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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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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덕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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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김포 덕포진

김포 덕포진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소규모 군사기지인 돈대와 포대, 파수청이 있었다. 돈대는 주변 관측이 용이하도록 높은 땅에 설치한 기지이다. 포대의 경우엔 아군의 포격에 편리하도록 구축된 축성물이며, 파수청은 탄약고와 포대에 사용하기 위한 불씨를 보관하고 포병을 지휘하던 곳이다. 강화해협을 통해 수도 한성으로 진입하려는 외세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곳으로,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79년 강화의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축성되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격전지로써, 덕포진 앞의 해협이 매우 좁고 물살이 빨라 손돌목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80년에 행한 발굴조사 결과 7개의 포탄과 2개의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고 주춧돌과 화덕자리를 발견하였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로103번길 130
규봉암(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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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화순군역사관광

규봉암(화순)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작은절 이다.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신라 애장왕 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순응 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조선시대 상당한 사세를 갖추고 있던 규봉암은 17~18세기에 폐사되었다가 1729년 연경에 의해 다시 세우게 되었고, 6·25 전쟁으로 방치되었다가 1959년 대웅전과 함께 당우 3동을 지으며 현재에 이른다. 유네스코에서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광석대 돌기둥 아래에 규봉암이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규봉암을 보지 않고 무등산에 올랐다 말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난 절경 중 한 곳이다. 광석대와 규봉암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늦가을은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규봉암 주변으로 광석대를 포함 설법대, 은신대, 풍혈대, 삼존석, 송하대 등의 바위들이 사찰을 둘러싸고 있어 그 경관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규봉암에 가는 길은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서 오르는 탐방로와 주로 이용되는 증심사 코스, 그 반대편의 원효사 지구에서 오르는 3개의 코스가 있다. 영평리 도원 탐방센터에서 규봉암까지는 약 한 시간쯤 산길과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서면 도원길 40-28
김해 수로왕비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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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김해 수로왕비릉

김해 수로왕비릉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의 무덤이다. 허황옥은 원래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하늘의 명을 받아 16세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수로왕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수로왕릉과는 다르게 평지가 아닌 언덕에 지어진 점이 특이하며, 근처에 굴식 돌방무덤 구조인 김해 구산동고분군이 위치해 있다. 무덤에 딸린 부속건물로는 숭보제, 외삼문, 내삼문, 홍살문이 있다. 왕비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정문인 구남문과 능 앞에 세우는 홍살문이 있다. 무덤으로 가는 오른편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숭보재가 있으며, 왕비릉 앞에는 능비가 있다. 왕비릉 앞에는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 파사석탑의 석재가 남아 있다. 이 파사석탑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배를 타고 가락국으로 건너올 때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싣고 온 것이라 한다. 왕비릉은 높이 5m 정도의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주위에는 얕은 돌담을 4각형으로 둘러 무덤을 보호하고 있으며, 앞 쪽에는 긴 돌을 사용하여 축대를 쌓았다. 중앙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이라는 글이 2줄로 새겨져 있다. 세종 28년(1446)에 수로왕릉과 함께 보호구역이 넓혀졌으며,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비석과 상석 등은 인조 25년(1647)에 다시 정비하면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왕릉에 비해서는 시설이 소박한 편이고 수로왕비릉이라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으므로 수로왕릉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본다면 내부의 구조는 널무덤(토광묘) 또는 돌덧널무덤(석곽묘)일 가능성이 높다. 매년 봄가을 숭선전 제례 때 수로왕릉과 함께 제사가 거행되며, 매년 음력 9월 15일에는 김해문화원에서 주관하는 허황옥에게 차를 올리는 황후릉 헌공다례가 개최되고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90번길 1 (구산동)
금산 천내리 용화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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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금산 천내리 용화리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지석묘’라고도 한다. 이 고인돌이 있는 자리는 일용골 마을 뒷산으로, 남북으로 길게 낮은 구릉성(丘陵性)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용화리에서 흘러 내려오던 금강의 물줄기가 이 구릉을 ‘S’자 형태로 휘어 돌아 충청북도 영동 쪽으로 빠져나가면서 금산읍에서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모두 12기가 확인된다. 덮개 돌은 사각형(四角形) 또는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200cm 안팎의 크기로, 주변에서 돌칼, 돌화살촉, 붉은색을 띤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 중 14기가 금산에 있는데 그중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12기가 제원면 천내리 470-5번지에, 고인돌 2기가 용화리 502-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금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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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금산향교

