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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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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19건

조건 초기화
괴산 정인지 묘소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정인지 묘소

괴산 정인지 묘소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학역재(學易齋) 정인지(1396∼1478)의 묘소이다. 태종 14년(14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 , 등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또한,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로 집현전 직제학, 부제학 등을 지내면서 성삼문, 신숙주, 최항과 함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단종∼성종 연간에는 학덕을 갖춘 정치가로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저서로는 있다. 묘 앞에는 묘비 1기가 서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갓이 없는 높이 250cm, 90cm의 크기이다. 비문은 강희맹이 지었다고 전한다. 묘비 앞으로는 상석과 장명등이 서있고, 좌우로 문관석과 망주석이 서 있다. 묘소 아래에 서거정이 지은 신도비가 있었는데 유실되어 1958년 서거정이 지은 비문을 윤보선이 쓰고 성락서가 제전을 써서 다시 세웠다.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외령로1길 24
괴산 수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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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수월정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인 소재(蘇齋) 노수신이 유배되었을 때 거처하던 곳이다. 노수신(1515-1590)은 중종 38년(1543) 문과에 급제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같이 독서당에 뽑혀 함께 학문을 연구하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로 관직에서 파면되어, 순천·괴산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선조 즉위 후 복직되어 후에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 건물은 노수신이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순천, 진도 등지로 유배되었다가 괴산으로 옮겨져 명종 20년(1565)부터 2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괴산 연하동(煙霞洞)에 있던 적소인데 괴산수력발전소 댐을 만들면서 물에 잠기자 1957년 현 위치에 이건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에 우물마루를 깐 대청 1칸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 각 1칸이 있으며 전면에 툇마루를 둔 간소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후에 건물명을 수월정(水月亭)이라고 하여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산막이옛길 315-38
괴산 송병일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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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송병일 고택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고택으로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이 잘 남아있는 곳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사당채 등이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ㄷ’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중간에 낮은 담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안채 앞에는 ‘一’ 자 형태로 곳간채가 길게 세워져 있다. 3칸 크기의 대문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어 바닥을 다진 후 건물을 세워 튼튼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안채는 작은 문을 거쳐 들어갈 수 있도록 담이 둘러져 있고 옆에서 보면 맞배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쪽에 위치해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또 광채는 일자형으로 곡식은 물론 각종 농기구를 보관하던 장소로 이용이 되었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가 주위로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마당은 깨끗하게 포장을 하여 방문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또 마당 한편에 뜰마루를 설치하여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잘 가꾼 잔디밭과 화초는 고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이 고택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다.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충청감사로 재직 시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우암 송시열의 종손들이 6대에 걸쳐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우암 송시열의 묘가 고택 바로 위에 있기도 하다. 현재는 충북 양로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화양계곡과 선유계곡, 공림사 등이 있다.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청천4길 17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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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본래 노천의 석단(石壇)에 모시어 불공을 드리고 있었던 것을 현재 법당을 지어 그 안에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다. 이 불상은 금박(金箔)을 칠하였으나 원형은 잘 남아있다. 머리에는 낮은 육계(肉?)가 있고 미간의 백호(白毫)와 이목구비가 정연하다. 상호(相好)는 살이 쪘으나 목에 돌린 삼도가 양 귀와 잘 어울리어 준엄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서 복부 앞으로 약간 올렸는데 손바닥에 어떤 물체가 놓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병을 올린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으로 보인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등뒤로 넘겨졌고, 왼쪽 가슴에서 내려진 옷의 주름은 무릎을 덮었는데 양쪽 발바닥이 그 위로 노출되어 있다. 각부의 수법이 둔중하며 금박이 두터워 더욱 둔한 감을 준다. 결가부좌한 좌고는 117cm이다.

⌖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23
괴산 장담 충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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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장담 충신각

이 정문은 장담의 정려로 영조 5년(1729) 청안면 청룡리에 세운 것을 조천리로 이건한 것이다. 장담은 호는 수풍정, 본관은 인동으로 통례 장인계의 후손이다. 영조 4년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벼슬이 없는 처사로서 의병을 일으켜 난을 진압하다 순절하니 그의 동생 장환이 나머지 군사로 적을 토벌하여 복수하였다. 후에 이 사실이 주문되어 충신으로 정려 되고 분무원종훈 1등 공에 록선 되었으며, 정조조에 표충을 명하고 좌승지에 증직 되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며, 현판을 달고 보호책을 둘렀다.

