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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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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7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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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열사(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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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무열사(나주)

조선 정조 21년(1797)에 무열공 배현경, 금헌 배정지, 정절공 배극렴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 무열사다. 배현경은 고려 태조 때 무신으로 경주 사람이다. 궁예 때부터 활약했던 인물이며,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했고, 이에 일등공신에 올랐다. 태조를 도와 후삼국 통일에 많은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려진다. 그의 시호가 무열이다. 배정지는 고려시대의 무신으로 10세에 금위에 들어가 도지가 되었다. 그는 원나라에 들어가 원제로부터 용사라는 칭찬을 받고 백금을 하사 받기도 하였다. 배극렴은 고려말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고려 우왕 2년(1376)에는 진주에 침략한 왜구를 크게 격파하였으며 1378년 욕지도에서 왜구를 대파하였다. 무열사는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가 헐렸으나 뒷날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시면 무숙로 637-31
무안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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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향교

무안향교는 1394년 무안읍성의 남쪽에 있는 공수산(현재의 남산)에 세웠으나,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서 성종 1년(1470)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임진왜란(1592) 때 파손된 것을 숙종 15년(1689)에 고쳤으며, 그 뒤 정조 13년(1789), 순조 20년(1820), 고종 29년(1892), 광무 6년(1902) 등 여러 차례 고쳐지었다. 무안향교에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에 점차적으로 지어진 것이며,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과 중국 4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인되어 있고, 봄과 가을에 석전제를 지내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무안읍 향교길 20
무안식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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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식영정

식영정은 한호 임연 선생이 1630년에 무안에 터를 잡은 이후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그의 호인 한호처럼 한가로움을 좋아한다는 취지로 그림자가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식영정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영산강과 그 주변의 경관이 어우러져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으며, 임연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인 노촌 임상덕이 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 임씨의 대를 이은 교류 공간이었다. 무안 이거와 경관, 정자 건립 등에 관해서는 1643년에 임연이 지은 복거록에 잘 나타나 있고 교류한 문인도 많다. 정자의 입지나 주변의 경관도 뛰어나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무안발산마을미륵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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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발산마을미륵당산

무안 지방에서는 대개 당산나무, 선돌, 당집 등을 대상으로 당산제를 지내는데, 발산 마을에서는 장승의 모습을 하는 당산석 2구를 제사의 주체로 삼고 있다. 이 2구의 석인상은 당산 할아버지와 할머니, 미륵, 당산, 당산 미륵 등으로 불리는데, 150m 거리를 두고 서 있다. 당산 할아버지는 턱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두툼한 긴 수염이 나 있고, 머리에는 벙거지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풍화 작용이 심하고 거친 입자의 돌 때문에 세부적인 조각 수법은 알아볼 수가 없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어 불상과 비슷한 면이 보인다. 신체는 더욱 간결한 선으로만 옷 주름을 표현해 사실성이 떨어진다. 당산 할머니가 초기의 입석 형태를 띠고 있지만, 당산 할아버지는 조각을 지닌 상징물의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발산마을의 당산석은 입면을 형상화한 신앙 물이란 점과 형태상 성기 바위를 모사하고 있다. 이는 당산석이 상징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데, 일반적인 당산석의 경우 마을 제사에서 주신의 기능을 갖는 신체는 원래 상태의 암석과 당산나무, 당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해제면 광산리
무안 유교리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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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 유교리 고택

남해안 지역의 부농 주택으로 나상열 가옥으로 불리기도 하는 무안 유교리 고택은 1912년 당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방의 천석꾼이었던 나종만에 의해 건립되었다. 양옥의 건축기법으로 건립되었고, 20세기 들어와서야 남도 지방에서 채택한 구조법을 사용하였다. 중층으로 되어있는 대문채는 여느 집보다 천정이 훨씬 높은데, 대문이 크고 높은 것은 당시 그 집안의 재력과 세력을 과시함도 있는듯하다. 대문간에 들어서면 자연석으로 포장된 경사로가 나타나며, 그 끝부분에는 행랑채가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행랑채에 난 중간문을 통과하면 좌측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으며, 그 중앙 아래쪽으로는 곡간채가 큰 규모로 건축되어 있다. 안채는 지형의 경사를 이용해 2단으로 석축을 한 후에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안채와 곡간채, 그리고 행랑채, 대문간 등 4채 만이 남아 있으나, 그 이전에는 당시 주택 건축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동재와 서재가 안채 뒤 후원에 독립적으로 건축되어 있었으며 사당과 사랑채 등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삼향읍 유교리
무령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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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영광군역사관광

