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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한내돌다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대천한내돌다리

대천한내돌다리는 보령 시내 대천천 하류에 있었던 돌다리이자, 과거의 남포와 대천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살에 쓸려 떠내려가거나 하천 제방공사를 하면서 파손되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1978년 수습하여 옮겨 두었다가, 1992년에 대천천 강변에 옮겨 일부 복원하면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근처에 있는 왕대산의 돌을 깎아내어 뗏목으로 운반해 온 것으로 보인다. 다리의 몸체를 받치는 기둥은 거칠게 손질한 2∼3개의 돌을 쌓아 이루게 하여, 모두 6개의 기둥이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위로 넓적한 판돌을 걸쳐서 다리를 완성하였는데, 원래는 12칸 돌다리라 하나 적어도 22칸은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보령시에서는 해마다 향토문화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12칸 돌다리밟기제가 열린다. 인근 관광지로는 보령중앙시장, 한내시장, 보령문화의전당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동대동
대조사(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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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대조사(부여)

대조사(부여)는 부여군 남부에 솟은 성흥산(260.1m) 남쪽 자락에 위치한 사찰이다. 인근의 가림성과 마찬가지로 6세기 초에 세워져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데, 높은 돌담을 쌓아 마치 산성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한 노승이 이 바위 밑에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한 마리의 큰 새가 바위 위에 앉는 것을 보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있었다 하여 이 절을 대조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큰 바위에 세워진 높이 10m가량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유행한 거대한 석조 미륵보살의 하나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과 함께 동일한 지방 양식을 보여주는 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조사 원통보전 앞에 서 있는 석탑 역시 고려시대에 만들었다가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복원하여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목조보살좌상 또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성흥산, 부여 가림성 외에 임천향교, 임천시장, 복금저수지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197번길 112
대적사(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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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역사관광

대적사(청도)

대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876년 보조 선사가 토굴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보양 선사가 중창했다고 하며,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89년 서월성해 승려가 크게 중수하여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이는 극락전은 불교도의 이상향인 극락정토를 표현하고 있는 법당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정면에 극락전을 중심으로 향각과 동측당, 서측으로는 지장전이 위치하고 극락전 뒤편 서측으로 산령각이 석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대적사의 극락전은 1985년 1월 8일에 보물 제836호로 지정되었다.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13
대원사(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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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역사관광

대원사(충주)

충주 대원사는 1929년 창건된 절로 1994년 대규모의 화재로 법당일부와 철불좌상을 봉안한 보호각이 소실되어 다시 중건하였다. 대원사의 무량수전은 근래에 지은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법당 안에는 아미타불좌상을 주존으로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천불상과 신중탱화 및 동종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 짝 지붕 목조기와집으로 건물 내에는 보물 제98호인 충주 철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원사는 충주 시내에 자리한 사찰로 근처 관광지로는 택견전수관, 관아공원, 주물유기장 등이 있다.

⌖ 충청북도 충주시 사직산12길 55
대원사(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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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역사관광

대원사(완주)

대원사는 모악산 동쪽 기슭 해발 420m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마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열반종의 개산조인 보덕의 제자들이 670년(신라 문무왕 10) 창건하였으며, 1866년(고종 23)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원통보전·응향각·삼성각·봉익루·범종각·구요사·객실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협시하는 삼존불이 있으며 불상 뒷면에 후불탱화, 나한탱화가 있다. 스님들이 거처하는 방에는 진묵대사의 영정과 제왕탱화가 걸려있고 대웅전 앞뜰에는 높이 238㎝의 고려시대 말기 작품인 5층 석탑이 남아 있다. 대원사 주위에는 9기의 부도가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유물은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각부도이다. 옥개석 가운데에 두 마리의 용이 뒤엉켜 여의주를 잡으려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높이 187㎝의 탑 모양을 한 용각부도는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제71호로 지정되었다.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243
대운암(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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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역사관광

대운암(청도)

