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취향으로 찾기

오늘 갈 곳을 찾아보세요

지역과 관심 분야를 선택해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보세요.

역사관광

발견한 장소

공개 콘텐츠 627건

조건 초기화
묘심사(부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동구역사관광

묘심사(부산)

묘심사는 1888년 지금의 서구 토성동에서 대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임제종 포교당으로 기능했다. 일본인이 사찰을 운영하다가 해방 후에 기독교인에게 팔리기도 했는데, 당시 몇몇 신도가 성보들을 현재의 사찰 자리로 옮겼고 1960년대 무렵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 그리고 범종과 종각 등을 가지고 와서 묘심사로 다시 창건했다. 묘심사는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변에 위치하는 도심 속 사찰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삼성각, 종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식 팔작지붕이다. 대웅전에는 금동 석가여래 좌상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좌우 협시하고 있다. 또 1946년 제작한 지장시왕도와 신중도가 있다. 대웅전 옆으로 유리 보호각을 둘러 씌운 지장보살 입상이 동자를 안고 서 있다. 그 뒤편 계단 위로 삼성각이 자리한다. 삼성각 내에 칠성도, 산신도와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30㎝의 돌좌상이 있다. 지장보살 입상 옆으로 ‘ㄱ자’의 현대식 요사채가 있다.

⌖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671
묘장영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영광군역사관광

묘장영당

영광 묘장영당은 1616(광해군 8)년에 조선조 개국공신인 이천우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이천우는 전라도의 왜구토벌에 공을 세웠고 그 후손이 담양에서 영광으로 이거 하면서 향내 유림들과 함께 영당을 건립한 것이다. 조선후기 훼철 이후 강당은 서당으로 기능했으며, 1928년에 발의하여 1934년에 신실을 중건하였다. 건물 배치에 있어 중심축을 설정해 짜임새 있는 건축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물의 구조도 무리 없이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건 이후의 보존관리 및 상태도 양호하며, 관련 자료도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묘량면 동삼로1길 21
묘각사(영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영천시역사관광

묘각사(영천)

묘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기록은 없다. 용왕과 관련한 사찰이라 이곳에서 용왕제(龍王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자주 지냈다고 한다. 절의 부근은 예로부터 불교 신앙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절의 뒷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현산이며, 기룡산 아래에는 용화·삼매·정각 등 불국 정토를 나타내는 마을 이름들이 많다. 창건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에게 법을 듣기 위하여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절이 들어선 산 이름을 기룡산(騎龍山)이라 했다고 한다. 의상이 법성게(法性偈)를 설하자 용왕이 문득 깨닫고 승천하였는데, 이때 용왕이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뿌려 주어 당시 극심했던 가뭄을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했다. 이에 의상이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며, 1644년(인조 22) 설선당(說禪堂)을 지어 중창하였다. 1657년에 요사를 중창하였는데 지금은 설법전이다. 1760년(영조 36)에 삼성(三性)이 중창하였고, 1889년에 법당을 중수하였다. 1994년에 진광(眞光)이 산신각을 지었다. 1999년 아미타삼성전을 복원하였다.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화길 499
몽고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역사관광

몽고정

고려 말 충렬왕 7년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동행성을 두었으나 일본 정벌이 2차에 걸쳐 실패로 돌아간 그해 10월, 환주산(현, 자산동 무학초등학교 뒤쪽 마산시립박물관 일대)에 둔진을 설치하였다. 몽고정은 이곳의 둔진군이 용수를 쓰기 위해 만들었던 우물로 추정되고 있다. [몽고정 맷돌]이라고 불리는 지름 1.4m가량의 원방형의 돌이 몽고정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차륜이라는 설도 있으나, 맷돌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물 곁의 석비에 몽고정이라 써서 세워둔 것은 1932년 마산 고적 보존회(일본인 고적 단체)가 멸시적 감정에서 명명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고려정이라 불렸을 것이다. 몽고정은 지금은 나무 덮개가 덮여 있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인근 주민들이 사용하는 공동 생활용수이자, 물맛이 좋아 간장 공장에서도 사용되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목천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역사관광