금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지금의 금산군 금산읍 하옥리 백학동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조선 숙종 10년(1684)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짓고, 수차례 중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을 두고 대성전 앞마당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선철을,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배향된 인물의 배향 순서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교육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명륜당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그밖에 외삼문, 내삼문 등이 남아있다. 금산향교는 이와 같이 전통양식의 공간 배치를 충실히 하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비단로 298
금산 천내리 용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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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금산 천내리 용호석

용과 호랑이 모습을 각각 2기(基)의 돌에 새긴 것이다. 천내리의 서쪽을 흐르는 천내강변 제원대교(濟原大橋)에서 북쪽 100m 지점에 용석(龍石)이, 그로부터 다시 북쪽으로 500m 지점에 호석(虎石)이 위치하고 있다. 용석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된 여러 개의 돌기와 그 사이에 꿈틀거리는 용의 몸체가 조각되어 있고,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입 양편에는 아가미와 수염이 표현되어 있다. 호석은 호랑이가 앞발을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인데 두툼하게 튀어나온 곡선과 동그라미를 조각하여 호랑이의 털 무늬를 만들었다. 호석의 몸체는 서쪽을 향하였으나 머리는 북쪽을 향하였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고려말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 안동(安東)으로 내려온 공민왕이 자신의 능묘(陵墓)의 위치를 정하고 필요한 석물(石物)로 준비하게 하였으나, 개경(開京)으로 돌아간 후 그대로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출처 : 금산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김대중 대통령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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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신안군역사관광

김대중 대통령 생가

하의도는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후광 ‘김대중’이라는 거목을 낳은 고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4년 하의면 후광리 원후광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호인은 태어난 마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1998.02~2003.02. 재임)으로 당선되었고,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러한 그의 민주화운동과 평화통일을 향한 노력과 삶이 인정되어 2000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생가는 복조초가 2동으으로 1999년 종친들이 복원하여 신안군에 기증하였다. 복원된 생가는 6칸으로 아내와 창고 1동, 화장실 1동 등의 부속채와 헛간 등이다. 생가의 목재를 이용하여 집을 짓고 살던 어은리 마을 주민의 집을 다시 사들여 해체 한 다음 기둥 등 주요 목재를 이용하여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였다. 생가 옆에 마련된 추모관에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하의면 후광길 255
김포 장릉(원종·인헌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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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김포 장릉(원종·인헌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1623~1649)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왕후 구씨의 능이다. 장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원종, 오른쪽(동쪽)이 인헌왕후의 능이다. 능의 규모와 규격은 조선 중기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고, 능 아래는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 있으며, 조선 21대 영조와 22대 정조가 매년 행차하여 제사를 모시던 건물이며, 능 주위는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출처 : 김포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기도 김포시 장릉로 79 (풍무동)
금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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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금관총