청도팔경의 하나인 용각산 지맥인 오례산 산정에 위치한 대운암은 1868년(고종 5년)에 부암선사가 범굴에서 수도하다 현몽에 의해 창건하였다. 1900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신범해화상이 중창하고, 경산시 자인면 반룡사에서 관세음보살불상 1구를 옮겨와서 봉안하였다. 이 관음불상은 1994년 12월부터 실시한 불상 개금 때 목조불상으로 판명되고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순치 11년 경산 자인 반룡사에서 조성되었다는 묵서가 있어 1654년(효종 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 법연화경 목판서와 해설 본이 있어 불경에 관한 연구와 한글연구에 귀중한 문화재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정무한은 청도천의 맑은 물이 발아래다 흰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고, 산악연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산수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가경이다.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청매로 117-320
대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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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대장마을

경호강 물줄기에 자리한 이 마을은 신라 때 어느 대장이 쉬고 간 곳이라 해서 대장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곳곳 담벼락에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져 정겹다. 경호강은 겨울에 언 강이 거울처럼 맑다는 뜻인데, 경호강 북쪽은 덕유산과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하늘을 가로막아 여름에 몰려오는 습한 비구름이 산자락에 부딪혀 넘어가면서 큰비를 뿌리는 지역이다. 대장마을은 이 경호강 상류에 위치해 강폭이 넓고 수량이 많으며, 유속이 빨라 여름철 수상 레저인 래프팅을 즐기는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친환경로2506번길 85
대전 신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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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유성구역사관광

대전 신흥사

신흥사는 대전시 유성구 원신흥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대한 불교 정토정 사찰이다. 정토정은 아미타불 및 그가 출현할 정토의 존재를 믿고, 죽은 후 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대승불교의 일파이다. 사찰에서는 아미타불 부처님과 협시불인 관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을 주불로 봉안하였으며, 104위 신중님이 봉안되어 있다.

⌖ 대전광역시 유성구 동서대로735번길 24-9
대원군별장(석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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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역사관광

대원군별장(석파정)

조선 후기에 건립된 흥선대원군의 별서로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왕산 바위 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흥선대원군이 ‘석파정’이라 이름 지었으며 삼계동 정자라 하기도 한다. 본채 7채의 살림채와 육모정, 유수성중관풍루 등 다양한 건축물로 구성된 별서는 오늘날 안채, 사랑채, 별채와 정자로 4개의 동만 남아 있다. 아름다운 경관과 수려한 건축을 자랑하며 조상들의 풍류와 예술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현재 서울미술관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다양한 근현대 미술관 전시와 함께 미술관 입장권으로 석파정 야외 공원 관람이 가능하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11길 4-1 (부암동)
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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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역사관광

대전사

신라 문무왕(文武王)12년(672)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사찰인 청송 대전사(大典寺)는 주왕의 설화에서 주왕의 아들인 대전도군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본래 매우 큰 절이었으나 여러 차례의 화재로 상당부분 소실되었다. 지금은 보광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명부전, 응진전, 산령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가람의 여러 곳에 도출되어 있는 주초석들이 옛 사찰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대전사의 부속암자로는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다. 조선 현종13년1672 임진왜란 때 불탄 보광전을 중창하였으며, 1995년 이후 명부전과 산령각, 탐진당 등을 이전 및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 청송여행)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공원길 226
대원사(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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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보성군역사관광

대원사(보성)

대화사는 신라 지증왕 때에 아도화상이 창건했으며, 그 후로 고려시대 조계 제5세 원오국사가 중건하였다. 대원사는 천봉산 중턱에 있으며 6·25 동란 이전까지만 해도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여순반란 사건 때에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현재 극락전이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어 있고, 극락전 앞에 자진국사 부도가 있다. 근처에 백민 미술관, 송재 서재필 생가 및 기념공원, 주암호반, 고인돌 공원과 연계되는 교육문화 탐방 루트로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문덕면 죽산길 506-8
대원사(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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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대원사(산청)

