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취향으로 찾기

오늘 갈 곳을 찾아보세요

지역과 관심 분야를 선택해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보세요.

역사관광

발견한 장소

669건

조건 초기화
대비사(청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청도군역사관광

대비사(청도)

대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신라 시대 6세기경에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 중 하나로 세워진 소작갑사(小鵲岬寺)가 전신이다. 대비사는 대비갑사(大悲岬寺)로도 불리는데, 고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이름을 대비사(大悲寺)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당시 신라 왕비가 수양 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대비사는 566년(신라 진흥왕 27)에 신승이 세우고 600년(진평왕 22)에 원광국사가 보수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박곡리 마을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비사 대웅전은 1985년 1월 8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16세기 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의 구성도 꼼꼼하고 튼튼하며, 이를 이루는 세부 부재들의 형태를 보아 조선 초기의 건축 수법을 볼 수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590
대법사(여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여주시역사관광

대법사(여주)

대법사는 대포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명성황후의 출생 일화가 전해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고즈넉한 사찰 곳곳에 심어진 꽃나무와 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됐으며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성여왕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해 미륵당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명성황후와 그의 아버지 민치록의 인연으로 유명해지게 되는데, 숙종 때 사찰 인근에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의 묘를 쓰면서부터이다. 이 묘소를 관리하며 살아가던 명성황후의 부친 민치록은 꿈에 미륵불을 현몽하고 땅을 파서 미륵불을 발견한 뒤 법당을 새로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부인인 한산 이씨가 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낳은 자식이 바로 명성황후이다. 그 후 명성황후가 고종의 비로 책봉되자 미륵불이 있던 자리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원당사로 개칭하고 민씨 일가의 성원으로 번창하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원당사는 사라지고 거의 폐사되어 흔적만 있던 것을 오늘날의 대법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절을 새로 창건한 대원스님 또한 꿈에 현몽한 대법사라는 서책을 보고 절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일주문, 대웅전, 지장전, 범종각, 국사당, 삼성각 등이 있다. 1971년 건축해 1989년 중수한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석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 삼층석탑, 약사여래 좌상이 있으며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9m에 이르는 미륵석불과 7층 석탑이 있다. 대웅전 옆 작은 석실에 명성황후와 연이 있는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는지 닳고 닳은 외형이 그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절 입구의 국사당에 2개의 탱화가 걸려있는데 좌측에는 산신이 우측에는 보통 호랑이가 있지만 말을 탄 선비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민치록이라 한다.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안금3길 3-43
대모암(순창)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대모암(순창)

순창 대모암은 백제 시대의 산성터인 순창 대모산성 북쪽에 자리한 사찰이다. 학성이 1933년 창건한 곳으로, 6·25 전쟁 때 거의 폐사되다시피 했다가, 1973년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5년 범종각을 지었다. 1993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대모암은 대웅전, 범종각, 요사채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건물이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그려져 있고 외부의 벽화에는 화훼도, 심우도가(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것) 그려져 있다. 불벽에는 부처가 있다. 대웅전에는 일제강점기 말에 대모암으로 옮겨져 왔던 ‘대모암 목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래상이다. 이 불상은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자세를 하고 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 밖에도 사각형의 얼굴과, 단순화된 옷 주름 등으로 보아 17세기 활동했던 승려 조각가 희장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작법귀감, 보장록 등 학술 연구에 중요한 불교 관련 서적들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197-22
대둔사(구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구미시역사관광

대둔사(구미)

구미 대둔사는 건축기법와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석가여래좌상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그리고 3동의 요사가 있고,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대웅전과 대웅전 내부에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신라 눌지왕 30년(446)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에 몽고족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것을 충렬왕 때 재건하였고, 그 후로 최근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안쪽은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섬세하게 만들어 놓았으며 세부 재료를 받치는 부분을 색다른 수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옥관로 691-78
대곡리암각화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대곡리암각화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을 말하는데, 주로 농사의 풍요와 생산의 의미를 지니는 주술행위의 결과물로 보인다. 대곡리암각화는 봉황대로 불리는 구릉의 정상 부근 암벽에 새긴 것으로, 호남지방에서 유일한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암각화는 두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크기는 1∼2m 내외이며, 상하 혹은 좌우 대칭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겼다. 마모가 심하여 자세하지는 않지만,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묘사한 듯하다. 이 암각화는 1991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전북지방의 선사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대광사(창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역사관광

