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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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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콘텐츠 2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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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산 봉수대 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목멱산 봉수대 터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 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 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평상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경계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을 올리도록 하였다. 남산 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도달하게 되는 중앙 봉수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5개소가 있었다 하는데, 현재 봉수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 자리를 확인할 수는 없는데, 「청구도」등의 관련자료를 종합하여 1개소를 복원하였다.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명락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관악구역사관광

명락사

서울 관악구 청룡동에 있는 명락사는 관악산 줄기의 끝자락 도심 상업지역에 있다. 40여 년 넘게 서울 서남권의 포교 활동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포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찰이다. 청년회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토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정기 법회를 갖는다. 2호선 봉천역과 서울대입구역 중간지점에 있다.

⌖ 서울특별시 관악구 청룡1길 11
맥아더 사령관 한강방어선 시찰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역사관광

맥아더 사령관 한강방어선 시찰지

북한군의 남침 직후 맥아더 사령관이 미군의 참전 결정에 앞서 한강방어선 전황을 확인하기 위해 시찰한 장소이다. 1950년 6월 29일 수원비행장에 도착한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는 전쟁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어 전선을 직접 확인하기로 하고, 시흥을 거쳐 한강 전선을 마주한 영등포 동양맥주공장(현 영등포공원) 옆 언덕으로 이동하여 전황을 관찰하였다. 이때 언덕의 진지를 방어하던 한 병사가 “상관이 철수 명령을 내릴 때까지 지키겠다”라고 말하여 맥아더를 크게 감동시켰다고 한다. 이날 맥아더의 전선 시찰을 미군의 6·25전쟁 참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로 275 (영등포동)
마포전차종점 3·1운동 만세 시위지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마포구역사관광

마포전차종점 3·1운동 만세 시위지

마포 전차 종점은 현재는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에서 마포대교 진입 구간을 이른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말까지 서울 중심부를 오가던 전차의 종점이 있던 곳이다. 이 장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으로 1919년 3월 1일 오후 8시경 약 1,000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인 3·1 운동 만세 시위지이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오후 2시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며 수천 명의 학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종로에서 광교, 시청 앞, 남대문 등지를 거쳐 해가 질 무렵 오후 8시에 이곳 마포 전차 종점에 집결하여 다시 한번 크게 독립만세를 외쳤고, 연희전문학교 부근에서는 오후 11경까지 해산하지 않고 시위행진은 계속되었다. 단 한 건의 폭동도 발생하지 않고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명했던 곳이다. 현재는 현재 마포전차종점은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기념비와 유적지가 남아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역사적 기억을 되새긴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20 (마포동)
류순정·류홍 부자 묘역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서울특별시 구로구역사관광

류순정·류홍 부자 묘역

조선 전기의 문신 류순정(1459~1512)과 무신인 그의 아들 류홍(1483~1551)의 묘역이다. 류순정과 류홍 부자는 공을 세운 공신으로, 이 묘역은 16세기에 조성되었다. 오늘날 서울 지역에서 유일한 부자(父子) 2대 공신묘역으로, 돌로 만들어 묘 앞에 세워 둔 석물들의 양식과 묘역의 조성 형태로 조선시대 공신의 묘를 세우던 관습이나 제도 등 묘제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류순정의 묘 형태는 부인과 상하 합장으로, 위는 류순정의 묘이고 아래는 부인 안동 권씨의 묘이다. 부부의 묘역 왼쪽에는 류순정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567년(명종 22)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한성부 판윤이었던 강혼이 지었고, 글씨는 이름난 서예가였던 송인이 썼다. 류순정의 묘에서 서남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언덕에 아들 류홍을 비롯한 후손의 묘역이 있다.