목천향교

목천향교는 조선 전기에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운 교육기관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이후에 다시 세운 후 여러 차례 걸쳐 수리하였으며, 목천현지에 참봉 한혁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제사 지내는 공간인 3칸의 대성전과 각각 3칸의 동무·서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5칸의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각각 3칸인 동재·서재, 2칸 내삼문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교촌6길 5
묘골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달성군역사관광

묘골마을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 박 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은, 세조 2년인 1456년 사육신들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멸문의 화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박팽년이 혈통을 보전하게 된 이유는 당시,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이 씨 부인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뱃속에 든 아이까지도 아들일 경우 죽이라고 명하였고, 이 씨 부인은 친정인 묘골에 내려와 살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들이었다. 혈손을 보전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데리고 있던 노비가 딸을 낳자 서로 바꾸어 그 이름을 박 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으로 ‘박비’라고 짓고. 아들을 노비로 둔갑시켜 혈통을 보전한 것이다. 박비가 장성한 후인 조선 성종 때, 아버지와 동서지간이던 이극균이 경상 감사로 내려와 자수를 권유하자 임금을 찾아가 박팽년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였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름도 박일산으로 고쳐 주었다. 이리하여 은둔의 세월은 막을 내리고 묘골이 충절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한옥들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에는 묘골 박 씨들의 전통을 자랑하는 육신사와 달성 태고정, 도곡재, 달성 삼가헌 등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39-4
목멱산 봉수대 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목멱산 봉수대 터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 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 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평상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경계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을 올리도록 하였다. 남산 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도달하게 되는 중앙 봉수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5개소가 있었다 하는데, 현재 봉수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 자리를 확인할 수는 없는데, 「청구도」등의 관련자료를 종합하여 1개소를 복원하였다.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목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목계서원

목계서원은 조선 숙종 때 사림이 김담(金湛)과 이조(李晁)를 두능서원(杜陵書院)에서 봉 향하다가 서원이 훼철되자 1778년(정조 2)에 유림들이 목계서원을 지어 다시 봉향 하였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된 것을 1883년(고종 20)에 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3년에 완전히 복원되었다. 이 서원을 ‘목계정사(牧溪精舍)’로도 부르는 것은 훼철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현재 편액은 목계정사(牧溪精舍)이고 건물 한 채인 재실만 있다.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석대로525번길 40-13
모충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역사관광

모충사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공원 안에 있는 모충사는 1977년 1월 11일 내외도민 17만 명이 성금을 모아서 세운 사당으로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열사들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모충사라 이름 지었다. 모충사에는 높은 탑이 3개가 세워져 있다. 모충사 입구 정면에 있는 의병항쟁기념탑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순국지사조봉호기념비, 오른쪽에는 김만덕할망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이 탑들을 돌아볼 수 있는 숲길이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다. 마을 주민과 관광객이 제주의 역사를 돌아보며 쉬어갈 수 있는 산책코스로 추천한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모은암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모은암

모은암의 전설은 지리산 하동 화개의 칠불암 전설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곳이다. 김해시 상동면과 생림면의 경계에 위치한 무척산은 수로왕과 가락국 불교 이야기, 기묘한 바위, 산정호수인 천지(天池)가 있어 더욱 신비스러운 산이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동면의 기암절벽 아래에 백운암이 있으며 반대쪽인 서면에 모은암이 자리하고 있다. 무척산은 김해에서 밀량 삼량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데, 생림면 생철리 산불감시초소 옆 간이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석굴암을 거쳐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30분 남짓 오르면 도로가 끝나는 지점 바로 위 모은암이 나온다. 가야 불교를 일으킨 가야국은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세운 고대국가이다. 김수로왕은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온 허황옥과 결혼, 열 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 일곱왕자가 성불, 지리산의 칠불사를 창건하게 됐다. 지리산의 칠불사가 왕족의 해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김해 무척산의 모은암은 왕가의 번성을 상징하는 자연 남근석이 암자 바로 옆에 우뚝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모은암 경내 동굴에도 남근을 상징하는 닝가가 모셔져 있다.

