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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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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서혈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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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서혈사지

공주서혈사지는 웅진동 우뚝 솟은 망월산의 동쪽에 자리 잡은 옛 절터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기와에 서혈사라고 적혀 있었고, 백제의 전형적인 연꽃무늬 와당과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각종 기와류, 석탑부재, 초석들이 발견되어 백제 때 지은 사찰로 추정된다. 서혈사지는 완만하게 경사진 밭을 3단계로 구분하여, 석축을 쌓고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된 내용에 따르면 불도를 닦던 곳의 배치가 지형과는 관계없이 남쪽을 향해 탑, 불당과 함께 직선상에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절터와 관련이 있는 석굴사원은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하여 승려의 수도장으로 만든 것인데 크기는 길이 8m, 높이 4.5m, 폭 17m의 규모이다. 북쪽 벽에는 불상을 안치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층대가 있다. 여기에서 발견된 3구의 석조불상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혈사지 석굴은 석굴 내에 불상을 안치하는 석굴사원의 수법을 백제가 남조로부터 도입하였을 것이라는 당시 상황을 추측하게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82년 12월 31일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시어골2길 96-44 (웅진동)
공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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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향교

공주향교는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웅진동 송산리에 있었으나 인조 원년(1623)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고 전한다. 그 뒤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고, 1954년 문묘, 명륜당, 동재, 존경각 등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는 2단으로 땅이 나뉘어 있는데,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양쪽에 동재와 존경각이 있다. 뒤쪽 한층 높은 곳에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사당인 대성전이 있으며, 그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즉 교육 공간은 앞쪽에, 제사 공간은 뒤쪽에 구분하여 배치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1894)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 공주향교는 지역유림들의 모성계에서 기금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소장도서로 89종 337 책이 있다. 1978년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향교1길 26
광덕사(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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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광덕사(천안)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광덕산 동남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기·충청지방에서는 가장 큰 절이었으나,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이 많이 되었다. 이곳에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3층 석탑이 남아 있으며, 팔각 형태의 지붕을 삽입하여 건축양식이 특이한, 새로 지은 종각과 대웅전, 천불전이 있다. 또한 대웅전 입구에 있는 수령 400여 년의 높이 20여 미터 호두나무도 볼만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광덕사는 계절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며, 천안은 호두과자를 만드는 호두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사길 26
관촉사(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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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관촉사(논산)

관촉사(논산)은 논산 시내 남부 반야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논산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관촉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으뜸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높이 18m의 석불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표현되곤 한다. 은진미륵 앞에 선 석등과 오층석탑, 석문 등도 귀중한 유물이다. 불경을 넣어둔 윤장대의 축을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관촉사에 있는 유물 중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보, 석등은 보물, 석문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촉사 앞마당에 서면 풍요로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계백장군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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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계백장군 유적지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 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허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다.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반 이상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부적면 사람들이 지석[支石]을 안치하고 내광 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지름 15.15m, 높이 6.5m로 복묘하였다. 1976년 5월 19일에는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전 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라고 쓰여 있다. 계백(階伯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311-54
공산성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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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산성연지

공산성연지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연못터다. 1982년 12월 3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영은사 앞에 있는 연못터에 단을 둔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다. 백제시대부터 계속하여 이용되어 왔음을 시사하고 있는 이 연지는 산성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백제문화를 둘러보기 좋은 곳으로 공주 IC에서 가깝고, 주변에 금강신관공원과 미르섬이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주 중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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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중동성당

중동성당은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1897년 설립됐다. 초대 신부로 프랑스 선교사 기낭이 부임했으며 1921년 제5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종철 신부가 새 성당 건립을 계획해 1937년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강당 ‘천사의 집’, 새 사제관과 수녀원을 완공했고, 1997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성당 건물을 대대적으로 보수했으며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중동성당은 전통 목조 건축에서 현대건축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평가된다. 본당의 평면은 라틴십자형, 건물 외관은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중앙 현관 꼭대기에는 높은 종탑이 있으며, 현관 출입구와 창의 윗부분은 뾰족한 아치로 장식돼 있다. 인근에 국고개 문화거리와 충남역사박물관 등 볼거리가 풍부해 당일치기 코스로 좋다.