신라의 금관이 출토되어 붙은 이름이다. 1921년 9월 가옥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것인데, 이미 파괴된 고분인 데다 정식으로 발굴조사된 것이 아니어서 묘의 구조나 유물의 정확한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출토물은 금관을 비롯하여 장신구·무구(武具)·용기 등이며, 특히 구슬 종류만 총 3만 개가 넘게 나왔다. 금관총의 원형은 지름이 50m, 높이 13m 정도이고, 신라 때만 있었던 돌무지무덤[積石塚]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속에 덧널[木槨]을 마련하여 옻칠한 널 [木棺]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러한 구조와 불교의 영향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 신라 이전인 지증왕(智證王) 전후의 6세기에 만들어진 왕릉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경주시 봉황로 15 (노서동)
기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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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기림사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이며,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리다 원효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기림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랑 500년 이상 된 큰 보리수나무가 있는 지역과 보 박물관, 삼성각, 명부전, 관음전 등이 있는 지역이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배흘림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조선 초기 불상의 전형을 갖춘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전이 있고, 그 바로 앞에 3층 석탑이 있다. 성보박물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건칠보살 반가상과 비러자나불 복장전적과 목비, 석조 토제지미 등 많은 문화유산 자료들이 있다. 기림사에는 오종수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물이 유명하다. 차를 끓여 마시면 맛이 으뜸이라는 감로수와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장군이 태어날까 두려워 장군수의 물길을 막아버렸고 지금은 네 곳만 물이 솟아 나오고 있다. 기림사에서는 산사체험 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도 운영하는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율형과 예불 참여와 108배 등 스님과 함께하는 체험형이 있다. 계절별 테마로 구성되어 봄에는 녹차 만들기, 여름에는 용연폭포에서 명상의 길 체험, 가을에는 연차 시음하기 및 산사음악회 관람, 겨울에는 타종식과 동해의 해맞이도 볼 수 있다. 그 밖에 만다라 그리기, 마하사 여름수련회, 어린이 여름불교 학교도 체험해 볼 수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437-17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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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군위 부계면 남산리에는 신라 소지왕 15년 극달화상이 창건한 삼존석굴이 있다. 국보로 지정된 삼존석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자연동굴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온화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세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가 1970년대 초 학자들에 의해 경주석굴암 보다 1세기 이상 일찍 창건된 것으로 그 모태임이 밝혀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성을 인정받았다. 신라 소지왕 15년(493)에 극단 화상이 창건했으며 석굴은 바닥은 평면이고, 네모 반듯한 형상으로 천장은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 주위는 차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이다. 석굴 내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대제지보살, 관음보살이 있고 본존불의 결가보좌한 모습과 깎은 머리, 얼굴 모습은 풍만하며 거대하고 엄숙한 기품이 있다. 양쪽 귀는 길고, 목은 알맞게 바르게 한 선으로 뻗어 있으며 법의를 걸친 어깨 모습은 섬세하고 우아하다. 어깨는 벌어져 장대한 체구이고, 법의는 간단하면서도 예스러운 무늬로 넓은 무릎을 걸쳐 받침 자리 전면을 덮었다. 고구려에서 전해진 신라불교가 팔공산 자락에서 꽃 피워지고 신라 왕도 경주로 전해져 결실을 맺었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는 이곳에서 거대한 바위산 절벽을 이루었고, 이 절벽 허리 20m 높이에 남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삼존불상을 봉안하였으니 섬존석굴이라 한다.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산4길 24
김포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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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김포향교

김포향교는 1127년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다. 향교는 원래 김포 여자종합고등학교가 있는 산기슭에 있었으나 왕의 능을 그곳에 모시게 되면서 김포읍 걸포리로 옮겼다가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은 1960년대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세워져 있다. 그 외에도 재실(齋室)과 출입구인 외삼문과 내삼문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人(사람 인)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며, 대성전과 달리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八(여덟 팔)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명륜당 내부는 일반적으로 좌우 1칸씩 방으로 꾸미는 것과 달리 김포향교에서는 전체를 1칸으로 구성하였다. 대성전과 명륜당만 갖춘 조선 후기 작은 규모의 향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기도 김포시 북변중로25번길 38 (북변동)
김정선생묘소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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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동구역사관광

김정선생묘소일원

조선 중종 때 형조판서 겸 예문관 제학을 지낸 충암(沖庵) 김정(1486∼1521)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건물이다. 선생은 조광조와 더불어 지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미신타파와 향론의 상호부조에 힘썼고, 향약을 전국에 실시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때 조광조 등과 함께 투옥되었다가 금산에 유배된 후 제주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대덕구 동면 내탑리에 있던 건물과 묘소를 1978년에 동구 신하동으로 옮겼다. 건물 안에는 인조 19년(1641)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와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 부인의 정려각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대전광역시 동구 회남로 117
금오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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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역사관광

