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취향으로 찾기

오늘 갈 곳을 찾아보세요

지역과 관심 분야를 선택해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보세요.

역사관광

발견한 장소

691건

조건 초기화
개평한옥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개평한옥마을

함양의 중심에 위치한 개평한옥마을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들 배출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선비마을로 조선조 오현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그리고 초계 정씨 3개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일두 정여창 선생, 옥계 노진 선생 등 역사적 위상이 높은 선생을 배출하였다. 개평마을은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을 비롯한 많은 전통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선조들이 풍류를 즐겼던 교수정(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일두선생의 명상의 장소였던 개평리소나무군락지(경상남도 자연유산) 등 조상의 의식주와 생활풍습 등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원이 많이 남아있어 민속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59
강천사(제천)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제천시역사관광

강천사(제천)

학이 둥지를 튼다는 송학산에 자리 잡은 제천의 강천사는 송학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하였으며 천혜의 비경을 품은 명당으로 한번 가본 사람은 산사에서 바라보는 절경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송학초등학교에서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소악사지가 나오며 그 위에 강천사가 자리하고 있다. 강천사에는 조선 후기 불상인 강천사 목조 보살 좌상 및 복장 유물이 봉안되어 있는데 복장물을 매납한 이후 한 번도 개봉된 바 없는 상태로, 복장물의 종류와 구성을 온전하게 살펴볼 수 있는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옥천3길 56-10
거동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영천시역사관광

거동사

거동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보현산에 위치해 있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625~702)이 창건하였다 하며,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현재 거동사 주변에는 사찰 흔적들이 남아 있어 과거에 매우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내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2동의 요사, 산신각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거동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건물로 옛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사곡길 77-81
감천사(부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부산광역시 연제구역사관광

감천사(부산)

감천사는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지하 암반에서 1년 내내 물이 솟아올라 인근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하였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감천사는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묘봉산 자락에 위치한 자그마한 비구니 스님의 수행도량이다. 연제구의 주산인 배산 서쪽 묘봉산의 완만한 능선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중생들의 목마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원력으로 창건된 탓에 연산동 주거단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감천사의 물맛은 연제구청에서 공인한 연산동 약숫물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도심사찰로 이름나 있다. 또한, 부산의 대표적 도심 포교도량인 혜원정사와 좁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 감천사는 약숫물 외에도 대웅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의 기도성취가 크다 하여 관음기도도량으로도 이름 높다. 비록 사세가 작고 창건의 역사 또한 짧지만 기도객들의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졌다.

부산광역시 연제구 묘봉산로 40
감응사(성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감응사(성주)

감응사는 신라 애장왕(재위 800~808) 3년에 건립한 사찰이다.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는 성주 한개마을의 뒤쪽 영취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사찰의 창건과 관련해서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신라 제40대 애장왕이 늘그막에 왕자를 낳았는데 날 때부터 눈이 나빠 앞을 볼 수 없었다.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는데, 어느 날 꿈에 나타난 스님의 말을 듣고 독수리가 날아가 앉은 이곳의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게 하자 왕자가 앞을 볼 수 있었다 한다. 애장왕은 이를 부처의 은덕으로 여겨 승려 체징으로 하여금 사찰을 건립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한 사찰이 있는 산 이름을 신령스러운 독수리산이라는 뜻에서 영취산이라 부르게 하였다. 처음 절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가 후에 감응암, 감응사라 개칭하였다. 감응사는 창건 후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숙종 2년(1675)에 중창하였고, 그 후로도 영·정조대에 중수가 있었다. 지금의 불우는 1970년 주지였던 평타스님이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세워진 것들이다. 대웅전 뒤편 암벽 하단에는 약수가 솟는 옥류정이 있고, 주위 암벽에는 각자가 많이 새겨져 있다. 약수 상단에 부조의 용왕상이 새겨져 있으며, 여타 사찰에서 삼성각에 칠성신, 독성, 산신을 모시는데 반해 감응사에서는 독성존자 대신에 용왕신을 모시고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1길 234
가섭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음성군역사관광

