을에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한옥 다섯 채를 활용하여 한옥실내 공간을 체험하면서 동시에 한국 전통문화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한복 입기, 한지 접기, 한글 쓰기, 전통차 마시기를 체험할 수 있고, 전통예절학교와 한방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는 전통혼례가 실제로 치러지고 전통혼례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도 천우각 맞은편 원두막에서는 짚공예 시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천우각 무대에서는 태권도 시범공연과 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피금정 마당에서는 제기차기, 윷놀이, 비석치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남산골한옥마을 곳곳을 동행하며 설명해주는 전통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해 있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필동2가)
남원 만인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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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 만인의총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 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하여 적의 우근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분투 끝에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 4년)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몇 번의 이전을 거쳐 정부의 지원과 전 도민의 정성 어린 헌수로 현재의 충렬사에 5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만인의총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이곳은 문화관광해설사와 관람하며 호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고,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만인로 3 (향교동)
남양주 광릉(세조·정희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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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역사관광

남양주 광릉(세조·정희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광릉은 조선 7대 세조(재위 1455~1468)와 정희왕후 윤씨(1418~1483)의 능이다.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으로 조선왕릉 중 최초로 조성된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세조,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1468년(예종 즉위)에 세조가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본래 이 자리는 동래 정씨 정창손의 선대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광릉이 조성되면서 동래 정씨 묘역은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사대석(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에 따라 능 내부의 방을 석실 대신 회격(灰隔)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왕릉 공사에 드는 비용과 인원을 감소시켰다. 이 방법은 광릉 이후에 조성된 왕릉에 모두 적용되었다. 또, 병풍석이 생략되면서 병풍석에 새기는 십이지신상을 난간석에 새겼다. 이후 1483년(성종 14) 정희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광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이때 능의 이름을 동광릉(東光陵)으로 정하려고 하였으나 광릉과 같은 능역에 있다 하여 광릉으로 합쳤고, 정자각은 두 능 사이로 옮겨지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조선시대에는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었고, 입구에는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하마비(下馬碑)가 남아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
금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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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역사관광

금란정

동해시 삼화동에 위치한 ‘금란정’은 무릉계곡 매표소 출발점을 지나자마자 우측에서 보이는 정자이다. 둥근 화강석 초석 위에 목조 원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로,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양식의 건축물이다. 주변 산새와 함께 무릉계곡에서 흐르는 소리와 함께 정자에 여유 있게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도심에서 벗어난 자연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삼화동
남문안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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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역사관광

남문안당산

당산은 신이 있다고 믿는 민간신앙의 대상물이다. 남문 안 당산은 조선시대 읍성의 남문터로 알려진 취원문루, 일명 건선루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199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다. 성을 지키는 수호신적인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이 당산은 2개의 화강암을 다듬어 하나의 기둥처럼 아래위로 세웠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위에 놓인 돌기둥 중간에는 4마리의 거북이가 조각되어 있으며, 아래에 놓인 돌기둥 한 면에는 기둥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24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과 주민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당산제를 지냈으며, 마을 주민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줄다리기도 행하여졌다. 또한 줄다리기 때 사용된 줄은 당산석에 감는 의식인 ‘옷 입히기’ 의식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남문안길 10
금룡사(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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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역사관광

금룡사(제주)

제주 금룡사는 1930년 김연화 보살님에 의해 설립된 염불당이 그 창사의 시초가 되었다. 청춘고혼(靑春孤魂)이 된 동생 덕암(德庵)의 넋을 기리며 오십 년 남짓 지낸 세월에 염불당 및 요사체가 폐허 지경까지 왔을 때, 자재 현도(自在賢途) 스님을 만나 인연이 되어 1975년 대웅전 건립을 기점으로 사찰로 면모를 일신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고 관음대세지보살이 좌우에 협시하고 있다. 법당에는 총 7축의 탱화작품이 있는데 (후불탱화, 신중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 지장탱화, 영단탱화), 이 작품은 인간문화재 48호인 석정스님에 의한 것으로 1979년에 완성되었다. (출처 : 제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 148-11
금산 대원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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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금산 대원정사