⌖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청안읍내로 151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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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불신만 남아 있는 것을 불두를 찾고, 왼쪽 팔목의 보수를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신체에 비해서 큰 얼굴은 앞으로 숙여져 있으며 옷은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다. 손은 오른손 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끝이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꼽 앞에 놓은 모습이다.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얹어 놓은 앉은 자세는 그 예가 드문 편이다. 평판적이고 굴곡이 없는 네모진 상체, 목에 있는 3개의 주름, 둔감한 옷주름선 등에서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조선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보광산 폐사지에 있던 것을 아래쪽에 새로 지은 보광사 대웅전에 봉안하여 1935년부터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로시동2길 231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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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외사리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거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별다른 조각이 없다.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았던 둥근 받침돌이 2단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 윗면 가운데에 높이 솟아오른 부분을 두어 여기에 깃대를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기둥 안쪽면에는 아래위로 홈을 두어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조각솜씨가 세련되거나 정교하지 못하나 간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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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3.7m, 폭 4.1m, 두께 2.4m의 바위의 한쪽 면에 새긴 높이 3.5m의 마애불이다. 낮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이 좌상은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독특한 수인을 보이고 있다. 굴곡이 없는 사각형적인 신체, 몇 가닥의 간략한 옷주름선, 도식적인 꽃잎의 형태에서 기술의 한계가 엿보이지만 안정감 있는 단아한 체구, 소발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 삼도가 뚜렷한 목, 당당한 어깨와 무릎 등에서 앞 시대의 특징이 엿보이는 수준작으로 평가된다. 얼굴 부분은 대체로 양각이라기보다는 선각에 가까우며, 가슴에 군의대 매듭이 보인다. 이 좌상은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초기 이 지방에서 유행한 좌상양식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좌상을 새긴 바위의 아래쪽 일부가 깨어진 것 외에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관전3길 18
괴산 백운사 승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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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백운사 승탑군

괴산 백운사 승탑군은 모두 5기의 석조승탑을 모아놓은 것이다. 5기의 승탑 중 1955년에 건립한 백운사 2차 중창주인 송운제 스님의 승탑을 제외한 4기의 승탑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이 승탑들은 조선시대 석종형승탑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중 4기는 방형 혹은 가옥형의 특이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주목된다. 옥개석에는 기와골 등이 생략되는 등 후기적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합각마루의 용두장식과 상륜부의 보주 등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모두 화강암재로 이루어진 승탑들은 옛 절터에서 1943년경 현재의 위치인 사찰입구로 이전한 것이다. 백운사는 사역에서 출토되는 명문기와로 볼 때 고려시대 대흥사였으며 조선 영조 연간(1725-1776)에 폐사된 후 1930년대 초 하장우 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994년 이후 금당, 관음전, 요사채 등 상당한 규모의 불사가 진행 중이다.

⌖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사리로소매2길 125-146
괴산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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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동헌

괴산동헌은 조선초기에 창건되어 그 뒤에 여러 번 중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시대 이후 관청건물로 쓰이면서 고쳐져 그 원형을 잃었다. 최근까지도 괴산엽연초생산조합의 관사로 쓰였으나 1996년 보수할 때 동헌건물로 복원되었다. 현재 괴산읍 서부리에 있는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된 8 칸집이며, 구조는 5량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의 건물지반이 주위의 지면보다 50cm 내외의 깊이로 낮아져 있는데 건물신축 당시보다 주위의 지면이 상당 부분 상승했음을 알 수 있으며, 내아 등 다른 건축물은 모두 남아있지 않다.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읍내로2길 65-20
계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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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담서원

계담서원은 순흥 안 씨 선조들을 제향 하는 곳으로 괴산군 감물면 계담마을 중심에 위치해 있다. 1824년(순조 24)에 조선 중기의 문신 안명세 선생을 모시는 계담사로 마을 뒷산에 창건했다. 그 후 1865년(고종 2)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1년에 순흥 안 씨 양도공파 종회 안동준 회장과 안병태 선생 등이 인근 지역의 유림과 전교에게 계담사 자리에 고려의 문신 문정공 안축을 주벽으로 조선 세종조 명신 안문숙공과 중종조 안한림공, 선조조 안사촌공, 선조조 안세마공의 5위 사당을 준공하고 앞 층계에 내삼문을 세우고 그 안에 묘우로 세덕사를 건립하여 계담서원을 복원하여 지금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계담서원은 강서당(학습실)과 학구당(도서관)이 갖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계담서원 내 홍살문을 지나면 좌측에 도서관으로 이용하는 학구당이 있다. 2만 5천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이 언제나 대여 및 열람할 수 있다. 강의실로 쓰이는 강서당에서는 교양과 전통예절, 역사문화, 서예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수강생과 졸업생을 배출해 낸 교육의 장이다.

