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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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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3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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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사부도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명주사부도군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명주사에 마련된 이 부도밭에는 모두 12기의 부도가 자리하고 있으며, 4개의 비석도 함께 남아있다. 12기의 부도 중에서 7기는 3단을 이루는 기단 위로 탑몸돌 및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사각의 바닥돌과 둥근 탑몸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나머지 5기는 받침돌 위로 종 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큼지막한 머리장식을 두었다. 4기의 비는 낮은 사각 받침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갖춘 구조이다. 원래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모두 모아 보존하고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길 93-229
명주사(양양)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명주사(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만월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고려 목종 12년(1009), 혜명대사와 대주대사가 오대산 동쪽에 있는 만월산에 터를 잡고 창건한 절이다. 두 대사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명주사’라 이름 지었다. 창건 당시에 비로자나불을 모셨다는 점에서 화엄종 계통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화재로 인해 절의 당우를 여러 번 중건하였고, 1910년대에는 건물이 총 15동에 이르는 대가람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방치되었고 오늘의 모습은 1979년에 중수한 것이다. 지금의 명주사는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가 남아 있는 아담한 규모의 절이다. 문화재로는 양양명주사동종(강원도 유형문화유산)과 양양명주사부도군(강원도 문화유산자료)이 있다. 높이 83㎝의 동종은 조선 숙종 30년(1704)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범종의 모습을 띤다. 절 입구의 부도군은 사찰의 기나긴 역사를 보여준다. 부도밭에는 12기의 부도와 함께 4기의 비석이 남아 있는데,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한데 모아 보존하고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길 93-229
만경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역사관광

만경대

동해 시청에서 동쪽으로 1㎞쯤 떨어진 동해안에 있는 만경대는 삼척 김 씨 김훈이 만든 정자이며, 그동안 풍파로 폐허가 된 것을 60년 전에 삼척 김 씨들이 다시 세웠다. 정자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면 망망대해가 파도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공의 자는 원충, 호는 신당이며 신당 공 훈은 성품이 영매하여 청렴하고 곧은 지조로 관리로 일하다가 1613년(광해군 5년)에 향리에 돌아와 동 회리(신당촌)에 살면서 만경대를 창건하고 풍광을 즐기면서 갈매기를 벗 삼아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동쪽은 끝없는 동해바다이고 북쪽은 긴 해변 푸른 소나무가 10리가량 펼쳐지며 서쪽으로는 장엄한 두타산 경관이 뒤뜰과 함께 눈앞에 펼쳐지고 높은 벼랑 아래 전천강이 유유히 동해로 흐르니, 만경대는 삼척의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어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660년(현종 원년) 문신이자 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주변 경관에 감탄하여 만경이라 하였는데 그 후부터 만경대라 불렀다 한다. 1786년(정조 20) 부사 유한 전이 시를 읊어 현판으로 남겼고 1872년(고종 9) 중수하였을 때 공조판서 김원식이 상량문을 짓고 한성부윤 이남식이 해상 명구라는 현판을 남겼다.

⌖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공단12로 77 (구호동)
등광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역사관광

등광사

태백산과 함백산을 잇는 등산로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화방재 바로 근처이기도 하다. 등광사 근처에는 등산으로 유명한 함백산, 태백산, 장산이 있다.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그러나 함백산과 태백산이 대표적인 겨울철 산행지인 만큼 날을 잡고 등산 코스로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나 함백산의 설경은 태백 8경에 해당하며 우리나라에서 신성시되는 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등광사 말고도 곳곳에 많은 절들이 있다. (출처 : 태백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문곡소도동 산50
동해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역사관광