가섭사

가섭사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가섭존자의 이름을 딴 고려 후기의 사찰이다. 가섭존자는 두타행을 가장 충실히 실천하였고, 영취산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연꽃을 들어 그 의미를 물었을 때 유일하게 미소로 답하여 염화미소의 가르침을 전한 인물이다. 가섭사는 창건 사실을 기록한 문헌 기록과 관련 유물이 현존하지 않으며, 다만 조선시대의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실상을 추정할 뿐이다. 가섭사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와가의 극락보전과 정면 2칸, 측면 1칸 반의 삼성각, 그리고 콘크리트로 만든 요사채 1동이 있다. 극락보전 안에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주존으로 하는 삼존불이 있는데, 협시불은 관세음보살 좌상과 지장보살 좌상으로 1975년에 만들어졌다. 가섭산 정상 아래에 자리한 가섭사는 조용하고 아담한 산사가 무척 아름다우며 산사 곳곳의 풍경이 무척이나 고즈넉한 곳이다. 음성을 여행하며 가볼 만한 사찰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가섭길 494
가산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옥천군역사관광

가산사

가산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과 의승군이 활동했던 사찰 가산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가산사는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의승군과 의병이 훈련했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의병장들로는 곽재우, 고경명, 정문부, 조헌 등이 있고, 의승군으로는 서산, 사명, 영규, 처영, 신열, 법정 스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영규대사는 서산대사가 승군의 총책임을 맡기 전 자발적으로 승군을 조직한 최초의 승장이다. 가산사 일대는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이 의승군과 의병을 훈련하고 군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큰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청주성 탈환에 큰 공헌을 한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은 금산의 연곤평전투에서 순절했는데 국가에서는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가산사를 호국사찰로 지정하고 진영을 봉안하여 제향을 올리게 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을 염려한 조선총독부는 그간 전해오던 두 의병장의 영정을 강탈하고 불온사찰이라 지목하여 가산사를 탄압하기도 했다. 오늘날 옥천군에서는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충의열사들을 위해 해마다 가산사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안내회남로 671
갑곶순교성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인천광역시 강화군역사관광

갑곶순교성지

1866년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갑곶 돈대로 상륙했다. 이로 인해 강화 지방에서는 혹독한 박해가 시작됐고 갑곶 성지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했다. 또 1871년에는 미국 군함에 다녀왔다는 죄로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 등이 갑곶 진두에서 순교했다. 후에 천주교 인천 교구는 갑곶 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지금의 갑곶 순교성지를 조성하고 2004년 2월 10일 갑곶 순교성지 첫 미사를 드렸다. 강화도 성지로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진무영(鎭武營) 순교성지, 관청리 형방이 있으며, 십자가의 길, 순교자 삼위비, 박순집 베드로 묘 등을 순례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35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인천광역시 강화군역사관광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오상리 고인돌군에서는 모두 12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2000년 실시된 발굴조사에 의하면 모두 북방식 고인돌이라 한다. 이 지역의 고인돌은 덮개돌은 부분적으로 손질한 흔적이 있고, 평면 형태는 모두 판돌형(板石形)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기념물로 지정된 내가 고인돌이 가장 크고 나머지는 길이가 다양한 편이다. 돌방(石室)은 돌널형태의 모습이고, 고임돌이나 막음돌을 세울 때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주변에 쐐기돌을 사용하였다. 돌방의 바닥은 거의 대부분 맨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고인돌은 판돌이나 깬돌 ‘할석’이 깔려 있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거조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영천시역사관광

