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취향으로 찾기

오늘 갈 곳을 찾아보세요

지역과 관심 분야를 선택해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보세요.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발견한 장소

공개 콘텐츠 12건

조건 초기화
명곡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명곡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명곡서원은 해주 최 씨 문중을 중심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당초 장흥에 있었으나 1984년 군동 신기마을로 옮겨왔다. 성재 최충, 송탄 최유선, 동산 최자, 강호 최만리, 호은 최우 등 5위의 성현이 모셔져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며 신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명곡사란 액자가 걸려있다. 부속건물로 내삼문, 문간채, 고직사 등이 있다. 신기마을은 주변에 해주 최 씨 후손들이 학습하던 강당이 보존되어 있고 해주 최씨의 세거 마을이다. 인근에 동양 최대 아미타불 불상을 볼 수는 남미륵사가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신기길 63
남강서원(강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남강서원(강진)

남강서원은 남강사라고도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 우암 송시열(1607~1689)과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자(1130~1200), 송시열의 문인인 손재 박광일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남강서원의 유래는 송시열이 기사환국으로 인해 숙종 15년(1689)에 제주도로 유배 가게 되었는데 그때 강진의 성자포(현 남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려다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잠시 근처의 만덕산 백련사에 머물며 유생들에게 강론을 하였다고 한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순조 3년(1803)에 세운 것이 바로 남강서원이다. 당시 강진의 향유들이 도관찰사였던 한용구의 승인을 얻어 정읍 노암서원에 모셔져 있던 송시열의 영정을 백련사로 옮겨 봉안하고, 영당의 액호를 남강이라 하였는데 백련사의 영당이 남강서원의 전신이다. 헌종 4년(1838) 향림들의 발의로 사당에 주자를 정위봉향 하였으며, 1901년 현재의 위치에 신단을 설단 하여 주자와 송시열을 향사하는 한편 어필각을 건립하였고, 후에 박광일을 추배 하였다. 남강서원 왼편에 구 어필각이 있고, 그 앞으로 새로운 어필각이 신축되었다. 어필각에는 유형문화유산인 강진남강사주자갈필목판일괄이 소장되어 있다. 주자갈필목판은 순조 9년(1809)에 송시열이 제주로 유배 갈 때 배를 탔었던 성자포 앞바다로 떠내려 온 궤 안에 있던 것이라 한다. 당시 강진 현감이 이 궤를 감영으로 옮기려 했으나 궤를 수송하던 사람과 말이 남강사(남강서원) 앞에서 전복하여 더 이상 옮길 수 없게 되자 그 목판을 서원에 소장하게 된 것이라 한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28-2
금곡사(강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금곡사(강진)

금곡사는 신라 말 밀봉대사가 창건하여 성문사라 칭하다가 이 주위에 금광이 있다 하여 후에 금곡사라 개칭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다. 이후 폐사와 중창을 반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찰 옆 개울가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금광이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금곡사에는 백제 계통의 고려 양식인 보물 제829호 삼층석탑이 있는데 1985년 복원작업을 하던 중 석가세존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이 탑은 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으로 그 형식 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 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는 약간의 백제 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초반기로 추정된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의 양이 일정한 약수터에서 풀로 만든 대롱으로 물을 빨아먹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왜구를 격파한 이 고장 출신 김억추장군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금곡사로 가는 군동면 호계리에서 작천면 군자리에 이르는 19㎞ 구간은 연분홍빛 벚꽃터널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금곡사 벚꽃 길은 1992년부터 2년에 걸쳐 강진군 공무원들이 휴일을 반납해가며 직접 만든 곳이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금산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금산원

금산원은 1842년에 창건한 언양 김 씨 원사로 감성재라 하고 위열 김취려를 주벽으로 김자수와 김성진을 배향, 삼위를 모셨다. 운영이 어려운 나주의 정열사를 1940년 경 이곳으로 옮겨 정렬사로 개명하고 김천일을 주벽으로 김자수, 김상건 삼위를 배향했다. 그 뒤 1964년 정렬사가 다시 나주로 옮겨지자 김취려를 주벽으로 모시고 김자수, 김천일, 김성진, 김상건 오위를 향사하면서 금산원으로 액호를 바꾸고 건물이 퇴락됨에 따라 1981년 2차례 중수하였다. 건물은 4동으로 강당, 신실, 내삼문, 외삼문이 있다. 김취려는 고려의 명장으로 박달제 등에서 거란군을 물리쳐 영남의 지킨 공훈을 남겼으며 현 국무총리격인 문화시중을 역임했고, 김자수는 문과에 급제 홍문관 응교 및 강진현감과 강원감사직을 끝으로 창평의 월봉산에 상월정을 건립 후학을 양성했다. 김천일는 나주에서 태어나고 이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의병을 일으켜 창의사의 군호를 받았다. 진주성에서 아들 상건과 함께 순절하였다. 김성진은 유년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임란이 일어나자 4종 형인 김천일 막하에서 아들 전, 홍과 함께 군량미를 조달 보급하였다. 김상건은 김천일 장남으로 임란 때 종군하여 진주산성 싸움에서 부자가 같이 순절하니 충효의 가문을 이루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동관덕길 81
군자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군자서원

