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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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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8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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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역사관광

몽고정

고려 말 충렬왕 7년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동행성을 두었으나 일본 정벌이 2차에 걸쳐 실패로 돌아간 그해 10월, 환주산(현, 자산동 무학초등학교 뒤쪽 마산시립박물관 일대)에 둔진을 설치하였다. 몽고정은 이곳의 둔진군이 용수를 쓰기 위해 만들었던 우물로 추정되고 있다. [몽고정 맷돌]이라고 불리는 지름 1.4m가량의 원방형의 돌이 몽고정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차륜이라는 설도 있으나, 맷돌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물 곁의 석비에 몽고정이라 써서 세워둔 것은 1932년 마산 고적 보존회(일본인 고적 단체)가 멸시적 감정에서 명명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고려정이라 불렸을 것이다. 몽고정은 지금은 나무 덮개가 덮여 있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인근 주민들이 사용하는 공동 생활용수이자, 물맛이 좋아 간장 공장에서도 사용되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목계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목계서원

목계서원은 조선 숙종 때 사림이 김담(金湛)과 이조(李晁)를 두능서원(杜陵書院)에서 봉 향하다가 서원이 훼철되자 1778년(정조 2)에 유림들이 목계서원을 지어 다시 봉향 하였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된 것을 1883년(고종 20)에 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3년에 완전히 복원되었다. 이 서원을 ‘목계정사(牧溪精舍)’로도 부르는 것은 훼철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현재 편액은 목계정사(牧溪精舍)이고 건물 한 채인 재실만 있다.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석대로525번길 40-13
모은암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모은암

모은암의 전설은 지리산 하동 화개의 칠불암 전설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곳이다. 김해시 상동면과 생림면의 경계에 위치한 무척산은 수로왕과 가락국 불교 이야기, 기묘한 바위, 산정호수인 천지(天池)가 있어 더욱 신비스러운 산이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동면의 기암절벽 아래에 백운암이 있으며 반대쪽인 서면에 모은암이 자리하고 있다. 무척산은 김해에서 밀량 삼량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데, 생림면 생철리 산불감시초소 옆 간이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석굴암을 거쳐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30분 남짓 오르면 도로가 끝나는 지점 바로 위 모은암이 나온다. 가야 불교를 일으킨 가야국은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세운 고대국가이다. 김수로왕은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온 허황옥과 결혼, 열 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 일곱왕자가 성불, 지리산의 칠불사를 창건하게 됐다. 지리산의 칠불사가 왕족의 해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김해 무척산의 모은암은 왕가의 번성을 상징하는 자연 남근석이 암자 바로 옆에 우뚝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모은암 경내 동굴에도 남근을 상징하는 닝가가 모셔져 있다.

⌖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마사로 36-228
마산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역사관광

마산향교

마산향교는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에 있으며 1414년(태종 14) 진해현이 설치되면서 진해향교로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방화로 소실되었다. 인조 때 재건하였으나 1920년 일제의 강압으로 철폐되었으나 1990년에 창원군 향교로 복원되었고 현재의 건물도 재건되었다. 입구의 외삼문은 맞배지붕을 올린 솟을삼문이며 학문을 강의하는 명륜당은 정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자를 포함한 5성과 중국과 우리나라 20현을 향사하고 있다. 향교의 바깥에는 하마비가 있고, 1990년에 세워진 문선왕 신위 매안비가 있다. 마산향교 건물의 배치는 풍화루, 명륜당, 대성전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일반적인 전학후묘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각 건물은 대성전으로 이르면서 대지가 한 층씩 상승하도록 기획하여 문묘의 신위에 대한 위엄을 중시한 배려를 엿보게 한다. 마산 향교의 건물들은 여러 차례의 중수와 재건을 거듭하면서 고유의 격식은 일부 훼손되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1길 86
두방사(두방암)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두방사(두방암)

신라 49대 헌강왕 4년(878년)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선조 36년(1603년) 계형대사가 중건하고 불법을 계승하여 오다가 1946년 청담대사가 수도장의 조건을 구비하고 시설을 개수, 1962년 청곡사 암자에서 해인사 말사로 등록하였다. 1963년 청웅스님이 대웅전을, 1970년 법령스님이 요사체 보수, 1973년 성범 스님이 진입로 1.5㎞를 포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주위에는 울창한 숲과 차 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절부터 아랫마을까지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두방사 뒤쪽을 보면 빽빽한 활엽수림이 있는 월아산이 마치 절을 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다층석탑을 볼 수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동부로781번길 267
두릉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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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역사관광