무령서원

무령서원은 영조 24년(1748년) 본향유림의 발론으로 고려조의 명신 문안공 김심언 등 영광김씨 선조 8위를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숭의문, 무령서원, 태충문, 기천사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영광읍 동부면 기천에 사우를 창건하고 ‘기천사’라 하여 제향해 오다가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1898년 유허비를 세우고, 광무 7년(1903년) 단을 만들어 봉향하다가 순종 후 1933년 사림의 재론으로 현 소재지에 이건하여 ‘무령서원’이라 개액하였다. 그 후 다시 본서원은 정부당국의 보조로 광복 후 1975년 개수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훼철된 뒤 세운 유허비의 비문이 당대 학자 송사 기우만의 문집에서 확인되며, 중수 시의 상량문이 전해지고 있는 등 기천사와 무령서원의 역사성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향촌사회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영광읍 와룡로2길 16
묘장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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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영광군역사관광

묘장영당

영광 묘장영당은 1616(광해군 8)년에 조선조 개국공신인 이천우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이천우는 전라도의 왜구토벌에 공을 세웠고 그 후손이 담양에서 영광으로 이거 하면서 향내 유림들과 함께 영당을 건립한 것이다. 조선후기 훼철 이후 강당은 서당으로 기능했으며, 1928년에 발의하여 1934년에 신실을 중건하였다. 건물 배치에 있어 중심축을 설정해 짜임새 있는 건축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물의 구조도 무리 없이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건 이후의 보존관리 및 상태도 양호하며, 관련 자료도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묘량면 동삼로1길 21
명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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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명곡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명곡서원은 해주 최 씨 문중을 중심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당초 장흥에 있었으나 1984년 군동 신기마을로 옮겨왔다. 성재 최충, 송탄 최유선, 동산 최자, 강호 최만리, 호은 최우 등 5위의 성현이 모셔져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며 신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명곡사란 액자가 걸려있다. 부속건물로 내삼문, 문간채, 고직사 등이 있다. 신기마을은 주변에 해주 최 씨 후손들이 학습하던 강당이 보존되어 있고 해주 최씨의 세거 마을이다. 인근에 동양 최대 아미타불 불상을 볼 수는 남미륵사가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신기길 63
면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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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담양군역사관광

면앙정

봉산면 제월리 제봉산 자락에 위치한 면암정은 1533년(중종 28) 송순(宋純)이 건립한 정자로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곳으로 유명하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추녀 끝은 4개의 활주가 받치고 있다. 목조 기와집으로 측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방을 배치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여러 차례 보수한 것으로, 1979년에는 지붕의 기와를 교체하였다. 최초의 모습은 초라한 초정으로 바람과 비를 겨우 가릴 정도였다고 한다. 면앙정은 송순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송순(宋純)(1493-1583)의 성종 24년(1493) 담양군 봉산에서 출생하여, 중종 14년(1519) 별시문과(別試文科) 을과(乙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명종 2년(1547) 봉문사(奉聞使)로 북경에 다녀왔으며 이후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거쳐 1550년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되었다. 1569년(선조 2년) 대사헌(大司憲),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되었으며, 의정부 우참찬(議政府 右參贊) 겸 춘추관사(春秋館使)를 지내다 사임하였다(77세).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내려와 면앙정을 짓고 퇴계 이황(退溪 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江湖諸賢)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양성하여 문인들이 신평선생(新平先生)이라 불렀다. 그의 문학작품을 보면 가사(歌辭)인 「면앙정가」를 비롯하여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 1편, 잡가(雜歌) 2편, 「면앙정단가」등과 「오륜가(五倫歌)」 5편 등이 그의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봉산면 면앙정로 382-11
매천 황현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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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광양시역사관광