거조사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인 거조사는 738년(신라 효성왕 2) 원참(元旵)법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경덕왕 때 왕명으로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뒤 진평왕 13년 혜림법사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나한을 모신 영험 있는 도량으로 유명해졌다. 거조사 영산전은 국보 제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 우왕원년(1375)에 지어졌다. 상언이 그린 영산회상도와 청화화상이 자연석을 이용해 조성한 석가모니부처님, 제화갈라보살, 마륵보살님과 비롯한 526분의 나한성중이 봉안되어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
개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금산군역사관광

개덕사

개덕사는 충남 금산군 추부면에 있다. 서대산 기슭에 터를 잡은 이곳은 자세한 기록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개덕사 인근 절터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조각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사찰에서는 서대폭포 혹은 개덕폭포라 불리는 폭포를 비롯해 대웅전, 산신각 등을 볼 수 있다. 사찰 주변에는 서대산드림리조트가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개덕사길 83
강선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북도 영동군역사관광

강선대

양산팔경 중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곳이 바로 강선대이다. 강선대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가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오롯이 서 있는 육각 정자로 멀리서 보면 주변 노송들과 어울려 우아하고 고상한 멋이 흐른다. 정자 위에 서면 푸른 강물이 거칠게 부딪치는 바위 절벽이 아찔하다. 강선대는 물과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려 삼합을 이룬 곳이라고도 한다. 양기(陽氣) 강한 바위와 음기(陰氣)의 물을 소나무가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조선의 이안눌과 『한우가』로 유명한 임제의 시가 정자 안에 걸려 있어 풍류를 더한다.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 756-1
감추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역사관광

감추사

감추사는 동해시 용정동에 위치한 작은 절이다. 영동선의 철길을 건너 옥석정이라는 정자를 지나고 나서 계단을 내려오면 기도도량 옆에 석굴과 감추사가 있다. 건물은 4채밖에 없지만, 저마다 바위 틈새에 교묘하게 들어앉아 있어 각각 멋진 모습을 내비친다. 바닷가에 들어선 절은 대부분 기도처로 유명한 관음도량으로, 바닷가에 관음보살이 상주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곳에서 관음기도와 용왕기도를 올리면 집안의 안녕과 사업이 번창한다고 해서 전국 각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또한 동해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있어 해마다 해돋이 여행으로 오는 관광객들도 많다. 감추사의 절 입구에는 5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석탑은 한 여신도가 죽을 때 자신의 아들에게 유언을 남겨 만들어진 석탑이라고 한다. 바닷가에서 가깝기 때문에 주변에 기암절벽이 환상적으로 멋진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절 입구 샘물에서는 약수가 흘러넘쳐 늘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수중지수라 하여 수명을 감로수라 지었다. 마을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며 뜻을 기리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해안로 120 (용정동)
강릉 오금집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역사관광

강릉 오금집

강릉 오금집은 강릉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유일한 초가집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집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은 겹집이다. 왼쪽으로 2개의 방이 있으며, 오른쪽으로 부엌이 있다. 겹집양식으로 뒤쪽에 안방과 골방을 배치하였고, 앞쪽에는 툇마루가 있다. 네 귀퉁이에 있는 기둥은 안으로 기울어지도록 세웠으며, 못을 사용하지 않고 이음·새끼줄 등을 이용하였다. 특히 부엌 쪽은 초가지붕이 땅 가까이까지 내려와 있다. 흙벽으로 되어있고 목재의 가공 등이 거친 편이다. 흙과 돌로 된 담이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평면 양식은 田자에 가깝지만 움집과 같은 느낌을 주는 특이한 집으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옛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릉대로210번길 23-9 (임당동)
강진 백운동별서정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진 백운동별서정원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聃老, 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영(造營)한 원림으로,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루며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별서이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월출산 능선의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보이는 이곳에 전형적인 호남전통원림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마침 이곳길도 해남부터 시작하는 삼남길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다산선생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는데 이를 근거로 호남의 유서깊은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하게 되었다. 이담로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아홉 굽이 유상곡수를 만들고 정자를 앉혔는데,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계곡에 눈이 머물다가 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백운동 계곡은 강진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 등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으며 조선중기 선비들의 은거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출처:강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성전면 월하안운길 100-63
강화 서도 중앙교회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인천광역시 강화군역사관광

