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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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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월봉서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김해 월봉서당

김해 월봉서당은 1917년에 세운 유학 교육 시설이다. 처음에는 현재 관동중학교가 있는 곳에 세웠으나 1917년에 지금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이곳에서 영남 지역 기호학파의 맥을 이어 학생들을 가르친 월헌 이보림 선생을 기리기 위해 사당인 명휘사를 세웠다. 월봉서당은 앞면 다섯 칸, 옆면 두 칸의 규모로 홑처마를 갖추었고 기둥이 직접 보를 받치는 납도리집이다. 넓은 방과 높은 천장 등이 근대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곳에는 조선 후기 유학자인 간재 전우의 초상화, 편지, 연보와 석농 오진영의 편지, 연보, 문집, 강록, 유기 등 891점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 경상남도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16 (관동동)
김해 산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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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김해 산해정

김해 산해정은 조선 전기 유학자인 남명 조식이 30세부터 45세까지 처가인 김해에 살며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정립하고 제자를 길렀던 곳이다. 남명 조식의 경에 바탕을 둔 정신 수양과 의를 기반으로 한 실천 정신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의 제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산해정의 ‘산해’는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라는 뜻으로, 학문을 닦아 경지가 높아지면 생각과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광해군 1년(1609)에 강당과 사당을 갖춘 ‘신산서원’이 이곳에 창건되었으나 고종 8년(1871)에 서원 철폐 정책으로 철거되었다, 이후 1890년에 산해정이 다시 세워졌고, 1999년에는 사당인 숭도사가 복원되었다. 숭도사에는 남명 조식의 위패와 더불어 그와 교류했던 송계 신계성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산해정은 동부 경남의 유적 중 남명 조식과 관련한 유일한 유적이며, 그의 학문과 사상이 정립되던 시기의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산해정길 123-26
기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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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역사관광

기양서원

기양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주세곤, 주선원, 주각, 주재성, 주도복 등 다섯 사람을 추향하기 위하여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에 창건되었다. 기양서원 인근 주재성의 생가에는 무기연당이라는 조선후기 연못이 아직 남아 있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로 관군들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덕을 칭송하여 마을 입구에 창의사적비를 세우고 기양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 현재의 무기연당 내에는 연못을 중심으로 풍욕루, 창정각, 충효사, 하환정이 있다.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1길 33
기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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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의령군역사관광

기강서원

기강서원은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식성군 이운용(1562~1610) 장군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유림과 후손들이 건립한 서원이다. 장군의 묘소는 원래 고향인 경북 청도군 법귀산에 안장되었으나, 인조 8년(1630년) 장자인 이엄(평택 현감)이 의령군 지정면 오천리 산 30-1로 이장하였다. 이에 경남지역 유림에서는 장군의 묘소 앞에 서원을 건립하기로 합의하고 정재를 모아 1950년 4월 통영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열사 앞에 이운용의 기적비를 세웠다. 서원 건립은 6.25 전쟁으로 지연되었다가 1959년 방후손, 이기환이 유림과 상의하여 식성군유적보존회를 결성하고, 기강서원 건립에 착수하였다. 이때 정부에서 윤보선 대통령과 백낙준 참의원의장, 장면 국무총리, 곽상훈 민의원의장 등 삼부 요인을 비롯한 저명인사의 거국적인 의연금이 답지하였고, 경남지사 이중헌과 교육감 이윤근 등의 주도하에 원활한 재정 지원이 이루어져 서원이 건립되었다.

