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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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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초기화
교하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파주시역사관광

교하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교하향교는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파주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관립학교이다. 파주시에는 파주향교, 교하향교, 적성향교 총 3곳의 향교가 있는데 그중 하나이다. 교하향교는 본래 조선 초 1407년(태종 7년)에 탄현면 갈현리에 창건되었는데, 1731년(영조 7) 파주 장릉의 능기로 정해져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968년 담당을 보수하고 1971년 대성전과 부속건물을 중수하였으며, 1973년에는 대성전의 담장과 기단을 보수하였다. 또 1981년에는 내삼문 안의 대성전 묘정을 넓히기 위해 명륜당을 옮겨 세웠으며, 1992년에는 교직사를 옮겨 세웠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이며, 대성전은 전면에 퇴칸을 둔 맞배집으로 제례 시 출입의 동선을 원활히 하고 그 방향성을 명확하게 해주기 위한 기능적 배려로 전퇴를 개방한 특징이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매월 음력 1일, 15일 분향과 1년에 2번 거행되는 춘추 석전 봉행을 시행한다. 금촌IC에서 차량으로 약 7분, 경의중앙선 금릉역에서 약 4분 소요된다. 인근에 파주 출판도시, 헤이리 예술마을, 임진각, 마장호수 등이 있다.

경기도 파주시 쇠재로 91
구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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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중구역사관광

구강서원

포은 정몽주와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으로 강학과 교화, 제향 등을 하며 조선시대 선비를 양성했다. 숙종 4년(1678)에 세웠으며 숙종 20년(1694)에 구강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약 200여 년 동안 강학과 향사를 봉행해 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철폐되었다. 훼철된 후 옛터는 주거지로 변하였고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지역 유림들이 서원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서원부지 800여 평을 매입하고 울산광역시에 기부채납해 복원했다. 현재는 한문교실, 청소년 인성 및 예절교육, 주부예절 및 교양강좌 등을 무료로 운영한다.

울산광역시 중구 서원11길 45 (반구동)
구고사 및 김완장군부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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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영암군역사관광

구고사 및 김완장군부조묘

김완(1577~1635)은 영암 출신의 조선 후기 무신으로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인물이다. 구고사는 김완 장군의 위훈을 기리는 사당으로 김완 장군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부조묘는 보물로 지정된 김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구고사는 김완 장군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인조 18년(1640)에 처음 창건되었다. 이후 문중 선조이자 고려 말 대제학인 김진문과 조카 김여준, 김여옥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 1889년 불에 탄 뒤 1946년 향내 유림의 발의로 중건되었고, 1979년과 1983년에 보수되었다. 부조묘는 국가에서 사당을 짓도록 허락하고 전답과 노비를 내려 후손들로 하여금 제사를 모시고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었다. 김완 장군 부조묘는 장군 사후 왕명으로 창건되었으며, 한때 소실된 것을 1979년에 복원되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서호면 화소길 20
구례 석주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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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구례 석주관성

노고단에서 왕시루봉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맥에 위치하며, 칠봉산 남쪽 봉우리 20m 아래에서부터 칠의사 아래 후면까지 이어져 있는 고려 시대 성곽이다. 삼한시대에 마한과 진한의 경계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군사상 요충지였고, 고려 때에는 남해에서 침입한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켜내기만 하면 전주에서 구례, 남원을 향해 넘어오는 왜적을 방어할 수 있는 호남의 전략적 요충지로, 고려 말 왜구가 횡행함에 따라 진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나, 조선이 개국하고 정국이 안정되어 감에 따라 진을 폐지하여 황폐화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도 방어사 곽영이 성을 쌓고 구례 현감인 이원춘에게 석주관 방어를 담당하게 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석주관에 고려 말 때처럼 만호진을 설치하여 왜구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활용되지 못하고 황폐해지고 현재에 이른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750m이며, 높이 50∼120㎝로 대부분은 무너졌다. 13세기와 16세기 성을 쌓는 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약 3분, 2.8㎞ 거리에 간전교를 지나 왼쪽으로 섬진강어류생태관이 있으며, 섬진강 대로를 따라 약 5.7㎞를 더 가면 운조루 고택을 방문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토지면 섬진강대로 4638-8
광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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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광양시역사관광