동해향교

1980년 명주군의 묵호리와 삼척군의 북평리를 병합하면서 동해시가 발족되고 이에 따라 두 지방에 각기 편입되어 있던 유림들이 1990년에 동해 유림을 결성하게 되었다. 동해향교는 사도 창달과 지방 문화발전을 위한 구심점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과 동해 유림의 독자적인 진로를 모색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동해향교는 전국 234개 향교 중 1994년에 가장 마지막으로 창건된 신생 향교로서, 전학후묘에 39위를 봉안한 대성전과 명륜당, 만리장성 같은 담장에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오죽을 무성하게 가꿔 교궁의 구조와 규모가 전통적임과 동시에 현대적 이도록 배합되어 있다. 기관단체와 열정 있는 유림들이 향교 설립에 뜻을 모아 1993년 9월 11일 동해향교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창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1994년 2월 28일 성균관장의 동해향교 설립 승인과 1995년 6월 29일 성균관장의 개교 인가를 받아 5년 공사 끝에 1999년 7월 9일 동해향교를 창건하였다. 2006년 인의예지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동해유교대학을 설립하여 유학, 의례, 경전, 시책, 건강 등 연간 20~40주의 질 높은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문화관광체육부에서 2006~2007년 전국 시범향교로 지정받는 최초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승지로 84-3
동명동성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역사관광

동명동성당

강원도 속초시 동명동에 있는 춘천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이다. 속초 터미널 인근에 위치하였다. 동명동 성당의 전신인 속초성당은 한국전쟁 중에 지어진 유일한 성당이다. 미사 때마다 옥수수가루나 우유, 의약품 등을 나눠주었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많은 피난민이 성당에 와 신도가 되었다. 동명동 성당은 해맞이 장소로도 유명하다. 성당 앞마당에서 아름다운 속초 앞바다와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과 주변 환경이 어우러져 관광하기 좋은 곳이다.

⌖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영랑로7길 10-5
동명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동명서원

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1628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인벽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충현사를 설립해 위패를 모시고 동명서원이라 하였다. 양렬공 조인벽은 태조 이성계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불사이군(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의 의리를 지키며 양양에서 은거하며 유생들을 교육했던 사람이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전란으로 전소되어 1787년 경상북도 봉화로 옮겨서 복원하였다. 그 후로도 철폐와 복원을 반복하다 1974년부터 서원 복원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어 복원을 추진, 1982년에 완공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충현사, 6칸의 재실, 신문, 동·서 협문 등이 있으며 사우인 충현사에는 조인벽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재실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춘향제를 올리고 있으며 서원 입구에서는 붉은색의 홍살 문과 함께 양렬공 조인벽의 신도비를 볼 수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서원길 44-9
도계역 급수탑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역사관광

도계역 급수탑

삼척시 도계역 급수탑은 도계역 내에 있는 옛 증기기관차 급수시설이다. 1940년 설치된 급수탑으로 원주역 급수탑과 함께 당시의 전형적인 급수탑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물탱크 용량은 26t, 바닥 면적은 16㎡, 하부 둘레는 14.2m이다. 높이는 8m로 다른 급수탑에 비해 낮은 편인데 이는 철로 면보다 4m 높은 곳에 설치하여 적정 수압을 얻어낼 수 있도록 높이를 조절한 것으로 지형을 고려하여 급수탑의 높이를 조절한 독특한 사례이다. 도계역 급수탑은 물탱크를 받치고 있는 하부와 물탱크 시설인 상부로 나뉜다. 하부는 급배수를 하기 위한 기계실로 바닥은 원형이고 기계실 내부 천정은 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하부의 기계실 출입구는 아치형 문틀로 이루어져 있다. 상부는 물탱크 시설로 돔 형식으로 4개의 반원형 도머 창문을 설치하여 환기구로 이용하고 있다. 2003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등록되었다. (출처 : 삼척문화관광 홈페이지)

⌖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전두남1길 33-20
대성산지구 전적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역사관광

대성산지구 전적비

대성산지구전투전적비는 6·25 전쟁 중 대성산지구 전투에서 활약한 장병들의 전공을 기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 이 비는 1983년 10월 1일 화천군에 위치한 육군 제8305부대에서 건립했으며, 현재는 보병 제15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성산지구 전투는 1951년 6월 9일 국군 제2사단 제2·3대대가 1041 고지 일대의 중공군 병력을 섬멸하기 위해 벌인 전투였다. 국군은 선제공격을 통해 1041 고지, 신월동, 865 고지를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국군의 용맹함과 전술적 성과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산1-1
노동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역사관광

노동서원

노동서원(魯東書院)은 우리나라 사학의 원조인 최충(崔冲)의 영정과 위패, 그리고 그의 아들인 최유선(崔惟善)을 봉안하고 있다. 최충의 12대 손인 최변이 이곳에 낙향하여 자손들이 번창하자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당을 지었다가 후에 노동서원이라 개칭되었다. 서원에 봉안된 두 영정은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노동서원은 유교적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한 행사의 장으로도 쓰이며 특히 인근 초·중·고 학생들의 유적순례지로서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본 서원은 원래 홍천군 북방면 노일리에 있던 것을 수호(守護)의 어려움으로 인 하여 1932년 5월에 이곳으로 옮겼으며 6·25 동란에 소실된 동재와 서재 일부를 개축하고 수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또한 정례행사인 제향을 유림행사로서 받들며 연 1회 봉제사를 올린다.