강화 서도 중앙교회

강화도는 19세기 말 조선이 문호를 개방할 때 지리적 여건으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탓에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당시에 세워진 교회 중 지금까지 강화도에 남아있는 것만 세 곳에 이른다. 1900년에 세운 성공회 강화 성당, 1906년에 세워진 강화 온수리 성공회 교회 그리고 서도 중앙 교회가 현존하고 있는 당시의 교회들이다. 그 중 서도 중앙 교회는 1923년 교인들의 건축 헌금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7월에 완공된 한옥 예배당이다. 1978년 주문 교회에서 서도 중앙 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건물 내부는 중세 전기의 서양 교회 양식을 하고 있지만 매우 단순하여 예배실로 쓰이는 좁은 신랑과 측랑, 중앙의 강단으로만 구성돼 있다. 전면에는 강단 위에 설교대를 두었으며, 바닥은 마루를 깔았다. 이 건축물은 우리 전통 목조건물의 가구 형식을 바탕으로 서양 교회를 지었다는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으면서 지금도 종교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주문도길 256-1
갈천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갈천서원

갈천서원은 고려 공민왕 때 문신인 문정공 행촌 이암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이암 선생(1297~1364)은 고려 충선왕 5년(1313) 문과에 급제하였고, 공민왕 12년(1363)에는 1등 공신으로 철성부원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갈천서원은 고려 공민왕 때 회화면에 금봉서원으로 세워졌으며, 조선 숙종 38년(1712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우고, 갈천서원이라 하였다. 고종 6년(1869)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광복 후 유림들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남아있는 건물로는 사우, 강당, 내삼문과 정문인 불사문이 있고, 사우에는 행촌 이암, 묵제 여필, 관포 어득강, 도촌 이숭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강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3량 구조의 팔작지붕 목조 와가로, 가운데 1칸을 대청으로 하고, 좌우에 방 1칸을 두고 우측 방 앞에 누마루가 있다. 정문인 불사문은 앞면 5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 솟을대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가운데 1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갈천로 620
가호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가호서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문부를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함북에 있는 네 개의 사우에 향사하였다가 1970년에 진주 향교 사람들의 공의와 후손들의 협찬에 의해 현 위치에 사우를 건립하였다. 그 후에 서원 내에 정문부 장군 유물전시관도 건립되었다. 충의공 농포 정문부(1565~1624)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85년(선조 18) 생원이 되고 1588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한성부참군이 되었다. 1590년 사헌부 지평으로 지제교를 겸했으며 함경북도 병마평사가 되어 북변의 여러 진을 순찰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조직하여 장덕산 전투, 쌍포 전투, 백탑교 전투에서 대승하여 관북 지방을 수복하였다. 시화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임을 당했으나 후에 복권되어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서원에는 가호서원, 충의사, 유물전시관, 보조묘, 장판각, 북관대첩비, 농포정문부사적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이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길 59-2
강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덕사

강덕사는 강덕서원이라고도 한다. 조선 헌종 12년(1846)에 후손들의 협력으로 시조 장경공 최사전을 비롯하여 최표, 최부, 최극충을 배향하고 있다. 최사전은 어려서부터 무술에 정통하여 여러 대에 걸쳐 임금을 섬기던 중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여 나라를 보존시켜 강진의 명예를 드높인 인물이다. 경내에는 외삼문, 내삼문, 강덕서원, 효인재, 강덕사 묘정비, 위패를 모시는 강덕사, 관세위, 망예위 등이 현존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5일과 10월 15일에 제를 올리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호라길 199-39
가산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장성군역사관광