광양향교

태조 7년(1397)에 세운 광양향교는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5년(1613)에 광양현감과 지방 유림이 힘을 모아 대성전을 지으면서 점차적으로 건물을 지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완전히 없어진 것을 1966년에 출입문인 풍화루를 돌기둥으로 대신하여 세운 것을 시작으로 건물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풍화루·동재·서재 등이 있다. 앞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을 두고, 뒤쪽에 대성전 중심의 제사공간을 이루는 일반적인 배치형식과는 달리 자유롭게 배치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광양읍 향교길 67
구 인천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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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제물포구역사관광

구 인천우체국

인천광역시 항동에 있는 인천우체국은 일제강점기 우편 업무를 담당하던 건물이다. 인천우체국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12월 10일 건축됐다. 우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은 근대식 건물로, 당시 행정 관청 건물 중에서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총면적 1,787㎡, 약 540평으로 웅장한 건물이었다. 건립 당시의 명칭은 인천우편국이었으며, 해방 이후인 1949년 8월에 인천우체국으로 바뀌었다. 인천우체국의 전체적 구조는 벽돌조이지만 바닥은 콘크리트로 시공하였다. 외부 마감은 징두리(건물 안팎 둘레의 밑동 부분)에만 화강암을 2단으로 쌓고, 나머지 윗부분에는 모르타르로서 석조 모양을 표현하였다. 건축될 무렵 유행하던 절충주의 건축양식을 단순화해 지은 것도 특징이다. 입구 양쪽에 큰 기둥 형식의 탑부를 세우고, 그 사이에 주두(기둥 머리를 장식해 공포를 받치는 재료)가 없는 여러 개의 기둥을 받쳤다. 당시 행정 관청 건물은 윗부분에 돔 모양의 탑옥을 올려놓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돔 모양 탑옥을 생략하는 등 평면과 세부적 외양이 기본 형식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6·25전쟁 때 일부가 파손돼 슬래브 지붕을 슬레이트로 보수하는 등 1957년 복구를 마쳤다. (출처 : 인천투어)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제물량로 183
관훈동 민씨 가옥 (구 부마도위박영효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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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관훈동 민씨 가옥 (구 부마도위박영효가옥)

관훈동 30-1에 위치한 민씨 가옥은 조선 말기의 정치인이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민영휘 일가가 거주한 곳이다. 민영휘는 일제강점기 판서, 한일은행 은행장 등을 역임한 관료로 막대한 부를 누렸으며 1895년 안국동으로부터 교동으로 이주하면서 관훈동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일가를 거주하게 했다. 1936년 기준으로 총 6동의 목조와즙과 2층 양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1976년 가옥 중 일부가 멸실되고 안채 일부와 문간채 등 목조와즙 2동만 남아있다.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민영휘와 그 본처 대방마마 평산신씨와 입양한 장남 민형식 등은 경운동에, 첩인 해주마마 안유풍과 그 아들 민대식은 관훈동에 살았으며 그 자식들까지 경운동과 관훈동 일대에 한데 모여 살았다. 관훈동 30번지는 1970년대까지 민영휘의 자손들이 소유하고 있었다가 경매와 매매를 거친 끝에 1986년 경인미술관이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 경인미술관 소유 당시인 1995~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로 안채 일부와 문간채가 이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관응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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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관응사(김제)