⌖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마사로 36-228
모덕사(벽제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모덕사(벽제서원)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421년(세종 3)에는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가 벽골제를 없애고 그것을 토지로 돌려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박초에 의해 무산되었다. 벽골제 사적비문 역시 박초가 지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강당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입석동
모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청양군역사관광

모덕사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모덕사 현판의 글자는 고종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 라는 구절에서 모(慕)자와 덕(德)자를 취한 것이다. 최익현 선생은 이항노의 제자로 문학과 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1855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사헌부 장령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고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조약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 끝내 순국하였다. 후에 그를 추모하는 사림들이 태인, 포천, 곡성 등 여러 지역에 그의 사당을 세웠다. 이곳 모덕사는 선생이 살았던 고택과 장서각,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함께 들어서 있다.

⌖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
명주사부도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명주사부도군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명주사에 마련된 이 부도밭에는 모두 12기의 부도가 자리하고 있으며, 4개의 비석도 함께 남아있다. 12기의 부도 중에서 7기는 3단을 이루는 기단 위로 탑몸돌 및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사각의 바닥돌과 둥근 탑몸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나머지 5기는 받침돌 위로 종 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큼지막한 머리장식을 두었다. 4기의 비는 낮은 사각 받침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갖춘 구조이다. 원래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모두 모아 보존하고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길 93-229
명종대왕태실및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서산시역사관광

명종대왕태실및비

태봉골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명종대왕태실및비는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태를 봉안한 곳이다. 명종대왕태실 앞에는 기념비 3기가 있다. 명종대왕태실과 오른쪽에 위치한 비는 1538년(중종 33)에 건립되었고, 왼쪽에 있는 비는 1546년(명종 1), 가운데에 있는 비는 1711년(숙종 31)에 세웠다. 오른쪽의 비는 태실을 만들면서 함께 세운 것이고, 왼쪽의 비는 왕자의 태실비로 용을 새긴 머릿돌을 올렸고, 가운데의 비는 주상의 비로 거북받침 위에 비몸을 올리고 용이 새겨진 머릿돌 얹었다.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명주사(양양)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역사관광

명주사(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만월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고려 목종 12년(1009), 혜명대사와 대주대사가 오대산 동쪽에 있는 만월산에 터를 잡고 창건한 절이다. 두 대사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명주사’라 이름 지었다. 창건 당시에 비로자나불을 모셨다는 점에서 화엄종 계통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화재로 인해 절의 당우를 여러 번 중건하였고, 1910년대에는 건물이 총 15동에 이르는 대가람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방치되었고 오늘의 모습은 1979년에 중수한 것이다. 지금의 명주사는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가 남아 있는 아담한 규모의 절이다. 문화재로는 양양명주사동종(강원도 유형문화유산)과 양양명주사부도군(강원도 문화유산자료)이 있다. 높이 83㎝의 동종은 조선 숙종 30년(1704)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범종의 모습을 띤다. 절 입구의 부도군은 사찰의 기나긴 역사를 보여준다. 부도밭에는 12기의 부도와 함께 4기의 비석이 남아 있는데,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한데 모아 보존하고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길 93-229
명월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역사관광

명월대

명월대는 조선 말기 지방 유학자들과 시인들이 어울려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1981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대는 마을을 끼고 있는 천변 중앙의 자연암벽 위에 8각형의 석축을 3단으로 쌓고 그 위에 원형의 반석을 만들었으며, 최근에 와서 콘크리트 처리를 하였다. 그 옆에는 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앞면에 '명월대'라고 음각되어 있다. 또 명월대 주변에 1910년 경에 만들어진 돌다리가 있는데, 이는 제주도에서는 흔치 않은 석교이다. 명월대가 있는 천변은 상류에서 하류에 이르기까지 수백 그루의 팽나무 60여 본과 푸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자연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간간이 흐르는 물소리가 정결하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명락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관악구역사관광

