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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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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3건

조건 초기화
극락암(강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역사관광

극락암(강원)

극락암은 간성 대대리 검문소에서 진부령 방향으로 약 2키로 정도가면 우측에 이정표가 있다. 이 이정표에서 마을 안길을 통하여 산모퉁이 숲길을 지나면 어머니 품속을 연상케하는 아담하고 정겨운 사찰이 고즈넉이 노송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 극락암은 건봉사에서 서북쪽으로 2키로 지점에 있었으며,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였다. 945년 묘적동에 창건하였으며 1878년 산불로 인해 건봉사와 함께 소실되었으나 다음 해에 증건하였다. 일제때까지 산신각 1칸을 포함하여 총49칸으로 건봉사와 산내암자 5개중 가장 큰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5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함께 생활하던 수행처이자 봉명학교에 다니는 멀리서 유학온 여학생들의 기숙사로도 사용했다. 예전 그곳은 현재 민통선 내라서 출입이 불가능하고 건봉사 대웅전뒤 서북쪽 능선넘어 1키로미터 지점에 터만 남아있다. 예전엔 건봉사에서 암자까지 우마차가 다닐 정도 길이나 있었다. 해방 후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정상적인 종교 활동이 불가능하자 극락암 비구니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극락암에 살았던 비구니 법선스님이 1956년 간성면 광산3리에 극락암을 신축하였다가 1962년 현재의 간성읍 교동리 280번지 함박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의 극락암이 되었다. (출처 : 고성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교동2길 26 대한불교조계종극락암
고성 문암리 유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역사관광

고성 문암리 유적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은 동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구릉지대의 남쪽사면 사구위에 형성되어 있는데 인근에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여러 시기에 걸쳐 형성된 유적이다. 1998년 12월부터 1999년 3월까지 문화재청 국립 문화재연구소에서 전체 유적 중 약 200여평의 발굴조사를 한 결과 5개의 유물 포함층과 3개의 신석기시대 문화층이 퇴적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3기의 주거지와 야외 노지 등 다양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한반도 동북지방과 중국의 동북 3성 지방, 러시아 아무르강 연안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문화와 한반도 선사인의 원류 및 이동경로, 당시의 문화계통과 전파 정도 등을 밝히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문암리 선사유적은 고성 여행지 중 가장 정적인 곳이다.

⌖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진리
건봉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역사관광

건봉사

금강산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감로봉 동남쪽 자락에 자리한 오래된 사찰로, 석가모니의 치아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다. 한때 3,183칸에 달하는 대규모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이문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1994년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승려들이 승병을 조직한 곳이자 일제강점기 때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호국사찰이기도 하다. 신라 법흥왕 7년(520)에 승려 아도가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승려 발징이 절을 고쳐 짓고 1만 일 동안 염불을 외우며 수행하는 만일회를 열었으며, 이 모임은 우리나라 염불만일회(극락정토의 왕생을 기원하며 만일동안 염불하는 불교 의식)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나옹화상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조선 세조 2년(1456)에 임금이 행차하여 이곳을 왕실의 안녕을 비는 왕실 원당(개인의 안녕이나 명복을 빌기 위해 위패나 초상화를 모신 사찰 혹은 사찰 내 전각)으로 삼고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시는 어실각을 지으며 큰 사찰이 되었다. 조선 고종 15년(1878)에 불이 나 모두 타버려 이듬해 다시 고쳐 지었다. 대한제국 광무 10년(1906)에 개화사상 및 신문물 교육을 위한 봉명학교를 설립하여 관동지역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었다. 1911년에는 9개 말사를 거느린 31본산의 하나가 되는 등 규모를 회복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고성지역에서 약 2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1920년에 건립된 불이문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건봉사 터는 휴전 하며 민간인 통제선 북쪽에 속하게 되었다가 1989년부터는 민간인 출입이 가능해졌다.

⌖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