관응사는 김제에서 전주로 가는 길에 있는 금천호수 인근의 대한불교 관음종 소속 사찰이다. 속칭 각시골이라 불리는 관응사 절터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첩첩산중으로 한 각시가 들어가 이를 기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 보니 현재의 절터에서 사라져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이곳의 관음보살에게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하며 이 관응사 터를 각시골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이러한 전설이 전해져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다. 1936년 조그만 암자로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미상이다. 1985년경 진성 정공진이 주지로 부임해 대웅전과 요사, 삼성각, 미륵불을 봉안하고 사찰의 면모를 일신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선비로 1354-42
괴산 송병일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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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송병일 고택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고택으로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이 잘 남아있는 곳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사당채 등이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ㄷ’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중간에 낮은 담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안채 앞에는 ‘一’ 자 형태로 곳간채가 길게 세워져 있다. 3칸 크기의 대문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어 바닥을 다진 후 건물을 세워 튼튼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안채는 작은 문을 거쳐 들어갈 수 있도록 담이 둘러져 있고 옆에서 보면 맞배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쪽에 위치해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또 광채는 일자형으로 곡식은 물론 각종 농기구를 보관하던 장소로 이용이 되었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가 주위로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마당은 깨끗하게 포장을 하여 방문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또 마당 한편에 뜰마루를 설치하여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잘 가꾼 잔디밭과 화초는 고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이 고택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다.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충청감사로 재직 시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우암 송시열의 종손들이 6대에 걸쳐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우암 송시열의 묘가 고택 바로 위에 있기도 하다. 현재는 충북 양로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화양계곡과 선유계곡, 공림사 등이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청천4길 17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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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본래 노천의 석단(石壇)에 모시어 불공을 드리고 있었던 것을 현재 법당을 지어 그 안에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다. 이 불상은 금박(金箔)을 칠하였으나 원형은 잘 남아있다. 머리에는 낮은 육계(肉?)가 있고 미간의 백호(白毫)와 이목구비가 정연하다. 상호(相好)는 살이 쪘으나 목에 돌린 삼도가 양 귀와 잘 어울리어 준엄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서 복부 앞으로 약간 올렸는데 손바닥에 어떤 물체가 놓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병을 올린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으로 보인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등뒤로 넘겨졌고, 왼쪽 가슴에서 내려진 옷의 주름은 무릎을 덮었는데 양쪽 발바닥이 그 위로 노출되어 있다. 각부의 수법이 둔중하며 금박이 두터워 더욱 둔한 감을 준다. 결가부좌한 좌고는 117cm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23
괴산 장담 충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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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장담 충신각

이 정문은 장담의 정려로 영조 5년(1729) 청안면 청룡리에 세운 것을 조천리로 이건한 것이다. 장담은 호는 수풍정, 본관은 인동으로 통례 장인계의 후손이다. 영조 4년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벼슬이 없는 처사로서 의병을 일으켜 난을 진압하다 순절하니 그의 동생 장환이 나머지 군사로 적을 토벌하여 복수하였다. 후에 이 사실이 주문되어 충신으로 정려 되고 분무원종훈 1등 공에 록선 되었으며, 정조조에 표충을 명하고 좌승지에 증직 되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며, 현판을 달고 보호책을 둘렀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청안읍내로 151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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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불신만 남아 있는 것을 불두를 찾고, 왼쪽 팔목의 보수를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신체에 비해서 큰 얼굴은 앞으로 숙여져 있으며 옷은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다. 손은 오른손 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끝이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꼽 앞에 놓은 모습이다.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얹어 놓은 앉은 자세는 그 예가 드문 편이다. 평판적이고 굴곡이 없는 네모진 상체, 목에 있는 3개의 주름, 둔감한 옷주름선 등에서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조선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보광산 폐사지에 있던 것을 아래쪽에 새로 지은 보광사 대웅전에 봉안하여 1935년부터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로시동2길 231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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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거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별다른 조각이 없다.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았던 둥근 받침돌이 2단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 윗면 가운데에 높이 솟아오른 부분을 두어 여기에 깃대를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기둥 안쪽면에는 아래위로 홈을 두어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조각솜씨가 세련되거나 정교하지 못하나 간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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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3.7m, 폭 4.1m, 두께 2.4m의 바위의 한쪽 면에 새긴 높이 3.5m의 마애불이다. 낮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이 좌상은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독특한 수인을 보이고 있다. 굴곡이 없는 사각형적인 신체, 몇 가닥의 간략한 옷주름선, 도식적인 꽃잎의 형태에서 기술의 한계가 엿보이지만 안정감 있는 단아한 체구, 소발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 삼도가 뚜렷한 목, 당당한 어깨와 무릎 등에서 앞 시대의 특징이 엿보이는 수준작으로 평가된다. 얼굴 부분은 대체로 양각이라기보다는 선각에 가까우며, 가슴에 군의대 매듭이 보인다. 이 좌상은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초기 이 지방에서 유행한 좌상양식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좌상을 새긴 바위의 아래쪽 일부가 깨어진 것 외에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관전3길 18
괴산 백운사 승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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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백운사 승탑군

