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취향으로 찾기

오늘 갈 곳을 찾아보세요

지역과 관심 분야를 선택해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보세요.

역사관광

발견한 장소

648건

조건 초기화
구미 선산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구미시역사관광

구미 선산향교

향교는 유교를 숭상하던 시대에 각 지방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이다. 구미 선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나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그 후 선조 33년(1600)에 선산부사 김용(金涌)이 대성전(大成殿)과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지었고, 인조 1년(1623)에 선산부사 심륜(沈倫)이 명륜당(明倫堂)과 동재, 서재 등을 새로 지었다. 건물은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인 명륜당이 앞에, 유교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공간인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공부하는 장소이자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기도 한 청아루(菁莪樓)는 평면이 ‘ㄷ’자형으로 된 누각인데, 앞면은 2층으로 되어 있고 뒷면은 명륜당 마당으로 연결되어 있어 특이하다.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리2안길 24-35
구 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 관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구 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 관사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는 논산시 강경읍 강경상업고등학교 내에 위치한 문화재로 1931년 건축된 지상 1층의 벽돌 건물이다. 일본 목조 형식을 벽돌로 바꿔서 높은 박공지붕이 이음지붕형태로 늘어진 것이 특징이다. 입구는 석재마감의 포치를 사용하고 있으며, 외형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근대 주택사적 가치가 있다. 내부 공간은 좁고 미로 같은 복도에 많은 방을 배치하여 일본식 배치 구성을 따르고 있다.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가 있는 강경상업고등학교는 국도 23호선, 지방도 68호선, 지방도 799호선 등에서 계백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 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 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철도 강경역과 강경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강경근대거리, 강경젓갈시장, 강경포구, 죽림서원, 팔괘정 등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 220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충남 논산시 강경 읍내에 위치해 있다. 초기 선교 과정에서의 토착화 현상에 의해 기독교 건축의 형태는 한옥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신부 및 목사가 대부분 서양인이었기에 한옥의 불편함을 느꼈고, 서양식 건물을 동경하는 일부 신도들로 인해 점차 서양식 예배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초기 한옥 교회가 대부분 소멸되거나, 개축 또는 신축되어 원형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옥 형태로 남아있는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희소적 가치가 높다. 특히 내부 구조는 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에 나타난 한옥 교회의 건축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는 흔히 칸막고교회라고 하여 제단을 중심으로 천을 설치하여 남녀를 구분하기 위한 초기 교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내부의 벽돌 위의 회반죽 마감과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한 연등천장은 단순한 목조건축의 구조적인 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목재의 치목수법과 가구기법은 전통적 기법에서 근대화에 따른 기술적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강경성결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국도 23호선, 지방도 68호선, 799호선에서 옥녀봉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철도 강경역과 강경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강경젓갈시장, 강경역사관, 강경근대거리, 강경포구 등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219번길 40-1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인천광역시 제물포구역사관광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해안동에 있는 구 일본우선(郵船)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개항 이후 인천의 해운업을 독점했던 일본 운송회사의 사옥이었다. 일본우선(郵船)주식회사는 당시 인천의 해운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며 지금도 도쿄에 본사를 두고 해운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당시 업무용 건물로서 규모가 큰 편으로 붉은색 지붕에 외벽을 노란색 타일로 처리했다. 이 건물은 지금 남아 있는 우리나라 근대 건축물 중 상당히 오래되었고, 종교시설과 공공시설이 아닌 민간 소유의 건물 중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근대문화 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높다. 최근까지도 해운업 관련 회사의 사무실로 이용되었으며 우리나라 해운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로 가치가 있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제물량로218번길 3 (해안동1가)
관음사(대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구광역시 동구역사관광

관음사(대구)

