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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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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사(김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귀신사(김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귀신사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0가 중창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구순사로 불렸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부분적인 중수와 대대적인 중창을 거쳐 1934년에는 대적광전 등을 중수한 뒤 다시 귀신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귀신사는 원래 금산사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큰 절로 고려 말에는 쳐들어온 왜구들 300여 명이 주둔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쇠퇴하여 작고 소담한 사찰로 남았다. 귀신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대적광전과 삼층석탑과 부도, 석수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의 미를 나타내는 빼어난 작품이다. 부도는 청도원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는데 전성기에는 이 부도가 있는 곳까지가 절의 경내였음을 알 수 있다. 귀신산 석수는 독특한 양식으로 앉아 있는 석수의 등 위 중간에 남근 같은 석주가 당당하게 꽂혀 있다. 불교사상과 남근숭배사상이 어우러진 특이한 형태의 석조물로, 터를 누르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과, 백제왕실이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
금강사(강릉)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역사관광

금강사(강릉)

금강사는 소금강 무릉계곡에 정각 스님이 1964년 창건한 절로서 기암괴석이 아름답고, 시냇물이 맑은 주변의 경관으로 인해 이 일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절이다. 특히 금강사의 맞은편에는 천여 명의 군사가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는 전설이 깃든 식당암이 있고, 봉우리 3개가 기이하게 솟아있는 삼선봉을 만나볼 수 있어 소금강 탐방로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머무는 곳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소금강 주차장에서 금강사, 구룡폭포, 만물상, 노인봉, 진고개에 이르는 등산코스가 유명하며, 사찰 주변에는 월정사, 상원사, 연곡해수욕장, 주문진 해수욕장, 경포도립공원 등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 소금강길 670
권율장군묘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양주시역사관광

권율장군묘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만취당 권율(1537~1599) 장군의 묘소이다. 선조 15년(1582)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55세 때에는 의주목사로 부임하여 북방 여진족을 방어하였다. 묘역에는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부인 창녕조씨와 후부인 죽산박씨가 안장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동자석 1쌍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이 있다. 권율 장군 묘 뒤쪽 언덕에는 형 권순과 아버지인 권철의 묘가 차례로 모셔져 있다. 묘역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 비문이 마모되어 1861년(철종 12)에 장군의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으로 장군의 일대기와 함께 자손들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묘 아래에 있는 재실은 묘를 관리하고 제사 준비를 하는 곳으로 개방되어 있지 않다. 송추IC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소요된다. 인근에 장흥관광지(청암민속박물관, 가나아트센터, 두리랜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장흥자생수목원 등), 송추유원지, 일영유원지, 북한산국립공원,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 필룩스조명박물관, 회암사지 등이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23
구암사(진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진도군역사관광

구암사(진도)

구암사는 고려시대에 번창하여 여귀산 자락에 여러 암자가 있었는데, 이는 중방골이나 불당골 등 불교와 관련 있는 여러 암자로부터 유래된 산의 명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찰에 있는 오층석탑은 백제 후기나 고려 초기에 지어진 탑으로 보고 있으며, 해체 보수 때 사리를 넣었던 흠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대웅전의 실내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선조의 얼이 담긴 문화 유적지가 폐허인 채 내버려져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뜻있는 주민들이 구암사 복원불사 후원회를 조직하여 1988년에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1991년 복원불사를 착수하여 현재에도 불사에 계속 임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임회면 상만길 58
구암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구암정

구암정은 순창 구미마을과 내월교 사이 섬진강 및 국도 21호선, 섬진강자전거길가에 세워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돈암 혹은 배암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서 있다. 이 바위는 인근 남원 출신의 조선 전기 학자 구암 양배(?~1500)가 그의 동생 양돈과 함께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양배는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그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양대 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조정을 등지고 동생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와 자연 속에 묻혀 세상을 잊고 살았다. 그 후 1901년에 양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 정자를 세운 것이 바로 지금의 구암정이다. 1990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인근에 위치한 구미마을은 남원 양씨의 집성촌으로 남원 양씨 종가 등이 있다. 그 외에는 주변에 용궐산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구미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역사관광

