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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사(문경)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문경시역사관광

대승사(문경)

대승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1644년(인조 22)과 1722년(경종 2)에 의현, 종수 등이 중수하였고, 1831년(순종 31) 구담이 중창하였다. 1922년 큰 화재로 불타 의운, 덕산이 복원시켰는데, 1956년 또다시 큰 화재가 발생하여 명부전과 극락전만 남고 소실되어, 1960년 남인 대휴 등에 의해 삼창 되었다. 사불산 산마루에 있는 사면 석불상은 삼국유사불산조에 따르면 587년(신라 진평왕 9) 커다란 비단 보자기가 공덕봉 중턱에 떨어졌는데,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4불암이 싸여 있었다고 한다. 왕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와서 예배하고 절을 짓게 하고 대승사라고 사액하였고, 망명비구에게 사면석불의 공양을 올리게 하였는데, 망명비구가 죽고 난 뒤 무덤에서 한 쌍의 연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이름을 사불산 또는 역덕산으로 불렀다. 대승사는 국보 대승사목각탱부(아미타여래설법상) 및 아미타불사에서 나온 금자화엄경(7권), 불사리 1과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 윤필암, 묘적암, 상정암, 관음암, 문수암 등이 있으며, 금강반야경오가해설의(1415)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대승사는 해발 600미터 고지의 대자연 속에서 스님들과 일상을 같이 체험하며, 차담, 예불, 윤필암, 묘적암, 사면석불 포행과 쉼이 있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참여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프로그램이다.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승사길 283
단양 적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단양 적성

단양적성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성재산 정상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단양적성은 석축성으로 성의 길이가 923m이지만 대부분 붕괴되었고 북동쪽 내외 부분의 안쪽 벽 높이 2~3m, 폭 1m의 석축이 일부만 남아 있다. 성재산 봉우리와 남쪽 비탈을 빙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며 성문 자리는 남서쪽, 동쪽, 남동쪽 등 세 곳에서 발견되었다. 산성의 주변에는 남한강의 상류 방면과 하류 방면으로 각각 고대 교통로가 나 있으며, 동서쪽으로도 길이 트여 있다. 남한강 수로를 다라 영월과 충주 방면으로 진출이 용이하고, 강 건너 제천 방면으로 진출하기에도 유리한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산성이다. 적성에서 단양신라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 비는 적성의 성격이나 목적, 연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비의 건립 연대는 늦어도 551년 이전으로 보인다. 따라서 적성은 6세기 중엽 이전에 신라가 남한강 상류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하고자 쌓은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성으로 평가된다. 단양적성은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신라와 고구려 세력관계 변동을 알아보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또한 축성 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
남산골한옥마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남산골한옥마을

1998년 조성된 남산골한옥마을은 남산 북측 옛 수도방위사령부 부지 총 79,934m²(24,180평)에 한옥 5동, 전통공예관, 천우각, 전통정원, 서울남산국악당, 새천년타임캡슐 광장으로 구성되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를 만나볼 수 있으며, 남산 자락을 따라 전통조경 양식으로 조성된 계곡과 정자, 각종 화초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전통정원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고 400년 후 서울정도 천년을 기대하며 1994년 당대의 기억을 매설한 서울천년타입캡슐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옛 가옥을 복원해 놓은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골한옥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연못 청학지와 그 곁으로 천우각이 있다. 천우각 광장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서울 곳곳에 있던 한옥이 이전·복원되어 옛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볼 수 있게 한 예스러운 공간이 나타난다. 모두 다섯 채의 한옥으로서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관훈동 민 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 씨 가옥이 있다. 이 중 건물 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은 옥인동 윤 씨 가옥만 새 자재를 사용해 복원했고 나머지 건물은 종래의 집 부재를 그대로 이전했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즐기는 다양한 체험거리 남산골한옥마을에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한옥 다섯 채를 활용하여 한옥실내 공간을 체험하면서 동시에 한국 전통문화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한복 입기, 한지 접기, 한글 쓰기, 전통차 마시기를 체험할 수 있고, 전통예절학교와 한방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는 전통혼례가 실제로 치러지고 전통혼례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도 천우각 맞은편 원두막에서는 짚공예 시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천우각 무대에서는 태권도 시범공연과 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피금정 마당에서는 제기차기, 윷놀이, 비석치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남산골한옥마을 곳곳을 동행하며 설명해주는 전통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해 있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필동2가)
남원 만인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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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남원 만인의총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 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하여 적의 우근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분투 끝에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 4년)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몇 번의 이전을 거쳐 정부의 지원과 전 도민의 정성 어린 헌수로 현재의 충렬사에 5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만인의총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이곳은 문화관광해설사와 관람하며 호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고,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만인로 3 (향교동)
귀정사(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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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역사관광

귀정사(남원)

귀정사는 백제 무녕왕 15년(515년)에 현오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는 만행사(萬行寺)라 불렸다. 이후에 백제의 왕이 절에 참배를 와서 고승(高僧)의 설법에 탄복하여 3일간 절에 머무르며 국정을 살피고 돌아갔다 하여 귀정사(歸政寺)라 고쳐 불렀다. 왕은 “죽고 살기를 스님과 더불어 같이 한다”는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1221년 대방(남원의 옛 이름)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귀정사에 제2의 백련결사를 개설했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대은스님이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 세조 14년(1468년)에 낙은스님이 각각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실됐다. 현종 5년(1664년)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 모습대로 고쳐졌고, 순조 4년(1804년)에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와중에 옛 건물이 모두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명월당, 시왕전, 향로전, 영당의 전각이 있었으며, 부속 암자로는 남암, 상암, 대은암, 낙은암 등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귀정사에 살던 스님들이 모두 흩어지자 만공스님이 큰 법당에 모셔졌던 삼존불상을 충청도 수덕사 대웅전으로 옮겼고, 지금도 그곳에 모셔져 있다. 1968년 유정동 스님이 보광전, 승당,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2006년부터는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면서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보광전 개축, 만행당, 관음전, 산신각, 종각 등을 새로 건립하였고, 인드라망 수련원, 만행산 귀농학교, 숲살림원,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 등이 운영되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2길 246
금산교회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금산교회