금오산성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 인동, 개령, 성주 백성들이 금오산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는 군창까지 두었다고 한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싼 둘레가 5리이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나 된다. 조선 태종 10년(1410)에 국가적 계획으로 성을 크게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선조 28년(1596)에 다시 고쳐 쌓았다. 인조 17년(1639)에 외성을 쌓는 확장 공사가 시행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고종 5년(1868)에 새로 고쳐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성 안에 1개의 계곡과 여러 개의 연못, 우물이 있었으며 대혜창과 내성창이라는 창고, 군기고, 진남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외성의 문터, 적이 알 수 없게 만든 작은 성문인 암문의 형체, 건물 터들이 남아있다. 한편 성 안에는 고종 5년(1868) 무렵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산성 중 수송 공비가 성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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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역사관광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시마타니금고는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의 대표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1920년대에 지은 금고용 건물이다. 시마타니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발산리 석등과 오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품을 불법 수집하였던 인물이다. 이 건물은 시마티니가 수집한 골동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건물은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입구에는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은 쇠창살과 철판으로 이중 장금 장치가 되어 있다. 현재 발산초교 자리에 농장을 만들었던 시마타니 야소야는 일본의 야마구찌현 구카군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에 온 자인데 그는 1903년 12월 당시 돈 7만원으로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장을 만들기 시작하여 1909년이 되자 임피 외에도 2개 면에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한 농장주가 된다.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시마타니 독은 해방 후 자신의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미군정청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다른 일본인이 떠난 후에도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그는 군산의 마지막 일본인 농장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결국 그도 미군정청의 강제적 권유로 손가방 2개만을 지닌 채 부산항에서 마지박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 건물은 반지하인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어진 3층까지 하나의 구조물인 일체형으로 만들고 내부의 각층은 나무마루로 구분된 건물이다.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문을 달아놓아 2중의 방범장치가 되어 있다. 출입문은 USA마크가 선명한 문을 달아 놓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에서 수입한 수입품임을 알 수 있다. 금고의 반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류가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 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53-5
국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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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역사관광

국형사

원주시 행구동에 위치한 국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창건하였다. 원래 이름은 보문암이었으나 방어로 발음이 변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곳에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제단을 쌓았으며, 해마다 나라의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며 제향을 올렸으므로 국향사라 불렸다. 또한 일 설에는 조선 정종의 둘째 딸 희희공주의 병이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한 뒤 완쾌되자 정종이 기뻐하여 도량을 크게 확장하고 사명도 국형사로 고쳤다고 한다. 이후 1680년에 폐사되었다가 1907년, 1945년, 1974년에 중수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수광전, 동악단, 범종각, 승당 드잉 있으며, 문화재로는 1799년에 세워진 진암당 대선사(晉庵堂大禪師) 부도(浮屠)가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고문골길 155 (행구동)
국청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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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역사관광

국청사(부산)

국청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 숙종 29년 금정산성 축조와 함께 중수하여 이름을 국청사라 칭하고 순조 26년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청사지(國淸寺誌)에 '국청사에는 동래 부사 송상현, 부산진 첨사 정발, 다대포진 첨사 윤흥신 등과 함께 승장 만홍, 정안, 성관, 관찰 등 수백 명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음을 비추어 볼 때 임진왜란 때 이미 의승군의 숙영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703년 금정산성이 개축되면서 국청사와 해월사(海月寺)를 지었다. 국청사는 최근 들어 중창을 거듭하였다. 1978년 삼성각을 지었고, 1982년 승려 창봉과 혜성이 경내에 있는 연못 중앙에 3층 석탑을 조성하였다. 1992년 대웅전을 지었고, 1998년 요사를 지었으며, 2010년 일주문을 건립하였다. 국청사에는 조선 시대 승병장이 사용하던 금정산성 승장인이라는 철제 도장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자료를 통해 승군 작대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국청사와 해월사 모두 산성을 방어했던 호국 사찰로, 국청사에는 산성을 지키는 승병장이 거주하여 전략 기지의 역할을 한 의승군의 사령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42
국청사(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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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역사관광

국청사(경기)

경기도 광주시 산성리에 위치한 국청사는 조선 왕조 제16대 인조 2년(1624) 벽암 각성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각성대사는 인조로부터 팔도도총섭총절제중군주장(八道都摠攝總節制中軍主將)으로 임명을 받은 후 전국 팔도에서 의승군을 모아 남한산에 석성을 축성하였다. 이때 7개의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그중의 하나가 국청사이다. 국청사는 백성들과 의승군을 훈련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비밀리에 군기(軍器)와 화약·군량미 등을 비축하였던 사찰이다. 병자호란 시 우익문(일명 서문) 전투를 강원도 의승군과 포수들로 최정예 부대로 운영하여 격퇴하였다. 수어장대 우측으로부터 북문 좌측 북장대까지 성역 구역을 관리 운영한 사찰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의해 불탔던 것을 1968년에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성각과 요사채를 신축하고, 1988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국청사의 현판과 주련은 당대 최고의 명필 일중 김충현 선생의 글씨로 나라사랑하는 호국정신의 사찰이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780번길 105
구조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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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역사관광