명락사

서울 관악구 청룡동에 있는 명락사는 관악산 줄기의 끝자락 도심 상업지역에 있다. 40여 년 넘게 서울 서남권의 포교 활동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포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찰이다. 청년회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토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정기 법회를 갖는다. 2호선 봉천역과 서울대입구역 중간지점에 있다.

⌖ 서울특별시 관악구 청룡1길 11
명곡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명곡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명곡서원은 해주 최 씨 문중을 중심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당초 장흥에 있었으나 1984년 군동 신기마을로 옮겨왔다. 성재 최충, 송탄 최유선, 동산 최자, 강호 최만리, 호은 최우 등 5위의 성현이 모셔져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며 신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명곡사란 액자가 걸려있다. 부속건물로 내삼문, 문간채, 고직사 등이 있다. 신기마을은 주변에 해주 최 씨 후손들이 학습하던 강당이 보존되어 있고 해주 최씨의 세거 마을이다. 인근에 동양 최대 아미타불 불상을 볼 수는 남미륵사가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신기길 63
명봉사(예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예천군역사관광

명봉사(예천)

명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두운이 소백산 자락에 창건하였다. 1662년(현종 3) 화재로 전소된 뒤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1668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신익 등이 중창의 뜻을 세우고 10여 년 동안 시주를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6·25전쟁 때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55년 주지 만준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에는 1735년(영조 11)에 세워진 문종대왕태실비(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와 941년(태조 241)에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보물)가 있다. 사찰 뒤 산에는 문종대왕 태실과 세도세자(장조) 태실이 복원되어 있다.

⌖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명봉사길 62
면앙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담양군역사관광

면앙정

봉산면 제월리 제봉산 자락에 위치한 면암정은 1533년(중종 28) 송순(宋純)이 건립한 정자로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곳으로 유명하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추녀 끝은 4개의 활주가 받치고 있다. 목조 기와집으로 측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방을 배치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여러 차례 보수한 것으로, 1979년에는 지붕의 기와를 교체하였다. 최초의 모습은 초라한 초정으로 바람과 비를 겨우 가릴 정도였다고 한다. 면앙정은 송순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송순(宋純)(1493-1583)의 성종 24년(1493) 담양군 봉산에서 출생하여, 중종 14년(1519) 별시문과(別試文科) 을과(乙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명종 2년(1547) 봉문사(奉聞使)로 북경에 다녀왔으며 이후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거쳐 1550년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되었다. 1569년(선조 2년) 대사헌(大司憲),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되었으며, 의정부 우참찬(議政府 右參贊) 겸 춘추관사(春秋館使)를 지내다 사임하였다(77세).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내려와 면앙정을 짓고 퇴계 이황(退溪 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江湖諸賢)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양성하여 문인들이 신평선생(新平先生)이라 불렀다. 그의 문학작품을 보면 가사(歌辭)인 「면앙정가」를 비롯하여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 1편, 잡가(雜歌) 2편, 「면앙정단가」등과 「오륜가(五倫歌)」 5편 등이 그의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봉산면 면앙정로 382-11
면천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당진시역사관광

면천향교

면천향교는 다른 지역의 향교들과 달리 최초 창건 위치를 이동하지 않은 몇 개 안 되는 향교이다. 현재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군에서 동쪽으로 2리 떨어져 있다는 기록과도 일치하고 있다.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태조 1년(1392)에 세웠다고 전한다. 창건 이후의 면천향교 변화를 알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은 1716년(숙종 42년) 학교등록의 기사로, 면천향교의 대성전 서벽과 신문을 수리한 사실이 적혀있다. 1980년대 이후의 향교 보수로는 1983년 대성전 보수, 1985년 명륜당 보수, 1986년 동서재 보수가 이루어졌다. 향교 건물의 배치는 앞쪽에 배우는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서재가 있고, 뒤쪽에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과 동무, 서무가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 좌우에 있는 동무와 서무는 규모와 형식이 같은 건물인데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외의 건물로 내삼문과 외삼문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동문2길 36-7
매천 황현 생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광양시역사관광