금산 대원정사는 금산 시내 중심가와 가까운 도심 속 사찰이다. 원래 하신리 온양 이씨 어필각 인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처음 위치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다가 198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내부에 우물마루를 깔고 중앙의 뒤에 불단을 조성한 후, 신안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해지는 비로사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건물 구조는 길게 다듬은 돌로 된 기단 위에 높이 93㎝의 초석을 놓고 짧은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이 주춧돌의 모양이나 재질로 보아 창건 당시의 것이 아니고 옮겨지을 때 기둥의 부패 방지를 위하여 교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은 독특한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1995년에는 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비범3길 17
남미질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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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북구역사관광

남미질부성

남미질부성은 포항시 흥애읍 남성리, 중성리, 망천리 일대에 있는 신라시대 성곽이다. 흥애읍 남쪽 평지에 돌출된 구릉지를 이용하여 축조한 토성이다. 흙으로 쌓은 성벽의 둘레는 약 2km이다. 성 안에는 남성리 못산마을이 있고, 이 마을 서쪽 구릉지에는 성주의 무덤인 듯한 고분이 9기 정도 있다. 못과 우물도 한 개씩 남아있다. 삼국사기에 504년 9월에 주민들을 동원하여 파리성, 미실성, 진덕성 등 12개의 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실성이 지금의 남미질부성에 해당된다. 동국여지승람 22권 흥해군 고적조에 따르면 고려 태조 13년 북미질부성의 성주 훤달과 남미질부성의 성주가 함께 항복하여 왔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고려 초기에는 이 성이 흥해군 일대를 다스리는 중심 성곽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축성 당시의 이름을 알 수 없어 후대에 행정구역이나 산 이름을 따서 임의로 이름이 붙는 대부분의 성곽과는 다르게 남미질부성은 축성 당시의 이름이나 연대가 확실하고 포항 지역에 남아 있는 성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경주 선덕여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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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선덕여왕릉

경주 낭산의 정상에 있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재위 632∼647)은 646년경에 조성되었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원형 봉토분이며, 자연석을 이용해 봉분 아래에 2단 보호석을 쌓은 것 외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딸로 태어나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 의식에 의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재위 16년간 첨성대와 분황사, 특히 신라 최대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으며,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와 명장 김유신과 함께 신라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에 의하면 선덕여왕이 죽을 날을 예언하며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도리천은 불교 설화의 수미산 밑을 이야기하는데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 신하들이 묻자, 낭산 기슭이라 대답하였고, 이 기슭에서 장사를 지냈다. 이후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다. 사천왕이란 도리천의 호불신으로 선덕여왕의 무덤은 결국 도리천에 있는 셈이 되어 비로소 신하들이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경수 선덕여왕릉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변에 신문왕릉, 효공왕릉, 신무왕릉, 효소왕릉 등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남도한옥민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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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남도한옥민박마을

무선동 마을은 해남읍에서 5㎞ 정도 떨어진 두륜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약 30년 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한옥으로 조성된 민박 마을로 초창기에 성황리에 운영되다 잠깐 주춤하였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가족 중심의 관광이 시작되고, 시설을 보완함으로써 도시민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한옥민박 마을이다. 1977년 처음으로 한옥 민박촌으로 지정되어 16가구의 한옥 가옥을 중심으로 한옥 민박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마을 내에 있는 두륜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다. 원래 두륜사라는 이름은 마을 뒤쪽의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의 옛 이름이다. 예능에 종사하는 사람들 몇몇이 관내 학생들의 체험과 민박 손님들의 체험 활동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어 체험 마을로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문화 체험 공연으로 영화 상영과, 판소리, 장구, 북 등을 배워보는 소리체험, 전통 체험으로 한복 예절 체험과 전통차 체험, 도자기 체험, 떡메치기, 떡 만들기, 널뛰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전통 소리 체험은 국악인 채옥란 선생님 지도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옥 민박 집들은 대부분 내부가 현대식으로 개수하여,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다. 남도여행은 역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해남의 대표 음식인 떡갈비와 남도 한정식은 보기만 해도 푸짐한 상차림으로 나온다. 두륜산의 수려한 산세에서 자란 자연산 산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도 이 지역의 대표적 먹거리이므로 챙겨 먹어 보는 것도 남도 여행의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인근에 두륜산, 대흥사, 윤선도 관광지, 김남주 시인 생가 등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민박촌길 44
남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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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남곡서원

