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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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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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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회고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김정회고가

조선 개국공신 김사형의 후손으로 학자이며 예술가인 보정 김정회(1903∼1970)의 생가로 김정회의 고조 때부터 살던 곳이다. 고가가 위치한 도산마을은 안동김씨와 청도김씨의 세거지로서, 다른 곳에 비해 고가가 많이 남아 있는데, 김정회고가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가이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랑채, 사당, 곳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 6칸·옆면 3칸의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후대에 양쪽에 각각 1칸씩 덧붙였다. 안마당보다 높이 자리 잡고 있는 안채의 양식은 다른 집에 비하여 특이하다. 안채의 앞쪽에 위치한 사랑채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안채와 사랑채에 비해 훨씬 뒤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행랑채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이다. 안채의 양쪽으로 곳간채가 1동씩 있으며, 뒤로는 사당이 있다. 조선 후기에 지은 전형적인 상류계층의 가옥으로 현재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외부관람은 가능하며 내부관람 여부는 사전에 방문 가능 여부를 문의해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1길 16
귀신사(김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귀신사(김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귀신사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0가 중창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구순사로 불렸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부분적인 중수와 대대적인 중창을 거쳐 1934년에는 대적광전 등을 중수한 뒤 다시 귀신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귀신사는 원래 금산사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큰 절로 고려 말에는 쳐들어온 왜구들 300여 명이 주둔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쇠퇴하여 작고 소담한 사찰로 남았다. 귀신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대적광전과 삼층석탑과 부도, 석수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의 미를 나타내는 빼어난 작품이다. 부도는 청도원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는데 전성기에는 이 부도가 있는 곳까지가 절의 경내였음을 알 수 있다. 귀신산 석수는 독특한 양식으로 앉아 있는 석수의 등 위 중간에 남근 같은 석주가 당당하게 꽂혀 있다. 불교사상과 남근숭배사상이 어우러진 특이한 형태의 석조물로, 터를 누르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과, 백제왕실이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
구암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구암정

구암정은 순창 구미마을과 내월교 사이 섬진강 및 국도 21호선, 섬진강자전거길가에 세워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돈암 혹은 배암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서 있다. 이 바위는 인근 남원 출신의 조선 전기 학자 구암 양배(?~1500)가 그의 동생 양돈과 함께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양배는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그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양대 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조정을 등지고 동생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와 자연 속에 묻혀 세상을 잊고 살았다. 그 후 1901년에 양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 정자를 세운 것이 바로 지금의 구암정이다. 1990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인근에 위치한 구미마을은 남원 양씨의 집성촌으로 남원 양씨 종가 등이 있다. 그 외에는 주변에 용궐산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관곡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관곡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매봉 밑자락에 있는 관곡서원은 1820년(순조 20)에 지방 유림들이 최윤덕, 이형남, 이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58년 후손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가 있다.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관곡서원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서원 관계 자료가 희귀한 편이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관곡서원 인근에 덕재산(487.1m)의 옥녀봉, 매봉이 있어 서원을 둘러본 후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 좋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관기1길 32-7
고림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역사관광

고림사

고림사는 진안군 부귀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림사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원효 스님이 부귀산에서 수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원효 스님은 삼국통일의 대업이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원리대로 원만히 성취되기를 소망하여 부안의 변산, 진안의 부귀산 등 주로 편안할 안[安]자가 들어 있는 곳을 찾아 수도했는데, 그 자리가 곧 고림사 근처에 있는 좌선대라고 한다. 그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잘 전하지 않는데, 다만 고려 때는 절을 상림사 혹은 운림사로 불렀다고 한다. 고림사라는 이름은 절 주위에 수백 년 된 거목들이 가득 들어 차 있어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 1928년에 절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다가 1925년에 진안의 관공서 건물을 해체하면서 그 해체된 나무를 신도들이 짊어지고 메어 날라 법당을 지었다고 한다. 완전히 소실된 것을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지붕 1동으로 중건하였는데 관음전에 모셔져 있는 관음상은 화재 속에서 구해낸 유일한 유물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진안읍 상역로 174-96
고창오거리당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오거리당산

고창읍에 조성된 오거리 당산은 동·서·남·북·중앙의 5방위에 당산을 조성한 것으로 자연 입석과 조형 입석으로 세웠다. 고창 오거리 당산은 1803년 3월에 고창현 중심지 세 곳에 동시에 조성되었다. 처음에는 오거리가 아니라 삼거리 당산이었다. 삼거리는 상, 중, 하 세 곳을 가리킨 말인데 세 곳에 화표석주의 당산을 세운 것이다. 현재는 기존의 삼거리 당산과 천북동과 교촌리의 자연 마을 당산을 포함하여 오거리 당산이라 한다. 상거리, 중거리, 하거리 당산은 조형 입석으로 당산을 삼았으며, 천북동과 교촌리 당산 은 자연 입석을 당산으로 삼았다. 조형 입석 가운데 하거리 당산은 진서화표의 명문이 있고, 중앙 당산은 미륵 당산으로 불교적 요소가 강하다. 반면에 자연 입석을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의 당산 입석으로 삼은 것은 민간 신앙적 요소가 강하여 불교 신앙과 민간 신앙이 합쳐진 오거리 당산인 것이다. 오거리 당산은 화표를 당산 입석으로 삼은 유일한 당산이다. 정월 대보름날 줄다리기를 한 후 당산에 줄을 감아 놓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지리산 정령치에 연이은 고리봉 아래 개령암 터 뒤 절벽에 새긴 이 마애불상군은 크고 작은 12구의 불상으로 이루어진 규모가 큰 불상군이다. 울퉁불퉁한 자연 암벽이어서 조각 자체의 양각도 고르지 못하고 훼손도 심한 편이나 3구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거대한 불상은 4m나 되는데 조각 솜씨도 제일 뛰어나 본존불로 여겨진다. 얼굴은 돋을새김이지만 신체의 옷 주름은 선으로 처리를 하고 있어 일반적인 고려 마애불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또한 큼직한 얼굴과 형식화된 이목구비, 장대해진 체구와 간략해진 옷주름 등에서도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거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1∼2m의 작은 불상들 역시 조각 수법이 모두 같으며, 각 부분의 양식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서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규모가 큰 불상군은 희귀한 예로서 명문까지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마애불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