매천 황현 생가

황현 생가는 1910년 일제강점기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황현이 태어난 곳이다. 황현(1855~1910)은 1888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실 정치에 실망하여 관직에 진출하기 않고 평생 초야에 묻혀 지냈다. 동학농민운동을 생생하게 묘사한 「오하기문」과 1864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상을 기록한 「매천야록」을 남겼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에 통분하여 중국 망명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7년 신학문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호양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 하자 절명시 4수와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충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다. 현재 황현의 생가는 2001년에 복원된 것이다. 또한, 인근에 2010년 조성된 매천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가족 묘역, 절명시, 창의정,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선생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봉강면 서석길 14-3
맥아더 사령관 한강방어선 시찰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역사관광

맥아더 사령관 한강방어선 시찰지

북한군의 남침 직후 맥아더 사령관이 미군의 참전 결정에 앞서 한강방어선 전황을 확인하기 위해 시찰한 장소이다. 1950년 6월 29일 수원비행장에 도착한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는 전쟁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어 전선을 직접 확인하기로 하고, 시흥을 거쳐 한강 전선을 마주한 영등포 동양맥주공장(현 영등포공원) 옆 언덕으로 이동하여 전황을 관찰하였다. 이때 언덕의 진지를 방어하던 한 병사가 “상관이 철수 명령을 내릴 때까지 지키겠다”라고 말하여 맥아더를 크게 감동시켰다고 한다. 이날 맥아더의 전선 시찰을 미군의 6·25전쟁 참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로 275 (영등포동)
매천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매천사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황현 선생은 한말의 순국지사이자 시인이며 문장가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고 재질이 뛰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경장·청일전쟁이 연이어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끼고, 경험과 견문한 바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聞)’을 지어 후손들에게 남겨 주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국권을 박탈하자 김택영과 국권회복 운동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아편을 먹어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 되었으며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라고 불린다. 생전에 살았던 곳에 그의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1955년에 세운 이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광의면 월곡길 22-3
매림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고령군역사관광

매림서원

매림서원은 1707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선시대 의학자인 곽수강과 학자 오선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으나, 그 뒤 1981년에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매림서원은 크게 사당, 강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구에 풍방루를 비롯하여 서원 내에 비각과 육각형의 정자가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입구를 들어서면 서당이 있고 서당의 양쪽에 동재·서재가, 뒤쪽에 사당이 위치한다. 사당인 숭경사는 강당의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매산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여주시역사관광

매산서원

매산서원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조 때에 경상남도 거창과 산청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건립되었다. 그 후 목은 이색과의 친분을 감안하여 추향하고 매산[梅山]이라는 이름으로 사액받았다. 그러다가 병자호란 때 후손인 문겸[文謙]이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여 춘추로 제향해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8년 훼철되었다. 이후 삼우당의 후손으로 여주경찰서장에 취임한 문광규[文光圭]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8년에 한차례 더 보수하였고 1987년에는 서원내의 사당을 헐고 다시 지었다. (출처 : 여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능서로 94-8
매양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구광역시 북구역사관광

매양서원

1705년(숙종 31)에 송원기(1548∼1615)를 향사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후대에 그의 후손인 송명기, 송이석 부자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복건과 소실되기를 반복하다 2006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양서원은 주향인 송원기의 입묘를 계기로 칠곡에 이주, 정착하여 세거해온 야로 송 씨 문중의 성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 칠곡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서원 중 하나이다. 서원은 전체 영역이 축대 위에 형성되어 있다. 전면에 계단을 배치한 양정문을 정문으로 하여 강당인 구인당을 배치하고, 강당의 북동쪽에 단을 높여 별도의 담장과 내삼문을 갖춘 사우인 상현사를 배치한 병렬형 배치를 보여준다. 외삼문에는 양정문, 강당에는 매양서원, 사당에는 상현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 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로37길 48
매산리석불입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매산리석불입상

