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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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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5건

조건 초기화
매산리석불입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매산리석불입상

안성 봉업사지 인근에 있는 높이 3.9m의 보살상이다. 볼륨감 없이 평평한 돌기둥 같은 신체에 전체적으로 세부를 정교하게 조각하지 않고 높은 원통형의 보관에 사각의 보개(寶蓋 ; 인도에서 귀인의 외출 시에 사용하던 양산을 불상의 머리 위에 갓처럼 씌운 것)까지 얹은 표현은 고려 전기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이다. 보개는 이후 변형을 이루면서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한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고려 전기 불상의 특징이다. 방형의 넓적한 얼굴에는 가늘게 뜬 눈이 수평으로 표현되고 짧은 코에 작은 입을 표현하였다. 얼굴의 세부 표현은 높은 관과 더불어 이 작품의 시대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둥근 어깨에는 왼쪽 어깨에만 다소 두꺼운 법의를 걸쳤는데, 왼쪽 어깨로부터 신체 전면을 덮으며 내려오는 법의는 가슴에서부터 U자형 주름이 계단식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다시 양쪽 다리에서 각각의 U자 모양을 이루며 발끝까지 이어진다. 보살상답게 양 손목에는 팔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서 손바닥을 밖으로 내보인 상태로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고 있고, 손등을 밖으로 한 왼손은 배에 대고 있다. 원형 보관과 보개로 이루어진 머리장식과 돌기둥 같은 신체 표현 등에서 고려 시대 전기에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대형 석불의 계통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미륵당길 32-2
만세고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만세고개

만세고개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과 양성면 사이의 고개이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원래의 이름은 성은고개 또는 양성고개이다. 3.1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1일 밤 원곡면민 1,000여명이 만세고개에 이르러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결의한 뒤 양성으로 돌진하였다. 양성 주민 1,000여 명과 합류하여 일본의 기관들을 불태우고 이 지역을 2일간 해방시켰다. 독립항쟁 운동을 기리기 위해 만세고개로 불리고 있다. 또한, 2001년 이곳에 안성 3.1운동 기념관이 세워졌다. 기념관 뒤로 백련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창진산장휴게소가 있다. 안성 3.1운동 기념관 주차장과 창진산장휴게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91
덕봉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덕봉서원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기사사화(己巳士禍)에 연루되어 유배 도중 세상을 떠난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21년(1695)에 건립된 서원이다. 숙종 23년에 임금이 ‘덕봉’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 때에도 헐리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오두인은 1648년(인조26)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관직을 두루 맡았다.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 폐위 후 이세화(李世華), 박태보(朴泰輔)와 함께 이를 반대하다가, 의주로 유배 가는 도중 파주에서 사망하였다. 1694년(숙종20)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덕봉서원은 마을입구 언덕 남동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사진 대지의 아래쪽 턱에는 강당인 정의당과 동재, 서재가 있으며 위쪽 터에는 사당인 덕봉사우가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강당이 앞에 있고 사당이 뒤쪽에 있는 배치 형식)를 갖추었다. 사당과 강당은 부재의 사용으로 미루어 19세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동재, 서재는 1940년대에 훼손 되었다가 새로 복원된 것이다. 덕봉서원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건물도 훌륭하고 공간도 매우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서원로 529-8
너리굴 문화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너리굴 문화마을

너리굴 문화마을은 비봉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캠핑장과 펜션 및 다양한 문화공간까지 갖춘 산속의 마을이다. 너리굴아란 말은 넓은 골이라는 뜻의 안성 고유어이다. 너리굴 문화마을은 자연과 예술이 한데 어울려 있는 마을로, 강당 및 회의실과 펜션 숙소, 카라반, 운동장, 수영장, 카페, 아트숍 등이 갖추어져 있다. 마을 내 여러 예술작품들이 있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용하여 건축하여 비봉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사계절에 맞춰 옷을 갈아입듯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너리굴 아트숍은 너리굴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문화 예술 프로그램의 결과물들이 한데 모여있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공간이다. 원하는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으며 도자기, 액세서리, 생활소품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 이경자 선생의 금속공예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체험할 수 있는 문화 예술 프로그램으로는 팔찌부터 지갑, 가방까지 가죽으로 나만의 생활소품을 만들 수 있는 가죽 공방, 물레를 이용해 나만의 그릇을 만들 수 있는 도자 공방, 과학교실 등이 있다.

⌖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너리굴길 100
경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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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경앙사

경앙사는 오진영 선생의 문인들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노주 오희상을 비롯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 선생의 학덕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 3월 10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건물은 총 26㎡(8평)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한옥이며, 홍살문, 삼문, 사당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현판 액자는 석농의 제자인 월헌 이보림 선생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서 경앙은 ‘산은 사람을 우러러보고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므로 천하만인에게 존경받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오희상 선생은 일찍부터 학문에 힘써 성리학의 일가를 이루었고, 정조 24년(1800) 세자익위사 세마가 된 후 여러 차례 벼슬을 하다가 사직하고 광주 징악산에 은거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힘썼으며 사망 후엔 헌종 7년(1841)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전우 선생은 경전을 깊이 연구해 당대 최고의 학자라는 평을 들었으며 을사늑약 때 을사오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이를 전하지도 못하자, 다음을 기약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의병운동과 3·1 운동 등 항일운동이 거셌던 시기라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계화도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6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오진영 선생은 전우 선생의 제자로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각국의 공관과 정부에 부당함을 알리는 글을 보냈으며, 이수홍과 파리 만국회의에 보낼 공문을 작성하였으나 전달에 실패했다. 1938년 화양동 만동묘 철거를 반대하고 추담별집을 간행, 배포했다. 흰옷과 검은 갓으로 끝까지 항일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썼다.

⌖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