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취향으로 찾기

오늘 갈 곳을 찾아보세요

지역과 관심 분야를 선택해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보세요.

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발견한 장소

공개 콘텐츠 6건

조건 초기화
대포서원(김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대포서원(김포)

대포서원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야산에 위치하였으며, 조선 전기의 대학자이자 문신인 눌재 양성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양성지는 공조판서, 대사헌을 거쳐 홍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당애 최고의 문장가이자 사상가로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섬기며 경륜 있는 정치가로 활약하였다. 조선 시대 책 동문선,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통감 등의 편찬에 기여했으며, 지리와 지도 전문가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홍문관과 규장각의 설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양성지는 1482년에 68세를 일기로 통진현 대포곡에 묻혔다. 1973년 양촌면 대포리에 있는 양성지의 묘소 밑에 사우를 창건하였으며, 그곳 지명을 따서 대포서원이라 했다. 서원은 강학 공간인 동재와 서재, 제향 공간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전학 후묘의 구조이다. 매년 4월 25일 이곳에서는 양성지를 기리는 대제가 치러진다.

⌖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황금로23번길 30-32
금정사(김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금정사(김포)

금정사는 신라 진흥왕(540~576)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고상사’라고만 전하여 왔으나 달리 전해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왕은 자신의 아버지 원종으로 추증하고 어머니 역시 인헌왕후로 추증하여 그들의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고 장릉이라고 하였다. 인근에 있던 고상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장릉을 보호하는 사찰로 재건하면서 ‘봉릉사’라 칭하게 되었다. 1930년에 당시 주지 영송화상이 사찰을 중수하였고, 1938년 주시 성화대사가 다시 한번 크게 중수하였다. 6·25전쟁 이후 사찰을 정녕스님과 고근스님이 대웅전과 범종각을 새로 지었다. 또한 능을 지킨다는 봉릉사에서 절의 뒷산인 금정산과 법당 앞에서 좋은 물맛이 솟아나므로 ‘하늘우물’이라는 의미의 ‘금정사’로 개명하여 김포지역 포교와 수행도량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금정사는 경기도 전통사찰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 경기도 김포시 승가로 125 (풍무동)
김포 수안산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김포 수안산성

김포 수안산성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수안산 정상(147m)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김포의 서북부지역이며, 산 정상부에서는 인천, 강화, 서울지역이 넓게 조망된다. 수안산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현존하는 성벽의 둘레는 685m인데, 군사시설이 설치되면서 훼손이 심한 상태다. 성벽은 석축이며 방형이나 장방형으로 가공된 성돌을 바른층쌓기하여 정교하게 쌓아 올렸다. 도로 개설로 인하여 절단된 구간에서 확인되는 성벽 단면을 보면 내벽과 외벽, 적심부를 모두 돌로 쌓은 편축공법으로 구축되었음이 확인된다. 축성법이나 성내에서 출토된 유물을 고려할 때 수안산성은 6세기 후반 신라에 의하여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이 지역은 고구려 수이홀(首尒忽)이었다. 신라가 점유하고 경덕왕대에 수성현(戍城縣)으로 개칭될 때까지 수이홀현으로 불리었다. 이후 고려 때 수안현으로 바뀌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수안산성은 신라 수이홀현의 치소성으로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수안산성의 원 명칭은 ‘수이홀성’ 으로 불리다가 ‘수성’으로 개칭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안산성 정상부에는 조선시대의 수안산봉수터가 남아있다. 수안산봉수는 강화 대모산성에서 정보를 받아 김포 백석산으로 전달했다. 봉수터는 대부분 훼손되어 5개의 봉돈 중 1개만 남아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
김포 덕포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김포 덕포진

김포 덕포진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소규모 군사기지인 돈대와 포대, 파수청이 있었다. 돈대는 주변 관측이 용이하도록 높은 땅에 설치한 기지이다. 포대의 경우엔 아군의 포격에 편리하도록 구축된 축성물이며, 파수청은 탄약고와 포대에 사용하기 위한 불씨를 보관하고 포병을 지휘하던 곳이다. 강화해협을 통해 수도 한성으로 진입하려는 외세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곳으로,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79년 강화의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축성되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격전지로써, 덕포진 앞의 해협이 매우 좁고 물살이 빨라 손돌목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80년에 행한 발굴조사 결과 7개의 포탄과 2개의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고 주춧돌과 화덕자리를 발견하였다.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로103번길 130
김포 장릉(원종·인헌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김포 장릉(원종·인헌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1623~1649)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왕후 구씨의 능이다. 장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원종, 오른쪽(동쪽)이 인헌왕후의 능이다. 능의 규모와 규격은 조선 중기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고, 능 아래는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 있으며, 조선 21대 영조와 22대 정조가 매년 행차하여 제사를 모시던 건물이며, 능 주위는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출처 : 김포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 경기도 김포시 장릉로 79 (풍무동)
김포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기도 김포시역사관광

김포향교

김포향교는 1127년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다. 향교는 원래 김포 여자종합고등학교가 있는 산기슭에 있었으나 왕의 능을 그곳에 모시게 되면서 김포읍 걸포리로 옮겼다가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은 1960년대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세워져 있다. 그 외에도 재실(齋室)과 출입구인 외삼문과 내삼문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人(사람 인)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며, 대성전과 달리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八(여덟 팔)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명륜당 내부는 일반적으로 좌우 1칸씩 방으로 꾸미는 것과 달리 김포향교에서는 전체를 1칸으로 구성하였다. 대성전과 명륜당만 갖춘 조선 후기 작은 규모의 향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경기도 김포시 북변중로25번길 38 (북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