괴산 백운사 승탑군은 모두 5기의 석조승탑을 모아놓은 것이다. 5기의 승탑 중 1955년에 건립한 백운사 2차 중창주인 송운제 스님의 승탑을 제외한 4기의 승탑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이 승탑들은 조선시대 석종형승탑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중 4기는 방형 혹은 가옥형의 특이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주목된다. 옥개석에는 기와골 등이 생략되는 등 후기적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합각마루의 용두장식과 상륜부의 보주 등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모두 화강암재로 이루어진 승탑들은 옛 절터에서 1943년경 현재의 위치인 사찰입구로 이전한 것이다. 백운사는 사역에서 출토되는 명문기와로 볼 때 고려시대 대흥사였으며 조선 영조 연간(1725-1776)에 폐사된 후 1930년대 초 하장우 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994년 이후 금당, 관음전, 요사채 등 상당한 규모의 불사가 진행 중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사리로소매2길 125-146
괴산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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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동헌

괴산동헌은 조선초기에 창건되어 그 뒤에 여러 번 중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시대 이후 관청건물로 쓰이면서 고쳐져 그 원형을 잃었다. 최근까지도 괴산엽연초생산조합의 관사로 쓰였으나 1996년 보수할 때 동헌건물로 복원되었다. 현재 괴산읍 서부리에 있는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된 8 칸집이며, 구조는 5량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의 건물지반이 주위의 지면보다 50cm 내외의 깊이로 낮아져 있는데 건물신축 당시보다 주위의 지면이 상당 부분 상승했음을 알 수 있으며, 내아 등 다른 건축물은 모두 남아있지 않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읍내로2길 65-20
구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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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역사관광

구고서원

구고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이다. 서한정(1407~1490)을 제향 한 서원으로, 조선 후기 영주 지역 달성서씨 가문의 향촌 사회활동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구고서원은 서한정을 추모하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1786년(정조 10) 건립한 구고리사에서 출발한다. 구고리사는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철폐되었으나 이후 구고서당으로 현판을 바꿔 달고 운영하였다. 원래는 영주군 단산면 구구리에 건립되었으나, 관리가 어렵고 퇴락이 심해져 1974년 종택이 있는 영주군 단산면 사천리 새내마을로 이건 하고, 구고서원으로 승격시켰다. 구고서원에는 상절사를 비롯하여 전사청, 강당, 책실 등이 남아 있다. 상절사는 서한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구고서원은 팔작지붕 건물로, 평면구성은 전면에 툇간을 두는 형태이다. 강당은 팔작지붕 건물로 평면구성은 중앙에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다. 전사청은 현재 향사나 향사 전 당회를 개최할 때 모임 장소로 활용된다. 현대식 시멘트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덮었다. 책실은 목판을 보관하는 곳으로 창고형 건물이다. 책실에 있던 서적과 책판은 현재 소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단산로121번길 27-8
과천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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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시역사관광

