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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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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17건

조건 초기화
묘심사(부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묘심사(부산)

묘심사는 1888년 지금의 서구 토성동에서 대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임제종 포교당으로 기능했다. 일본인이 사찰을 운영하다가 해방 후에 기독교인에게 팔리기도 했는데, 당시 몇몇 신도가 성보들을 현재의 사찰 자리로 옮겼고 1960년대 무렵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 그리고 범종과 종각 등을 가지고 와서 묘심사로 다시 창건했다. 묘심사는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변에 위치하는 도심 속 사찰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삼성각, 종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식 팔작지붕이다. 대웅전에는 금동 석가여래 좌상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좌우 협시하고 있다. 또 1946년 제작한 지장시왕도와 신중도가 있다. 대웅전 옆으로 유리 보호각을 둘러 씌운 지장보살 입상이 동자를 안고 서 있다. 그 뒤편 계단 위로 삼성각이 자리한다. 삼성각 내에 칠성도, 산신도와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30㎝의 돌좌상이 있다. 지장보살 입상 옆으로 ‘ㄱ자’의 현대식 요사채가 있다.

⌖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671
마하사(부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연제구역사관광

마하사(부산)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인 마하사의 창건과 변천은 대웅전 상량문에 자세히 전하며,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사찰 건물이 모두 불탔고, 단계적으로 사찰이 복원되었다. 1970년 승려 문성이 대웅전·응진전·대방·요사·식당을 중건했고, 1985년 승려 지연이 종각을 세우고 반야암을 중창했으며, 1998년 승려 경민이 대웅전과 삼성각을 중건하였다. 마하사의 가람 배치는 산지 사찰이란 지형과 여러 차례의 개축 때문에 전통적인 가람 배치를 따르지 못했지만 좁은 경내를 잘 정리하고 있으며,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마하사 경내에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상인 마하사 대웅전 석조석가여래삼존상과 마하사 응진전 석조나한상, 마하사 응진전 목조석가여래좌상, 불교 미술의 자랑인 마하사 영산회상도, 마하사 응진전 십육나한도, 마하사 응진전 영산회상도, 마하사 현왕도 등 많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 부산광역시 연제구 봉수로 138
동래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동래구역사관광

동래향교

조선은 1392년(태조 1) 나라에서 교육진흥책을 위해 지방에 향교를 설립함에 따라 동래에도 동래향교가 설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불타버렸다. 임진왜란 이후 1605년(선조 38) 동래부사 홍준이 재건한 이후 1704년(숙종 30)에 동래부 동쪽 관노산 아래로 옮겨졌다가 1813년(순조 13)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동래부가 되었을 때 동래향교에는 종 6품의 교수 1명과 학생 70명이 있으며, 향교의 유지와 관리를 위해 학전 7 결도 지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래향교의 건물구조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반화루, 동재, 서재로 구성된 강학공간과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 서무와 내·외삼문, 사주문으로 구성된 제향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
대각사(부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중구역사관광

대각사(부산)

대각사는 부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사찰로써, 개항기 일본 정토 진종의 동원본사 부산별원으로 시작하였다. 동원본사 부산별원은 개항기 일본 불교의 조선 포교의 효시로서, 당시 부산에서 신도수가 가장 많았던 일본인 사찰이었다. 해방 후 동본원사 부산별원은 한국 정부에 귀속되었는데, 정부 관제국에서 귀속재산 처분을 할 때 이 사찰의 땅과 건물을 경매받아 경남 불교종무원으로 발족하였다가 창건주에 의해 새로이 한국 사찰로 창건한 것이 현재 대각사이다. 창건 이전의 유물은 범종과 석등만이 있을 뿐, 대웅전이나 진신사리탑은 후에 지어졌다. 현 대웅전은 중간기둥이 없는 특수한 건축공법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서 약 1천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건물이다.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중앙로 19 (신창동1가)
남부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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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역사관광

남부산교회

2022년도에 개봉한 영화 에서 베이비박스가 있는 교회 장면을 촬영한 장소로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곳으로 충분히 인상적인 모습의 장소이다. 극 중 이름은 ‘부산가족교회’였다. 언덕이 많은 부산의 지형을 잘 보여주며 40년이 넘는 역사가 쌓인 외관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길 아래로 걸어 내려오면 극 중에서 등장한 벽화와 정겨운 동네의 풍경 그리고 같은 영화 촬영 장소인 전포삼거리의 버스정류장과 공중전화 부스가 보인다.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진남로 300 남부산교회
남선창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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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남선창고터

