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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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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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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덕사(벽제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모덕사(벽제서원)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421년(세종 3)에는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가 벽골제를 없애고 그것을 토지로 돌려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박초에 의해 무산되었다. 벽골제 사적비문 역시 박초가 지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강당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입석동
만경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만경향교

향교는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만경향교는 1407년(태종 7)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20년(광해군 12)에 화재로 말미암아 소실되었으며, 1637년에 현재의 동문 내리에 이전 건립하여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륜당은 1637년에 창건한 것으로 현재는 노휴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1975년 보수하였다. 이곳에는 설총, 안향, 최치원, 정몽주 등을 배향하고 있다. 만경향교 안에는 대성전, 명륜당 그리고 동재, 서재가 위치하고, 충효관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동재와 서재는 각각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두내산1길 25-10
두곡서원(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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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두곡서원(김제)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이다. 두곡서원은 1634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몽주, 강원기, 함부림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2년에 훼철되었다. 1901년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오다가 197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세 칸의 사우, 신문, 네 칸의 영모재, 숭의문 등이 있으며, 사우에는 정몽주와 강원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영모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된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9길 31
김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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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문화관광

김제문화원

도작문화의 발상지인 김제는 농경문화가 꽃을 활짝 피웠던 고장이다. 국내 최고최대를 자랑하는 벽골제로 인하여 생활이 넉넉하여 글 읽고 글쓰기를 즐긴 문화예술의 고장이자 충효의 고장이다. 또한 천년의 고찰을 자랑하는 금산사를 비롯하여 많은 유적 유물이 분포되어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으로 징게맹갱외에밋들(김제 만경 넓은 들)에 너른 들로 인해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전국 유일한 문화 도시이다. 이러한 곳에 위치한 김제문화원은 1966년 10월에 개원하였다. 김제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지역문화의 맥을 잇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김제문화원에서는 주민들이 김제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쉽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예의 교육 및 새로운 문화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서암5길 5 (서암동)
남산서원(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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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남산서원(김제)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소재에 위치한 남산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로 활약한 유지화(柳志和)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다. 그 후 순조 때 남궁제(南宮濟)를 배향했다. 1870년(고종 7)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 사우인 경의사, 산문인 경의문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경의사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성덕면 만경로 600-92
국립청소년바이오생명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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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문화관광

국립청소년바이오생명센터

국립 청소년 농생명센터는 농업 생명 체험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실험과 농업생산기술을 실제로 경험함으로써 자기가 지구생태계의 일부임을 깨닫고, 이웃과 함께 살아감을 느끼며, 자연 사랑의 마음을 키우고자 하는 청소년 체험중심의 교육장이다. 숙박형, 당일형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는 환경교육은 교과 학습 및 비교과 활동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학습자 스스로 학습 내용을 계획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유사한 학습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융합적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미래를 위한 환경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21
낙양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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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낙양사(김제)

낙양사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여산송씨 집성촌인 불로마을에 있는 송정기, 송정구, 송정모 삼형제를 모신 사당이다. 죽계 송정기는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지조가 단결하여 1797년(정조 21) 정려를 받았다. 벽계 송정구는 송정기의 가운데 동생으로 형을 엄부와 같이 섬기며 효로 집안을 다스리고 예로 가르치니 향인이 흠모하여 송정기와 함께 육송사에 배향하다가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송정모는 송정기의 막내 동생으로 나서부터 성품이 순화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송시열이 덕원으로 귀양 가자 항소한 뒤로는 두문분출하고 과정에 나아갈 뜻을 끊음에 향리 사람들이 감복하여 사림들이 사당에 배향하였다. 1675년(숙종 1) 금구현 동도면 상학리(현재의 금구면 금구리)에 학천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금구현 수류면 거야(현재의 금구면 삼봉리 거야마을)에 있는 육송사로 옮겨 모셨다. 그런데 1869년(고종 6) 육송사가 철폐됨에 따라 1910년(순조 4)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낙양사라 하여 송정기 삼형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4길 87-3
금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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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금산교회

1908년 전주선 교부의 데이트(Lews Boyd Tate) 선교사가 지은 한옥교회이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의 사기(事記)에 의하면, 처음의 교회는 1905년에 5칸으로 지었으나,190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금산교회 옆으로 1988년에 새로 지은 교회본당과 사택이 들어서 있다. 건물은 남북방향으로 5칸이며, 여기에서 동쪽으로 2칸을 덧붙여 뒤집힌ㄱ자 형태를 이룬다.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으로 남자석, 동쪽으로 여자석을 분리하여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 초기 교회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구분이라는 큰 문제를 ㄱ자형 건물을 지어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보게 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서양식교회의 특징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이 교회는 초기 교회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로, 각 구조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로 지정·보존하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07
김제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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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자연관광

김제평야

김제평야는 김제시를 중심으로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펼쳐진 호남평야의 중심이 되는 평야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도 김제시 일대의 평야를 “대평, 속칭 김제만경평야라고 한다(大坪俗稱金堤萬頃坪)”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큰들’을 표현한 것이다. 김제시의 큰들로는 만경강과 그 지류의 주변이나 하구에 분포한 용지들, 부용들, 동계들, 백구들, 저산들, 청하들, 만경들과 같은 넓은 들을 비롯하여 봉산들, 봉남들, 월촌들, 남포들, 돔배들 등이 있다. 이들을 통칭하여 김제평야라고 부른다. 김제평야는 호남평야의 중심이 되는 지역에 위치해 있어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주요한 수탈지가 되기도 하였다. 농업이 발달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김제 지역은 우리나라가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갖고 있던 1950년대까지는 잘 사는 고장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가 공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공업 발전이 상대적으로 늦어지면서 더디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가 되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소토리,청하면 동지산리 일대
금구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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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금구향교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금구향교는 1390년에 창건되어 1404년에 중창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5년에 중건하였다가 167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그 뒤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소장 전적 등이 대부분 유실되며 쇠락하였으나, 1954년에 지역 유림이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지방 청소년들의 교육기관으로 활용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만화루는 2층 누각 형식의 건물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대성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규모이며 맞배지붕이다. 주변에는 남강정사, 선암저수지, 대율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3길 12
금평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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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자연관광