구조라성

조선 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전방의 보루로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의 길이 860m 면적 8,235㎡이다. 구조라 앞산 능선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성문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 있다. 성 아래쪽에 구조라 마을이 있다. 조선 1490년 성종 21년에 축성하기 시작하였고 지세포성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지리지 등 각종 문헌상의 내용이나 기록되어 있는 축조 수법을 살펴보면 조선 전기에 축조된 것으로 일정하게 나타나 있다. 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최근 근포동굴과 함께 인생 최고 장면 사진을 남기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거제의 핫플레이스이다.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로8길 7-1
국립영천호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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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역사관광

국립영천호국원

2001년에 설립된 국립영천호국원은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국가유공자 분들을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민들의 애국심 함양을 위한 다양한 현충 선양 프로그램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으며, 안장행사, 참배서비스, 편의시설 개선 등 열린 추모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현충관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모시고 안장식을 거행함과 아울러 숭고한 넋을 기리는 추모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참배·추모시설로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영구히 추앙하고자 세운 현충탑, 호국원 전역을 일반지역과 성역지역으로 출입하는 내정문의 역할을 하는 홍살문, 영천대첩을 기념하고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영천대첩비 등이 있다. 교육으로는 나라사랑 정신과 호국보훈의식 고취를 위한 국립묘지 체험, 호국영화상영 등이 있다. 더불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 및 학생들이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장갑차, 전시된 장갑차, 항공기, 전투기 등의 실물을 직접 관람하도록 함으로써 추모뿐만 아니라 전후 세대의 호국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호국로 1720
국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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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국산서원

행촌 이암(1297∼1364)의 8세손인 방촌 이당(1567∼1644)을 제향하기 위해 1980년에 고성이씨 후손들이 건립한 서원이다. 이당은 원래 청주 구계서원에 동고 이준경, 낙재 서사원, 수암 박지화, 서계 이득윤 등과 함께 제향되었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고성이씨 후손들이 모여 사는 동해면 외곡리에 국일사를 창건하여 제향하였다. 후에 건물이 낡고 기울어져 후손 이경철과 이원수가 주관하여 1980년에 새로 중건하였는데, 이전에 비하여 규모가 더욱 커졌다. 서원의 규모는 강당 4칸, 사당 3칸, 문랑 3칸과 포사 등의 부속 건물이 있다. 사당인 경의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며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 외곡1길 151-44
구천서원(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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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구천서원(함양)

함양군 수동면 효리에 위치한 구천서원은 1701년(숙종 27년)에 창건하여 춘당 박맹지(朴孟智), 남계 표연말(表沿沫), 일로당 양관(梁灌), 금재 강한(姜漢), 구졸암 양희(梁喜), 우계 하맹보(河孟寶)를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사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으나, 후손들이 계를 모아 불망계라 하고 유허에 비를 세웠다. 1919년 구천재(현 서원의 우측 동산)를 지어 매년 작헌례를 행하여 오다가 1984년에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제사는 매년 음력 3월 두 번째 정일에 지낸다.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효리길 30-17
구천서원(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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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구천서원(김해)

김해시 상동면에 있는 구천서원은 조선 중기 때 학자였던 가락국 시조왕의 후예 죽암 허경윤(1573~1646)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1822년(순조 22)에 지금의 외동인 거인리에 창건하였으나, 습지로 인하여 다음 해 왕후릉동편에 이건하여 매년 음력 3월 10일에 향례를 올리던 중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1898년 유림과 후손들이 중산학계를 창설하여 이곳 애춘재에서 덕행을 기리며 학맥을 이어오다 1996년에 서원을 복원하였다.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상동로 274-12
국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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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역사관광

국계서원

1701년(숙종 27) 내수읍 국동리 국동 마을에 박증영, 변경복, 이덕수, 이수언을 봉향하고 설립한 서원이다. 입구에 들어서 돌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에 담장을 두르고 있는 곳이 사당이다. 1871년(고종 8)에 철폐된 것을 1960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60년에 중건하고, 1972년에 중수한 것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내부는 마루방에 쌍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국계사’라는 편액을 걸었다. 마당 앞에는 ‘사현문’이라고 편액한 솟을 대문을 세우고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사당 앞에는 ‘국계서원’이라고 편액한 강당이 있다. 마을 들녘 나지막한 언덕에 잘 정비되어 있으며 홍살문 대신 작은 울타리 대문이 찾는 이를 맞이하는 곳이다. 1960년에 다시 세운 곳이라 옛 흔적을 찾기는 어려우나 재정비한 한옥의 아름다움과 조상을 모시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이 어우러져있는 곳이다. 강당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
국립임실호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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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역사관광