두릉서원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음촌마을에서 내곡으로 가는 길옆에 두릉서원(杜陵書院)이 있는데 이는 조선 순조 32년 (1832)에 고향을 생각하는 사림(士林)들이 안민(安慜), 안희(安憙), 안신갑(安信甲) 세분을 봉 향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고종 5년(1868)에 철폐된 후 1930년에 중건(重建)을 거쳐 1984년 복원(復元) 하였다.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두곡길 145
두곡서원(창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역사관광

두곡서원(창원)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척동에 위치한 두곡서원은 현종 12년(1864)에 창건하였고 고종 4년(1867에) 옮겨 세웠으며 통일신라시대 학자 최치원 선생을 배향하는 곳이다. 최치원 선생은 9세기 통일신라의 학자로 중국 당나라에서 토황소격문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불교·도교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불·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으며 수많은 시문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곡길 54 (두척동)
도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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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도천서원

도천서원은 문익점(1329∼1398)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나라에서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익점 선생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다 문신으로 우리나라에 목화를 처음 들여온 것으로 유명하다. 서원은 조선 세조 7년(1461)에 세웠으며, 조선 정조 11년(1787)에 ‘도천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았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75년에 사당인 삼우사를 짓고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서원 내의 신안사재는 조선 명종 6년(1551)에 지은 것이며, 현재 건물은 조선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서원의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공간인 강당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앞쪽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삼우사가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되어있다. 또한 출입구인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으며, 제사 때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신안사재가 있다. 신안사재는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지붕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의 양쪽 끝 한 칸씩 넓은 마루를 두었다.

⌖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문익점로 34-32
도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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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도연서원

고성군의 도연서원은 허기, 허천수, 허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조선 숙종 13년(1687)에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1920년에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강당, 사당인 추원사, 돈화실, 명성실, 내삼문, 외삼문인 일원문이 있다. 강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강당 뒤쪽 높은 곳에 있는 추원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돈화실과 명성실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정문인 일원문은 앞면 3칸 솟을대문으로 가운데 1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그 윗부분에 난간을 설치한 누대를 둔 것이 특이하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도전4길 152-41
도성암(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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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역사관광

도성암(창녕)

도성암은 화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의 고승 지월선사가 현덕왕 2년(810)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그 후의 연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어 터만 남아 있다가, 화왕산 자하골의 한 암자가 풍수지리가 나쁜 곳에 자리한 탓에 산 아래 주민들에게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여 이를 막기 위해 재건립되었다 한다. 종각을 겸하고 있는 보제루 누각 아래의 계단을 지나면 경내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오른쪽에 칠성각으로 쓰였던 요사채, 그 옆 축대 위에 삼성각이 있다. 도성암은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어 창녕의 주산이자 절경으로 잘 알려진 화왕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어 현묘한 자성을 찾는 염불기도 영험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웅전에 있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자하곡길 147
도봉서원(창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역사관광

도봉서원(창원)

도봉서원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명윤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13년(숙종 39)에 사당을 짓고 1775년(영조 51) 도봉사를 건립하였으며 1844년(헌종 10) 도봉서원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고 1887년(고종 24)에 다시 별묘와 재실을 중건하여 1974년에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별묘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장도(쌍검) 등 동산공 김명윤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도봉서원 내에는 충현사·신문·강당·동재·외문 등이 있고 충현사에는 김명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으며 강당은 여러 행사와 화합에 사용된다. 향사는 매년 3월 13일 한 차례만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길16번길 5-11
도남서원(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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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역사관광

도남서원(창원)

창원시 동급 화양리에 위치한 도남서원은 김귀의 유덕을 기리는 김해김씨 문중서원이다. 현대에 세워진 문중서원으로서 향사나 강학보다 후손의 돈목을 더 큰 목적으로 삼으면서 그 구심점을 선조에게서 찾았다. 도남서원은 문중의 주장에 따르면 사우의 창건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래전에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사원 복원은 1976년 강당과 함께 건립·복원되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서원의 강학 기능이 중단된 현대에 건립된 것으로 전통적인 서원 건물의 배치와 구조는 따르지 않았다. 정문인 불사문은 1칸 규모의 솟을대문 형식이며, 일반 가옥의 대문과 같다. 강당은 정면 4칸에 유리문을 덧댄 현대식 건물이다. 사당의 정문인 유정문 역시 일반 가옥 출입문과 유사하다. 구봉사는 정면 3칸으로 이루어졌다. 제사는 후손들에 의해 받들어지며, 향사일은 3월 7일이다.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동읍로401번길 68
도곡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도곡서원