대한 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인 관음사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인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절벽 아래 난간과 계단을 세우고 자리하고 있다. ‘팔공산도동낙가산관음사사적비명’에 의하면, 관음사는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0년(670)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9세기 초에 심지왕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후 관음사는 1933년에 해인대사가 중수하였고 교남지에 '해안면 도동에 관음암이 있다.'라고 함을 보아, 해인대사가 퇴락한 관음암을 중수하였다는 것은 사실로 추정된다. 1970년에 관음전을 신축하였고 1999년에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해탈문을 지나면 1층은 정면 7칸, 측면 5칸, 2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구조의 무설전이 있다. 무설전 맞은편 2개의 석등 사이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아주 작은 2층의 누각이 있어 1층에는 낙가산관음암이, 2층에는 관향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관음전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구조로 석조관세음보살입상을 주불로 봉안하고 오른쪽 미륵보살 왼쪽에 지장보살을 모셨다. 특히 주불인 석조관음보살은 외형이 매우 투박하여 옷의 주름 표현이 세련되거나 화려한 관을 쓰고 있지도 않다. 미륵전은 관향루 왼쪽 계단을 올라가면 자연석 바위를 머리에 인 상태로 조그마한 전각에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다. 누각 아래 길을 오르면 향산이라는 편액이 있는 요사가 있고 관향루와 요사 뒤쪽 산 중턱에 오층석탑이 있다. 관음사는 사찰의 규모가 크지 않고 모셔진 불상이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사찰이다. 또한 오랜 세월 관음사와 함께 한수백 년 된 대구 도동 측백수림은 대구 10경 중의 하나로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로 535
관암사(대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동구역사관광

관암사(대구)

관암사는 대구광역시 동구 능성동 팔공산에 위치한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사찰 명칭은 팔공산 관봉(冠峰)의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갓바위 아래에 자리하여 관암(冠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시대 창건한 고찰이나,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폐사가 되어 누가 언제 창건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관암사는 태고종 총무원장을 지낸 백암승려가 기도 중 불상을 발견하고 터만 남은 곳에 중생들의 안식처가 되도록 서원(誓願)을 세우고 1962년 3월에 재창건하였다. 그 후 건물이 노후화되어 2대 주지인 혜공화상이 2004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2006년 대웅전, 2008년 관음전, 칠성각을 완공하였다. 이어 2009년에 모든 전각의 단청불사를 완공하고, 2010년에 지장보살, 관음보살, 후불탱화 등 부처님을 조성함으로써 가람의 형태를 일신하여 전통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대구광역시 동구 갓바위로 350 (능성동)
교남YMCA 회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중구역사관광

교남YMCA 회관

대구 약령시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등록문화재이다. 일제강점기 3.1 독립운동 때 화합의 공간이자 물산장려운동, 기독교 농촌운동, 신간회 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이었던 건물이다. 대구 중구 근대역사의 중요한 시설물로 이만집 목사 3.8 만세 운동 기념지로 한국기독교 사적으로 지정됐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각종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였으며 특히 당시 산업의 대부분인 농촌사업을 체계화하고자 전국 각지에 농민학교를 세우고, 협동조합, 농민회, 야학 등을 조직하여 농천 청년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22
관음사(부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사하구역사관광

관음사(부산)

도심 안에 자리 잡은 관음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부산 분원이다. 학을 타고 있는 산이라는 뜻의 승학산에 1940년 5월 1일 승려 일련이 관음사라는 조그만 조막을 지어 수행하고 포교하면서 건립되었다. 이후 요사채를 건립하고, 법당과 후원을 짓고 도량을 넓혀 1984년 승광사 부산 분원으로 등록하였다. 관음사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묘법연화경 권4~7을 소장하고 있다. 구마라집이 번역하고 계환이 주해한 것을 저본으로 조선시대 명필인 성달생, 성개 형제가 선친의 명복을 기원할 목적으로 정서한 법화경을 판하본으로 하였다. 1405년에 전라도 도솔산 안심사에서 도인 신문이 주관하여 목판으로 새긴 것을 후쇄한 것인데, 초간본이 아닌 그리 오래되지 않은 후쇄본임을 알 수 있다. 전체 7권 2책 중 권 4-7의 제2책만 남아 있는 결본이며, 책은 전반적으로 아래위에 습기로 인한 침수 흔적이 일부 있다. 관음사 소장 묘법연화경은 조선 전기인 태종 때에 판각·인쇄된 것으로 조선 전기 불경 및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불교사적, 서지학적 가치가 뛰어난 유형문화유산이다.

