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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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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사(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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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광덕사(천안)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광덕산 동남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기·충청지방에서는 가장 큰 절이었으나,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이 많이 되었다. 이곳에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3층 석탑이 남아 있으며, 팔각 형태의 지붕을 삽입하여 건축양식이 특이한, 새로 지은 종각과 대웅전, 천불전이 있다. 또한 대웅전 입구에 있는 수령 400여 년의 높이 20여 미터 호두나무도 볼만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광덕사는 계절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며, 천안은 호두과자를 만드는 호두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사길 26
관덕정의 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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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남구역사관광

관덕정의 각궁

정신과 신체를 동시에 건강하게 해주는, 관덕정의 각궁 궁술은 무사뿐만이 아니라 선비들도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 요건이었다. 이러한 활이 요즘에는 생존이나 방비 기능은 완전히 상실하여 스포츠와 취미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도 스포츠와 취미로서 활의 명맥을 이어주는 곳이 있는데, 사직공원에 있는 활터 관덕정이 그것이다. 관덕정의 사범이자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활을 만들고 있는 권태은 씨는 호라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경북 예천이 고향으로 3대째 활을 만들고 있는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자리를 잡은 것은 23년 전이다. 경상도에서 활을 만들면 팔러 나가는 곳이 대부분 전라도이므로 아예 옮겨와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권 씨의 이야기다. 옛날에는 활의 재료와 쓰임새에 따라 무척 다양했지만 요즘에는 각궁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해 주고 있다. 전통이 실려있는 각궁이란 후궁·장궁(長弓)이라고도 하는데 각궁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크게 2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전쟁이나 사냥에 쓰인 것은 궁간상(弓幹桑)·뿔·힘줄·아교·실·칠 등 6가지로 만들고, 운동이나 오락으로 쓰인 것은 궁간상·참나무·대·벚나무·뿔·힘줄·아교 등 7가지로 만들었다. 강(强)·중(中)·연(軟)의 구별이 있어서, 남녀 누구나 자신의 힘에 맞는 것을 쓸 수 있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사직길 49
광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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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역사관광

광풍정

광풍정은 1630년대에 장흥효(1564∼1633) 선생이 지은 정자로 300여 문인이 학문을 익히던 곳이다. 선생은 일찍부터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여 영남학파 발전과 후배양성에 힘썼다. 현재 정자의 모습은 헌종 4년(1838)에 이 지역의 유림들이 고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광풍정은 대각선으로 대칭된 공간 배치를 하여 특이한 평면구조를 이루며, 지형적인 환경 요인뿐 아니라 기후 요인까지 적절히 받아들인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2885-23
관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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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관룡사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태종 원년(1401)에 대웅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며, 광해군 9년(1617)에 다시 짓고, 영조 25년(1749)에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관룡사 내에는 대웅전,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약사전(이상 보물), 관룡사 약사전 3층석탑(유형문화재), 부도 등의 많은 불교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1
관촉사(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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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관촉사(논산)

관촉사(논산)은 논산 시내 남부 반야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논산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관촉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으뜸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높이 18m의 석불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표현되곤 한다. 은진미륵 앞에 선 석등과 오층석탑, 석문 등도 귀중한 유물이다. 불경을 넣어둔 윤장대의 축을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관촉사에 있는 유물 중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보, 석등은 보물, 석문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촉사 앞마당에 서면 풍요로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광주 조선백자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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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역사관광