⌖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동
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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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역사관광

독립문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독립문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세운 기념물이다. 갑오개혁은 내정개혁과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던 개혁운동이다. 그러나 외국세력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하였고 나라의 자주독립 또한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었다. 화강석을 쌓아 만든 이 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의 앞뒤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그 양옆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바로 인근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있어 독립문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을 되새겨 보는 역사 여행을 할 수 있다.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도선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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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역사관광

도선사(서울)

우이동 서쪽에서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를 향하여 계곡을 따라 약 1㎞쯤 올라가면 일주석에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 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고 쓰여진 산문(山門)을 맞게 된다. 사적기에 의하면 도선사는 862년(경문왕 2)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도선국사는 이곳의 산세가 1,000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고 예견하고 절을 창건한 뒤 큰 암석을 주장자로 갈라 마애관음보살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후기까지의 중건·중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북한산성을 쌓을 때는 승병들이 이 절에서 방번(보초 임무)을 서기도 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863년(철종 14) 김좌근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을 신축하였고, 1887년(고종 24)에는 임준이 오층탑을 건립하였으며, 탑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호국참회원, 명부전, 삼성각, 적묵당, 천왕문, 범종각, 종무소,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의 내부 벽에는 달마(達磨)와 혜능(慧能), 청담(靑潭)의 영정이 그려져 있으며, 후불탱화, 팔상도(八相圖), 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 등이 있다. 현재 도선사에는 마애불입상(제34호), 목조 아미타불 및 대세지보살상(제191호), 석조독성상(제192호), 청동종 및 일괄유물(제259호) 등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을 비롯해 19세 말 조성된 지장시왕도, 괘불도, 묘법연화경, 대방광불화엄경소 등의 성보문화재가 다수 있다.

⌖ 서울특별시 강북구 도선사길 278 (우이동)
덕수궁 대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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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덕수궁 대한문

대한문(大漢門)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대한’은 “한양이 창대해진다”라는 뜻이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었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동문인 대안문(大安門) 주변이 환구단을 비롯하여 새로운 도심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정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름은 1906년(광무 10) 문을 수리하면서 바꾸게 되었다. 원래 대한문은 약 33m 앞에 있었으나 1970년대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한문을 지나서 있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하여 복원하였다.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대원군별장(석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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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역사관광

대원군별장(석파정)

조선 후기에 건립된 흥선대원군의 별서로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왕산 바위 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흥선대원군이 ‘석파정’이라 이름 지었으며 삼계동 정자라 하기도 한다. 본채 7채의 살림채와 육모정, 유수성중관풍루 등 다양한 건축물로 구성된 별서는 오늘날 안채, 사랑채, 별채와 정자로 4개의 동만 남아 있다. 아름다운 경관과 수려한 건축을 자랑하며 조상들의 풍류와 예술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현재 서울미술관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다양한 근현대 미술관 전시와 함께 미술관 입장권으로 석파정 야외 공원 관람이 가능하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11길 4-1 (부암동)
대성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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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초구역사관광

대성사(서울)

기록상 마라난타가 백제로 오는 동안 풍토병으로 고생을 하였는데, 우면산 물을 마시고 완쾌하였다고 한다. 이에 우면산에 대성초당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성사의 전신이라 전해진다. 또한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명 중 한분이신 백용성 스님께서 주석하시며 불교 대표로 참가하시어 대승적 독립운동을 전개하셨다. 현재 대성사에는 백용성 스님이 조성하신 목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이 모셔져 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328길 49 (서초동)
달마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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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역사관광

달마사(서울)

한강, 그리고 강 건너 남산을 바라보는 서달산 중턱에 작은 사찰이 있다. 낮이면 흐르는 강물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고, 밤이면 작은 불빛을 발하는 남산의 정경을 바라볼 수 있는 열린 사찰이다. 서달산을 남산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맑은 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심 속에서 찌든 혼탁한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도심 속 전통사찰이다. 이른 아침 새벽예불의 소리와 함께 지역주민과 하나 되고, 하루라는 인고의 시간을 지는 해와 같이하는 그런 포근한 사찰이다. 한강을 바라보는 녹지 속의 열린 공간이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참된 수행의 정신이 깃든 곳, 또 작지만 마음으로 넓힌 지역주민의 공간이다.

⌖ 서울특별시 동작구 서달로 50-26 (흑석동)
남산골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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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남산골한옥마을