고려 보문각 대제학과 판도판서의 관직에 오른 영천이씨 영양군 6세 남곡공 휘 석지와 그의 자제인 집현전 제학과 한성부윤이셨던 장자 휘 안우, 직제학 겸 병조판서이신 차자 휘 아직, 이조 정랑이 신 삼자 휘 안유, 군기사부정 휘 현실, 휘 안실 등 6위를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첫 일요일 영천이 씨 남곡공파 후손들이 참 석하여 제사를 올린다. 대강당은 남곡공과 다섯 아드님을 경모하고 학업을 연수하는 곳으로 ‘남곡서원’이라는 현판을 달았으며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협문과 대문이 있으며 이름을 ‘歸堂門(귀당문)’이라 하였다. 경내에는 남곡공의 사적비와 비각, 제학공의 유적비와 비각, 두문동 72현의 행적을 새긴 와비와 창건기문, 남곡서원 표지석 등이 세워져 있다. 사당인 효충사는 5위의 위패를 종 향하였고 신삼문(神三門)을 지어 ‘향례문(享禮門)’이라 하였으며 평소 출입하는 ‘숭의문(숭의문)’과 협문을 세웠다. (출처: 군위군 홈페이지)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미성3길 66-7
남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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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남고서원

일재 이항·건재 김천일을 비롯하여 김점·김복억·김승적·소산복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이항(1499∼1576)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다. 김천일(1537∼1593)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른 장수이다. 이 서원은 선조 10년(1577)에 이항과 김천일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고 숙종 11년(1685) 임금으로부터 ‘남고’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광무 3년(1899)에 다시 지었는데 이때 김점·김복억·김승적이 추가로 배향되었으며, 1913년에는 새로 소산복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서원 경내에는 사우와 강수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사우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은 중앙에 이항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그 좌우에 나머지 인물들의 위패가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강당인 강수재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가운데 2칸은 대청이고, 좌우에 방을 배치하였다. (출처: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1길 392
남고사(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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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역사관광

남고사(전주)

남고사는 고덕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남고산성을 따라 전주의 남쪽을 지키고 있는 사찰로, 절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전주 시가지가 한눈에 보여 아름다운 전망을 만나볼 수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사천왕문 등이 있다. 남고사 안쪽에는 삼성각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삼성각은 한국 고유의 토속신앙과 불교가 합쳐져 생긴 형태로, 산신, 칠성, 독성을 봉안하는 불교의 건축물이다. 또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고,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앞 건물 자리는 남고사지의 옛 절터로, 1985년 8월,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단풍 가득한 가을의 남고사는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여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53-88
남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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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남계서원

군위군 군위읍 대북리에 있는 남계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류성룡(1542~1607년)과 이호민(1553~1634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1581년(선조 14) 3월에 창건되었다. 류성룡이 1583년(선조 16)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계서당을 건립하였는데, 1607년 세상을 떠난 뒤 1621년(광해군 13) 후학들이 중수하고 서애의 위패를 모셨으며, 남계서원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1787년(정조 11)에 이호민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전국의 서원을 일제히 정리하고 철폐함에 위패는 하회로 옮겨 모시고 서당으로 격하되었으며 6.25 사변으로 소실되었다. 1990년에 유림의 의해 복원하기로 결의하여 1991년에 복원되었다.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대북길 9
남계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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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남계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년) 개암(介庵) 강익(姜翼)에 의해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도심(道心) 회복(유학 교육)과 일두(一蠹)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蘫溪)’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정유재란(1597년)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03년(선조 36년)에 나촌으로 옮겼다가, 1612년(광해군 4년)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남계서원은 경사의 지형 조건을 활용하여 앞쪽은 강학공간, 뒤쪽은 제향공간이라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서원의 독창적 건축 배치형식의 기준을 마련하였고,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전형이 되었다. 함양 남계서원은 1868년(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경남 유일의 존속서원이다. 함양 남계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9년 등재되었다.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
난계 박연선생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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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역사관광

