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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시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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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산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여주시역사관광

매산서원

매산서원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조 때에 경상남도 거창과 산청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건립되었다. 그 후 목은 이색과의 친분을 감안하여 추향하고 매산[梅山]이라는 이름으로 사액받았다. 그러다가 병자호란 때 후손인 문겸[文謙]이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여 춘추로 제향해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8년 훼철되었다. 이후 삼우당의 후손으로 여주경찰서장에 취임한 문광규[文光圭]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8년에 한차례 더 보수하였고 1987년에는 서원내의 사당을 헐고 다시 지었다. (출처 : 여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능서로 94-8
대법사(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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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사(여주)

대법사는 대포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명성황후의 출생 일화가 전해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고즈넉한 사찰 곳곳에 심어진 꽃나무와 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됐으며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성여왕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해 미륵당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명성황후와 그의 아버지 민치록의 인연으로 유명해지게 되는데, 숙종 때 사찰 인근에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의 묘를 쓰면서부터이다. 이 묘소를 관리하며 살아가던 명성황후의 부친 민치록은 꿈에 미륵불을 현몽하고 땅을 파서 미륵불을 발견한 뒤 법당을 새로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부인인 한산 이씨가 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낳은 자식이 바로 명성황후이다. 그 후 명성황후가 고종의 비로 책봉되자 미륵불이 있던 자리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원당사로 개칭하고 민씨 일가의 성원으로 번창하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원당사는 사라지고 거의 폐사되어 흔적만 있던 것을 오늘날의 대법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절을 새로 창건한 대원스님 또한 꿈에 현몽한 대법사라는 서책을 보고 절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일주문, 대웅전, 지장전, 범종각, 국사당, 삼성각 등이 있다. 1971년 건축해 1989년 중수한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석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 삼층석탑, 약사여래 좌상이 있으며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9m에 이르는 미륵석불과 7층 석탑이 있다. 대웅전 옆 작은 석실에 명성황후와 연이 있는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는지 닳고 닳은 외형이 그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절 입구의 국사당에 2개의 탱화가 걸려있는데 좌측에는 산신이 우측에는 보통 호랑이가 있지만 말을 탄 선비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민치록이라 한다.

⌖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안금3길 3-43
강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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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시역사관광

강한사

강한사는 조선 중기 학자이며 정치가인 송시열(1607년-1689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송시열은 생전에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로 경기도 여주에 머물 때마다, 영릉(효종의 능)을 바라보며 효종의 북벌 정책에 대한 대의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후에 정조가 영릉에 행차하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김양행에게 송시열의 사당을 짓게 하였고, 송시열을 높여 ‘대로’의 명칭을 붙여 사당을 ‘대로사’라 하였다. 그 뒤 1873년 10월 고종에 의해 ‘강한사’로 이름이 바뀌면서 현재에는 대로사 또는 강한사라 불리고 있다. 사당은 고종의 서원철폐(1871년 전국의 47개소 서원(사우 포함)만 남기고 모두 없앰)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강한사는 크게 사당과 강당 영역으로 구성되어있다. 사당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크기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강당의 규모는 정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재실인 추양재, 대로사비각, 홍살문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강한사의 사당은 특이하게도 서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영릉을 바라보기 위한 것으로,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보여 주는 것이라 전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 경기도 여주시 청심로 113 (하동)
기천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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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서원지

기천서원은 조선전기의 문신 김안국(1478-154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서원으로, 문화재자료 제75호로 지정된 여주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사립학교이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본래 1580년(선조 13) 김안국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마암에 마암서원으로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608년(선조 41) 현재 위치로 이전해 복원하였다. 이후 조선 중종대부터 효종대까지 이름난 현인인 이언적·홍인우·이원익·정엽·이식·홍명구·홍명하까지 총 8명을 함께 배향하였다. 1625년(인조 3)에 기천서원으로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1937년 유림들이 사당으로 고쳐 모현사라 불렀고, 1979년 사당을 새로 지어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다시 기천서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강당 없이 사당, 동재, 서재, 삼문 등이 있고 서원 옆에 모현사가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분향하는 제사의 기능만이 남아있으며, 현재 상시 개방되고 있지 않다. 인근에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 영녕릉(세종대왕•효종대왕릉), 황포돛배, 파사성, 이포캠핑장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만하다.

⌖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뒷머리길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