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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삼태미마을

삼태미 마을은 백운산을 배경으로 하여, 좌우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분지로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산골 오지 마을로서 원주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에 둔덕(언덕)이 많이 있다 하여 달둔으로 불리다가 변화되어 다둔 마을이라 불리고 있다. 시대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구설로는 다둔마을은 옛날부터 금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금광을 운영하던 사업주는 많은 인부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금광 운영으로 들어오는 수익이 고작 금 닷 돈 밖에 안된다 하여 닷 돈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 둔덕(언덕)이 많이 있다 하여 달둔으루 불리다가 변화되어 다둔 마을이라 불리고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귀래면 운계다둔길 111

확인된 방문 정보
운영시간 안내
상시 개방
전화
원주시 관광안내소 033-733-1330
쉬는 날
연중무휴
주차 안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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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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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동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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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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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역사관광

경천묘

경천묘는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에 있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묘우이다. 신라 말 927년에 경순왕은 왕위에 올랐으나 신라는 이미 사직을 본전할 힘이 미약한 상황이었으므로 935년(경순왕 9년) 이미 운명이 다한 신라의 형편을 신하들과 논의한 끝에 고려에 넘기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 후 경순왕은 두루 다니다가 이곳 용화산(현 미륵산)의 빼어남을 보고 그 정상에 올라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그 아래에 학수사와 고자암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경순왕이 돌아가시자 왕을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들이 고자암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받든 것이 영정각의 시작이었다. 고려 중기 이후 전각은 무너지고 인적도 끊어졌다가 조선 초에 이색, 권근 등에 의해 전각이 다시 지어졌다. 숙종 때 원주목사 김필진이 새로 초상화를 그리고 전각을 지어 모셨으나 화재를 당했고, 영조 때 재건되면서 임금이 영정각의 명칭을 경천묘로 바꾸었다. 그 후 경천묘는 다시 불태워졌으나 경순왕이 머물렀던 유래에 따라 신라 문화를 지켜낸 왕의 충정을 기리고자 원주시가 2006년 9월 이곳 미륵산 아래에 경천묘를 복원하였다. 외곽의 진입문은 평삼문으로 되어 있고 사당 진입문은 솟을삼문으로 되어 있는데 당우는 조선후기 익공양식으로 되어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귀래면 미륵산길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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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보 출처

출처 ·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기준일 · 2025. 4. 1.공공누리 제3유형사진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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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한국관광공사 TourAPI공공누리 제3유형변경금지 · 원본 이용조건 유지사진 1 원문 ↗

원천 데이터 기준: 2025.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