대광사(창원)

1930년에 창원특례시 진해구 화천동에 시중 포교당으로 출발하였다. 1950년대에는 주지 무상스님과 신도 이장술, 팽무진상 등이 여좌동으로 이전하여 법당, 칠성각, 요사채 등을 건립하였고, 1980년 마진터널이 개설되면서 주지 운성스님과 신도 허대근 등은 태백동으로 이전하여 법당, 회관, 요사채, 유치원 등을 건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광사는 어린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불교적 세계관을 형성하고, 불교적 경험을 통해 올바른 심성을 키우고자 대광 유치원을 1984년 8월에 설립하였다. 운성스님이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고, 설립 당시에는 2학급이었으며, 2007년에는 5학급으로 인가·증설되었다. 1997년부터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불교 대학을 운영하며, 2001년 조계종 포교원으로부터 정식 불교 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1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장복산 공원의 편백림과 연계하여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진해대로 303 (태백동)
대각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대각서원

대각서원은 1610년(광해군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하항, 손천우, 김대명, 하응도, 이정, 유종지, 하수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되었다가 1947년 지방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각서원은 본당 건물과 동재, 서재, 그리고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고 본당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후 툇집 형식이며 정면의 기둥은 배흘림을 둔 두리기둥으로 단면의 크기도 크고 훤칠하다. 가구는 5량 구조로 장식이 잘되어 있다. 양 툇간에는 퇴보를 걸었으며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서원으로서 전체적인 배치가 무난하며 부재의 사용이나 적절한 비례의 적용, 그리고 동재의 여러 가지 기술적인 수법 등 조선 후기 건축의 여러 기법을 볼 수가 있어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서원 담장도 흙 돌담으로 축조기법이 돋보이며 일반 한옥의 담장보다 높이가 높다. 처음에는 각재 하항을 모시기 위한 대각사를 지었다가 그 뒤에 무송 손천우, 백암 김대명, 영무성 하응도, 모촌 이정, 조계 유종지, 송정 하수일 등 6분의 선현을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 7위를 배향하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각길 104-21
대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보성군역사관광

대계서원

문강공 은봉 안방준(1573~1654)은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로서, 20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박광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도 격문을 띄워 근왕의 의기를 높이 세웠다. 대계서원은 효종 8년(1657) 지방유림의 공의로 안방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이 서원은 중앙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훼철과 복설이 거듭되었으니, 숙종 17년(1691)에 안방준사우에 대한 훼철이 결정되어 이듬해 능주의 도산사와 함께 훼철되었으며, 그 뒤 1695년(숙종 21)에 이르러 복설되었다. 숙종 30년(1704) ‘대계[大溪]’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정조 4년(1780) 화재로 전소된 것을 1784년에 중건하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보성읍 동암2길 100
당진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당진시역사관광

당진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당진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이나 태종 7년(1407)에 지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교육 공간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삼문, 제기고 등이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교동2길 33-18
대각사(부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중구역사관광

대각사(부산)

대각사는 부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사찰로써, 개항기 일본 정토 진종의 동원본사 부산별원으로 시작하였다. 동원본사 부산별원은 개항기 일본 불교의 조선 포교의 효시로서, 당시 부산에서 신도수가 가장 많았던 일본인 사찰이었다. 해방 후 동본원사 부산별원은 한국 정부에 귀속되었는데, 정부 관제국에서 귀속재산 처분을 할 때 이 사찰의 땅과 건물을 경매받아 경남 불교종무원으로 발족하였다가 창건주에 의해 새로이 한국 사찰로 창건한 것이 현재 대각사이다. 창건 이전의 유물은 범종과 석등만이 있을 뿐, 대웅전이나 진신사리탑은 후에 지어졌다. 현 대웅전은 중간기둥이 없는 특수한 건축공법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서 약 1천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건물이다.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중앙로 19 (신창동1가)
대구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구광역시 중구역사관광

대구향교

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으로서,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기능과 학생을 교육하는 강학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였다. 1400년에 불타자 곧 재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어 1599년(선조 32) 현재의 달성공원 부근에 재건하였다. 1605년 교동으로 이건하여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932년 현 위치로 이건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문묘·삼문 등이 있으며, 향교 내에는 대구성(大邱城)의 축성 및 유래를 기록한 축성비(築城碑)와 수성비(修城碑), 경상도관찰사·판관·군수 등을 지냈던 사람들의 불망비(不忘碑)·송덕비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 112
대곡사(의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의성군역사관광