가산서원

가산서원은 고려 후기 문신 익재 이제현(1287∼1367)과 이제현의 8대손인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 백사 이항복(1556~1618)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연산군 4년(1498) 이제현의 5대손인 장수 현감 이재인(1415~?)이 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삼계면 주산리 백산촌에 집을 짓고 은거하면서 익재의 영정을 모셨고, 1559년 후손 이대정이 사우 백산사를 지어 익재의 제사를 모셨다. 세월이 흘러 사우가 퇴락하자 영조 42년(1766) 후손 이언경이 낭월산 남쪽 기슭의 현 위치(장성군 삼서면 홍정리 가산마을)로 사당을 옮겨 가산서원이라 하고 이항복을 추배하였다. 고종 5년(1868) 훼철되어 영정만 모시는 영당으로 남았다가 1960년 중건하였다. 1998년 장성향교의 발의로 이재인을 추배하고, 해마다 음력 8월 10일에 향사를 올린다. 익재영정이 보관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삼서면 영장로 2015
간곡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부여군역사관광

간곡서원

간곡서원은 영조 16년(1740)에 건립되어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가 1971년에 복구되었다. 이곳은 노곡 유동수(1579∼1654)를 배향하고 있다. 유동수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인조 24년(1646)에 노성현감으로 재직 시 토호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공을 세운 적이 있다. 간곡서원지, 노곡유적, 모현계안, 복설록, 심원록 등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283번길 31-4
강한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여주시역사관광

강한사

강한사는 조선 중기 학자이며 정치가인 송시열(1607년-1689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송시열은 생전에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로 경기도 여주에 머물 때마다, 영릉(효종의 능)을 바라보며 효종의 북벌 정책에 대한 대의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후에 정조가 영릉에 행차하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김양행에게 송시열의 사당을 짓게 하였고, 송시열을 높여 ‘대로’의 명칭을 붙여 사당을 ‘대로사’라 하였다. 그 뒤 1873년 10월 고종에 의해 ‘강한사’로 이름이 바뀌면서 현재에는 대로사 또는 강한사라 불리고 있다. 사당은 고종의 서원철폐(1871년 전국의 47개소 서원(사우 포함)만 남기고 모두 없앰)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강한사는 크게 사당과 강당 영역으로 구성되어있다. 사당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크기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강당의 규모는 정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재실인 추양재, 대로사비각, 홍살문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강한사의 사당은 특이하게도 서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영릉을 바라보기 위한 것으로,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보여 주는 것이라 전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경기도 여주시 청심로 113 (하동)
강원 영월 김삿갓면 [슬로시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역사관광

강원 영월 김삿갓면 [슬로시티]

영월군은 산과 물, 계곡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수려한 자연경관은 물론이며 어린 나이에 왕위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비운의 임금인 단종과 조선 후기 방랑 시인이자 천재 시인인 김삿갓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씨동굴 및 김삿갓 유적지 등 청정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가장 최적화된 곳이다. 해학과 풍자의 시선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화 예술혼을 추모하고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문화제도 매년 10월에 개최하는 등 다양한 문화자원도 두루 갖추고 있어 이러한 보존 가치를 대외적으로 인정받아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또한 영월군은 박물관 고을 특구이다. 핵심 콘텐츠 지역인 김삿갓면에만 자그마치 8개의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고을 육성 사업을 통해서 지역 특성을 반영한 박물관을 유치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인재 육성 및 활용과 네트워크 구축, 테마 체험 프로그램 및 문화 상품 개발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가치를 찾아내고 있다. 별마로 천문대, 난고 김삿갓 문학관, 영월 Y 파크, 단종역사관, 동강사진 박물관, 영월 동굴 생태관, 강원도 탄광 문학촌, 동강생태정보 센터, 영월 라디오스타 박물관, 예술창작스튜디오 등 다양한 콘텐츠의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옥동장터길 36
강경미내다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논산시역사관광

