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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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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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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곡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남곡서원

고려 보문각 대제학과 판도판서의 관직에 오른 영천이씨 영양군 6세 남곡공 휘 석지와 그의 자제인 집현전 제학과 한성부윤이셨던 장자 휘 안우, 직제학 겸 병조판서이신 차자 휘 아직, 이조 정랑이 신 삼자 휘 안유, 군기사부정 휘 현실, 휘 안실 등 6위를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첫 일요일 영천이 씨 남곡공파 후손들이 참 석하여 제사를 올린다. 대강당은 남곡공과 다섯 아드님을 경모하고 학업을 연수하는 곳으로 ‘남곡서원’이라는 현판을 달았으며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협문과 대문이 있으며 이름을 ‘歸堂門(귀당문)’이라 하였다. 경내에는 남곡공의 사적비와 비각, 제학공의 유적비와 비각, 두문동 72현의 행적을 새긴 와비와 창건기문, 남곡서원 표지석 등이 세워져 있다. 사당인 효충사는 5위의 위패를 종 향하였고 신삼문(神三門)을 지어 ‘향례문(享禮門)’이라 하였으며 평소 출입하는 ‘숭의문(숭의문)’과 협문을 세웠다. (출처: 군위군 홈페이지)

⌖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미성3길 66-7
남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남계서원

군위군 군위읍 대북리에 있는 남계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류성룡(1542~1607년)과 이호민(1553~1634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1581년(선조 14) 3월에 창건되었다. 류성룡이 1583년(선조 16)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계서당을 건립하였는데, 1607년 세상을 떠난 뒤 1621년(광해군 13) 후학들이 중수하고 서애의 위패를 모셨으며, 남계서원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1787년(정조 11)에 이호민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전국의 서원을 일제히 정리하고 철폐함에 위패는 하회로 옮겨 모시고 서당으로 격하되었으며 6.25 사변으로 소실되었다. 1990년에 유림의 의해 복원하기로 결의하여 1991년에 복원되었다.

⌖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대북길 9
군위 남천고택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군위 남천고택

남천고택은 군위군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부림 홍씨의 집성촌인 한밤마을(부계면 대율리)에 있으며, 상매택 또는 쌍백당으로 불리어졌다. 부림홍씨는 입향조인 고려 문하사인(門下舍人) 홍로선생이 군위군에 정착하면서 이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었고, 남천고택은 홍노의 10 세손 홍우태의 살림집으로, 이후 맏손자들이 대대로 물려받으며 2명의 과거급제와 1명의 진사를 배출한 집이다. 마을 산세에 따라 북서쪽을 바라보며 ㄷ자형 안채 앞에 ㅡ자형 사랑채가 약간 비켜 위치하고, 안채 뒤 담장 안에는 사당이 있다. 해방 후에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었고, 대문채 위치가 바뀌는 등 변화가 있었다. 여러 차례 고쳐지었으며, 상량문에 따르면 사랑채는 헌종 2년(1836)에 지어진 것이다. 원래 이 가옥은 '홍(鬨)'자형의 독특한 배치를 이루고 있었으나, 해방 후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었고, 대무채가 옮겨지면서 향이 바뀌었다. 안채는 '冂'자형으로 각 방의 배치에서 실용성을 보여준다. 건넛방과 고방 사이에는 헛간을 두어 아궁이를 설치하였고, 상부에는 다락을 만들어 대청에서 사다리로 오르게 하였으며, 다락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여 난간을 두었다. 안채 이외에도 'ㅡ'자형의 사랑채와 사당이 있으며, 그 주위는 자연석 돌담으로 경계를 짓는 등 다른 거주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한밤5길 19
군위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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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향교

향교는 국가에서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기르는 지방 교육 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시나 문장을 짓는 법과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가르쳤고 중국과 조선의 성현에게 제사를 올렸다.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졌으며, 봄가을에 공자에게 석전대제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피운다. 군위 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동부리 마정산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선조 40년(1607) 선방산 남쪽으로 자리를 옮겨 지었다. 그리고 숙종 27년(1701)에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오늘에 이른다. 건물의 배치는 제일 높은 곳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을 두고 그 앞으로 공부하는 건물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학생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서로 마주한다. 명륜당과 마주 보는 앞쪽에 누각인 광풍루와 출입문이 동남향으로 자리한다. 광풍루는 1926년에 세웠고, 서재는 한국전쟁 이후에 다시 지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규모에 ㅅ자형 지붕을 가진 건물이다. 실내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 2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조선 시대 때 향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교관이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았다. (출처 : 군위군 문화관광)

⌖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동서2길 17-28
군위 인각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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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군위 인각사지

군위 인각사지는 군위군 화산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지대에 자리 잡은 절터이다. 인각사는 선덕여왕 시절 원효가 세운 절이라 한다. 그 뒤 고려 때에 크게 고쳐 지었고, 일연이 충렬왕 10년(1284)부터 5년간 이 절에서 머물며 삼국유사를 지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각사는 언제 세워졌는지 문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발굴조사 때 대웅전터로 생각되는 건물이 있던 곳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를 확인하여, 신라 후기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금의 인각사에는 법당과 두 채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중요문화유산으로 인각사 보각국사 탑과 비(보물)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대구광역시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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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역사관광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군위 부계면 남산리에는 신라 소지왕 15년 극달화상이 창건한 삼존석굴이 있다. 국보로 지정된 삼존석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자연동굴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온화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세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가 1970년대 초 학자들에 의해 경주석굴암 보다 1세기 이상 일찍 창건된 것으로 그 모태임이 밝혀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성을 인정받았다. 신라 소지왕 15년(493)에 극단 화상이 창건했으며 석굴은 바닥은 평면이고, 네모 반듯한 형상으로 천장은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 주위는 차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이다. 석굴 내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대제지보살, 관음보살이 있고 본존불의 결가보좌한 모습과 깎은 머리, 얼굴 모습은 풍만하며 거대하고 엄숙한 기품이 있다. 양쪽 귀는 길고, 목은 알맞게 바르게 한 선으로 뻗어 있으며 법의를 걸친 어깨 모습은 섬세하고 우아하다. 어깨는 벌어져 장대한 체구이고, 법의는 간단하면서도 예스러운 무늬로 넓은 무릎을 걸쳐 받침 자리 전면을 덮었다. 고구려에서 전해진 신라불교가 팔공산 자락에서 꽃 피워지고 신라 왕도 경주로 전해져 결실을 맺었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는 이곳에서 거대한 바위산 절벽을 이루었고, 이 절벽 허리 20m 높이에 남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삼존불상을 봉안하였으니 섬존석굴이라 한다.

⌖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산4길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