구미정

강원도 정선 봉산리에 있는 구미정은 조선 숙종 때 공조 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선생이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에 내려와 은거 생활 중 지은 정자이다.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의 넓은 암석 위에 세워진 정자로, 이 정자를 중심으로 주위에 아홉 가지 뛰어난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었다. 구미정은 조선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명승지로, 현재는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자 주변으로는 소나무 숲과 야영장이 있어 여름에 피서지로도 인기가 많다. 구미정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관은 다음과 같다. 1) 어량 : 개울에서 물고기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비상할 때 물 위에 통발을 놓아 잡는 물막이인데, 물고기 잡는 장면을 의미한다. 2) 전주 : 주위의 밭두렁이 그림보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전원경치를 의미한다. 3) 반서 : 주위에 있는 바위들이 섬같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암석의 경치를 의미한다 4) 층대 : 주위 곳곳에 층층 쌓아 올린 듯한 절벽의 아름다움으로 절벽의 경치를 의미한다. 5) 석지 : 정자 뒤편에 위치한 연못이 바위가 뚫려 생긴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연못의 경치를 의미한다. 6) 평암 : 바위 한 개의 넓이가 100평 이상 되고 평평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넓은 바위의 경치를 의미한다. 7) 등담 : 정자에 등불을 밝혀 연못에 비치는 경치로 밤의 경치를 의미한다. 8) 취벽 : 정자 앞 석벽 사이에 있는 쉼터의 경치로 산벽의 경치를 의미한다. 9) 열수 : 구미정 주변 암벽에 줄지어 있는 듯이 뚫려 있는 바위구멍의 아름다움으로 바위구멍의 경치를 의미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관곡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관곡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매봉 밑자락에 있는 관곡서원은 1820년(순조 20)에 지방 유림들이 최윤덕, 이형남, 이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58년 후손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가 있다.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관곡서원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서원 관계 자료가 희귀한 편이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관곡서원 인근에 덕재산(487.1m)의 옥녀봉, 매봉이 있어 서원을 둘러본 후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 좋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관기1길 32-7
괴산 김항묵 고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김항묵 고택

괴산 김항묵 고택은 1900년 전후에 지어졌다고(안채는 19세기 초) 추정되는 건물로 공간구성의 아름다움, 외벽 장식의 화려함, 건축 당시의 모든 구조물의 보존 등 전통적 상류주택의 정수를 보여준다. 괴산군 칠성면에 있어서 칠성고택으로도 불린다. 안채는 30여 평 규모의 ㄷ자형 평면으로 남도식 배치 방법을 띠고 있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부엌(찬방 포함)을 두었으며 오른쪽에 건넌방을 놓았다. 안방과 건넌방 앞에 툇마루를 만들었는데 건넌방 앞까지 설치해 통로로 이용한 점이 특이하며, 한쪽 옆면 전체를 부엌으로 크게 만든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바깥채의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좌우로 ㄱ자 건물에 마구간, 곡간 등 행랑채를 두어 외곽을 구성하였으며, 그 안에 외정을 두어 공간을 만들고 내장을 쌓아 안채와 사랑채를 구조하였다. 사랑채에는 ㅗ자 모양으로 안채 쪽에 부엌, 사랑방, 꺾어져서 대청, 작은사랑을 두었는데, 큰 사랑 동쪽에 누마루를 덧달아서 사랑정원을 감상하게 되어있다. 사랑마당은 바깥마당보다 한단 높으며 일각대문으로 연결하여 외부와 차단된 별당형식이다. 사랑채의 합각에 전돌로 새긴 완자무늬를 비롯하여, 광채 벽의 수복무늬와 팔각겹곡두무늬, 담장의 화문담 문양 등이 아름다워 눈여겨볼 만하다. 사랑채 정원에는 원래 초당과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 나머지 건물들은 20세기 초에 지은 것들로 바깥 행랑채는 11칸 크기에 광, 방, 헛간 등이 배치되어 있다. 광채는 6칸으로 양 끝에 온돌을 설치하였다. 집을 지은 기법이 옛 법식을 잘 따르고 있으며 크고 작은 공간구성의 배열 또한 짜임새 있게 갖추고 있는 양반집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칠성로4길 20
괴산군수 관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군수 관사