도곡서원은 1701년(숙종 27) 함양 지역 유림이 함양 출신 선현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조승숙, 정복주, 노숙동, 노우명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였다. 그 뒤 노사예와 정수민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된 뒤, 2001년에 다시 복원하였을 때는 조선 후기 학자 정덕하를 추가 배향하였다. 도곡서원의 강당인 수성당(정면 4칸의 팔작지붕), 사우인 경덕사, 양재에 해당하는 존양재와 진수재가 갖추어져 있다. 도곡서원은 구천서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함양의 유력 문중의 인물들을 배향함으로써 문중 간의 연합을 도모한 서원이라는 특징이 있다.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병곡지곡로 859
덕연서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함안군역사관광

덕연서원

신재 주세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주세붕(1495∼1554)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주로 홍문관과 성균관 등 학문기관의 관직을 지냈으며, 지방관으로 있을 때에는 교학진흥을 통한 교화에 힘썼다. 덕연서원은 선조 24년(1591)에 ‘동림서원’으로 세웠으나, 현종 원년(1660)에 칠원현 남고에 ‘남고서원’으로 새로 세웠다. 숙종 2년(1676)에는 ‘덕연’이란 이름을 나라로부터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1964년에 다시 세웠다. 서원 안에 있는 건물로는 강당, 존덕사, 덕연별사가 있다. 교육 공간인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존덕사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주세붕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존덕사 오른쪽에 위치한 덕연별사에는 삼칠선현(三漆先賢)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서원에서는 해마다 3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예용3길 12-2
덕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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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덕양전

덕양전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자리 잡고 있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시대 사당으로 전구형왕릉의 재실이다. 금관가야 제10대 왕 양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향례와 삭망향례를 드리고 있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양왕은 금관가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 수정궁으로 옮겨와 5년 뒤 죽었다. 그 후 향례를 계속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는데 1798년 심릉후 능하에 능침을 짓고 다시 향례를 올렸다. 1898년 승선전이 사액 됨과 동시에 덕양전으로 개칭하였다. 1930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고 1991년 중건하였다.

⌖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로 995
덕원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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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역사관광

덕원서원

덕원서원은 세조(재위 1455~1468) 때 이시애의 난을 맞아 당시 선봉장으로 활약하다가 장렬히 전사한 강열공 차운력, 문절공 차원부, 문목공 차포온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덕원서원은 숙종 18년(1692) 세웠는데, 처음에는 호남 승평에 세워 오천서원이라 했다. 그 뒤 지방 유림이 순조 6년(1806)에 청덕면 성태리로 옮겨지어 덕원서원이라 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자진 철폐하였고, 고종 39년(1902) 지방 유림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원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으며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합천군 청덕면 성태길 81
덕산사(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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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덕산사(산청)

덕산사는 657년 무염(無染) 국사가 창건하였다. 본래 덕산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나 1609년에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고 수백 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었는데 1959년 원경스님이 절을 다시 세우며 내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2020년 10월 내원사 대웅전의 위치 고증을 위한 시굴 조사에서 덕산사라는 사찰명이 새겨진 기와 파편이 발견되어 내원사가 덕산사 터에 지어진 것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2021년 3월 원래 이름인 덕산사로 사찰 명칭이 변경되었다. 덕산사는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쳐지는 위치에 자리하여 사찰 어디에서나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사찰이 물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흐린 날에는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신비감을 더해준다.

⌖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하내원로 256
덕산서원(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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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역사관광

덕산서원(고성)

덕산서원은 고성 IC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원으로 1979년 이학도 선생이 선조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부지 3만 3,000㎡에 조성하였다. 덕산서원에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서원 건물과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덕산정, 팔각정, 관리사 등이 있다. 봄철 벚꽃 놀이를 비롯하여 사철 아름다운 경관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덕산서원 인근에는 고성마동호습지, 당항포만, 예진벌레잡이식물원 등 많은 관광지가 있는 곳이다.