과천향교

과천향교는 1398년에 과천현에 설립되었다. 그 후 터가 좋지 않아 인재가 나지 않는다는 풍수설을 믿은 유림들에 의견을 따라 169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배치하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두었다. 앞에는 학문하는 공간, 뒤에는 제사하는 공간을 두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人(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중앙부 3칸은 마루를 깔아 강의실로 사용하고, 동편에는 온돌방, 서편에는 마루를 깔아 방을 만들었다. 이것은 교수(敎授)를 위한 방을 마련하는 전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외삼문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솟을대문 형식으로 1974년에 신축되었고, 외삼문 앞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경기도 과천시 자하동길 18 (중앙동)
관음사(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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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곡성군역사관광

관음사(곡성)

곡성에 위치한 관음사는 선세 마을에서 계곡을 타고 더 올라가면 접할 수 있다. 관음사는 백제 분서왕 4년(301년)에 성덕보살이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벌교에서 금동 관세음보살상을 모셔와 봉안하여 창건한 남한 제일의 백제 고찰이며 내륙 유일의 관음성지로서 그 가치가 크다. 6·25 당시 공비들이 오래도록 이곳에 남아 관음사를 기지로 삼자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사찰에 불을 지르게 됐고, 그로 인해 국보로 지정되어 내려오던 고려조 건물 원통전이 타고 그 안에 보존된 국보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불에 타 머리 부분만 남아 있다. 관음사의 유래는 불심과 효심이 깊은 원홍장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이 원홍장이 효녀심청의 실존인물이다. 고대소설 심청전의 원류로 추정되는 관음사사적기(원홍장 설화)가 순천송광사에 보관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오산면 성덕관음길 453
광흥사(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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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역사관광

광흥사(안동)

광흥사는 신라 신문왕(681~691)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조선 전기에는 불경 간행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1573년에 제작된 광흥사 동종과 17~18세기에 작성된 사찰 소장 문서 및 『광흥사중건사적(廣興寺重建事蹟)』, 『야운대선사문집(野雲大禪師文集)』, 『함홍당집(涵弘堂集)』, 『 광흥사응진전추원록서(光興寺應眞殿追遠錄序) 』등 사찰에 대한 기록이 잘 남아 있는 안동지역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원래 광흥사는 안동에서 가장 웅장하고 큰 사찰 중 하나였으나 1964년 큰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고, 1954년에는 극락전, 1962년에는 학서루와 대방이 퇴락하여 무너져 현재는 부속전각이었던 응진전에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있다. 안동 광흥사 응진전은 2025년 11월 13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또한 응진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여래 오존불과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광흥사 일주문 뒤에 있는 400년 된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안동 단풍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흥사길 105
괴시리 전통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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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역사관광

괴시리 전통마을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800m쯤 가면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 가옥들로 둘러싸인 고색창연한 마을 괴시리 마을이 있다. 원래 이름은 호지촌으로 목은 이색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자기 고향이 중국의 괴시와 비슷하다고 하여 괴시로 부르면서 명칭이 굳어졌지만, 호지골, 호지마을, 호지촌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괴시리 전통 마을은 영양 남씨 집성촌으로 400여 년간 세거를 누리며 살고 있는 팔자 형국의 마을이며 마을 앞에는 영해평야가 광활하게 전개되어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고택들은 모두 2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들로, ㅁ자형 구조로 뜰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사랑채 뒤에 안채를 숨겨 안팎을 완전히 분리하는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가옥 가운데 괴정, 영해 구계댁, 영해 주곡댁, 물소와서당 등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4건과 문화재 자료 12건, 30여 채의 전통가옥과 마을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낮은 담장들로 이어진 고택들 사이를 거닐면 잘 가꾸어진 정원과 고택과 현대의 조화로운 생활 모습을 볼 수 있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한옥 스테이도 있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호지마을1길 16-1
광덕사(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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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광덕사(천안)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광덕산 동남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기·충청지방에서는 가장 큰 절이었으나,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이 많이 되었다. 이곳에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3층 석탑이 남아 있으며, 팔각 형태의 지붕을 삽입하여 건축양식이 특이한, 새로 지은 종각과 대웅전, 천불전이 있다. 또한 대웅전 입구에 있는 수령 400여 년의 높이 20여 미터 호두나무도 볼만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광덕사는 계절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며, 천안은 호두과자를 만드는 호두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사길 26
관덕정의 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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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남구역사관광