⌖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서면 팔봉산로 1198-2
금란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역사관광

금란정

동해시 삼화동에 위치한 ‘금란정’은 무릉계곡 매표소 출발점을 지나자마자 우측에서 보이는 정자이다. 둥근 화강석 초석 위에 목조 원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로,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양식의 건축물이다. 주변 산새와 함께 무릉계곡에서 흐르는 소리와 함께 정자에 여유 있게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도심에서 벗어난 자연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삼화동
낙산사 의상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낙산사 의상대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바닷가 절벽 위에 자리한 정자다. 의상대의 ‘대’란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집을 말한다.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와 해안 절경이 빼어나 양양 8경에 이름을 올렸고, 낙산사에서 반드시 들려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소개한 관동팔경(강원도 영동의 여덟 군데 명승지) 중 하나로, 동해안 일출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이라는 이름으로 명승에 지정되어 있다. 낙산사 의상대는 의상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25년에 지은 정자다. 의상대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낙산사를 창건한 고승으로, 절 곳곳에 그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지을 때 지금 의상대가 있는 자리에서 산세를 살피고 좌선 수행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의 의상대는 1995년에 육각정으로 복원된 모습이다.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극락암(강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역사관광

극락암(강원)

극락암은 간성 대대리 검문소에서 진부령 방향으로 약 2키로 정도가면 우측에 이정표가 있다. 이 이정표에서 마을 안길을 통하여 산모퉁이 숲길을 지나면 어머니 품속을 연상케하는 아담하고 정겨운 사찰이 고즈넉이 노송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 극락암은 건봉사에서 서북쪽으로 2키로 지점에 있었으며,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였다. 945년 묘적동에 창건하였으며 1878년 산불로 인해 건봉사와 함께 소실되었으나 다음 해에 증건하였다. 일제때까지 산신각 1칸을 포함하여 총49칸으로 건봉사와 산내암자 5개중 가장 큰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5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함께 생활하던 수행처이자 봉명학교에 다니는 멀리서 유학온 여학생들의 기숙사로도 사용했다. 예전 그곳은 현재 민통선 내라서 출입이 불가능하고 건봉사 대웅전뒤 서북쪽 능선넘어 1키로미터 지점에 터만 남아있다. 예전엔 건봉사에서 암자까지 우마차가 다닐 정도 길이나 있었다. 해방 후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정상적인 종교 활동이 불가능하자 극락암 비구니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극락암에 살았던 비구니 법선스님이 1956년 간성면 광산3리에 극락암을 신축하였다가 1962년 현재의 간성읍 교동리 280번지 함박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의 극락암이 되었다. (출처 : 고성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교동2길 26 대한불교조계종극락암
김택준가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김택준가옥

김택준가옥은 야산을 뒤로하고 있는 이 집은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집을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약 200년 정도 되었다고 하며, 현재 경주 김 씨의 후손이 살고 있다. 전체적으로 H자 모양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겹집으로, 안채와 사랑채·부속건물로 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고, 부속채는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안채는 6개의 방이 겹쳐서 배치되었고, 그 오른쪽으로 샛방을 만들어 사랑채와 연결하고 있다. 사랑채 2칸은 외부에 툇마루를 놓아 연결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안채의 왼쪽에는 부엌이 있고, 그 앞쪽으로 곳간과 외양간을 덧붙였다. 부엌과 덧붙어 있는 방은 사당으로,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마당의 왼쪽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우물이 남아있고, 뒤쪽에는 야산을 파고 돌로 벽을 만든 약 0.5평 정도의 냉장굴이 있다. 마당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남녀가 따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출처 : 국가유산청)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창리길 4
김성래 가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김성래 가옥