⌖ 충청남도 공주시 성당길 6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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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공주 중학동에 자리한 구 선교사가옥은 미국 감리교회 소속 선교사 사택으로 건립됐다.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주에서 선교사들이 선교 사업을 벌인 것은 물론이고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영명학교가 교육을 시작한 상징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로 계단실과 각층 공간이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연결돼 있다. 구 선교사가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으며 공주 기독교 역사위원회에서 지정한 유관순의 길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열사가 다니던 영명학교, 태극기를 인쇄해 독립운동을 했던 공주제일감리교회를 방문하는 것은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쪽지골길 18-13
고령박씨종중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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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고령박씨종중재실

암행어사로 많은 일화를 남긴 박문수(1691∼1756)의 제사를 모신 곳이다. 박문수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경종 3년(1723)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에까지 올랐다가 1724년 노론이 집권할 때 파면되었다. 1727년 소론이 집권하면서 다시 기용되어 영남암행어사, 충청도암행어사 등을 거치며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였다. 그 뒤 호조참판을 거쳐 병조판서와 영의정에까지 벼슬이 올랐다. 이 건물은 1932년에 세웠으며 안채는 ㄱ자형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랑채는 5칸 규모이며 一자형 평면을 갖춘 집이다. 재실 안에는 박문수 공이 사용하던 유품과 영정을 모시고 있고 박문수의 손자인 박영보가 쓴 수부정기와 박문수 일대기 등의 전적을 보관하고 있다. 1990년에는 원래 재실이 있었던 자리에 새로 재실을 지었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박문수길 147
공주 정지산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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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정지산 유적

공주 정지산 유적은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국립공주박물관의 발굴조사 실시 결과 국가차원의 제의시설로 추정되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어 2006년 11월 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왕실제사유적으로 공주 송산리 고분군(公州宋山里古墳群:사적)과 인접한 곳에 있다. 시설물은 기존의 가옥을 모두 철거한 후 능선을 깎아내고 넓고 평탄한 대지에 만들어졌으며 공산성이 바라보이는 남동쪽으로는 약 세 겹 내지 다섯 겹의 나무울타리를 돌리고 송산리 고분군 쪽으로 연결되는 능선에는 약 1m 내외의 좁은 출입구만 남긴 채 너비 5m, 깊이 2m 이상의 넓고 깊은 도량을 파고 내부에 몇 채의 건물을 축조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화려한 장식이 부착된 장고형 그릇받침 등 국자세자와 관련된 유물이 수집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고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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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고로서원

고로서원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정분(鄭苯)과 정지산(鄭之産)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1924년에 제각(祭閣)인 경모재(敬慕齋)를 축성하였고, 1931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이때 우연히 부여의 외산(外山)에서 정분의 영정을 발견하자 이를 모사하여 사당에 모시게 되었다. 1982년 정분의 충과 정지산의 효를 기린다는 의미에서 후손들이 충효사라고 명명하였으며, 1994년에 공주 유림과 후손들이 사우와 삼문을 세워 고로서원(古老書院)이라 명하고 정분을 주향으로, 정지산을 종향으로 모시게 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고, 30칸의 담장이 둘러져 있다. 지금은 사곡면의 진주정 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고로사라는 절을 개조하여 재실로 이용하고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능계길 60-67
계룡 사계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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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계룡시역사관광

계룡 사계고택

계룡 사계고택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예학자였던 사계 김장생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집으로 후학 양성과 학문에 전념하던 곳이다. 현재 충청남도 기념물 제1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 28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남쪽으로부터 대문채·은농재·행랑채·안채, 그리고 그 뒤에 가묘가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또 안채의 왼쪽 편에 나 있는 협문을 지나면 다시 안별당 건물이 있고 그 앞쪽으로 큰 연못이 있는데 이 주변에는 많은 괴목들이 우거져 풍취를 더 하여 주고 있다. 뒤쪽으로는 왕대산까지 이어지는 사계 솔바람길이 있어 선생의 발자취도 느껴보고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체험을 진행하며 일정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사계로 122-4
공주 갑사 철당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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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갑사 철당간