⌖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오천리
김해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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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김해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김해향교의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김해읍지』에 의하면 옛 김해부 동쪽 다전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향교가 있던 산이 무너져 숙종 14년(168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사 지내는 곳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일반 향교의 배치와 비슷하다. 정문인 풍화루는 누형식의 건물이 아닌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된 1층 건물로 지어져 특이하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제사만 지내고 있다. 김해지방 향토사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향교이다.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50번길 21
금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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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금호재

금호재는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병조판서를 지낸 금헌 이장곤 선생의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다. 이장곤 선생은 조선 중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죽은 뒤 창녕의 영암서원에서 제사를 모셨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영암서원도 사라지게 된다. 원래 금호재는 용흥사의 부속건물이었다. 용흥사가 1695년까지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적어도 17세기 후반의 건물로 생각되며, 연꽃무늬의 공포와 망와에는 ‘병오년 9월 11일’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어 제작 연대를 추정케 한다. 금호재를 2차례에 걸쳐 옮긴 후 1966년 이곳으로 옮겨지어 이장곤 선생의 제사건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대청과 온돌방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방의 출입문은 기능적인 면과 장식적인 면 모두를 갖춰 아주 실용성이 돋보인다.

⌖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대동길 33
김해 수로왕비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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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김해 수로왕비릉

김해 수로왕비릉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의 무덤이다. 허황옥은 원래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하늘의 명을 받아 16세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수로왕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수로왕릉과는 다르게 평지가 아닌 언덕에 지어진 점이 특이하며, 근처에 굴식 돌방무덤 구조인 김해 구산동고분군이 위치해 있다. 무덤에 딸린 부속건물로는 숭보제, 외삼문, 내삼문, 홍살문이 있다. 왕비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정문인 구남문과 능 앞에 세우는 홍살문이 있다. 무덤으로 가는 오른편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숭보재가 있으며, 왕비릉 앞에는 능비가 있다. 왕비릉 앞에는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 파사석탑의 석재가 남아 있다. 이 파사석탑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배를 타고 가락국으로 건너올 때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싣고 온 것이라 한다. 왕비릉은 높이 5m 정도의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주위에는 얕은 돌담을 4각형으로 둘러 무덤을 보호하고 있으며, 앞 쪽에는 긴 돌을 사용하여 축대를 쌓았다. 중앙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이라는 글이 2줄로 새겨져 있다. 세종 28년(1446)에 수로왕릉과 함께 보호구역이 넓혀졌으며,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비석과 상석 등은 인조 25년(1647)에 다시 정비하면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왕릉에 비해서는 시설이 소박한 편이고 수로왕비릉이라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으므로 수로왕릉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본다면 내부의 구조는 널무덤(토광묘) 또는 돌덧널무덤(석곽묘)일 가능성이 높다. 매년 봄가을 숭선전 제례 때 수로왕릉과 함께 제사가 거행되며, 매년 음력 9월 15일에는 김해문화원에서 주관하는 허황옥에게 차를 올리는 황후릉 헌공다례가 개최되고 있다.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90번길 1 (구산동)
구조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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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역사관광

구조라성

조선 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전방의 보루로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의 길이 860m 면적 8,235㎡이다. 구조라 앞산 능선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성문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 있다. 성 아래쪽에 구조라 마을이 있다. 조선 1490년 성종 21년에 축성하기 시작하였고 지세포성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지리지 등 각종 문헌상의 내용이나 기록되어 있는 축조 수법을 살펴보면 조선 전기에 축조된 것으로 일정하게 나타나 있다. 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최근 근포동굴과 함께 인생 최고 장면 사진을 남기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거제의 핫플레이스이다.

⌖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로8길 7-1
국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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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국산서원

행촌 이암(1297∼1364)의 8세손인 방촌 이당(1567∼1644)을 제향하기 위해 1980년에 고성이씨 후손들이 건립한 서원이다. 이당은 원래 청주 구계서원에 동고 이준경, 낙재 서사원, 수암 박지화, 서계 이득윤 등과 함께 제향되었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고성이씨 후손들이 모여 사는 동해면 외곡리에 국일사를 창건하여 제향하였다. 후에 건물이 낡고 기울어져 후손 이경철과 이원수가 주관하여 1980년에 새로 중건하였는데, 이전에 비하여 규모가 더욱 커졌다. 서원의 규모는 강당 4칸, 사당 3칸, 문랑 3칸과 포사 등의 부속 건물이 있다. 사당인 경의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며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 외곡1길 151-44
구천서원(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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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구천서원(함양)