김해 김씨 17대 손이 살고 있는 가옥으로 현 소유자의 14대 조부가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본래 초가였던 것을 60년전 기와로 바꿨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어 있는데 안채는 양양지방에 남아있는 북방계통의 집이다. 왼쪽으로 넓은 부엌을 배치하고 오른쪽으로 가운데를 갈라 나눈 뒤, 다시 구획하여 6개의 작은 방을 만들었다. 부엌 앞으로 내밀어 지은 외양간은 창고로 개조하였다. 사랑채는 나중에 늘려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안채와 달리 큰 방 셋을 마련하고 밖으로 툇마루를 두어 방과 방이 서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대문은 전형적인 솟을대문으로 대문의 왼쪽에 마구간과 광이 있다. 출입로 오른쪽에 연꽃이 있는 방지가 있어 사랑채 앞쪽 지붕선과 함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북분안길 106-9
김정묘역 문인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역사관광

김정묘역 문인석

김정묘역 문인석은 고려시대의 문신인 김정 선생의 묘역에 있는 1쌍의 문인석이다. 김정 선생은 고려 공민왕 때 양광도 찰방사와 전라도 찰방사, 대호군을 역임하였으며, 고려 후기 신돈의 개혁정치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공민왕 20년(1371) 신돈이 축출되자 유배되었고 그 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광주목지에 중대광 광성군에 봉하여졌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 문인석은 총 2기로 동일한 수법을 사용하여 조각하였고, 재질은 화강암이다. 문인석이 높이 121cm, 오른쪽 문인석은 높이 123.5cm로 두 기의 크기가 서로 다르며, 다른 문인석들에 비해 규모가 작다. 머리에는 장식이 없는 낮은 관모를 쓰고, 눈, 코, 입은 얇은 선으로 표현하였으며, 두 손에는 신하들이 임금을 뵐 때 손에 쥐던 홀을 들고 있다. 묘역에는 문인석 이외에도 망주석 1쌍과 선생의 묘비가 마련되어 있는데, 문인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최근에 세운 것이다.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칠전동 619-2
김청풍부원군묘역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역사관광

김청풍부원군묘역

영의정 김육의 아들이며,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의 장인이자 현종의 아내 명성왕후의 아버지인 충익공 김우명의 묘역이다. 충익공 김우명은 인조 20년(1642) 진사시에 합격하여 강릉 참봉, 세마, 영돈녕부사, 오위도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우명이 사망하자 조정에서 부원군의 대접을 하기 위하여 강원특별자치도 춘성군 신동면 증리에 묘소를 하사하였다 한다. 시신을 배에 싣고 한강을 거슬러 가던 중 현재의 묘소 앞의 강에 이르렀을 때 배가 움직이지 않고 돌풍에 명정(다홍 바탕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 관직, 성씨를 기록한 깃발)이 산으로 날아갔다. 명정이 날아간 곳으로 가보니 그곳이 명당이어서 하사한 땅을 취소하고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묘역에는 외손이 되는 숙종의 친필 묘비가 있고,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호조판서를 역임한 이민서가 짓고 윤심이 글씨를 썼고, 전서는 서포 김만중의 솜씨이다. 그 옆으로 망주석, 문인석 한 쌍식과 석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강원특별자치도 내에 있는 왕릉 이외의 묘지에는 담장이 없는데, 이 묘소는 유일하게 둥근돌(월석)이 박힌 묘담장이 둘러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 경춘로 667-9
금강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역사관광

금강정

1428년 김복항이 금강정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영월제영’에 의하면 이자삼이 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움을 보고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자 안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금강정’ 현판이 걸려 있다. 금강정 아래로 푸른 동강이 흐르고 있는 이곳에서 영화 ‘라디오 스타’를 촬영했다. 금강정 주위엔 비운의 왕 단종과 관련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다. 익공계 양식으로 바닥은 마루를 깔았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모로 단청으로 얹혀있다. 금강정을 계족산과 태화산이 둘러싸 영월 8경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1684년 우암 송시열은 금강정 주위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금강정기’를 썼다. (출처 : 영월군청 문화관광)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
김종길 가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역사관광

