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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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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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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목장터와 감나무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말목장터와 감나무

정읍시 이평면 면사무소 앞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말목장터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배들평 농민 수천 명이 고부로 가기 전에 모였던 곳으로 제1차 백산기포를 할 때까지 장두청을 두고 진을 설치했던 장소이다. 또한 이곳에는 180년 정도 된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이 나무 아래에서 말목장터에 모여든 농민들에게 전봉준이 군수 조병갑의 탐학과 농민 수탈의 실정을 알리고 농민봉기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고 전한다. 이곳 주민들은 지금도 이 감나무의 감은 따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자리
만석보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만석보지

이곳은 만석대교와 제방 사이에 위치한 고부군수 조병갑이 쌓은 만석보의 터다. 보(洑)란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목적으로 둑을 쌓고 냇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말한다. 신태인에서 고부로 가는 지점의 동진강을 건너는 다리 하류에는 보뚝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주위에는 넓고 비옥한 배들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너른 평야에서 1만 석이나 되는 많은 쌀을 거둬들일 수 있다 하여 만석보라 이름하였지만, 굶주리고 착취당해야 했던 농민들의 분노가 서려있기도 하다. 원래 정읍천 상류에는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민보가 있었다. 그런데 1893년에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민보 아래에 만석보를 쌓으며 농민들을 강제로 일하게 하였고, 주인의 허락도 없이 큰 나무를 베어 사용하였다. 또한 보를 쌓은 뒤에는 수세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결국 1894년 조병갑의 포악한 정치와 과중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던 농민들은 만석보를 헐었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이 되었으며, 1973년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사적비를 세웠다. 주변 관광지로 만석보 혁파비, 정토사, 정읍 신태인시장, 말목장터와 감나무가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동죽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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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동죽서원

정암 조광조를 중심으로 덕촌 최희정을 기리고 있는 서원으로 1960년 지방 유림이 지었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 사림파의 중심이 되었으며 급진적인 개혁을 실행하였다. 이를 반대하는 훈구세력의 모함으로 유배되어 기묘사화(1519) 때 희생되었다. 최희정은 조광조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 중종 11년(15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때 함경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조광조가 추천하여 적을 크게 물리쳤다. 중종은 그 공로로 현재 서원이 있는 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학전길 32-57
도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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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도계서원

이희맹·김제민·최안·김지수를 비롯하여 김제안·김흔·김섬·김습 등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이희맹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김종직의 제자로 성균관 재학시절부터 문장과 인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성종 23년(1492)에 장원 급제하여 등용되었으며 이후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다. 김제민(1527∼1599)은 이항의 제자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이 서원은 현종 14년(1673)에 이희맹, 김제민과 더불어 조선 중기 의병장 최안과 조선 중기 문신 김지수를 모시기 위해 세웠다. 그 뒤 숙종 23년(1697)에 김제안을, 헌종 6년(1840)에 김흔을 더하여 모셨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62년에 고쳐 지었는데, 이때 김섬과 김습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현재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사우, 강당인 서당, 동재와 서재, 신문, 고사,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서는 해마다 9월에 제사를 지낸다. (출처: 국가유산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도계1길 34-13
다천사(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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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다천사(정읍)

정읍시 태인면 소재지에서 있는 항가산을 올라가면 중턱에 다천사가 있다.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는 다천사는 옛날 절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벽산스님이 1930년경 이 절을 창건했다. 항가산은 불교적 향기가 가득한 곳으로 항가산이라는 이름은 항하사의 항 자에다, 석가모니의 가 자를 합쳐 만들어진 산이다. 그 뜻은 수 많은 모래와 같이 부처님이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다천사라는 이름은 차를 끓여도 좋을 만큼 맑은 물이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은 예전에 이 곳에 절을 지으려 할 때 오래된 괴목나무 옆에 우물이 있어 깨끗이 청소하였더니, 바위에 다천(茶泉)이라 새겨진 글씨가 발견되어 지었다고 한다. 결국 다천사의 우물은 차를 끓이던 물로 사용되었을 것인데, 예전에 이 물을 바르고 백일기도를 했던 나병환자가 병이 나았다는 영험한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주변 관광지는 태인동헌, 피향정 등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1길 59
내장사(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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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정읍)

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내장사는 636년(백제 무왕 37)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하여 영은사(靈隱寺)라 하였으며, 이때의 가람규모는 50여 동이었다고 한다. 1098년(숙종 3) 행안(幸安)선사가 전각과 당우를 새로 건립하고 중창하였고 1557년(명종 12) 희묵(希默)대사가 영은사의 자리에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하고 산 안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숨어있다 하여 절 이름을 내장사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내장산 용굴암과 은봉암과 은봉암, 비래암에 이안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사 주지였던 승병장 희묵대사와 승군들이 함께 수호하는데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년(인조 17년) 부용대사가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改金)하였으며, 1779년(정조 3) 영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하였다. 1923년 학명(鶴鳴)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1951년 1월 12일 불탄 뒤 중건을 보지 못하다가, 1957년 야은스님이 요사인 해운당을 건립하였고, 1958년 다천스님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1960~1962년과 1974∼1977년에 중건하였고, 1992년 요사인 향적원(香積院)과 종각을 건립하였으며, 1997년 해운당을 중건하였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 삼성각, 천왕문, 범종각, 정혜루, 일주문 등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남산사(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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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사(정읍)

정읍 신태인간 지방도로변에서 더 들어간 곳에 있는 낮은 산인 남산에 남산사가 있다. 남산에는 예부터 반야선터라 하여 알려져 있는 선의 도량으로 병자호란 이전에는 승려가 100여 명이나 기거한 큰절이었다고 한다. 이 절은 옛날에는 한적사(閑寂寺)라 했다. 지금도 절터였던 주추돌과 기와장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폐허가 된 사적지로 남아있던 사지에 1910년경 이장녀 보살이 작은 암자를 짓고 남산사(南山寺)라 이름하여 창건한 후 신도우, 정진성, 김금담 등 역대 주지가 있었고 1991년에는 현주지인 학승, 도선스님이 정진하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정신로 183-64
남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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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서원

일재 이항·건재 김천일을 비롯하여 김점·김복억·김승적·소산복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이항(1499∼1576)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다. 김천일(1537∼1593)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른 장수이다. 이 서원은 선조 10년(1577)에 이항과 김천일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고 숙종 11년(1685) 임금으로부터 ‘남고’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광무 3년(1899)에 다시 지었는데 이때 김점·김복억·김승적이 추가로 배향되었으며, 1913년에는 새로 소산복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서원 경내에는 사우와 강수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사우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은 중앙에 이항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그 좌우에 나머지 인물들의 위패가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강당인 강수재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가운데 2칸은 대청이고, 좌우에 방을 배치하였다. (출처: 국가유산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1길 392
고부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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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부향교는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0년(1597)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 직사, 내삼문, 외삼문, 홍살문 등이며, 전해오는 유물로는 제기, 제복, 서적들이 있다. 대성전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보다 위쪽에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교동4길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