1998년 조성된 남산골한옥마을은 남산 북측 옛 수도방위사령부 부지 총 79,934m²(24,180평)에 한옥 5동, 전통공예관, 천우각, 전통정원, 서울남산국악당, 새천년타임캡슐 광장으로 구성되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를 만나볼 수 있으며, 남산 자락을 따라 전통조경 양식으로 조성된 계곡과 정자, 각종 화초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전통정원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고 400년 후 서울정도 천년을 기대하며 1994년 당대의 기억을 매설한 서울천년타입캡슐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옛 가옥을 복원해 놓은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골한옥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연못 청학지와 그 곁으로 천우각이 있다. 천우각 광장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서울 곳곳에 있던 한옥이 이전·복원되어 옛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볼 수 있게 한 예스러운 공간이 나타난다. 모두 다섯 채의 한옥으로서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관훈동 민 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 씨 가옥이 있다. 이 중 건물 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은 옥인동 윤 씨 가옥만 새 자재를 사용해 복원했고 나머지 건물은 종래의 집 부재를 그대로 이전했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즐기는 다양한 체험거리 남산골한옥마을에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한옥 다섯 채를 활용하여 한옥실내 공간을 체험하면서 동시에 한국 전통문화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한복 입기, 한지 접기, 한글 쓰기, 전통차 마시기를 체험할 수 있고, 전통예절학교와 한방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는 전통혼례가 실제로 치러지고 전통혼례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도 천우각 맞은편 원두막에서는 짚공예 시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천우각 무대에서는 태권도 시범공연과 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피금정 마당에서는 제기차기, 윷놀이, 비석치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남산골한옥마을 곳곳을 동행하며 설명해주는 전통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해 있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필동2가)
금선사(서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서울특별시 종로구역사관광

금선사(서울)

금선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솔 내음이 가득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청와대와 경복궁이 위치한 인왕산이 바로 보이는 종로구 구기동에 소재하고 있다. 이북5도청을 지나서 북한산국립공원 비봉코스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첫 번째 관문인 삼각산 금선사의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도량의 전각은, 법회를 보는 반야전을 지나면 2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중앙에 있으며, 소나무를 지나서 108계단을 오르면 금선사의 주불이 모셔진 대적광전이 사찰의 가장 중심부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우측으로는 삼성각이 있고, 북한산의 일급수가 모였다가 흘러내리는 홍예교가 자리하고 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길 137
극락사(서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서울특별시 중랑구역사관광

극락사(서울)

1968년 4월 10일 건립된 극락사는 태조 이성계가 ‘절골’이라 이름 붙인 곳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불교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극락사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다양한 불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둘러보기 좋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방문한다.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91길 100 (망우동)
길상사(서울)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서울특별시 성북구역사관광

길상사(서울)

길상사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1987년에 김영한 여사가 법정스님의 무소유 청빈 사상에 감동받아 7,000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부동산을 기증하며 길상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법정스님은 1995년에 대법사로 등록하고, 1997년 12월 14일에 길상사로 개명하여 창건되었다. 길상사는 극락전, 설법전, 지장전, 범종각, 관세음보살상, 길상보탑, 길상화 공덕비, 법정스님 진영각 등 다양한 건축물과 시설을 자랑한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두고,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고 있다. 2005년에 옛 건물을 재정비하여 지장전과 선열당(공양간)을, 2008년에는 설법전과 종각을 새로 지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수행 공간으로 꾸몄다. 사찰 내에서는 불교와 가톨릭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의 만남이 빚어낸 섬세하고 오묘한 관세음보살상이 많은 사람들을 온화하게 맞이하고 있다. 2013년에는 법정스님의 유품과 저서를 전시하는 진영각을 개원하였다. 설법전에서 불교대학, 불교입문, 요가, 사경, 선명상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교육도량으로서의 신행을 실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잠로5길 68 (성북동)
국립4·19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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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역사관광

국립4·19민주묘지

삼각산(북한산) 기슭의 국립 4·19 묘지는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자행한 권력에 맞서다 1960년 4·19 혁명 때에 희생된 224분이 안장되어 있으며, 이를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중앙에는 의롭게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탑문이 새겨져 있다. 135,901㎡의 묘지 경내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주목과 단풍나무 등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으며, 1,652.9㎡ 규모의 기념관과 영정을 모신 유영봉 안소는 한식 목조건물이 330.58㎡ 규모로 확장되어 있다. 그 외에 상징문, 민주의 뿌리, 정의의 불꽃 등 조각 작품과 연못이 있으며, 보도블록을 예쁘게 깔아 놓은 산책로와 야외 의자도 있다. 벚꽃이 피는 5월, 공원에서 바라보는 삼각산(북한산)은 어머니 품과 같은 아늑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일몰의 풍경은 장관이다.