김종길 가옥

평지에 ㄱ자형 안채를 배치하고 一자형 사랑채가 있어 전체 평면은 ㄷ자형을 이루고 있는 집이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과 부엌을 두고 왼쪽에는 웃방·안방·부엌·사랑방을 두었는데 사랑방은 원래 부엌의 광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웃방과 안방 밖으로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건넌방 앞에서 시작된 ㄱ자형 툇마루는 안방 앞까지 연결되어 있다. 행랑채는 나중에 새로 지은 것인데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헛간, 오른쪽은 넓은 방과 부엌을 두고 있다. 이 집은 조선 순조 27년에 세웠으며 전체 구성 형식은 영서지방 민가 형식을 따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주천면 고가옥길 27
꺼먹다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역사관광

꺼먹다리

2004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된 다리로 화천군 간동면에 있다.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1945년에 건설한 다리이다.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해 ‘꺼먹다리’ 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천수력발전소와 함께 당시의 산업을 엿볼 수 있는 시설물이며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근대 가구식 구조 교량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꺼먹다리는 난간도 없이 일부 침목이 훼손돼 수십 년간 방치되다 최근 2007년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재정비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한국전 당시 중동부전선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교량이었기 때문에 전투도 치열했던 곳 이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소양강과 화천을 모노레일을 이용해 수송물자를 이동하기도 했다.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685
김화군민 망향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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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역사관광

김화군민 망향탑

김화군민 망향탑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에 있는 미수복 지구 김화 군민의 실향민 망향탑이다. 1980년 6월 1일에 건립되었다. 김화군은 광복 직전 9만 5,0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광업이 번창하던 지역이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전쟁 이후 원래 면적의 3분의 2 가량이 북한과 비무장지대(DMZ)에 속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김화군의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철원군 김화읍에 속하여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국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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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역사관광

국형사

원주시 행구동에 위치한 국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창건하였다. 원래 이름은 보문암이었으나 방어로 발음이 변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곳에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제단을 쌓았으며, 해마다 나라의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며 제향을 올렸으므로 국향사라 불렸다. 또한 일 설에는 조선 정종의 둘째 딸 희희공주의 병이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한 뒤 완쾌되자 정종이 기뻐하여 도량을 크게 확장하고 사명도 국형사로 고쳤다고 한다. 이후 1680년에 폐사되었다가 1907년, 1945년, 1974년에 중수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수광전, 동악단, 범종각, 승당 드잉 있으며, 문화재로는 1799년에 세워진 진암당 대선사(晉庵堂大禪師) 부도(浮屠)가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고문골길 155 (행구동)
구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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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역사관광

구은사

철원군 근남면 사곡2리에 위치하는 구은사는 서기 1455년 단종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비분을 품고 산간으로 은거하여 불사이군의 지조로 일생을 마친 아홉 선비(김시습, 조상치, 박도, 박재, 박규손, 박효손, 박천손, 박인손, 박계손)의 충절을 모신 사당이다. 아홉 선비는 근남면 육단리, 잠곡리, 사곡리 등의 산간 계곡에 초막을 치고 은거하면서 권농에 힘쓰는 한편 사곡리 속계천(束溪川)변 행화정에 모여 바둑을 두면서 세상사를 논했는데 그 후 시운이 맞지 않아 각처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니 조선 인조 9년(서기 1631년)에 이르러 이지연 선생 등 여러 선비들이 뜻을 모아 사당을 짓고 매년 봄가을 추모제를 지냈다. 서기 186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는 철폐의 비운을 맞았으나 1921년 사당을 재건하고 6·25전쟁으로 다시 황폐화된 것을 지방유지들의 도움으로 1977년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근남면 호국로 7003-23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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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역사관광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을 한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으로, 원주 지역에서 맨 처음 건립된 은행이다. 조선식산은행은 1906년 6월부터 각 지방에서 설립된 6개 농공은행 권리와 의무를 계승한 은행으로서, 조선총독부가 조선에서 농업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본인의 직접적인 투자와 경영에 의존하는 대형 개발은행으로 설립했다. 1943년에는 한국인 행원 150명을 포함하여 498명의 행원을 채용했던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정책금융기관으로 계속 활동하였다. 그러나 8·15 해방과 함께 일본으로부터의 자본도입이 소멸되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사채 소화도 불가능해 미국 대충자금의 일부만 취급하는 등 개발은행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상업은행으로 변신하여 활동하다가 1954년 제정된 한국산업은행법에 의거해 개발은행인 한국산업은행으로 재출범했다. 외관은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창문을 위아래로 길게 반복 배치하여 수직성을 강조하였고, 외벽은 인조석 질감의 모르타르로 마감하는 등 일제강점기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중앙로 88 (중앙동)
경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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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역사관광