보물인 갑사 철당간·지주는 당을 다는 철깃대와 기둥이다. 당간은 절 앞에 세우는 깃대인데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기능을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이며, 당간지주는 당간을 좌우에서 지탱하기 위한 버팀 기둥을 말한다. 갑사 철당간은 지름 50센티미터의 철통 24개를 이어 놓은 것으로 당간의 높이는 약 15미터이다. 그러나 1893년에 4개의 철통이 부러져 처음보다 낮아졌다. 이 철당간·지주가 만들어진 시기는 갑사가 신라 의상대사가 일으킨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다는 점과 받침돌 측면에 새겨진 안상조각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된다. 갑사의 철당간 지주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당간 형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노송과 느티나무숲이 우거진 계룡산의 서북쪽 기슭에 위치한 절이다. 공주에서 19㎞ 떨어져 있고, 동학사에서 도보로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암시해 주듯이 갑사의 가을 단풍은 더없이 아름답다. 삼국시대 초기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 화상이 창건하였다. 갑사는 계룡 갑사, 갑사, 갑사사, 계룡사 등으로 불려 왔으며, 통일신라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였던 명찰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공주 우금치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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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우금치 전적

공주 우금치 전적은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기슭의 고개로 우금 고개, 우금재 또는 비우금 고개라고도 부른다. 우금치 고개는 호서지방의 요충지이며 중부지역의 거점으로, 충청도 감영소재지가 있는 공주 남쪽의 중요한 관문이었다. 1894년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반봉건과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죽창으로 대항한 곳으로 한국 근대사에서 매우 뜻깊은 장소이다. 우금치 전적은 역사의 현장으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으며, 동학군의 넋을 위로하기 1973년 동학혁명군위령탑을 세웠다.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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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참수 처형으로 대표되는 순교성지이자 순교자의 처절하고 용기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앙이 무엇인지,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새로 나는 장소, 은총의 배움터이다. 박해시대 초기에는 사형 판결을 받은 사학죄인들에게 해읍정법이 적용되었는데, 이는 백성들에게 천주학을 경계하고자 사학죄인들을 출신 고향에서 공개 처형한다는 의미이다. 사학죄인으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이 배교를 거부할 경우 사형 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제민천변 황새바위에서 참수 처형 되었다. 황새바위 순교성지의 위치는 지리학적으로 금강의 본류와 제민천의 지류가 만나는 모래사장으로 공개처형지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1784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 세례를 받고 고향 내포에 내려와 신앙을 전하면서부터 시작된 내포교회는 곧 박해에 부닥치게 되었고, 기록상 마지막 순교자를 낸 1889년까지 100여 년 간 공주는 박해의 땅이었다. 신유박해(1801년)부터 시작하여 이존창 루도비코 및 이국승 바오로 등 16명이 이 시기에 참수처형 되었고, 병인박해(1866년) 시기에는 약 1,000여 명의 순교자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공주는 천주교 4대 박해와 함께 100여 년 순교 역사의 현장이다. 공주는 내포와 더불어 천주교 전파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며,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이 있었기에 천주교인들이 가장 많이 처형된 곳이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은 감영으로 이송되었으며, 배교하기를 거부할 경우 사형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처형을 당하였다. 지금까지 자료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순교자는 총 337명으로 이는 한국 최대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118 (금성동)
공주상신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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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상신리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당을 꽂아두는 기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시켜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두 기둥만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마을 입구의 민가 뒷돌담에 서 있다. 남아있는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한쪽 기둥은 잘린 채 떨어져 있고, 다른 한쪽도 파손이 심하다. 기둥의 받침대는 여러 개의 돌로 조립되어 있으며, 옆면에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마주 보는 면에는 아래위 두 곳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파놓았다. 바깥면의 가운데에는 넓은 띠를 도드라지게 새겨놓았고, 앞뒷면은 가장자리에 테두리선을 넓게 둘러놓았다. 기둥사이에는 당간을 받치던 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그 윗면에 동그란 홈을 두어 당간을 꽂아두도록 하였다. 돌을 다듬은 솜씨나 각 부분의 꾸밈새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고란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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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고란약수