괴산군수 관사는 이 지역 유지인 최부자가 1950년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에도 관사로 사용되고 있다.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근대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관사들은 대부분 일식이나 근대식 건축물이지만, 괴산군수 관사는 전통 한옥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있는 대문간채, ‘-’자형의 사랑채, ‘ㄱ’자형의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 평면의 실 구성 및 배치는 변화하는 생활 방식에 따라 많은 부분이 변경되거나 증축, 개축되었지만, 외관은 예전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양반가의 민가 형태 잘 간직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읍내로13길 12
고림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역사관광

고림사

고림사는 진안군 부귀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림사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원효 스님이 부귀산에서 수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원효 스님은 삼국통일의 대업이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원리대로 원만히 성취되기를 소망하여 부안의 변산, 진안의 부귀산 등 주로 편안할 안[安]자가 들어 있는 곳을 찾아 수도했는데, 그 자리가 곧 고림사 근처에 있는 좌선대라고 한다. 그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잘 전하지 않는데, 다만 고려 때는 절을 상림사 혹은 운림사로 불렀다고 한다. 고림사라는 이름은 절 주위에 수백 년 된 거목들이 가득 들어 차 있어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 1928년에 절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다가 1925년에 진안의 관공서 건물을 해체하면서 그 해체된 나무를 신도들이 짊어지고 메어 날라 법당을 지었다고 한다. 완전히 소실된 것을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지붕 1동으로 중건하였는데 관음전에 모셔져 있는 관음상은 화재 속에서 구해낸 유일한 유물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진안읍 상역로 174-96
고창오거리당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오거리당산

고창읍에 조성된 오거리 당산은 동·서·남·북·중앙의 5방위에 당산을 조성한 것으로 자연 입석과 조형 입석으로 세웠다. 고창 오거리 당산은 1803년 3월에 고창현 중심지 세 곳에 동시에 조성되었다. 처음에는 오거리가 아니라 삼거리 당산이었다. 삼거리는 상, 중, 하 세 곳을 가리킨 말인데 세 곳에 화표석주의 당산을 세운 것이다. 현재는 기존의 삼거리 당산과 천북동과 교촌리의 자연 마을 당산을 포함하여 오거리 당산이라 한다. 상거리, 중거리, 하거리 당산은 조형 입석으로 당산을 삼았으며, 천북동과 교촌리 당산 은 자연 입석을 당산으로 삼았다. 조형 입석 가운데 하거리 당산은 진서화표의 명문이 있고, 중앙 당산은 미륵 당산으로 불교적 요소가 강하다. 반면에 자연 입석을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의 당산 입석으로 삼은 것은 민간 신앙적 요소가 강하여 불교 신앙과 민간 신앙이 합쳐진 오거리 당산인 것이다. 오거리 당산은 화표를 당산 입석으로 삼은 유일한 당산이다. 정월 대보름날 줄다리기를 한 후 당산에 줄을 감아 놓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경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나주시역사관광

경현서원

경현서원은 나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선 유학을 대변하는 많은 인물을 배향한 곳으로 나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이곳은 16~17세기 나주지역의 을미옥사의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1583년(선조 16) 지방 유림이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금성산 아래에 사당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고 1589년(선조 22)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4위를 함께 배향하여 오현서원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목장흠과 지방 유림들이 합력하여 중건하였으며, 이듬해인 1609년(광해군 1)에 김선 등의 상소로 [경현]이라고 사액되었다. 1693년(숙종 19)에는 기대승과 김성일을 추가 배향하여 모두 7위를 모시게 되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77년 유림이 이곳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 동·서 협문, 4칸의 강당, 외삼문, 4칸의 고사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
고송정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역사관광