매천 황현 생가

황현 생가는 1910년 일제강점기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황현이 태어난 곳이다. 황현(1855~1910)은 1888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실 정치에 실망하여 관직에 진출하기 않고 평생 초야에 묻혀 지냈다. 동학농민운동을 생생하게 묘사한 「오하기문」과 1864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상을 기록한 「매천야록」을 남겼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에 통분하여 중국 망명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7년 신학문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호양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 하자 절명시 4수와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충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다. 현재 황현의 생가는 2001년에 복원된 것이다. 또한, 인근에 2010년 조성된 매천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가족 묘역, 절명시, 창의정,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선생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봉강면 서석길 14-3
매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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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매천사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황현 선생은 한말의 순국지사이자 시인이며 문장가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고 재질이 뛰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경장·청일전쟁이 연이어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끼고, 경험과 견문한 바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聞)’을 지어 후손들에게 남겨 주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국권을 박탈하자 김택영과 국권회복 운동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아편을 먹어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 되었으며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라고 불린다. 생전에 살았던 곳에 그의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1955년에 세운 이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광의면 월곡길 22-3
망금산 강강술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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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진도군역사관광

망금산 강강술래터

망금산은 13척의 배로 3백여 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해전지 울돌목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해발 115m의 나지막한 산이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적에게 우리 군사가 많이 보이게 하기 위하여 이 망금산에 토성을 쌓고 부근의 부녀자들을 모아 남장을 시켜 산봉우리를 원을 그리며 반복하여 돌게 하였다고 한다. 주로 추석날 밤, 곡식의 풍년을 기원하며 추던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를 의병술로 사용한 것이다. 지금도 망금산 산봉우리에는 망터가 있고, 그 밑으로 강강술래터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술을 존경하는 마음이 담긴 강강술래에 관한 많은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망금산 강강술래터는 서해랑길 6코스에 위치해 있으며, 차량 이동 2분 소요, 1.7km 거리에 우수영 국민관광지가 있으며 울돌목 스카이워크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명량대첩로 103
만연사(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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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화순군역사관광

만연사(화순)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인 만연사는 고려 희종 4년(1208)에 만연선사에 의해 만연산(나한산) 아래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만연선사가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만연산 중턱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가고자 언뜻 잠이 들어 꿈꾸었는데, 십육나한(부처에게 위임받은 제자들)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토목이나 건축)를 하고 있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서 사방을 둘러보니 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백색인데 신기하게도 선사가 누운 자리 주변만 녹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길로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를 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나한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유물로는 고려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향나무 원목의 삼존불과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범종 등이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진각로 367
마천목장군과 도깨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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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곡성군역사관광

마천목장군과 도깨비살

조선개국과 정란공신(태종 이방원의 집권에 기여한 관리)인 마천목 장군 선대에 장흥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성황당이 있고 당제를 올리는 마을이어서 당산마을이라 했고 침곡과 송정 중간에 있고 고달면 두계 앞에 있는 어살(어전)을 도깨비살이라 했다. 마천목 장군이 어릴 적 어머니가 병을 얻어 물고기를 원하자 섬진강변에 나갔다가 이상하게 푸른 돌을 주워왔는데 도깨비들이 몰려와 두목 도깨비를 돌려주면 무엇이든지 다하겠다고 했다. 마천목은 강에다 어살을 만들어놓으면 돌려주겠다고 하자 어살을 만들어 놓았다는 도깨비살 전설이 전한다.17번 국도 변엔 안내 표석이 있고 강 건너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도깨비대장 조각이 세워져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오지2길 21-99
두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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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광산구역사관광

두남제

두남제는 행주기씨 문중 재각으로 건축적 배치 및 조형이 가지는 유교 건축의 규범과 품격이 잘 유지되어 있으며, 한옥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문화 경관성을 지니고 있다. 건물은 화강석 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넣고 평주와 고주를 세운 정면 5칸, 측면 2칸의 한식 기와 팔작지붕이다. 마루는 귀틀에 의한 툇마루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중앙에 대청과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천정은 대들보 위에 마루 대공과 종보를 결구하여 종도리를 걸친 5량 집이다. 창호는 좌우 1칸씩은 분합문으로 되어 있고, 중앙 3칸은 4 분합문으로 되어 있으며, 띠살창이다. 상인방 위에는 빗살창으로 된 봉창이 있다. 창호 좌우측에는 머름을 장식하였고, 좌우측 툇마루는 머름을 대고 1단 높인 마루이다. 대문은 맞배지붕의 평 3문이며, 담장은 토석 혼축의 담장이다. 처마는 겹처마로 되어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광산동 277
독상리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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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화순군역사관광