⌖ 서울특별시 강북구 4.19로8길 17
구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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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동구역사관광

구강사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구강사는 서울 동부지역 천태법음 요람이자 포교도량으로 대한불교천태종 소속 사찰이다. 5층 단독 건물로 5층에 법당이 있으며, 3층에는 교육시설인 금강유치원이 있다. 정기법회는 매월 넷째 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열리고 있으며, 불교대학도 운영되고 있다.

⌖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중로 64 (천호동)
관훈동 민씨 가옥 (구 부마도위박영효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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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관훈동 민씨 가옥 (구 부마도위박영효가옥)

관훈동 30-1에 위치한 민씨 가옥은 조선 말기의 정치인이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민영휘 일가가 거주한 곳이다. 민영휘는 일제강점기 판서, 한일은행 은행장 등을 역임한 관료로 막대한 부를 누렸으며 1895년 안국동으로부터 교동으로 이주하면서 관훈동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일가를 거주하게 했다. 1936년 기준으로 총 6동의 목조와즙과 2층 양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1976년 가옥 중 일부가 멸실되고 안채 일부와 문간채 등 목조와즙 2동만 남아있다.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민영휘와 그 본처 대방마마 평산신씨와 입양한 장남 민형식 등은 경운동에, 첩인 해주마마 안유풍과 그 아들 민대식은 관훈동에 살았으며 그 자식들까지 경운동과 관훈동 일대에 한데 모여 살았다. 관훈동 30번지는 1970년대까지 민영휘의 자손들이 소유하고 있었다가 경매와 매매를 거친 끝에 1986년 경인미술관이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 경인미술관 소유 당시인 1995~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로 안채 일부와 문간채가 이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고척동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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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역사관광

고척동 고인돌

구로구 고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이다. 고척고등학교 뒷산 삼국시대의 토성인 신정리 토성 경내에 있다. 이 고인돌은 1998년 서울대 조사단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 후 실시된 관련분야 교수들의 조사에서 덮개돌의 주변에 덮개돌과 동일한 형태의 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또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돌방이 확인되었으며, 굄돌 등의 배치 상황으로 미루어 고인돌로 추정케 한다. 고척동 고인돌은 구로구에서 유일한 고인돌로서 주변의 고척동 유물산포지 등과 더불어 청동기시대 주변 지역 일대의 문화상 이해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곳은 구로올레길 코스에 있으므로 가볍게 산책을 하면서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
경희궁 흥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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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역사관광

경희궁 흥화문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원래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문읜 5개로, 정문인 흥화문 외에도 동쪽에 흥원문, 서쪽에 숭의문, 남쪽에 개양문, 북쪽에 무덕문이 있었다. 창건 당시 경희궁은 창경궁 제도를 따라서 규모를 작게 하여 정문도 단층으로 세웠다. 경희궁 근처 얕은 고개를 ‘야주개’라 하였는데, 이는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명필이라 밤에도 빛이나 그 광채가 고개까지 훤하게 비추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흥화문은 원래 금천교 동쪽, 즉 현재의 구세군회관 빌딩 자리에서 동쪽인 종로를 향하게 지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들어 1915년에 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흥화문은 원래 위치에서 약간 뒤로 옮겨지면서 문의 방향도 도로와 나란하게 남향으로 바뀌었다.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찰인 박문사를 건립할 때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흥화문을 떼어갔다. 광복 이후 박문사가 폐지되고 그 자리에는 영빈관과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그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8년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흥화문을 경희궁터로 옮겨 왔는데, 옛 개양문이 있던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여 복원하면서 궁궐 정문으로서의 역사성을 되살리고자 하였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신문로2가)
경국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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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역사관광

경국사(서울)