난계 박연선생 생가

국악의 거리에서 외길을 따라 고당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난계 박연 선생이 태어난 가옥이 있다. 난계 박연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손꼽힌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음악가로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타계했다. 박연은 악보와 악기를 정리한 악서를 편찬하고 대고와 석경 등 아악기를 제작했다. 또, 궁중악을 완성하고 악기를 조율하는 편경을 만드는 등 국악을 발전시키고 완성한 국악의 아버지다. 세조 2년(1456년)에 삼남 계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당할 뻔하였으나, 세 임금에 봉직한 공으로 화를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으로 돌아와 살다가 세조 4년(1458년) 3월 23일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박연이 낙향할 때 강을 건너며 배 위에서 피리를 불었는데 그 피리 소리에 가던 배도 멈추고 쓸쓸한 느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출한 인물의 비애를 단적으로 나타내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음악과 함께한 국악의 거성 난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5월 안채와 사랑채를 복원하였다. 생가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측면 1칸은 퇴칸 구조이며 정면 2칸만큼 우물마루를 설치하고 한쪽에는 부엌과 곡식창고를 부설한 고미 반자에 우진각의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다. 우진각지붕은 용마루와 추녀마루만 있고 내림마루는 없으며 전·후면은 사다리꼴이며 양쪽 측면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용마루가 짧고 내림마루가 길게 늘어진 모습이 특이하다. 부속 채는 1동으로 외양간, 광과 방 1칸인 초가지붕으로 되어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하고당1길 14-17
남강서원(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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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역사관광

남강서원(함안)

고려시대 함안 출신의 장군인 충열공 이방실(1298~1362) 장군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이방실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1842년(헌종 8) 후손들이 남강사를 건립하여 매년 제를 지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후손들이 1944년 옛터에 복원하였다. 그 후 1998년 정부 보조금으로 충렬사와 남강서원을 중건하여 현재까지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남강 서원은 사우인 충렬사, 강당, 동·서재(경모당·영덕당), 외삼문인 숭의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원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목조 와가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이다. 서원 뒤편에는 이방실 장군을 배향하는 충렬사가 있으며,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장군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다. 서원 밖에는 ‘고려 대원수 중서평장사 충렬 이공 유허비’가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5일에 향사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포5길 82
남강서원(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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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역사관광

남강서원(양산)

남강서원은 죽재 이겸수공을 추모하는 서원으로, 관민의 염원으로 1783년(정조 7년)에 남강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고, 1868년(고종 5년)에 사림의 공의에 따라 남강서원으로 승호 되어 후학양성이 활발하고, 사림유생들의 강학논경이 빈번하였던 곳이다. 1871년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고 터만 남아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2005년에 복원을 발의하고, 2006년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성균관으로부터 남강서원 복원에 대한 승인과 문헌적 고증을 받아 2008년에 좋은 날을 잡아 기공하여, 2009년에 완공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매월 15일에 분향례와 매년 봄 향례가 서원에 있는 충열사에서 향도사림과 후손들에 의해 봉행하고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용주로 300
남강서원(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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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역사관광

남강서원(청도)

남강서원은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 있는 서원이다. 1864년 조선시대 학자인 박한주와 박수춘을 배향하기 위해 사림의 건의로 창건되었다. 1868년 훼철되었으나 밀양 박씨 국담 공파 사우당 문중의 기부금으로 2000년에 건립하였다. 문중에서 매년 3월과 8월 향사를 지내며 관리하고 있다. 전면에 세운 산형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 기와집인 강당이 있고, 양 측면에는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였다. 강당 뒤의 경사진 대지 위에는 사당인 양현사가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1길 62
낙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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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낙암서원

상주시 중동면에 있는 낙암서원은 1745년(영조 2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담수, 김정룡, 김정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그 뒤 묘우 자리에 단소를 만들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강당과 1칸의 장판각이 있으며, 동재·서재와 전사청 등은 그 터만 남아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장판각은 문집의 판각을 보관하는 곳인데, 현재 판각은 없고 판각된 문집만 몇 권 남아 있으며 매년 한 차례의 향사를 지낸다.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대바위길 183-13
남강서원(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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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남강서원(강진)