지리산의 천왕봉 동쪽 아래에 신라 제 24대 진흥왕 9년(548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평원사라고 했다. 그 뒤 1 천여 년 동안 폐쇄되었던 것을 조선조 숙종 11년에 운권선사가 문도들을 데려와 평원사의 옛 절에 사찰을 건립, 대원암이라 개창하고 선불간경도량을 개설하여 영남의 강당이 되었다. 조선조 고종 27년에 혜흔선사의 암자가 무너져 크게 증건하였다. 서쪽에는 조사영당을 보수, 동쪽에는 방장실과 강당을 건립하여 대원사라 개칭하고 큰스님을 초청하여 설교를 하니 전국위 수행승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1914년 1월 12일 밤에 다시 불로 절이 모두 타버린 것을 여러 스님들이 다시 중창하여 1917년 전(殿), 누(樓), 당(當), 각(閣), 요사채 등 12동 184칸의 건물을 지었다.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 등으로 폐허가 되어 방치되다가 1955년 9월에 비구니 법일(法一)화상이 주지로 임명되어 1986년까지 대웅전, 사리전, 천광전, 원통보전, 봉상루, 범종각, 명부전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부근에는 옛적 선비들이 수학했다는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이 있다. 또한 대원사입구 주차장에서 대원사까지 약2㎞에 이르는 대원사계곡은 산이 높고 물이 맑을 뿐 아니라 바위틈 사이로 뿜어내는 물과 괴암은 절경이다. 용이 100년간 살다가 승천했다는 용소, 가락국 마지막 구형왕이 이곳으로 와서 소와 말의 먹이를 먹였다고 하는 소막골 등이 위치하고 있다.

⌖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길 455
대성사(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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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역사관광

대성사(이원)

대성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이다. 옥천에는 전통사찰로 등록된 대성사가 2군데 있다. 이원면에 위치한 대성사와 옥천읍 교동리에 위치한 대성사인데 모두 태고종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이다. 그러나 이 두 사찰은 그 사찰의 경영에 있어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원면에 있는 대성사는 민가에 둘러싸여 있으나 한가하고 여유로우며,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조용한 도량이다. 불전이라고 해야 대웅전 한 채만이 전부이며 사찰의 영역도 그리 넓지 않은 작은 곳이다. 대웅전 전면에 마당이 있고, 마당에 4기의 석등과 법당창건 시 역공노비가 세워져 있다. 대웅전은 2001년에 중창한 건물로, 일반적인 불전의 정면이 3칸 혹은 5칸의 홀수칸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게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많은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강청길 36-9
대성사(옥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옥천군역사관광

대성사(옥천)

옥천군에는 대성사라는 사명을 가진 사찰이 두 곳이 있다. 이곳은 옥천읍에 위치한 대성사로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며 실천불교를 표방하는 사찰이다. 대성사에는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옥천 대성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대성사가 있는 청성면 도장리(道場里)는 ‘불당골(佛堂谷)’로도 불리는 것으로 보아 불교와 관련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옥천 육씨 족보에도 “조선 성종 22년(1491년)에 대성사에 석불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입상은 높이가 360cm이며, 가운데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머리에는 둥근 모자를 쓰고 있고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식으로 법의를 입고 있으며, 맨 아래에는 발의 모습도 확인된다. 왼손 가운데에 홈이 있는 것 등으로 보아 지물(持物)을 받쳐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둥근 관모 형식을 쓴 형태는 서울 약사사 석불 입상(1490) 등과 유사하며, 예산 삽교 석조 보살 입상과 같이 두 개의 돌기둥을 조립하여 만든 형식은 고려 석불의 전통으로 볼 수 있다. 지역 공동체에 신앙의 대상이며, 조선 전기 석불의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지용로 142
대성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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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초구역사관광

대성사(서울)

기록상 마라난타가 백제로 오는 동안 풍토병으로 고생을 하였는데, 우면산 물을 마시고 완쾌하였다고 한다. 이에 우면산에 대성초당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성사의 전신이라 전해진다. 또한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명 중 한분이신 백용성 스님께서 주석하시며 불교 대표로 참가하시어 대승적 독립운동을 전개하셨다. 현재 대성사에는 백용성 스님이 조성하신 목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이 모셔져 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328길 49 (서초동)
대성산지구 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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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역사관광

대성산지구 전적비

대성산지구전투전적비는 6·25 전쟁 중 대성산지구 전투에서 활약한 장병들의 전공을 기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 이 비는 1983년 10월 1일 화천군에 위치한 육군 제8305부대에서 건립했으며, 현재는 보병 제15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성산지구 전투는 1951년 6월 9일 국군 제2사단 제2·3대대가 1041 고지 일대의 중공군 병력을 섬멸하기 위해 벌인 전투였다. 국군은 선제공격을 통해 1041 고지, 신월동, 865 고지를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국군의 용맹함과 전술적 성과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산1-1
대승사(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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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경시역사관광