함양군 수동면 효리에 위치한 구천서원은 1701년(숙종 27년)에 창건하여 춘당 박맹지(朴孟智), 남계 표연말(表沿沫), 일로당 양관(梁灌), 금재 강한(姜漢), 구졸암 양희(梁喜), 우계 하맹보(河孟寶)를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사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으나, 후손들이 계를 모아 불망계라 하고 유허에 비를 세웠다. 1919년 구천재(현 서원의 우측 동산)를 지어 매년 작헌례를 행하여 오다가 1984년에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제사는 매년 음력 3월 두 번째 정일에 지낸다.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효리길 30-17
구천서원(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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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구천서원(김해)

김해시 상동면에 있는 구천서원은 조선 중기 때 학자였던 가락국 시조왕의 후예 죽암 허경윤(1573~1646)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1822년(순조 22)에 지금의 외동인 거인리에 창건하였으나, 습지로 인하여 다음 해 왕후릉동편에 이건하여 매년 음력 3월 10일에 향례를 올리던 중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1898년 유림과 후손들이 중산학계를 창설하여 이곳 애춘재에서 덕행을 기리며 학맥을 이어오다 1996년에 서원을 복원하였다.

⌖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상동로 274-12
구암서원(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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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역사관광

구암서원(창원)

구암서원은 1858년(철종 9)에 구연사라는 사당으로 창건되어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1968년에 문중의 사업의 하나로 복원되었고 2004년에 서원의 재정비가 이루어져 추모재와 신여당이 새로 지어지며 깨끗하게 정비되었다. 구암서원의 배향 인물은 세종 때 성균관 대제학과 의정부 찬성사를 역임한 문정공 정이오 선생(1347~1434)과 아들인 충장공 정분 선생(?~1454) 두 부자이다. 시설은 강당 4칸, 사우 3칸, 추모재 2칸, 유사실, 관리사, 정문 3칸 등이 있고 강당 전 면에는 구암 서원, 안쪽에는 구암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동재는 신여당, 서재는 추모재이고 강당을 중심으로 사우는 서쪽에 배치되어 서묘동학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북4길 7-10 (구암동)
관음정사(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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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관음정사(김해)

관음정사는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 평지마을 불모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도시의 삭막함과 세속의 번뇌를 벗어나 산사에서 일상생활 체험을 통해 조용히 자신의 내면세계를 성찰하고 자아발견의 계기를 마련하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템플스테이 종류로는 휴식형과 맞춤형이 있다. 휴식형은 사찰의 주요 일정인 예불, 공양, 운력 등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산책, 등산, 명상, 도자기공예체험 등 자유롭게 활용하는 형태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다. 맞춤형은 기업이나 각 기관, 단체, 학교 등에서 단체의 특성에 맞게 효과적인 진행을 위해 각 단체별로 원하는 내용으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연수교육 등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관음정사에는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김해 관음정사 소조보살좌상’이다.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보살상으로 토제의 소형 보살상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고 전통적인 소조 기법으로 제작되어 희소성과 예배대상물로서의 빼어난 조형미를 지니고 있는 등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또 다른 문화유산자료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영혼들에게 지내는 불교의식을 모은 책인 ‘김해 관음정사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이다. 이 책은 1637년에 출판된 것으로 조선시대에 유행한 전적류으 파악과 다양한 지방본을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조선후기 천도재(죽은이의 영혼을 극락에 보내기 위해 치르는 의식)의 변천사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높다.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평지길 299
구니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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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구니서당

구니서당은 300여 년 전 김굉필의 후손들이 세운 것으로, 봉선소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그 뒤 묘각이나 서당으로 사용하였다. 조선 고종 3년(1866)에는 김굉필의 둘째인 김찰휘 언상공을 비롯한 4명의 위패를 모시고 서원으로 지었으나,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 1916년 규모를 넓혀 지금의 정당을 중수하였고, 사현사는 1943년에 창건한 건물을 1986년부터 9년에 걸쳐 동·서재 및 문루와 함께 중창하였다. 경내에는 정당을 비롯하여 사당, 동재, 서재, 문루, 관리사 등이 있다.