대곡사(의성)

대곡사는 비봉산(579m) 동쪽 자락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이다.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왕사인 지공선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대국사(大國寺)라 하였는데, 이는 지공이 중국 원(元)과 고려 두 나라를 다니면서 불법을 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 대곡사 탑 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을 볼 때 그 이전에 이미 창건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더군다나 고려 말의 이규보가 대곡사를 탐방하고 지은 시문 제목에 ‘대곡사’라 되어 있어 13세기 초중반에 이미 절이 있었고, 이름이 대곡사였음을 알 수 있다. 비봉산 일대에 본원을 비롯한 아홉 개의 암자를 지어 불교를 융성하게 하였으며, 또한 호국불교 정신으로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대찰이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범종루가 있다. 대웅전 앞에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다층석탑도 볼 수 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세종(1418~1450) 때 교종(敎宗)에 속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05년(선조 38) 탄우(坦祐)가 중창하면서 대웅전과 범종루·요사 등을 새로 지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
당포성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통영시역사관광

당포성지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아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당포승첩이다. 당포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 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켰다.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7m, 폭 4.5m이며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지은 망루 터가 남아 있고, 성문 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밖으로 쌓은 작은 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당진면천읍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당진시역사관광

당진면천읍성

면천읍성은 당진시 면천읍 소재지에 남아있는 평지 읍성으로 당진, 서산, 태안 등과 더불어 옛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바닷길이 있었던 곳이다. 이처럼 중국과의 통상에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방상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해서 백제시대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취급되었다. 지금의 읍성이 세워진 것은 1439년(세종 21년)으로 조선 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성벽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았는데,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고 쌓았다. 현 성벽의 둘레는 1,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는 치성과 옹성의 길이를 합한 전체 길이는 1,564m 정도로 추정된다. 이 성은 조선시대 성을 쌓은 규정이 가장 잘 반영된 우수한 유적으로 동, 서, 남, 북의 사대문까지 갖춘 성이었다. 성 내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군자정, 레트로거리 등이 있고, 매년 봄에는 면천 진달래민속축제가 열린다. 면천읍성은 지방도 70호선, 609호선, 619호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당진영덕고속도로 면천IC가 가깝다. 주변에는 골정저수지, 면천향교, 고려개국공신복지겸장군유적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달마사(서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서울특별시 동작구역사관광

달마사(서울)

한강, 그리고 강 건너 남산을 바라보는 서달산 중턱에 작은 사찰이 있다. 낮이면 흐르는 강물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고, 밤이면 작은 불빛을 발하는 남산의 정경을 바라볼 수 있는 열린 사찰이다. 서달산을 남산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맑은 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심 속에서 찌든 혼탁한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도심 속 전통사찰이다. 이른 아침 새벽예불의 소리와 함께 지역주민과 하나 되고, 하루라는 인고의 시간을 지는 해와 같이하는 그런 포근한 사찰이다. 한강을 바라보는 녹지 속의 열린 공간이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참된 수행의 정신이 깃든 곳, 또 작지만 마음으로 넓힌 지역주민의 공간이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서달로 50-26 (흑석동)
단호사(충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충주시역사관광

단호사(충주)

충주 단호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말사로 조선 후기 숙종 때 중건한 사찰이다. 중건 당시 ‘약사’라 하였고, 1954년 단호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3칸의 맞배집인 대웅전과 약사전, 용왕전, 요사채 등이 있다. 약사전 내에는 1976년 보물로 지정된 철불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11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고려 시대 철불의 귀중한 유품이며, 지역적인 유파성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외에도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관세음보살좌상, 미륵불입상 등 다양한 문화재를 만나 볼 수 있다. 단호사에서는 매월 첫째와 셋째 일요일, 초하루와 보름 때에 정기 법회가 열리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충원대로 201 단호사
달성(현풍)사직단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달성(현풍)사직단