고란약수는 충남 부여군 부소산 북쪽 기슭 백마강(금강)변에 위치한 사찰 고란사의 약수이다. 이 사찰은 고란초에 의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법당 뒤편에서 나오는 약수와 함께 이 사찰의 명물을 이루고 있다. 고란사는 백제 멸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전설이 저하나 정확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고, 현재의 고란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는데 현 사찰 건물은 은산 승각사를 이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곳은 인근 낙화암, 백마강 유람선과 함께 둘러보기 좋다. 고란약수는 성왕로, 석탑로 등을 통해 부소산성에 진입하여 접근하거나 나루터로를 통해 구드래나루터에서 백마강 유람선을 타고 접근할 수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부소산성, 낙화암, 백마강 외에 정림사지5층석탑, 부여 구아리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여향교,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수북정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5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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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계룡시역사관광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는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이다. 신도안면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천도 후보지로 정했던 지역이다. 궁궐을 짓기 위해 1년여간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목재와 석재 등을 운반하다가, 신도안이 국토 남쪽에 치우치고 교통과 물 공급이 불편하며 풍수상 고려 개경과 유사하여 신 왕조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이때 대궐터에 주춧돌로 쓰려고 가져다 놓은 주초석 약 115개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 1976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으며 현재 일부가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에 들어가 있어 전체를 관람하기는 어렵다.

⌖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검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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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검계서원

검계서원은 고려말 4대 왕을 보필한 충신 문효공 전신이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서원 안에는 양현사와 천안 전 씨 시조 단소 및 재실, 양현사의 뒤쪽에는 천안 전 씨의 시조묘가 있고, 그 앞으로 좌우에 전신의 부친인 전승과 전신의 단소가 있으며 그 옆으로 설단비가 서 있다. 단소 아래는 전 씨 시조 사당인 충훈사와 양현사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각각의 사우 앞에는 삼문이 설치되어 있다. 양현 사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문효공 전신(1276~1339)과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천안 전 씨 전득 중의 사위인 이협(1583~1665)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으로 3월 10일에는 지역 유림들과 후손들이 모여 선현들의 얼을 선양하고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한 제향을 올리고 있다. 또한 천안시의 보호수인 300년 된 모과나무가 있으며 주변에는 영산홍 꽃이 만발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금호1길 117-10
결성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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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군역사관광

결성동헌

조선시대 홍성지방 관리들이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행정업무를 처리하던 동헌과 치안업무를 처리하던 형방청, 책과 문서를 보관하면서 관리의 자제가 지내던 책실로 구성되어 있다. 동헌은 고려말에 결성면 금곡리 분우터에 있다가 정종 2년(1400)에 결성읍 산성 정상으로 옮겼다. 현종 6년(1665) 현재의 위치인 읍내리에 다시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동헌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형방청은 ‘ㄱ’ 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책실은 앞면 2칸·옆면 1칸 반 크기로, 지붕은 앞에서 볼 때 사다리꼴인 우진각지붕이다.

⌖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738번길 23
강경역사문화안내소(구 강경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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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강경역사문화안내소(구 강경노동조합)