광주 조선백자 요지

광주 조선백자 요지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조선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 1985년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6년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 발굴된 곳으로 ‘번천리 5호 가마’로도 불린다. 조선 세조 13년인 1467년에 왕의 명으로 처음 만들어져 이후 약 50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백자 가마터이다. 이곳에서는 1400년대 중반부터 조선백자 중 가장 우수한 백자를 구워냈으며, 382,738㎡에 이르는 면적에 300여 개의 가마터가 남아있으며 이 가운데 68개소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크기의 백자 요지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 일대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질 좋은 백자를 만들어내던 중심지였기에 조선 도자사 연구에 기반이 되는 지역으로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가마터와 공방 터 외에 도자기와 관련된 전시품과 가마 발굴부터 이곳에서 만들어졌던 도자기 종류와 정보, 유물, 출토품 등을 볼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해공로 91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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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동학농민혁명은 한국근대사에서 전국에 걸쳐 사회개혁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낸 역사적인 사건이다. 고창 무장기포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운동이기도 한 동학혁명의 시발점으로 의미가 매우 큰 유적지이다. 고창군에서 대산면으로 가는 국도 22호선 왼쪽 구수마을 일대에 위치하여 있다. 참고로, 무장은 지명이며 기포지는 동학농민혁명 포고문을 선포한 집결지를 의미한다. 동학농민혁명의 참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곳에는 동학농민혁명의 훈련장으로 사용된 터와 [갑오동학농민군 고창주 의장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갑오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 총대장, 김개남 총관령과 손화중 총관령 세 지도자와 동학농민혁명 당시 고창군으로 통합되기 이전인 고창현, 무장현, 홍덕현을 의미하는 늘 푸른 소나무 세 그루를 상징적으로 식재해 놓았다. 기존 기포지에 설치되어 있었던 동학농민혁명 기념탑과 조형물들은 고창동학농민혁명 성지화사업 진행으로 (구)신황초등학교에 옮겨 놓았으므로 함께 연계해서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고산 윤선도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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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고산 윤선도 유적지

조선조의 문신(文臣)이자, 국문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고산 윤선도(1587-1671) 선생의 유적지로 사랑채인 녹우당이 있다. 600년 전통을 이어온 해남 윤씨 어초은파의 종가 고택인 녹우당은 덕음산을 뒤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 중의 하나로도 알려진 곳이다. 현재 고산유적지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는 은행나무와 비자림, 사랑채인 녹우당, 안채, 행랑채, 헛간, 안사당, 고산사당, 어초은사당 ,추원당, 고산유물전시관등이 있어 조선시대 양반가 중 가장 많은 유물 (5,000여 점)을 보관해 온 집안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계백장군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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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계백장군 유적지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 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허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다.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반 이상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부적면 사람들이 지석[支石]을 안치하고 내광 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지름 15.15m, 높이 6.5m로 복묘하였다. 1976년 5월 19일에는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전 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라고 쓰여 있다. 계백(階伯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311-54
고성사(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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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고성사(강진)

고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에 1211년(고려 희종 7)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스님이 인근에 있는 만덕산 백련사(白蓮寺)를 중창할 때 함께 지은 말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1799년(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에는 고성암(高聲庵)이라 되어 있다. 특히 1805년(순조 5) 가을 강진군에 귀양 온 정약용(丁若鏞)이 머물며 혜장(惠藏)선사와 교우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5년 다산정약용은 주역 연구 자료가 담긴 경함을 고성사(高聲寺)로 옮겼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요사가 남아 있다. 이 중 대웅전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후불탱화로는 영산회상도와 지장탱화, 감로탱화, 신중탱화가 있다. 지장탱화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33년 제작된 것이다. 칠성각에는 4점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고성사 목조삼존불상중에 한 분은 십여 년 전, 일본으로 팔려갈 뻔한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고성길 260
고석사(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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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역사관광

고석사(포항)

포항시 남구 장기면 묘봉산에 있는 고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7년(638) 어느 날 경주에 있는 궁궐에 동쪽으로부터 세 줄기의 서광이 비쳐 그 빛이 연 3일간 계속되었다. 선덕여왕의 명으로 혜능 국사가 서광이 발하는 곳을 찾아가니 한 바위에서 서기가 발하는지라 그 바위에 부처님을 새기고 절을 지었다. 그리고 오래된 바위에서 서광이 발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고석사라 칭하고, 뒷산은 기암괴석이 동해를 바라보며 솟아있어 망해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미상이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보광전은 주심포집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이며, 안에는 자연석을 깎아 조각한 높이 281cm의 석조여래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로 526
계원사(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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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역사관광