경천묘

경천묘는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에 있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묘우이다. 신라 말 927년에 경순왕은 왕위에 올랐으나 신라는 이미 사직을 본전할 힘이 미약한 상황이었으므로 935년(경순왕 9년) 이미 운명이 다한 신라의 형편을 신하들과 논의한 끝에 고려에 넘기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 후 경순왕은 두루 다니다가 이곳 용화산(현 미륵산)의 빼어남을 보고 그 정상에 올라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그 아래에 학수사와 고자암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경순왕이 돌아가시자 왕을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들이 고자암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받든 것이 영정각의 시작이었다. 고려 중기 이후 전각은 무너지고 인적도 끊어졌다가 조선 초에 이색, 권근 등에 의해 전각이 다시 지어졌다. 숙종 때 원주목사 김필진이 새로 초상화를 그리고 전각을 지어 모셨으나 화재를 당했고, 영조 때 재건되면서 임금이 영정각의 명칭을 경천묘로 바꾸었다. 그 후 경천묘는 다시 불태워졌으나 경순왕이 머물렀던 유래에 따라 신라 문화를 지켜낸 왕의 충정을 기리고자 원주시가 2006년 9월 이곳 미륵산 아래에 경천묘를 복원하였다. 외곽의 진입문은 평삼문으로 되어 있고 사당 진입문은 솟을삼문으로 되어 있는데 당우는 조선후기 익공양식으로 되어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귀래면 미륵산길 200
고진하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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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역사관광

고진하 가옥

고진하 가옥은 강원 영월군 남면에 위치한 곳이다. 뒤로 병풍처럼 산을 등지고 있으며, 영서와 중부 지방의 민가 형태를 보이고 있다. 가옥의 평면구조는 외형상 서로 붙어 있는 안채와 사랑채가 ‘ㄷ’ 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헛간채가 일자형으로 배치되어 중정형의 마당을 갖고 있다. 영월 남면에 원골다리를 지나 도동마을과 원골마을 지나 위치한 고진하 가옥은 뒤로는 푸른 산자락을 등지고 앞으로는 밭을 두고 있으며, 마을길 방향으로는 사랑채가 전면을 드러내고 있다. 사랑채의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약간 낮은 물매의 차분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가져 주변 산새와 잘 어우러지고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원골길 170-9
고성 문암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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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역사관광

고성 문암리 유적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은 동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구릉지대의 남쪽사면 사구위에 형성되어 있는데 인근에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여러 시기에 걸쳐 형성된 유적이다. 1998년 12월부터 1999년 3월까지 문화재청 국립 문화재연구소에서 전체 유적 중 약 200여평의 발굴조사를 한 결과 5개의 유물 포함층과 3개의 신석기시대 문화층이 퇴적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3기의 주거지와 야외 노지 등 다양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한반도 동북지방과 중국의 동북 3성 지방, 러시아 아무르강 연안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문화와 한반도 선사인의 원류 및 이동경로, 당시의 문화계통과 전파 정도 등을 밝히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문암리 선사유적은 고성 여행지 중 가장 정적인 곳이다.

⌖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진리
건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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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역사관광