구 강경노동조합은 1925년에 건립된 근대 건축물이다. 강경은 금강을 거쳐 서해와 연결되고, 내륙으로도 접근하기 쉬워 일찍부터 상권이 발달한 도시이다. 그러한 이유로 강경시장은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손꼽혔으며, 강경포구는 원산포구와 함께 전국 2대 포구로 불릴 만큼 각종 해산물과 공산품의 거래 및 이동이 활발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탈의 창구로써 1920년대에 이르러 내륙의 수산물 유통은 대부분 강경포구를 거쳐 전국으로 운송될 만큼 번성하였다. 당시 강경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수가 2,000~3,000명에 달하였고, 하루 약 200여 척의 배가 하역 작업을 할 만큼 활성화되었다. 강경노동조합 건물은 1925년 당시 조합장인 정흥섭이 개인 재산 5,000원을 들여 한식 목조건물로 조합 사무실을 지은 다음, 같은 해 10월 3일에 완공하였다. 당시 건물은 바닥 면적 70.08㎡의 2층 구조로 연면적 140.16㎡ 규모였고,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1층 전체를 개방하여 사무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강경노동조합은 1953년에 전국부두노동조합 강경지부 연맹체제로 바뀌었고, 이후 강경연락소로 축소되었다가 결국 해체되었다. 강경노동조합 건물도 1935년 이후 본래 용도와 상관없이 공장, 창고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1940년대 사진 자료를 보면 건물 모습이 현재와 같은 단층 구조로 바뀌게 된다. 이는 노동조합의 쇠락과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다. 강경노동조합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강경 갑문, 강경 채운산배수지 등과 함께 근대 강경의 번성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27번길 30-5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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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은 1930년대에 붉은 벽돌을 쌓아서 만든 건축물이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논산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학교이자 졸업생 기수로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이다. 1905년 4월 2일에 2년제 사립학교인 보명학교로 개교한 이래, 1907년 4년제 강경공립보통학교, 1938년 강경중정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강경중정공립국민학교, 1946년 강경중앙초등학교로 여러 차례 학교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당은 1937년 6월 30일에 세워진 지상 1층의 건물이다. 이 건물은 강경공립보통학교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강경공립보통학교 후원회에서 기증한 것이다. 콘크리트 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었고, 외벽 둘레에는 콘크리트로 흰색 띠를 둘러 두 층높이로 나누고, 모서리에는 벽돌 내어쌓기 방식으로 띠를 둘렀다. 이 건물은 당시 강당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을 따르는데, 건물에 흰색 띠를 둘러 입면의 단조로움을 없애 단아한 멋을 보여준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8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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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은 1920년대 강경시장 전경 사진 중에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강경의 하시장(下市場)을 중심으로 했던 번성시기에 시장 중심에 위치하여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건축당시 ‘남일당(南一堂) 한약방’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건축주가 바뀌면서 ‘연수당 건재 대약방(延壽堂 乾材 大藥房)’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운영되었고, 현재는 후손이 관리하고 있다. 지상 2층 규모의 한식 목조 건물로 지붕은 우진각 기와지붕이며, 지붕내부의 상량문을 통해 1923년(癸亥年 八月 五日 酉時 立柱上梁)에 준공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건물은 근대 한옥 변천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24번길 12-1
개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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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개덕사

개덕사는 충남 금산군 추부면에 있다. 서대산 기슭에 터를 잡은 이곳은 자세한 기록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개덕사 인근 절터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조각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사찰에서는 서대폭포 혹은 개덕폭포라 불리는 폭포를 비롯해 대웅전, 산신각 등을 볼 수 있다. 사찰 주변에는 서대산드림리조트가 있다.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개덕사길 83
간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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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간곡서원

간곡서원은 영조 16년(1740)에 건립되어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가 1971년에 복구되었다. 이곳은 노곡 유동수(1579∼1654)를 배향하고 있다. 유동수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인조 24년(1646)에 노성현감으로 재직 시 토호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공을 세운 적이 있다. 간곡서원지, 노곡유적, 모현계안, 복설록, 심원록 등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283번길 31-4
강경미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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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강경미내다리

강경천의 채운교가 있는 강둑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미내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강경포구가 있던 곳으로, 이 강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미내다리’라고 부른다. 강경미내다리는 조선시대에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삼남에서 가장 큰 다리였다. 다리의 규모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이다. 긴 돌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 모양을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다리의 강둑 쪽 중간쯤에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물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눈은 마치 장승의 눈과 같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옆으로 귀 모양과 갈기가 있다. 다리 옆에 놓여 있던 ‘은진미교비’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비문에 의하면, 조선 영조 7년(1731) 주민의 필요에 따라 강경촌 사람인 송만운이 주도하여 이 다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강댕이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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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역사관광