부산광역시 사하구 제석로79번길 33 (당리동)
광덕사(대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광덕사(대구)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광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이다. 이 사찰은 1967년 정운성에 의해 창립되었다. 광덕사는 납골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사찰 건물로는 대웅보전, 산신각, 독성각, 요사채가 있으며, 사찰 입구에는 범종각과 포대 화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찰은 고즈넉한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방문객들에게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헐티로 1190
광명선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음성군역사관광

광명선원

광명선원은 1974년 창건된 광명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1998년 대한불교조계종 광명선원으로 사찰 명칭을 변경하였다. 사찰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요사채, 공양간, 강당, 산신각 등이 갖춰져 있다. 아울러 2기의 도량탑과 영탑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영탑 공원은 불교의 장례법인 부도탑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을 말한다. 입구에서는 이러한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영탑을 지나 올라가면 또 다른 자연과 잘 어우러진 사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대금로 1402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역사관광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을 한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으로, 원주 지역에서 맨 처음 건립된 은행이다. 조선식산은행은 1906년 6월부터 각 지방에서 설립된 6개 농공은행 권리와 의무를 계승한 은행으로서, 조선총독부가 조선에서 농업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본인의 직접적인 투자와 경영에 의존하는 대형 개발은행으로 설립했다. 1943년에는 한국인 행원 150명을 포함하여 498명의 행원을 채용했던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정책금융기관으로 계속 활동하였다. 그러나 8·15 해방과 함께 일본으로부터의 자본도입이 소멸되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사채 소화도 불가능해 미국 대충자금의 일부만 취급하는 등 개발은행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상업은행으로 변신하여 활동하다가 1954년 제정된 한국산업은행법에 의거해 개발은행인 한국산업은행으로 재출범했다. 외관은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창문을 위아래로 길게 반복 배치하여 수직성을 강조하였고, 외벽은 인조석 질감의 모르타르로 마감하는 등 일제강점기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중앙로 88 (중앙동)
구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강동구역사관광

구강사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구강사는 서울 동부지역 천태법음 요람이자 포교도량으로 대한불교천태종 소속 사찰이다. 5층 단독 건물로 5층에 법당이 있으며, 3층에는 교육시설인 금강유치원이 있다. 정기법회는 매월 넷째 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열리고 있으며, 불교대학도 운영되고 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중로 64 (천호동)
광수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전광역시 유성구역사관광

광수사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광수사는 대한불교천태종 사찰로 1995년 지어졌다.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삼대지표를 행하고 있는 관음기도 도량이다. 사찰에는 웅장함이 느껴지는 3층 높이의 대적광전을 비롯해 포대화상, 대자대비 관음보살상 등이 있다. 대적광전으로 향하는 길에 거대한 규모의 관세음보살 좌상과 드넓은 연꽃밭을 만날 수 있다. 광수사는 대전 유성구 연꽃 명소로도 유명하며, 연꽃의 개화시기인 7월과 8월에 이곳을 방문하면 아름다운 연꽃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학하서로63번길 26 (계산동)
광양 김시식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광양시역사관광

광양 김시식지

광양김시식지는 세계 최초로 김을 양식한 역사적인 장소로, 김양식법을 창안한 김여익을 기르는 영모재, 위패와 묘표문이 보관된 인호사, 김의 유래와 역사를 담은 역사관, 김 생산 도구 등이 전시된 유물전시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마다 음력 10월 10일, 내삼문 안쪽 인호사에서 김여익 공을 추모하는 시제를 지낸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김시식지1길 57-6
교하동 고인돌 산림욕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파주시역사관광