남선창고터는 1900년 함경도에서 배로 물건을 싣고 와서 보관하던 최초의 물류 창고로, 초기에는 북선창고라 불리었으며 경부선을 통해 서울까지 물류를 운반하기 전에 보관하는 곳이었다. 이후 경원선이 생기면서 윗지방에 북선창고가 만들어지자 이름을 남선창고로 변경하였다. 부산 최초의 근대적 물류창고인 남선창고는 1900년 초량객주 정치국이 초량동에 세웠다. 냉동고가 없던 시절에 바닥에 수로를 만들어 물기를 제거하고 서늘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옆 옛 백제병원과는 달리 2009년에 철거되어 지금은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만 남아있다. 해방 전까지는 주로 명태창고로 활용되어 일명 명태고방으로도 불렸다. 이후 부산산업경제 변화의 흐름을 타고 화공약품, 합판, 신발,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의 짐, 가전제품 등을 위탁 보관하는 일반창고의 역할을 해 왔다.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13번길 53
금곡동 율리 바위그늘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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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역사관광

금곡동 율리 바위그늘유적

금곡동 율리 바위그늘유적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 평야와 마주 보고 있는 금정산 서쪽 능선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유적 뒤편에는 높이 6m 내외의 암벽이 병풍처럼 길게 둘러싸고 있는데, 유적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특별한 훼손 없이 당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72년 12월부터 1973년 1월 사이에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바위그늘 내부에 조성된 3개의 야외노지(野外爐址)와 바위그늘 바깥의 적석유구(積石遺構) 1기를 확인하였다. 바위그늘 아래쪽으로는 즐문토기 등이 포함된 패총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발굴조사로 인해 지금은 바위그늘유적만 남아 있다. 바위그늘 내부와 패총에서는 신석기시대 후기~말기 단계의 즐문토기류와 함께 마제석부(磨製石斧), 지석, 석착(石鑿), 마제석촉(磨製石鏃) 등이 출토되었는데, 출토 유물로 볼 때 신석기 후기부터 청동기시대까지 거주 공간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바위그늘주거와 패총이 복합된 유적으로 규모, 입지,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굴 등 어패류를 획득하기 위한 임시 거주지로 추정되지만, 유적 입지의 특수성이나 자안패형(子安貝形) 토제품, 타원형 토제품 등 일상용품과는 다른 성격의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의례공간(儀禮空間)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금곡동 율리 바위그늘유적은 신석기시대 말기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의 문화양상과 당시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부산은 강과 해안을 끼고 있어 패총유적이 많은 편이지만, 이처럼 산지의 바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적은 전국적으로도 율리 바위그늘유적이 유일하다. (출처 : 국가유산청)

⌖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금정산성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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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역사관광

금정산성 동문

금정산성 네 개 문루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전망이 뛰어난 동문은 금정산 주능선의 해발 415m의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민들이 가장 근접하기 쉬운 편이라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부설비의 기록에 의하면 1807년 늦가을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한 달 만에 동문이 완성되었다고 전해진다. 동문은 홍예식문[虹霓式門]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단층 문루이다. 금정산성 동문의 창건 유래를 보면, 동래부사 정현덕이 동문과 서문의 재건에 힘쓰고 있을 때의 이야기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래부사는 두 성문을 아주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인 두 석공을 찾아 스승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하였다. 동문을 맡은 스승은 야욕과 욕심이 많아 웅대하게만 짓고자 하였으나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이 앞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짓게 되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 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 공사를 하였다.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금용암(부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연제구역사관광

금용암(부산)