국립임실호국원

국립임실호국원은 임실 읍내에서 순창, 강진 방면으로 약 12㎞ 지점, 백련리에 있다. 국립임실호국원은 6.25 전쟁 시 조국 수호를 위해 신명을 바치셨던 참전용사와 자유우방을 돕기 위해 월남에 참전했던 월남참전용사 그리고 국가유공자들의 고귀한 업적과 공적을 기리며 이분들의 위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립임실호국원은 현충탑, 현충문, 충렬관, 현충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충탑/현충문은 유가족과 참배객을 위한 시설로서 호국영령들의 위훈을 영구히 추앙하고자 중앙에 높이 26m의 탑이 세워져 있고 좌우 측에 호국영령의 승천을 기원하는 비천상과 자유와 평화를 기리는 군상 부조가 있다. 현충관은 호국영령들의 안장식을 거행하는 행사장으로 1층은 168석의 합동안장식 행사장과 임시 봉안실이 마련되어 있고, 2층은 호국안보전시관으로 우리 민족의 전쟁 역사를 한눈으로 볼 수 있으며, 호국용사들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충렬관은 2001년 1월 1일 이전에 사망하신 호국영령들을 안치하는 곳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 총 3만 기를 안치할 수 있으며, 1층에는 안치전 가정의례를 지낼 수 있는 16개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어 삼우제나 참배 시 이용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강진면 호국로 420
국조전(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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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역사관광

국조전(칠곡)

국조전(國祖殿)은 국조단군(國祖檀君)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성전으로서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개천숭봉대제(開天崇奉大祭)를 봉행하는 곳이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은 기원전 2333년 단군조선을 건국하였다. 단군에 대한 숭배사상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민족의 시조(始祖)로 구체화하고 조선시대에는 더욱 대중화하여 세종 때부터 국조로 받들어 국왕이 친히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제례를 올렸다. 8·15 독립 후 개천절은 국경일로 제정되고 1961년까지 단군기원의 연호가 사용되었다. 칠곡에서는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理世)의 숭고한 이상(理想)을 구현하고자 1951년 3월 24일 단민회를 조직하여 1960년 국조전 건립계획을 세우고, 전 군민의 참여하에 모국과 성금 등의 기금으로 1961년 왜관읍 석전리 573-18번지에 국조전을 건립하였다. 매년 개천숭봉대제를 봉행하여 오던 중 협소한 부지와 건물의 노후로 1993년 국조전을 이건 하게 되었다. 현재 건물로는 국조전, 내삼문, 광리당, 외삼문, 관리사, 화장실이 있다. 개천숭봉대제뿐만 아니라 청소년 충효교실, 전통혼례 등 민족정신 함양과 전통문화의 계승 도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로15길 20
국립4·19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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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역사관광

국립4·19민주묘지

삼각산(북한산) 기슭의 국립 4·19 묘지는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자행한 권력에 맞서다 1960년 4·19 혁명 때에 희생된 224분이 안장되어 있으며, 이를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중앙에는 의롭게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탑문이 새겨져 있다. 135,901㎡의 묘지 경내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주목과 단풍나무 등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으며, 1,652.9㎡ 규모의 기념관과 영정을 모신 유영봉 안소는 한식 목조건물이 330.58㎡ 규모로 확장되어 있다. 그 외에 상징문, 민주의 뿌리, 정의의 불꽃 등 조각 작품과 연못이 있으며, 보도블록을 예쁘게 깔아 놓은 산책로와 야외 의자도 있다. 벚꽃이 피는 5월, 공원에서 바라보는 삼각산(북한산)은 어머니 품과 같은 아늑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일몰의 풍경은 장관이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4.19로8길 17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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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유성구역사관광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