강경미내다리

강경천의 채운교가 있는 강둑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미내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강경포구가 있던 곳으로, 이 강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미내다리’라고 부른다. 강경미내다리는 조선시대에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삼남에서 가장 큰 다리였다. 다리의 규모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이다. 긴 돌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 모양을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다리의 강둑 쪽 중간쯤에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물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눈은 마치 장승의 눈과 같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옆으로 귀 모양과 갈기가 있다. 다리 옆에 놓여 있던 ‘은진미교비’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비문에 의하면, 조선 영조 7년(1731) 주민의 필요에 따라 강경촌 사람인 송만운이 주도하여 이 다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강진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진향교

강진향교의 확실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윤탁이 대성전에 은행나무를 심도록 권장하였다는 기록과 현재의 은행나무 나이를 짐작하여 조선 전기인 1400년대로 추정된다. 강진향교 역시 다른 건물과 같이 임진왜란의 병화를 입었으며, 광해군 5년(1613)에 이 지역출신 입방자들이 의금을 내고 군수 정인의 도움을 받아 사마재를 건립하였고, 그 후 1675년에 본격적으로 향교를 건립하였다. 1858년에는 군수 심의찬이 향교를 중수, 1901년과 1919년에는 대성전을 중수, 1935년에 명륜당을 중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동재, 서재, 명륜당 등이 있다. 앞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을 두고, 뒤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제사공간을 두고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 안에는 5성, 송조 4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대성전의 좌측에는 수령 약 400년 된 은행목이 한 그루 있으며, 대성전에 들어가는 협문이 좌우에 있다. 건축 형식을 보면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이며, 지붕은 겹처마로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다.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 1명과 장의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40
강양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합천군역사관광

강양향교

강양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합천군 소재지에 처음 지었던 합천향교는 조선 고종 18년(1881) 합천군청을 야로면으로 옮기면서 함께 옮겼다. 그 뒤 1965년 합천·용주·율곡·대양면의 유림이 현재의 자리에 강양향교를 새로 지었다. 건물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 내삼문,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향교 232개소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지은 향교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충효로1길 5-14
거창 건계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건계정

거창 건계정은 거창 장씨 문중이 1905년에 세운 것으로, 문중의 시조인 평보 장종행이 고려 충렬왕 때 중국으로부터 귀화했는데, 그의 아들인 두민이 공민왕 때 홍건적들이 침입하여 개경까지 점령 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사들을 지휘하여 개경으로부터 홍건적을 몰아내어 국란의 위기를 극복하는 무훈을 세우자, 이에 대한 공로로 공민왕이 두민을 아림군으로 봉했다. 이에 그 후손들이 두민의 공을 기려서 세운 정자이다. 건계정 계곡은 역사, 지리, 군사상의 요충지로 자리하였으나 지금은 거창하면 건계정을 생각할 만큼 고풍스러운 정자와 맑은 물이 굽이도는 물길과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거창을 소재로 하는 글이나 문학 소재의 대상에서 으뜸이 되었던 곳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거안로 1173-21
강화유수부 동헌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인천광역시 강화군역사관광

강화유수부 동헌

강화유수부 동헌은 오늘날의 군청과 같은 관아 건물이다. 조선 후기 강화에는 개성, 수원, 광주와 함께 특별행정구역인 유수부를 설치하고 종2품 당상관인 유수를 파견하였는데, 유수가 집무를 보던 중심 건물이 강화 유수부 동헌이다. 조선 1638년에 유수 김신국이 개수하였고, 1769년에 유수 황경원이 현문관이라 이름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친 개조로 원형은 남아있지 않다. 앞면 8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집이다. 당시 명필이며 학자였던 백하 윤순이 쓴 명위헌과 이관당의 현판이 걸려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거창 갈천서당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갈천서당