안성 봉업사지 인근에 있는 높이 3.9m의 보살상이다. 볼륨감 없이 평평한 돌기둥 같은 신체에 전체적으로 세부를 정교하게 조각하지 않고 높은 원통형의 보관에 사각의 보개(寶蓋 ; 인도에서 귀인의 외출 시에 사용하던 양산을 불상의 머리 위에 갓처럼 씌운 것)까지 얹은 표현은 고려 전기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이다. 보개는 이후 변형을 이루면서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한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고려 전기 불상의 특징이다. 방형의 넓적한 얼굴에는 가늘게 뜬 눈이 수평으로 표현되고 짧은 코에 작은 입을 표현하였다. 얼굴의 세부 표현은 높은 관과 더불어 이 작품의 시대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둥근 어깨에는 왼쪽 어깨에만 다소 두꺼운 법의를 걸쳤는데, 왼쪽 어깨로부터 신체 전면을 덮으며 내려오는 법의는 가슴에서부터 U자형 주름이 계단식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다시 양쪽 다리에서 각각의 U자 모양을 이루며 발끝까지 이어진다. 보살상답게 양 손목에는 팔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서 손바닥을 밖으로 내보인 상태로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고 있고, 손등을 밖으로 한 왼손은 배에 대고 있다. 원형 보관과 보개로 이루어진 머리장식과 돌기둥 같은 신체 표현 등에서 고려 시대 전기에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대형 석불의 계통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미륵당길 32-2
망경암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역사관광

망경암

망경암은 전통사찰 74호로 성남에서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가장 좋은 영장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말부터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임금이 친히 들러 나라의 번영과 백성들의 안녕을 빌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망경암에 오르면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망경암(望京菴)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조각 기법이 투박하고 불상이 갖추어야 할 여러 요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으나 불교사적으로 의미를 갖는 장소에 모셔진 조선 후기의 마애불로서 자료적인 가치가 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55번길 72 (복정동)
망곡산 연인공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연천군역사관광

망곡산 연인공원

로하스파크에서 옥계마을을 지나 평화누리길 3코스를 따라 걷다보면 청화산과 망곡산을 지나가는 숲 등산로가 나온다. 구간의 거리는 약 4.5km정도이며 야산의 소로길을 이용하는데 특히 망곡산에는 사색의 오솔길이라는 자그마한 소로길과 체육공원 정상의 팔각정 등이 조성되어 있어 일상의 상념에서 벗어나기에 부담이 없는 코스이다. 망곡산은 구한말 고종 황제와 순종 황제가 국상[國喪]을 당했을 때 관내 유림과 향민들이 이산에 올라와 궁궐이 있는 서울 쪽을 바라보며 시들어만 가는 국운을 애태워하며 통곡하였다하여 망곡산[望哭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청화산은 고려말의 충신인 이양소 선생이 매일 개성을 향해 예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러한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선태종이 청화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출처 : 연천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연천로 220
말목장터와 감나무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역사관광

말목장터와 감나무

정읍시 이평면 면사무소 앞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말목장터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배들평 농민 수천 명이 고부로 가기 전에 모였던 곳으로 제1차 백산기포를 할 때까지 장두청을 두고 진을 설치했던 장소이다. 또한 이곳에는 180년 정도 된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이 나무 아래에서 말목장터에 모여든 농민들에게 전봉준이 군수 조병갑의 탐학과 농민 수탈의 실정을 알리고 농민봉기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고 전한다. 이곳 주민들은 지금도 이 감나무의 감은 따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자리
망금산 강강술래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진도군역사관광