국립대전현충원 내 보훈둘레길은 보훈가족과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걸으며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조성된 둘레길이다. 현충원 묘역을 따라 조성된 이 길은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쪽빛, 보라 총 7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어 ‘무지개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숲 속 오솔길 형태로 조성돼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노약자와 어린이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을 만큼 완만하다. 나무 그늘 덕분에 여름철에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호국철도기념관, 소나무숲, 대나무숲, 전망대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
국립 망향의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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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역사관광

국립 망향의 동산

국립 망향의 동산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국을 떠나 망국의 서러움과 갖은 고난 속에서 고향을 그리며 숨진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안식을 위해 세워진 곳이다. 해외동포 이외에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사할린동포 등 일제강점기에 국외로 강제동원된 분들의 안식처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국권 상실의 아픔과 교훈을 일깨워 주는 역사적 장소로서 기능을 다하고 있다. 주요 시설물로 위령탑, 유족대기실, 홍보관, 분수대, 일본군위안부피해자추모비 등이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망향로 372-8
구절암(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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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군역사관광

구절암(홍성)

굽이굽이 산 길 따라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대숲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사찰, 구절암을 찾는 길은 산이 높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구불구불 꺾이는 산길을 지나 산사를 찾는 마음이 바쁘지만, 이정표도 없고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발견할 수 없다.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 산사를 이렇게 찾기 힘든 것처럼 구도의 길 또한 그만큼 멀고 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구절암 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지나가는 사람 한 명도 만날 수 없는 인적 드문 시골길. 봄바람이 살랑살랑 귓불을 간질이고 작은 바람에도 대밭의 댓잎들이 서로 비비면서 내는 소리가 싱그럽다. 봄을 준비하고자 두엄용으로 뿌려놓은 쇠똥 냄새가 시골 내음으로 다가오고, 멀리서 밭을 돌보는 농부의 손길이 무척 바쁘다. 그다지 멀지 않은 절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험난한데, 어느 정도 가면 이제 가파른 경사길이 나오지만 절은 아직도 멀었다. 낮은 하늘 아래에 위치한 사찰이지만 아득하고 멀기만 한다. 이렇게 찻길이 꼬불거리고 가팔라 힘이 들고 절을 찾아가야 하는 마음은 바쁘며, 또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산사에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구절암이 멀리서 보이게 되면 좌우에는 크고 작은 돌을 손 닿은 대로 올려 마치 탑처럼 쌓아놓은 것과 만나게 된다. 이제 굽이굽이 복잡하고 험난한 길을 지나 드디어 구도의 길을 찾아가듯 힘들었던 구절암에 도착하게 된다.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거북로218번길 163
구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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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역사관광

구절사

구절사는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구절사는 옥천의 상동 부락 서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식장산 영축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구절사는 조선 태조 2년, 1393년에 무학대사께서 최초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사명은 영구암이었는데 이는 영축봉의 동쪽과 서쪽의 두 정상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탑 사거리에서 구절사까지는 좌우에 수많은 아카시아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 나무들은 5월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향기가 온 천지를 감싸는 아카시아 꽃길을 이룬다고 한다. 이 사찰은 어느 순간 폐사되었으나, 1933년에 절 아랫마을의 한병석이 이곳에 참배하러 왔다가 중건했다. 이후 사찰의 명칭이 구절사로 바뀌게 되었는데, 절 뒤에 있는 영축봉을 구절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상중길 226 문화재(전통사찰-구절사)
구암서원(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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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역사관광

구암서원(창원)

구암서원은 1858년(철종 9)에 구연사라는 사당으로 창건되어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1968년에 문중의 사업의 하나로 복원되었고 2004년에 서원의 재정비가 이루어져 추모재와 신여당이 새로 지어지며 깨끗하게 정비되었다. 구암서원의 배향 인물은 세종 때 성균관 대제학과 의정부 찬성사를 역임한 문정공 정이오 선생(1347~1434)과 아들인 충장공 정분 선생(?~1454) 두 부자이다. 시설은 강당 4칸, 사우 3칸, 추모재 2칸, 유사실, 관리사, 정문 3칸 등이 있고 강당 전 면에는 구암 서원, 안쪽에는 구암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동재는 신여당, 서재는 추모재이고 강당을 중심으로 사우는 서쪽에 배치되어 서묘동학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북4길 7-10 (구암동)
구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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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봉화군역사관광