건봉사

금강산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감로봉 동남쪽 자락에 자리한 오래된 사찰로, 석가모니의 치아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다. 한때 3,183칸에 달하는 대규모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이문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1994년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승려들이 승병을 조직한 곳이자 일제강점기 때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호국사찰이기도 하다. 신라 법흥왕 7년(520)에 승려 아도가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승려 발징이 절을 고쳐 짓고 1만 일 동안 염불을 외우며 수행하는 만일회를 열었으며, 이 모임은 우리나라 염불만일회(극락정토의 왕생을 기원하며 만일동안 염불하는 불교 의식)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나옹화상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조선 세조 2년(1456)에 임금이 행차하여 이곳을 왕실의 안녕을 비는 왕실 원당(개인의 안녕이나 명복을 빌기 위해 위패나 초상화를 모신 사찰 혹은 사찰 내 전각)으로 삼고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시는 어실각을 지으며 큰 사찰이 되었다. 조선 고종 15년(1878)에 불이 나 모두 타버려 이듬해 다시 고쳐 지었다. 대한제국 광무 10년(1906)에 개화사상 및 신문물 교육을 위한 봉명학교를 설립하여 관동지역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었다. 1911년에는 9개 말사를 거느린 31본산의 하나가 되는 등 규모를 회복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고성지역에서 약 2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1920년에 건립된 불이문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건봉사 터는 휴전 하며 민간인 통제선 북쪽에 속하게 되었다가 1989년부터는 민간인 출입이 가능해졌다.

⌖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감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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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역사관광

감추사

감추사는 동해시 용정동에 위치한 작은 절이다. 영동선의 철길을 건너 옥석정이라는 정자를 지나고 나서 계단을 내려오면 기도도량 옆에 석굴과 감추사가 있다. 건물은 4채밖에 없지만, 저마다 바위 틈새에 교묘하게 들어앉아 있어 각각 멋진 모습을 내비친다. 바닷가에 들어선 절은 대부분 기도처로 유명한 관음도량으로, 바닷가에 관음보살이 상주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곳에서 관음기도와 용왕기도를 올리면 집안의 안녕과 사업이 번창한다고 해서 전국 각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또한 동해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있어 해마다 해돋이 여행으로 오는 관광객들도 많다. 감추사의 절 입구에는 5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석탑은 한 여신도가 죽을 때 자신의 아들에게 유언을 남겨 만들어진 석탑이라고 한다. 바닷가에서 가깝기 때문에 주변에 기암절벽이 환상적으로 멋진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절 입구 샘물에서는 약수가 흘러넘쳐 늘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수중지수라 하여 수명을 감로수라 지었다. 마을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며 뜻을 기리고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해안로 120 (용정동)
강릉 오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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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역사관광

강릉 오금집

강릉 오금집은 강릉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유일한 초가집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집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은 겹집이다. 왼쪽으로 2개의 방이 있으며, 오른쪽으로 부엌이 있다. 겹집양식으로 뒤쪽에 안방과 골방을 배치하였고, 앞쪽에는 툇마루가 있다. 네 귀퉁이에 있는 기둥은 안으로 기울어지도록 세웠으며, 못을 사용하지 않고 이음·새끼줄 등을 이용하였다. 특히 부엌 쪽은 초가지붕이 땅 가까이까지 내려와 있다. 흙벽으로 되어있고 목재의 가공 등이 거친 편이다. 흙과 돌로 된 담이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평면 양식은 田자에 가깝지만 움집과 같은 느낌을 주는 특이한 집으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옛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릉대로210번길 23-9 (임당동)
강원 영월 김삿갓면 [슬로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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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역사관광

강원 영월 김삿갓면 [슬로시티]

영월군은 산과 물, 계곡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수려한 자연경관은 물론이며 어린 나이에 왕위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비운의 임금인 단종과 조선 후기 방랑 시인이자 천재 시인인 김삿갓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씨동굴 및 김삿갓 유적지 등 청정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가장 최적화된 곳이다. 해학과 풍자의 시선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화 예술혼을 추모하고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문화제도 매년 10월에 개최하는 등 다양한 문화자원도 두루 갖추고 있어 이러한 보존 가치를 대외적으로 인정받아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또한 영월군은 박물관 고을 특구이다. 핵심 콘텐츠 지역인 김삿갓면에만 자그마치 8개의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고을 육성 사업을 통해서 지역 특성을 반영한 박물관을 유치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인재 육성 및 활용과 네트워크 구축, 테마 체험 프로그램 및 문화 상품 개발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가치를 찾아내고 있다. 별마로 천문대, 난고 김삿갓 문학관, 영월 Y 파크, 단종역사관, 동강사진 박물관, 영월 동굴 생태관, 강원도 탄광 문학촌, 동강생태정보 센터, 영월 라디오스타 박물관, 예술창작스튜디오 등 다양한 콘텐츠의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옥동장터길 36
강릉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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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역사관광

