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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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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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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한내돌다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대천한내돌다리

대천한내돌다리는 보령 시내 대천천 하류에 있었던 돌다리이자, 과거의 남포와 대천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살에 쓸려 떠내려가거나 하천 제방공사를 하면서 파손되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1978년 수습하여 옮겨 두었다가, 1992년에 대천천 강변에 옮겨 일부 복원하면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근처에 있는 왕대산의 돌을 깎아내어 뗏목으로 운반해 온 것으로 보인다. 다리의 몸체를 받치는 기둥은 거칠게 손질한 2∼3개의 돌을 쌓아 이루게 하여, 모두 6개의 기둥이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위로 넓적한 판돌을 걸쳐서 다리를 완성하였는데, 원래는 12칸 돌다리라 하나 적어도 22칸은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보령시에서는 해마다 향토문화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12칸 돌다리밟기제가 열린다. 인근 관광지로는 보령중앙시장, 한내시장, 보령문화의전당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동대동
남포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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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23)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며,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향교 건물의 배치는 대성전과 명륜당, 서재를 갖춘 전학후묘의 배치 방식을 따르고 있다. 보통 향교에는 기숙사로 사용하는 서재와 동재가 있는데 남포향교에는 동재는 없고 서재만 있으며, 이마저도 향교를 관리하는 고직사를 겸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남포향교 정면에 서면 옥서리 저수지와 남포 들녘,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성주산 옥마봉이 우뚝 서 있다. 인근의 관광 명소는 옥마산, 남포읍성, 남포 관아 문, 보령시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33
남포향교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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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향교 대성전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23)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며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남포향교의 전체적인 배치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외삼문, 내삼문, 동재, 서재 등이다. 주변 관광 명소는 남포읍성, 옥마산, 남포 관아문, 보령시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33
남포관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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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역사관광

남포관아문

남포관아문은 조선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이다. 이전에는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현사(縣司)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서루와 내삼문, 외동헌이 남아있다. 남포현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 건물로 아래는 출입구, 위는 누마루를 설치하고, 팔작지붕이다. 조선왕조의 중앙 집권을 상징하기 위해 당시 전국에 똑같이 만들어진 관아문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진서루(鎭西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진서루는 외삼문으로 옛 남포현의 출입문이다.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2층 문루인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아래층은 삼문을 달았고, 2층은 누마루를 깐 후 4면에 난간을 세웠다. 동헌의 출입문인 내삼문은 정면 7칸 측면 1칸인데, 중앙은 솟을대문 1칸이 있어 출입구 역할을 하였고, 건물의 정면에는 옥산아문(玉山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남포현의 업무를 보던 외동헌은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앞면 중앙에 2칸의 대청이 있고 좌우는 온돌방으로 꾸몄다.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9
남포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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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읍성

남포읍성은 고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던 곳으로,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이다. 원래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고 서해상 교통을 관할하기 위해 쌓았다. 축성 직후인 1390년(공양왕 2)에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바깥쪽 벽은 돌을 이용하여 직각으로 쌓았고, 성벽의 안쪽은 흙으로 쌓아 올렸다. 동, 서, 남 세 곳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4m의 높이로 성 바깥에 또 하나의 성벽인 옹성을 둘렀다. 성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튀어나오게 하였으며, 그 양쪽 성벽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시설을 해두었다. 성 안에는 3채의 관아건물인 진남루와 옥산아문, 현청 보존되어 있으며, 동서에 80㎝ 높이로 배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1973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남포향교, 보령종합운동장, 옥마산, 남포면 소재지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금강암(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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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암(보령)

금강암(金剛庵)은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에 있는 높이 411.8m 양각산(羊角山)의 동편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사찰 이름이 ‘옥계사(玉溪寺)’로 나와 있으며, 1799년(정조 23)에 간행된 '범우고(梵宇攷)'와 1930년대에 이병연(李秉延)이 찬술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옥계사’라는 이름을 기록한 뒤에 지금은 '금강암'이라 칭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조선 후기에 암행어사(暗行御史)로 활약한 박문수(朴文秀)의 할아버지 박선(朴銑)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 설도 전해진다. 비문(碑文)에 의하면 금강암을 창건한 영암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제자이며, 영암이 금강암을 창건한 이유는 태종의 후비였던 궁주 권 씨(宮主 權氏)의 소원을 빌기 위해 원당(願堂)으로 창건한 것이다. 궁주 권 씨의 아버지인 영가군(永嘉君) 권홍(權弘)과 궁주 권 씨의 딸인 옹주 이 씨(翁主 李氏)가 후원하였다.

⌖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보령호로 1139-102
김좌진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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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장군묘

김좌진장군묘는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묘소이다.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김좌진은 개화사상이 투철하여 15세 때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밭을 나누어 주었다. 1905년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문맹퇴치에 앞장섰으며, 1913년에는 군자금을 모금하다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17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단에 가입한 이후 북로군정서의 사령관이 되어 독립군을 훈련시켰으며, 이를 기반으로 청산리에서 일본과 전투를 벌여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승리를 이루었다. 조국광복을 위해 노력했던 장군은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했다. 암살 직후 만주땅에 묻혔다가 아내 오숙근 여사가 1940년에 유해를 비밀리에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안장하였다. 그 후 1957년 부인이 타계하자 아들 김두한이 현 위치에 합장하였다. 현재 묘역에는 뒤편으로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봉분은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장명등이, 옆에는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말 석상 한 쌍이 세워져 있다. 1989년에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청소역 외에 오서산, 정암사, 광천토굴새우젓시장 등이 있다.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