계원사(양산)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소속 사찰인 계원사는 사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구전에 따르면 가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가 1924년에 중건된 것으로 파악된다. 사찰의 유래와 관련하여 옛날부터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계원사에서 양산시가지를 향해 서서 왼쪽을 바라다보면 가까운 능선 끝에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의 이름은 닭바위라고 한다. 옛날에 계원사 아래 삼동리 마을사람들이 새벽이면 닭바위 위에서 나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새벽을 열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그 닭들이 물을 마셨다는 닭우물도 있다. 계원사 대웅전은 낮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에는 창호문을 달았으며, 중앙 어칸에는 3분합문, 좌·우 협칸에는 2분합문을 달았다. 측면에는 한 짝의 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나머지는 벽체로 처리하였다. 중앙 어칸과 협칸은 모두 격자 문양의 살창이다. 기둥머리에 결구된 창방 위에는 2익공의 비교적 간결한 공포를 마련하여 지붕의 하중을 받도록 하였다. 2003년에 요사채 옆의 절개지 작업 도중 신라시대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출토된 7점의 완형 토기들은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중앙우회로 66-64 (중부동)
계승사(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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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계승사(고성)

태고의 신비로움과 암벽의 경이한 모습을 품고 있는 공룡의 나라 고성 금태산 기슭에 자리한 계승사는 시간의 흔적만큼이나 계승사 바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억 년 전 이곳이 공룡들의 땅이라고 증명하듯 초대형 공룡 발자국을 남겨두었다. 또 거대 암반 위에는 파도가 밀려가면서 모래사장에 만들어내듯 한 물결무늬 화석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승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기암괴석은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는가 하면, 태고의 빗방울이 남긴 자국까지, 그야말로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품이 따로 없다. 용두봉에서 발원하여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로 흐르고 있는 석간수는 그 옛날 매일 부처님의 공양미로 올릴 석 되 두 홉의 공양미가 쏟아졌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맑고 청정하다. 금태산 계승사에서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삼남도를 내려왔다가 이 절에서 수행하며 조선 창건의 꿈을 키웠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자신의 수행한 산의 이름에 ‘금’ 자를 붙여 하명했는데, 바로 고성의 금태산(金太山)과 남해의 금산(錦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조용히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신라 천 년 고찰 계승사는 천연 자연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그 호젓함을 더해주고 있다. 번잡한 시가지를 벗어나 조용한 여유를 찾고 싶다면 바위 위 계승사 법당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 소리와 풍경소리가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 대법3길 236
경흥사(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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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산시역사관광

경흥사(경산)

경산 동학산에 위치한 경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59년 혜공이 창건하였으나, 이후 조선 초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1592년 임진왜란이 났을 때 유정이 머물렀다고 하며,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에 탔다고 한다. 그 뒤 계룡산 갑사에 있던 연규가 불상을 조성하여 중창하였고, 1897년 김사숙이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과 칠성각, 산신각, 승당, 요사 등이나 절터의 유적들을 보면 한때는 매우 큰 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말까지만 해도 학승만 수십 명이 머물렀다고도 한다. 경흥사 내에는 보물 제1750호인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제555호인 수미단 부재가 있다. 수미단이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이라 하는 상상의 산인 수미산을 본떠 만든 불상을 모신 좌대를 말한다.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모골길 196-55
공산성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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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산성연지

공산성연지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연못터다. 1982년 12월 3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영은사 앞에 있는 연못터에 단을 둔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다. 백제시대부터 계속하여 이용되어 왔음을 시사하고 있는 이 연지는 산성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백제문화를 둘러보기 좋은 곳으로 공주 IC에서 가깝고, 주변에 금강신관공원과 미르섬이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고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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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역사관광

고불암

해인사 고불암은 1200년 역사를 가진 해인사의 산내 암자로서 해인사 암자 중 가장 높은 해발 900m에 법당이 있으며, 전체적인 건축구조와 형상이 산내 암자 중 해인사와 가장 비슷하며 전통적인 목조건물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통사찰식 목조건물은 법당을 중심으로 양옆에 육화당, 벽안당이 있고 앞으로는 고불루가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5길 194
경주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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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읍성

경주 시가지 중심부에 신라 이후의 천년 경주를 상징하는 주요 유적인 경주읍성이 자리해 있다. 신라 시대에는 월성이 중심이었다면 고려 이후에는 경주 읍성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고려와 조선에 이어지기까지 행정, 생활, 군사기능이 모여 있던 경주의 심장부였다. 고려 시대에 처음 축조된 이래, 조선 시대에 여러 번 고쳐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복원된 모습은 조선 영조 21년(1745)에 중수한 모습이다. 영조 때 중수한 경주읍성은 성곽 둘레가 2.3㎞에 달했고, 동서남북에 성내로 통하는 사대문이 자리했다고 전한다. 사대문은 모두 소실되었는데, 동문인 향일문을 최근 복원하였다. 동쪽에 100여 미터 남짓 남아 있던 성벽을 이어 쌓고, 치성, 옹성, 동문 등을 복원해 2018년 11월 일반에 공개했다.