⌖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창밀로 506-30
구계서원(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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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역사관광

구계서원(사천)

구계서원은 사천읍 구암리 만죽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학자인 구암 이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구암 이정은 중종 31년(1536)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거친 문신이자 학자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후진양성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이 서원은 선조 39년(1606)에 세웠으며, 광해군 3년(1611) 사당인 구산사를 세웠다. 숙종 2년(1676)에 ‘구계’라는 현판을 나라에서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경종 3년(1723)에는 성옹 김덕함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으며,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던 것을 1931년에 다시 세웠다. 서원 안에는 대관대, 사당,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구암두문로 361-17
광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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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밀양시역사관광

광천서원

광천서원은 안명하 선생(1682~1752)의 제향을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안명하 선생은 본관이 광주이고, 자가 국화이며, 호가 송와로 조선 단종 때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밀양 삽포리(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로 전거 한 안억수의 9 세손이다. 안명하 선생은 평생 출사하지 않고,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고 연구하여 성리학과 예학의 경지가 높았으며, 대학자 이상정(1711~1781), 정만양(1664~1730)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 『송와집』, 『배운록』 등이 있다. 강당은 5칸이고 ‘광천서원(廣川書院)’이라는 편액이 있다. 사우는 ‘숭효사(崇孝祠)’로 3칸이다. 내삼문은 ‘상례문(尙禮門)’이다.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사포중앙1안길 7
광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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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광제서원

남양 홍씨 홍의와 홍관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며, 홍의(?~1356)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무신이고, 홍관(?~1126)은 문신이며, 서예가로 예부상서 등 여러 벼슬을 거쳤다. 세울 당시에는 선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기능만 담당하던 홍복사로 세웠다가, 영조 23년(1747) 홍지암으로 이름을 바꿨다. 홍지암 상량문에 의하면 1891년 중수한 기록과 함께 모원재로 개칭되면서, 남양 홍씨 문중에서 재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1976년 영남 유림에서 광제서원으로 격상시켜 매년 음력 3월 10일 고려 은청광록대부상서 홍의와 고려 금자광록대부 수사공상서보문각태학사 홍관, 양위에게 춘향을 올리고 있다. 건물 6동 모두가 각각 특색 있는 건축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고려 초기 건축양식을 대표할 수 있는 건축물로 보여 보존 가치가 높다. 광제서원은 정면 5칸의 맞배지붕이고, 경충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아름다운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광제서원에 들어서는 진입로의 입구에는 남양 홍씨 인물 중 이 지역에 임관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비가 세워져 있어 광제서원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광제산로685번길 116
관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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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관산서당

창녕 관산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로 전면의 반칸을 퇴칸으로 한 축조한 형식이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우측방의 전면 툇마루는 한단 올려 대청과 높이가 다르게 시설하였다. 방의 창호는 모두 세살문을 사용하고 있다. 좌측방에는 두 짝, 우측방에는 외짝의 세살문을 달았고 대청의 뒷벽에는 판장문을 달아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소박한 형태이다. 3량 가구 형식으로 중앙부에 대들보를 걸고 전면의 퇴칸에는 퇴보를 걸어 연결하였으며 큰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박공지붕 형식이다. 건립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1900년 전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퇴칸의 사용이나 간결한 가구기법 및 장식적 기법 등 조선후기 건축양식과 기법을 볼 수 있는 건물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무엇보다 창녕지역에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월미상월길 115
관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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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관룡사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태종 원년(1401)에 대웅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며, 광해군 9년(1617)에 다시 짓고, 영조 25년(1749)에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관룡사 내에는 대웅전,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약사전(이상 보물), 관룡사 약사전 3층석탑(유형문화재), 부도 등의 많은 불교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다.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1
계원사(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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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역사관광