⌖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두호2길 76-13
대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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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역사관광

대촌마을

대촌마을은 섬진강과 가깝고 역사가 오래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금석 병용 시기인 청동기시대에 형성된 마을로 임진왜란 이후 대촌마을로 명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산 둘레길 원부춘-가탄 구간에 있으며 하동 최 참판 댁과 가깝다. 최근 대촌마을에선 빈 창고를 개조해 ‘대촌 광장’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열고 주민과 여행객의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어르신들이 만든 소품과 하동을 나타내는 배지 등 기념품도 판매한다.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대촌길 10
대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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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대장마을

경호강 물줄기에 자리한 이 마을은 신라 때 어느 대장이 쉬고 간 곳이라 해서 대장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곳곳 담벼락에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져 정겹다. 경호강은 겨울에 언 강이 거울처럼 맑다는 뜻인데, 경호강 북쪽은 덕유산과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하늘을 가로막아 여름에 몰려오는 습한 비구름이 산자락에 부딪혀 넘어가면서 큰비를 뿌리는 지역이다. 대장마을은 이 경호강 상류에 위치해 강폭이 넓고 수량이 많으며, 유속이 빨라 여름철 수상 레저인 래프팅을 즐기는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친환경로2506번길 85
대원사(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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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역사관광

대원사(산청)

지리산의 천왕봉 동쪽 아래에 신라 제 24대 진흥왕 9년(548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평원사라고 했다. 그 뒤 1 천여 년 동안 폐쇄되었던 것을 조선조 숙종 11년에 운권선사가 문도들을 데려와 평원사의 옛 절에 사찰을 건립, 대원암이라 개창하고 선불간경도량을 개설하여 영남의 강당이 되었다. 조선조 고종 27년에 혜흔선사의 암자가 무너져 크게 증건하였다. 서쪽에는 조사영당을 보수, 동쪽에는 방장실과 강당을 건립하여 대원사라 개칭하고 큰스님을 초청하여 설교를 하니 전국위 수행승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1914년 1월 12일 밤에 다시 불로 절이 모두 타버린 것을 여러 스님들이 다시 중창하여 1917년 전(殿), 누(樓), 당(當), 각(閣), 요사채 등 12동 184칸의 건물을 지었다.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 등으로 폐허가 되어 방치되다가 1955년 9월에 비구니 법일(法一)화상이 주지로 임명되어 1986년까지 대웅전, 사리전, 천광전, 원통보전, 봉상루, 범종각, 명부전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부근에는 옛적 선비들이 수학했다는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이 있다. 또한 대원사입구 주차장에서 대원사까지 약2㎞에 이르는 대원사계곡은 산이 높고 물이 맑을 뿐 아니라 바위틈 사이로 뿜어내는 물과 괴암은 절경이다. 용이 100년간 살다가 승천했다는 용소, 가락국 마지막 구형왕이 이곳으로 와서 소와 말의 먹이를 먹였다고 하는 소막골 등이 위치하고 있다.

⌖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길 455
대광사(창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역사관광

대광사(창원)

1930년에 창원특례시 진해구 화천동에 시중 포교당으로 출발하였다. 1950년대에는 주지 무상스님과 신도 이장술, 팽무진상 등이 여좌동으로 이전하여 법당, 칠성각, 요사채 등을 건립하였고, 1980년 마진터널이 개설되면서 주지 운성스님과 신도 허대근 등은 태백동으로 이전하여 법당, 회관, 요사채, 유치원 등을 건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광사는 어린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불교적 세계관을 형성하고, 불교적 경험을 통해 올바른 심성을 키우고자 대광 유치원을 1984년 8월에 설립하였다. 운성스님이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고, 설립 당시에는 2학급이었으며, 2007년에는 5학급으로 인가·증설되었다. 1997년부터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불교 대학을 운영하며, 2001년 조계종 포교원으로부터 정식 불교 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1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장복산 공원의 편백림과 연계하여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다.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진해대로 303 (태백동)
대각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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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대각서원

대각서원은 1610년(광해군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하항, 손천우, 김대명, 하응도, 이정, 유종지, 하수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되었다가 1947년 지방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각서원은 본당 건물과 동재, 서재, 그리고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고 본당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후 툇집 형식이며 정면의 기둥은 배흘림을 둔 두리기둥으로 단면의 크기도 크고 훤칠하다. 가구는 5량 구조로 장식이 잘되어 있다. 양 툇간에는 퇴보를 걸었으며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서원으로서 전체적인 배치가 무난하며 부재의 사용이나 적절한 비례의 적용, 그리고 동재의 여러 가지 기술적인 수법 등 조선 후기 건축의 여러 기법을 볼 수가 있어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서원 담장도 흙 돌담으로 축조기법이 돋보이며 일반 한옥의 담장보다 높이가 높다. 처음에는 각재 하항을 모시기 위한 대각사를 지었다가 그 뒤에 무송 손천우, 백암 김대명, 영무성 하응도, 모촌 이정, 조계 유종지, 송정 하수일 등 6분의 선현을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 7위를 배향하고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각길 104-21
당포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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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영시역사관광