사직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을 가리키며, 두 신을 제사 지내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 사직단이다. 토지를 주관하는 사신과 오곡을 주관하는 직신에게 고을의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매년 중춘과 중추에 사직제를 지내고 나라의 큰일이나 가뭄이 있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현재의 사직단은 옛 현풍 사직단 터에 충혼탑이 세워져 원래 자리에 복원하지 못하고 현재의 자리에 1996년~1997년 2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이때의 사직단은 500㎡의 대지 위에 가로, 세로 각 5m, 높이 1m의 방형 단을 5m 거리를 두고 2기가 동서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사단은 서쪽에, 직단은 동쪽에 배치하여 북쪽을 제외한 3면에 계단을 쌓았다. 이후 1998년 한 개의 단으로 새롭게 복원하였고, 2010년 개축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사직단은 사면의 방형 담장 안에 남쪽으로 치우쳐 1기의 사직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담장의 각 중앙에는 홍살문이 있다. 사직단은 3단이며, 각 방향의 중앙에는 3단의 계단이 있는 형태이다. 현풍사직단은 달성군의 전통문화유산을 계승함과 동시에 후세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상리
달성 하목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달성 하목정

달성 하목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이 1604년(선조 37)에 세운 것이다. ‘하목정’이라는 정호(亭號)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남인 이지영에게 직접 써 준 것이다. 이곳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평면형태가 독특한 정자형 별당 건축으로 공간구성과 세부기법 및 의장 등에는 많은 특색이 나타나고 있어 역사적, 건축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과 정면 1칸, 측면 4칸의 방들이 서로 붙어서 전체적으로 독특한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목정길 56-10
달성 현풍 석빙고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달성 현풍 석빙고

현풍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어 있으며, 출입구가 개울을 등진 능선 쪽에 마련된 남향구조이다. 돌의 재질은 모두 화강암으로 외부에서 보면 고분처럼 보인다. 입구는 길쭉한 돌을 다듬어 사각의 문틀을 만든 후 외부공기를 막기 위해 돌로 뒷벽을 채웠다. 외부는 돌을 쌓고 점토로 다져서 흙을 쌓아 올렸다. 잘 다듬어진 돌로 벽과 천장을 쌓았는데 천장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네 개를 틀어 올리고 그 사이사이에 길고 큰 돌을 얹어 아치형을 이루게 하였다. 천장에는 통풍을 위한 환기구가 두 군데 설치되었고 빗물에 대비한 뚜껑이 있다. 바닥은 평평한 돌을 깔고 중앙에 배수구를 두었다. 당시에는 얼음창고가 마을마다 설치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작은 현풍고을에 이러한 석빙고가 만들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1982년 석빙고 주위의 보수작업 때 축조 년대를 알려주는 건성비(建城碑)가 발견됨으로써 1730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단내 성가정 성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이천시역사관광

단내 성가정 성지

성가정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남한산성에서 순교하신 정은 바오로의 시신이 안장된 곳이다. 성지 개발 위원회에서는 순교자 정은과 그 가족들의 순교 정신을 현양하고 기리기 위해 이곳을 개발하고, 1987년 9월 15일에 수원교구장 김남수 안젤로 주교님의 집전으로 축성하였다. 오솔길을 따라 들어오면 오래된 수도원 같은 느낌의 성지가 나타난다. 앞으로는 수량이 풍부한 시냇물이 흐르고 뒤로는 울창한 숲의 와룡산이 감싸고 있다. 성가정 성지에는 숲이 울창하면서도 인적이 없는 계곡과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총연장 5.2㎞의 순례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예수성심상이 있는 전망 좋은 와룡산 정상에서는 이문우 성인의 고향과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 활동 경로를 조망할 수 있으며, 병인박해를 전후해서 박해받는 신자들의 은신처였던 검은 바위와 굴바위에서는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던 신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산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리는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는 성가정 성지의 순례코스는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피정하는 마음으로 순례하기에 더없이 좋은 순례코스이다.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이섭대천로155번길 38-13
단양 금굴 구석기유적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단양 금굴 구석기유적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嶋潭里) 남한강가에 있는 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동굴유적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문화 유적으로 전기구석기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거의 모든 시기의 유물층이 발견되어 각 문화층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1980년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에 실시된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구석기시대의 동굴유적임이 확인되었다. 이후 3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여러 시기에 걸쳐 문화가 형성되었음이 밝혀졌으며, 출토된 유물을 통해 구석기시대 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구석시유적지의 유물 및 의의 * 동굴의 규모는 입구 높이 8m, 넓이 7∼10m이며 확인된 동굴의 길이 85m이다. 구석기시대 전·중·후기,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층들이 덧쌓여, 시기마다 만들어 썼던 석기·뼈연모·토기·조가비연모 등과 사냥했던 짐승뼈 화석과 조가비 및 토기조각들이 출토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그들의 먹을거리와 삶 및 자연환경을 살필 수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단구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단구서원