교하동 고인돌 산림욕장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과 지압로등 체육시설, 벚나무길로 조성되어 있다. 동패동 교하중학교 인근 다율동과 당하동, 교하동이 인접한 구릉지대에는 100 여기가 넘는 고인돌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군사시설 조성과정에서 고인돌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20 여기만이 남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6기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다율동에서 발굴된 고인돌은 이미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에 본래의 하부구조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지만, 탁자식으로 추정된다. 고인돌 주변에서 나온 유물로는 작은 토기조각 등이 있다. 일부의 고인돌은 현재 경기도청, 통일로, 온양민속박물관 등에 이전 복원되었다. 발굴된 당하동 고인돌의 대부분도 제자리를 벗어난 것들이다. 고인돌 가운데는 하부구조가 타원형의 적석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고인돌 주변에서는 간돌검, 화살촉, 숫돌 등이 채집되었다. 당하동 고인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청동기시대의 집터가 발굴되었다. 집터는 긴 네모꼴의 움집으로 길이 12.5m, 너비 4m, 깊이 40~80m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에서 구멍무늬토기(공렬토기), 민무늬토기, 간돌검, 가락바퀴 등이 나왔다. 집터 안쪽에 화덕자리가 두 군데 있다. 이 집터는 고인돌을 축조한 선사인들의 살림살이를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출처 : 파주시 문화관광)

경기도 파주시 교하로1290번길 91-1 (당하동)
공주서혈사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서혈사지

공주서혈사지는 웅진동 우뚝 솟은 망월산의 동쪽에 자리 잡은 옛 절터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기와에 서혈사라고 적혀 있었고, 백제의 전형적인 연꽃무늬 와당과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각종 기와류, 석탑부재, 초석들이 발견되어 백제 때 지은 사찰로 추정된다. 서혈사지는 완만하게 경사진 밭을 3단계로 구분하여, 석축을 쌓고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된 내용에 따르면 불도를 닦던 곳의 배치가 지형과는 관계없이 남쪽을 향해 탑, 불당과 함께 직선상에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절터와 관련이 있는 석굴사원은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하여 승려의 수도장으로 만든 것인데 크기는 길이 8m, 높이 4.5m, 폭 17m의 규모이다. 북쪽 벽에는 불상을 안치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층대가 있다. 여기에서 발견된 3구의 석조불상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혈사지 석굴은 석굴 내에 불상을 안치하는 석굴사원의 수법을 백제가 남조로부터 도입하였을 것이라는 당시 상황을 추측하게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82년 12월 31일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시어골2길 96-44 (웅진동)
관음정사(김해)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관음정사(김해)

관음정사는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 평지마을 불모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도시의 삭막함과 세속의 번뇌를 벗어나 산사에서 일상생활 체험을 통해 조용히 자신의 내면세계를 성찰하고 자아발견의 계기를 마련하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템플스테이 종류로는 휴식형과 맞춤형이 있다. 휴식형은 사찰의 주요 일정인 예불, 공양, 운력 등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산책, 등산, 명상, 도자기공예체험 등 자유롭게 활용하는 형태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다. 맞춤형은 기업이나 각 기관, 단체, 학교 등에서 단체의 특성에 맞게 효과적인 진행을 위해 각 단체별로 원하는 내용으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연수교육 등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관음정사에는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김해 관음정사 소조보살좌상’이다.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보살상으로 토제의 소형 보살상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고 전통적인 소조 기법으로 제작되어 희소성과 예배대상물로서의 빼어난 조형미를 지니고 있는 등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또 다른 문화유산자료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영혼들에게 지내는 불교의식을 모은 책인 ‘김해 관음정사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이다. 이 책은 1637년에 출판된 것으로 조선시대에 유행한 전적류으 파악과 다양한 지방본을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조선후기 천도재(죽은이의 영혼을 극락에 보내기 위해 치르는 의식)의 변천사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높다.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평지길 299
구니서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구니서당

