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로 찾기

성곽

공개된 장소·행사·여행 이야기를 같은 관심사로 모았습니다.

관련 장소

아리랑힐 호텔 동대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성북구숙박

아리랑힐 호텔 동대문

아리랑힐 호텔 동대문은 품격 있고 감각적인 디자인, 쾌적한 휴식과 비즈니스 환경,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한다. 4호선 성신여대 입구역 6번 출구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항까지는 70분 정도 소요된다. 호텔에서 가까운 관광지로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명동 쇼핑거리가 있으며 또한 동대문, 창덕궁, 창경궁, 서울 성곽, 정릉, 간송미술관, 북악산 한양도성 등 수많은 명소들이 있다. 총 190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감각적이고 품위 있게 꾸며져 있다. 전 객실에 유무선 인터넷(무료), 금연, 에어컨, 난방 등의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비즈니스센터, 회의실 및 소규모 프라이빗 룸 등이 완비되어있어 비즈니스 여행객분들에게도 용이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또한 최대 150명까지 수용 가능한 연회장에서 각종 소규모 행사 등 연회도 가능하다.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 8
동북공심돈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역사관광

동북공심돈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창룡문 인근에 있는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했다. 1796년(정조 20) 높이 5.42m, 둘레 38m 규모로 완성됐으며 한국전쟁 과정에서 완파된 뒤 1975년 복원됐다. 화성에는 이외에도 서북공심돈·남공심돈이 있다. 동북공심돈은 군사적 요충지인 것은 물론 수원화성 건축물 중 유일하게 원형형태로 희소성이 높다. 커다란 둥근 원의 모습으로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돼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최상층에 올라서면 화성 전체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독용산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독용산성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인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있다. 산성의 둘레는 7.7㎞(높이 2.5m, 폭 1.5m)에 이르며 산성 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 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이다.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500년전 성산가야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원년(1675년) 관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여,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있었으며,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발굴된 군기고에서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성주군에서는 1997년부터 성곽을 복원할 계획을 세워 훼손된 성곽의 일부와 아치만이 남아 있던 동문을 보수하여 원형으로 복원하였으며 성내에 관아터와 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독용산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이원정이 1677년에 편찬한 경산지를 통해 나타난다. 그 책에 따르면 합천과 거창의 군사가 배치되었고 성안에는 3개의 계곡, 객사, 군기고 등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정중휘가 개축할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강산면 사더래길 144
덕진산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파주시역사관광

덕진산성

파주시 군내면에 위치한 덕진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덕진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성은 최고봉인 해발 85m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 능선을 따라 돌며 표주박 형태로 구축되어 있다. 외성에는 두 개의 문지가 완연하게 남아 있고, 성 위에 담을 낮게 쌓았던 부분이 두 군데 있다. 비교적 낮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임진강의 북쪽 해안이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넓은 땅이 내려다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내성은 성벽의 견고성을 높이기 위해 보축과 함께 계단식 석축공사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외성은 토축성으로 성벽은 거친 흙다짐을 하면서 흙을 쌓아 성을 축조하였고, 그 외부에 목책 같은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성과 달리 외성은 광해군 때 전쟁위기가 고조되면서 매우 급하게 조성되었기 때문에 성벽이 치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덕진산성은 인근의 임진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호로고루나 당포성, 은대리성 등과 함께 임진강 북안에 설치된 중요한 삼국시대 성곽이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아 외성을 확장·수축하여 사용했던 특수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어 학술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큰 성이다.