금용암은 쇠미산의 작은 암자로, 입구의 송림길과 함께 불국 수미산 산속에 홀로 묻힌 듯 자연과 동화되어 있는 사찰이다. 금용(金蓉)이란 금색 연꽃이란 뜻으로, 불교사상에서 연꽃과 금강석 또는 금과 함께 대표적인 불교사상의 상징을 따서 사찰명을 지었다. 조선 후기 철종 때 이인덕행이라는 보살이 1919년 10월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대봉이라는 법명을 받아 쇠미산 기슭에 기와집으로 인법당 3칸을 짓고 금용암이라 불렀다. 금용암이라는 이름은 쇠미산의 별칭인 금용산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금당인 염화전과 삼성각, 요사인 원통료·향적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2년 지은 염화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며, 안에는 석가여래 좌상을 중심으로 약사여래 좌상과 관음보살 좌상이 배치되어 있고, 뒤편에는 1993년 조성한 후불탱을 비롯하여 지장탱·신중탱이 있다. 삼성각 안에는 삼신할머니 탱화가 있는데, 불상이 아니라 여인 세 명을 그린 것이다. 이곳 삼신할머니는 오래전부터 득남을 기원하는 이들에게 영험이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절 담벽 아래 비탈길에 대봉의 상반신이 선각된 사적비가 있다.

⌖ 부산광역시 연제구 성지곡로 111
금수사(부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부산광역시 동구역사관광

금수사(부산)

금수사는 구봉산 아래 자리한 아담한 사찰이다. 금수사 계단 앞으로는 산복도로가 잘 나있으며,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좋은 도심 속 사찰로 알려져 있다. 금수사는 한국불교원효종의 총본산으로도 유명하다. 2003년 입적한 원효종 종정 법홍스님이 주석한 이곳에는 원효대사의 유지와 종풍을 받들고자 하는 수많은 사부대중의 귀의처로서 자리매김하였으니 산중이 아닌 일반 백성들 속에 중생들을 깨우쳐 주고자 했던 원효대사의 화쟁 무애사상이 빛나는 사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불교가 낳은 불멸의 성사 원효대사의 유지를 받들고, 호국일념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사명대사의 족적이 남아 있는 곳, 구계산 금수사는 이러한 역사적 터전 위에 지금 불법홍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또한 금수사 경내에 호국영각을 짓고 기미년 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과 안중근, 김좌진, 안창호, 윤봉길 등 애국독립지사 22인의 위패를 모셔 매년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으니 호국도량으로서의 그 위상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533-1
기장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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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역사관광

기장향교

기장향교는 조선 광해군 1617년에 처음 지어졌다. 1855년의 성묘중수기(聖廟重修記)가 남아 있는데, 지금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이때 지어진 것이다.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뒤로한 전학 후묘의 공간 구성을 이루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서재, 풍화루,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앞면 세 칸, 옆면 세 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양쪽칸은 온돌방이고 가운데 3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차성로417번길 35
금강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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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역사관광

금강사(부산)

금강사는 대승불교의 금강반야 정신을 실천 수행하는 사찰로, 1951년 월명법사가 창건했다. 그 후 일붕 경보대종사께서 이곳에서 안거했으며 역경, 포교, 도제, 국제불교포교, 교육도량, 전법의 초지 가람이었다. 1964년부터 개산 혜성선사가 금강사에서 도량을 승계하고 중흥불사를 계속하여 국제 불교포교의 근본도량으로 세계속에 알려진 사찰이 되었다. 금강사는 금정산 남쪽 기슭 명당에 자리했으며 많은 고승들이 은거 수행하여 온 비산비야의 수행처이기도 하다. 금강사는 주변 환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노송들이 자욱하고 솔밭향기로 가득하며, 대중문화가 함께하고 있는 차밭골 문화가 있어 시민들이 차 한잔을 하면서 쉬어 갈 수 있는 운치 있는 사찰이다.

⌖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211 (온천동)
국청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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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역사관광

국청사(부산)

국청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 숙종 29년 금정산성 축조와 함께 중수하여 이름을 국청사라 칭하고 순조 26년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청사지(國淸寺誌)에 '국청사에는 동래 부사 송상현, 부산진 첨사 정발, 다대포진 첨사 윤흥신 등과 함께 승장 만홍, 정안, 성관, 관찰 등 수백 명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음을 비추어 볼 때 임진왜란 때 이미 의승군의 숙영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703년 금정산성이 개축되면서 국청사와 해월사(海月寺)를 지었다. 국청사는 최근 들어 중창을 거듭하였다. 1978년 삼성각을 지었고, 1982년 승려 창봉과 혜성이 경내에 있는 연못 중앙에 3층 석탑을 조성하였다. 1992년 대웅전을 지었고, 1998년 요사를 지었으며, 2010년 일주문을 건립하였다. 국청사에는 조선 시대 승병장이 사용하던 금정산성 승장인이라는 철제 도장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자료를 통해 승군 작대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국청사와 해월사 모두 산성을 방어했던 호국 사찰로, 국청사에는 산성을 지키는 승병장이 거주하여 전략 기지의 역할을 한 의승군의 사령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42
관음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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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역사관광