관덕정의 각궁

정신과 신체를 동시에 건강하게 해주는, 관덕정의 각궁 궁술은 무사뿐만이 아니라 선비들도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 요건이었다. 이러한 활이 요즘에는 생존이나 방비 기능은 완전히 상실하여 스포츠와 취미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도 스포츠와 취미로서 활의 명맥을 이어주는 곳이 있는데, 사직공원에 있는 활터 관덕정이 그것이다. 관덕정의 사범이자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활을 만들고 있는 권태은 씨는 호라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경북 예천이 고향으로 3대째 활을 만들고 있는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자리를 잡은 것은 23년 전이다. 경상도에서 활을 만들면 팔러 나가는 곳이 대부분 전라도이므로 아예 옮겨와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권 씨의 이야기다. 옛날에는 활의 재료와 쓰임새에 따라 무척 다양했지만 요즘에는 각궁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해 주고 있다. 전통이 실려있는 각궁이란 후궁·장궁(長弓)이라고도 하는데 각궁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크게 2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전쟁이나 사냥에 쓰인 것은 궁간상(弓幹桑)·뿔·힘줄·아교·실·칠 등 6가지로 만들고, 운동이나 오락으로 쓰인 것은 궁간상·참나무·대·벚나무·뿔·힘줄·아교 등 7가지로 만들었다. 강(强)·중(中)·연(軟)의 구별이 있어서, 남녀 누구나 자신의 힘에 맞는 것을 쓸 수 있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사직길 49
광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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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역사관광

광풍정

광풍정은 1630년대에 장흥효(1564∼1633) 선생이 지은 정자로 300여 문인이 학문을 익히던 곳이다. 선생은 일찍부터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여 영남학파 발전과 후배양성에 힘썼다. 현재 정자의 모습은 헌종 4년(1838)에 이 지역의 유림들이 고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광풍정은 대각선으로 대칭된 공간 배치를 하여 특이한 평면구조를 이루며, 지형적인 환경 요인뿐 아니라 기후 요인까지 적절히 받아들인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2885-23
관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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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관룡사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태종 원년(1401)에 대웅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며, 광해군 9년(1617)에 다시 짓고, 영조 25년(1749)에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관룡사 내에는 대웅전,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약사전(이상 보물), 관룡사 약사전 3층석탑(유형문화재), 부도 등의 많은 불교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1
관촉사(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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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관촉사(논산)

관촉사(논산)은 논산 시내 남부 반야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논산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관촉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으뜸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높이 18m의 석불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표현되곤 한다. 은진미륵 앞에 선 석등과 오층석탑, 석문 등도 귀중한 유물이다. 불경을 넣어둔 윤장대의 축을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관촉사에 있는 유물 중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보, 석등은 보물, 석문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촉사 앞마당에 서면 풍요로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광주 조선백자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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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역사관광