단구서원은 문희공 이세기 선생을 주벽으로 하고, 문효공 이천 선생, 송와공 이종윤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원래 송와공을 제향 하는 모현서당이 철종 13년(1862)에 건립되었는데,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어 1983년에 단구서원을 창건하였다. 이세기는 고려 충렬왕 때 명신으로 문장에 능하였으며, 밀직부사, 예문관대제학, 동지춘추관사, 검교정승 등을 역임하였다. 이천은 이세기의 장자이며, 고려 충렬왕 25년(1299)에 국자시 장원하였고, 충혜왕 4년(1343)에 첨의평리상의 동지공거를 겸하였다. 충목왕 즉위에 원나라 사신으로 다녀와서 판밀직사사 겸 서연관이 되고, 곧 정당문학에 올랐다. 충목왕 원년(1345)에 첨의참리, 문하시랑, 동평장사,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뒤 월성군에 봉해졌다. 이종윤은 이세기의 6세손이다. 세종 13년(1431) 경주 월남리에서 출생하였고,ㅡ 세조 13년(1467)에 문과급제하여 영창전참봉이 되었다. 내자시주부, 예조좌랑, 정랑으로 승진하였다. 성종 13년(1482)에 사간원헌납, 사헌부장령, 제용감 첨정, 봉상시 부정 등을 역임하고 시강원보덕이 되었다. 성종 20년 사헌부장령 집의를 지냈으며, 성종 21년(1490)에 제주목사로 교육을 장려하고 풍속을 순화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과만에 제주민의 유임상소로 연임중 제주관아에서 연산 원년(1495)에 65세러 별세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단구서원길 8-3
단양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단양향교

단양향교는 1415년 창건된 후 퇴계 이황 선생이 현 위치인 단양 단성면 상방리로 이건한 향교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 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으로 갑오개혁 이후 교육적 기능은 사라졌다. 영조 때 두 차례 낡은 부분을 손질하였으며, 정조 때 군수 조경진이 명륜당을 고쳐지었다. 1971년과 1977에도 각각 낡은 부분을 손질하여 고쳤다. 단양향교는 앞에 강학 공간을 두고 뒤에 제향 공간을 두는 일반적인 향교의 배치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풍화루를 지나 향교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쪽에 유생이 기거하고 글을 읽던 동재와 서재가 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들이 위패를 모시고 제사들 지내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충혼로 26
단양 조덕수 고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단양 조덕수 고택

단양 조덕수 고택은 남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가곡면의 상덕천 마을, 해발 200m의 얕은 산자락(국수봉)에 있는 목조기와집으로, 조자형 가옥으로도 불린다. 조자형의 6 대조인 조덕수가 1770년경에 지었다고 전해온다. 이 지역의 중농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민가이다. ‘ㄱ’ 자형의 안채와 ‘ㄴ’ 자형의 행랑채가 맞물려 ‘ㅁ’ 자 모양을 이루는 전형적인 중부 내륙 지방의 민가 형식의 가옥이다. 안채는 19 세기 중엽 정도에 건축된 건물이며 정면의 왼쪽에서부터 건넌방, 대청, 안방이 차례로 있고 안방에서 앞쪽으로 꺾여 부엌과 아랫방이 있다. 건넌방 앞과 안방 뒤의 측면 툇간에는 툇마루를 달았고 대청마루가 툇간까지 연장되어 있다. 부엌 옆에 붙은 아랫방 앞에는 툇마루가 없이 함실아궁이가 설치되어 있고 부엌에는 뒤쪽 상단에 1칸 규모의 다락이 있는데 이런 방식은 중부지방보다는 남부 지방의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랑채는 20세기 중엽에 지은 초가집으로 대문간과 함께 건축되었는데 구조는 일반적인 농가와 유사하다.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덕천1길 19
단양 적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단양 적성