갈천서당은 조선 명종 때 6현신의 한 사람으로 광주 목사를 지낸 갈천 임훈이 벼슬을 그만둔 뒤,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아우 임운과 함께 1573년 건립한 서당이다. 그 후 1878년에 후손들이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임훈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광주 목사를 역임하였고 장례원 판결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거부하고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갈천서당의 건물은 강당과 대문으로 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홑처마이고 양측 면에 풍판을 달았다. 처마 밑에는 그 당시 사용하던 큰북의 외통이 걸려 있다. 대문은 맞배지붕 솟을대문이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 형제의 신도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임 씨 형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878년에 후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송계로 767-34
개심사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개심사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개심사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나무로 된 여래좌상과 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칠성면 두천리의 도덕암에 있던 것을 암자가 폐사되면서 옮겨온 것이다. 괴산읍 서부리에 살던 김경림이 1935년경 현재의 개심사를 신축하면서 옮겨왔다고 전한다. 2구의 각부 조각과 단아한 양식수법은 조선후기의 불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높이 85cm의 목조여래좌상은 한 나무로 조성한 좌상인데 나발의 머리와 상호가 정제되어 원만하며 백호를 갖추고 있다. 양 눈썹과 눈, 입과 입술 등이 정돈되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통견인 법의는 조선시대 특유의 양식으로 손목에서 두껍게 표현되었다. 무릎의 의문도 두툼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들고 왼손을 내려 설법인을 결하고 있다. 관음보살상은 72cm이고 역시 한 나무로 조성한 것인데 머리에는 금속제의 화사한 보관을 쓰고 있다. 상호는 원만하며 이마에 백호가 있고 양미안과 구순 등이 정제되어 목에 돌려진 삼도와 어우러진다. 통견과 법의는 두툼하면서도 유려하여 조선시대 작품으로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근에 홍범식 고택과 괴산향교, 애한정 등 가볼 만한 곳이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역말길 22
개심사(괴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개심사(괴산)

개심사는 괴산읍 동부리에 있는 자그마한 전통사찰로 연혁에 대해서는 현재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보학스님이 1935년에 쓴 를 통해 연혁을 짐작할 뿐이다. 현판 기록에는 여신도인 김경림이 절에 10여 칸의 큰 법당을 시주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사찰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창건에 관한 이야기, 즉 괴산읍 칠성면 두천리에 있던 도덕암이 폐사됨에 따라 현재 개심사터에 전각을 짓고 도덕암에 있던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불상 2구를 옮겼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이는 1935년의 기록으로 김경림보살이 법당을 시주할 때 개심사에 도덕암 불상 2구가 안치되었으며, 개심사가 새롭게 중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98년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을 요사채를 헐고 그 터에 새로 지은 극락보전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이래 극락보전, 요사채 등의 중창과 축대 및 주차장 설치 등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역말길 22
강진마도진만호성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진마도진만호성지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마도진 만호성은 石城으로 둘레가 890자(尺), 높이가 12 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서북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다. 성벽의 총 연장 길이는 730m 정도이고, 방형 및 장방형의 대형 석재로 기단부를 구축하고 상부로 올라갈수록 30×20㎝ 정도의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내탁법(內託法)에 의해 쌓아 올렸으며, 현존 서북벽은 길이 220m, 높이 2.3∼4.7m, 상부폭 1m, 하부폭 2.5m이다. 마도진이 있는 마량은 우리나라 서남해에 위치하여 강진, 장흥, 해남, 영암으로 이어지며 제주도와 연결되는 요충지이다. 마도진(馬島鎭) 만호성지(萬戶城址)는 마량에 들어서는 도로변(23번 지방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속칭 「말머리(馬頭)」라 불리는 마량의 배산(背山)을 뒤로하고 원마(元馬) 마을의 서북쪽에 장방형의 형태로 남아있는 마도진성(馬島鎭城)은 군항(軍港)으로써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상의 전면으로는 고금도·까막섬·노리묵 등이 이·삼중으로 외호(外護) 하고 있으며 육지 쪽으로는 말머리산의 능선을 휘감으며 자리 잡고 있어 외부로부터 은폐·엄폐되어 있다. 마도진성(馬島鎭城)은 남쪽은 낮고 북쪽이 높은 구릉상에 축조하였는데 현재는 서북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유구를 통한 성벽(城壁)의 총 연장 길이는 730m 정도이며, 방형 및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내탁법(內托法)에 의해 쌓아 올렸다. 현존 서북벽은 길이 220m, 높이 2.3∼4.7m, 상부(上部) 폭(幅) 1m, 하부(下部) 폭(幅) 2.5m 정도이다. 그 외 동·서·남·벽은 마량지서 등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현재는 기단부 만이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기타 부속시설로는 북문지(北門址)의 기단석만이 확인된다. 문지(門址)는 폭 4.3m, 높이 1.6m로 근래 도로 확장사업 계획에 따라 곧 파괴될 위험에 처해있다. 한편 서북벽 근처에는 행만호(行萬戶) 이종호(李鍾浩)의 선정비가 1기가 남아 있는데 규모는 높이 130㎝, 폭 50㎝, 두께 15㎝이다. * 규모 - 28필지 4,237㎡ * 시대 - 조선시대(1499년경 축성)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강댕이 미륵불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충청남도 서산시역사관광