구양서원

구양서원은 1914년 처음 백산 변경회와 봉은 변극태 선생을 봉향하는 사당을 건립하고 세덕사라 이름 지었다. 1924년 후손들에 의해 묘우, 강당, 서재 등을 신축하고 사림의 뜻에 따라 구양이사로 승격됐다. 1984년에는 후손 변교우가 자비로 중수할 때 규모를 확장하여 묘우, 전사청, 동재, 서재, 삼문, 문루, 기타 부속건물을 신축했다. 이후 서원으로 승격하여 대은 변안렬 선생을 주벽으로 삼고 변경회, 변극태 선생을 배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로는 사당인 숭절사, 정당인 염수당과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대은 변안렬 선생은 고려 말 홍건적을 평정했고, 1380년 도체찰사로 운봉, 인월 등의 지역에서 왜구를 대파해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고려 말 새 왕조에 항거하다가 1390년 유배지인 한양에서 타계했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산정길 202-17
구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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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역사관광

구산서원

전라북도 진안군에 위치한 구산서원은 1828년(순조 28)에 송보산(宋寶山)을 배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가 16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1949년에 다시 설단(設壇)되어 봉사하다가 1967년에 이르러 중건되었고 1967년에 진안유림의 발의로 김문기(金文起)와 송림(宋琳)이 추향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산서원은 진안 서남쪽 섬진강과 세동천이 만나 크게 만곡을 이루는 강변 옆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후진양성을 담당하던 구산서원과 손현배향을 하던 구산사가 함께 자리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마령면 임진로 2361-82
구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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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역사관광

구은사

철원군 근남면 사곡2리에 위치하는 구은사는 서기 1455년 단종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비분을 품고 산간으로 은거하여 불사이군의 지조로 일생을 마친 아홉 선비(김시습, 조상치, 박도, 박재, 박규손, 박효손, 박천손, 박인손, 박계손)의 충절을 모신 사당이다. 아홉 선비는 근남면 육단리, 잠곡리, 사곡리 등의 산간 계곡에 초막을 치고 은거하면서 권농에 힘쓰는 한편 사곡리 속계천(束溪川)변 행화정에 모여 바둑을 두면서 세상사를 논했는데 그 후 시운이 맞지 않아 각처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니 조선 인조 9년(서기 1631년)에 이르러 이지연 선생 등 여러 선비들이 뜻을 모아 사당을 짓고 매년 봄가을 추모제를 지냈다. 서기 186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는 철폐의 비운을 맞았으나 1921년 사당을 재건하고 6·25전쟁으로 다시 황폐화된 것을 지방유지들의 도움으로 1977년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근남면 호국로 7003-23
구인사(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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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구인사(단양)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로서,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고 있다. 1945년에 건립되었으며, 1966년 현대식 콘크리트조로 지은 이색적인 건물이다. 소백산 국망봉을 중심으로 장엄하게 늘어선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상월원각 스님이 1945년에 이곳에 손수 칡덩굴을 얽어 삼간초암을 짓고 정진 끝에 대도를 성취하여 구인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구인사는 현대식 건물의 대가람 (총 건축면적 15,014㎡)으로 절 안에는 5층 대법당을 비롯하여 삼보당, 설선당, 총무원, 인광당, 장문실, 향적당, 도향당 등 50여 동의 건물들이 경내를 꽉 메우고 있으며 만여 명이 취사할 수 있는 현대식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구인사를 방문할 때 두 가지 볼거리를 빼놓으면 안 되는데, 이는 바로 국내 최대 규모의 대법당과 법어비이다. 대법당은 1980년 4월 29일 준공된 5층 건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법당이다. 5층의 대법당은 상월원각 대조사가 삼간초암을 얽어 처음 구인사를 창건하고 수행하 시던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 이는 남대충 대종사께서 대조사님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전통양식과 현대적 공법으로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대법당을 지은 것이다. 상월원각 대조사 법어비는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일생동안 종도들에게 가르쳐 오신 모든 법문을 총 집약시켜 간략하고 명료하게 요약하여 설법하신 법어를 새겨놓은 비석이다. 이 법어 안에는 부처님 팔만대장경의 모든 진리가 다 포함되어 있으며 넓고 미묘한 불법의 이치를 담고 있다. 구인사에서는 나를 들여다보는 재미있는 체험, 단주, 연등 만들기 체험, 당일형부터 숙박형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의 템플스테이도 진행하고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구인사길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