강릉향교

강릉향교는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이고, 조선시대 향교에서 모셨던 성현과 선현들의 위패를 지금까지 모시는 유일한 향교이다. 주요 건물 중에서 강릉향교 대성전, 강릉향교 명륜당, 강릉향교 동무, 서무, 전랑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중 맨 앞쪽에 자리한 명륜당은 1413년 ‘남루’라는 누각으로 처음 세워져 중수를 거듭했다. 이 누각이 교육 공간인 명륜당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대대적인 중수를 마친 1644년 이후부터였다. 현재는 전면 11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서 우리나라 향교의 명륜당 가운데 가장 크다. 처음 창건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고려 말기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소실되었다가 1313년에 강원도 안무 사인 김승인이 화부산 아래에 설립하였는데, 1411년에 다시 소실되자 강릉 대도판관 이맹상이 유지 68인과 발의하여 1413년에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명륜로 29
강릉 굴산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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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역사관광

강릉 굴산사지

굴산사는 강릉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6㎞ 정도 떨어져 있다. 범일국사가 신라 문성왕 9년(847년) 창건한 사찰로 신라의 불교 종파인 5교 9산 중 9본산의 하나였다. 굴산사가 폐사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쯤으로 추정된다. 굴산사 일대는 현재 농경지로 변해 확실한 규모와 가람배치는 알 수 없으나 영동 지역 최대의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굴산사지 당간지주(보물), 굴산사지 석불좌상(강원도 문화재자료) 등이 남아 있다. 범일국사 탄생 설화가 얽힌 학바위와 석천(石泉)이 있어 굴산사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곳은 태풍 루사의 피해로 석천이 유실되었으며, 임시로 복구해 놓은 상태이다.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금강사(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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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역사관광

금강사(강릉)

금강사는 소금강 무릉계곡에 정각 스님이 1964년 창건한 절로서 기암괴석이 아름답고, 시냇물이 맑은 주변의 경관으로 인해 이 일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절이다. 특히 금강사의 맞은편에는 천여 명의 군사가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는 전설이 깃든 식당암이 있고, 봉우리 3개가 기이하게 솟아있는 삼선봉을 만나볼 수 있어 소금강 탐방로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머무는 곳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소금강 주차장에서 금강사, 구룡폭포, 만물상, 노인봉, 진고개에 이르는 등산코스가 유명하며, 사찰 주변에는 월정사, 상원사, 연곡해수욕장, 주문진 해수욕장, 경포도립공원 등이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 소금강길 670
구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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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역사관광

구미정

강원도 정선 봉산리에 있는 구미정은 조선 숙종 때 공조 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선생이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에 내려와 은거 생활 중 지은 정자이다.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의 넓은 암석 위에 세워진 정자로, 이 정자를 중심으로 주위에 아홉 가지 뛰어난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었다. 구미정은 조선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명승지로, 현재는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자 주변으로는 소나무 숲과 야영장이 있어 여름에 피서지로도 인기가 많다. 구미정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관은 다음과 같다. 1) 어량 : 개울에서 물고기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비상할 때 물 위에 통발을 놓아 잡는 물막이인데, 물고기 잡는 장면을 의미한다. 2) 전주 : 주위의 밭두렁이 그림보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전원경치를 의미한다. 3) 반서 : 주위에 있는 바위들이 섬같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암석의 경치를 의미한다 4) 층대 : 주위 곳곳에 층층 쌓아 올린 듯한 절벽의 아름다움으로 절벽의 경치를 의미한다. 5) 석지 : 정자 뒤편에 위치한 연못이 바위가 뚫려 생긴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연못의 경치를 의미한다. 6) 평암 : 바위 한 개의 넓이가 100평 이상 되고 평평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넓은 바위의 경치를 의미한다. 7) 등담 : 정자에 등불을 밝혀 연못에 비치는 경치로 밤의 경치를 의미한다. 8) 취벽 : 정자 앞 석벽 사이에 있는 쉼터의 경치로 산벽의 경치를 의미한다. 9) 열수 : 구미정 주변 암벽에 줄지어 있는 듯이 뚫려 있는 바위구멍의 아름다움으로 바위구멍의 경치를 의미한다.

⌖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