독상리석등

독상리 석등은 고려 시대 시중을 지낸 문헌공 오대승이 하늘에 제사하기 위해 제작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리 오대승이 관도 남쪽에 석등 48개를 만들어 밤마다 불을 켜 놓고 하늘에 절하였더니, 그 내외의 자손들이 모두 출세하고 계속하여 상부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상리 석등은 높이 40㎝, 길이 164㎝, 너비 105㎝의 암반에 구멍을 파서 만든 것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비각의 홍살문 안에 있다. 구멍은 약간 손질을 가한 자연 암반 위에 지름 5~14㎝, 깊이 2.5~8㎝ 정도 되는 크기로 48개(실제로는 54개)이며, 이 구멍에 기름을 붓고 심지에 불을 켰던 것으로 보인다. 구멍 수인 48개 즉, 48등은 불교에서 말하는 48원을 의미한 것이다. 48원은 불교의 아미타불의 최고의 이상인 극락정토이다. 즉, 생로병사가 없는 안락한 정토(부처가 사는 세계)라는 뜻이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독상리 석등은 고려 시대 민간신앙이 불교와 합치되어 나타난 현상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동복면
도장사(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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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도장사(해남)

수백 년이 된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한 도장사(道場寺)는 해남 황산면 내산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km 거리에 있는 보타산(寶陀山) 중턱에 있는 절이다. 고려 명종(1170년)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고도 있으나, 여러 기록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절이 자리한 곳은 지금은 영산강 하구언 간척지 공사로 바다가 막혀 버렸지만 본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대웅전은 기둥이나 서까래의 크기로 보아 규모가 컸던 절임을 알 수 있으며, 절의 스님에 의하면 1938년 무렵 무너져 내린 것을 대웅전 기둥의 목재를 그대로 이용하여 작은 규모로 줄여서 지었다고 한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황산면 내산길 143
도솔암(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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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도솔암(해남)

도솔암은 달마산 12암자중 유일하게 복원된 암자로, 가장 정상부인 도솔봉에 위치해 있다. 석축을 쌓아 올려 평평하게 만든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견고한 요새와도 같으며, 주변 풍광이 워낙 수려해 일출과 일몰, 서남해의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고, 마치 구름 속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달마산의 새로운 선경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통일신라 말 당대의 고승 화엄조사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의 기도 도량이라고 알려져 있다.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께서도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도솔암에서 수행정진하셨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암자이다. 그 후에도 여러 스님들께서도 기도 정진하였던 도솔암은 정유재란당시 불에 타 흔적만 남이 있던 곳을 2002년 6월 8일 오대산 월정사에 계셨던 현 주지 법조스님이 32일 만에 단청까지 복원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암릉으로 둘러싸인 도솔암은 4월에는 진달래, 5월에는 철쭉, 6월에는 원추리,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멋있어 많은 관광객이나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이다. 그리고 풍광이 뛰어나 각종 드라마 및 CF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송지면 마봉송종길 355-300
도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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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도래마을

도래전통한옥마을은 풍산홍씨 집성촌으로 남평 땅은 풍산홍씨 땅을 밟지 않고는 못 지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자 마을이라고 한다. 홍씨 집성촌은 15세기 경에 형성된 500년이 넘는 마을로 가족단위의 관광객을 위한 체류형 전통문화 체험마을이다. 마을 입구의 ‘도래마을’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시작으로 마을의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 3채와 더불어 마을 연못과 정자, 골목길의 담장들을 가볍게 둘러볼만하다. 주차장 바로 옆의 조선시대 학당으로 이용되었다는 영호정과 남도에서도 매우 큰 규모의 양벽정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도래마을의 또 다른 대표 가옥인 서기당 홍기창 가옥, 홍기헌 가옥이 위치해 있다. 마을이 전반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고 도래마을 옛집, 계은정, 괘고정, 모남정 등 유서깊은 한옥과 정자가 남아있어 양반 동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서기당은 한옥 스테이로 운영하다 보니 투숙객이 아니면 안마당 풍경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이곳에서 1㎞옆에 나주산림자원연구소가 위치해 있어 같이 방문하는 것도 좋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도면 동력길 16
도림사(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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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광산구역사관광

