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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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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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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덕사(벽제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모덕사(벽제서원)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421년(세종 3)에는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가 벽골제를 없애고 그것을 토지로 돌려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박초에 의해 무산되었다. 벽골제 사적비문 역시 박초가 지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강당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입석동
만경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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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만경향교

향교는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만경향교는 1407년(태종 7)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20년(광해군 12)에 화재로 말미암아 소실되었으며, 1637년에 현재의 동문 내리에 이전 건립하여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륜당은 1637년에 창건한 것으로 현재는 노휴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1975년 보수하였다. 이곳에는 설총, 안향, 최치원, 정몽주 등을 배향하고 있다. 만경향교 안에는 대성전, 명륜당 그리고 동재, 서재가 위치하고, 충효관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동재와 서재는 각각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두내산1길 25-10
두곡서원(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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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두곡서원(김제)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이다. 두곡서원은 1634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몽주, 강원기, 함부림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2년에 훼철되었다. 1901년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오다가 197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세 칸의 사우, 신문, 네 칸의 영모재, 숭의문 등이 있으며, 사우에는 정몽주와 강원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영모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된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9길 31
남산서원(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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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역사관광

남산서원(김제)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소재에 위치한 남산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로 활약한 유지화(柳志和)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다. 그 후 순조 때 남궁제(南宮濟)를 배향했다. 1870년(고종 7)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 사우인 경의사, 산문인 경의문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경의사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성덕면 만경로 600-92
낙양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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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사(김제)

낙양사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여산송씨 집성촌인 불로마을에 있는 송정기, 송정구, 송정모 삼형제를 모신 사당이다. 죽계 송정기는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지조가 단결하여 1797년(정조 21) 정려를 받았다. 벽계 송정구는 송정기의 가운데 동생으로 형을 엄부와 같이 섬기며 효로 집안을 다스리고 예로 가르치니 향인이 흠모하여 송정기와 함께 육송사에 배향하다가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송정모는 송정기의 막내 동생으로 나서부터 성품이 순화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송시열이 덕원으로 귀양 가자 항소한 뒤로는 두문분출하고 과정에 나아갈 뜻을 끊음에 향리 사람들이 감복하여 사림들이 사당에 배향하였다. 1675년(숙종 1) 금구현 동도면 상학리(현재의 금구면 금구리)에 학천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금구현 수류면 거야(현재의 금구면 삼봉리 거야마을)에 있는 육송사로 옮겨 모셨다. 그런데 1869년(고종 6) 육송사가 철폐됨에 따라 1910년(순조 4)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낙양사라 하여 송정기 삼형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4길 87-3
금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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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교회

1908년 전주선 교부의 데이트(Lews Boyd Tate) 선교사가 지은 한옥교회이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의 사기(事記)에 의하면, 처음의 교회는 1905년에 5칸으로 지었으나,190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금산교회 옆으로 1988년에 새로 지은 교회본당과 사택이 들어서 있다. 건물은 남북방향으로 5칸이며, 여기에서 동쪽으로 2칸을 덧붙여 뒤집힌ㄱ자 형태를 이룬다.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으로 남자석, 동쪽으로 여자석을 분리하여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 초기 교회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구분이라는 큰 문제를 ㄱ자형 건물을 지어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보게 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서양식교회의 특징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이 교회는 초기 교회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로, 각 구조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로 지정·보존하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07
금구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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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향교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금구향교는 1390년에 창건되어 1404년에 중창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5년에 중건하였다가 167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그 뒤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소장 전적 등이 대부분 유실되며 쇠락하였으나, 1954년에 지역 유림이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지방 청소년들의 교육기관으로 활용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만화루는 2층 누각 형식의 건물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대성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규모이며 맞배지붕이다. 주변에는 남강정사, 선암저수지, 대율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3길 12
관응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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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사(김제)

관응사는 김제에서 전주로 가는 길에 있는 금천호수 인근의 대한불교 관음종 소속 사찰이다. 속칭 각시골이라 불리는 관응사 절터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첩첩산중으로 한 각시가 들어가 이를 기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 보니 현재의 절터에서 사라져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이곳의 관음보살에게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하며 이 관응사 터를 각시골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이러한 전설이 전해져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다. 1936년 조그만 암자로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미상이다. 1985년경 진성 정공진이 주지로 부임해 대웅전과 요사, 삼성각, 미륵불을 봉안하고 사찰의 면모를 일신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선비로 1354-42
귀신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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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사(김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귀신사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0가 중창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구순사로 불렸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부분적인 중수와 대대적인 중창을 거쳐 1934년에는 대적광전 등을 중수한 뒤 다시 귀신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귀신사는 원래 금산사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큰 절로 고려 말에는 쳐들어온 왜구들 300여 명이 주둔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쇠퇴하여 작고 소담한 사찰로 남았다. 귀신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대적광전과 삼층석탑과 부도, 석수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의 미를 나타내는 빼어난 작품이다. 부도는 청도원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는데 전성기에는 이 부도가 있는 곳까지가 절의 경내였음을 알 수 있다. 귀신산 석수는 독특한 양식으로 앉아 있는 석수의 등 위 중간에 남근 같은 석주가 당당하게 꽂혀 있다. 불교사상과 남근숭배사상이 어우러진 특이한 형태의 석조물로, 터를 누르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과, 백제왕실이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