대승사(문경)

대승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1644년(인조 22)과 1722년(경종 2)에 의현, 종수 등이 중수하였고, 1831년(순종 31) 구담이 중창하였다. 1922년 큰 화재로 불타 의운, 덕산이 복원시켰는데, 1956년 또다시 큰 화재가 발생하여 명부전과 극락전만 남고 소실되어, 1960년 남인 대휴 등에 의해 삼창 되었다. 사불산 산마루에 있는 사면 석불상은 삼국유사불산조에 따르면 587년(신라 진평왕 9) 커다란 비단 보자기가 공덕봉 중턱에 떨어졌는데,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4불암이 싸여 있었다고 한다. 왕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와서 예배하고 절을 짓게 하고 대승사라고 사액하였고, 망명비구에게 사면석불의 공양을 올리게 하였는데, 망명비구가 죽고 난 뒤 무덤에서 한 쌍의 연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이름을 사불산 또는 역덕산으로 불렀다. 대승사는 국보 대승사목각탱부(아미타여래설법상) 및 아미타불사에서 나온 금자화엄경(7권), 불사리 1과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 윤필암, 묘적암, 상정암, 관음암, 문수암 등이 있으며, 금강반야경오가해설의(1415)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대승사는 해발 600미터 고지의 대자연 속에서 스님들과 일상을 같이 체험하며, 차담, 예불, 윤필암, 묘적암, 사면석불 포행과 쉼이 있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참여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프로그램이다.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승사길 283
대비사(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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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역사관광

대비사(청도)

대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신라 시대 6세기경에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 중 하나로 세워진 소작갑사(小鵲岬寺)가 전신이다. 대비사는 대비갑사(大悲岬寺)로도 불리는데, 고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이름을 대비사(大悲寺)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당시 신라 왕비가 수양 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대비사는 566년(신라 진흥왕 27)에 신승이 세우고 600년(진평왕 22)에 원광국사가 보수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박곡리 마을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비사 대웅전은 1985년 1월 8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16세기 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의 구성도 꼼꼼하고 튼튼하며, 이를 이루는 세부 부재들의 형태를 보아 조선 초기의 건축 수법을 볼 수 있다.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590
대법사(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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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시역사관광

대법사(여주)

대법사는 대포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명성황후의 출생 일화가 전해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고즈넉한 사찰 곳곳에 심어진 꽃나무와 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됐으며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성여왕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해 미륵당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명성황후와 그의 아버지 민치록의 인연으로 유명해지게 되는데, 숙종 때 사찰 인근에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의 묘를 쓰면서부터이다. 이 묘소를 관리하며 살아가던 명성황후의 부친 민치록은 꿈에 미륵불을 현몽하고 땅을 파서 미륵불을 발견한 뒤 법당을 새로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부인인 한산 이씨가 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낳은 자식이 바로 명성황후이다. 그 후 명성황후가 고종의 비로 책봉되자 미륵불이 있던 자리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원당사로 개칭하고 민씨 일가의 성원으로 번창하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원당사는 사라지고 거의 폐사되어 흔적만 있던 것을 오늘날의 대법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절을 새로 창건한 대원스님 또한 꿈에 현몽한 대법사라는 서책을 보고 절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일주문, 대웅전, 지장전, 범종각, 국사당, 삼성각 등이 있다. 1971년 건축해 1989년 중수한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석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 삼층석탑, 약사여래 좌상이 있으며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9m에 이르는 미륵석불과 7층 석탑이 있다. 대웅전 옆 작은 석실에 명성황후와 연이 있는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는지 닳고 닳은 외형이 그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절 입구의 국사당에 2개의 탱화가 걸려있는데 좌측에는 산신이 우측에는 보통 호랑이가 있지만 말을 탄 선비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민치록이라 한다.