도림사(광주)

도림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도림마을 입구에 있으며 노사 기정진(1798~1879), 난와 오계수(1843~1915), 후석 오준선(1851~1931)을 모신 사우이다. 기정진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병인소를 올려 외적을 방비하는 대책을 건의하였고, 위정척사사상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오계수는 기정진의 제자로 을미사변 후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가마마을 뒤쪽 산에 있는 영사재에서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오준선도 기정진의 제자로, 한일병합 이후 용진산에 들어가 용진정사를 세우고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34년 나주오씨 문중과 오계수, 오준선의 후학들이 오계수, 오준선과 기정진을 기리기 위하여 도림사를 세웠다. 도림마을은 오계수와 오준선이 태어난 곳이며, 나주오씨 문중의 집성촌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도림하길 33
덕양서원(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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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곡성군역사관광

덕양서원(곡성)

평산신씨 시조이며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 ~927) 장군의 유적이다. 신숭겸은 왕건을 도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워 개국 일등공신이 되었다. 덕양사는 선조 22년(1589)에 창건하여 신숭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불타고 선조 36년(1603)에 신실이 중수되었으며 현종 6년(1665) 이전의 서원 규모로 모두 중건되었다. 이후 1695년에 덕양이라는 사액을 받아 선현배양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폐되었다가 1934년 지방유림의 공의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강당, 동재인 연서재와 신실인 덕양사, 서재인 신덕재, 전사청, 그리고 외삼문, 내삼문 등이 있다. 유적 및 유물로는 덕양서원 건사사적비와 강당과 연서재의 내부현판 19개가 있으며 출생지인 용산재와 함께 도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곡성 버스터미널 기준 차량으로 7분, 4㎞ 거리의 덕양서원길 끝에 위치하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오곡면 덕양서원길 42
대원사(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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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보성군역사관광

대원사(보성)

대화사는 신라 지증왕 때에 아도화상이 창건했으며, 그 후로 고려시대 조계 제5세 원오국사가 중건하였다. 대원사는 천봉산 중턱에 있으며 6·25 동란 이전까지만 해도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여순반란 사건 때에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현재 극락전이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어 있고, 극락전 앞에 자진국사 부도가 있다. 근처에 백민 미술관, 송재 서재필 생가 및 기념공원, 주암호반, 고인돌 공원과 연계되는 교육문화 탐방 루트로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문덕면 죽산길 506-8
대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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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보성군역사관광

대계서원

문강공 은봉 안방준(1573~1654)은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로서, 20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박광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도 격문을 띄워 근왕의 의기를 높이 세웠다. 대계서원은 효종 8년(1657) 지방유림의 공의로 안방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이 서원은 중앙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훼철과 복설이 거듭되었으니, 숙종 17년(1691)에 안방준사우에 대한 훼철이 결정되어 이듬해 능주의 도산사와 함께 훼철되었으며, 그 뒤 1695년(숙종 21)에 이르러 복설되었다. 숙종 30년(1704) ‘대계[大溪]’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정조 4년(1780) 화재로 전소된 것을 1784년에 중건하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보성읍 동암2길 100
남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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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담양군역사관광

남희정

남희정은 부사 황종림이 지은 정자로 북은 관어대, 남은 남희정이라 하였다. 두 정자를 지은 목적은 양로와 교육이었으며, 두 정자를 이 지역 노인들에게 사용하게 하여 노인들을 돌보고 젊은이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강학과 향약의 시행처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향약의 시행처로 정자가 사용됨은 매우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자의 구조를 살펴보면 사방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자의 내부에는 기, 명공기, 계헌 등이 걸려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내부의 가구 구조는 모임지붕처럼 중앙을 향하여 서까래와 추녀가 모이고 이 부분에 연등천장을 설치하였다. 바닥의 구성은 바닥 전체를 누마루로 깐 무실형 정자이다. 대지의 위치가 높으므로 누마루가 높지 않다. 또 3면을 평난간으로 돌린 단출한 정자이나 서까래와 부연을 둔 겹처마로 단청은 호화롭다. 차량 이동 15분 거리에 금성산성이 있고 차량으로 약 25분 거리에 소쇄원이, 차량 이동 5분 거리에 담양관방제림 관광지가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담양읍 남촌길 91-1
내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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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영광군역사관광