강댕이 미륵불

이 미륵불은 강댕이로 진입하는 지점에 설치된 강당교에서 북쪽으로 약 100m 지점의 전(前) 군장동 안, 현(現) 고풍저수지 안에 있었다. 이곳은 지대가 높아 지금도 섬처럼 되었으며 풀이 자라고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이 저수지로 수몰되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조성연대는 고려말~조선초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216㎝, 어깨의 폭은 65㎝, 두께는 25㎝이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팔을 위로 올려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배 위에 대어 서산지방의 다른 미륵과 같은 형식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하는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고 하며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이었다고 한다.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18-1
개태사(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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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개태사(논산)

개태사(논산)는 천호산(371.6m) 서쪽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936년(태조 19)에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을 무찌르고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념하여 황산을 천호산이라 개칭하고 창건하였다. 또한 후백제를 세웠다가 고려로 귀부한 견훤이 병사한 곳으로도 전해진다. 이곳에는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이 있었으며, 국가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신탁을 받는 등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왜구의 침입을 받아 쇠퇴하였다가 조선시대와 1930년대에 점차적으로 재건되었다. 이곳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사지석불입상,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개태사철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층 석탑과 석조가 있다. 그중 예전에 이 절에서 쓰던 철확, 즉 큰 가마솥은 승려들의 식사를 위해 국을 끓이던 것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이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계백로 2614-11
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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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갑사

갑사는 공주시 계룡산국립공원 내 계룡산 북서쪽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던 명찰이다. 노송과 느티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며 예로부터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자랑한다. 백제 구이신왕 원년인 420년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이 이 절의 시초이다. 갑사는 계룡갑사, 갑사, 갑사사, 계룡사 등으로 불리었으며, 그중 갑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간다(甲)고 해서 갑사가 되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에서도 열외가 되고 오히려 왕실의 비호를 받아 ‘월인석보’를 판각하기도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전소되다가 1604년(선조 37) 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 덕분에 지금도 사찰 내부에 각종 귀중한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있다. 사찰 주위에는 용문폭포, 수정봉, 천진보탑, 군자대 등 수려한 경치의 명소들이 줄지어 있으며 특히 남쪽 계곡은 이른바 9곡을 이루어 절경으로 소문나 있다. 일반인은 사찰에서 열리는 법회와 템플스테이에 참여할 수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각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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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각원사

충청남도 천안시에 위치한 각원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불교신도들과 많은 사람들의 정성 어린 성금들에 의해 1975년 창건된 사찰이다. 사찰에는 높이 15m, 둘레 30m, 귀 길이 175cm, 손톱 길이 30cm, 무게 청동 60톤의 청동대불이 있다. 태조산 주봉을 뒤로하여 서향을 바라보며 자비의 미소로 많은 중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좌불 좌측에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웅보전과 요사채를 비롯한 사찰 건물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많은 사람들의 기도처로 유명하다. 또한, 각원사는 겹벚꽃 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풍성한 겹벚꽃뿐만 아니라 홀벚꽃, 능수벚꽃 등 다양한 형태의 벚꽃이 만발한다. 청동대불 앞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각원사길 245 (안서동)
모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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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계룡시역사관광

모원재

모원재는 김국광 선생의 사당이다. 김국광 선생은 세종 23년(1441)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세조의 즉위를 도와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었다. 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벼슬이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에 이르렀다. 인조 원년(1623)에 지은 모원재는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2길6-10
노성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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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노성향교

노성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된 향교이다. 그 후 1967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삼문, 대성전이 등이 현존하며, 대성전에는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봄 ·가을에 석전제를 거행한다. 노성향교는 앞에는 네모난 형태의 조그마한 연못이 있으며 외삼문 앞의 배롱나무꽃이 아름답다. 바로 옆에는 한옥 체험이 가능한 조선 후기의 전통 한옥인 명재고택이 있고 마을 안에는 사찰 궐리사가 있으며 인근에는 노성산성이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