단양적성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성재산 정상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단양적성은 석축성으로 성의 길이가 923m이지만 대부분 붕괴되었고 북동쪽 내외 부분의 안쪽 벽 높이 2~3m, 폭 1m의 석축이 일부만 남아 있다. 성재산 봉우리와 남쪽 비탈을 빙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며 성문 자리는 남서쪽, 동쪽, 남동쪽 등 세 곳에서 발견되었다. 산성의 주변에는 남한강의 상류 방면과 하류 방면으로 각각 고대 교통로가 나 있으며, 동서쪽으로도 길이 트여 있다. 남한강 수로를 다라 영월과 충주 방면으로 진출이 용이하고, 강 건너 제천 방면으로 진출하기에도 유리한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산성이다. 적성에서 단양신라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 비는 적성의 성격이나 목적, 연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비의 건립 연대는 늦어도 551년 이전으로 보인다. 따라서 적성은 6세기 중엽 이전에 신라가 남한강 상류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하고자 쌓은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성으로 평가된다. 단양적성은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신라와 고구려 세력관계 변동을 알아보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또한 축성 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
농산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합천군역사관광

농산정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산-1
논산 연산역 급수탑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논산 연산역 급수탑

논산 연산역 급수탑은 1911년 호남선의 개통과 함께 증기기관차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같은 해 12월 30일에 설치되어 1970년대까지 약 60여 년간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급수탑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다. 열차의 발전과 함께 기능을 상실한 채 남아있던 이 급수탑은 근대 산업시설물로의 역사성과 희소한 조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체 높이는 16.2m, 지면부의 바깥지름은 5.28m이며, 최상단부 철제 물탱크의 바깥지름이 4.1m인 총 용량 30t 규모의 원기둥형 급수탑이다. 급수탑 재료를 석재를 사용한 것이 큰 특징이다. 몸체는 화강석을 쌓았으며, 외곽 테두리를 정교하게 다듬고, 나머지 부분을 거칠게 다듬은 모양을 하고 있다. 급수탑 출입구 부분은 아치로 마감하고 이맛돌(Key Stone)의 모양이 매우 정교하며, 그 앞의 우물도 화강석 쌓기로 잘 다듬어져 있다. 급수탑 옆에 위치하고 있는 우물은 폭이 2.8m, 깊이 6m의 크기로 급수탑의 급수용으로 축조하였다. 상단부의 급수탱크에는 외부에 철제사다리를 설치하여 최상단 강판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선비로275번길 31-2
다천사(정읍)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다천사(정읍)

정읍시 태인면 소재지에서 있는 항가산을 올라가면 중턱에 다천사가 있다.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는 다천사는 옛날 절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벽산스님이 1930년경 이 절을 창건했다. 항가산은 불교적 향기가 가득한 곳으로 항가산이라는 이름은 항하사의 항 자에다, 석가모니의 가 자를 합쳐 만들어진 산이다. 그 뜻은 수 많은 모래와 같이 부처님이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다천사라는 이름은 차를 끓여도 좋을 만큼 맑은 물이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은 예전에 이 곳에 절을 지으려 할 때 오래된 괴목나무 옆에 우물이 있어 깨끗이 청소하였더니, 바위에 다천(茶泉)이라 새겨진 글씨가 발견되어 지었다고 한다. 결국 다천사의 우물은 차를 끓이던 물로 사용되었을 것인데, 예전에 이 물을 바르고 백일기도를 했던 나병환자가 병이 나았다는 영험한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주변 관광지는 태인동헌, 피향정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1길 59
노태우 대통령 생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노태우 대통령 생가

노태우 대통령 생가는 대구 동구 신용동 팔공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신용동이란 명칭은 신령스러운 용이 하늘로 올라간 용지가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신용동에 위치한 용진마을에 가면 노태우 대통령 생가가 있다. ‘용의 머리’에 자리한 명당이라 하며, 안채와 사랑채, 외양간 등이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살아있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용진마을은 교하 노 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마을 주변은 봄철이면 복사꽃이 만발해 장관을 연출한다.