내산서원

조선 중기 문신인 강항(1567∼1618)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강항은 공조좌랑과 형조좌랑에 있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일본에 있으면서 그 나라의 역사, 지리 등을 알아내어 고국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일본에는 성리학을 전하였다. 선조 33년(1600) 귀국한 후 벼슬을 사양하고 독서와 후진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이 서원은 인조 13년(1635)에 나라에서 ‘용계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고 숙종 28년(1702)에 고쳐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고쳐 지었는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쪽에 교육 공간을 마련하였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마련한 전학 후묘의 배치이다. 교육 공간인 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뒤에 있는 내삼문을 지나면 강항의 위패를 모신 작은 규모의 사당이 있다. 왼쪽 산기슭에는 강항의 묘소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불갑면 강항로 101
남도한옥민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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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남도한옥민박마을

무선동 마을은 해남읍에서 5㎞ 정도 떨어진 두륜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약 30년 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한옥으로 조성된 민박 마을로 초창기에 성황리에 운영되다 잠깐 주춤하였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가족 중심의 관광이 시작되고, 시설을 보완함으로써 도시민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한옥민박 마을이다. 1977년 처음으로 한옥 민박촌으로 지정되어 16가구의 한옥 가옥을 중심으로 한옥 민박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마을 내에 있는 두륜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다. 원래 두륜사라는 이름은 마을 뒤쪽의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의 옛 이름이다. 예능에 종사하는 사람들 몇몇이 관내 학생들의 체험과 민박 손님들의 체험 활동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어 체험 마을로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문화 체험 공연으로 영화 상영과, 판소리, 장구, 북 등을 배워보는 소리체험, 전통 체험으로 한복 예절 체험과 전통차 체험, 도자기 체험, 떡메치기, 떡 만들기, 널뛰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전통 소리 체험은 국악인 채옥란 선생님 지도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옥 민박 집들은 대부분 내부가 현대식으로 개수하여,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다. 남도여행은 역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해남의 대표 음식인 떡갈비와 남도 한정식은 보기만 해도 푸짐한 상차림으로 나온다. 두륜산의 수려한 산세에서 자란 자연산 산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도 이 지역의 대표적 먹거리이므로 챙겨 먹어 보는 것도 남도 여행의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인근에 두륜산, 대흥사, 윤선도 관광지, 김남주 시인 생가 등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민박촌길 44
남강서원(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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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남강서원(강진)

남강서원은 남강사라고도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 우암 송시열(1607~1689)과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자(1130~1200), 송시열의 문인인 손재 박광일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남강서원의 유래는 송시열이 기사환국으로 인해 숙종 15년(1689)에 제주도로 유배 가게 되었는데 그때 강진의 성자포(현 남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려다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잠시 근처의 만덕산 백련사에 머물며 유생들에게 강론을 하였다고 한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순조 3년(1803)에 세운 것이 바로 남강서원이다. 당시 강진의 향유들이 도관찰사였던 한용구의 승인을 얻어 정읍 노암서원에 모셔져 있던 송시열의 영정을 백련사로 옮겨 봉안하고, 영당의 액호를 남강이라 하였는데 백련사의 영당이 남강서원의 전신이다. 헌종 4년(1838) 향림들의 발의로 사당에 주자를 정위봉향 하였으며, 1901년 현재의 위치에 신단을 설단 하여 주자와 송시열을 향사하는 한편 어필각을 건립하였고, 후에 박광일을 추배 하였다. 남강서원 왼편에 구 어필각이 있고, 그 앞으로 새로운 어필각이 신축되었다. 어필각에는 유형문화유산인 강진남강사주자갈필목판일괄이 소장되어 있다. 주자갈필목판은 순조 9년(1809)에 송시열이 제주로 유배 갈 때 배를 탔었던 성자포 앞바다로 떠내려 온 궤 안에 있던 것이라 한다. 당시 강진 현감이 이 궤를 감영으로 옮기려 했으나 궤를 수송하던 사람과 말이 남강사(남강서원) 앞에서 전복하여 더 이상 옮길 수 없게 되자 그 목판을 서원에 소장하게 된 것이라 한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28-2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과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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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과 석조여래입상