경상북도 경주시 동문로 31
경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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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역사관광

경천묘

경천묘는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에 있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묘우이다. 신라 말 927년에 경순왕은 왕위에 올랐으나 신라는 이미 사직을 본전할 힘이 미약한 상황이었으므로 935년(경순왕 9년) 이미 운명이 다한 신라의 형편을 신하들과 논의한 끝에 고려에 넘기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 후 경순왕은 두루 다니다가 이곳 용화산(현 미륵산)의 빼어남을 보고 그 정상에 올라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그 아래에 학수사와 고자암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경순왕이 돌아가시자 왕을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들이 고자암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받든 것이 영정각의 시작이었다. 고려 중기 이후 전각은 무너지고 인적도 끊어졌다가 조선 초에 이색, 권근 등에 의해 전각이 다시 지어졌다. 숙종 때 원주목사 김필진이 새로 초상화를 그리고 전각을 지어 모셨으나 화재를 당했고, 영조 때 재건되면서 임금이 영정각의 명칭을 경천묘로 바꾸었다. 그 후 경천묘는 다시 불태워졌으나 경순왕이 머물렀던 유래에 따라 신라 문화를 지켜낸 왕의 충정을 기리고자 원주시가 2006년 9월 이곳 미륵산 아래에 경천묘를 복원하였다. 외곽의 진입문은 평삼문으로 되어 있고 사당 진입문은 솟을삼문으로 되어 있는데 당우는 조선후기 익공양식으로 되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귀래면 미륵산길 200
고진하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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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역사관광

고진하 가옥

고진하 가옥은 강원 영월군 남면에 위치한 곳이다. 뒤로 병풍처럼 산을 등지고 있으며, 영서와 중부 지방의 민가 형태를 보이고 있다. 가옥의 평면구조는 외형상 서로 붙어 있는 안채와 사랑채가 ‘ㄷ’ 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헛간채가 일자형으로 배치되어 중정형의 마당을 갖고 있다. 영월 남면에 원골다리를 지나 도동마을과 원골마을 지나 위치한 고진하 가옥은 뒤로는 푸른 산자락을 등지고 앞으로는 밭을 두고 있으며, 마을길 방향으로는 사랑채가 전면을 드러내고 있다. 사랑채의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약간 낮은 물매의 차분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가져 주변 산새와 잘 어우러지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원골길 170-9
공주 중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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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중동성당

중동성당은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1897년 설립됐다. 초대 신부로 프랑스 선교사 기낭이 부임했으며 1921년 제5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종철 신부가 새 성당 건립을 계획해 1937년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강당 ‘천사의 집’, 새 사제관과 수녀원을 완공했고, 1997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성당 건물을 대대적으로 보수했으며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중동성당은 전통 목조 건축에서 현대건축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평가된다. 본당의 평면은 라틴십자형, 건물 외관은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중앙 현관 꼭대기에는 높은 종탑이 있으며, 현관 출입구와 창의 윗부분은 뾰족한 아치로 장식돼 있다. 인근에 국고개 문화거리와 충남역사박물관 등 볼거리가 풍부해 당일치기 코스로 좋다.