⌖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
공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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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림사

공림사는 낙영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신라 경문왕때에 자정선사가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다. 자정선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던 중 그 법력과 덕화가 세간에 두루 알려지자 왕이 선사를 국사에 봉하고 입궐을 청하였으나, 세상을 떠나온 사람이 다시 세간으로 나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고 한다. 왕이 선사의 덕화에 감동받아 왕명으로 사원을 창건하고 공림사의 사명을 지어 액자를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기에는 법주사보다 더 흥하였지만, 이후 임진왜란으로 대웅전만 남고 소실되었던 것을 인조 때 중창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공비들이 절에 출몰한다는 이유로 토벌군에 의해 전소되어 폐사되었다. 공림사에는 부도, 사적비, 석조, 일주문 등의 유물이 있으며, 중건 시 세운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감인선원 등 건물이 있다. 공림사 사적비는 1688년에 세운 것으로, 경내의 요사채 동쪽 언덕 아래에 있다. 앞면에는 공림사의 유래와 연력을 비롯해서 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었는데, 시주자, 승려, 주지, 각수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적비는 비문이 완전하여 조선 중기의 사회상과 지역의 동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절 앞에 조성된 느티나무 숲과 절을 품고 있는 웅장하고 흰 바위산인 낙영산은 천년고찰 공림사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괴산로공림길 104
개심사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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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개심사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나무로 된 여래좌상과 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칠성면 두천리의 도덕암에 있던 것을 암자가 폐사되면서 옮겨온 것이다. 괴산읍 서부리에 살던 김경림이 1935년경 현재의 개심사를 신축하면서 옮겨왔다고 전한다. 2구의 각부 조각과 단아한 양식수법은 조선후기의 불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높이 85cm의 목조여래좌상은 한 나무로 조성한 좌상인데 나발의 머리와 상호가 정제되어 원만하며 백호를 갖추고 있다. 양 눈썹과 눈, 입과 입술 등이 정돈되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통견인 법의는 조선시대 특유의 양식으로 손목에서 두껍게 표현되었다. 무릎의 의문도 두툼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들고 왼손을 내려 설법인을 결하고 있다. 관음보살상은 72cm이고 역시 한 나무로 조성한 것인데 머리에는 금속제의 화사한 보관을 쓰고 있다. 상호는 원만하며 이마에 백호가 있고 양미안과 구순 등이 정제되어 목에 돌려진 삼도와 어우러진다. 통견과 법의는 두툼하면서도 유려하여 조선시대 작품으로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근에 홍범식 고택과 괴산향교, 애한정 등 가볼 만한 곳이 있다.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역말길 22
개심사(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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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괴산)

개심사는 괴산읍 동부리에 있는 자그마한 전통사찰로 연혁에 대해서는 현재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보학스님이 1935년에 쓴 를 통해 연혁을 짐작할 뿐이다. 현판 기록에는 여신도인 김경림이 절에 10여 칸의 큰 법당을 시주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사찰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창건에 관한 이야기, 즉 괴산읍 칠성면 두천리에 있던 도덕암이 폐사됨에 따라 현재 개심사터에 전각을 짓고 도덕암에 있던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 불상 2구를 옮겼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이는 1935년의 기록으로 김경림보살이 법당을 시주할 때 개심사에 도덕암 불상 2구가 안치되었으며, 개심사가 새롭게 중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98년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을 요사채를 헐고 그 터에 새로 지은 극락보전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이래 극락보전, 요사채 등의 중창과 축대 및 주차장 설치 등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역말길 22
각연사(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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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연사(괴산)

신라 법흥왕 때에 유일대사가 현재의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 근처에 터를 잡고 절을 지으려 했다. 재목 다듬는 공사를 하는데, 까마귀 떼가 날아들어 쉬지 않고 대팻밥과 나무 부스러기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유일대사는 이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까마귀들을 따라가 보았다. 현재의 각연사 터 연못에 대팻밥이 떨어져 있어 들여다보니 연못 안에 돌부처님 한 분이 계시고, 그 부처님 몸에선 광채가 퍼져 나왔다. 부처님을 뵙고 유일대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 연못 속의 돌부처님을 보고 깨침을 얻었다 하여 깨달을 각(覺), 연못 연(淵) 자를 써 각연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절 주변은 우뚝 솟은 산들이 마치 연꽃이 피어있는 듯 둘러싸여 있다. 각연사에는 비로자나불좌상, 통일대사탑비, 비로전, 대웅전, 통일대사부도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각연길 451
만동묘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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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정비