군자서원은 1820년에 도내 유림과 후손들의 발의로 삼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양산김씨의 사우이다. 강진에 처음 입향한 분은 강진읍 송현에 거주한 김자정이며, 그의 아들 김명규가 작천으로 이거 하였다. 창건 이후 향사의 예로 제향 되었으며, 1824년 강당을 신축하였으나 1880년 훼철당하였다. 1962년 신실 및 내삼문 강당을 재건하고, 1993 외삼문을 신축하였으며, 2009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작천면 행정길 65-1
고성사(강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고성사(강진)

고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에 1211년(고려 희종 7)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스님이 인근에 있는 만덕산 백련사(白蓮寺)를 중창할 때 함께 지은 말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1799년(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에는 고성암(高聲庵)이라 되어 있다. 특히 1805년(순조 5) 가을 강진군에 귀양 온 정약용(丁若鏞)이 머물며 혜장(惠藏)선사와 교우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5년 다산정약용은 주역 연구 자료가 담긴 경함을 고성사(高聲寺)로 옮겼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요사가 남아 있다. 이 중 대웅전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후불탱화로는 영산회상도와 지장탱화, 감로탱화, 신중탱화가 있다. 지장탱화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33년 제작된 것이다. 칠성각에는 4점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고성사 목조삼존불상중에 한 분은 십여 년 전, 일본으로 팔려갈 뻔한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고성길 260
강진 백운동별서정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진 백운동별서정원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聃老, 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영(造營)한 원림으로,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루며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별서이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월출산 능선의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보이는 이곳에 전형적인 호남전통원림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마침 이곳길도 해남부터 시작하는 삼남길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다산선생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는데 이를 근거로 호남의 유서깊은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하게 되었다. 이담로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아홉 굽이 유상곡수를 만들고 정자를 앉혔는데,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계곡에 눈이 머물다가 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백운동 계곡은 강진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 등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으며 조선중기 선비들의 은거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출처:강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성전면 월하안운길 100-63
강덕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덕사

강덕사는 강덕서원이라고도 한다. 조선 헌종 12년(1846)에 후손들의 협력으로 시조 장경공 최사전을 비롯하여 최표, 최부, 최극충을 배향하고 있다. 최사전은 어려서부터 무술에 정통하여 여러 대에 걸쳐 임금을 섬기던 중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여 나라를 보존시켜 강진의 명예를 드높인 인물이다. 경내에는 외삼문, 내삼문, 강덕서원, 효인재, 강덕사 묘정비, 위패를 모시는 강덕사, 관세위, 망예위 등이 현존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5일과 10월 15일에 제를 올리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호라길 199-39
강진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진향교