금평저수지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로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수량으로 인해 마르지 않는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김제시 금산면 소재지에서 금산사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오리알터로 불리는 금평저수지 일대는 야생화 단지와 산책코스가 잘 조성되어 있다. 오리알터는 신라말엽 풍수지리에 밝았던 도선이 장차 오리가 알을 낳을 곳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금평저수지는 모악산 명산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금평곁길탐방로 등을 조성하여 볼거리는 물론 휴식 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총 3.5㎞의 금평곁길탐방로는 1구간, 2구간, 3구간 세 코스와 제방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탐방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1구간은 1㎞의 수변데크로드와 수변생태숲, 2구간은 0.8㎞의 수변데크로드, 3구간은 1.2㎞의 수변데크로드와 자연숲길이다. 제방길은 0.5㎞의 콘크리트 노면길이다. 무성한 나무 그늘아래 탐방로를 산책하다가 잠시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도 수변에 세워져 있다. 금평저수지는 주변에 오염원이 적어 수질이 깨끗하고, 겨울철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관응사(김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관응사(김제)

관응사는 김제에서 전주로 가는 길에 있는 금천호수 인근의 대한불교 관음종 소속 사찰이다. 속칭 각시골이라 불리는 관응사 절터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첩첩산중으로 한 각시가 들어가 이를 기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 보니 현재의 절터에서 사라져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이곳의 관음보살에게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하며 이 관응사 터를 각시골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이러한 전설이 전해져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다. 1936년 조그만 암자로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미상이다. 1985년경 진성 정공진이 주지로 부임해 대웅전과 요사, 삼성각, 미륵불을 봉안하고 사찰의 면모를 일신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선비로 1354-42
김제 외갓집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체험관광

김제 외갓집마을

외갓집마을은 김제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남고속도로와 1번 국도가 마을을 감싸 돌고 있는 사통발달의 교통요지로 마을인근에 3곳의 인터체인지(김제 I.C, 서전주 I.C, 남전주 I.C)가 위치하고 있어 타 지역에서의 접근성이 높은 마을이다. 김제시의 금구면에 속하는 낙성리와 산동리 2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갓집마을’이란 이름은 농촌마을의 훈훈한 인정과 정감이 살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은 광활한 호남평야의 일대에 위치하여 주민 대부분은 농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단위 시설원예단지에서 재배되는 각종 야채, 친환경 농산물로 지정받은 배 과수원과 친환경적 농법으로 재배되는 쌀 등을 이용한 주말농장과 체험학습장을 마련하여 많은 도시민과 어린아이들이 방문하여 외갓집의 푸근한 정감을 체험하고 있다. 가래떡볶이 만들기, 쌀빵 샌드위치 만들기 등의 체험과 함께 이곳에서는 널뛰기, 굴렁쇠 굴리기, 팽이치기, 투호, 그네뛰기 등 전통놀이 체험도 가능하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사방길 110-5
대율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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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레저스포츠

대율저수지

대율저수지는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로 1960년 1월 1일 착공하여 1967년 12월 31일 준공되었으며 대화저수지라고도 부른다. 대율저수지는 농업용수 뿐만 아니라 붕어와 메기 등 씨알 굵은 민물고기가 많아 현재까지 강태공들의 발길이 잦으며 산과 저수지가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상류에는 당월제, 선암제가 있으며 트레킹을 즐겨도 좋은 곳이다. 또한, 대율저수지에서 나오는 민물고기로 요리를 하는 매운탕집들이 주변에 즐비하며, 대율저수지 오토캠핑장이 있어 수려한 자연을 즐기며 관광하기 좋은 곳이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
능제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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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레저스포츠

능제저수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사무소에서 익산 방향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김제평야의 농업 관개용 중심 저수지로 능제저수지라 부른다. 동국여지승람의 만경현조에도 능제라고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저수지이다. 본래는 주변 구릉지의 물을 가두는 재래지였으나, 1930년 확장 공사를 시작하고 그해 12월에 준공되어 운암호의 물을 받아 저장하는 저수지가 되었다. 현재 능제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가 관리하고 있으며 화려한 연꽃이 아름다운 곳이며 낚시터로도 이름을 얻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장산리
귀신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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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귀신사(김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귀신사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0가 중창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구순사로 불렸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부분적인 중수와 대대적인 중창을 거쳐 1934년에는 대적광전 등을 중수한 뒤 다시 귀신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귀신사는 원래 금산사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큰 절로 고려 말에는 쳐들어온 왜구들 300여 명이 주둔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쇠퇴하여 작고 소담한 사찰로 남았다. 귀신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대적광전과 삼층석탑과 부도, 석수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의 미를 나타내는 빼어난 작품이다. 부도는 청도원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는데 전성기에는 이 부도가 있는 곳까지가 절의 경내였음을 알 수 있다. 귀신산 석수는 독특한 양식으로 앉아 있는 석수의 등 위 중간에 남근 같은 석주가 당당하게 꽂혀 있다. 불교사상과 남근숭배사상이 어우러진 특이한 형태의 석조물로, 터를 누르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과, 백제왕실이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