충청남도 공주시 성당길 6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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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공주 중학동에 자리한 구 선교사가옥은 미국 감리교회 소속 선교사 사택으로 건립됐다.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주에서 선교사들이 선교 사업을 벌인 것은 물론이고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영명학교가 교육을 시작한 상징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로 계단실과 각층 공간이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연결돼 있다. 구 선교사가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으며 공주 기독교 역사위원회에서 지정한 유관순의 길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열사가 다니던 영명학교, 태극기를 인쇄해 독립운동을 했던 공주제일감리교회를 방문하는 것은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쪽지골길 18-13
고척동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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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역사관광

고척동 고인돌

구로구 고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이다. 고척고등학교 뒷산 삼국시대의 토성인 신정리 토성 경내에 있다. 이 고인돌은 1998년 서울대 조사단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 후 실시된 관련분야 교수들의 조사에서 덮개돌의 주변에 덮개돌과 동일한 형태의 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또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돌방이 확인되었으며, 굄돌 등의 배치 상황으로 미루어 고인돌로 추정케 한다. 고척동 고인돌은 구로구에서 유일한 고인돌로서 주변의 고척동 유물산포지 등과 더불어 청동기시대 주변 지역 일대의 문화상 이해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곳은 구로올레길 코스에 있으므로 가볍게 산책을 하면서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
고성 문암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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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역사관광

고성 문암리 유적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은 동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구릉지대의 남쪽사면 사구위에 형성되어 있는데 인근에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여러 시기에 걸쳐 형성된 유적이다. 1998년 12월부터 1999년 3월까지 문화재청 국립 문화재연구소에서 전체 유적 중 약 200여평의 발굴조사를 한 결과 5개의 유물 포함층과 3개의 신석기시대 문화층이 퇴적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3기의 주거지와 야외 노지 등 다양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한반도 동북지방과 중국의 동북 3성 지방, 러시아 아무르강 연안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문화와 한반도 선사인의 원류 및 이동경로, 당시의 문화계통과 전파 정도 등을 밝히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문암리 선사유적은 고성 여행지 중 가장 정적인 곳이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진리
고흥 쌍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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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고흥군역사관광

고흥 쌍충사

쌍충사는 충열공 이대원과 충장공 정운을 배향하는 사당이다. 이대원은 1587년 녹도만호로서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적을 맞아 전과를 올렸고 손죽도 해상에서 순절하였다. 정운은 유성룡의 천거로 1591년 녹도만호로 부임했고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과 함께 옥포·한산해전 등에서 선봉장으로서 전과를 올리고 몰운대에서 순절했다. 쌍충사는 1605년 이대원의 아들인 이대상이 세웠으며, 1990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내부에는 이대원과 정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쌍충사는 봉암리 해안가 높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어 소록도와 녹동항, 녹동항 바다정원이 바로 보이며 이곳을 둘러본 후 뒷문으로 나가면 공원형식의 녹도진 성지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도양읍 목넘가는길 34
곡성 함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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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곡성군역사관광

곡성 함허정

조선 중종 38년(1543년) 심광형이 이 지역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로서 ‘호연정’이라고도 한다. 증손자 심민각이 오래된 정자를 옛 터 아래쪽으로 옮겨 다시 지었으며 5대손 심세익이 고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80년에 수리를 한 것이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구성은 마루 1칸을 3면을 터 만들었고 2칸 반은 방으로 꾸몄다. 나머지 오른쪽 반 칸은 바닥을 한 단 높여 쪽마루를 두었다. 정자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 울창한 숲, 멀리 무등산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약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심광형이 세운 군지촌정사(중요민속자료)가 있다. 당대 학문을 익히던 선비들의 수양지와 휴식처를 빼어난 경치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입면 제월리
고령박씨종중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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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고령박씨종중재실

암행어사로 많은 일화를 남긴 박문수(1691∼1756)의 제사를 모신 곳이다. 박문수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경종 3년(1723)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에까지 올랐다가 1724년 노론이 집권할 때 파면되었다. 1727년 소론이 집권하면서 다시 기용되어 영남암행어사, 충청도암행어사 등을 거치며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였다. 그 뒤 호조참판을 거쳐 병조판서와 영의정에까지 벼슬이 올랐다. 이 건물은 1932년에 세웠으며 안채는 ㄱ자형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랑채는 5칸 규모이며 一자형 평면을 갖춘 집이다. 재실 안에는 박문수 공이 사용하던 유품과 영정을 모시고 있고 박문수의 손자인 박영보가 쓴 수부정기와 박문수 일대기 등의 전적을 보관하고 있다. 1990년에는 원래 재실이 있었던 자리에 새로 재실을 지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박문수길 147
공주 정지산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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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정지산 유적