1908년 전주선 교부의 데이트(Lews Boyd Tate) 선교사가 지은 한옥교회이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의 사기(事記)에 의하면, 처음의 교회는 1905년에 5칸으로 지었으나,190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금산교회 옆으로 1988년에 새로 지은 교회본당과 사택이 들어서 있다. 건물은 남북방향으로 5칸이며, 여기에서 동쪽으로 2칸을 덧붙여 뒤집힌ㄱ자 형태를 이룬다.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으로 남자석, 동쪽으로 여자석을 분리하여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 초기 교회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구분이라는 큰 문제를 ㄱ자형 건물을 지어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보게 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서양식교회의 특징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이 교회는 초기 교회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로, 각 구조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로 지정·보존하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07
구절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옥천군역사관광

구절사

구절사는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구절사는 옥천의 상동 부락 서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식장산 영축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구절사는 조선 태조 2년, 1393년에 무학대사께서 최초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사명은 영구암이었는데 이는 영축봉의 동쪽과 서쪽의 두 정상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탑 사거리에서 구절사까지는 좌우에 수많은 아카시아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 나무들은 5월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향기가 온 천지를 감싸는 아카시아 꽃길을 이룬다고 한다. 이 사찰은 어느 순간 폐사되었으나, 1933년에 절 아랫마을의 한병석이 이곳에 참배하러 왔다가 중건했다. 이후 사찰의 명칭이 구절사로 바뀌게 되었는데, 절 뒤에 있는 영축봉을 구절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 충청북도 옥천군 상중길 226 문화재(전통사찰-구절사)
교하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파주시역사관광

교하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교하향교는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파주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관립학교이다. 파주시에는 파주향교, 교하향교, 적성향교 총 3곳의 향교가 있는데 그중 하나이다. 교하향교는 본래 조선 초 1407년(태종 7년)에 탄현면 갈현리에 창건되었는데, 1731년(영조 7) 파주 장릉의 능기로 정해져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968년 담당을 보수하고 1971년 대성전과 부속건물을 중수하였으며, 1973년에는 대성전의 담장과 기단을 보수하였다. 또 1981년에는 내삼문 안의 대성전 묘정을 넓히기 위해 명륜당을 옮겨 세웠으며, 1992년에는 교직사를 옮겨 세웠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이며, 대성전은 전면에 퇴칸을 둔 맞배집으로 제례 시 출입의 동선을 원활히 하고 그 방향성을 명확하게 해주기 위한 기능적 배려로 전퇴를 개방한 특징이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매월 음력 1일, 15일 분향과 1년에 2번 거행되는 춘추 석전 봉행을 시행한다. 금촌IC에서 차량으로 약 7분, 경의중앙선 금릉역에서 약 4분 소요된다. 인근에 파주 출판도시, 헤이리 예술마을, 임진각, 마장호수 등이 있다.

⌖ 경기도 파주시 쇠재로 91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남도 공주시역사관광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참수 처형으로 대표되는 순교성지이자 순교자의 처절하고 용기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앙이 무엇인지,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새로 나는 장소, 은총의 배움터이다. 박해시대 초기에는 사형 판결을 받은 사학죄인들에게 해읍정법이 적용되었는데, 이는 백성들에게 천주학을 경계하고자 사학죄인들을 출신 고향에서 공개 처형한다는 의미이다. 사학죄인으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이 배교를 거부할 경우 사형 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제민천변 황새바위에서 참수 처형 되었다. 황새바위 순교성지의 위치는 지리학적으로 금강의 본류와 제민천의 지류가 만나는 모래사장으로 공개처형지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1784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 세례를 받고 고향 내포에 내려와 신앙을 전하면서부터 시작된 내포교회는 곧 박해에 부닥치게 되었고, 기록상 마지막 순교자를 낸 1889년까지 100여 년 간 공주는 박해의 땅이었다. 신유박해(1801년)부터 시작하여 이존창 루도비코 및 이국승 바오로 등 16명이 이 시기에 참수처형 되었고, 병인박해(1866년) 시기에는 약 1,000여 명의 순교자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공주는 천주교 4대 박해와 함께 100여 년 순교 역사의 현장이다. 공주는 내포와 더불어 천주교 전파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며,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이 있었기에 천주교인들이 가장 많이 처형된 곳이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은 감영으로 이송되었으며, 배교하기를 거부할 경우 사형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처형을 당하였다. 지금까지 자료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순교자는 총 337명으로 이는 한국 최대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118 (금성동)
경주 원성왕릉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경주시역사관광

경주 원성왕릉

원성왕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 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약 23m, 높이 약 6m이다.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의 보호를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 이 돌에 12 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봉분 바로 앞에는 4각 석상이 놓였고 그 앞으로 약 80m 떨어진 지점부터 양 옆으로 돌사자 두 쌍·문인석 한쌍·무인석 한쌍과 무덤을 표시해 주는 화표석(華表石) 한쌍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이 석조물들의 조각수법은 매우 당당하고 치밀하여 신라 조각품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꼽히고 있는데, 특히 힘이 넘치는 모습의 무인석은 서역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페르시아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성왕릉의 무덤제도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둘레돌에 배치된 12 지신상과 같은 세부적인 수법은 신라의 독창적인 것이다. 또한 각종 석물에서 보이는 뛰어난 조각수법은 신라인의 예술적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 : 경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신계입실길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