경국사는 1325년에 자정율사가 창건하였는데, 삼각산의 청봉 아래 있다고 하여 ‘청암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창건주인 자정율사는 계율에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화(法華), 유식(唯識) 등에서도 조예가 깊었으며, 계율과 법화경(法華經) 관음신앙을 승상 하던 사찰이었다. 그리고 1349년 태고보우(太古普愚) 국사가 중국에 가서 석옥청공(石屋淸珙) 스님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고 귀국하여 경국사에 공민왕의 청을 받아 금란가사와 주장자(拄杖子)를 하사 받고 국사가 되었다. 1545년, 명종조(明宗朝) 때 왕모(王母)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불사를 하면서 국가의 경사스러움을 끊어지지 않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로 개칭하였다. 그 후 1698년에는 연화승성 스님이 절을 중수하고 천태성전을 세웠다. 천태성전은 독성을 모신 전각으로 이때 기록한 『천태성전상량문』이 지금도 전한다. 전 대통령 이승만도 경국사에 주석하던 보경스님이 인품에 감화되어 전 닉슨 부통령과 함께 참배한 일화도 전한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 보경 금어 큰스님이 뒤를 이어 주지 소임을 맡은 지관 대종사(전 조계종 총무원장)가 경국사를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으며, 2005년에 한국불교의 율풍 진작에 헌신했던 자운대율사의 계주원명사리탑(戒珠圓明舍利塔)도 이곳에 세워졌다.

⌖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국문로 113-10 (정릉동)
경성 부민관 폭탄 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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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역사관광

경성 부민관 폭탄 의거지

경성 부민관 폭탄 의거지는 경성부민관에서 친일파가 주도하는 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폭탄을 터트린 곳이다. 1945년 7월 24일 경성부민관 폭탄 의거 경성부민관은 1935년 12월 태평동 60번지에 세워진 경성부의 부립극장으로 오늘날로 하면 시립극장이다. 경성부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에 대강당·중강당·소강당·담화실 등을 갖춘 다목적 회관으로서 당시로는 드물게 냉난방 시설과 조명·음향시설을 갖추어 각종 극단의 공연은 물론 전시 총동원 체제 아래 각종 관변 집회의 장소로 널리 이용되었다. 경성부민관 폭탄의거를 주도한 조문기·유만수·우동학·강윤국 등 당시 20세 안팎의 열혈 청년들은 1945년 5월 서울 종로구 관수동 13번지 유만수의 집에서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하고 항일투쟁의 기회를 엿보았다. 1945년 7월 24일 저녁 경성부민관에서 친일파 거두인 대의당의 박춘금 일당이 주최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린다는 보도가 나오자 조문기 등은 비밀회합을 갖고 대회장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유만수가 수색변전소 공사장 발파 인부로 침투해 빼낸 다이너마이트로 사제폭탄 두 개를 만들어 대회 전날 밤 대회장 뒤편 화장실 쪽에 설치하였다. 폭탄은 대회 당일인 7월 24일 밤 9시경 박춘금이 시국 강연을 위해 등단하고 얼마 뒤에 터졌고 그것으로 대회는 중단되고 말았다. 경성부민관 폭탄의거는 해방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기에 꺾일 줄 모르는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안팎에 떨친 사건이었다. 현재는 서울시의회 부지로 폭탄의거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5 (태평로1가)
건청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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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역사관광

건청궁

건청궁(乾淸宮)은 1873년(고종 10)에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궁 안의 궁이다. ‘건청’은 ‘하늘은 맑다’라는 뜻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건청궁의 왕의 생활공간인 장안당(長安堂,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냄)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곤녕합(坤寧閤, 땅이 편안함)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안당과 곤녕합은 복도로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고종과 명성황후는 10년 정도 생활하였다. 그러나 1895년(고종 32) 곤녕합 옥호루(玉壺樓, 옥으로 만든 호리병)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고종은 이듬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이후 1909년(융희 3)에 철거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미술관이 들어섰다가 철거된 후 2007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내원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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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역사관광

내원사(서울)

내원사는 삼각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정릉 골짜기를 지나 1㎞ 정도 오르면 멀리 목멱산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터전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내원사의 존재를 밝혀주는 것은 현재로서는 김정호가 제작한 「수선전도(首善全圖)」와 1859년(철종 10) 만들어져 사찰에 전하는「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라는 목판이 유일하다. 수선전도에는 현재 내원사가 자리한 곳과 같은 위치에 내원암이 표시되어 있고, 「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목판에는 삼각산내원암(三角山內院庵)이라는 기록이 있어 19세기 전반만 해도 법등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을 알려준다. 그러던 내원사가 언제 어떠한 이유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오늘도 무상함 속에 범종루 아래 길게 이어진 이끼 낀 석축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나고, 바위틈에서 솟는 감로수는 사찰의 흥망성쇠를 잊은 듯 말없이 흐르고 있다. 출처 : 내원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국문로 262-151 내원사