공주 정지산 유적은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국립공주박물관의 발굴조사 실시 결과 국가차원의 제의시설로 추정되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어 2006년 11월 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왕실제사유적으로 공주 송산리 고분군(公州宋山里古墳群:사적)과 인접한 곳에 있다. 시설물은 기존의 가옥을 모두 철거한 후 능선을 깎아내고 넓고 평탄한 대지에 만들어졌으며 공산성이 바라보이는 남동쪽으로는 약 세 겹 내지 다섯 겹의 나무울타리를 돌리고 송산리 고분군 쪽으로 연결되는 능선에는 약 1m 내외의 좁은 출입구만 남긴 채 너비 5m, 깊이 2m 이상의 넓고 깊은 도량을 파고 내부에 몇 채의 건물을 축조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화려한 장식이 부착된 장고형 그릇받침 등 국자세자와 관련된 유물이 수집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고령안화리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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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역사관광

고령안화리암각화

고령안화리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암벽에 새긴 바위그림으로, 가로 115㎝, 세로 90㎝의 바위 면에 쪼기 수법으로 3개의 그림을 새겨 놓았다. 먼저 U자형 반원을 기본으로, 좌우에 활모양의 선을 대칭되도록 그렸으며, 오른쪽 그림에는 작은 구멍을 팠다. 그림의 위쪽 절벽의 바위 면에도 같은 종류의 그림이 2∼3개 더 있는데, 영일 칠포리 암각화와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해안에 살았던 사람과 내륙에 살았던 사람이 같은 의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고산서원(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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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역사관광

고산서원(울진)

고산서원은 경상북도 울진군 구미마을에 있었던 조선시대 문신 임유후, 김시습, 오도일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1628년 임유후가 이곳에 내려와 고산에 정자를 짓고 20여 년간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였다. 그의 사후 제자들이 임유후를 추모하기 위해 고산사를 건립하였다. 그 뒤 이곳의 현령으로 부임한 오도일은 김시습이 자주 다녀간 행곡리주천대에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동봉별묘를 세우고 구암사라 하였다. 오도일이 죽은 뒤 1715년 고산이라는 사액을 받고 고산서원으로 승격되어 임유후, 김시습, 오도일을 합향하게 되었다. 고산서원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하던 중에 훼철되었고 그 후에 다시 복원되지는 못했다. 위패는 땅에다 묻었으며 현재 서원터에는 유허비만 남아있다. 이 서원이 훼철되기 전 경내 건물로는 고산사, 강당, 신문, 동재, 서재 등이 있었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주천대길 27-6
고산서원(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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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역사관광

고산서원(안동)

이 서원은 18세기 유학자인 문경공 대산 이상정선생을 추모하는 고산서원이다. 1789년(정조 13)에 사림의 공의로 건립되었다. 선생은 25세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고 퇴계의 학통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연구하는 한편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선생의 문인록에 등재된 제자만도 273인이나 된다. 1882년(고종 19) 이조판서에 증직 되고 1910년 문경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문집 27 책이 있고 이기휘편, 제양록, 퇴계서절요, 사례상변통고, 병명발휘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추었으며. 특히 앙지재와 백승각의 양 끝은 개방된 마루를 두어 주변 경관을 음미하도록 꾸며져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암산1길 53-1
곡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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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순천시역사관광

곡수서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조례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조선 명종 때의 진사 정소를 추모하고자 숙종 38년(1712)에 순천유림인 조구년, 유책, 임진상 등이 발론하여, 정소의 형 정자와 지우인 조대성을 함께 배향하는 사우로 정소의 유지인 청사헌 자리에 건립하였다. 원래 이름은 정소의 호를 따서 청사사라 하였으며 현 순천시 저전동의 청사헌 자리에 있었다. 1868년의 서월철폐령으로 훼철되어 향사가 중단되었다가 1958년에 향교의 유림대표 조창렬 등과 연일 정씨 정운호 등 후손들이 협력하여 현 위치인 조례동에 사우를 재건하면서 이름을 곡수서원이라 개칭하였다. 청사사우 때와는 달리 재건된 후에는 정소와 조대성만을 향사하고 있다. 곡수서원 앞에 네모난 형태의 아름다운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순광로 105-17
계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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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영광군역사관광