⌖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안금3길 3-43
대모암(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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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대모암(순창)

순창 대모암은 백제 시대의 산성터인 순창 대모산성 북쪽에 자리한 사찰이다. 학성이 1933년 창건한 곳으로, 6·25 전쟁 때 거의 폐사되다시피 했다가, 1973년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5년 범종각을 지었다. 1993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대모암은 대웅전, 범종각, 요사채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건물이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그려져 있고 외부의 벽화에는 화훼도, 심우도가(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것) 그려져 있다. 불벽에는 부처가 있다. 대웅전에는 일제강점기 말에 대모암으로 옮겨져 왔던 ‘대모암 목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래상이다. 이 불상은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자세를 하고 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 밖에도 사각형의 얼굴과, 단순화된 옷 주름 등으로 보아 17세기 활동했던 승려 조각가 희장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작법귀감, 보장록 등 학술 연구에 중요한 불교 관련 서적들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197-22
대둔사(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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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역사관광

대둔사(구미)

구미 대둔사는 건축기법와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석가여래좌상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그리고 3동의 요사가 있고,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대웅전과 대웅전 내부에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신라 눌지왕 30년(446)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에 몽고족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것을 충렬왕 때 재건하였고, 그 후로 최근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안쪽은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섬세하게 만들어 놓았으며 세부 재료를 받치는 부분을 색다른 수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옥관로 691-78
대곡리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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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대곡리암각화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을 말하는데, 주로 농사의 풍요와 생산의 의미를 지니는 주술행위의 결과물로 보인다. 대곡리암각화는 봉황대로 불리는 구릉의 정상 부근 암벽에 새긴 것으로, 호남지방에서 유일한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암각화는 두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크기는 1∼2m 내외이며, 상하 혹은 좌우 대칭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겼다. 마모가 심하여 자세하지는 않지만,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묘사한 듯하다. 이 암각화는 1991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전북지방의 선사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대광사(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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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역사관광

대광사(창원)

1930년에 창원특례시 진해구 화천동에 시중 포교당으로 출발하였다. 1950년대에는 주지 무상스님과 신도 이장술, 팽무진상 등이 여좌동으로 이전하여 법당, 칠성각, 요사채 등을 건립하였고, 1980년 마진터널이 개설되면서 주지 운성스님과 신도 허대근 등은 태백동으로 이전하여 법당, 회관, 요사채, 유치원 등을 건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광사는 어린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불교적 세계관을 형성하고, 불교적 경험을 통해 올바른 심성을 키우고자 대광 유치원을 1984년 8월에 설립하였다. 운성스님이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고, 설립 당시에는 2학급이었으며, 2007년에는 5학급으로 인가·증설되었다. 1997년부터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불교 대학을 운영하며, 2001년 조계종 포교원으로부터 정식 불교 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1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장복산 공원의 편백림과 연계하여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다.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진해대로 303 (태백동)
대각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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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대각서원

대각서원은 1610년(광해군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하항, 손천우, 김대명, 하응도, 이정, 유종지, 하수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되었다가 1947년 지방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각서원은 본당 건물과 동재, 서재, 그리고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고 본당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후 툇집 형식이며 정면의 기둥은 배흘림을 둔 두리기둥으로 단면의 크기도 크고 훤칠하다. 가구는 5량 구조로 장식이 잘되어 있다. 양 툇간에는 퇴보를 걸었으며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서원으로서 전체적인 배치가 무난하며 부재의 사용이나 적절한 비례의 적용, 그리고 동재의 여러 가지 기술적인 수법 등 조선 후기 건축의 여러 기법을 볼 수가 있어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서원 담장도 흙 돌담으로 축조기법이 돋보이며 일반 한옥의 담장보다 높이가 높다. 처음에는 각재 하항을 모시기 위한 대각사를 지었다가 그 뒤에 무송 손천우, 백암 김대명, 영무성 하응도, 모촌 이정, 조계 유종지, 송정 하수일 등 6분의 선현을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 7위를 배향하고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각길 104-21
대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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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보성군역사관광

대계서원

문강공 은봉 안방준(1573~1654)은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로서, 20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박광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도 격문을 띄워 근왕의 의기를 높이 세웠다. 대계서원은 효종 8년(1657) 지방유림의 공의로 안방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이 서원은 중앙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훼철과 복설이 거듭되었으니, 숙종 17년(1691)에 안방준사우에 대한 훼철이 결정되어 이듬해 능주의 도산사와 함께 훼철되었으며, 그 뒤 1695년(숙종 21)에 이르러 복설되었다. 숙종 30년(1704) ‘대계[大溪]’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정조 4년(1780) 화재로 전소된 것을 1784년에 중건하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보성읍 동암2길 100
당진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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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역사관광

