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취향으로 찾기

오늘 갈 곳을 찾아보세요

지역과 관심 분야를 선택해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보세요.

경상남도역사관광

발견한 장소

공개 콘텐츠 85건

조건 초기화
거창 건계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건계정

거창 건계정은 거창 장씨 문중이 1905년에 세운 것으로, 문중의 시조인 평보 장종행이 고려 충렬왕 때 중국으로부터 귀화했는데, 그의 아들인 두민이 공민왕 때 홍건적들이 침입하여 개경까지 점령 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사들을 지휘하여 개경으로부터 홍건적을 몰아내어 국란의 위기를 극복하는 무훈을 세우자, 이에 대한 공로로 공민왕이 두민을 아림군으로 봉했다. 이에 그 후손들이 두민의 공을 기려서 세운 정자이다. 건계정 계곡은 역사, 지리, 군사상의 요충지로 자리하였으나 지금은 거창하면 건계정을 생각할 만큼 고풍스러운 정자와 맑은 물이 굽이도는 물길과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거창을 소재로 하는 글이나 문학 소재의 대상에서 으뜸이 되었던 곳이다.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거안로 1173-21
거창 갈천서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갈천서당

갈천서당은 조선 명종 때 6현신의 한 사람으로 광주 목사를 지낸 갈천 임훈이 벼슬을 그만둔 뒤,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아우 임운과 함께 1573년 건립한 서당이다. 그 후 1878년에 후손들이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임훈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광주 목사를 역임하였고 장례원 판결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거부하고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갈천서당의 건물은 강당과 대문으로 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홑처마이고 양측 면에 풍판을 달았다. 처마 밑에는 그 당시 사용하던 큰북의 외통이 걸려 있다. 대문은 맞배지붕 솟을대문이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 형제의 신도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임 씨 형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878년에 후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송계로 767-34
거창 동계종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동계종택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이 태어난 집으로, 후손들이 1820년에 다시 짓고 정온의 신위를 사당에 모시고 있는 곳이다. 고택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남쪽 지방임에도 추위가 심해 북방식인 겹집 형태로 지어졌고, 호서지방이 가까워 비가 잦아 비를 피하려 사랑채 누마루는 겹지붕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이는 고건축학적으로 특이한 것으로 눈썹지붕이라고도 한다. 사랑채는 꺾인 부분을 누마루로 꾸미고 눈썹지붕을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는 북부지방 가옥의 특징인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단은 낮고 툇마루를 높게 설치한 남부지방 고유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집의 학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양반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또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동1길 13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거제시역사관광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6·25 전쟁에서 사로잡은 북한군과 중국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설치된 거제도 포로수용소 부지에 건립된 역사유적공원이다. 최대 17만 3천여 명의 전쟁 포로를 수용하였고, 6·25 전쟁 당시 최대 규모의 포로수용소로 운영되었으며,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제네바협약에 의한 인류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역설적인 무대였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내에는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된 포로수용소 잔존 유적지가 위치해 있으며, 유적공원에는 다양한 소장품과 기록물, 영상 자료를 활용하여 전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여 전쟁 역사의 산교육장이자 다크 투어리즘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 경상남도 거제시 계룡로 61
가배량진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거제시역사관광

가배량진성

거제 가배량진성은 성종 21년(1490)에 쌓은 성으로서 조선시대 전기 서부 경남 해안을 방어하였던 경상우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였으며, 거제 수군 7진 중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한산도를 중앙에 두고 통영과 거제로 갈라지는 두 갈래 바닷길 중 거제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세종 7년(1425)부터 선조 24년(1601)까지 경상우수영 및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이용되어 역사적인 의미가 큰 곳이다. 선조 1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후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을 구축하고 이곳에는 기존보다 큰 규모로 연장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 거제의 경상우수영성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겼다가, 선조 24년(1601) 다시 거제에서 고성으로 옮겼으며, 3년 뒤 현재의 통영으로 옮겨졌다. 이때 고성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 ‘가배량진성’이라 불렀으며,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의 과정에서 진이 없어질 때까지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역할을 하였다. 성의 바깥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794m, 높이는 4m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46m이다.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의 흔적과 남쪽에는 조망할 수 있는 망대 터가 확인되었다.

⌖ 경상남도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
가야진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양산시역사관광

가야진사

가야진사는 나루터신[津神]을 모시고 있는 제당으로, 신라가 가야를 정벌할 때 왕래하던 나루터가 있던 곳에 자리하고 있다. 김해시 상동면과 양산시 원동면 경계의 낙동강 동쪽에 있다. 원래는 용당리의 비석골에 있었으나 1965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앞면 1칸 옆면 1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옆면에서 볼 때 지붕 선이 사람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맛배 지붕을 올린 목조건축물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제를 올릴 때 사용하는 제상이 있고, 그 위에 머리가 셋인 용을 그려 놓은 그림이 놓여 있다. 현재의 사당은 1406년에 세운 것으로 전하며, 옛 건축물로서 민속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들길 43-62
남해 금산 봉수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금산 봉수대