당포성지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아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당포승첩이다. 당포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 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켰다.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7m, 폭 4.5m이며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지은 망루 터가 남아 있고, 성문 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밖으로 쌓은 작은 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농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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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역사관광

농산정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산-1
다솔사(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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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역사관광

다솔사(경남)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범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고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숙종 12년(1686)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중창불사로 크게 중흥했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후인 영조 24년(1748)에 큰 불로 말미암아 불행히도 큰 재앙을 겪었으며 같은 왕 34년(1758)에 여러 스님이 또 합심하여 명부전과 대양루 그리고 사왕문을 중건했다. 그런데 1914년 12월에 또 화재가 일어나 모든 전각이 불탔으나 다행히도 대양루는 소실되지 않았으며 그 이듬해부터 3년간 중건 끝에 현존하는 것이 이 건물이다.

⌖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남해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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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향교

남해향교는 1450년 하신(河紳)이 남해현령으로 재임할 때 봉강산 포교당터에 건립하여 개교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후 1669년(현종 10)에 사당인 대성전을 고쳐 세웠다. 그 후 고종 29년(1892)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점차 그 밖의 건물들도 모두 옮겨 세웠다. 완만한 경사지에 출입구인 외삼문,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비교적 낮은 터에 있고, 그 뒤로 조금 높은 터에 내삼문과 성현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이나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
남해 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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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임진성

남면 상가리 남쪽에 위치한 임진성은 이름 그대로 임진왜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민, 관, 군이 힘을 합쳐 쌓았다는 이유로 민보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임진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길게 늘어선 돌덩이들이 차곡차곡 높게 쌓아져 있으며, 토성으로 된 외성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형태는 테뫼식으로 사암, 화강암, 안산암 등 활석으로 장방형 쌓기로 구축하고 틈새는 잔돌을 끼워 마감하였는데, 옥포 인접 구릉에 타원형 성곽으로 성곽 내 토루를 만들어 통로를 만들었다. 옛날에는 성루, 감시사, 망대, 탑대, 서당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시설물은 없고, 성곽과 동문터, 서문터, 우물터만 남아있다. 현존하는 성벽의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는 최근보수 공사를 거쳤고, 2014년에는 성 내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연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상가리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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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들어오면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 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 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 전의 그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 채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남해대로 3829
남해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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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역사관광

남해 충렬사

벚꽃터널 길을 지나 노량마을로 들어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 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 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충렬사는 장군이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한 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다. 남해 충렬사는 규모가 작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와 사우 그리고 충무공비와 충민공비, 내삼문, 외삼문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청해루와 장군의 가묘가 잘 정리되어 있다.

⌖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로183번길 27
남악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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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역사관광

남악서원

남악서원은 신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략상의 요충지를 찾아다니다가, 이곳 금산 아래서 진을 치고 휴식하던 중 비몽간에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의 위업을 가르침 받아 높은 공을 세웠다고 전한다. 1922년 지방 유림이 중건하고, 경주 서악서원의 이름을 본떠 남악서원이라고 하였다. 사당에는 김유신 장군과 최치원 선생, 설총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사당과 서원, 솟을대문이 남북 축상에 놓여 있고, 서원 좌우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재가 각각 마주 보고 있는 □자형의 좌우대칭 배치를 나타내고 있다.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오량구조 팔작지붕이다. 특이한 점은 대청이 없고, 툇마루가 확장되어 대청의 기능을 하고 있고, 사당은 서원 바로 뒤에 높게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 구조 팔작지붕이며, 전퇴칸이 없는 평면형이다.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길 102
남계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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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역사관광