계원사(양산)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소속 사찰인 계원사는 사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구전에 따르면 가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가 1924년에 중건된 것으로 파악된다. 사찰의 유래와 관련하여 옛날부터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계원사에서 양산시가지를 향해 서서 왼쪽을 바라다보면 가까운 능선 끝에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의 이름은 닭바위라고 한다. 옛날에 계원사 아래 삼동리 마을사람들이 새벽이면 닭바위 위에서 나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새벽을 열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그 닭들이 물을 마셨다는 닭우물도 있다. 계원사 대웅전은 낮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에는 창호문을 달았으며, 중앙 어칸에는 3분합문, 좌·우 협칸에는 2분합문을 달았다. 측면에는 한 짝의 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나머지는 벽체로 처리하였다. 중앙 어칸과 협칸은 모두 격자 문양의 살창이다. 기둥머리에 결구된 창방 위에는 2익공의 비교적 간결한 공포를 마련하여 지붕의 하중을 받도록 하였다. 2003년에 요사채 옆의 절개지 작업 도중 신라시대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출토된 7점의 완형 토기들은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중앙우회로 66-64 (중부동)
계승사(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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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계승사(고성)

태고의 신비로움과 암벽의 경이한 모습을 품고 있는 공룡의 나라 고성 금태산 기슭에 자리한 계승사는 시간의 흔적만큼이나 계승사 바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억 년 전 이곳이 공룡들의 땅이라고 증명하듯 초대형 공룡 발자국을 남겨두었다. 또 거대 암반 위에는 파도가 밀려가면서 모래사장에 만들어내듯 한 물결무늬 화석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승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기암괴석은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는가 하면, 태고의 빗방울이 남긴 자국까지, 그야말로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품이 따로 없다. 용두봉에서 발원하여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로 흐르고 있는 석간수는 그 옛날 매일 부처님의 공양미로 올릴 석 되 두 홉의 공양미가 쏟아졌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맑고 청정하다. 금태산 계승사에서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삼남도를 내려왔다가 이 절에서 수행하며 조선 창건의 꿈을 키웠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자신의 수행한 산의 이름에 ‘금’ 자를 붙여 하명했는데, 바로 고성의 금태산(金太山)과 남해의 금산(錦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조용히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신라 천 년 고찰 계승사는 천연 자연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그 호젓함을 더해주고 있다. 번잡한 시가지를 벗어나 조용한 여유를 찾고 싶다면 바위 위 계승사 법당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 소리와 풍경소리가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 대법3길 236
고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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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역사관광

고불암

해인사 고불암은 1200년 역사를 가진 해인사의 산내 암자로서 해인사 암자 중 가장 높은 해발 900m에 법당이 있으며, 전체적인 건축구조와 형상이 산내 암자 중 해인사와 가장 비슷하며 전통적인 목조건물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통사찰식 목조건물은 법당을 중심으로 양옆에 육화당, 벽안당이 있고 앞으로는 고불루가 있다.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5길 194
곤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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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역사관광

곤양향교

곤양향교의 창건연대는 명확하게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곤양군이 세종 원년(1419)에 군으로 승격되었음을 상기할 때 향교도 세종시대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중종(中宗) 25년(1530)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곤양군조에 의하면 "관원은 군수·훈도 각 1인씩이다."라는 기록을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득강이 곤양군수로 부임한 후 그의 많은 업적 가운데 특히 향학에 힘써 많은 유생)을 길러 내었다 한다. 그 후 명종 1년(1546)에 군수 노진이 부임해 와서 처음으로 정동)에 터를 잡아 문묘를 지었다 하였으므로 이 향교 역시 전학후묘형의 소설위 향교임을 알 수 있다. 현종 4년(1663)에는 군수 박영계가 범동으로 옮겼고, 순조 7년(1807)에는 군수 신오가 부임해 와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대성전, 대성문,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등 9동의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대성전 좌우에 동·서 양무가 없고, 대성전의 위치 또한 명륜당 뒤의 오른쪽에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어 두 영역이 완전히 분리된 배치를 보이고 있다.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앞에 있고, 사당인 대성전과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해 왔으며, 문묘의 위차위패를 모시는 순서)나 향사 등은 모두 사천향교와 같다.