구니서당은 300여 년 전 김굉필의 후손들이 세운 것으로, 봉선소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그 뒤 묘각이나 서당으로 사용하였다. 조선 고종 3년(1866)에는 김굉필의 둘째인 김찰휘 언상공을 비롯한 4명의 위패를 모시고 서원으로 지었으나,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 1916년 규모를 넓혀 지금의 정당을 중수하였고, 사현사는 1943년에 창건한 건물을 1986년부터 9년에 걸쳐 동·서재 및 문루와 함께 중창하였다. 경내에는 정당을 비롯하여 사당, 동재, 서재, 문루, 관리사 등이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창밀로 506-30
구계서원(사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사천시역사관광

구계서원(사천)

구계서원은 사천읍 구암리 만죽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학자인 구암 이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구암 이정은 중종 31년(1536)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거친 문신이자 학자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후진양성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이 서원은 선조 39년(1606)에 세웠으며, 광해군 3년(1611) 사당인 구산사를 세웠다. 숙종 2년(1676)에 ‘구계’라는 현판을 나라에서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경종 3년(1723)에는 성옹 김덕함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으며,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던 것을 1931년에 다시 세웠다. 서원 안에는 대관대, 사당,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구암두문로 361-17
광천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밀양시역사관광

광천서원

광천서원은 안명하 선생(1682~1752)의 제향을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안명하 선생은 본관이 광주이고, 자가 국화이며, 호가 송와로 조선 단종 때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밀양 삽포리(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로 전거 한 안억수의 9 세손이다. 안명하 선생은 평생 출사하지 않고,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고 연구하여 성리학과 예학의 경지가 높았으며, 대학자 이상정(1711~1781), 정만양(1664~1730)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 『송와집』, 『배운록』 등이 있다. 강당은 5칸이고 ‘광천서원(廣川書院)’이라는 편액이 있다. 사우는 ‘숭효사(崇孝祠)’로 3칸이다. 내삼문은 ‘상례문(尙禮門)’이다.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사포중앙1안길 7
광제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광제서원

남양 홍씨 홍의와 홍관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며, 홍의(?~1356)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무신이고, 홍관(?~1126)은 문신이며, 서예가로 예부상서 등 여러 벼슬을 거쳤다. 세울 당시에는 선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기능만 담당하던 홍복사로 세웠다가, 영조 23년(1747) 홍지암으로 이름을 바꿨다. 홍지암 상량문에 의하면 1891년 중수한 기록과 함께 모원재로 개칭되면서, 남양 홍씨 문중에서 재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1976년 영남 유림에서 광제서원으로 격상시켜 매년 음력 3월 10일 고려 은청광록대부상서 홍의와 고려 금자광록대부 수사공상서보문각태학사 홍관, 양위에게 춘향을 올리고 있다. 건물 6동 모두가 각각 특색 있는 건축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고려 초기 건축양식을 대표할 수 있는 건축물로 보여 보존 가치가 높다. 광제서원은 정면 5칸의 맞배지붕이고, 경충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아름다운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광제서원에 들어서는 진입로의 입구에는 남양 홍씨 인물 중 이 지역에 임관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비가 세워져 있어 광제서원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광제산로685번길 116
관산서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관산서당

창녕 관산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로 전면의 반칸을 퇴칸으로 한 축조한 형식이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우측방의 전면 툇마루는 한단 올려 대청과 높이가 다르게 시설하였다. 방의 창호는 모두 세살문을 사용하고 있다. 좌측방에는 두 짝, 우측방에는 외짝의 세살문을 달았고 대청의 뒷벽에는 판장문을 달아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소박한 형태이다. 3량 가구 형식으로 중앙부에 대들보를 걸고 전면의 퇴칸에는 퇴보를 걸어 연결하였으며 큰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박공지붕 형식이다. 건립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1900년 전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퇴칸의 사용이나 간결한 가구기법 및 장식적 기법 등 조선후기 건축양식과 기법을 볼 수 있는 건물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무엇보다 창녕지역에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월미상월길 115
구만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봉화군역사관광

