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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역사관광

발견한 장소

3건

조건 초기화
독무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수성구역사관광

독무재

독무재는 벼슬도 마다하고 향리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하시찬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과 유림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하시찬은 1750년 지금의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서 태어나 당대의 석학이던 김경호, 송성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지금의 독무재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독무암루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고, 팔례절요 2권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원래 동구 효목동 경북주유소 부근 경부선 철로 변에 있었으나 대구시 3차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1968년 4월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이건 시 독무재 서남쪽에 별도의 담장을 두고 사당인 경덕사와 팔례절요와 열암문집 판각이 보관된 장판각을 새로 지었다. 주변으로 동촌파크광장놀이공원과 국리대구기상과학관, 아양아트센터, 망우단공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 하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
덕산서원(대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구광역시 수성구역사관광

덕산서원(대구)

이 서원은 조선조 초기 문신으로 대쪽 같은 절개를 지켰던 남은(南隱) 서섭(徐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첨모재(瞻慕齋)를 1993년 서원으로 복설(復設) 한 것이다. 서섭은 달성서 씨 판서공파 파조(派祖)로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한 후 단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인데 세조의 왕위 찬탈로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남애(南涯)라는 호를 남은(南隱)으로 고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은둔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도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어 잘 모르다가 80여 년 전 그가 살았던 낡은 집을 헐다가 천장 속에서 발견된 함에서 그의 행장과 유고를 발견하여 그의 충절이 널리 알려졌다. 이에 1926년 후손들이 묘소가 있는 황금동 근처에 첨모재를 세우고 1954년 중수할 때 신도비를 세웠다. 서원의 정당은 4칸으로 강당은 충정당(忠正堂)이다. 동재는 3칸으로 구인재(求仁齋)이고 서재 또한 3칸으로 존성재(存誠齋)이다. 사당은 경의사(景義祠)로 강당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강당의 서쪽 벽 위에 이수락(李壽洛)의 덕산서원기(德山書院記)가 편액 되어 있고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대문인 외삼문은 숭절문(崇節門)이고 내삼문은 유현문(維賢門)이다. 정당의 동편에 남은 서선생신도비(南隱 徐先生神道碑)와 비각(碑閣)이 있고 강당의 남쪽에 덕산서원 사적비가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46길 5-3
고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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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역사관광

고산서당

고산서당은 처음에 서재(書齋)로 건립되었다가 서원과 서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 교육 기관이자 선현을 제향(祭享)하는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곳이다. 건립된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이곳에서 강론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50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고산(孤山)’이라는 이름도 퇴계에게 요청하여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서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강학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해오다가 숙종 16년(1690)부터 퇴계와 우복을 배향하는 서원이 되었다. 이후 영조 10년(1734)에는 강당과 동재·서재를 새로 지어 서원으로서의 완전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강당만 재건되면서 고산서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964년에 강당 건물을 중수하였고, 2020년에는 사당과 삼문, 담장을 세워 옛 서원의 모습을 다시 갖추고, 동고 서사선(東皐 徐思選)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으나 2021년 12월 20일에 화재가 일어나 강당이 불에 타고 말았다. 사당 담장 안에 세워져 있는 강학(講學) 유허비(遺墟碑)와 강당 뒤편의 두 그루 정자나무는 이 서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로37길 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