당진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당진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이나 태종 7년(1407)에 지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교육 공간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삼문, 제기고 등이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 충청남도 당진시 교동2길 33-18
대각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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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역사관광

대각사(부산)

대각사는 부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사찰로써, 개항기 일본 정토 진종의 동원본사 부산별원으로 시작하였다. 동원본사 부산별원은 개항기 일본 불교의 조선 포교의 효시로서, 당시 부산에서 신도수가 가장 많았던 일본인 사찰이었다. 해방 후 동본원사 부산별원은 한국 정부에 귀속되었는데, 정부 관제국에서 귀속재산 처분을 할 때 이 사찰의 땅과 건물을 경매받아 경남 불교종무원으로 발족하였다가 창건주에 의해 새로이 한국 사찰로 창건한 것이 현재 대각사이다. 창건 이전의 유물은 범종과 석등만이 있을 뿐, 대웅전이나 진신사리탑은 후에 지어졌다. 현 대웅전은 중간기둥이 없는 특수한 건축공법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서 약 1천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건물이다.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중앙로 19 (신창동1가)
대구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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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역사관광

대구향교

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으로서,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기능과 학생을 교육하는 강학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였다. 1400년에 불타자 곧 재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어 1599년(선조 32) 현재의 달성공원 부근에 재건하였다. 1605년 교동으로 이건하여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932년 현 위치로 이건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문묘·삼문 등이 있으며, 향교 내에는 대구성(大邱城)의 축성 및 유래를 기록한 축성비(築城碑)와 수성비(修城碑), 경상도관찰사·판관·군수 등을 지냈던 사람들의 불망비(不忘碑)·송덕비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 112
대곡사(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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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역사관광

대곡사(의성)

대곡사는 비봉산(579m) 동쪽 자락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이다.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왕사인 지공선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대국사(大國寺)라 하였는데, 이는 지공이 중국 원(元)과 고려 두 나라를 다니면서 불법을 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 대곡사 탑 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을 볼 때 그 이전에 이미 창건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더군다나 고려 말의 이규보가 대곡사를 탐방하고 지은 시문 제목에 ‘대곡사’라 되어 있어 13세기 초중반에 이미 절이 있었고, 이름이 대곡사였음을 알 수 있다. 비봉산 일대에 본원을 비롯한 아홉 개의 암자를 지어 불교를 융성하게 하였으며, 또한 호국불교 정신으로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대찰이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범종루가 있다. 대웅전 앞에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다층석탑도 볼 수 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세종(1418~1450) 때 교종(敎宗)에 속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05년(선조 38) 탄우(坦祐)가 중창하면서 대웅전과 범종루·요사 등을 새로 지었다.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
당포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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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영시역사관광

당포성지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아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당포승첩이다. 당포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 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켰다.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7m, 폭 4.5m이며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지은 망루 터가 남아 있고, 성문 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밖으로 쌓은 작은 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당진면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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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역사관광

당진면천읍성

면천읍성은 당진시 면천읍 소재지에 남아있는 평지 읍성으로 당진, 서산, 태안 등과 더불어 옛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바닷길이 있었던 곳이다. 이처럼 중국과의 통상에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방상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해서 백제시대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취급되었다. 지금의 읍성이 세워진 것은 1439년(세종 21년)으로 조선 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성벽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았는데,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고 쌓았다. 현 성벽의 둘레는 1,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는 치성과 옹성의 길이를 합한 전체 길이는 1,564m 정도로 추정된다. 이 성은 조선시대 성을 쌓은 규정이 가장 잘 반영된 우수한 유적으로 동, 서, 남, 북의 사대문까지 갖춘 성이었다. 성 내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군자정, 레트로거리 등이 있고, 매년 봄에는 면천 진달래민속축제가 열린다. 면천읍성은 지방도 70호선, 609호선, 619호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당진영덕고속도로 면천IC가 가깝다. 주변에는 골정저수지, 면천향교, 고려개국공신복지겸장군유적지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달마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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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역사관광

달마사(서울)

한강, 그리고 강 건너 남산을 바라보는 서달산 중턱에 작은 사찰이 있다. 낮이면 흐르는 강물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고, 밤이면 작은 불빛을 발하는 남산의 정경을 바라볼 수 있는 열린 사찰이다. 서달산을 남산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맑은 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심 속에서 찌든 혼탁한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도심 속 전통사찰이다. 이른 아침 새벽예불의 소리와 함께 지역주민과 하나 되고, 하루라는 인고의 시간을 지는 해와 같이하는 그런 포근한 사찰이다. 한강을 바라보는 녹지 속의 열린 공간이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참된 수행의 정신이 깃든 곳, 또 작지만 마음으로 넓힌 지역주민의 공간이다.