⌖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향교길 43-31
고성장산리허씨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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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고성장산리허씨고가

경남 고성 장산리 허씨고가는 조선 고종 2년(1865)에 건축되어 허씨 4대 선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사당과 안사당, 가옥 한 채와 2층 건물로 이루어진 구조로,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건축된 한식 전통가옥과 화식주택이 혼합된 대표적인 가옥으로써, 건축구조형식과 건축재료 및 평면 구성이 복합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건물 배치는 안채, 안사랑채, 바깥사랑채, 솟을대문, 가묘, 광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면 4칸 초가집의 안채는 퇴락하여 헐리고 초석과 기단만 남아 있다. 안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 한식토기와의 우진각지붕으로 안채 전면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안사랑채 뒷면의 안마당은 앞면과 사랑 마당으로 구분되어 독립된 대청 공간을 배치한 평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가옥은 1912년에 지은 집이고, 손님 접대나 서재로 사용하고 있다. 2층 건물은 현재 집무실로 사용 중인데, 가옥과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장산길 21
고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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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역사관광

고현성

거제 고현성은 축조당시 사등성의 인구가 늘어나자 문종 1년(1451)부터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단종 1년(1453) 완공한 읍성이며, 성의 둘레는 921m, 높이 4m이며, 동·서·남쪽 세 방향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성문 앞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만들어 적으로부터 성문을 완전히 보호하였으며,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를 설치하여 방어를 강화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읍성의 형태이다. 고현성은 임진왜란으로 함락되어 현종 4년(1663) 거제면으로 읍치를 옮길 때까지 210년간 읍성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성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고현지역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지금은 600m 정도의 성벽만 남아있다.

⌖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경충사(정기룡장군유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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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역사관광

경충사(정기룡장군유허지)

진양정공 보국숭록대부 충의공 정기룡 장군의 사당이다. 정기룡의 호는 매헌이고 조선시대인 1562년(명종 17)에 출생하였으며 1622년(광해군 14) 2월 한산도 통제영에서 삼군 통제사 재임 중 세상을 떠났다. 정기룡은 무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당시 경상 우도방어사 조경 장군이 적에게 포로가 되자 구출에 성공하여 장군의 명칭을 얻었다. 그 뒤에도 크고 작은 싸움터에서 80여 회의 승전을 거듭하였다. 광해군 때 지중추부사, 오위도총부총관, 도총관, 삼도 수군통제사를 거쳐 보국숭록대부에 이르렀다. 사당은 장군의 충의를 이어가고자 지방 선비와 후손들이 1932년에 건립하였으며, 장군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1989년 이후 경충사 성역화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하동군 청소년 수련마을이 마련되어 있다.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경충로 503-14
경남 하동 악양면 [슬로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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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역사관광

경남 하동 악양면 [슬로시티]

슬로시티는 느리게 살기 미학을 추구하는 도시를 가리키는데 2009년 2월 6일 슬로시티 국제조정이사회에서 하동군 악양면이 상정되어 우리나라 다섯 번째의 슬로시티로 인증받았다. 하동 악양은 세가지의 향기가 있다. 평사리 최참판댁의 서희가 악양의 넓은 논두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소설 속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동은 섬진강과 함께 여러 지류가 있어 안개가 많고, 다습할 뿐 아니라 일교차가 커서 차나무를 재배하기 쉽고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토질을 가지고 있다.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악양서로 357
거창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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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향교