봉수(俸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俸]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고려 중기(12,3세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이후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 중에서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한 번 올리지만 [一炬 또는 一煙],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 번,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번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곳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毅宗, 1147~1170 재위)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烽燧路) 가운데서 동래(東萊)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 봉수로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이다. 이곳에서 점화된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四川), 진주(晉州)등을 거쳐 서울에 전달되었다. * 금산봉수대는 해발 681m인 금산에 자리 잡고 있고 둘레는 26m의 네모난 형태이며, 높이는 4.5m이다.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91
금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하동군역사관광

금정사

금정사는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 하동분원의 사찰이다. 1948년에 정우경이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15번지에 설립하였으며, 당시에는 금강사(金剛寺)라고 하였다. 6·25 전쟁을 겪고 난 뒤에 정우경이 이 사찰을 떠나자 여러 승려들이 주석하였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주지 없이 20년을 지냈다. 1970년에 김문수가 주지로 부임하여 현재 위치인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35번지로 이전하면서 금강사(金剛寺)를 금정사(金政寺)로 개칭하였다. 그때에 대웅전, 종각, 요사채를 건축하였다. 1999년 혜철(慧哲)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금정사(金政寺)를 금정사(金頂寺)로 개칭하고, 삼성각, 충혼전, 안심요 3층, 진신사리석탑과 화장실 등의 건물을 신축하였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 법회를 열고 있다. 1954년 금정사의 발원으로 6·25 전쟁 때 조국 수호를 위하여 전사한 하동군 출신의 군인 및 청년 기동 대원 334명의 얼을 추모하고 이들의 값진 희생을 민족 유산으로 보존하고자 영령탑을 건립했는데, 그 호국 영령들을 기리는 사업도 하고 있다. 관련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하동 금정사 산신탱(河東金頂寺山神幀)」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하동 금정사 칠성탱(河東金頂寺七星幀)」, 국가보훈처 현충 시설인 금정사 영령탑이 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금정길 113-1
금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금왕사

경남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에 위치한 금왕사는 기암절벽 가까이 이런 사찰을 지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또한, 일 년 내내 끊일 줄 모르고 나온다는 천년의 약수도 있다. 천년의 약수 위로 오르면 돌로 만들어진 동자승이 누워 있고, 금왕사 미륵전에서 참배가 가능하다.

⌖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보리암로 65-23
김해 봉황동 유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김해 봉황동 유적

봉황동 유적은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조개무덤으로, 1907년 우리나라 최초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던 회현리 패총과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를 합쳐 2001년 2월 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회현리 패총에서는 김해식 토기와 각종 철기, 골각기 등과 함께 중국의 화천이라는 동전이 출토되어 당시의 교역 상황을 나타내 주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불에 탄 쌀이 출토되어 쌀농사의 기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봉황대는 조선시대 김해 부사를 지낸 정현석이 언덕의 모양이 봉황의 날개를 편 모습과 같다 하여 대를 쌓고 봉황대라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 구릉 위에는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전설에 관련된 여의각, 황세바위 등이 남아있으며, 봉황대 서쪽에는 가야시대 토성과 대규모 창고형 건물터가 발견되었고, 가야시대 고상가옥, 주거지 등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봉황동 유적지의 주요 시설물에는 금관가야 기마무사상, 고상가옥(창고), 가야의 배, 망루, 황세바위, 여의각, 가야주거군, 패총 전시관 등 유적지가 있다.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63번길 50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고성군 하일면에 있는 학동마을은, 1670년경 전주최씨 가문에서 학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꿈속에서 보고, 날이 밝아 그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지형을 보고, 명당이라 여겨 입촌한 후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 전해진다. 마을 뒤편은 수태산 줄기가 있으며, 마을 앞에는 좌이산이 솟아 있는 소위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이며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흐르고 있어 전통 마을의 배산임수형 입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가옥은 상당 부분 새마을운동 당시 슬레이트 기와로 개량되었으나 문화재자료 ‘육영재’, ‘최씨고가’ 등 일부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 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학동마을의 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 두께 2~5㎝)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 후 쌓은 것으로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 있으며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담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석축을 쌓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수백 년을 거슬러 고성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황톳빛 돌담길을 따라 걷노라면 아련한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동돌담길 11-5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는 1810년에 이진악 선생이 지은 주택으로, 조부인 이지유의 호를 따서 동호재라 하였다. 동호마을의 안쪽에 완만한 경사지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안쪽 높은 곳에 안채 영역을 두고 낮은 곳에 사랑채 영역을 직렬로 배치하였다. 안채 영역은 서향한 안채가 있고, 우측 방앗간 채와 안채의 맞은편에는 곳간채를 튼[ㄷ] 자형으로 배치하고 있고, 안채의 좌측에는 별도의 텃밭을 두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정지, 툇마루가 딸린 안방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영역은 큰 사랑채와 중사랑채가 나란하게 남향하고 있으며, 사랑채 맞은편에는 대문채가 배치되어 있다. 큰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중앙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을 두고 좌우에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된 실을 배치해 평면에서 보면 중앙의 온돌방이 돌출된 것처럼 보인다. 좌측 온돌방은 위패를 봉안한 가묘 방이며, 우측 온돌방은 상례 시에 빈소 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1길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