관음사(부산)

도심 안에 자리 잡은 관음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부산 분원이다. 학을 타고 있는 산이라는 뜻의 승학산에 1940년 5월 1일 승려 일련이 관음사라는 조그만 조막을 지어 수행하고 포교하면서 건립되었다. 이후 요사채를 건립하고, 법당과 후원을 짓고 도량을 넓혀 1984년 승광사 부산 분원으로 등록하였다. 관음사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묘법연화경 권4~7을 소장하고 있다. 구마라집이 번역하고 계환이 주해한 것을 저본으로 조선시대 명필인 성달생, 성개 형제가 선친의 명복을 기원할 목적으로 정서한 법화경을 판하본으로 하였다. 1405년에 전라도 도솔산 안심사에서 도인 신문이 주관하여 목판으로 새긴 것을 후쇄한 것인데, 초간본이 아닌 그리 오래되지 않은 후쇄본임을 알 수 있다. 전체 7권 2책 중 권 4-7의 제2책만 남아 있는 결본이며, 책은 전반적으로 아래위에 습기로 인한 침수 흔적이 일부 있다. 관음사 소장 묘법연화경은 조선 전기인 태종 때에 판각·인쇄된 것으로 조선 전기 불경 및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불교사적, 서지학적 가치가 뛰어난 유형문화유산이다.

⌖ 부산광역시 사하구 제석로79번길 33 (당리동)
관수옥과 초량왜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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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역사관광

관수옥과 초량왜관 터

관수옥은 초량왜관의 우두머리인 관수가 머물던 곳이다. 당시에는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쪽이 가장 먼저 시가지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는데, 바다에서 배를 대는 선착장이 가깝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배로 들어와 동쪽을 중심으로 살기 시작했고, 관수옥을 지나 왜관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관수옥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도 돌계단이 남아있다. 초량왜관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무역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용두산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초량왜관은 안에는 신사를 비롯하여 일본인들의 편의 시설이 가득했다. 지금은 공원으로 들어가는 세 군데의 진입로가 만나는 지점에 초량왜관 터라는 비석이 놓여 있어 예전에 이곳이 초량왜관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37-55
경상좌수영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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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역사관광

경상좌수영성지

경상좌수영성지는 경상도 옛 수군의 본영이었다. 좌수영은 조선시대에 동남해안을 관할했던 군영으로 예로부터 남쪽 지방이 지리적인 요인으로 잦은 왜구의 침략으로 피해를 받자,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부산에는 경상좌수영을, 통영에는 경상우수영을 세워 남쪽의 방위를 책임졌다. 원래 좌수영은 남구 감만동에 있었는데 태종 때 울산 개운포로 이전했다가 임진왜란 직전에 현재의 수영동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좌수영성의 축조연대는 정확하지 않고 1692년에 개축한 것이라 한다. 좌수영의 동, 서, 남, 북에는 영일문, 호소문, 주작문, 공진문이라 불리는 4개의 문이 있었으며, 일정한 시각에 폐문루, 관해루에 달아둔 북을 울려 여닫았다. 그밖에 3개의 우물과 4개의 배수구, 옹성, 치성, 보루 등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파손되어 현재는 성벽임을 짐작하게 해주는 돌 터와 홍예문, 배수구, 그리고 성의 존재를 짐작하게 하는 남문만이 자리하고 있다.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
감천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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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역사관광

감천사(부산)

감천사는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지하 암반에서 1년 내내 물이 솟아올라 인근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하였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감천사는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묘봉산 자락에 위치한 자그마한 비구니 스님의 수행도량이다. 연제구의 주산인 배산 서쪽 묘봉산의 완만한 능선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중생들의 목마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원력으로 창건된 탓에 연산동 주거단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감천사의 물맛은 연제구청에서 공인한 연산동 약숫물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도심사찰로 이름나 있다. 또한, 부산의 대표적 도심 포교도량인 혜원정사와 좁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 감천사는 약숫물 외에도 대웅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의 기도성취가 크다 하여 관음기도도량으로도 이름 높다. 비록 사세가 작고 창건의 역사 또한 짧지만 기도객들의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졌다.

⌖ 부산광역시 연제구 묘봉산로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