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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황산벌참살이마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길 1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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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의정공(김국광)사당과 조선 예학의 태두인 사계(김장생)사당 및 묘역 등 마을 전체에 8곳의 문화재가 산재한 전통적인 선비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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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황산벌참살이마을은 6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마을이다. 조선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의정공(김국광)사당과 조선 예학의 태두인 사계(김장생)사당 및 묘역 등 마을 전체에 8곳의 문화재가 산재한 전통적인 선비 마을이다. 토양이 비옥하여 논 농사뿐만 아니라 인삼, 고추, 옥수수, 복분자 등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으며 광산 김씨 종갓집 전통장과 황산벌참살이 김치를 맛볼 수 있다. 오래전 연산 현의 한 지역으로 마을에 큰 절이 있었다 하여 붉적골, 적사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거정터, 거정리, 거정티, 거정대라 부르게 되었다. 적사곡면이 되어 청동, 범남, 풍덕, 충곡, 거사티, 안천, 성겁, 성내의 8개리를 관할하다가 고종 32년(1895년) 연산군 내적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수리, 거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정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마을에는 수락산 오줌바위, 말발굽바위 이야기 등 계백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거정터 뒤편에 오줌바위라고 하는 바위산이 있는데, 이곳은 계백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면서 주변의 자연환경을 살피기 위해 자주 올랐다고 한다. 계백장군의 말이 오줌을 싸서 바위에 오줌 모양이 남아 있다고 해서 ‘오줌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계백장군이 타고 다녔던 말이 얼마나 훌륭하고 우람한지 그 말이 서있던 곳에 말발굽 모양이 남게 되었다고 하여 ‘말발굽 바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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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장군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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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계백장군 유적지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 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허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다.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반 이상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부적면 사람들이 지석[支石]을 안치하고 내광 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지름 15.15m, 높이 6.5m로 복묘하였다. 1976년 5월 19일에는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전 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라고 쓰여 있다. 계백(階伯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3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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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명재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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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명재고택

논산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629∼1714) 선생이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호서지방의 양반가옥을 보여준다. 안채를 중심으로 광채와 사랑채의 기능적 배치는 명재고택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 옛 선조들의 건축적 지혜다. 특히 수납공간인 광채를 안채와 비껴서 배치함으로써 비와 바람, 햇빛 등 자연현상에 대비한 것은 주생활공간의 세련된 지혜다. 이와 함께 남쪽 바깥 공간에는 네모진 연못이 있는데,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연못의 기법을 볼 수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고, 왼쪽 1칸 뒤로 一'자형의 중문간채가 자리 잡고 있다. 중문간채는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을 내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어서, 중문간채와 함께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안채 뒤쪽에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독특한 뒤뜰을 가꾸어, 우리나라 살림집의 아름다운 공간구조를 보이고 있다. 모든 건축부재의 마감이 치밀하면서 구조가 간결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조선의 양반주택으로 중요하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직선거리 13.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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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보 출처

출처 ·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기준일 · 2025. 12. 18.공공누리 제1유형사진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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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2, 3, 4, 5 ·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한국관광공사 TourAPI공공누리 제1유형사진 1 원문 ↗ 사진 2 원문 ↗ 사진 3 원문 ↗ 사진 4 원문 ↗ 사진 5 원문 ↗

원천 데이터 기준: 2025.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