고송정지

고송정지는 조선시대 순조 27년(1827)에 김처일이 그의 9대조인 김충주를 애도하여 지은 고송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자리이다. 김충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했다가 죽임을 당하자 밤중에 도성을 도망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화정동에 숨어 살면서 평생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베옷에 평민들이 쓰던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단종에 대한 충성이 약해질 때마다 단종의 묘가 있는 영월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였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비명에 숨진 것을 애통하게 여겨 흘린 눈물에 소나무가 말라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풀을 엮어 집을 짓고 숯을 구워 파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며 자신을 숯 굽는 노인 ‘탄옹’이라 했다 하여 고송정터를 탄옹고터라고도 한다. 정자는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왼쪽에는 ‘탄옹고지’라고 새긴 바위가 있으며, 고송정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그가 단종을 그리며 울던 망월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주변에는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고성군 하일면에 있는 학동마을은, 1670년경 전주최씨 가문에서 학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꿈속에서 보고, 날이 밝아 그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지형을 보고, 명당이라 여겨 입촌한 후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 전해진다. 마을 뒤편은 수태산 줄기가 있으며, 마을 앞에는 좌이산이 솟아 있는 소위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이며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흐르고 있어 전통 마을의 배산임수형 입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가옥은 상당 부분 새마을운동 당시 슬레이트 기와로 개량되었으나 문화재자료 ‘육영재’, ‘최씨고가’ 등 일부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 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학동마을의 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 두께 2~5㎝)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 후 쌓은 것으로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 있으며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담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석축을 쌓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수백 년을 거슬러 고성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황톳빛 돌담길을 따라 걷노라면 아련한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동돌담길 11-5
고령 장기리 암각화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고령군역사관광

고령 장기리 암각화

양전동 암각화는 높이 3m, 너비 5.5m의 직사각형 암벽에 새긴 그림으로, 1971년에 발견되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표현한 그림으로, 주로 풍요로운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을 바위나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양전동 암각화의 내용은 겹둥근무늬(동심원)와 십자무늬, 탈모양(가면형) 등이 조각되어 있다. 세 겹의 동심원은 4점으로 해와 달을 상징하고, 십자형은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며, 가면형은 모두 17점으로 사람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다.양전동 암각화 유적은 당시 주민들의 농경의식이나 제사 때 사용했던 장소로 추정되며, 이곳에 새겨진 각종 문양들은 우리나라 선사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간주된다. 또한, 고령의 알터에 암각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나오는 난생설화(卵生說話)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6가야의 중심지가 김해가 아니라 고령으로 추측하는 가설도 나오고 있다.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아래알터길 15-5
경주 동부 사적지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동부 사적지대

동서는 안압지로부터 교동까지 남북은 반월성 남쪽의 남천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신라 왕도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반월성, 안압지, 첨성대, 계림 등 중요한 유적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내물왕을 위시한 수십 기에 달하는 신라시대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 일대의 면적은 668,121㎡(202,46평)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경북 상주 함창·이안·공검면 [슬로시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상주시역사관광

경북 상주 함창·이안·공검면 [슬로시티]