남계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년) 개암(介庵) 강익(姜翼)에 의해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도심(道心) 회복(유학 교육)과 일두(一蠹)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蘫溪)’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정유재란(1597년)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03년(선조 36년)에 나촌으로 옮겼다가, 1612년(광해군 4년)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남계서원은 경사의 지형 조건을 활용하여 앞쪽은 강학공간, 뒤쪽은 제향공간이라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서원의 독창적 건축 배치형식의 기준을 마련하였고,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전형이 되었다. 함양 남계서원은 1868년(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경남 유일의 존속서원이다. 함양 남계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9년 등재되었다.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
남강서원(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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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역사관광

남강서원(함안)

고려시대 함안 출신의 장군인 충열공 이방실(1298~1362) 장군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이방실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1842년(헌종 8) 후손들이 남강사를 건립하여 매년 제를 지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후손들이 1944년 옛터에 복원하였다. 그 후 1998년 정부 보조금으로 충렬사와 남강서원을 중건하여 현재까지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남강 서원은 사우인 충렬사, 강당, 동·서재(경모당·영덕당), 외삼문인 숭의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원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목조 와가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이다. 서원 뒤편에는 이방실 장군을 배향하는 충렬사가 있으며,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장군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다. 서원 밖에는 ‘고려 대원수 중서평장사 충렬 이공 유허비’가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5일에 향사하고 있다.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포5길 82
남강서원(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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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역사관광

남강서원(양산)

남강서원은 죽재 이겸수공을 추모하는 서원으로, 관민의 염원으로 1783년(정조 7년)에 남강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고, 1868년(고종 5년)에 사림의 공의에 따라 남강서원으로 승호 되어 후학양성이 활발하고, 사림유생들의 강학논경이 빈번하였던 곳이다. 1871년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고 터만 남아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2005년에 복원을 발의하고, 2006년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성균관으로부터 남강서원 복원에 대한 승인과 문헌적 고증을 받아 2008년에 좋은 날을 잡아 기공하여, 2009년에 완공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매월 15일에 분향례와 매년 봄 향례가 서원에 있는 충열사에서 향도사림과 후손들에 의해 봉행하고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용주로 300
극락암(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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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역사관광

극락암(양산)

양산 극락암은 통도사의 여러 말사 중 하나이다. 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 떨어진 산속 암자이다. 고려 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영조 때 철홍대사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선사가 중건, 중수하였다. 풍수지리상으로 입지를 보면 연꽃이 물 위로 올라온 모양인 연화도수형의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한강 이남의 제일가는 호국 선원이며 하안거와 동안거 도중에 일주일간 한숨도 자지 않고 깨어있는 용맹 정신이 끝나면 쉬지 않고 그 길로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것이 이곳의 전통이다. 극락암 안에 있는 극락영지와 홍교는 통도사 8경 중의 한 곳으로 경봉 스님이 71세에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극락으로 가는 다리의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계절 다 좋지만 봄에 피는 벚꽃이 유난히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김해 양동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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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역사관광

김해 양동리 고분군

김해 양동리 고분군은 기원전 2세기대로부터 기원 5세기대에 걸쳐 형성된 고분군으로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묘제와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 국가 형성기로부터 발전기의 역사적 사실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가곡부락 뒷산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규모는 약 3만 평으로 추정되며 김해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이 고분군은 지하에 무덤이 중복된 상태로 조밀하게 설치되어 매우 복잡한 배치상태를 보여준다. 이 유적은 일찍부터 김해지역 중심고분유적의 하나로 주목받은 곳이다. 1984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1990∼1996년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48기의 유구와 토기와 청동기, 철기 등 5,100여 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묘제의 변천과정과 연대 규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출토된 각종 유물은 시기별 가야문화의 실상과 변화상을 한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종래의 연구에서 부족했던 많은 자료를 보완하여 국제성을 띤 가야문화의 세련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통하여 가야사회의 문화와 국가·사회적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구야국(狗耶國) 또는 본가야(本伽倻)가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하여 번성한 해양왕국(海洋王國)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2세기 후반에서 4세기까지가 가야철(伽倻鐵)의 전성기로서 해상활동도 가장 활발하여 외래문물도 해로를 통해 직접 유입되었던 가야시대의 번성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철생산이 가야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철시장의 상실로 인한 가치 하락이 가야쇠퇴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새롭게 부상한 신라나 백제의 압박으로 점차 쇠망하였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김해양동리고분군은 그 발굴성과를 통해 각 시기별 가야문물의 진수를 보여줄 뿐 아니라 낙동강 하류지역 가야사회의 성장과 그 국가적 성격을 밝히는 귀중한 유적이라 할 것이다.

⌖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