남강서원은 남강사라고도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 우암 송시열(1607~1689)과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자(1130~1200), 송시열의 문인인 손재 박광일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남강서원의 유래는 송시열이 기사환국으로 인해 숙종 15년(1689)에 제주도로 유배 가게 되었는데 그때 강진의 성자포(현 남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려다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잠시 근처의 만덕산 백련사에 머물며 유생들에게 강론을 하였다고 한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순조 3년(1803)에 세운 것이 바로 남강서원이다. 당시 강진의 향유들이 도관찰사였던 한용구의 승인을 얻어 정읍 노암서원에 모셔져 있던 송시열의 영정을 백련사로 옮겨 봉안하고, 영당의 액호를 남강이라 하였는데 백련사의 영당이 남강서원의 전신이다. 헌종 4년(1838) 향림들의 발의로 사당에 주자를 정위봉향 하였으며, 1901년 현재의 위치에 신단을 설단 하여 주자와 송시열을 향사하는 한편 어필각을 건립하였고, 후에 박광일을 추배 하였다. 남강서원 왼편에 구 어필각이 있고, 그 앞으로 새로운 어필각이 신축되었다. 어필각에는 유형문화유산인 강진남강사주자갈필목판일괄이 소장되어 있다. 주자갈필목판은 순조 9년(1809)에 송시열이 제주로 유배 갈 때 배를 탔었던 성자포 앞바다로 떠내려 온 궤 안에 있던 것이라 한다. 당시 강진 현감이 이 궤를 감영으로 옮기려 했으나 궤를 수송하던 사람과 말이 남강사(남강서원) 앞에서 전복하여 더 이상 옮길 수 없게 되자 그 목판을 서원에 소장하게 된 것이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28-2
남간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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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남간정사

낮은 야산 기슭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지은 것이다. 우암은 소제동에 살 때 서재를 짓고 능인암이라 하여 학문을 연마하였다. 숙종 9년(1683년) 능인암 아래에 이 건물을 지었는데, 많은 제자를 기르고 그의 학문을 대성한 유서 깊은 곳이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은 앞뒤 통칸의 온돌방을 들였다. 오른편 뒤쪽 1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마루보다 높은 누를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계곡의 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대청 밑을 통하여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조경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양식이다. 건물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기국정이, 뒤편 언덕에는 후대에 지은 사당인 남간사가 있다. 송시열과 관련된 건물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조선시대 건축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낙빈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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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낙빈서원

낙빈서원은 단종의 복위에 목숨을 바친 하위지, 박팽년 이개,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를 배향한 서원이다. 본래 충정공 박팽년의 위패를 봉안한 하빈사가 있어 후손들이 향사를 지내왔는데, 현손인 박계창이 사당 밖에서 사육신 여섯 분이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깨달은 바가 있어 사육신 여섯분을 함께 모시고 제향하게 되었다. 1691년에는 별묘와 강당을 건립하여 낙빈서원을 창건하였는데, 3년 후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흥선 대원군 집권기인 1871년 훼철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4년 문중에서 원래 터보다 위쪽인 현 위치에 강당만 중건하였고, 사당은 세우는데 어려움이 있어 서원의 모습보다는 문중의 재사와 비슷한 모습으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에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에 육신사가 세워지면서, 사육신의 위패를 옮겨 봉안하고 매년 춘추절 향사도 지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낙빈서원은 현재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서당에서 출발한 교육 기능 중심의 서원과는 달리 조상을 모시던 사당에서 출발한 조선 후기 서원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육신을 모신 서원은 전국에 여러 곳 있었는데 단종의 능이 있는 영월 창절사가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남아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21
낙양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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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낙양사(김제)

낙양사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여산송씨 집성촌인 불로마을에 있는 송정기, 송정구, 송정모 삼형제를 모신 사당이다. 죽계 송정기는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지조가 단결하여 1797년(정조 21) 정려를 받았다. 벽계 송정구는 송정기의 가운데 동생으로 형을 엄부와 같이 섬기며 효로 집안을 다스리고 예로 가르치니 향인이 흠모하여 송정기와 함께 육송사에 배향하다가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송정모는 송정기의 막내 동생으로 나서부터 성품이 순화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송시열이 덕원으로 귀양 가자 항소한 뒤로는 두문분출하고 과정에 나아갈 뜻을 끊음에 향리 사람들이 감복하여 사림들이 사당에 배향하였다. 1675년(숙종 1) 금구현 동도면 상학리(현재의 금구면 금구리)에 학천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금구현 수류면 거야(현재의 금구면 삼봉리 거야마을)에 있는 육송사로 옮겨 모셨다. 그런데 1869년(고종 6) 육송사가 철폐됨에 따라 1910년(순조 4)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낙양사라 하여 송정기 삼형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4길 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