상주시는 2011년 6월 국제 슬로시티 연맹 폴란드 총회에서 슬로시티로 공식 인증되었다. 넓은 평야와 적정한 강우량, 여름철 높은 기온, 많은 일조량 등 농작물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상주시 합천읍, 공검면, 이안면을 상주 슬로시티 핵심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상주는 신라 서라벌과 가야 고령 가야국의 옛 고도이며, 농업과 음식문화가 발달한 고장으로 전 가구 수의 42%가 농가이다. 또한, 대표적인 자전거 도시로 상주 자전거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낙동강 자락에 있는 제1경 경천대와 상주 자전거 박물관, 삼한시대 3대 저수지의 하나인 공검지, 함창의 명주 고을 등의 명소가 있으며, 상주 곶감, 상주 한과와 명실상감한우 등의 특산품이 있다. 쌀, 누에고치, 곶감이 유명하여 삼백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건강 관련 제품이 많아 한방 바이오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상주 슬로시티 방문센터가 있는 함창명주박물관에서 누에고치 짓기, 고치실로 명주 짜기 등 비단 제작 과정과 관련 도구를 볼 수 있고, 박물관에는 1년 뒤에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이 있다. 인근 명주 테마파크와 경상북도 잠사 곤충사업장의 나비생태원, 누에 곤충 체험학습관이 있으며, 이안면 흑암리에는 전통 기법으로 5대째 항아리를 제작하는 상주 옹기마을이, 지산리 일대는 실제 귀농이나 귀촌 체험을 할 수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함창중앙로 135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는 1810년에 이진악 선생이 지은 주택으로, 조부인 이지유의 호를 따서 동호재라 하였다. 동호마을의 안쪽에 완만한 경사지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안쪽 높은 곳에 안채 영역을 두고 낮은 곳에 사랑채 영역을 직렬로 배치하였다. 안채 영역은 서향한 안채가 있고, 우측 방앗간 채와 안채의 맞은편에는 곳간채를 튼[ㄷ] 자형으로 배치하고 있고, 안채의 좌측에는 별도의 텃밭을 두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정지, 툇마루가 딸린 안방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영역은 큰 사랑채와 중사랑채가 나란하게 남향하고 있으며, 사랑채 맞은편에는 대문채가 배치되어 있다. 큰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중앙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을 두고 좌우에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된 실을 배치해 평면에서 보면 중앙의 온돌방이 돌출된 것처럼 보인다. 좌측 온돌방은 위패를 봉안한 가묘 방이며, 우측 온돌방은 상례 시에 빈소 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1길 217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지리산 정령치에 연이은 고리봉 아래 개령암 터 뒤 절벽에 새긴 이 마애불상군은 크고 작은 12구의 불상으로 이루어진 규모가 큰 불상군이다. 울퉁불퉁한 자연 암벽이어서 조각 자체의 양각도 고르지 못하고 훼손도 심한 편이나 3구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거대한 불상은 4m나 되는데 조각 솜씨도 제일 뛰어나 본존불로 여겨진다. 얼굴은 돋을새김이지만 신체의 옷 주름은 선으로 처리를 하고 있어 일반적인 고려 마애불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또한 큼직한 얼굴과 형식화된 이목구비, 장대해진 체구와 간략해진 옷주름 등에서도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거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1∼2m의 작은 불상들 역시 조각 수법이 모두 같으며, 각 부분의 양식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서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규모가 큰 불상군은 희귀한 예로서 명문까지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마애불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
강화 삼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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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역사관광

강화 삼랑성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삼랑성은 고려시대 이후 개경과 한양을 방어하는 성곽이었다. 둘레는 2.3㎞ 정도이며, 성곽은 산 정상부에서 남문쪽 해발 75m 능선까지 산의 지형을 따라 쌓아서 북쪽과 남쪽의 고도 차가 크다. 단군의 세 아들이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족산의 한 봉우리씩 맡아서 쌓게 되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이 산성의 이름을 사내 랑(郞)을 써서 삼랑성이라 불렀으며, 강화도 남쪽 해발 222m의 정족산에 있어 정족산성으로도 불린다.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단군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거친 자연 활석을 이용한 삼국시대 축성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1739년(영조 15)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라 하였고, 1764년(영조 40)에 다시 성을 중수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양헌수 부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전지이다. 삼랑성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자 강화에서 제일 큰 절인 전등사가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개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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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화순군역사관광

개천사

화순 개천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말기(809-825년) 도의선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통일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모두 후대의 기록이라 확인하기 어렵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소실되었다가 복구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용화사로 불렸다. 천불전이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63년에 주지 김태봉이 주민들의 협조로 대웅전과 요사를 중건하였다. 1987년에는 당시 주지였던 희안이 주변에 흩어져 있던 다섯 개의 부도를 모아 비자나무 숲 아래에 부도 밭을 조성하였다. 사찰의 전각으로는 대웅전, 천불전, 침수루, 요사채 등이 있으며 청련암, 백련암 등의 세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가 독존으로 모셔져 있다. 천불전에는 200여 분의 부처가 봉안되어 있으며 1,000불을 봉안하기 위한 불사가 진행되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개천사 비자림은 천 그루의 비자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형상을 한 거북바위의 전설을 품고 있는 화순의 숨은 명소다. 비자림 관광 자원화와 장소 활용을 위해 왕복 3.8km 구간의 탐방로를 조성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춘양면 변천길 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