강진향교의 확실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윤탁이 대성전에 은행나무를 심도록 권장하였다는 기록과 현재의 은행나무 나이를 짐작하여 조선 전기인 1400년대로 추정된다. 강진향교 역시 다른 건물과 같이 임진왜란의 병화를 입었으며, 광해군 5년(1613)에 이 지역출신 입방자들이 의금을 내고 군수 정인의 도움을 받아 사마재를 건립하였고, 그 후 1675년에 본격적으로 향교를 건립하였다. 1858년에는 군수 심의찬이 향교를 중수, 1901년과 1919년에는 대성전을 중수, 1935년에 명륜당을 중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동재, 서재, 명륜당 등이 있다. 앞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을 두고, 뒤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제사공간을 두고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 안에는 5성, 송조 4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대성전의 좌측에는 수령 약 400년 된 은행목이 한 그루 있으며, 대성전에 들어가는 협문이 좌우에 있다. 건축 형식을 보면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이며, 지붕은 겹처마로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다.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 1명과 장의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40
강진마도진만호성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진마도진만호성지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마도진 만호성은 石城으로 둘레가 890자(尺), 높이가 12 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서북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다. 성벽의 총 연장 길이는 730m 정도이고, 방형 및 장방형의 대형 석재로 기단부를 구축하고 상부로 올라갈수록 30×20㎝ 정도의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내탁법(內託法)에 의해 쌓아 올렸으며, 현존 서북벽은 길이 220m, 높이 2.3∼4.7m, 상부폭 1m, 하부폭 2.5m이다. 마도진이 있는 마량은 우리나라 서남해에 위치하여 강진, 장흥, 해남, 영암으로 이어지며 제주도와 연결되는 요충지이다. 마도진(馬島鎭) 만호성지(萬戶城址)는 마량에 들어서는 도로변(23번 지방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속칭 「말머리(馬頭)」라 불리는 마량의 배산(背山)을 뒤로하고 원마(元馬) 마을의 서북쪽에 장방형의 형태로 남아있는 마도진성(馬島鎭城)은 군항(軍港)으로써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상의 전면으로는 고금도·까막섬·노리묵 등이 이·삼중으로 외호(外護) 하고 있으며 육지 쪽으로는 말머리산의 능선을 휘감으며 자리 잡고 있어 외부로부터 은폐·엄폐되어 있다. 마도진성(馬島鎭城)은 남쪽은 낮고 북쪽이 높은 구릉상에 축조하였는데 현재는 서북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유구를 통한 성벽(城壁)의 총 연장 길이는 730m 정도이며, 방형 및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내탁법(內托法)에 의해 쌓아 올렸다. 현존 서북벽은 길이 220m, 높이 2.3∼4.7m, 상부(上部) 폭(幅) 1m, 하부(下部) 폭(幅) 2.5m 정도이다. 그 외 동·서·남·벽은 마량지서 등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현재는 기단부 만이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기타 부속시설로는 북문지(北門址)의 기단석만이 확인된다. 문지(門址)는 폭 4.3m, 높이 1.6m로 근래 도로 확장사업 계획에 따라 곧 파괴될 위험에 처해있다. 한편 서북벽 근처에는 행만호(行萬戶) 이종호(李鍾浩)의 선정비가 1기가 남아 있는데 규모는 높이 130㎝, 폭 50㎝, 두께 15㎝이다. * 규모 - 28필지 4,237㎡ * 시대 - 조선시대(1499년경 축성)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

강진 병영 마을은 옛 병마절도사의 영(營)이란 명칭에서 유래된 마을로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주위의 수인산, 성자산, 옥녀봉, 별락산, 화방산 등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 형태의 천연 요새로, 일찍이 전라도의 군수권을 통괄했던 병영성이 이곳에 들어섰으며 빠른 상업의 발달을 이룬 곳이다. 이곳에는 사적으로 지정된 ‘병영 성지’가 남아있어 그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병영 마을의 담장은 전체적으로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으로 하부는 비교적 큰 화강석을, 중단 이후로는 어른 주먹 크기 정도의 비교적 작은 돌을 사용하여 쌓아 올렸다. 담 위에는 기와로 지붕 처리를 하였다. 또한 담장 역할을 하는 부속채도 담장과 같은 높이와 방식으로 축조되어 서로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담장의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이고 이는 병영 마을이라는 특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마을 안길이 직선형으로 되어있어 담장이 한층 정연해 보인다. 특히, 하멜 일행이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간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로부터 습득한 것으로 전해오는 담쌓기 방식인, 중단 위쪽으로 얇은 돌을 약 15° 정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다음층에는 다시 엇갈려 쌓는 일종의 빗살 무늬 형식(이곳에서는 이 형식을 ‘하멜식 담쌓기’라 부른다) 은 타 지방과 다른 독특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
금강사(강진)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강진군역사관광

금강사(강진)

금강사는 이순신 장군을 추향하고, 강진 출신 증병조판서 김억추 장군을 배향한 사우다. 사우 뒤편으로는 송림이 우거져 있는 등 비교적 경관이 양호하다. 1800년(정조 24년) 도내 유림들의 발의로 강진현 금강촌에 금강사를 창건하고 임진왜란 때 공이 많은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현무공 김억추(1548∼1618) 장군을 향사하였다. 이 사우에 이순신 장군을 주정으로 모시고 김억추를 배정한 것은 김억추가 임진왜란 때 전라우수영사가 되어 이순신을 도와 명량대첩을 성공하는 등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당과 강당 그리고 재명당, 동재, 내삼문, 외삼문 등으로 구성된 금강사는 사당과 강당이 약 45m의 거리를 두고 동서 쪽에 별도로 위치하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며, 이밖에 도유실, 고직사, 내삼문 등의 건물이 있다. 그리고 내삼문 앞 마당에는 좌측 충무공 이순신과 우측 현무공 김억추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이순신 동상 앞에는 사적비가 있고 그 옆 원사 건립에 관한 내력비가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효자길 3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