1415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이후 대성전을 설립하고 1572년에 현감 서의가 중건하였으며, 1574년에는 현감 장문한이 명륜당을 건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3년에 대성전을 중건하고 1714년에는 현감 김시빈이 대성전 앞에 춘풍루를 건립하였다. 1748년에 도유사 김천분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809년에 도유사 이상조가 중건하였다. 1840년에 도유사 이준옥과 재임 변윤석, 어재의 등이 협의하여 동재와 서재를 중수하였으며, 1799년에는 부사 이성이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중수하였다. 그 뒤 1948년 군정법령에 의해 향교의 재산이 향교재단으로 귀속되고 1950년의 농지개혁법으로 전답이 분배되어 계속 황폐해지다가 1974년 향교직제에 따라 중건 및 보수가 시작되어 1976년 전면 복원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성산길 34
거창 요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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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요수정

요수정은 요수 신권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805년 후손들이 수승대 건너편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상량문에 1800년대 후반에 수리한 기록이 있다. 요수정은 수승대 건너편 솔숲에 부속건물 없이 홀로 세워진 중층의 정자이며,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면 어칸의 배면에 1칸의 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로 구성하였다. 요수정은 자연 암반 위에 바로 세운 건물로 초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특별히 기단을 조성하지는 않았고, 배면 쪽에 경계의 표시와 굴뚝을 겸하는 낮은 돌담을 쌓았다. 수승대의 경치를 감상하고, 시회와 교육 등을 위해 솔 숲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전통정자 건물로 형태가 매우 아름답다. 산간지역의 기후를 고려하여 정자의 내부에 방을 들이고 있어 이 지역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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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

거창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에 황고 신수이가 입향하면서 번성한 거창신씨 씨족마을로 마을의 생성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영조 이후 인물이 연이어 배출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어귀에는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폭 5m 이상, 높이 15m 이상의 수령 600년에 달하는 고목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이 고목을 안정좌 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을은 대체로 평탄하며 마을 동측에 흐르는 호음천을 중심으로 큰땀과 동촌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며 규모와 형식면에서 월등함을 보여주는 시도민속자료 거창 황산마을 신씨고가 등의 지정문화유산은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마을 전체는 약 50여호로 거의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으며 이렇게 한 마을 전체가 모두 기와집으로 무리지어 있는 것은 이른바 씨족부농촌으로 소작마을을 별도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담장은 대개 토석담으로 담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진흙을 사춤하지 않고 대부분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우수를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석으로 메쌓기 한 위에는 하부의 자연석보다 작은 20㎝ 내외의 돌을 담 안팎에 사용하여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고 대부분 담장 상부에는 한식기와를 이었으며 또한 근년에 쌓은 담장은 기존 담장과 달리 엇쌓기를 하였다. 마을의 시한당 앞 연못은 일반적인 한국 전통의 연못양식인 방지원도형이 아닌 원지방도형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특하다. 전반적으로 전통고가와 어우러진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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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

금귀봉의 동남쪽으로 뻗어있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는 무덤으로 이 일대는 석장골 또는 재궁골이라 불리던 곳이다. 고분의 모양은 능선 상의 좁은 평지 위에 방형으로 지대석을 설치하고 그 위에 호석을 올려놓고 봉토를 쌓은 방형호석 형태이다. 석축의 동쪽, 서쪽에 2구의 석인이 있는데 동쪽 석인은 두관을 착용한 문인석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형상이다. 서쪽의 석인은 가슴 윗부분이 절단되고 하반신만 남아 있으나 동편과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 근처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일반인들의 무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둔마리고분은 발견 당시에는 파괴가 심하였으나 지금은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무덤 내부 구조는 상자형 쌍돌덧널로 먼저 땅을 판 후 판석으로 벽을 두르고 그 안에 덧널을 설치한 굴식돌방무덤으로 서쪽에 있던 덧널에는 나무로 만든 널이 1개가 들어 있었으며 동쪽 돌덧널은 비어 있었다고 한다. 양쪽 돌덧널 모두 벽면에 회칠을 하고 흑·녹·갈색으로 인물을 그린 벽화가 있고, 동쪽 돌덧널의 동쪽 벽에는 선녀 6명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북쪽 벽에 글자가 희미하게 나타나 있다. 서쪽 돌덧널의 서쪽 벽에는 여자 두 명, 남자 한 명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벽화의 내용은 악기 연주 그림으로 붓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생기가 있으며, 불교의 사상이 중심이 되면서 도교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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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요수 신권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 후, 이 마을은 거창 신씨의 집성촌으로 번창해 왔다.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이 집은 1927년 신도성이 건립한 근대기 주택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 당시 이 집의 주인은 큰 지주였다고 하는데, 이 집은 그러한 집주인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모두 경남 지방의 일반적인 주택 양식인 홑집 대신에 겹집의 팔작지붕으로 지어 집주인의 부와 권위를 드러내고 있으며, 사랑채는 궁궐이나 절에서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몄다. 잘 다듬은 커다란 돌로 쌓은 받침돌과 기둥을 받친 주춧돌 위에 설치한 기둥 자리 등은 조선 중기 이전에는 벼슬이 높은 양반 집안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 밖에 안채와 그 건물을 둘러싼 크고 화려하게 지은 부속건물들도 집주인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안채의 늘어난 방 수, 좁아진 대청, 집안에 들어선 화장실 등은 전통의 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20세기 초 실용성을 중시하던 가옥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가옥은 격식의 해체, 실용성의 증가, 심화된 경제적 계층화 등 복합적인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
개평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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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개평한옥마을