계송서원

계송서원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계송리에 위치한 서원이다. 1966년 향내 유림의 발의로 하동 정간, 미산 정례손 등의 절개와 의리를 추모하기 위하여 현 소재지에 사우를 창건하고, 처음 이를 도내사라하고 제향(각종 제사 의식) 해 오다가 후에 계송서원이라 개액하였다. 향사는 음력 2월 20일과 8월 20일에 모신다. 주변 관광지로는 우산근린공원, 영광예술의 전당, 영광 스포티움, 영광향교, 물무산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영광읍 청보리로3길 31
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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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계산서원

공의로 김지대(1190~1266)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현재의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두곡리에 남계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사당의 명칭을 충효사라 하고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하다가, 고종 51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위패는 뒷산에 묻고 단을 세워 향사하다가, 1907년에는 후손들이 강당인 쌍수당을 중건하기도 하였다. 그 뒤 전라북도 무장향교 관내 유생들이 발의하여 1982년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고, 명칭을 계산서원이라 하였다. 서원 내에는 사당인 상충사 3칸, 강당인 경의당 4칸, 감모재 5칸, 내삼문, 정문인 쌍수문, 고직사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상하면 상라길 117
고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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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고로서원

고로서원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정분(鄭苯)과 정지산(鄭之産)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1924년에 제각(祭閣)인 경모재(敬慕齋)를 축성하였고, 1931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이때 우연히 부여의 외산(外山)에서 정분의 영정을 발견하자 이를 모사하여 사당에 모시게 되었다. 1982년 정분의 충과 정지산의 효를 기린다는 의미에서 후손들이 충효사라고 명명하였으며, 1994년에 공주 유림과 후손들이 사우와 삼문을 세워 고로서원(古老書院)이라 명하고 정분을 주향으로, 정지산을 종향으로 모시게 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고, 30칸의 담장이 둘러져 있다. 지금은 사곡면의 진주정 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고로사라는 절을 개조하여 재실로 이용하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능계길 60-67
계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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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계담서원

계담서원은 순흥 안 씨 선조들을 제향 하는 곳으로 괴산군 감물면 계담마을 중심에 위치해 있다. 1824년(순조 24)에 조선 중기의 문신 안명세 선생을 모시는 계담사로 마을 뒷산에 창건했다. 그 후 1865년(고종 2)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1년에 순흥 안 씨 양도공파 종회 안동준 회장과 안병태 선생 등이 인근 지역의 유림과 전교에게 계담사 자리에 고려의 문신 문정공 안축을 주벽으로 조선 세종조 명신 안문숙공과 중종조 안한림공, 선조조 안사촌공, 선조조 안세마공의 5위 사당을 준공하고 앞 층계에 내삼문을 세우고 그 안에 묘우로 세덕사를 건립하여 계담서원을 복원하여 지금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계담서원은 강서당(학습실)과 학구당(도서관)이 갖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계담서원 내 홍살문을 지나면 좌측에 도서관으로 이용하는 학구당이 있다. 2만 5천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이 언제나 대여 및 열람할 수 있다. 강의실로 쓰이는 강서당에서는 교양과 전통예절, 역사문화, 서예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수강생과 졸업생을 배출해 낸 교육의 장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
고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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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역사관광

고산서당

고산서당은 처음에 서재(書齋)로 건립되었다가 서원과 서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 교육 기관이자 선현을 제향(祭享)하는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곳이다. 건립된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이곳에서 강론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50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고산(孤山)’이라는 이름도 퇴계에게 요청하여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서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강학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해오다가 숙종 16년(1690)부터 퇴계와 우복을 배향하는 서원이 되었다. 이후 영조 10년(1734)에는 강당과 동재·서재를 새로 지어 서원으로서의 완전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강당만 재건되면서 고산서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964년에 강당 건물을 중수하였고, 2020년에는 사당과 삼문, 담장을 세워 옛 서원의 모습을 다시 갖추고, 동고 서사선(東皐 徐思選)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으나 2021년 12월 20일에 화재가 일어나 강당이 불에 타고 말았다. 사당 담장 안에 세워져 있는 강학(講學) 유허비(遺墟碑)와 강당 뒤편의 두 그루 정자나무는 이 서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로37길 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