대한 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과거 운흥사와 관련된 문수암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에 1987년 다정스님이 문성암을 창건하였다. 2층 건물의 구조로 1층은 종무소로 사용하며 2층은 참회전이라 하여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외 백호선원, 지장전, 문수선원 등의 건물이 있으며 지어진지 오래되지 않았고 다른 사찰과는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아 정갈하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문성암이라는 이름대로 글을 매우 잘 하는 사람이 출현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사찰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문수는 문수대성(文殊大成)이며 여기에서 문성(文成)을 따서 암자의 이름을 지었고, 문수가 지혜를 의미하기 때문에 선원 터로 적합하다고 여겼다고 하며, 문수보살이 화현한 터라고도 한다. 문성암을 세운 다정스님은 죽림사와 운흥사를 오가며 수행할 때 문성암 앞의 커다란 소나무를 보고 사찰이 있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또 운흥사 초가에서 기거할 때 스님이 문성암 쪽에서 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꿈을 꾸고 절을 짓고자 결심하였다. 처음 터를 닦을 때 같이 일을 하던 보살이 꿈을 꾸었는데 불이 나서 그 불길이 하늘을 태웠다고 하는 길몽을 꾸었다고도 한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봉황면
나대용생가및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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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나대용생가및묘소

오륜마을 깊숙이 나대용 장군의 생가가 초가로 복원되었는데 그 초가에서 대대로 후손들이 살다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새로 단장했다. 나대용 장군은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 막하에서 거북선 건조에 전력을 기울인 실질적인 공로자로 평가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인 이순신 장군을 훈련원주부의 신분으로 찾아가 그 제작을 협의하니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았고,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북선 3척을 처음으로 진수했다 한다. 충무공과 함께 사천승첩을 비롯하여 당포전, 당항포전, 견내량전, 안골포전, 노량대첩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쾌속정인 해추선을 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충무전서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뒷받침해 주고 있다. 묘소는 생가가 있는 마을에서 약 3㎞ 떨어진 무평면 대도리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모퉁이만 돌아가면 나대용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소충사가 있다. 매년 4월21일 소충사 에서는 나대용장군 추모제가 열린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문평면 오륜길 28-5
나주 영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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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나주 영모정

나주 영모정은 중종 15년, 귀래정 임붕이 건립한 정자로 이 지방 출신의 명문장가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글을 배우고 시작(詩作)을 즐기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초기에는 붐의 호를 따 ‘귀래정’이라 불렀으나 명종 10년, 임붕의 두 아들 임복과 임진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재건하면서 ‘영모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82년과 1991년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한 무고 주 5량 가이다. 세부양식은 두벌대의 다듬돌 바른 층 쌓기의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최근에 다시 그 위에 원형 장대석 주춧돌을 세웠다. 그 위에는 아랫부분을 잘라버린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보와 장혀, 도리를 결구하였다. 굵은 보를 걸치고 동자주를 세워 마룻보를 걸치고 판대공과 파련 대공을 섞어 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설치하였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시면 회진길 14-22
김완장군묘소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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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영암군역사관광

김완장군묘소 및 신도비

조선 중기 명장 양무공 김완(1577∼1635) 장군의 묘소이다. 광해군 7년(1615)에 과거급제하여 고산진절제사 등을 거쳐 황해도 병마절도사에 올랐고, 여러 공이 인정되어 죽은 후 병조판서로 벼슬이 높여졌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 장군 아래에서 용맹을 떨쳤고, 인조 12년(1624)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묘는 원래 해남면 동북선산에 있던 것을 숙종 44년(171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묘역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세운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박세채가 글을 짓고 조명교가 글씨를 쓴 것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금곡사(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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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금곡사(강진)

