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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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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천효자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가평군역사관광

강영천효자문

효자 강영천은 진주 강씨로 3세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연일 정씨와 함께 살던 중 7세 때 모친이 병으로 몸 져 눕게 되었다. 나이는 비록 어렸으나 효심이 지극하였던 영천은 병든 어머니의 수발을 들던 중 병이 악화되어 정신을 잃자 자신의 손가락을 문지방에 깨트려 피를 내어 입에 흘려놓고 쓰러지고 말았다. 어머니가 깨어나 피를 흘리며 쓰러진 어린 아들을 발견하여 정성껏 간호한 끝에 깨어날 수 있었다. 정문 앞에 걸린 ‘효자업무강영천지문각 강희 39년 경진 3월 15일 입’이라 새겨진 현판으로 보아 이 효자문은 숙종 26년(1700년 3월 15일)에 건립했음을 알 수 있다. 본래의 건물은 29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멸실된 것을 1987년도에 복원한 것이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논남기길 402-19
가평별묘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가평군역사관광

가평별묘

별묘는 남도진(1674 현종 15∼1735 영조11)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설악면 방일리 음방[陰坊]에 있다. 이사당에 모셔진 영정은 가로 120㎝, 세로 200㎝ 크기의 두루마리 표구로 제작되었는데 1728년(영조5년) 6월에 조선 숙종조 시절에 이름이 알렸던 화가 함세휘가 그린 것으로 인물에 대한 선의 감각이 원형대로 잘 보존 되어있다. 이 영정은 그 후 후손들에 의하여 보관되어 오다가 그의 6대손이자 구한말 학자이며 정치가, 외교관으로 이름이 높던 예조판서 남정철(1840-1916년)이 1888년 2월 7일 이곳에 사당을 지어 모시며 매년 칠월칠일 제향을 드려 오다가 1985년 봄에 그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전통가옥으로 부연을 달아 중건한 것이다. 이 영정은 남도진이 쓴 명문과 그의 친구 박창언이 그 아름다움을 예서로 찬미한 글이 있고 조봉주가 찬미한 글과 함세휘가 [戊申六月下院] 무신유월하원에 그렸다는 표시가 있다. (출처 : 가평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기천서원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여주시역사관광

기천서원지

기천서원은 조선전기의 문신 김안국(1478-154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서원으로, 문화재자료 제75호로 지정된 여주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사립학교이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본래 1580년(선조 13) 김안국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마암에 마암서원으로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608년(선조 41) 현재 위치로 이전해 복원하였다. 이후 조선 중종대부터 효종대까지 이름난 현인인 이언적·홍인우·이원익·정엽·이식·홍명구·홍명하까지 총 8명을 함께 배향하였다. 1625년(인조 3)에 기천서원으로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1937년 유림들이 사당으로 고쳐 모현사라 불렀고, 1979년 사당을 새로 지어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다시 기천서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강당 없이 사당, 동재, 서재, 삼문 등이 있고 서원 옆에 모현사가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분향하는 제사의 기능만이 남아있으며, 현재 상시 개방되고 있지 않다. 인근에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 영녕릉(세종대왕•효종대왕릉), 황포돛배, 파사성, 이포캠핑장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만하다.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뒷머리길 11
권율장군묘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양주시역사관광

권율장군묘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만취당 권율(1537~1599) 장군의 묘소이다. 선조 15년(1582)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55세 때에는 의주목사로 부임하여 북방 여진족을 방어하였다. 묘역에는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부인 창녕조씨와 후부인 죽산박씨가 안장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동자석 1쌍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이 있다. 권율 장군 묘 뒤쪽 언덕에는 형 권순과 아버지인 권철의 묘가 차례로 모셔져 있다. 묘역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 비문이 마모되어 1861년(철종 12)에 장군의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으로 장군의 일대기와 함께 자손들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묘 아래에 있는 재실은 묘를 관리하고 제사 준비를 하는 곳으로 개방되어 있지 않다. 송추IC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소요된다. 인근에 장흥관광지(청암민속박물관, 가나아트센터, 두리랜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장흥자생수목원 등), 송추유원지, 일영유원지, 북한산국립공원,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 필룩스조명박물관, 회암사지 등이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23
고송정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역사관광

고송정지

고송정지는 조선시대 순조 27년(1827)에 김처일이 그의 9대조인 김충주를 애도하여 지은 고송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자리이다. 김충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했다가 죽임을 당하자 밤중에 도성을 도망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화정동에 숨어 살면서 평생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베옷에 평민들이 쓰던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단종에 대한 충성이 약해질 때마다 단종의 묘가 있는 영월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였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비명에 숨진 것을 애통하게 여겨 흘린 눈물에 소나무가 말라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풀을 엮어 집을 짓고 숯을 구워 파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며 자신을 숯 굽는 노인 ‘탄옹’이라 했다 하여 고송정터를 탄옹고터라고도 한다. 정자는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왼쪽에는 ‘탄옹고지’라고 새긴 바위가 있으며, 고송정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그가 단종을 그리며 울던 망월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주변에는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