광주 조선백자 요지

광주 조선백자 요지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조선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 1985년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6년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 발굴된 곳으로 ‘번천리 5호 가마’로도 불린다. 조선 세조 13년인 1467년에 왕의 명으로 처음 만들어져 이후 약 50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백자 가마터이다. 이곳에서는 1400년대 중반부터 조선백자 중 가장 우수한 백자를 구워냈으며, 382,738㎡에 이르는 면적에 300여 개의 가마터가 남아있으며 이 가운데 68개소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크기의 백자 요지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 일대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질 좋은 백자를 만들어내던 중심지였기에 조선 도자사 연구에 기반이 되는 지역으로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가마터와 공방 터 외에 도자기와 관련된 전시품과 가마 발굴부터 이곳에서 만들어졌던 도자기 종류와 정보, 유물, 출토품 등을 볼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해공로 91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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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동학농민혁명은 한국근대사에서 전국에 걸쳐 사회개혁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낸 역사적인 사건이다. 고창 무장기포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운동이기도 한 동학혁명의 시발점으로 의미가 매우 큰 유적지이다. 고창군에서 대산면으로 가는 국도 22호선 왼쪽 구수마을 일대에 위치하여 있다. 참고로, 무장은 지명이며 기포지는 동학농민혁명 포고문을 선포한 집결지를 의미한다. 동학농민혁명의 참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곳에는 동학농민혁명의 훈련장으로 사용된 터와 [갑오동학농민군 고창주 의장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갑오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 총대장, 김개남 총관령과 손화중 총관령 세 지도자와 동학농민혁명 당시 고창군으로 통합되기 이전인 고창현, 무장현, 홍덕현을 의미하는 늘 푸른 소나무 세 그루를 상징적으로 식재해 놓았다. 기존 기포지에 설치되어 있었던 동학농민혁명 기념탑과 조형물들은 고창동학농민혁명 성지화사업 진행으로 (구)신황초등학교에 옮겨 놓았으므로 함께 연계해서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고산 윤선도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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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고산 윤선도 유적지

조선조의 문신(文臣)이자, 국문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고산 윤선도(1587-1671) 선생의 유적지로 사랑채인 녹우당이 있다. 600년 전통을 이어온 해남 윤씨 어초은파의 종가 고택인 녹우당은 덕음산을 뒤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 중의 하나로도 알려진 곳이다. 현재 고산유적지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는 은행나무와 비자림, 사랑채인 녹우당, 안채, 행랑채, 헛간, 안사당, 고산사당, 어초은사당 ,추원당, 고산유물전시관등이 있어 조선시대 양반가 중 가장 많은 유물 (5,000여 점)을 보관해 온 집안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계백장군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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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계백장군 유적지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 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허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다.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반 이상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부적면 사람들이 지석[支石]을 안치하고 내광 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지름 15.15m, 높이 6.5m로 복묘하였다. 1976년 5월 19일에는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전 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라고 쓰여 있다. 계백(階伯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311-54
고성사(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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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고성사(강진)

고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에 1211년(고려 희종 7)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스님이 인근에 있는 만덕산 백련사(白蓮寺)를 중창할 때 함께 지은 말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1799년(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에는 고성암(高聲庵)이라 되어 있다. 특히 1805년(순조 5) 가을 강진군에 귀양 온 정약용(丁若鏞)이 머물며 혜장(惠藏)선사와 교우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5년 다산정약용은 주역 연구 자료가 담긴 경함을 고성사(高聲寺)로 옮겼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요사가 남아 있다. 이 중 대웅전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후불탱화로는 영산회상도와 지장탱화, 감로탱화, 신중탱화가 있다. 지장탱화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33년 제작된 것이다. 칠성각에는 4점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고성사 목조삼존불상중에 한 분은 십여 년 전, 일본으로 팔려갈 뻔한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고성길 260
고석사(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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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역사관광

고석사(포항)

포항시 남구 장기면 묘봉산에 있는 고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7년(638) 어느 날 경주에 있는 궁궐에 동쪽으로부터 세 줄기의 서광이 비쳐 그 빛이 연 3일간 계속되었다. 선덕여왕의 명으로 혜능 국사가 서광이 발하는 곳을 찾아가니 한 바위에서 서기가 발하는지라 그 바위에 부처님을 새기고 절을 지었다. 그리고 오래된 바위에서 서광이 발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고석사라 칭하고, 뒷산은 기암괴석이 동해를 바라보며 솟아있어 망해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미상이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보광전은 주심포집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이며, 안에는 자연석을 깎아 조각한 높이 281cm의 석조여래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로 526
계원사(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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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역사관광

