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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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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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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용산성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독용산성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인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있다. 산성의 둘레는 7.7㎞(높이 2.5m, 폭 1.5m)에 이르며 산성 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 공간이 넓어 장기 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이다.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500년전 성산가야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원년(1675년) 관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여,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있었으며,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발굴된 군기고에서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성주군에서는 1997년부터 성곽을 복원할 계획을 세워 훼손된 성곽의 일부와 아치만이 남아 있던 동문을 보수하여 원형으로 복원하였으며 성내에 관아터와 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독용산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이원정이 1677년에 편찬한 경산지를 통해 나타난다. 그 책에 따르면 합천과 거창의 군사가 배치되었고 성안에는 3개의 계곡, 객사, 군기고 등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정중휘가 개축할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강산면 사더래길 144
덕천서원(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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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덕천서원(성주)

덕천서원은 1794년 김관석, 김천택, 김주, 김즙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서원으로 의성 김씨 집성촌인 윤동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의성 김씨 4인에 대한 배향 및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으나 이후 복원을 시작해 2019년에 완성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신문 ,중정당, 양진헌, 험효료, 전사청, 고사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덕암서원(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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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덕암서원(성주)

이 서원은 경산이씨(京山李氏)의 3현(賢) 삼익재(三益齋) 이천배(李天培)·백천(白川) 이천봉(李天封)·학가재(學稼齋) 이주(李)를 존모(尊慕)하여 현종 13년(1672)에 사림에서 덕암사(德巖祠)를 건립한 것에서 연유한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고종 13년(1876) 덕암서당(德巖書堂)으로 중건하였다. 지금의 서원 명칭은 1998년 정부와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묘우(廟宇), 내삼문, 동·서재 등을 건립하여 이듬해에 개칭한 것이다. 서원에 제향 된 이천배와 이천봉은 형제 사이로 함께 한강(寒岡) 정구(鄭逑)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천봉은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성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이주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백인당을 세워 후진교육에 힘쓰는 한편 동규(洞規)·향약(鄕約)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서원의 배치구성은 토석담을 두른 장방형 곽 전면에 서원을 출입하는 대문에 해당하는 솟을삼문인 건명문(建明門)이 있고, 북쪽에 강당과 그 앞으로 동·서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서당 뒤편에는 별도의 곽 내에 내삼문과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규모에 중앙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2통 칸 온돌방, 우측에 온돌방 1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로 되어 있다. 동·서재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규모에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며, 사당(祠堂)은 정면 3칸·측면 1칸 반의 규모로 되어 있다. (출처: 성주군 문화관광)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유월3길 29-72
감응사(성주)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북도 성주군역사관광

감응사(성주)

감응사는 신라 애장왕(재위 800~808) 3년에 건립한 사찰이다.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는 성주 한개마을의 뒤쪽 영취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사찰의 창건과 관련해서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신라 제40대 애장왕이 늘그막에 왕자를 낳았는데 날 때부터 눈이 나빠 앞을 볼 수 없었다.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는데, 어느 날 꿈에 나타난 스님의 말을 듣고 독수리가 날아가 앉은 이곳의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게 하자 왕자가 앞을 볼 수 있었다 한다. 애장왕은 이를 부처의 은덕으로 여겨 승려 체징으로 하여금 사찰을 건립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한 사찰이 있는 산 이름을 신령스러운 독수리산이라는 뜻에서 영취산이라 부르게 하였다. 처음 절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가 후에 감응암, 감응사라 개칭하였다. 감응사는 창건 후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숙종 2년(1675)에 중창하였고, 그 후로도 영·정조대에 중수가 있었다. 지금의 불우는 1970년 주지였던 평타스님이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세워진 것들이다. 대웅전 뒤편 암벽 하단에는 약수가 솟는 옥류정이 있고, 주위 암벽에는 각자가 많이 새겨져 있다. 약수 상단에 부조의 용왕상이 새겨져 있으며, 여타 사찰에서 삼성각에 칠성신, 독성, 산신을 모시는데 반해 감응사에서는 독성존자 대신에 용왕신을 모시고 있다.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1길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