망금산 강강술래터

망금산은 13척의 배로 3백여 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해전지 울돌목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해발 115m의 나지막한 산이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적에게 우리 군사가 많이 보이게 하기 위하여 이 망금산에 토성을 쌓고 부근의 부녀자들을 모아 남장을 시켜 산봉우리를 원을 그리며 반복하여 돌게 하였다고 한다. 주로 추석날 밤, 곡식의 풍년을 기원하며 추던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를 의병술로 사용한 것이다. 지금도 망금산 산봉우리에는 망터가 있고, 그 밑으로 강강술래터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술을 존경하는 마음이 담긴 강강술래에 관한 많은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망금산 강강술래터는 서해랑길 6코스에 위치해 있으며, 차량 이동 2분 소요, 1.7km 거리에 우수영 국민관광지가 있으며 울돌목 스카이워크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명량대첩로 103
만세고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안성시역사관광

만세고개

만세고개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과 양성면 사이의 고개이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원래의 이름은 성은고개 또는 양성고개이다. 3.1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1일 밤 원곡면민 1,000여명이 만세고개에 이르러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결의한 뒤 양성으로 돌진하였다. 양성 주민 1,000여 명과 합류하여 일본의 기관들을 불태우고 이 지역을 2일간 해방시켰다. 독립항쟁 운동을 기리기 위해 만세고개로 불리고 있다. 또한, 2001년 이곳에 안성 3.1운동 기념관이 세워졌다. 기념관 뒤로 백련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창진산장휴게소가 있다. 안성 3.1운동 기념관 주차장과 창진산장휴게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91
만화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역사관광

만화서원

제주고씨 고인상이 선조 문충공 고경을 주벽으로, 문영공 고용현과 화당 고만욱을 추배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 만화마을에 위치해 있다. 문충공파 파조 고경은 고려말의 문신으로 호는 휴옹, 시호은 문충 또는 문영으로 이부상서 백연의 아들로 다섯 살에 시를 지었고 열두 살에 논어를 외우니 당시에 옥산의 신동이라 하였다. 충렬왕 18년(1292) 16세에 친명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등이 공을 스스의 예로 존경하고 충효가 동방의 으뜸이 된다 하였다. 또한, 고용현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며 고만욱은 고인상의 부친으로, 부모상을 당했을 때 예를 극진히 하였다고 한다. 만화서원의 사당은 3칸, 강당은 4칸으로 모두 팔작지붕이며 동재는 4칸, 서재는 3칸이다. 그 외에 외삼문 1동이 있다. 문충고파 고씨 후손들은 전라북도 옥구군 옥산면의 염의원과 이곳 만화서원에서 공을 주벽으로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만화서원은 고려 후기의 제주고씨 고경과 고용현의 충신으로서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만화길 50
만연사(화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화순군역사관광

만연사(화순)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인 만연사는 고려 희종 4년(1208)에 만연선사에 의해 만연산(나한산) 아래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만연선사가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만연산 중턱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가고자 언뜻 잠이 들어 꿈꾸었는데, 십육나한(부처에게 위임받은 제자들)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토목이나 건축)를 하고 있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서 사방을 둘러보니 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백색인데 신기하게도 선사가 누운 자리 주변만 녹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길로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를 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나한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유물로는 고려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향나무 원목의 삼존불과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범종 등이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진각로 367
만일사(순창)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역사관광

만일사(순창)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회문산 자락에 있는 만일사는 백제 무왕(673년) 때 처음 세워진 사찰로 조선 초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무학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 후 6.25 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54년에 다시 세웠고 1998년에 일주문, 대웅전, 요사채 각 1동씩을 건립하였다. 만일사라는 명칭은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만일 동안 이곳에서 기도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이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높이 175㎝, 폭 65㎝, 두께 16㎝) 있으며 절 아래로 산안마을과 무직산, 성미산 등 수려한 연봉이 바라보인다.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103-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