계원사(양산)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소속 사찰인 계원사는 사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구전에 따르면 가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가 1924년에 중건된 것으로 파악된다. 사찰의 유래와 관련하여 옛날부터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계원사에서 양산시가지를 향해 서서 왼쪽을 바라다보면 가까운 능선 끝에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의 이름은 닭바위라고 한다. 옛날에 계원사 아래 삼동리 마을사람들이 새벽이면 닭바위 위에서 나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새벽을 열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그 닭들이 물을 마셨다는 닭우물도 있다. 계원사 대웅전은 낮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에는 창호문을 달았으며, 중앙 어칸에는 3분합문, 좌·우 협칸에는 2분합문을 달았다. 측면에는 한 짝의 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나머지는 벽체로 처리하였다. 중앙 어칸과 협칸은 모두 격자 문양의 살창이다. 기둥머리에 결구된 창방 위에는 2익공의 비교적 간결한 공포를 마련하여 지붕의 하중을 받도록 하였다. 2003년에 요사채 옆의 절개지 작업 도중 신라시대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출토된 7점의 완형 토기들은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중앙우회로 66-64 (중부동)
계승사(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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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계승사(고성)

태고의 신비로움과 암벽의 경이한 모습을 품고 있는 공룡의 나라 고성 금태산 기슭에 자리한 계승사는 시간의 흔적만큼이나 계승사 바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억 년 전 이곳이 공룡들의 땅이라고 증명하듯 초대형 공룡 발자국을 남겨두었다. 또 거대 암반 위에는 파도가 밀려가면서 모래사장에 만들어내듯 한 물결무늬 화석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승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기암괴석은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는가 하면, 태고의 빗방울이 남긴 자국까지, 그야말로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품이 따로 없다. 용두봉에서 발원하여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로 흐르고 있는 석간수는 그 옛날 매일 부처님의 공양미로 올릴 석 되 두 홉의 공양미가 쏟아졌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맑고 청정하다. 금태산 계승사에서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삼남도를 내려왔다가 이 절에서 수행하며 조선 창건의 꿈을 키웠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자신의 수행한 산의 이름에 ‘금’ 자를 붙여 하명했는데, 바로 고성의 금태산(金太山)과 남해의 금산(錦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조용히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신라 천 년 고찰 계승사는 천연 자연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그 호젓함을 더해주고 있다. 번잡한 시가지를 벗어나 조용한 여유를 찾고 싶다면 바위 위 계승사 법당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 소리와 풍경소리가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 대법3길 236
경흥사(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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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산시역사관광

경흥사(경산)

경산 동학산에 위치한 경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59년 혜공이 창건하였으나, 이후 조선 초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1592년 임진왜란이 났을 때 유정이 머물렀다고 하며,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에 탔다고 한다. 그 뒤 계룡산 갑사에 있던 연규가 불상을 조성하여 중창하였고, 1897년 김사숙이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과 칠성각, 산신각, 승당, 요사 등이나 절터의 유적들을 보면 한때는 매우 큰 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말까지만 해도 학승만 수십 명이 머물렀다고도 한다. 경흥사 내에는 보물 제1750호인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제555호인 수미단 부재가 있다. 수미단이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이라 하는 상상의 산인 수미산을 본떠 만든 불상을 모신 좌대를 말한다.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모골길 196-55
공산성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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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산성연지

공산성연지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연못터다. 1982년 12월 3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영은사 앞에 있는 연못터에 단을 둔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다. 백제시대부터 계속하여 이용되어 왔음을 시사하고 있는 이 연지는 산성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백제문화를 둘러보기 좋은 곳으로 공주 IC에서 가깝고, 주변에 금강신관공원과 미르섬이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