⌖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13
남해 임진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임진성

남면 상가리 남쪽에 위치한 임진성은 이름 그대로 임진왜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민, 관, 군이 힘을 합쳐 쌓았다는 이유로 민보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임진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길게 늘어선 돌덩이들이 차곡차곡 높게 쌓아져 있으며, 토성으로 된 외성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형태는 테뫼식으로 사암, 화강암, 안산암 등 활석으로 장방형 쌓기로 구축하고 틈새는 잔돌을 끼워 마감하였는데, 옥포 인접 구릉에 타원형 성곽으로 성곽 내 토루를 만들어 통로를 만들었다. 옛날에는 성루, 감시사, 망대, 탑대, 서당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시설물은 없고, 성곽과 동문터, 서문터, 우물터만 남아있다. 현존하는 성벽의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는 최근보수 공사를 거쳤고, 2014년에는 성 내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연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상가리
남원읍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읍성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지역에 소경(지방도시)을 설치하였고, 691년에 쌓은 네모난 형태의 평지 읍성이다. 1597년에는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을 크게 다시 쌓고 수리하여 담을 높였다. 그해 8월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이때 싸우다 죽은 군인과 주민들의 무덤이 만인의총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많이 허물어져 약간의 성터 모습만 남아있다. 돌축대의 길이는 2.4㎞가 넘고, 높이 약 4m에 이르며 성 안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성 내에는 남북과 동서로 직선대로가 교차하고, 그 사이에도 너비가 좁은 직선도로가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의 도로구성을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 도시가 들어서며 성곽은 대부분 헐려나갔으나, 시내 중심부의 도로는 지금도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 있어, 과거 성내의 가로 구성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 읍성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크고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네모 반듯한 구성과 성내의 가로가 직선으로 구성된 점이 흥미롭다.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동충동
남미질부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역사관광

남미질부성

남미질부성은 포항시 흥애읍 남성리, 중성리, 망천리 일대에 있는 신라시대 성곽이다. 흥애읍 남쪽 평지에 돌출된 구릉지를 이용하여 축조한 토성이다. 흙으로 쌓은 성벽의 둘레는 약 2km이다. 성 안에는 남성리 못산마을이 있고, 이 마을 서쪽 구릉지에는 성주의 무덤인 듯한 고분이 9기 정도 있다. 못과 우물도 한 개씩 남아있다. 삼국사기에 504년 9월에 주민들을 동원하여 파리성, 미실성, 진덕성 등 12개의 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실성이 지금의 남미질부성에 해당된다. 동국여지승람 22권 흥해군 고적조에 따르면 고려 태조 13년 북미질부성의 성주 훤달과 남미질부성의 성주가 함께 항복하여 왔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고려 초기에는 이 성이 흥해군 일대를 다스리는 중심 성곽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축성 당시의 이름을 알 수 없어 후대에 행정구역이나 산 이름을 따서 임의로 이름이 붙는 대부분의 성곽과는 다르게 남미질부성은 축성 당시의 이름이나 연대가 확실하고 포항 지역에 남아 있는 성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북정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서울특별시 성북구체험관광

북정마을

북정마을은 서울특별시 사대문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흔히 산동네·달동네로 꼽히는 마을 중 하나이다. 북정마을은 큰 타원형을 한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 옆으로는 성곽을 끼고 있어 성벽 근처를 중심으로 생겨난 달동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본래 한양도성은 성벽을 기준으로 내외부의 일정 범위 안에 주거지가 형성될 수 없었다. 특히 내사산의 굴곡을 따라 축성된 도성의 특성상 집을 짓는 데 지형적 제약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도시화는 서울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주택 부족 문제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성곽에 기대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북정마을은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거친 땅을 깎고 돋우어 저마다 집을 짓고 골목에 모여 이웃이 된 마을이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제한구역 외의 성북동은 주택과 아파트가 즐비하다. 하지만 한양도성으로 인해 개발제한이 된 북정마을은 소박한 달동네로 남아 있다. 북정마을에는 독립운동가로 이름 떨친 만해 한용운의 자택 ‘심우장’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밖에도 ‘북정미술관’과 그 옆 ‘북정카페’는 이 마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오랜 세월 성벽 및 구릉지 지형과 일체화된 북정마을의 독특한 경관은 그 자체로 한양도성과 함께 지키고 가꾸어야 할 유산이 되었다. (출처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3길 87 (성북동)
문경 가은오픈세트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문경시체험관광