금곡사는 신라 말 밀봉대사가 창건하여 성문사라 칭하다가 이 주위에 금광이 있다 하여 후에 금곡사라 개칭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다. 이후 폐사와 중창을 반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찰 옆 개울가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금광이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금곡사에는 백제 계통의 고려 양식인 보물 제829호 삼층석탑이 있는데 1985년 복원작업을 하던 중 석가세존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이 탑은 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으로 그 형식 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 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는 약간의 백제 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초반기로 추정된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의 양이 일정한 약수터에서 풀로 만든 대롱으로 물을 빨아먹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왜구를 격파한 이 고장 출신 김억추장군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금곡사로 가는 군동면 호계리에서 작천면 군자리에 이르는 19㎞ 구간은 연분홍빛 벚꽃터널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금곡사 벚꽃 길은 1992년부터 2년에 걸쳐 강진군 공무원들이 휴일을 반납해가며 직접 만든 곳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김환기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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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신안군역사관광

김환기고택

한국의 대표적 서양화가로 우리나라 전통미를 현대화시키는데 주력한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 화백이 태어난 곳으로 현재 안채와 화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환기는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제1세대 화가로 한국의 고전적 소재를 추상적 조형언어로 양식화하여 한국미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인물로, 이 곳은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 작품활동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라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와 함께 20세기 초반 전통가옥이 근대로 들어서면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실용적으로 변용되어 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안좌면 김환기길 38-1
금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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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금산원

금산원은 1842년에 창건한 언양 김 씨 원사로 감성재라 하고 위열 김취려를 주벽으로 김자수와 김성진을 배향, 삼위를 모셨다. 운영이 어려운 나주의 정열사를 1940년 경 이곳으로 옮겨 정렬사로 개명하고 김천일을 주벽으로 김자수, 김상건 삼위를 배향했다. 그 뒤 1964년 정렬사가 다시 나주로 옮겨지자 김취려를 주벽으로 모시고 김자수, 김천일, 김성진, 김상건 오위를 향사하면서 금산원으로 액호를 바꾸고 건물이 퇴락됨에 따라 1981년 2차례 중수하였다. 건물은 4동으로 강당, 신실, 내삼문, 외삼문이 있다. 김취려는 고려의 명장으로 박달제 등에서 거란군을 물리쳐 영남의 지킨 공훈을 남겼으며 현 국무총리격인 문화시중을 역임했고, 김자수는 문과에 급제 홍문관 응교 및 강진현감과 강원감사직을 끝으로 창평의 월봉산에 상월정을 건립 후학을 양성했다. 김천일는 나주에서 태어나고 이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의병을 일으켜 창의사의 군호를 받았다. 진주성에서 아들 상건과 함께 순절하였다. 김성진은 유년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임란이 일어나자 4종 형인 김천일 막하에서 아들 전, 홍과 함께 군량미를 조달 보급하였다. 김상건은 김천일 장남으로 임란 때 종군하여 진주산성 싸움에서 부자가 같이 순절하니 충효의 가문을 이루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동관덕길 81
군자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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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군자서원

군자서원은 1820년에 도내 유림과 후손들의 발의로 삼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양산김씨의 사우이다. 강진에 처음 입향한 분은 강진읍 송현에 거주한 김자정이며, 그의 아들 김명규가 작천으로 이거 하였다. 창건 이후 향사의 예로 제향 되었으며, 1824년 강당을 신축하였으나 1880년 훼철당하였다. 1962년 신실 및 내삼문 강당을 재건하고, 1993 외삼문을 신축하였으며, 2009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작천면 행정길 65-1
규봉암(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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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화순군역사관광

규봉암(화순)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작은절 이다.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신라 애장왕 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순응 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조선시대 상당한 사세를 갖추고 있던 규봉암은 17~18세기에 폐사되었다가 1729년 연경에 의해 다시 세우게 되었고, 6·25 전쟁으로 방치되었다가 1959년 대웅전과 함께 당우 3동을 지으며 현재에 이른다. 유네스코에서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광석대 돌기둥 아래에 규봉암이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규봉암을 보지 않고 무등산에 올랐다 말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난 절경 중 한 곳이다. 광석대와 규봉암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늦가을은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규봉암 주변으로 광석대를 포함 설법대, 은신대, 풍혈대, 삼존석, 송하대 등의 바위들이 사찰을 둘러싸고 있어 그 경관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규봉암에 가는 길은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서 오르는 탐방로와 주로 이용되는 증심사 코스, 그 반대편의 원효사 지구에서 오르는 3개의 코스가 있다. 영평리 도원 탐방센터에서 규봉암까지는 약 한 시간쯤 산길과 계단을 올라야 한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서면 도원길 4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