대구광역시 동구 용진길 172
농암종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안동시역사관광

농암종택

농암종택은 농암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며, 직계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다. 최초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영천 이씨 이헌으로, 농암 이현보 선생의 고조부이다. 종택은 2,0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당,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로 구성된 본채와 긍구당, 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긍구당은 1370년 전후 이헌이 지은 건물이며, 명농당은 1501년 이현보 선생 나이 44세 때 귀거래의 의지를 표방하고 지은 집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33
다솔사(경남)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사천시역사관광

다솔사(경남)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범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고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숙종 12년(1686)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중창불사로 크게 중흥했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후인 영조 24년(1748)에 큰 불로 말미암아 불행히도 큰 재앙을 겪었으며 같은 왕 34년(1758)에 여러 스님이 또 합심하여 명부전과 대양루 그리고 사왕문을 중건했다. 그런데 1914년 12월에 또 화재가 일어나 모든 전각이 불탔으나 다행히도 대양루는 소실되지 않았으며 그 이듬해부터 3년간 중건 끝에 현존하는 것이 이 건물이다.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녹동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녹동서원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삼정산 기슭에 자리한 녹동서원은 모하당 김충선 장군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향도 유림들이 상소하여 정조 15년인 1791년에 건립하였다. 그 후 고종 5년,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4년 다시 복원하였으나 후손이 늘어남에 따라 규모가 협소하여 국고의 지원을 받아 1972년 지금의 장소로 이축과 동시에 증축하였다. 서원경내는 향양문을 비롯한 녹동서원, 녹동사. 충절관을 비롯해 깁공의 묘소도 서원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우록길 218 녹동서원
노산사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양평군역사관광

노산사지

노산사지는 주자, 송시열, 화서 이항로 세 분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항로 선생이 생전에 주자와 송시열의 영정을 그려 모시고, 항상 경모 하던 뜻을 받들어 주자를 주벽으로 하고 송시열과 화서를 동서로 모셨다. 원래 330m² (100여 평)에 이르던 사당이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 그 후, 사림들이 화서 선생을 추모하고 그 도학 정신을 계승하고자 1950년 현 위치에 사당을 짓고 매년 9월 15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화서1로 241
노봉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노봉서원

노봉서원은 조선 단종(재위 1452∼1468) 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다 순절한 죽림 권산해(∼1456)의 절의를 본받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산해는 조선 전기의 의인이다. 세조 원년(1455)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두 임금 섬기기를 거부하며 낙향했다. 그 뒤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 노봉서원은 정조 18년(1794)에 세웠으나, 고종 3년(1866)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고, 이후 1921년 지방 유림들의 지원으로 다시 세웠다. 건물은 내신마을의 옛 신당초등학교 옆 노사봉 아래에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5동의 건물로 1곽을 이루고 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교육을 위한 강당인 몽양재가 있고, 뒤쪽으로 전사청이 있다. 그 오른쪽에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인 숭의사가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막돌쌓기한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도록 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앞면만 둥근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읍 내신2길 301
노성궐리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노성궐리사

노성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궐리사라는 이름은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한 것이다. 숙종 13년(1687) 우암 송시열이 궐리사를 세우려고 했으나 2년 뒤 세상을 떠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숙종 42년(1716) 권상하, 김만준, 이건명 등의 제자가 현 위치에서 서쪽방향으로 있는 노성산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다음 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정조 15년(1791)에는 송조 5현을 봉안하였고 순조 5년(1805)에 관찰사 박윤수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지금 있는 영당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곳 외에도 강릉, 제천, 화성에도 궐리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과 화성에만 남아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길 35
노은영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진천군역사관광

노은영당

노은영당은 진천군 이월면 노곡 마을의 왜가리 번식지 부근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신잡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독송 신잡(1541∼1609) 선생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 장군의 형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이조참판과 형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 2등에 평천 부원군으로 봉해졌으며 개성유수가 되었다. 신잡 영정(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은 조선 선조 37년(1604)에 공의 54세 때 모습을 김이혁이 그렸다 하며 비단 바탕에 색을 넣어 그린 전신의 초상화인데 크기는 가로 90cm, 세로 167cm로 그림의 형태와 안면 처리법 등이 조선 중기 초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은영당은 1615년(광해군 7)에 건립되었으나 1818년(순조 18)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를 1856년과 1966년에 중수한 것이 현재 있는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반 칸의 앞퇴가 있으며 ‘노은영당’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사당 정면에는 ‘충정문’이라고 쓴 솟을삼문을 세우고 그 주변에는 돌과 회를 섞어 만든 담장을 두르고 기와를 얹었다. 노은영당 오른편에는 1985년 건립된 신잡의 부친인 신화국의 신도비가 있으며, 그 뒷산에는 신화국 부부 묘, 신잡 부부 묘, 신정희 부부 묘가 자리하고 있다. 진천의 자연을 둘러보며 역사를 알아보기 좋은 곳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