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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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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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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사(해남)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도장사(해남)

수백 년이 된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한 도장사(道場寺)는 해남 황산면 내산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km 거리에 있는 보타산(寶陀山) 중턱에 있는 절이다. 고려 명종(1170년)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고도 있으나, 여러 기록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절이 자리한 곳은 지금은 영산강 하구언 간척지 공사로 바다가 막혀 버렸지만 본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대웅전은 기둥이나 서까래의 크기로 보아 규모가 컸던 절임을 알 수 있으며, 절의 스님에 의하면 1938년 무렵 무너져 내린 것을 대웅전 기둥의 목재를 그대로 이용하여 작은 규모로 줄여서 지었다고 한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황산면 내산길 143
도솔암(해남)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도솔암(해남)

도솔암은 달마산 12암자중 유일하게 복원된 암자로, 가장 정상부인 도솔봉에 위치해 있다. 석축을 쌓아 올려 평평하게 만든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견고한 요새와도 같으며, 주변 풍광이 워낙 수려해 일출과 일몰, 서남해의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고, 마치 구름 속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달마산의 새로운 선경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통일신라 말 당대의 고승 화엄조사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의 기도 도량이라고 알려져 있다.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께서도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도솔암에서 수행정진하셨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암자이다. 그 후에도 여러 스님들께서도 기도 정진하였던 도솔암은 정유재란당시 불에 타 흔적만 남이 있던 곳을 2002년 6월 8일 오대산 월정사에 계셨던 현 주지 법조스님이 32일 만에 단청까지 복원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암릉으로 둘러싸인 도솔암은 4월에는 진달래, 5월에는 철쭉, 6월에는 원추리,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멋있어 많은 관광객이나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이다. 그리고 풍광이 뛰어나 각종 드라마 및 CF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송지면 마봉송종길 355-300
남도한옥민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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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남도한옥민박마을

무선동 마을은 해남읍에서 5㎞ 정도 떨어진 두륜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약 30년 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한옥으로 조성된 민박 마을로 초창기에 성황리에 운영되다 잠깐 주춤하였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가족 중심의 관광이 시작되고, 시설을 보완함으로써 도시민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한옥민박 마을이다. 1977년 처음으로 한옥 민박촌으로 지정되어 16가구의 한옥 가옥을 중심으로 한옥 민박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마을 내에 있는 두륜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다. 원래 두륜사라는 이름은 마을 뒤쪽의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의 옛 이름이다. 예능에 종사하는 사람들 몇몇이 관내 학생들의 체험과 민박 손님들의 체험 활동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어 체험 마을로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문화 체험 공연으로 영화 상영과, 판소리, 장구, 북 등을 배워보는 소리체험, 전통 체험으로 한복 예절 체험과 전통차 체험, 도자기 체험, 떡메치기, 떡 만들기, 널뛰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전통 소리 체험은 국악인 채옥란 선생님 지도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옥 민박 집들은 대부분 내부가 현대식으로 개수하여,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다. 남도여행은 역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해남의 대표 음식인 떡갈비와 남도 한정식은 보기만 해도 푸짐한 상차림으로 나온다. 두륜산의 수려한 산세에서 자란 자연산 산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도 이 지역의 대표적 먹거리이므로 챙겨 먹어 보는 것도 남도 여행의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인근에 두륜산, 대흥사, 윤선도 관광지, 김남주 시인 생가 등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민박촌길 44
고산 윤선도 유적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해남군역사관광

고산 윤선도 유적지

조선조의 문신(文臣)이자, 국문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고산 윤선도(1587-1671) 선생의 유적지로 사랑채인 녹우당이 있다. 600년 전통을 이어온 해남 윤씨 어초은파의 종가 고택인 녹우당은 덕음산을 뒤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 중의 하나로도 알려진 곳이다. 현재 고산유적지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는 은행나무와 비자림, 사랑채인 녹우당, 안채, 행랑채, 헛간, 안사당, 고산사당, 어초은사당 ,추원당, 고산유물전시관등이 있어 조선시대 양반가 중 가장 많은 유물 (5,000여 점)을 보관해 온 집안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김남주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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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생가

김남주는 한국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나간 ‘전사(戰士)시인’이며,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문단을 일깨운 ‘민족시인’이다. 또한 청춘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선 혁명 시인이었다. 1945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봉학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삼화초등학교, 해남중을 거쳐 광주일고에 입학하였으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대, 자퇴하였고 이후 검정고시로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대학 재학중 ‘3선개헌반대투쟁’에 참여하는 등 반독재 학생운동에 투신한 그는 1972년과 이듬해에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과 ‘고발’을 제작. 배포하여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1974년 ‘창작과비평’에 ‘진혼가’등으로 문단에 나온 이후 작가 황석영 등과 함께 ‘민중문화 연구소’ 등을 결성하기도 했다.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투쟁 지하조직 ‘남민전’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동지들과 함께 체포. 구속되었으며,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 등지에서 복역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도합 10년 세월을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그가 남긴 470 여 편의 시 가운데 300 여 편이 옥중에서 쓴 시이며, 그의 옥중시는 80년대 한국시의 한 절정을 이루었다. 1988년 1월 가석방 되어 출소한 그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민예총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단재상. 윤상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작고 이후에 민족예술상이 수여되었다. 옥중투쟁에서 얻은 지병(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1994년 2월 13일 불과 마흔아홉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했다. 시집으로는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 ‘사상의 거처’, ‘이 좋은 세상에’,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등이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봉학길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