구만서원

구만서원은 1676년에 사림에서 건립하였다. 금인, 남몽오, 박선장, 권호신 등 4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묘호를 기영사(耆英祠)라 하다가 1766년에 구만서원으로 승격한 뒤,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67년에 지방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전체적인 배치는 사당인 상현사와 강당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는데, 주위에는 방형의 판축담장을 두른 후 전면에는 사주문을 세웠으며 두 공간 사이에는 일각문을 세웠다. 경내에는 상현사, 강당인 흥교당, 출입문인 신문, 관리인의 거주지로 쓰이는 주소 등이 있다. 4현의 위패가 봉안된 상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흥교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 건물인데, 가운데의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1칸씩 있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구만서원길 5
구강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구강서원

익재 이제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정과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이제현은 고려 후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이다. 학자로서 이제현은 뛰어난 유학자로 성리학을 수용·발전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문학 부문에서도 그는 대가를 이루었다. 많은 시문을 남겼고, 고려의 한문학을 발전시켜 한 단계 높게 끌어올렸다. 한편 사학(史學)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저술로 현존하는 것은 『익재난고』10권과 『역옹패설』2권이다. 구강서원은 원래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이제현의 영당(影堂)으로 세운 것을, 숙종 12년(1686)에 서원으로 다시 세웠다. 하지만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고, 1904년 지방 유림이 복원하였다. 서원 배치는 공간을 田자형으로 나누어 토담을 둘렀다. 그 왼쪽에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을 같은 선상에 배치하였고, 오른쪽에는 고사와 경각을 두었다. 경각 안에는 익재영정과 익재집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성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며,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구강길 68-6
광남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역사관광

광남서원

광남서원은 조선 초의 문신 황보인(1387~1453)과 그의 아들 황보석, 황보흠을 배향하기 위하여 1791년(정조 15) 지방 유림들과 후손들이 세운 세덕사가 시초이다. 이후 1831년(순조 31) 임금으로부터 사액서원으로 승격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가, 1900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황보인은 사간원 정언, 집현전 학사, 형조 참의, 강원도 관찰사, 병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을 지냈으며 이후 단종을 보좌하다 1453년 계유정란 때 역모죄로 몰려 살해되었고, 단종 복위와 함께 신원이 회복되어 충정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인 충정묘, 강당인 숭의당,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서원 뒤쪽에 유허비가 있다. 영천 황보씨 문중에서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중정일에 제사를 지낸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정동길77번길 11-2
관란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경산시역사관광

관란서원

경산시 용성면에 위치한 관란서원은 조선 후기 학자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60년 지방유림들의 공의로 이언적의 도덕과 학문을 추앙하여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고, 그 뒤 1715년과 1743년에 묘우를 중수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1869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서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유생들의 학문을 닦는 곳으로만 사용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강당과 2동 5칸의 고사, 대문 등이 있다. 강당은 중앙에 마루가 있고, 양쪽에는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고사의 1동은 향례 때에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이며, 또 1동은 제구를 보관하기도 하였다.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서원천로 268-21
구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역사관광

구계서원

청주 구계서원은 조선 후기 선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47년 지방 유림이 괴산군 청안면 석곡리에 선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으며 이준경, 서사원, 박지화, 이득윤, 이당의 위패를 모셨다. 선현의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헐어서 치워졌다. 광복 후 1955년에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서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고 1982년에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어 고쳤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으로 된 사우(祠宇), 5칸의 재실(齋室), 신문(神門), 동·서 협문(挾門), 기념비 등이 있다. 사우에는 중앙에 위치한 이준경의 위패를 중심으로 서사원, 박지화, 이득윤, 이당의 위패가 나란히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은 춘추 제향 시 제관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7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안뜸로47번길 28
구례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구례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구례향교는 중종 13년(1518년)에 구례군 백련리 서북쪽에 세웠는데, 향사(享祀)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숙종 30년(1704년)에 이곳 봉서리로 옮겨왔다. 대성전, 내삼문, 동재·서재, 명륜당, 외삼문 등이 남동향으로 향교의 일반적 배치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외삼문 밖에 이곳을 지날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으며, 외삼문 밖에는 연못이 있다.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현재는 봄, 가을에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구례향교는 구례 구청에서 약 1㎞ 도보 약 18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구례읍 향교길 36
공주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향교