문경 가은오픈세트장

문경 가은오픈세트장은 문경시 서부 가은읍 인근 문경에코월드 내에 자리한 드라마 세트장이다. 이 세트장은 과거 문경 가은탄광에서 채굴한 폐석을 모아 쌓은 곳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조성하였다. 심도 있는 역사 고증을 통해 왕궁 3채, 기와집 42채, 가옥 37채, 성곽 3개를 조성하여 우리나라의 고대, 중세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각종 드라마 촬영과 역사교육을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총 3개의 촬영장이 있다. 그중 제1촬영장은 평양성, 고구려궁, 신라궁, 고구려마을, 신라마을을 재현하였고, 제2촬영장은 안시성과 성 내 마을, 제3촬영장은 요동성과 성 내 마을을 재현하였다. 이렇게 궁궐부터 서민들의 초가집, 주막 그리고 실제 크기에 맞게 만들어진 웅대한 성문이 있어 과거로 이동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근초고왕, 자명고, 연개소문 등 다양한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지금도 종종 여러 드라마, 영화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경에코월드는 이 세트장 외에도 문경석탄박물관이 있는데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문경모노레일을 타고 석탄박물관부터 세트장까지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주변에는 이외에도 국립대야산자연휴양림, 불정자연휴양림, 문경새재 등이 있어 연계하여 둘러볼 수 있다.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왕능길 112
구례 석주관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구례 석주관성

노고단에서 왕시루봉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맥에 위치하며, 칠봉산 남쪽 봉우리 20m 아래에서부터 칠의사 아래 후면까지 이어져 있는 고려 시대 성곽이다. 삼한시대에 마한과 진한의 경계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군사상 요충지였고, 고려 때에는 남해에서 침입한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켜내기만 하면 전주에서 구례, 남원을 향해 넘어오는 왜적을 방어할 수 있는 호남의 전략적 요충지로, 고려 말 왜구가 횡행함에 따라 진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나, 조선이 개국하고 정국이 안정되어 감에 따라 진을 폐지하여 황폐화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도 방어사 곽영이 성을 쌓고 구례 현감인 이원춘에게 석주관 방어를 담당하게 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석주관에 고려 말 때처럼 만호진을 설치하여 왜구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활용되지 못하고 황폐해지고 현재에 이른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750m이며, 높이 50∼120㎝로 대부분은 무너졌다. 13세기와 16세기 성을 쌓는 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약 3분, 2.8㎞ 거리에 간전교를 지나 왼쪽으로 섬진강어류생태관이 있으며, 섬진강 대로를 따라 약 5.7㎞를 더 가면 운조루 고택을 방문할 수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토지면 섬진강대로 4638-8
경주읍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읍성

경주 시가지 중심부에 신라 이후의 천년 경주를 상징하는 주요 유적인 경주읍성이 자리해 있다. 신라 시대에는 월성이 중심이었다면 고려 이후에는 경주 읍성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고려와 조선에 이어지기까지 행정, 생활, 군사기능이 모여 있던 경주의 심장부였다. 고려 시대에 처음 축조된 이래, 조선 시대에 여러 번 고쳐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복원된 모습은 조선 영조 21년(1745)에 중수한 모습이다. 영조 때 중수한 경주읍성은 성곽 둘레가 2.3㎞에 달했고, 동서남북에 성내로 통하는 사대문이 자리했다고 전한다. 사대문은 모두 소실되었는데, 동문인 향일문을 최근 복원하였다. 동쪽에 100여 미터 남짓 남아 있던 성벽을 이어 쌓고, 치성, 옹성, 동문 등을 복원해 2018년 11월 일반에 공개했다.

⌖ 경상북도 경주시 동문로 31
계룡돈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인천광역시 강화군역사관광

계룡돈대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한 초소로,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망월평야 남서방향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 돈대는 바깥벽 측면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망월돈대와 함께 관아에서 관리하던 돈대이다.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해 조선 숙종 5년(1679)에 설치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처럼 돈대의 재작년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