묘정비는 서원 앞에 세워 서원의 건립취지와 그 서원에 모시는 인물을 찬양하는 내용을 기록해 놓은 비석이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중국 명나라의 임금인 신종과 의종의 제사를 지내는 만동묘 사당에 자리 잡고 있다. 만동묘는 우암 송시열의 가르침에 따라 그의 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나라 의종이 죽은 지 60년이 지난 숙종 30년(1704)에 지은 것이다. 경술국치 이후 1917년 일제가 만동묘의 제사를 금지하고 이를 반대하는 유림을 구속하였으나 유림에서는 춘추계를 조직하여 몰래 제사를 지냈는데 일제는 1937년에 이들을 체포하고 위패와 제구를 불사르고 묘정비를 징으로 쪼아 훼손하더니 1942년 건물을 불사르고 묘정비를 땅에 묻어버렸다. 1942년 이후 매몰되어 있던 것을 광복 후 찾아 다시 세웠다. 묘정비는 연꽃무늬를 새긴 바닥돌 위에 네모난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비신과 옥개석을 얹은 일반형 석비이다. 영조 23년(1747)에 세웠으며, 이재가 글을 짓고, 유척기가 글씨를 썼다. 비문은 일본인들이 고의로 글자 획들을 쪼아 놓아 알아보기가 힘들다. 1999년 우암 송시열 관련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후 2002년부터 2005년 사이 만동묘, 성공문, 묘정비각, 외삼문, 증반청, 존사청을 복원하였다.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88
김시민장군 충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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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민장군 충민사

김시민장군 충민사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충무공 김시민과 문숙공 김제갑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이다. 김시민(1554~1592)의 자는 면오, 본관은 안동으로 선조 11년(1578)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진주판관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진주목사로 사천, 고성, 진해에서 적을 격파하고 영남우도병마절도사에 올랐다. 그 후 진주성 싸움에서 3,800여 명의 군사와 백성으로 2만여 명의 일본군을 물리쳤다. 전투 후 숨어 있던 적군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김시민은 선조 37년(1604) 선무공신 2등에 추록되고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제갑은 자는 순초, 호는 의재, 본관은 안동으로 명종 8년(1553)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14년(1581) 충청도관찰사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원주로 쳐들어오자,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영원산성에 들어가 항쟁하였으나 성이 함락됐고 그의 부인 이 씨, 아들 김시백과 함께 순절하였다. 김시민은 진주 충렬사에 제향 되었으나 고종 3년(1866) 훼철되어 김제갑의 충열사에 합사 하였는데 1976년 묘소를 이곳으로 옮기고 충민사를 세웠다.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6
괴산 김항묵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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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김항묵 고택

괴산 김항묵 고택은 1900년 전후에 지어졌다고(안채는 19세기 초) 추정되는 건물로 공간구성의 아름다움, 외벽 장식의 화려함, 건축 당시의 모든 구조물의 보존 등 전통적 상류주택의 정수를 보여준다. 괴산군 칠성면에 있어서 칠성고택으로도 불린다. 안채는 30여 평 규모의 ㄷ자형 평면으로 남도식 배치 방법을 띠고 있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부엌(찬방 포함)을 두었으며 오른쪽에 건넌방을 놓았다. 안방과 건넌방 앞에 툇마루를 만들었는데 건넌방 앞까지 설치해 통로로 이용한 점이 특이하며, 한쪽 옆면 전체를 부엌으로 크게 만든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바깥채의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좌우로 ㄱ자 건물에 마구간, 곡간 등 행랑채를 두어 외곽을 구성하였으며, 그 안에 외정을 두어 공간을 만들고 내장을 쌓아 안채와 사랑채를 구조하였다. 사랑채에는 ㅗ자 모양으로 안채 쪽에 부엌, 사랑방, 꺾어져서 대청, 작은사랑을 두었는데, 큰 사랑 동쪽에 누마루를 덧달아서 사랑정원을 감상하게 되어있다. 사랑마당은 바깥마당보다 한단 높으며 일각대문으로 연결하여 외부와 차단된 별당형식이다. 사랑채의 합각에 전돌로 새긴 완자무늬를 비롯하여, 광채 벽의 수복무늬와 팔각겹곡두무늬, 담장의 화문담 문양 등이 아름다워 눈여겨볼 만하다. 사랑채 정원에는 원래 초당과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 나머지 건물들은 20세기 초에 지은 것들로 바깥 행랑채는 11칸 크기에 광, 방, 헛간 등이 배치되어 있다. 광채는 6칸으로 양 끝에 온돌을 설치하였다. 집을 지은 기법이 옛 법식을 잘 따르고 있으며 크고 작은 공간구성의 배열 또한 짜임새 있게 갖추고 있는 양반집이다.

⌖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칠성로4길 20
괴산군수 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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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군수 관사

괴산군수 관사는 이 지역 유지인 최부자가 1950년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에도 관사로 사용되고 있다.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근대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관사들은 대부분 일식이나 근대식 건축물이지만, 괴산군수 관사는 전통 한옥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있는 대문간채, ‘-’자형의 사랑채, ‘ㄱ’자형의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 평면의 실 구성 및 배치는 변화하는 생활 방식에 따라 많은 부분이 변경되거나 증축, 개축되었지만, 외관은 예전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양반가의 민가 형태 잘 간직하고 있다.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읍내로13길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