강댕이 미륵불

이 미륵불은 강댕이로 진입하는 지점에 설치된 강당교에서 북쪽으로 약 100m 지점의 전(前) 군장동 안, 현(現) 고풍저수지 안에 있었다. 이곳은 지대가 높아 지금도 섬처럼 되었으며 풀이 자라고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이 저수지로 수몰되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조성연대는 고려말~조선초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216㎝, 어깨의 폭은 65㎝, 두께는 25㎝이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팔을 위로 올려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배 위에 대어 서산지방의 다른 미륵과 같은 형식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하는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고 하며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이었다고 한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18-1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

강진 병영 마을은 옛 병마절도사의 영(營)이란 명칭에서 유래된 마을로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주위의 수인산, 성자산, 옥녀봉, 별락산, 화방산 등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 형태의 천연 요새로, 일찍이 전라도의 군수권을 통괄했던 병영성이 이곳에 들어섰으며 빠른 상업의 발달을 이룬 곳이다. 이곳에는 사적으로 지정된 ‘병영 성지’가 남아있어 그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병영 마을의 담장은 전체적으로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으로 하부는 비교적 큰 화강석을, 중단 이후로는 어른 주먹 크기 정도의 비교적 작은 돌을 사용하여 쌓아 올렸다. 담 위에는 기와로 지붕 처리를 하였다. 또한 담장 역할을 하는 부속채도 담장과 같은 높이와 방식으로 축조되어 서로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담장의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이고 이는 병영 마을이라는 특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마을 안길이 직선형으로 되어있어 담장이 한층 정연해 보인다. 특히, 하멜 일행이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간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로부터 습득한 것으로 전해오는 담쌓기 방식인, 중단 위쪽으로 얇은 돌을 약 15° 정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다음층에는 다시 엇갈려 쌓는 일종의 빗살 무늬 형식(이곳에서는 이 형식을 ‘하멜식 담쌓기’라 부른다) 은 타 지방과 다른 독특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
거창 동계종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동계종택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이 태어난 집으로, 후손들이 1820년에 다시 짓고 정온의 신위를 사당에 모시고 있는 곳이다. 고택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남쪽 지방임에도 추위가 심해 북방식인 겹집 형태로 지어졌고, 호서지방이 가까워 비가 잦아 비를 피하려 사랑채 누마루는 겹지붕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이는 고건축학적으로 특이한 것으로 눈썹지붕이라고도 한다. 사랑채는 꺾인 부분을 누마루로 꾸미고 눈썹지붕을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는 북부지방 가옥의 특징인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단은 낮고 툇마루를 높게 설치한 남부지방 고유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집의 학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양반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또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동1길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