공주향교는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웅진동 송산리에 있었으나 인조 원년(1623)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고 전한다. 그 뒤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고, 1954년 문묘, 명륜당, 동재, 존경각 등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는 2단으로 땅이 나뉘어 있는데,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양쪽에 동재와 존경각이 있다. 뒤쪽 한층 높은 곳에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사당인 대성전이 있으며, 그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즉 교육 공간은 앞쪽에, 제사 공간은 뒤쪽에 구분하여 배치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1894)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 공주향교는 지역유림들의 모성계에서 기금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소장도서로 89종 337 책이 있다. 1978년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향교1길 26
관수옥과 초량왜관 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중구역사관광

관수옥과 초량왜관 터

관수옥은 초량왜관의 우두머리인 관수가 머물던 곳이다. 당시에는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쪽이 가장 먼저 시가지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는데, 바다에서 배를 대는 선착장이 가깝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배로 들어와 동쪽을 중심으로 살기 시작했고, 관수옥을 지나 왜관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관수옥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도 돌계단이 남아있다. 초량왜관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무역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용두산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초량왜관은 안에는 신사를 비롯하여 일본인들의 편의 시설이 가득했다. 지금은 공원으로 들어가는 세 군데의 진입로가 만나는 지점에 초량왜관 터라는 비석이 놓여 있어 예전에 이곳이 초량왜관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37-55
괴산 정인지 묘소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정인지 묘소

괴산 정인지 묘소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학역재(學易齋) 정인지(1396∼1478)의 묘소이다. 태종 14년(14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 , 등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또한,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로 집현전 직제학, 부제학 등을 지내면서 성삼문, 신숙주, 최항과 함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단종∼성종 연간에는 학덕을 갖춘 정치가로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저서로는 있다. 묘 앞에는 묘비 1기가 서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갓이 없는 높이 250cm, 90cm의 크기이다. 비문은 강희맹이 지었다고 전한다. 묘비 앞으로는 상석과 장명등이 서있고, 좌우로 문관석과 망주석이 서 있다. 묘소 아래에 서거정이 지은 신도비가 있었는데 유실되어 1958년 서거정이 지은 비문을 윤보선이 쓰고 성락서가 제전을 써서 다시 세웠다.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외령로1길 24
괴산 수월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수월정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인 소재(蘇齋) 노수신이 유배되었을 때 거처하던 곳이다. 노수신(1515-1590)은 중종 38년(1543) 문과에 급제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같이 독서당에 뽑혀 함께 학문을 연구하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로 관직에서 파면되어, 순천·괴산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선조 즉위 후 복직되어 후에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 건물은 노수신이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순천, 진도 등지로 유배되었다가 괴산으로 옮겨져 명종 20년(1565)부터 2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괴산 연하동(煙霞洞)에 있던 적소인데 괴산수력발전소 댐을 만들면서 물에 잠기자 1957년 현 위치에 이건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에 우물마루를 깐 대청 1칸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 각 1칸이 있으며 전면에 툇마루를 둔 간소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후에 건물명을 수월정(水月亭)이라고 하여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산막이옛길 315-38
교하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파주시역사관광