⌖ 서울특별시 동작구 서달로 50-26 (흑석동)
단호사(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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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역사관광

단호사(충주)

충주 단호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말사로 조선 후기 숙종 때 중건한 사찰이다. 중건 당시 ‘약사’라 하였고, 1954년 단호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3칸의 맞배집인 대웅전과 약사전, 용왕전, 요사채 등이 있다. 약사전 내에는 1976년 보물로 지정된 철불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11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고려 시대 철불의 귀중한 유품이며, 지역적인 유파성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외에도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관세음보살좌상, 미륵불입상 등 다양한 문화재를 만나 볼 수 있다. 단호사에서는 매월 첫째와 셋째 일요일, 초하루와 보름 때에 정기 법회가 열리고 있다.

⌖ 충청북도 충주시 충원대로 201 단호사
달성(현풍)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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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달성(현풍)사직단

사직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을 가리키며, 두 신을 제사 지내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 사직단이다. 토지를 주관하는 사신과 오곡을 주관하는 직신에게 고을의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매년 중춘과 중추에 사직제를 지내고 나라의 큰일이나 가뭄이 있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현재의 사직단은 옛 현풍 사직단 터에 충혼탑이 세워져 원래 자리에 복원하지 못하고 현재의 자리에 1996년~1997년 2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이때의 사직단은 500㎡의 대지 위에 가로, 세로 각 5m, 높이 1m의 방형 단을 5m 거리를 두고 2기가 동서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사단은 서쪽에, 직단은 동쪽에 배치하여 북쪽을 제외한 3면에 계단을 쌓았다. 이후 1998년 한 개의 단으로 새롭게 복원하였고, 2010년 개축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사직단은 사면의 방형 담장 안에 남쪽으로 치우쳐 1기의 사직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담장의 각 중앙에는 홍살문이 있다. 사직단은 3단이며, 각 방향의 중앙에는 3단의 계단이 있는 형태이다. 현풍사직단은 달성군의 전통문화유산을 계승함과 동시에 후세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상리
달성 하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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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달성 하목정

달성 하목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이 1604년(선조 37)에 세운 것이다. ‘하목정’이라는 정호(亭號)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남인 이지영에게 직접 써 준 것이다. 이곳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평면형태가 독특한 정자형 별당 건축으로 공간구성과 세부기법 및 의장 등에는 많은 특색이 나타나고 있어 역사적, 건축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과 정면 1칸, 측면 4칸의 방들이 서로 붙어서 전체적으로 독특한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목정길 56-10
달성 현풍 석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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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달성 현풍 석빙고

현풍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어 있으며, 출입구가 개울을 등진 능선 쪽에 마련된 남향구조이다. 돌의 재질은 모두 화강암으로 외부에서 보면 고분처럼 보인다. 입구는 길쭉한 돌을 다듬어 사각의 문틀을 만든 후 외부공기를 막기 위해 돌로 뒷벽을 채웠다. 외부는 돌을 쌓고 점토로 다져서 흙을 쌓아 올렸다. 잘 다듬어진 돌로 벽과 천장을 쌓았는데 천장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네 개를 틀어 올리고 그 사이사이에 길고 큰 돌을 얹어 아치형을 이루게 하였다. 천장에는 통풍을 위한 환기구가 두 군데 설치되었고 빗물에 대비한 뚜껑이 있다. 바닥은 평평한 돌을 깔고 중앙에 배수구를 두었다. 당시에는 얼음창고가 마을마다 설치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작은 현풍고을에 이러한 석빙고가 만들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1982년 석빙고 주위의 보수작업 때 축조 년대를 알려주는 건성비(建城碑)가 발견됨으로써 1730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