함양의 중심에 위치한 개평한옥마을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들 배출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선비마을로 조선조 오현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그리고 초계 정씨 3개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일두 정여창 선생, 옥계 노진 선생 등 역사적 위상이 높은 선생을 배출하였다. 개평마을은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을 비롯한 많은 전통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선조들이 풍류를 즐겼던 교수정(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일두선생의 명상의 장소였던 개평리소나무군락지(경상남도 자연유산) 등 조상의 의식주와 생활풍습 등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원이 많이 남아있어 민속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59
갈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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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갈천서원

갈천서원은 고려 공민왕 때 문신인 문정공 행촌 이암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이암 선생(1297~1364)은 고려 충선왕 5년(1313) 문과에 급제하였고, 공민왕 12년(1363)에는 1등 공신으로 철성부원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갈천서원은 고려 공민왕 때 회화면에 금봉서원으로 세워졌으며, 조선 숙종 38년(1712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우고, 갈천서원이라 하였다. 고종 6년(1869)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광복 후 유림들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남아있는 건물로는 사우, 강당, 내삼문과 정문인 불사문이 있고, 사우에는 행촌 이암, 묵제 여필, 관포 어득강, 도촌 이숭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강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3량 구조의 팔작지붕 목조 와가로, 가운데 1칸을 대청으로 하고, 좌우에 방 1칸을 두고 우측 방 앞에 누마루가 있다. 정문인 불사문은 앞면 5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 솟을대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가운데 1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갈천로 620
가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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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가호서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문부를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함북에 있는 네 개의 사우에 향사하였다가 1970년에 진주 향교 사람들의 공의와 후손들의 협찬에 의해 현 위치에 사우를 건립하였다. 그 후에 서원 내에 정문부 장군 유물전시관도 건립되었다. 충의공 농포 정문부(1565~1624)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85년(선조 18) 생원이 되고 1588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한성부참군이 되었다. 1590년 사헌부 지평으로 지제교를 겸했으며 함경북도 병마평사가 되어 북변의 여러 진을 순찰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조직하여 장덕산 전투, 쌍포 전투, 백탑교 전투에서 대승하여 관북 지방을 수복하였다. 시화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임을 당했으나 후에 복권되어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서원에는 가호서원, 충의사, 유물전시관, 보조묘, 장판각, 북관대첩비, 농포정문부사적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이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길 59-2
강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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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역사관광

강양향교

강양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합천군 소재지에 처음 지었던 합천향교는 조선 고종 18년(1881) 합천군청을 야로면으로 옮기면서 함께 옮겼다. 그 뒤 1965년 합천·용주·율곡·대양면의 유림이 현재의 자리에 강양향교를 새로 지었다. 건물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 내삼문,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향교 232개소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지은 향교이다.

⌖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충효로1길 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