교하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교하향교는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파주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관립학교이다. 파주시에는 파주향교, 교하향교, 적성향교 총 3곳의 향교가 있는데 그중 하나이다. 교하향교는 본래 조선 초 1407년(태종 7년)에 탄현면 갈현리에 창건되었는데, 1731년(영조 7) 파주 장릉의 능기로 정해져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968년 담당을 보수하고 1971년 대성전과 부속건물을 중수하였으며, 1973년에는 대성전의 담장과 기단을 보수하였다. 또 1981년에는 내삼문 안의 대성전 묘정을 넓히기 위해 명륜당을 옮겨 세웠으며, 1992년에는 교직사를 옮겨 세웠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이며, 대성전은 전면에 퇴칸을 둔 맞배집으로 제례 시 출입의 동선을 원활히 하고 그 방향성을 명확하게 해주기 위한 기능적 배려로 전퇴를 개방한 특징이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매월 음력 1일, 15일 분향과 1년에 2번 거행되는 춘추 석전 봉행을 시행한다. 금촌IC에서 차량으로 약 7분, 경의중앙선 금릉역에서 약 4분 소요된다. 인근에 파주 출판도시, 헤이리 예술마을, 임진각, 마장호수 등이 있다.

경기도 파주시 쇠재로 91
구강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울산광역시 중구역사관광

구강서원

포은 정몽주와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으로 강학과 교화, 제향 등을 하며 조선시대 선비를 양성했다. 숙종 4년(1678)에 세웠으며 숙종 20년(1694)에 구강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약 200여 년 동안 강학과 향사를 봉행해 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철폐되었다. 훼철된 후 옛터는 주거지로 변하였고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지역 유림들이 서원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서원부지 800여 평을 매입하고 울산광역시에 기부채납해 복원했다. 현재는 한문교실, 청소년 인성 및 예절교육, 주부예절 및 교양강좌 등을 무료로 운영한다.

울산광역시 중구 서원11길 45 (반구동)
구고사 및 김완장군부조묘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영암군역사관광

구고사 및 김완장군부조묘

김완(1577~1635)은 영암 출신의 조선 후기 무신으로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인물이다. 구고사는 김완 장군의 위훈을 기리는 사당으로 김완 장군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부조묘는 보물로 지정된 김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구고사는 김완 장군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인조 18년(1640)에 처음 창건되었다. 이후 문중 선조이자 고려 말 대제학인 김진문과 조카 김여준, 김여옥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 1889년 불에 탄 뒤 1946년 향내 유림의 발의로 중건되었고, 1979년과 1983년에 보수되었다. 부조묘는 국가에서 사당을 짓도록 허락하고 전답과 노비를 내려 후손들로 하여금 제사를 모시고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었다. 김완 장군 부조묘는 장군 사후 왕명으로 창건되었으며, 한때 소실된 것을 1979년에 복원되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서호면 화소길 20
구례 석주관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구례 석주관성

노고단에서 왕시루봉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맥에 위치하며, 칠봉산 남쪽 봉우리 20m 아래에서부터 칠의사 아래 후면까지 이어져 있는 고려 시대 성곽이다. 삼한시대에 마한과 진한의 경계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군사상 요충지였고, 고려 때에는 남해에서 침입한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켜내기만 하면 전주에서 구례, 남원을 향해 넘어오는 왜적을 방어할 수 있는 호남의 전략적 요충지로, 고려 말 왜구가 횡행함에 따라 진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나, 조선이 개국하고 정국이 안정되어 감에 따라 진을 폐지하여 황폐화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도 방어사 곽영이 성을 쌓고 구례 현감인 이원춘에게 석주관 방어를 담당하게 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석주관에 고려 말 때처럼 만호진을 설치하여 왜구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활용되지 못하고 황폐해지고 현재에 이른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750m이며, 높이 50∼120㎝로 대부분은 무너졌다. 13세기와 16세기 성을 쌓는 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약 3분, 2.8㎞ 거리에 간전교를 지나 왼쪽으로 섬진강어류생태관이 있으며, 섬진강 대로를 따라 약 5.7㎞를 더 가면 운조루 고택을 방문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토지면 섬진강대로 46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